검은 얼굴의 이 팀장은 하현을 노려보았다.“이봐. 이놈을 어서 데려가! 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의 본때를 보여줘!”하현은 이 팀장이란 사람을 흥미로운 눈길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당신 무성 경찰서 사람 맞지?”“왔으면 제대로 조사를 할 것이지 왜 조사도 하지 않고 이래?”“아무 사람이나 이렇게 잡으면 다야?”“그러다가 나중에 어쩌려고 그래?”검은 얼굴의 이 팀장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자식아! 난 경찰서 팀장이야. 내가 할 일은 내가 제일 잘 알아! 네깟 놈이 가르쳐 줄 필요없어!”“당신은 사람을 다치게 하고 법을 어겼어. 법을 집행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당신을 체포할 자격이 있지!”“한 번만 더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으면 당장 죽여버릴 거야!”검은 얼굴의 이 팀장은 언성을 높였고 그의 성난 눈은 금세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동시에 그는 오른손을 뻗어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려고 했다.“왜? 나도 때리려고? 때리고 싶어?”하현은 아무 말없이 담담하게 핸드폰을 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 통화가 끝난 후에 다시 생각해 봐!”“이놈이...”검은 얼굴의 이 팀장은 화를 내려고 입을 벌렸다가 하현의 무덤덤한 표정을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핸드폰을 받았다.그러나 10초도 되지 않아 이 팀장의 성난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그는 급히 손짓을 하여 몇몇 부하들에게 하던 행동을 그만두라고 지시한 뒤 당황한 표정으로 백효단에게 말했다.“백 원장님, 정말 죄송합니다!”“이 일은 병원 내부의 분쟁이니 우리 경찰서 사람들이 끼어들어 처리하는 건 좀 어려울 듯합니다.”말을 하면서 그는 공손하게 핸드폰을 하현에게 건네주었다.그의 얼굴에 두려워하는 기색마저 드리워졌다.하현이 만천우와 호형호제하는 사이인 줄 그가 상상이나 했겠는가?이런 인물을 그가 어떻게 건드릴 수 있겠는가?“어렵겠다니?”백효단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이 팀장님,
하현의 손바닥이 이 팀장의 얼굴을 후려쳤고 이 팀장의 양쪽 얼굴에는 벌겋게 부어오른 손자국이 선명했다.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하현을 씹어 먹을 듯 노려보았다.그러나 결국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내가 잘못했어.”하현과 만천우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다.이 팀장이 어떻게 감히 여기서 하현을 건드릴 수 있겠는가?“자, 이제 말해 봐.”하현은 이 팀장을 향하던 자신의 손을 거두어들이며 말했다.“한 달에 백효단한테 얼마나 받는지 말해 보라구!”이 팀장은 얼굴을 파르르 떨면서 말했다.“삼, 삼, 삼천만...”“퍽!”하현은 또 뺨을 세차게 때렸다.“그렇게 싸게?”“삼천만 원에 당신을 매수했다고?”“경찰서 얼굴에 먹칠을 할 생각이야?”“퍽퍽퍽!”하현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뒷돈을 받은 사람이 법을 운운하다니, 부끄럽지도 않아?”“자, 이제 말해 봐. 당신의 눈에는 도대체 법이란 게 뭐야?”“어서!”이 팀장은 고개를 축 늘어뜨린 채 눈만 껌뻑껌뻑거렸고 그 모습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보였다.하현을 가르치라고?법이 무엇인지 말하라고?그가 할 수 있겠는가?감히 그가?그가 그럴 깜냥이 되겠는가?“왜? 못 하겠어?”하현이 이 팀장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보아하니 그냥은 안 될 모양이군. 당신의 제복을 벗기고 지옥불에 보내야 반성이란 걸 하겠군!”“하현, 잘못했어.”“정말 잘못했어.”“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을게!”이 팀장은 얼굴이 죽을상이 되었다.그는 갑자기 무릎을 풀썩 꿇으며 스스로 머리를 땅바닥에 쿵쿵 찧었다.자존심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하현이 정말로 마음만 먹는다면 경찰 하나쯤 얼마든지 잘라 버릴 수 있을 거라는 걸 이 팀장은 깨달은 것이다.백효단의 눈가는 쉴 새 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이해인의 얼굴도 어느새인가 그녀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덜덜 떨고 있었다.그녀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의 모습을 본 이해인 일행들은 모두 반가운 표정으로 외쳤다.“어서 오세요!”긴 머리의 남자는 이해인의 뾰족한 턱을 치켜든 뒤 이 팀장을 발로 걷어차 바닥에 넘어뜨렸다.“쓸모도 없어! 이런 일도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다니!”이 팀장은 민망한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이 팀장은 평소에 남자들을 괴롭히고 제멋대로 날뛰며 매달 삼천만원에 달하는 보호비를 받았다.결국 중요한 순간에 자신이 아무 쓸모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하지만 그는 바로 물러나지 않고 어떻게든 이 남자에게 미운 털이 박히지 않으려고 애썼다.“이제 하현 당신은 죽었어! 당신 앞에 있는 이 분은 무성 만 씨 가문 만진해 어르신의 조카야!”“만천구와 만천우 서장의 사촌동생!”“만천기라고!”자신의 든든한 후원자가 나타난 것을 보고 백효단은 오만방자한 모습으로 돌아와 아주 의기양양해졌다.이때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가리키며 냉소를 흘렸다.“만천기 이분은 또한 우리 자선병원 최대 주주이기도 해!”“우리 자선병원을 건드린 건 만천기의 얼굴을 때린 거나 마찬가지야!”“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무슨 재주로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백효단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어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이해인 역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못 들었어? 어서 무릎 꿇지 않고 뭐 해? 어서!”한 무리의 자선병원 사람들은 모두 얼굴을 치켜들고 자신의 원한을 이제야 풀 수 있다고 생각했다.어쨌든 그들이 보기에 하현이 아무리 잘났건 아무리 배경이 뛰어나건 무성 만 씨 가문 사람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만천기가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들은 두 눈으로 똑똑히 봐 온 터였다.이 팀장도 머리를 숙인 채 냉소를 지었다.이제 하현은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다.아까 전화로 만천우가 하현은 자신의 형제나 다름없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만천기는 만천우의 사촌 형제였다.무성 만 씨 가문이라는 말에 설은아와 설유아의 얼굴에 먹구
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모두 양아치들일 뿐이야!”이 말을 들은 설유아는 참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하현이 너무 거만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하지만 형부에 대한 믿음 때문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양아치?!”“누가 겁도 없이 감히 그런 말을 해?”“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나 해?”“우리가 최고 가문은 아니지만 무성 관청에서는 대단한 집안이야.”“당신 같은 외지인 하나 건드리는 건 일도 아니지!”“그런데 뭐? 양아치?!”한 무리의 사람들은 모두 하현을 비아냥거리며 바라보았고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이를 갈았다.“이놈! 너 오늘 제대로 죽어 봐! 백 원장한테 미움받는 건 아무렇지 않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미움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게!”“아! 이 여자들 괜찮네! 내가 좀 놀다가 버리면 그만이야!”만천기 뒤에 있던 남녀들은 모두 냉소를 흘리며 하현 일행을 도살장에 끌려온 어린 양 보듯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비아냥거렸다.그녀들의 눈에는 하현 같은 사람이 감히 만천기 같은 도련님과 다툴 깜냥도 되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주제넘어도 한참을 넘었다!이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짓이었다!하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만천기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앞으로 나와서 세상 불손한 모습으로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네놈이 여기서 소란을 피운 자야?”“맞아. 이놈이 여기서 함부로 소란을 피웠어!”백효단이 도발적인 얼굴로 하현 앞에 다가와 눈썹을 치켜올리며 떠들어댔다.“개자식! 방금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말하더니!”“이 팀장을 발로 찼잖아?”“왜? 병원 문 닫게 한다며?”“자!”“지금 네놈 눈앞에 서 있을 테니 해 볼 테면 해 봐!”“배짱이 있으면 어디 때려 보라고!”“못 때리면 넌 개자식이야!”만천기가 곁에 있다고 생각하자 백효단은 없던 용기까지 생겼는지 끊임없이 하현에게 도발했다.“퍽퍽퍽!”오만
”나 만천기는 살면서 당신같이 날뛰는 사람들을 많이 봤지.”“하지만 감히 내 앞에서 이렇게 도발한 건 당신이 처음이야!”만천기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세상 물정 모르는 놈을 눈앞에 둔 그야말로 안하무인의 눈빛이었다.만천기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하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당신이 어느 가문 사람인지는 모르지만.”“어느 지방 명문가인지는 모르지만 말이야.”“한 가지만 알아둬. 무성은 만 씨 가문이 지배하는 곳이야!”“당신 같은 외지인은 나를 만나면 얼른 고개를 숙여야지!”“내 앞에 바짝 엎드려야 한단 말이야!”“한마디로 난 당신 같은 뜨내기들 별로 관심없어!”“그러니 짧게 끝내자고. 한 손, 한 발 잘라!”“그리고 이 두 여자는 3일 동안 나랑 같이 있어야 해!”“그러면 이 일은 없던 일로 해 주지!”“만약 당신이 불복한다면 당신한테 30분을 줄게. 그동안 당신 사람들 마음껏 불러!”“만약 당신이 부른 사람이 이 만천기를 위협할 만한 사람이라면 내가 무릎 꿇고 당신한테 아버지라고 부를게!”“날 위협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당신의 사지를 부러뜨려 놓는 수밖에!”“알아들었어?”만천기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하현에게 눈을 내리깔고 담배를 빨아들였다.무성 전체가 그의 손아귀에 있는 듯 말했다.무성에서 유일한 일인자인 듯 의기양양했다.백효단은 그의 모습을 보고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그녀는 하현이 어떤 식으로든 벌을 받아야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한 손, 한 발?”“3일 동안 데리고 있겠다고?”하현의 눈에서 한기가 서렸다.“당신이 뭔데 그런 짓을 한단 말이야?”만천기는 살벌한 눈빛으로 느물대며 말했다.“야, 내가 이렇게 당신 체면을 세워 주었는데 아직도 그렇게 뻔뻔하게 굴어!?”“내가 정말로 화가 나면 어떻게 되는지 정말 보여줘야겠어?”옆에 있던 이해인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지 경멸하는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며
”앗!”처량한 비명이 장내를 울렸다.만천기는 자신의 종아리를 감싸고 땅바닥에서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방금까지도 의기양양한 기운을 뿜으며 씩씩거렸던 백효단 일행은 멍하니 넋을 잃은 표정이 되었다.그녀들은 하현이 이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다.신분이 비길 데 없는 만천기조차도 함부로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게다가 전화기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무성 경찰서 서장 만천우라니!현장에 있던 건달들도 모두 분노에 휩싸였다.그들은 무성에서 거칠 것이 없던 사람들이었다.평소에 그들을 건드리는 사람조차 없었다.누가 그들을 건드릴 수 있겠는가?이 무슨 거짓말 같은 일인가?십여 명의 경호원들은 하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눈을 희번덕거렸다.그러나 하현은 오히려 그런 그들의 눈빛이 귀찮다는 듯 담담하게 만천기를 바라보며 말했다.“만천기, 이제 당신은 당신 사람들 데리고 물러나야겠는데.”“아니면 내가 당신 사지를 다 못쓰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거든. 어떻게 할 거야?”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말했지만 그의 어조 사이사이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카리스마가 배어 있었다.“함부로 움직이지 마!”“함부로 굴지 말라고!”땅바닥 위에서 경련을 일으키던 만천기는 그의 일행들의 동작을 저지했다.그리고 나서 그는 이를 악물고 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말해 봐! 당신 도대체 누구야?”지금 만천기의 마음속에는 의문만이 가득했다.자신의 사촌 형이자 무성 경찰서 수장이 눈앞의 이놈과 도대체 어떤 존재길래 이놈이 이렇게 함부로 날뛴단 말인가?“내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은 알 자격도 없고 알 필요도 없어.”“당신이 무슨 짓을 했느냐가 중요하지.”하현은 냉랭한 표정으로 두 손을 뒷짐지고 걸어갔다.“자선병원은 돈을 벌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어. 사람을 살리는 병원에서 함부로 사람을 내쫓다니! 그것도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그리고 당신은 제멋대로 날뛰고 있어!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
만천기는 손을 흔들며 흥분한 자신들의 동료와 부하들을 제지했다.그 후 그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 하현을 바라보며 낭패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하현...”“미안해. 잘못했어.”“내가 눈이 멀었나 봐.”사과를 하는 것인가?만천기가?얼굴이 창백한 채 벌벌 떨면서도 진심으로 사고하는 만천기를 본 백효단은 하마터면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그녀는 온몸으로 충격을 받았다.만천기 같은 인물이 하현에게 머리를 숙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눈앞에 벌어진 광경이 사실이란 말인가?전화 한 통에 천하의 만천기가 잘못을 빌어?자신이 철석같이 믿고 의지했던 인물이 무릎을 꿇자 백효단은 말 그대로 눈앞이 아찔했고 불안한 마음에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잘못했다고?”얼굴이 창백해진 만천기를 보며 하현은 예의 그 담담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아.”하현의 따가운 시선을 느낀 만천기는 난처한 듯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당신이 용서를 해 준다면 내가 완전히 새로 태어난 것처럼 살게.”“지금부터 다시는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을 약속할게!”말을 하는 동안 만천기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왼손을 스스로 부러뜨렸다.“따각!”낭랑하고 몸서리치는 소리가 울렸고 만천기의 손목을 그대로 꺾여 버렸다.하현이 용서해 준다고 할 때 보다 적극적으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만천기는 생각한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하현이 손을 쓸 지경이 되면 그땐 모두 쓸모없는 짓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하현은 무릎을 꿇고 있는 만천기에게는 시선을 두지도 않고 루돌프 일행에게 어서 설은아를 데리고 병원을 옮기라고 했다.자선병원과 백효단 일행은 당연히 누군가가 알아서 혼쭐을 낼 것이니 하현은 그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병원 주차장에 도착한 설유아는 그제야 하현에게 입을 열었다.“형부, 방금 정말 깜짝 놀랐어요.”설유아는 숨을 크게 들이쉬자 볼록 솟은 가슴이 덩달아 요동쳤다.“그런데
하현은 제일 먼저 한여침에게 연락한 것이었다.한여침은 하현의 명령에 따라 도끼파 패거리들을 데리고 나타나 조심스럽게 설은아를 구급차에 태웠다.설은아 일행과 루돌프 일행이 모두 가고 난 뒤에야 하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한여침은 조심스럽게 하현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형님, 제대로 조사해 보았는데요.”“형수님께 손을 댄 사람은 무성 6대 파벌 중 하나인 인도 쪽 사람들이었습니다.”“그들 뒤에는 인도상회가 있었고요.”“따라서 상대하기가 좀 곤란할 것 같습니다.”“곤란하다고?”하현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한여침, 기왕 당신까지 이렇게 나섰는데 곤란하다는 말은 있을 수 없어.”“물론 몇 사람 없애버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건 알아.”“하지만 누군가 날 건드렸으니 이참에 무성 6대 파벌을 5대로 만들어 버려야지!”하현은 차가운 시선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준비를 잘 해서 그들의 터전을 손에 넣어야겠어.”“분부 받들겠습니다.”하현의 말을 들은 한여침은 마음속에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비록 그는 6대 파벌 중 하나였지만 도끼파는 항상 꼴찌였다.이제 하현과 인도파가 싸우게 되었으니 그가 어찌 흥분하지 않겠는가?게다가 도끼파와 인도파는 쌍방의 개인적인 원한이 적지 않았다.“참, 형님, 인도상회는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그건 차근차근 생각하지.”하현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했다.“먼저 그들의 팔부터 베고 천천히 인도상회를 정리할 거야.”하현의 눈가에 한기가 가득 서렸다.샤르마 커, 차현, 이해나 등 어느 쪽이든 이 일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만들어야 했다....오후 9시 교외에 위치한 무성호텔.진주희는 운전적에 앉아 차를 몰아 하현을 호텔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하현의 옆에 앉아 있던 한여침이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형님, 인도파는 늘 지하세계에서 재미를 상당하게 봐 왔습니다.”“다른 5대 파벌들도 다 알고 있었죠. 지하세
”좋아, 당신이 그렇게 잘난 척을 하니 한 명이라도 어디 해고해 봐!”우민은은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비아냥이 가득한 얼굴로 하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자! 어서 해 보라니까!”“퍽!”바로 그때 은행 로비의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차여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 열 명이 나타났다.선두에 선 사람은 양복 차림이었는데 그냥 보기에도 부티가 좔좔 흘렀다.그는 바로 금정은행 은행장, 은둔가 나 씨 가문 나천우였다.나천우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우민은과 이국흥은 모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려 굽신거렸다.“행장님!”“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우민은과 이국흥은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나천우 앞에서 입이 찢어져라 환한 미소를 보였다.그런데 평소에는 친근하게 그들을 대했던 나천우가 오늘 이렇게 차가운 얼굴로 들이닥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나천우는 그들에겐 눈길도 돌리지 않고 하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하현의 손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하현,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장내의 분위기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졌다.모두 어안이 벙벙해지다 못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곳곳에서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잠시 후 예쁘장한 여직원들이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눈앞의 광경은 잘못 본 것도 아니고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놀라움과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연스럽게 하현에게 쏠렸다.몇몇 여자 고객들도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가 않는지 입을 막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어버렸다.우민은은 마치 사지가 마비된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국흥은 더했다.사지가 그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쉼 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인가?그들은 하현
이국흥은 염치도 체면도 안중에 없는 사람 같았다.그는 없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꾸몄다.그의 목적은 단 하나, 우민은이 하현을 혼내 주길 바랐던 것이다.이때 설은아가 얼른 입을 열었다.“부행장님, 그게 아닙니다...”우민은은 이국흥에게 힘을 실어 주러 온 상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설은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감히 우리 은행에서 사람을 때려요?”“간이 배밖에 나왔어요?”“지금부터 당신은 우리 은행 블랙리스트에 오를 거예요!”“이봐! 어서 관청에 신고해!”그녀의 카랑카랑한 말투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그러자 설은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분명 그녀는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될 줄은 몰랐다.설은아가 이끄는 회사의 자금줄이 빠듯한 건 사실이었다.그런데 결국 이렇게 완전히 파산하게 되었다.자신이 아홉 번째 집안을 맡은지 얼마나 되었는가?이렇게 빨리 파산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훗날 대구 정 씨 가문의 수장이 되겠다는 것인가?그야말로 허황된 꿈이었다!“하하하! 이게 바로 당신의 최후야!”“이제 알겠어?”이국흥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개자식! 이 개새끼야! 너 방금 정말 미친놈처럼 날 치더라? 정말 대단했지, 안 그래?”“자, 다시 한번 더 해 보시지?!”“당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한번 보자고!”“퍽!”하현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그의 요구에 답하며 앞으로 걸어가다가 또 한 번 손바닥을 휘둘렀다.이국흥은 하현이 감히 자신에게 또 손을 쓸 줄은 몰랐다.뺨을 맞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그는 가까스로 우민은의 몸에 기댄 덕분에 쓰러지지는 않았다.“미친 거야?!”“당신들 여기가 무법천지인 줄 알아?”우민은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이봐, 어서 신고해!”“은행 협회에 통보해서 설은아한테 대출 다 막으라고 해!”이때 하현은 싸늘한 표정으로 우민은과 이국흥을 바라보며 말했다.“두 사람이야말로 내 블랙리
하현을 말리는 설은아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국흥은 험상궂은 얼굴로 이를 갈며 일어섰다.그는 입가의 피를 닦고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개자식! 당신 누구야?!”“당신이 뭔데 감히 이러는 거야?”“날 때려? 감히 날 때렸어?”“내가 뭐?”하현은 앞으로 나서면서 또 손바닥을 올려 이국흥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감히 내 아내한테 그런 모욕감을 주다니! 나한테 누구냐고 물었어?”“내가 누군지 당신 눈엔 안 보여?”“혹시 설 대표가 당신 부인이야?”이국흥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뭔가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신이 그 소문으로만 듣던 그 쓰레기 같은 놈?”“그런데 감히 날 때려?!”“죽여버릴 거야!”하현은 또 그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퍽!”“날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그렇지만 내 여자를 건드리는 놈은...”“절대 용서할 수 없어! 오늘이 당신 제삿날인 줄 알아!”퉁퉁 부은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국흥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벌벌 떨었다.“하현, 그만해! 그만하라고!”설은아는 한사코 하현을 말리며 붙잡았다.“또 때리면 정말 사람이 죽겠어!”그녀는 마음속으로는 그를 고맙고 든든하게 여겼지만 불똥이 그에게 튈까 봐 걱정도 되었다.오래된 도시 금정의 은둔가 가문이 뒷배에 있는 금정은행 부장을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금정은행의 뒷배인 나 씨 가문은 금정 금융계의 거물이었다.“개자식! 감히 날 때리다니?!”“흥! 넌 이제 죽었어! 내가 반드시 널 죽여버릴 거야!”이국흥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러나 그는 감히 하현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입만 떠들썩하게 떠벌렸다.“반드시 관청에 보고해서 감옥에 처넣어 버릴 거야!”“그리고 제멋대로 날뛰는 네놈 때문에!”“이 여자도 상상하기 힘든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블랙리스트에 올라 금융계에선 다시는 일 원 한 푼 빌릴 수 없게 만들 거라고!”“
설은아는 얼굴이 굳어진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부장님,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부장님이 이천억, 아니 이조를 준다고 해도 난 이런 파렴치한 요구를 들어줄 수 없어요!”“설 대표님, 왜 그렇게 고지식하게 굴어요!”“아니 그냥 잠 한 번 자는 것 가지고 뭘 그래요? 결국 서로 윈윈하는 거 아닙니까?”“다른 사람들은 이런 기회가 없어서 꿈도 못 꾼다고요!”“그런데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굴어요?”“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혼도 한 번 했겠다 잠 한 번 자는 거,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까?”“남의 편의를 봐주고 내 이익을 챙기면 되는 거죠.’“이번에 잘 하면 앞으로도 대표님은 육 씨 도련님의 사람이 되어서 금정에서 편하게 사업할 텐데, 그런 기회를 발로 차버려요?”“대표님이 이 기회를 놓친다면 앞으로 다른 어느 곳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러면 금정에선 사업하기 힘들어져요!”“왜 돈을 앞에 두고 내팽개치려는 거예요?”이국흥은 이 바닥에서 닳을 대로 닳은 인물이었다.이런 일에 경험도 많고 비열함 따위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는 상대를 앞에 두고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며 이리저리 이로울 대로 몰아가고 있었다.정신력이 보통인 여자가 아니라면 그의 능수능란한 언변과 뻔뻔스러운 행동에 쉽게 넘어가고도 남았다.설은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섰다.“이 부장님, 내가 돈이 필요하긴 해요!”“하지만 돈 때문에 내 몸과 영혼을 팔진 않을 겁니다!”설은아에겐 분명 지켜야 할 선이란 게 있었다.“좋아요, 안 받으셔도 됩니다!”“없던 일로 하죠!”이국흥은 테이블을 탁 치며 노기등등한 표정을 지었다.“게다가 대표님의 아홉 번째 집안은 우리 금정은행에 따로 오백억 빚이 있습니다!”“계약대로 다음 달에 갚아야 하고요!”“기한이 지나면 우리 금정은행은 대표님의 아홉 번째 집안 자산을 몰수할 권리가 있습니다!”“그렇게 되면 대표님도 자리를 보전할 수 없을 겁니다!”
”대출이 갱신이 안 되어서 우리 회사가 두 달째 월급을 못 주고 있어요.”“직원들의 사기도 말이 아니고 공장 생산도 중단되었어요.”“부장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 회사는 정말 파산할 거예요.”설은아는 조심스럽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네며 말했다.“이 부장님, 우리 회사랑 거래하는 게 처음도 아니잖아요.”“부장님도 우리 집안에 대해 잘 알고 계시고요. 우리 뒤에는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인 대구 정 씨 가문이 있어요.”“도와주신다면 그 은혜 꼭 보답하겠습니다.”이국흥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설은아를 바라보았다.“설 대표님, 제가 이미 말씀드렸잖아요!”“대표님 회사는 지금 장부에 돈이 하나도 없어서 위험평가를 통과할 수가 없어요!”“내가 직업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업윤리를 어겨 가면서까지 대표님을 도와드릴 순 없잖습니까?!”“안타깝지만 우리 은행에서 이번 대출 연장은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하지만 우리 은행에서 대표님께 기회를 안 드리는 건 아닙니다...”말을 마치며 이국흥은 미리 준비해 둔 서류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서남 천문채 육 씨 도련님이 당신한테 돈을 빌려줄 수 있다고 하는군요.”“이건 이천억을 빌린다는 차용증입니다. 대표님이 여기 서명만 하면 당장 효력이 발생하고요.”“언제든지 돈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하지만 육 씨 도련님이 말씀하셨어요. 하룻밤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고.”육 씨 도련님?!설은아는 낯빛이 싸늘하게 변했다.그녀는 분명 그 사람이 누군지 아는 모양이었다.그래서 그녀의 눈빛에선 겨울 칼바람 같은 매서운 기운이 넘실거렸다.“부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직업윤리도 없고 염치도 없으세요?”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이국흥은 뻔뻔스럽게 입을 열었다.“당연히 무슨 말씀인지 알 텐데요.”“난 대표님이 육 씨 도련님의 요구대로 했으면 합니다!”“그분이 누굽니까? 서남 천문채에서 어마어마한 지위에 있지 않습니까? 잘 아시면서 왜 그러
”아, 아니...”“대, 대사님! 대사님!”이때 나천우는 정신을 차리고 울부짖으며 하현을 쫓아가려고 발버둥쳤다.임단은 마치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나천우를 뒤따랐다.하지만 안타깝게도 하현은 그들에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나천우 부부가 급한 마음에 부하들에게 전화를 걸어 얼른 하현을 뒤쫓으라고 하려던 참이었다.나천우를 뒤쫓아온 형나운은 나천우의 전화기를 툭 쳤다.“천우 오빠, 또 일을 그르치려고 그래?!”그녀는 따끔하게 주의를 주었다.“지금 하현이 화가 나서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게 생겼는데 부하들이 쫓아간들 어쩌겠어?”“하현이 돕지 않겠다고 하는데 억지로 어떻게 할 수 있겠어?”나천우는 얼굴이 온통 땀범벅이 되었다.“형나운, 우리가 잘못했어.”“우리가 눈이 멀었나 봐. 눈앞에 사람을 두고도 제대로 볼 줄 몰랐으니 말이야!”“하지만 너랑 나랑 오랜 인연을 생각해서 부디 지금이라도 전화해서 잘 좀 봐달라고 말 좀 해 줘!”“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까!”“돈 문제는 절대 신경 쓰지 마!”“맞아.”이때 임단도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형나운, 그러면 주소라도 알려줘. 우리가 가서 삼고초려라도 해 볼게!”“좀 진정해. 이렇게 쫓아가 봐야 아무 소용없어.”형나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조금 있다가 내가 전화해 볼게.”그 시각 진회강 강변에 위치한 금정은행 본사 앞.설은아는 머뭇거리다가 뭔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은행 로비로 발걸음을 옮겼다.마침 택시를 타고 지나가던 하현이 설은아의 모습을 보았고 자금난에 허덕이는 그녀의 사정을 급히 떠올리며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한 뒤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뒤따랐다.하현이 로비에 들어가자마자 마침 그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전화를 받아보니 형나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나 사장 부부가 잘못을 깨닫고 직접 사과드리고 싶다고 해요.”“내 얼
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형나운도 틀림없이 이 사기꾼에게 속았다고 생각했다.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감히 자신을 풍수대사라 할 수 있겠는가?장난하는 건가?이런 사람이 사기꾼이 아니라면 누가 사기꾼이란 말인가?임단이 참지 못하고 옆에서 끼어들었다.“그럼 당신은 음양학을 배운 학생이에요?”하현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아니요. 난 굴착기를 배웠어요. 기술도 좋고 자격증도 있어요.”“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갑자기 표정이 냉랭해졌다.“지금 뭐라는 거예요?”“굴착기를 배운 사람이 무슨 풍수를 본단 말이에요?”“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예요?”“대하에서 풍수지리가 얼마나 큰 위상을 차지하는지 몰라요?”“우리를 속이려 들다니 후환이 두렵지도 않아요?”나천우의 말에 형나운의 안색이 새까맣게 일그러졌다.그녀는 다급하게 나천우에게 눈길을 돌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오빠, 그만하면 안 돼!”“우리 두 집안의 친분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내가 이런 중요한 일을 두고 오빠를 속였을 거라고 생각해?”“내가 바보야?!”“너 나 속이는 거 아냐?”나천우의 얼굴은 냉랭하게 식었다.“너도 자세히 봐 봐. 이 젊은 사람은 풍수라는 두 글자도 모르는 것 같은데 어떻게 믿으란 얘기야?!”“이 사기꾼을 만나려고 내가 금정은행 투자 포럼도 안 나가고 여기 왔겠냐고!”임단도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비난에 열을 올렸다.“형나운, 당신 정말 경솔했어!”예전 같았으면 두 집 사이에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형나운이 하현에 대해 거의 신처럼 말했다는 것이다.나천우와 임단은 자신들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줄로 알고 커다란 희망을 품고 여기 왔다.다만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고 분노는 걷잡을 수 없다는 걸 몰랐을 뿐이다.“나 사장님?”형나운은 하현의 목소리에 그에게 눈길을 떨구며 손을 내저었지만 하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담담한 눈
”형나운, 정말 축하해!”“우릴 속이지 않았군!”“그런데 그 대사님은 어디에 계셔?”“얼른 좀 소개해 줘!”나 사장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병은 이미 수많은 국내외 명의들한테 보여줬어. 국수인 장북산 선생님도 보셨지!”“어르신은 우릴 보고 병이 아니라 악에 부딪힌 것이라고 하셨어.”“풍수에 정통한 사람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대.”“하지만 수많은 풍수지리사를 만나봤지만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어.”“어쨌든 형나운, 당신이 대사님한테 말 좀 잘 해 줘!”나 사장의 부인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형나운, 우리를 살릴지 말지 여부는 전적으로 당신의 손에 달려 있어.”“이 일이 잘 해결되면 최고 가문에서 기가 막힌 남편감을 물색해 줄게. 정말 섭섭하지 않게 해 줄 거야!”옆에 살짝 비켜서 있던 하현의 이마에 주름살이 잔뜩 드리워졌다.기가 막힌 남편감?뭐가 기가 막히다는 거지?형나운은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나 사장님, 그 대사님은 바로 가까운 곳에 있어요.”“하현, 소개할게요. 이 분은 나천우 사장님, 그리고 이쪽은 나 사장님 사모님, 임단.”“나 사장님은 나 씨 가문 출신이에요.”“나 씨 가문은 형 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금정에 토박이로 아주 뿌리가 깊은 가문이죠.”“예로부터 은행업을 해 왔고 지금도 금정에서 가장 큰 은행인 금정은행을 움직이는 가장 큰 지주이자 실세죠.”“나 사장님 부부는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자식이 없어요. 그래서 온갖 치료를 받았지만 성과가 없어서 결국 풍수지리술에 기대 보려고 하고 있어요.”“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여기까지 오셨고요.”“우리 형 씨 가문과 나 씨 가문은 사이가 좋아서 내가 마음이 급해서 그만 당신한테 말도 없이 여기로 오라고 했어요.”형나운은 조금 찔리는지 불안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하현, 이렇게 불쑥 말을 꺼내면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지만 제발 나 사장님 부부를 좀 도와줬으면
하현은 이맛살을 구기며 말했다.“말로 하면 되지! 당신 왜 이러는 거야? 이런 행동을 왜 하는 거냐고?”“내가 그런 사람이야?”“하현, 치료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도와주겠다고 했잖아요?”형나운은 미안한 듯 겸연쩍어하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주동적으로 이런 자세를 보인 거예요. 언제든지 와도 상관없다고.”“아무튼 당신이 날 고쳐 줄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요.”“강하면 강할수록 난 더 좋아요.”“당신 정말...”“마초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죠?”하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순간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주먹으로 테이블을 ‘퍽’하고 내리쳤다.“이렇게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누가 말했어?”“지난번에 난 기혈과 두통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줬어.”“그런데 지금 당신 문제는 완전히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 호전되지 않아!”하현의 말을 들은 형나운은 순간 얼굴이 벌게졌다.그녀는 얼른 엉덩이를 내리고 똑바로 선 다음 서랍 속에서 노란 가죽으로 싼 고서적 한 권을 꺼내 하현에게 건네주었다.하현이 힐끔 쳐다보니 ‘영춘’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집안을 다스리는 처세술에 관한 책인 ‘영춘’은 여자아이의 수련에 안성맞춤이었다.하지만 진짜 ‘영춘’은 기본적으로 무학의 성지에서 내려오는 비법서 같은 것이고 방금 형나운이 꺼낸 책은 남은 자투리 책이라고 할 수 있다.그녀는 자투리 잡서에 가까운 책으로 수련을 하는 바람에 자주 숨이 막히는 증상이 생긴 것이다.하현은 그제야 뭔가를 알아차리며 빠진 부분을 보충해서 써 준 뒤 그녀에게 책을 던져주며 말했다.“이 책은 영춘의 상반부에 불과해. 그래서 내가 상반부만 보충해 줬어. 이렇게 한다면 별일 없을 거야.”“후반부는 당신이 기회를 봐서 오매 도교 사원에 가서 문의해 봐.”“만약 내가 당신한테 준다면 오매 도교 사원이 아마 날 죽이려고 들 거야.”“아, 알겠어요.”형나운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현이 보충해 놓은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