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행동이 타당한 이유를 거침없이 설명하는 하구천의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미소가 번졌다.하구봉은 그의 미소를 보고 얼굴을 한 대 후려갈기고 싶었으나 애써 충동을 억눌렀다.이때 뒤편에서 허지강이 입을 열었다.“하구봉, 내친김에 소식 하나 더 알려줄게.”“방금 섬나라에 현재 잔존하는 5대 유파가 교토에 모여 섬나라 황궁 앞에서 결의대회를 준비했대!”“신당류 사건의 범인에게 피맺힌 원한을 돌려주어야 한다며 죽기 살기로 싸우겠다고 말이야.”“그래서 하 소주가 이 일을 폭로함으로써 당신의 목숨을 구해낸 거야.”“당신은 오히려 하구천한테 감사해야 해. 안 그랬으면 당신은 오늘 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지도 모를 운명이었어.”“당신 한 사람 죽는 걸로 끝나지 않고 항도 하 씨 가문이 섬나라 사람들한테 공격받을 뻔했어!”“당신이 잘못한 일을 하 소주가 스스로 나서서 해결한 거야. 이 얼마나 큰 공로야? 머리를 납작 엎드려 고마워해야 한다고!”“그런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의심을 하는 거야?”“하구봉, 당신한테 너무 실망인데!”자신들의 행동이 타당하다는 근거를 대는 하구천 일행을 보며 하구봉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이 언제 섬나라 검객을 겁냈어?”“섬나라 사람들을 대할 때 당신들 무릎은 이미 땅바닥에 주저앉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군.”“잊었어? 우리 항성은 대하의 영역이야. 우리도 대하 사람이라고!”“섬나라가 유라시아 전쟁터에서 일찍이 총교관에게 큰 패배를 맞봤지.”“그들에게 아무리 큰 용기를 줘도 감히 우리 항성을 어지럽히진 못할 거야!”“큰 대군은 국경을 넘을 수 없어. 그렇지만 몇 명의 살수를 보내는 건 간단하지 않아?”하구천이 하구봉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나이가 들었으니 좀 성숙해지라고.”“섬나라에는 검객, 닌자, 음양사, 주술사가 아주 많아...”“섬나라 사람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진검승부까지 하지 않아도 돼. 아주 손쉬운 일이거든.”“이번
”게다가 하 소주는 함부로 당신을 모욕하지 않았어. 그는 단지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그것도 다 당신을 위해서였다고.”“텐푸 쥬시로를 잡은 건 정말 큰 공로야.”“하지만 그 큰 공을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현뿐이야.”“당신이 다른 사람의 공을 강탈하면 안 되지! 나중에 남들한테 들통나면 당신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할 거야!”“섬나라 사람들한테 보복당할 위험도 있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위험도 안고 있다고.”“설마 조금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거야?”“하 소주가 모든 걸 다 파악할 순 없어. 스스로의 미래는 스스로가 대비해야지.”“하 소주가 당신을 억압한다고 생각하지 마.”“모두가 당신을 위해서야!”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하구봉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들은 이미 하구천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 갇힌 사람들이었다.하수진이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일부 사람들도 여전히 하구천의 휘하에 들어가는 걸 조심스럽게 생각했었다.하지만 하수진이 나타난 지금 항성과 도성의 판세는 분명했다.이 젊은이들에게 하구천의 휘하에 들어가는 것 외에는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게다가 그들이 보기에 노부인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하구천이 상석에 앉는 것은 시간문제였다.지금 하구봉이 하구천을 배신한 것은 이들이 보기에는 대역무도한 죄를 지은 거나 마찬가지였다.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하구봉을 압박하려는 것이다.“하구봉, 대의를 위해 당신이 조금 억울할 수밖에 없어.”“하구봉, 이건 하 소주가 당신한테 공을 세울 기회를 주는 거야.”“하구봉, 이 일은 여기서 이렇게 마무리 짓는 게 좋아.”“하 소주도 더 이상 당신 집안과 하현과의 관계를 따지진 않을 거야.”“그리고 잊지 마. 당신은 어쨌든 하 씨 집안사람이야!”하구봉은 눈앞에 보이는 모든 이들의 굳은 표정을 지켜보았다.죽일 듯 자신을 압박하는 그들의 말이 귓가에 쟁쟁거렸다.하구봉의 눈에는 과거에
항성, 가든 별장.하현 일행은 아침 차를 마시기 위해 모여 있었다.이때 하현은 무심코 태블릿 PC에 눈길을 주며 말했다.“문주 어르신, 뭐 하나 여쭤봐도 될는지요?”“하구천이 머리에 총을 맞은 게 아닐까요?”“항도 하 씨 가문이 이런 사람을 후계자로 뽑으려 하다니.”“장성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려는 게 아니고 뭐겠습니까?”뉴스에 나온 내용을 보고 하현은 금세 돌아가는 판세를 읽었다.쓱 보면 알 수 있을 법한 얘기였다.뉴스가 이렇게 자신을 비난하며 섬나라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린 건 다 하구천의 짓임이 분명했다.하구천은 이렇게 하면 섬나라 사람들이 하현을 공격할 뿐만 아니라 하구봉이 일어설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며 심지어 그 자신은 섬나라 사람들에게 큰 인정을 베푼 꼴이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야말로 일석삼조의 효과를 노리고 한 짓임에 틀림없다.하구천에게는 기쁘고 축하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하문준도 뉴스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조카는 다 좋은데 소심해서 탈이야.”“전체를 보는 배포도 부족하고 심성도 얕아.”“노부인은 내가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상석에 앉히지도 않는 것이 내 친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지.”“하지만 노부인께서 생각하지 못하시는 게 있어. 배포가 작고 심성이 얕은 사람이 권력을 잡는 것은 항도 하 씨 가문에 하등의 이득도 없어.”“항도 하 씨 가문은 대하 남쪽의 관문에 위치하고 있어서 예로부터 병사들이 반드시 경쟁해야 하는 곳이었지. 이런 곳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충분한 안목과 두둑한 배포가 필요해.”하문준의 눈에는 실망스러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하구천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이렇게 경중을 모르고 속임수까지 써서 날뛸 줄은 몰랐다.겉으로 보기엔 하구천이 이득을 본 것 같지만 항도 하 씨 가문을 순식간에 불의의 상황에 빠뜨린 꼴이 되었다.간단히 말해 하구천의 펼쳐 놓은 판은 그야말로 너무나 형편없는 대국이었다.그가 상석에 앉고 말고 따지기 전에 그의 마음속에는
하현은 당난영의 말에서 그녀의 진심을 느끼고는 다정한 얼굴로 말했다.“부인, 안심하셔도 됩니다.”“섬나라 사람들의 음모와 모략이 속출하고 있지만 모두 다 대처할 수 있습니다.”“저는 그들 두 검객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들의 10대 검객들조차 모두 해치울 수 있습니다.”“언젠가 그들이 다시 날 건드린다면 섬나라 교토에서 한꺼번에 다 덤벼도 상관없습니다.”“생각해 보니 아주 그림이 멋질 것 같은데요.”하수진이 옆에서 이를 듣다가 끼어들었다.“어머니, 도대체 누가 어머니 자식인 거예요?”“지금 가장 위험한 사람은 분명 저잖아요?”“아버지가 날 사람들 앞에 노출시켜 상석에 앉히려고 하시니 모든 사람들이 날 해치우려고 할 텐데 말이에요. 아버지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어 버릴 거예요.”당난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안전은 전혀 걱정하지 마. 아버지가 문주 호위대 중 절반을 네 곁에 배치시키셨어.”“이런 식으로 해도 너한테 사고가 난다면 아버지는 당장에 문주 자리를 내놓아야 할 거야, 하하하!”하문준도 손뼉을 치며 웃었다.“좋아, 좋아. 내가 자네에게 섬나라를 급습하게 했으니 이미 난 자네 솜씨에 아주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섬나라 측이 해괴망측한 기인들을 불러내지 않는 한 하현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어.”“물론 자네한테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지 나한테 말해 주게. 내가 든든한 뒷배가 되어 줄 테니.”하현이 웃으며 말했다.“문주께서 저한테 일을 맡기실 때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습니다.”“저와 섬나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죽기 살기로 싸웠죠. 제가 그들의 얼굴을 때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요.”“그러나 이번엔 다릅니다.”“문주께서는 텐푸 쥬시로의 일을 염두에 두시고 가능한 한 빨리 그의 입에서 십 년 전 그 일에 관한 단서를 얻어야 합니다.”“곧 노부인의 생신이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하문준의 눈빛이 살짝 번쩍였고 그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분명 텐푸 쥬
하문준과 당난영이 데릴사위를 꿈꾸는 동안 하현은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하지만 중이 아무리 절이 싫어도 완전히 절을 떠날 수는 없었다.그는 안전을 위해 며칠 동안 가든 별장에 머물렀다.다음날 이른 아침, 봄비가 촉촉이 내린 가든 별장의 공기는 이슬의 향기를 품은 듯 상쾌했다.아침 산책을 하던 하현은 마침 아침 운동 준비를 하던 하수진을 만나 버기카를 타고 가든 별장 뒤편에 있는 사설 골프장으로 따라나섰다.하수진은 산뜻한 미니스커트의 골프복을 갈아입고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과 뿔테 선글라스를 착용해 명품 이미지를 물씬 풍겼다.그녀가 하현을 데리고 골프장으로 걸어갔을 때 그녀의 얼굴에는 청춘의 활기와 기운이 가득 흘렀다.하현은 골프채를 손에 들고 싱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하수진, 난 지금 풍랑 앞에 서 있는 처진데 당신은 그런 나를 데리고 골프를 치러 오다니. 당신은 내가 끌려가 내쫓기는 게 두렵지 않아?”노부인의 명령대로라면 하현은 어젯밤 10시에 항성과 도성을 떠났어야 했다.하지만 하현은 노부인의 명령을 듣고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먹고 자고 한 것이다.이미 노부인이 명령한 출국 시간은 10시간이나 훌쩍 지나 있었다.항성 전체가 침묵을 가득 집어삼킨 도시처럼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모든 사람들이 마치 태풍 전야를 맞이하는 심정으로 하현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이 상황에서 의문이 들었다.“큰일을 앞두고 이렇게 차분할 수 있다니, 참.”하현의 말에 하수진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항도 하 씨 가문의 가훈이야.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지. 그에 반해 당신은 아주 잘 하고 있어.”“아버지의 성품이 그러셔. 아버지도 당신을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당신도 자신을 걱정하지 않는데 내가 왜 당신을 걱정해야 해?”“그리고 내가 보기엔 하늘이 무너져도 당신은 솟아날 사람이야!”“내 말이 맞지?”“그런 이유로 당신을 데리고 나온 것이도 하
”툭!”“역시 고수는 고수군.”“어쩐지 노부인의 명령에도 꿈쩍도 하지 않더라니.”“영웅인 건지 머리가 나쁜 건지 모르겠군.”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그러자 나무숲 사이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비쳤다.사람들은 모두 파란색 장삼을 입고 있었고 표정은 너 나 할 것 없이 사나웠다.그리고 맨 가운데 깡마른 노인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서 있었다.흰 얼굴에 호두 두 알을 손 안에 쥐고 만지작거리던 노인은 하현을 실눈으로 바라보며 경멸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기고만장한 기운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하 총관님!?”하수진은 깡마른 노인을 보고 안색이 살짝 변했다.“누구야?”하현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그는 지금까지 항성과 도성에서 자신 앞에서 지금처럼 기고만장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그도 갑자기 나타난 깡마른 노인의 정체가 무척 궁금했다.“이 사람은 옛 문주 곁을 오랫동안 지켜왔었어.”“나중에 옛 문주가 항도 하 씨 가문을 재건한 후 그는 줄곧 총관 역할을 맡았어.”“옛 문주가 은퇴하고 아버지가 자리에 오른 후 하 총관은 줄곧 노부인 곁에서 여생을 보내셨지.”“그를 숨겨진 실세라고 생각하면 돼.”“어쨌든 그는 항도 하 씨 가문에서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니까.”“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실세 중의 실세지.”“아버지도 그를 만나면 깍듯이 예의를 갖춰 대하지.”“이 사람이 나온 걸 보니 할머니가 이번에는 정말 많이 화가 나신 모양이야.”말을 하는 동안 하수진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항도 하 씨 가문 문주의 수양딸인 그녀는 항도 하 씨 가문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깡마른 모습에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하 총관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실력을 겸비한 사람인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자신에 대해 설명하며 잔뜩 겁을 먹고 있는 하수진의 얼굴을 보면서 하 총관은 더욱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분명 그에게 있어 가장
”이 개자식이!”“하 총관님한테 무슨 말버릇이야?!”청삼을 입을 남자가 잡아먹을 듯 걸어 나왔다.“당장이라도 네 입을 갈기갈기 찢어줄 거야!”“뭐라고? 다시 말해 봐?”하 총관이 앞으로 나오더니 무덤덤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무리들을 제지했다.그리고 나서 그는 두 손을 뒷짐진 채 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항도 하 씨 가문 총관이야.”“문주와 노부인의 최측근이지!”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인 주제에 뭘 이렇게 기고만장하게 날뛰고 그러십니까?”“당신한테 한 가지 묻고 싶어요!”“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무슨 규칙을 어겼길래 당신 같은 사람한테 무릎을 꿇어야 합니까?”하현이 당당하게 따지고 나오는 것을 본 하수진이 얼른 끼어들려고 했지만 단호한 얼굴의 하현을 보고 그녀는 순간 마음을 접었다.하현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아는 하수진은 지금은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하현은 이 상황이 굉장히 언짢은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무슨 잘못을 했냐고요”“아직도 모르겠어?”하 총관은 한 걸음 앞으로 더 나와서 발을 구르며 호령하듯 큰소리를 쳤다.순간 땅바닥에 사방으로 균열이 일어났다.“하현, 쓸데없이 허세 부리지 마!”“그러다 이따가 죄만 더 많아져!”“그러니 지금 당장 기어서 당장 항성과 도성을 나가는 게 더 간단하지 않아!”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잘 모르겠는데요. 그냥 내 죄가 뭔지 말해 주시죠!”하 총관이 입을 열기도 전에 하얀 얼굴에 청삼을 입은 남자가 노기충천하여 먼저 입을 열었다.“노부인의 말은 천금과도 같아. 노부인은 당신한테 24시간 안에 당장 항성과 도성을 떠나라고 했어!”“하지만 당신은 순순히 떠나지 않았어!”“그리고도 아침부터 허세를 부리며 골프를 치러 나오다니!?” “노부인의 말씀을 허투루 들었어?!”“노부인이 누구신지 제대로 알고도 이따위 짓을 하는 거야!?”“이제 알겠어?”“이게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 총관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난 비록 하 씨이지만 지금껏 내가 항도 하 씨 가문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당신들 눈에는 항도 하 씨 가문이 하늘 같을진 몰라도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야. 난 콧방귀도 안 뀌어!”“항도 하 씨 가문 노부인의 말도 마찬가지야. 당신들한테나 천금 같은 거지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야!”“부처님 행세를 하려면 항도 하 씨 가문에서나 할 것이지 왜 나한테 와서 이래?”청삼을 입은 남자는 버럭 화를 내며 하현을 손가락질했다.“저, 저 자식이!”“감히 노부인을 모독하다니!”“넌 이제 끝났어!”“예수님도 네놈을 구하지 못할 거야!”“오늘 네놈의 손발을 박살 내 줄 거야!”“항성과 도성에서 감히 노부인의 말을 거역하다니!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이 개자식!”“퍽!”청삼을 입은 남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이미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손바닥으로 그를 후려쳤다.아니, 날려 버렸다.청삼을 입은 남자가 하현의 손바닥 한 방에 날아가는 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그들이 상징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항도 하 씨 가문의 권위였다.그리고 노부인의 절대적인 지지였다.비록 하 총관이 자주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서 마주치든 모두들 그들 앞에서는 몸을 벌벌 떨 정도였다.항성과 도성의 귀족들이라도 다르지 않았다.하구천처럼 제멋대로 날뛰는 사람도 그들을 만나면 모두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이 사람들이 언제 누구한테 손찌검을 당해 봤겠는가?청삼을 입은 남자는 땅에 널브러져 얼굴을 가리고 끓어오르는 분을 삭이지 못했다.“이 개자식이!!“감히 날, 날 때리다니!”“퍽!”“난 항도 하 씨 가문 문주의 귀빈이야. 그러니 당신들도 예우를 다해 날 대해야 해.”“당신 같은 집사 따위가 내 앞에서 무슨 자격으로 큰소리를 치는 거야?”“퍽!”“하 총관도 아무 말 하지 않는데 당신이 뭔데 나서서 지껄이는 거야?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
여수혁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하현, 나 여수혁이야! 페낭 무맹 무맹주의 여 씨 가문 사람이라구!”“내 스승님은 남양 무맹 맹주야!”“나한테 당신 같은 사람은 목숨도 아니야!”“당신 지금 이런 행동한 거,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땅바닥에 널브러진 여수혁은 힘겨운 얼굴로 남은 힘을 끌어모아 내뱉었다.“퍽!”“저리 꺼져!”하현은 여수혁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그러자 여수혁은 벽에 몸을 부딪혔고 입에서는 봇물 터지듯 핏물이 솟구치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배후에 누가 있든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어.”하현은 앞으로 나가 손을 뻗어 여음채의 창백한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당신한테 기회를 주겠어. 잠시 문을 닫고 정리하면서 잘 생각해 봐.”“다음에도 또 이런 일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어오면 정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땐 인정사정없이 완전히 풍비박산을 만들어 버릴 테니까!”...궁지에 빠진 여음채와 여수혁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하현은 길을 막고 있는 페낭 무맹 제자들을 발로 걷어차고 원가령을 부축하며 양유훤의 차에 올라탔다.양유훤은 사람들을 양 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갔고 원가령을 응급실 침대에 눕힌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현, 오늘 밤 가령이 일로 귀찮게 해서 미안해.”“어떻게 된 건지 들어서 잘 알고 있어.”“당신이 없었다면 오늘 밤 가령이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하현이 병원 대기실 소파에 앉자 하이힐을 신은 양유훤이 그에게 다가와 생수 한 병을 건넸다.“당연한 일을 한 걸 가지고 뭐. 마침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 난 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오늘 밤 원가령의 일은 아마 십중팔구 당신을 노리고 한 짓일 거야.”“조심하는 게 좋아.”양유훤도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나 때문에 온 게 분명해.”“이번에 내가 천억 대금을 순조롭게 회수해서 적자에 허덕이
”퍽!”여수혁은 무맹 사람이고 남양 무맹의 맹주에게서 수련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 맹주였다.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했다.그래서 그가 하현과의 거리가 좁힌 지금 한 번에 몸을 날리자 무서운 기세가 펼쳐졌다.방금 양유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이 주먹으로 하현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대하 촌놈! 죽어!”여수혁은 섬뜩한 미소로 쏜살같이 덤벼들었다.이런 벼락같은 기세라면 소 한 마리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광경을 보고 여음채와 부일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수혁의 대담한 기세에 깜짝 놀란 것이다.“양유훤, 봤지?!”“이게 당신이 선택해야 할 남자의 모습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양 씨 가문 데릴사위가 되지!”“입으로만 떠드는 남자가 무슨 소용있어?”“여수혁 같은 고수를 만나면 바로 무릎을 꿇을 거야!”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띠며 하현을 주제넘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주변 구경꾼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왜 여수혁을 감히 도발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장내에 오직 양유훤과 하구봉만이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그들은 모두 하현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만약 여수혁 같은 사람 한 명도 수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하현은 헛수고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퍽퍽퍽퍽!”여수형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온몸을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다.동시에 하현은 그의 두 손을 짓밟아 부러뜨렸다.“이럴 수가?!”여음채와 부일민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여수혁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그리고 소위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지금은 눈가
그러자 여수혁의 옆에 있던 여음채가 얼굴을 가리고 노기를 띠며 말했다.“하 씨! 당신 뭐가 좋은지 나쁜지 몰라?”“양유훤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 준 거라고!”“좋게 끝났을 때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나중에 얼굴이 찢겨 봐야 아는 거야?”여음채의 마음속에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올랐다.하현은 계속 자신의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이빨이 부러지도록 만신창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콧대 높은 여음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이 도발하며 여수혁을 추궁하는 것을 보고 여음채는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그녀가 특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가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쉽게 살려는 자들이다.양유훤을 믿고 호랑이처럼 위세를 부릴 뿐만 아니라 아주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라니!여음채의 상식으로 어떻게 하현 같은 사람을 여수혁과 동급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운이 좋아서 양유훤의 치마폭에 싸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현은 벌써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좋은 게 좋은 거라고?”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잘난 척 기고만장한 여음채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여음채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렇지 않아? 똑똑히 들어. 양 씨 가문의 호가호위만 믿고 설치는 짓,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당신이 정말로 양유훤의 남자인 줄 알아? 당신이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도 된 줄 알아?”“당신이 정말로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해도 여자 치마폭에 싸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하겠어?”여음채는 엄청 호의를 베풀 듯이 호기롭게 훈계를 했다.“당신이 어떤 속셈이 있고 무슨 실력이 있든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하현은 여음채가 하는 말을 더는 듣기 귀찮아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닥쳐!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재잘재잘 너무 시끄럽군!”“뭐?!”여음채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입에 차가운 재갈을 물리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
남양 무맹 사람들이 나섰음에도 양유훤은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여수혁의 안색이 일그러졌다.그는 자신이 오늘 하현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 씨, 오늘은 내가 운이 나빴군. 하지만 아직 기회는 많아!”“능력이 있으면 어디 이 여자가 영원히 당신을 비호하도록 만들어 봐!”“이 여자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 얼마나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그는 하현을 노려보다 냉소를 흘리며 돌아섰다.여음채도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외지인 남자가 여자한테 기대서 큰소리치는 꼴이라니!세상은 좁아서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법이다.이 남자가 괴로워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거기 서!”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던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순간 하현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강하게 감돌았다.비록 양유훤이 나서서 자신을 비호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하현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현재 양유훤의 처지를 거의 파악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양유훤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하현이 한 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하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그들은 하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여수혁 같은 거물이 그를 벌하려는 걸 양유훤이 겨우 구해줬는데 뭘 또 바란단 말인가?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여수혁은 발걸음을 뚝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오늘은 운이 나쁜 걸로 친다고 했는데 뭘 또 바라는 거야?”하현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정말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돈을 받고도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은 권세로 사람들을 자꾸만 괴롭히려고 해.”“날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만들려고 했어.”“이 모든 것에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