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하 소주는 함부로 당신을 모욕하지 않았어. 그는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그것도 다 당신을 위해서였다고.”“텐푸 쥬시로를 잡은 건 정말 큰 공로야.”“하지만 그 큰 공을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현뿐이야.”“당신이 다른 사람의 공을 강탈하면 안 되지! 나중에 남들한테 들통나면 당신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할 거야!”“섬나라 사람들한테 보복당할 위험도 있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위험도 안고 있다고.”“설마 조금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거야?”“하 소주가 모든 걸 다 파악할 순 없어. 스스로의 미래는 스스로가 대비해야지.”“하 소주가 당신을 억압한다고 생각하지 마.”“모두가 당신을 위해서야!”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하구봉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들은 이미 하구천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 갇힌 사람들이었다.하수진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일부 사람들도 여전히 하구천의 휘하에 들어가는 걸 조심스럽게 생각했었다.하지만 하수진이 나타난 지금 항성과 도성의 판세는 분명했다.이 젊은이들에게 하구천의 휘하에 들어가는 것 외에는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게다가 그들이 보기에 노부인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하구천이 상석에 앉는 것은 시간문제였다.지금 하구봉이 하구천을 배신한 것은 이들이 보기에는 대역무도한 죄를 지은 거나 마찬가지였다.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하구봉을 압박하려는 것이다.“하구봉, 대의를 위해 당신이 조금 억울할 수밖에 없어.”“하구봉, 이건 하 소주가 당신한테 공을 세울 기회를 주는 거야.”“하구봉, 이 일은 여기서 이렇게 마무리 짓는 게 좋아.”“하 소주도 더 이상 당신 집안과 하현과의 관계를 따지진 않을 거야.”“그리고 잊지 마. 당신은 어쨌든 하 씨 집안사람이야!”하구봉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이들의 굳은 표정을 지켜보았다.죽일 듯 자신을 압박하는 그들의 말이 귓가에 쟁쟁거렸다.하구봉의 눈에는 과거에
항성, 가든 별장.하현 일행은 아침 차를 마시기 위해 모여 있었다.이때 하현은 무심코 태블릿 PC에 눈길을 주며 말했다.“문주 어르신, 뭐 하나 여쭤봐도 될는지요?”“하구천이 머리에 총을 맞은 게 아닐까요?”“항도 하 씨 가문이 이런 사람을 후계자로 뽑으려 하다니.”“장성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려는 게 아니고 뭐겠습니까?”뉴스에 나온 내용을 보고 하현은 금세 돌아가는 판세를 읽었다.쓱 보면 알 수 있을 법한 얘기였다.뉴스가 이렇게 자신을 비난하며 섬나라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린 건 다 하구천의 짓임이 분명했다.하구천은 이렇게 하면 섬나라 사람들이 하현을 공격할 뿐만 아니라 하구봉이 일어설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며 심지어 그 자신은 섬나라 사람들에게 큰 인정을 베푼 꼴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야말로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리고 한 짓임에 틀림없다.하구천에게는 기쁘고 축하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하문준도 뉴스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조카는 다 좋은데 소심해서 탈이야.”“전체를 보는 배포도 부족하고 심성도 얕아.”“노부인은 내가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상석에 앉히지도 않는 것이 내 친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지.”“하지만 노부인께서 생각하지 못하시는 게 있어. 배포가 작고 심성이 얕은 사람이 권력을 잡는 것은 항도 하 씨 가문에 하등의 이득도 없어.”“항도 하 씨 가문은 대하 남쪽의 관문에 위치하고 있어서 예로부터 병사들이 반드시 경쟁해야 하는 곳이었지. 이런 곳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충분한 안목과 두둑한 배포가 필요해.”하문준의 눈에는 실망스러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하구천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이렇게 경중을 모르고 속임수까지 써서 날뛸 줄은 몰랐다.겉으로 보기엔 하구천이 이득을 본 것 같지만 항도 하 씨 가문을 순식간에 불의의 상황에 빠뜨린 꼴이 되었다.간단히 말해 하구천의 펼쳐 놓은 판은 그야말로 너무나 형편없는 대국이었다.그가 상석에 앉고 말고 따지기 전에 그의 마음속에는
하현은 당난영의 말에서 그녀의 진심을 느끼고는 다정한 얼굴로 말했다.“부인, 안심하셔도 됩니다.”“섬나라 사람들의 음모와 모략이 속출하고 있지만 모두 다 대처할 수 있습니다.”“저는 그들 두 검객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들의 10대 검객들조차 모두 해치울 수 있습니다.”“언젠가 그들이 다시 날 건드린다면 섬나라 교토에서 한꺼번에 다 덤벼도 상관없습니다.”“생각해 보니 아주 그림이 멋질 것 같은데요.”하수진이 옆에서 이를 듣다가 끼어들었다.“어머니, 도대체 누가 어머니 자식인 거예요?”“지금 가장 위험한 사람은 분명 저잖아요?”“아버지가 날 사람들 앞에 노출시켜 상석에 앉히려고 하시니 모든 사람들이 날 해치우려고 할 텐데 말이에요. 아버지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 버릴 거예요.”당난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안전은 전혀 걱정하지 마. 아버지가 문주 호위대 중 절반을 네 곁에 배치시키셨어.”“이런 식으로 해도 너한테 사고가 난다면 아버지는 당장에 문주 자리를 내놓아야 할 거야, 하하하!”하문준도 손뼉을 치며 웃었다.“좋아, 좋아. 내가 자네에게 섬나라를 급습하게 했으니 이미 난 자네 솜씨에 아주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섬나라 측이 해괴망측한 기인들을 불러내지 않는 한 하현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어.”“물론 자네한테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해 주게. 내가 든든한 뒷배가 되어 줄 테니.”하현이 웃으며 말했다.“문주께서 저한테 일을 맡기실 때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습니다.”“저와 섬나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죽기 살기로 싸웠죠. 제가 그들의 얼굴을 때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요.”“그러나 이번엔 다릅니다.”“문주께서는 텐푸 쥬시로의 일을 염두에 두시고 가능한 한 빨리 그의 입에서 십 년 전 그 일에 관한 단서를 얻어야 합니다.”“곧 노부인의 생신이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하문준의 눈빛이 살짝 번쩍였고 그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분명 텐푸 쥬
하문준과 당난영이 데릴사위를 꿈꾸는 동안 하현은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하지만 중이 아무리 절이 싫어도 완전히 절을 떠날 수는 없었다.그는 안전을 위해 며칠 동안 가든 별장에 머물렀다.다음날 이른 아침, 봄비가 촉촉이 내린 가든 별장의 공기는 이슬의 향기를 품은 듯 상쾌했다.아침 산책을 하던 하현은 마침 아침 운동 준비를 하던 하수진을 만나 버기카를 타고 가든 별장 뒤편에 있는 사설 골프장으로 따라나섰다.하수진은 산뜻한 미니스커트의 골프복을 갈아입고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과 뿔테 선글라스를 착용해 명품 이미지를 물씬 풍겼다.그녀가 하현을 데리고 골프장으로 걸어갔을 때 그녀의 얼굴에는 청춘의 활기와 기운이 가득 흘렀다.하현은 골프채를 손에 들고 싱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하수진, 난 지금 풍랑 앞에 서 있는 처진데 당신은 그런 나를 데리고 골프를 치러 오다니. 당신은 내가 끌려가 내쫓기는 게 두렵지 않아?”노부인의 명령대로라면 하현은 어젯밤 10시에 항성과 도성을 떠났어야 했다.하지만 하현은 노부인의 명령을 듣고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먹고 자고 한 것이다.이미 노부인이 명령한 출국 시간은 10시간이나 훌쩍 지나 있었다.항성 전체가 침묵을 가득 집어삼킨 도시처럼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모든 사람들이 마치 태풍 전야를 맞이하는 심정으로 하현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이 상황에서 의문이 들었다.“큰일을 앞두고 이렇게 차분할 수 있다니, 참.”하현의 말에 하수진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항도 하 씨 가문의 가훈이야.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지. 그에 반해 당신은 아주 잘 하고 있어.”“아버지의 성품이 그러셔. 아버지도 당신을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당신도 자신을 걱정하지 않는데 내가 왜 당신을 걱정해야 해?”“그리고 내가 보기엔 하늘이 무너져도 당신은 솟아날 사람이야!”“내 말이 맞지?”“그런 이유로 당신을 데리고 나온 것이도 하
”툭!”“역시 고수는 고수군.”“어쩐지 노부인의 명령에도 꿈쩍도 하지 않더라니.”“영웅인 건지 머리가 나쁜 건지 모르겠군.”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그러자 나무숲 사이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비쳤다.사람들은 모두 파란색 장삼을 입고 있었고 표정은 너 나 할 것 없이 사나웠다.그리고 맨 가운데 깡마른 노인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서 있었다.흰 얼굴에 호두 두 알을 손 안에 쥐고 만지작거리던 노인은 하현을 실눈으로 바라보며 경멸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기고만장한 기운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하 총관님!?”하수진은 깡마른 노인을 보고 안색이 살짝 변했다.“누구야?”하현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그는 지금까지 항성과 도성에서 자신 앞에서 지금처럼 기고만장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그도 갑자기 나타난 깡마른 노인의 정체가 무척 궁금했다.“이 사람은 옛 문주 곁을 오랫동안 지켜왔었어.”“나중에 옛 문주가 항도 하 씨 가문을 재건한 후 그는 줄곧 총관 역할을 맡았어.”“옛 문주가 은퇴하고 아버지가 자리에 오른 후 하 총관은 줄곧 노부인 곁에서 여생을 보내셨지.”“그를 숨겨진 실세라고 생각하면 돼.”“어쨌든 그는 항도 하 씨 가문에서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니까.”“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실세 중의 실세지.”“아버지도 그를 만나면 깍듯이 예의를 갖춰 대하지.”“이 사람이 나온 걸 보니 할머니가 이번에는 정말 많이 화가 나신 모양이야.”말을 하는 동안 하수진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항도 하 씨 가문 문주의 수양딸인 그녀는 항도 하 씨 가문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깡마른 모습에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하 총관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실력을 겸비한 사람인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자신에 대해 설명하며 잔뜩 겁을 먹고 있는 하수진의 얼굴을 보면서 하 총관은 더욱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분명 그에게 있어 가장
”이 개자식이!”“하 총관님한테 무슨 말버릇이야?!”청삼을 입을 남자가 잡아먹을 듯 걸어 나왔다.“당장이라도 네 입을 갈기갈기 찢어줄 거야!”“뭐라고? 다시 말해 봐?”하 총관이 앞으로 나오더니 무덤덤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무리들을 제지했다.그리고 나서 그는 두 손을 뒷짐진 채 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항도 하 씨 가문 총관이야.”“문주와 노부인의 최측근이지!”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인 주제에 뭘 이렇게 기고만장하게 날뛰고 그러십니까?”“당신한테 한 가지 묻고 싶어요!”“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무슨 규칙을 어겼길래 당신 같은 사람한테 무릎을 꿇어야 합니까?”하현이 당당하게 따지고 나오는 것을 본 하수진이 얼른 끼어들려고 했지만 단호한 얼굴의 하현을 보고 그녀는 순간 마음을 접었다.하현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아는 하수진은 지금은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하현은 이 상황이 굉장히 언짢은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무슨 잘못을 했냐고요”“아직도 모르겠어?”하 총관은 한 걸음 앞으로 더 나와서 발을 구르며 호령하듯 큰소리를 쳤다.순간 땅바닥에 사방으로 균열이 일어났다.“하현, 쓸데없이 허세 부리지 마!”“그러다 이따가 죄만 더 많아져!”“그러니 지금 당장 기어서 당장 항성과 도성을 나가는 게 더 간단하지 않아!”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잘 모르겠는데요. 그냥 내 죄가 뭔지 말해 주시죠!”하 총관이 입을 열기도 전에 하얀 얼굴에 청삼을 입은 남자가 노기충천하여 먼저 입을 열었다.“노부인의 말은 천금과도 같아. 노부인은 당신한테 24시간 안에 당장 항성과 도성을 떠나라고 했어!”“하지만 당신은 순순히 떠나지 않았어!”“그리고도 아침부터 허세를 부리며 골프를 치러 나오다니!?” “노부인의 말씀을 허투루 들었어?!”“노부인이 누구신지 제대로 알고도 이따위 짓을 하는 거야!?”“이제 알겠어?”“이게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 총관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난 비록 하 씨이지만 지금껏 내가 항도 하 씨 가문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당신들 눈에는 항도 하 씨 가문이 하늘 같을진 몰라도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야. 난 콧방귀도 안 뀌어!”“항도 하 씨 가문 노부인의 말도 마찬가지야. 당신들한테나 천금 같은 거지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야!”“부처님 행세를 하려면 항도 하 씨 가문에서나 할 것이지 왜 나한테 와서 이래?”청삼을 입은 남자는 버럭 화를 내며 하현을 손가락질했다.“저, 저 자식이!”“감히 노부인을 모독하다니!”“넌 이제 끝났어!”“예수님도 네놈을 구하지 못할 거야!”“오늘 네놈의 손발을 박살 내 줄 거야!”“항성과 도성에서 감히 노부인의 말을 거역하다니!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이 개자식!”“퍽!”청삼을 입은 남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이미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손바닥으로 그를 후려쳤다.아니, 날려 버렸다.청삼을 입은 남자가 하현의 손바닥 한 방에 날아가는 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그들이 상징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항도 하 씨 가문의 권위였다.그리고 노부인의 절대적인 지지였다.비록 하 총관이 자주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서 마주치든 모두들 그들 앞에서는 몸을 벌벌 떨 정도였다.항성과 도성의 귀족들이라도 다르지 않았다.하구천처럼 제멋대로 날뛰는 사람도 그들을 만나면 모두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이 사람들이 언제 누구한테 손찌검을 당해 봤겠는가?청삼을 입은 남자는 땅에 널브러져 얼굴을 가리고 끓어오르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이 개자식이!!“감히 날, 날 때리다니!”“퍽!”“난 항도 하 씨 가문 문주의 귀빈이야. 그러니 당신들도 예우를 다해 날 대해야 해.”“당신 같은 집사 따위가 내 앞에서 무슨 자격으로 큰소리를 치는 거야?”“퍽!”“하 총관도 아무 말 하지 않는데 당신이 뭔데 나서서 지껄이는 거야?
하현의 얼굴에 비아냥거리는 미소가 냉랭하게 흘렀다.말을 마치며 그는 휴지를 꺼내 더러운 오물이라도 묻은 것처럼 마뜩잖은 표정으로 손을 닦았다.이 모습을 바라보던 하 총관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결국 하 총관은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이 건방진 놈!”“하현!”“뭘 믿고 이렇게 건방지게 구는 거야!”“감히 항도 하 씨 가문 집사를 치다니!”“노부인께서도 감히 손을 대지 않는 우리를 감히 너 따위가?!”“도대체 항도 하 씨 가문에 무슨 억하심정이 있길래 이러는 거야?”“우리 뒤에 노부인이 있다는 게 안 보여?”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하 총관님, 눈이 멀었습니까?”“방금 당신 부하가 나한테 덤벼드는 거 못 봤어요?”“난 문주의 귀빈입니다.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죠!”“총관이신 분이 그 정도 규율도 모르면서 나한테 법 운운하는 겁니까? 규칙이요?”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왕법, 규율이라는 건 다 허울뿐인 껍데기인 거죠.”“당신들한테 유리할 때는 왕법 운운하다가 불리할 때는 가차 없이 내팽개치는 그런 게 왕법이고 규율입니까?”“이런 왕법과 규율을 제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하 총관님은 항도 하 씨 가문 노부인도 안중에 없는 겁니까?”“노부인을 앞세워 이렇게 함부로 행동해도 되는 거냐구요?”“하 총관님,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러시죠?!”“어떻게 이런 불경을 저지르는 거냐구요, 네?”“너 이 자식...”하 총관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는 항상 항도 하 씨 가문 노부인을 앞세워 사람들에게 겁을 주었다.그런데 오늘 역으로 노부인을 앞세워 자신을 공격할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순간 하 총관은 지위고 체면이고 다 내팽개치며 매서운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 씨 이 자식이!”“존엄한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을 건드리는 거야?!”“우리 노부인의 권위에 도전하겠다는 거냐고!”“네놈이 죽고 싶어 환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