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화답하듯 말하는 것을 들은 성원효는 인생의 절정을 걷는 기분이었다.비록 그의 얼굴에 손바닥 자국이 벌겋게 남아 있긴 했지만 그는 몸을 곧게 펴고 환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었다.순간 그는 자신이 이 세상의 유일한 주인이 된 것 같았다.그는 무성을 함부로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자신만만한 성원효의 얼굴을 보고 많은 여자들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정신을 못 차렸다.너무 멋져!비록 그의 얼굴에는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있더라도!비록 그의 몰골이 조금 낭패스러워 보일지라도!남자는 이런 맹렬하고 난폭스러운 면이 있어야 남자지!여자들은 천성적으로 이런 남자를 정복하는 것을 좋아한다!그래서 지금 이 순간 여자들은 선망의 눈빛으로 성원효를 바라보는 것이다.여자들의 흠모 어린 눈빛을 느끼며 성원효는 더욱 가슴을 활짝 폈다.그는 방금 전까지 하현 앞에서 처참하게 당했던 일은 잊은 듯 구름 위를 걸으며 모습을 드러낸 신령처럼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하현에게 걸어와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 씨. 내가 당신한테 마지막 기회를 주지!”“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그리고 스스로 다리를 부러뜨린 뒤 설유아를 내 침대로 보내!”“그리고 100억을 배상해 주면 내가 죽이지는 않겠어!”하현은 이 말을 듣고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이 이렇게 호기롭게 말하는 것을 보니 이제 난 당신한테 된통 당하는 건가?”“하현! 당신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성원효는 화가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잘 들어! 스스로 능력 좀 있다고 내 앞에서 오만방자하게 굴지 마!”“왜? 날 또 때려 보시게?”“당신 두 주먹이 이 사람들을 다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당신 혼자서 이 많은 사람들을 다 감당할 수 있겠냐구?”“당신의 손이 아무리 빨라도 이 사람들의 총만큼 빠를까?”조남헌은 조용히 가늘고 긴 시가를 뽑아 불을 붙였고 흐릿한 눈빛으로 발악하는 성원효를 바라보았다.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아직 하현
머리가 희끗희끗한 것이 쉰 살 남짓 되어 보이는 남자가 걸어 나왔다.남자는 말끔한 검은 양복 차림에 손에는 조그만 호두 두 개를 쥐고 있었다.어딘가 만만치 않은 기품이 물씬 풍겼다.바로 무성 경찰서 이인자, 성경무였다.무성 관청의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사람들의 시선에 들어서자마자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며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다.그는 눈앞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그의 동선에 있던 사람들은 놀란 새처럼 뒤로 물러서기 바빴다.“둘째 숙부님, 오셨습니까?”성경무가 하현의 얼굴을 제대로 발견하기도 전에 성원효가 이미 성경무의 앞으로 나왔다.성원효는 절뚝거리며 성경무에게 다가와 말했다.“마침 잘 오셨습니다.”“세상 물정도 모르는 놈이 무성까지 와서 우리한테 시비를 걸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외지놈이 무슨 담력으로 감히 우리 성 씨 가문을 건드리는지 모르겠어요!”“아주 배짱만 두둑한 놈이이에요!”“내가 이미 이놈한테 말했어요. 우리 둘째 숙부님이 무성 경찰서 이인자라고!”“감히 숙부님을 깔아뭉개고 무시하고 있잖아요!”성원효는 일부러 성경무의 화를 돋우는 말을 골라 했다.이참에 하현을 죽음으로 몰고 갈 태세임이 분명했다.그가 성경무를 부른 이유는 관청의 힘으로 하현을 직접 제압하여 외지인이 무성에서 판을 뒤집을 기회를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 틀림없었다.현장에 있던 예쁜 여자들은 성경무를 보자마자 하나같이 뜨거운 눈길을 보냈다.성경무!무성 경찰서의 이인자!진정한 거물!무성에선 하늘보다 높은 존재였다!여자들은 한달음에 성경무의 품에 안겨 온갖 애교를 부리고 싶은 눈치였다.한참을 성경무에게 시선을 돌렸던 그녀들은 측은한 눈빛으로 혀를 끌끌 차며 하현을 바라보았다.이제 죽었어!눈치도 없는 촌놈은 죽었어!방금 천지 모르고 날뛰었던 만큼 처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될 거야!잔챙이는 잔챙이일 뿐 절대 거물과 맞서 싸울 수 없어!방
”개자식!”“누가 이렇게 눈이 어두워 감히 이 성경무를 꾸짖는 거야?!”“죽고 싶어?!”성경무도 버럭 화를 냈다.그는 시가에 불을 붙이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 밴에서 나오는 하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눈길이 마주쳤다.순간 양손을 뒷짐진 채 거만하게 걸어 나오던 성경무는 하현을 보자마자 조금 전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온몸을 벌벌 떨었다.그의 머릿속에는 굉음이 울려 퍼졌고 도끼파 본거지에서 있었던 일이 눈앞에 선하게 스쳐 지나갔다.지금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하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하...현...”성경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하현의 이름을 되뇌었다.동시에 그의 온몸에서는 힘이 쭉 빠졌고 두 다리는 중심을 잃고 후들거리기 시작해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을 뻔했다.오늘 있었던 일은 이미 성경무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하현이 풀어주라고 했던 사람을 제때 풀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무는 하현을 만나면 무조건 줄행랑부터 쳐야 했던 것이다.“둘째 숙부님, 바로 저놈이에요!”“하현!”“저 촌놈이 기고만장해서 함부로 날뛰고 있어요!”성원효는 죽일 듯 하현을 노려보느라 성경무의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숙부님의 체면을 세워 주기는커녕 날 이 꼴로 만들어 버렸다니까요!”“봐봐요. 여기 저놈이 때린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말을 하는 동안 성원효는 이를 악물며 하현을 쏘아보았다.어떻게 해서든 오늘 하현의 뼈를 깎아 재를 날려버리고 싶은 모양이었다.하현은 아주 침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맞아요. 다 내가 한 짓이에요. 뭐 불만 있어요?”저런 오만한 태도로 말하다니!보이는 것이 없는 것인가?도대체가 물러서는 법이 없는 독불장군 같은 놈이야!성원효는 마음속으로 냉소를 흘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이렇게 물정을 모르다니 이제는 하현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지금 이 순간에도 물러섬이 없이 빳빳이 고개를 세우고 비
최희정과 설은아를 어서 풀어주라는 하현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여기 온 성경무는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스스로 불구덩이에 빠진 꼴이 되었다!“성경무, 귀먹었어요?”“아니면 무성 경찰서 이인자라는 명함을 내밀어 내 앞에서 또 과시해 볼 참이에요?”하현은 두 손을 뒷짐지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앞으로 나가 성경무를 쳐다보았다.“지금 묻고 있잖아요?”성경무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아, 아니야!”그가 어떻게 감히 그런 행동을 하겠는가?하현이 얼마나 지독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다.비록 무성 경찰서의 이인자이지만 성경무의 실력도 막강했다.하지만 그는 아침에 일어난 일을 겪으면서 하현의 신분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다.용 씨 가문 사람들이 나서지 않았다면 자신은 정말 하현한테 밟혀 죽었을지도 모른다.하현은 용천오의 이름에도 꿈쩍도 않는 인물이었다.하물며 자신이 어떻게 하현에 맞서겠는가?감히?성경무의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하나같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성경무가 어떤 사람인가?이런 사람이 하현 앞에서 저렇게 말을 하다니!눈앞의 장면이 정녕 사실인가?방금 전까지만 해도 위풍당당하던 무성 경찰서 이인자가 왜 갑자기 겁에 질린 거지?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많은 여자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기까지 했다.하현은 계속해서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한 시간 안에 사람을 풀어주라고 했는데 당신은 오히려 여기에 와서 거들먹거리고 있다?”“내 말을 흘려들었나 봅니다.”“그렇다면 할 수 없죠. 내가 말한 것을 현실로 만들어 드리는 수밖에.”“어서 무릎 꿇어! 당장!”차가운 겨울바람처럼 매서운 목소리로 하현이 말했다.그는 이제 조금도 체면을 봐줄 마음이 없었다.성경무는 자신의 말을 흘려들었을 뿐만 아니라 남의 앞잡이로 전심전력을 다해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했다.하현이 어떻게 이런 사람의 체면까
성경무는 감히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다음에 또 이런 식으로 사람을 속이고 내 앞을 가로막아 섰다가는 산 채로 돌아가지 못할 거야!”“아,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성경무는 마침내 허연 얼굴은 들어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하게 대답했다.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모두가 몸이 굳은 채 넋을 놓고 눈앞의 광경을 쳐다보았다.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성원효는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정신이 나간 모습이었다.하현이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매서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말했지! 당신 둘째 숙부가 와도 당신은 날 넘어서지 못할 거라고!”“둘째 숙부한테 한번 물어봐. 왜? 무서워서 못 물어보겠어?”성원효는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당당한 성 씨 가문 어른이자 무성 경찰서 이인자인 자신의 숙부가 지금 하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뺨을 맞았으니 성원효가 무슨 말을 어떻게 더 할 수 있겠는가?이번에 완전히 체면을 구겨 버린 것이다.하현은 휴지를 꺼내 두 손을 닦은 후 단호한 표정으로 성경무를 바라보며 말했다.“사람을 풀어주는 일은, 그래 알았어. 당신이 풀어주지 않겠다고 했으니 더는 따지지 않겠어.”“하지만 당신 조카가 날 괴롭히는 건 참을 수 있어. 그는 내 처제를 욕보이려고 했어.”“이 일을 어떻게 할 거야?”뭐?!하현의 처제를 감히 욕보이려 했다고?!순간 성경무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성원효는 완전히 성경무의 체면을 걷어찬 것이었다.스스로의 잘못으로 일이 이렇게 되었으면 자기나 죽을 것이지 감히 자신을 끌어들여?이 자식이 용 씨 가문의 체면도 박살 내더니 이제는 성 씨 가문의 체면까지 박살 내려고 하는 것인가?가장 큰 문제는 눈앞에 있는 하현이라는 인물은 불의 앞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그러자 성경무는 영리하게 머리를 굴리며 몸을 부르르 떨면서 소리쳤다.
성원효의 마음속엔 순간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둘째 숙부는 무성 경찰서 이인자다!이렇게 높은 신분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 왜 하현을 두려워해야 하는가?게다가 그들 뒤에는 용천오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하현이 능력이 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게 대수인가!그의 비위까지 맞출 필요는 없다!감히 성 씨 가문의 체면을 뭉개버리겠다는 것인가!이 일이 일단 알려진다면 앞으로 성 씨 가문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둘째 숙부가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성원효 자신도 반드시 두려워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어쨌든 그는 만약을 대비해 용 씨 가문 고수들을 불러들인 터였다.“아직도 이놈이!”성경무는 잠자코 서 있는 성원효를 보고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또 한 번 성원효의 뺨을 휘둘렀다.“얼른 무릎 꿇어!”“하현에게 얼른 사과하라고!”성원효는 얼굴을 가린 채 비틀거리며 말했다.“난 무릎 꿇지 않을 거예요.”퍽!성경무는 또 한 번 성원효의 따귀를 때렸다.“아직도 네 잘못을 모르겠니?”퍽!“내 앞에서 아직도 머리를 빳빳이 세워?!”퍽!“이래도 못 알아듣겠니?!”퍽!“성원효! 정말 죽고 싶어?!”성경무는 손바닥을 뒤흔들며 계속 눈짓을 보냈고 제발 성원효가 눈치를 채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랐다.“둘째 숙부!”성원효는 너무 많이 맞아 붉어진 얼굴을 하고는 악에 받쳐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그만!”“하 씨 저놈이 무슨 힘이 있다고 자꾸 이러시는 거예요?!”“왜 그렇게 겁을 먹고 이러시냐구요?”“이놈이 어떤 신분이든 여기는 무성이라고요! 무성!”“숙부님, 잊지 마세요. 저는 성 씨 가문 장남이에요!”“내 뒤에는 용 씨 가문이 버티고 있고 내 누나는 용 씨 가문 사람이 되었어요. 내 매형이 용 씨 가문 실세라고요!”“용문의 고수들은 나와 호형호제하는 사이구요!”“황금궁 문턱도 다 밟아본 사람이에요, 내가!”“나 같은 사람이 사과를 해요? 그것도 무
”너너너너!”성경무는 화가 나서 성원효를 불같이 노려보며 말했다.“이 짐승 같은 놈아!”“나도 이제 몰라! 상관하지 않겠다!”성원효는 냉소를 띠며 말했다.“상관? 지금까지 뭘 얼마나 봐주셨길래 이제 와 상관하지 않겠다는 거예요?”“숙부님은 무릎을 꿇고 내 뺨을 때리고 우리 성 씨 집안 망신만 시켰잖아요. 이제 당신은 내 숙부도 아니에요!”“가문의 문주에게 말해서 당신을 가문에서 내쫓을 겁니다!”“날 도와달라고 부른 거지 집안 망신을 시키라고 부른 게 아니라고요!”호기롭게 말했지만 정작 말하고 보니 성원효는 약간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러다 다짜고짜 그는 하현을 가리켰다.“하 씨! 난 당신이 하나도 두렵지 않아!”“당신은 곧 끝장날 거야!”“두고 봐. 내 스승님!”“용문 집법당의 부당주 용호태가 곧 올 거야!”“재주가 있으면 이번에도 마음대로 날뛰어 보시지!”성원효의 스승님?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용문 집법당 4대 부당주 중 하나인 용호태?용문 집법당의 당주였던 용오행이 항성과 도성에서 쫓겨난 후 베일에 휩싸인 새로운 당주가 자리에 앉았지만 한 번도 무성에 오지 않았다.따라서 현재 용문 집법당 4대 부당주 중 한 명인 용호태가 전반적인 상황을 장악하고 있었다.현재 4대 부당주 자리에 3개나 공석이었다.새로운 당주가 아직 보직을 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상황이 이러니 용호태는 용문 집법당에서 대세를 관장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쉽게 말해 용호태는 용문 내부에서 지위가 상당히 높고 권세도 막강하다고 할 수 있다.용문주와 신임 당주가 나서지 않는 이상 장로회의 장로들조차도 용호태의 비위를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이것은 용호태가 성경무보다 훨씬 더 세력이 강한 인물이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용호태가 온다는 말에 성경무는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일이 참 어렵게 꼬여 가고 있었다.용문 집법당 부당주에게 자기 편을 들어 달라고 했단 말인가?성원효 이놈은
이를 보던 여자들의 얼굴에는 또다시 득의양양한 꽃이 피기 시작했다.그들은 팔짱을 낀 채 비아냥거리는 눈빛을 한껏 치켜들고는 하현을 노려보았다.용호태 같은 거물이 하현 같은 외지인을 가만히 놔두겠는가?하현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가득한 사람들 틈에 오직 조남헌만이 그들을 비꼬는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지금 용문 집법당 당주 앞에서 부당주를 내세워 비교하는 건가?코미디가 따로 없었다!하현도 무덤덤한 기색으로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그는 오늘 이런 뜻밖의 볼거리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원래는 시간을 내어서 집법당의 일을 해결하려고 했었다.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제 발로 대세를 주관하고 있는 부당주가 왔으니 이참에 차차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붕!”몇 분 후 렉서스 LX570 몇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고만장하게 군중 속으로 파고들어 성원효 일행 앞에 위용을 드러내었다.곧이어 문이 열리고 두루마기를 입은 서른여섯 명의 남자가 문을 박차고 내렸다.그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숙연했고 눈빛은 칼날 같았다.동작 하나하나에 기개가 넘쳐흘렀고 관자놀이를 관통하는 핏줄이 우뚝 솟아 무도 고수의 기품을 뿜어내었다!그때 사람들을 헤치고 18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혈색 좋은 백발 남자가 위풍당당하게 걸어 나왔다.위엄 서린 남자의 표정에는 상석에 앉은 사람으로서의 아우라가 절로 느껴졌다.정말로 그가 왔다!현재 용문 집법당의 모든 일을 관장하고 있는 용호태였다!많은 사람들은 얼른 핸드폰을 꺼내 용문 사이트를 들어가서 이 남자가 바로 전설 속의 용호태라는 것을 알아보았다.정말로 그가 나타났다.진정한 거물이 등장한 것이다!성원효는 역시 무시하지 못할 인물이었다.이런 거물을 단번에 모셔오다니!스승과 제자의 정이 상당히 두텁다고 볼 수도 있었다.성경무의 얼굴은 점점 더 흙빛으로 변해갔다.오늘 무성이 한 번 제대로 뒤집어질 것 같았다.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눈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설은아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정말 해결할 수 있어?”설은아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응. 할 수 있어.”해결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하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 않았다.이번이야말로 하현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 싶었다.“알았어. 해결할 수 있으면 됐어.”하현도 설은아가 허투루 말을 하는 가벼운 입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해결이 잘 안 되면 억지로 버티지 말고 꼭 말해. 내가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볼게.”하현의 말을 듣고 이시운은 더욱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보아하니 데릴사위가 말주변이 아주 좋을 뿐만 아니라 허세 부리는 것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붕!”바로 그때 사람이 드문 도로에 번호판 없는 승합차 여러 대가 포르쉐 앞에 나타났다.뒤이어 승합차 몇 대가 나타나 하현 일행을 태운 포르쉐를 에워쌌다.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길이 없는 설은아와 이시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착!”이때 문이 열렸고 러닝셔츠를 입은 십여 명의 사람들이 손에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를 들고 걸어 나왔다.그때 승합차 한 대의 문이 스르르 열리며 우민은과 이국흥 두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이 개자식들!”설은아는 이 두 사람을 보자마자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차렸다.“이런 치졸한 방법을 쓰다니!”하현은 이런 일을 너무 많이 겪어 봐서 그저 냉담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이시운은 이런 광경이 처음이라 온몸을 부르르 떨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제 어떻게 해요?”“어서 신고해!”설은아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내가 가서 시간을 벌어 볼 테니까!”“그래도 내가 대구 정 씨 가문 사람이니까!”“날 건드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들도 모르진 않을 거야.”“그러니 날 함부로 하진 못 하겠지!”“하현, 당신은 차 안에 있어. 나오지 말고 여기 있어. 괜히 나와서 일 크게 만들지 말고!”설은아는 상대가
설은아는 이시운을 데리고 포르쉐에 올라탔고 하현을 조수석에 앉혔다.액셀을 밟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아침에 대출받느라 바빴고 점심때는 직원들 월급 해결하고 회사 일도 다 처리했어. 이제 아무 문제없어.”“자, 이제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 말해 봐, 아직도 아무 말 안 할 거야?”하현이 웃으며 말했다.“무슨 일?”“당신과 나천우의 일.”설은아는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나천우와 아는 사이였다고 해도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어차피 하현도 성공한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나천우가 어떻게 그처럼 그를 깍듯하게 모실 수 있냐는 것이다.하현을 위해 나천우는 은행 고위직 두 명을 바로 해고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곧바로 이천억이란 거금을 대출해 주었다.하현은 금정에 온 지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나천우는 은둔가 나 씨 가문 사람인데 어떻게 그가 하현에게 이렇게 극진한 대우를 할 수 있는가?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현이 나천우를 안다는 말을 듣고 이시운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못마땅한 표정으로 비웃었다.나천우가 설은아의 미모에 흑심을 품고 하현의 체면을 세워 준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하현은 우쭐대고 있는 건가?참, 같잖은 꼴이라니!하현은 설은아가 무엇을 물어보는 것인지 간파한 뒤 입을 열었다.“나천우가 나한테 마침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었거든.”“무슨 부탁? 중요한 일이야?”설은아는 호기심에 눈빛이 반짝반짝거렸다.“나천우 같은 사람이 웬만한 일로 부행장과 부장을 해고하지는 않았을 거야.”이 말을 듣고 이시운은 깜짝 놀라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그런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러나 그녀는 점점 더 자신의 추측이 맞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단지 데릴사위인 하현이 주제도 모르고 설칠 뿐이라고 생각했다.“날 속일 생각하지 마. 도대체 어떻게 나천우의 신임을 얻게 된 거야
”참, 여기 사인 좀 해 줘.”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나천우는 발걸음을 옮기려던 하한을 붙잡았다.그는 재빨리 옆방으로 가서 서류철을 가져와 하현에게 사인하라고 했다.하현이 서류를 받아들고 힐끔 쳐다보다가 나천우에게 눈길을 돌렸다.“이게 뭐예요?”“작은 거지만 내가 준비했어. 거절하면 안 돼!”말을 하면서 나천우는 직접 하현의 손을 잡고 지장을 찍은 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까지 쳤다.하현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형님, 도대체 이게 뭐예요?”나천우는 웃으며 말했다.“이건 당신 형수가 우리 집안에 시집오고 나서 일으킨 회사야. 금정개발이라고 집을 짓고 파는 부동산업이지.”“이제 당신 형수는 아이를 낳는 데 전념해야 하니 이 땅과 회사 일에 쏟을 시간이 없어.”“이걸 팔거나 혹은 다른 사람한테 좌지우지하는 것도 보기 불편할 거야. 혼수나 다름없는 거였으니까.”“이제 당신 손에 넘어갔으니 아마 당신 형수도 분명 기뻐할 거야.”“지금부터 당신은 주식을 90% 가진 금정개발 대주주이며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진 사람이야!”“나머지 10%는 우리 부부의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셈으로 치자고.”“회사가 크지는 않아. 직원도 100명 남짓이고.”“회사에서 최근 몇 필지를 분양받아 개발하려고 사전 준비 작업을 하고 있어!”“하현, 마음에 드는 땅이 있거나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해야 하니까 이자는 꼬박꼬박 내야 해. 하지만 우대금리로 잘 해줄게.”말을 마치며 나천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속으로 부자들은 역시 스케일이 다른 건가 잠시 생각할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부동산 개발 회사가 보너스라니!이렇게 되면 자신이 금정 제일 부동산 개발업자가 되는 게 아닌가?만약 최희정이 이 사실을 안다면 피를 토하며 분노를 뿜을 것이다.하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는 이것이 나천우 부부의 호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만
하현은 나천우에게 담요를 가져와 임단의 몸에 덮어 주라고 일렀다.그다음 그녀를 푹 쉬게 해 두고 조용히 나천우에게 따라나오라고 했다.바깥으로 나온 나천우는 하현을 깍듯이 대하며 옆에 있는 응접실로 데리고 와서 허리를 굽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하현, 이제 다 해결된 거죠?”“우리 아이를 극락으로 잘 보내 준 거죠?”그의 얼굴에는 기대와 긴장감이 가득했다.하현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나천우를 쳐다본 뒤 옅은 미소를 지었다.“나 사장님, 세상에 귀신이 있다고 믿습니까?”나천우는 적잖이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하현, 세상에 귀신이 없다면 방금 그 말은 도대체...”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나 사장님, 아침에 제가 한 말 기억하세요?”“마음의 병은 마음의 약으로 고쳐야 합니다.”“사모님은 사실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 때문에 마음에 응어리가 졌던 것뿐입니다.”“그래서 사모님의 몸은 일종의 가임신 상태에 빠진 거죠.”“이런 상황에서는 두 분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하지만 방금 제가 사모님 앞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사모님은 비로소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겁니다. 죽은 아이가 좋은 것으로 갔다는 안도감이 사모님의 마음을 위로한 거죠.”“마지막으로 사모님의 몸에 숨을 불어넣어 사산했을 때 감염되었던 약간의 풍한을 제거했어요.”“이제 사모님은 멀쩡한 사람입니다.”“두 분이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거죠.”하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물론 내가 사장님한테 이렇게 다 털어놓고 말씀드리는 건 사장님이 문화인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거예요.”“하지만 사모님은 여자이기 때문에 이 일은 아마 사장님과 나 사이의 비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아이를 무사히 출산한 뒤에 말씀드려도 늦지 않습니다.”“나중에 두 분이 날 너무 사기꾼으로 몰아붙이지나 마세요. 하하.”하현이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말을 마친 후 하현은 얼른 종이와 붓을 꺼내 그 위에다 뭔가를 쭉 쓴 뒤 담담하게 말했다.“나 사장님,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이 물건들을 빨리 준비해 달라고 이르세요.”“이 물건들은 부인의 체내에 음흉한 기운을 모두 뽑아줄 겁니다.”“그렇게 해야 완전히 문제가 해결됩니다.”“음흉한 기운이 다 제거된다면 두 분은 자연스럽게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예요.”나천우는 종이에 적힌 물건들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고맙습니다. 바로 준비하라고 이르겠습니다.”순간 나천우의 마음속엔 하현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올랐다.나천우는 하현이 엄청난 돈이나 물질적인 것을 터무니없이 요구할까 봐 살짝 걱정이 되었었다.그런데 하현이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단칼에 승낙할 줄은 몰랐다.그래서 나천우는 하현을 완전히 높이 평가하게 된 것이다.잠시 후 나천우의 측근들은 하현이 지시한 물건을 모두 준비해 왔다.닭 피 한 그릇과 종이돈 한 묶음, 종이돈을 태우는 양동이.이를 본 임단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하현,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하현은 테이블을 가리켰다.“부인, 죄송하지만 여기 누우시고 배가 보이게 옷을 살짝 위로 올려 주세요.”하현의 말에 임단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이어 그녀는 코트를 벗은 뒤 셔츠를 살짝 걷어 올려 새하얀 아랫배를 드러낸 채 테이블 위에 누었다.나천우는 이 광경을 보며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건...”하현이 천천히 나천우에게 설명했다.“부인은 뱃속에서 아이가 죽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음흉한 기운이 여기 가득 들어 있습니다.”“예로부터 뱃속에서 죽은 아기는 엄마의 품을 떠나기 싫어 그 영혼이 떠돈다고 합니다.”“그래서 두 분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죠.”“오늘 저는 죽은 아이의 영혼을 잘 달래서 보내주려는 거고요.”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와 임단은 동시에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벌린 입을
하현은 냉랭하게 말했다.“미안하다고 할 필요 없습니다.”“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나한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만 들으면 됩니다.”“나머진 당신이 알아서 하면 되죠.”“난 아무 이견도 달지 않을 테니까요.”하현의 말은 마치 이 모든 것이 그와 무관한 일처럼 가볍게 들렸다.그러나 가볍게 들리는 그 말속에 숨어 있는 어조는 서늘한 기운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원래 하현이 어떻게 망신을 당하나 구경이나 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놀라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눈알을 땅바닥으로 떨구었다.결국 그의 어조로 보아하니 그가 가볍게 말하면 말할수록 더욱 화가 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그리고 우민은과 이국흥 두 사람은 이 일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나천우는 하현을 향해 빙긋 웃으며 허리를 곧게 펴고 시선을 뒤로 돌렸다.그의 눈빛 속에 찬바람이 가득 휘몰아쳤다.우민은과 이국흥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왔고 무릎을 꿇으려 했지만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아 그대로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일어서세요!”나천우는 폭풍 전야의 고요한 태풍의 눈처럼 차분한 목소리였다.단지 손가락을 까닥이며 경호원에게 쇠 파이프를 건네받아 직접 두 사람의 다리를 한쪽씩 부러뜨렸다.그리고 나서 활을 들고 두 사람의 손바닥을 향해 활을 쏘았다.“휙!”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매섭게 울렸다.두 사람이 손바닥이 떨구어지자 나천우는 두 사람을 문 바깥으로 걷어차며 말했다.“잘 들어. 다시는 당신들 두 얼굴을 금정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아.”“감히 이 두 사람을 거두는 자는 나 나천우에게 도전하는 거라 생각할 거야!”“사람들을 교외로 내쫓아 스스로 빌어먹고 살게 해!”...10분 만에 설은아가 그토록 골머리를 앓던 이천억 대출이 순조롭게 실행되었다.무이자일 뿐만 아니라 담보 물건도 없이 진행되었다.다만 각종 수속이 복잡해서 설은아는 VIP실에 남아 서류 처리를 해야 했다.나천우는 하현을 깍듯이 모시고 행
”좋아, 당신이 그렇게 잘난 척을 하니 한 명이라도 어디 해고해 봐!”우민은은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비아냥이 가득한 얼굴로 하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자! 어서 해 보라니까!”“퍽!”바로 그때 은행 로비의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차여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 열 명이 나타났다.선두에 선 사람은 양복 차림이었는데 그냥 보기에도 부티가 좔좔 흘렀다.그는 바로 금정은행 은행장, 은둔가 나 씨 가문 나천우였다.나천우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우민은과 이국흥은 모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려 굽신거렸다.“행장님!”“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우민은과 이국흥은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나천우 앞에서 입이 찢어져라 환한 미소를 보였다.그런데 평소에는 친근하게 그들을 대했던 나천우가 오늘 이렇게 차가운 얼굴로 들이닥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나천우는 그들에겐 눈길도 돌리지 않고 하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하현의 손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하현,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장내의 분위기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졌다.모두 어안이 벙벙해지다 못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곳곳에서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잠시 후 예쁘장한 여직원들이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눈앞의 광경은 잘못 본 것도 아니고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놀라움과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연스럽게 하현에게 쏠렸다.몇몇 여자 고객들도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가 않는지 입을 막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어버렸다.우민은은 마치 사지가 마비된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국흥은 더했다.사지가 그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쉼 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인가?그들은 하현
이국흥은 염치도 체면도 안중에 없는 사람 같았다.그는 없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꾸몄다.그의 목적은 단 하나, 우민은이 하현을 혼내 주길 바랐던 것이다.이때 설은아가 얼른 입을 열었다.“부행장님, 그게 아닙니다...”우민은은 이국흥에게 힘을 실어 주러 온 상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설은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감히 우리 은행에서 사람을 때려요?”“간이 배밖에 나왔어요?”“지금부터 당신은 우리 은행 블랙리스트에 오를 거예요!”“이봐! 어서 관청에 신고해!”그녀의 카랑카랑한 말투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그러자 설은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분명 그녀는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될 줄은 몰랐다.설은아가 이끄는 회사의 자금줄이 빠듯한 건 사실이었다.그런데 결국 이렇게 완전히 파산하게 되었다.자신이 아홉 번째 집안을 맡은지 얼마나 되었는가?이렇게 빨리 파산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훗날 대구 정 씨 가문의 수장이 되겠다는 것인가?그야말로 허황된 꿈이었다!“하하하! 이게 바로 당신의 최후야!”“이제 알겠어?”이국흥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개자식! 이 개새끼야! 너 방금 정말 미친놈처럼 날 치더라? 정말 대단했지, 안 그래?”“자, 다시 한번 더 해 보시지?!”“당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한번 보자고!”“퍽!”하현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그의 요구에 답하며 앞으로 걸어가다가 또 한 번 손바닥을 휘둘렀다.이국흥은 하현이 감히 자신에게 또 손을 쓸 줄은 몰랐다.뺨을 맞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그는 가까스로 우민은의 몸에 기댄 덕분에 쓰러지지는 않았다.“미친 거야?!”“당신들 여기가 무법천지인 줄 알아?”우민은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이봐, 어서 신고해!”“은행 협회에 통보해서 설은아한테 대출 다 막으라고 해!”이때 하현은 싸늘한 표정으로 우민은과 이국흥을 바라보며 말했다.“두 사람이야말로 내 블랙리
하현을 말리는 설은아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국흥은 험상궂은 얼굴로 이를 갈며 일어섰다.그는 입가의 피를 닦고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개자식! 당신 누구야?!”“당신이 뭔데 감히 이러는 거야?”“날 때려? 감히 날 때렸어?”“내가 뭐?”하현은 앞으로 나서면서 또 손바닥을 올려 이국흥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감히 내 아내한테 그런 모욕감을 주다니! 나한테 누구냐고 물었어?”“내가 누군지 당신 눈엔 안 보여?”“혹시 설 대표가 당신 부인이야?”이국흥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뭔가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신이 그 소문으로만 듣던 그 쓰레기 같은 놈?”“그런데 감히 날 때려?!”“죽여버릴 거야!”하현은 또 그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퍽!”“날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그렇지만 내 여자를 건드리는 놈은...”“절대 용서할 수 없어! 오늘이 당신 제삿날인 줄 알아!”퉁퉁 부은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국흥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벌벌 떨었다.“하현, 그만해! 그만하라고!”설은아는 한사코 하현을 말리며 붙잡았다.“또 때리면 정말 사람이 죽겠어!”그녀는 마음속으로는 그를 고맙고 든든하게 여겼지만 불똥이 그에게 튈까 봐 걱정도 되었다.오래된 도시 금정의 은둔가 가문이 뒷배에 있는 금정은행 부장을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금정은행의 뒷배인 나 씨 가문은 금정 금융계의 거물이었다.“개자식! 감히 날 때리다니?!”“흥! 넌 이제 죽었어! 내가 반드시 널 죽여버릴 거야!”이국흥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러나 그는 감히 하현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입만 떠들썩하게 떠벌렸다.“반드시 관청에 보고해서 감옥에 처넣어 버릴 거야!”“그리고 제멋대로 날뛰는 네놈 때문에!”“이 여자도 상상하기 힘든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블랙리스트에 올라 금융계에선 다시는 일 원 한 푼 빌릴 수 없게 만들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