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푸 쥬시로는 잘 있어?”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나가 죽으라고 해!”“병신 같은 놈! 당신도 부담없이 당신 스승 언급해도 돼!”무사복을 입은 사내의 안색이 급변했다.순간 그는 하현의 얼굴을 똑똑히 본 듯 갑자기 얼굴빛이 일그러졌다.“당신이 하현?!”“어서 해치워!”하현의 신원을 알아본 순간 무사복을 입은 사내는 쏜살같이 명령을 내렸다.그러나 안타깝게도 명령을 내리기엔 이미 늦었다.하현은 몸을 움직여 군중 속으로 뛰어들었다.여덟 명의 병왕급 검객들이 소리를 지르며 허리춤에 찬 섬나라 장도를 꺼내들려고 했다.그러나 그들이 허리춤에 손을 대기도 전에 온몸이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그들의 입과 코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고 순간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무사복을 입은 남자는 낯빛이 어두워졌고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려 물러서려고 했지만 그의 동작은 이미 너무 늦었다.하현은 몸을 움직여 그의 앞에 다가와 손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무사복을 입은 남자의 머리가 땅에 세게 부딪혔고 순간 남자는 두 눈이 뒤집힌 채 의식을 잃었다.하구봉은 이 장면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그가 멍하니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는 동안 하현은 이미 앞으로 나가 문을 발로 걷어찼다.주위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불빛에 녹아들어 순식간에 하현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해 왔다.이를 본 하구봉은 손을 크게 흔들었고 총을 들어 섬나라의 적진을 향해 총탄을 쏟아부었다.그러나 빗발치는 총탄도 섬나라 검객들에겐 아무 소용없었다.수포로 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주위의 분위기를 더 살벌하게 만들어 버렸다.“이 자식들!”“섬나라 검객들이다!”하구봉은 낯빛이 일그러졌고 총알을 다시 장전하는 그의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그도 전쟁터에 나가 본 사람이다.강한 상대를 만나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그였으나 눈앞의 기괴한 광경은 그를 긴장시키고 위기감을 고조시키기 충분했다.그제야 하구봉은
”어디서 수작이야!”이 광경을 본 하현은 담담하게 미소 짓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곧이어 하구봉이 들고 있던 총을 빼앗은 뒤 안전장치를 풀고 망설임 없이 머리 위로 방아쇠를 당겼다.“탕탕탕!”하현의 머리 위에서 총탄이 사방으로 날아올랐다.그의 머리 위에서 몰래 모습을 드러내던 섬나라 검객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이 굳어졌다.이윽고 그들의 미간에서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리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사방에서 피가 튀는 사이 하현은 총의 방향을 바꾸어 이번에는 자신의 바로 뒤쪽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뒤편에서 또 다른 검객들이 소리를 지르며 픽픽 쓰러졌다.섬나라 검객들이 숨 쉴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하현은 계속해서 방향을 바꾸어 가며 총구를 돌렸고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섬나라 검객들이 픽픽 쓰러졌다.“탕!”마지막 한 발이 정면을 향해 돌진했다.섬나라 검객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신출귀몰하던 섬나라 검객들은 순식간에 하현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모든 검객을 소탕한 후 하현은 총을 들어 하구봉의 손에 다시 던지며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쾅!”하현이 발길질을 하며 문을 열었다.그러자 마치 궁정과도 같은 내부가 눈앞에 펼쳐졌다.“솩!”칼날이 번쩍하며 눈앞에서 나무 문이 두 동강이 났다.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텐푸 쥬시로는 섬나라 장도를 들고 서서 하현 일행을 맞았다.“제법 대범하군. 감히 우리 섬나라 신당류 본산을 쳐들어오다니!”“죽고 싶어?”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텐푸 쥬시로, 내가 말했잖아. 당신 찾으러 오겠다고.”“하현?!”텐푸 쥬시로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러나 그는 이내 덤덤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멀리서 날 보러 오셨는데 마중을 못 나가서 미안하게 됐어.”“당신이 미리 말만 해 줬으면 우리 부하들한테 융숭한 대접을 하라고 했을 텐데 말이야.”“그럼 지금처럼 미안하지도
순간 하현의 시야에 살벌한 기운이 가득 들어왔다.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칼은 마치 지옥에서 마귀가 튀어나온 것처럼 섬뜩한 기운을 몰고 왔다.신당류 검객은 역시 만만찮은 상대는 아니었다.텐푸 쥬시로는 확실히 전신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하현은 손가락을 튕기며 본능적으로 재빠르게 뒤로 물러섰다.“촹!”양측의 공세가 부딪히자 낭랑하고 맑은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파도처럼 음파를 타고 칼소리가 파동을 일으켰고 하현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비록 하현은 텐푸 쥬시로를 과소평가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보여준 신당류의 실력은 확실히 지난번보다 강한 것 같았다.지난번 패배 이후 분명 텐푸 쥬시로는 뼈를 깎는 아픔으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것 같았다.텐푸 쥬시로가 오늘 보여준 실력은 확실히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었다.하현은 땅바닥에 떨어진 섬나라 장도를 집어 들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텐푸 쥬시로, 당신이 최근에 열심히 연마를 한 것 같지만 나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어.”전생의 신이든 최고의 영웅이든 하현의 눈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그래?”“그럼 어디 한번 해 보시지!”텐푸 쥬시로의 안색이 일순 굳어졌다.오랫동안 준비한 방법이 허사가 될 줄은 몰랐다.다만 상황이 이쯤 되자 텐푸 쥬시로도 더 이상 자신이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현이 하구봉과 함께 이곳에 온 것은 이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의미한다.텐퓨 주시로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합을 넣듯 가벼운 추임새를 넣은 뒤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다가 갑자기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했다.“촹촹촹!”이번에는 텐푸 쥬시로의 동작이 아까보다 조금 빨라졌다.그는 단숨에 섬나라 장도를 휘둘렀다.칼날에 서린 매서운 기운이 사방으로 흩어졌다.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처절한 광경을 예고라도 하는 듯 맹렬하게 번쩍였다.하현은 오른손을 들어 섬나라 장도를 휘둘러 텐푸 쥬시로의 칼을 단번에 막아냈다.하현은 결코 서두르지 않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군. 고수는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아.”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고 순간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손에 든 섬나라 장도를 휘둘렀다.천하의 무공은 그 무공이 강하면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이 없고 빠르면 부수지 못하는 것이 없다!텐푸 쥬시로의 번잡스러운 칼놀림과 달리 하현의 칼놀림은 빠르고 매서웠다.단번에 허공을 가르는 하현의 칼이 순식간에 텐푸 쥬시로의 눈앞에서 칼춤을 추는 듯했다.자신만만해하던 텐푸 쥬시로는 순식간에 안색이 변했다.하현의 칼놀림이 이렇게 화려하고 매서울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순식간에 식은땀이 텐푸 쥬시로의 온몸을 적셨고 그는 소리를 지르며 하현의 칼을 막기 바빴다.“촹!”하현이 휘두르는 섬나라 장도의 칼날이 여기저기 무지갯빛 부채살을 수놓았다.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린 텐푸 쥬시로는 더 이상 하현의 매서운 칼놀림을 막을 수 없었는지 얼빠진 얼굴로 뒤로 물러섰다.도저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아무리 생각해도 하현의 칼놀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단순한 칼놀림이 아니었다.산과 바다를 뒤엎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집념이 가득한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칼날에 묻어 있는 것 같았다.그 어떤 독기도, 집념도 하현 앞에서는 막아설 재간이 없을 듯했다.텐푸 쥬시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하현이 항성에서 보여 주었던 실력은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허공을 가르는 하현의 칼놀림은 그야말로 전설 속의 무아지경 그 이상이었다.“말도 안 돼!”“당신이 아무리 모태부터 수련을 했어도 이 지경에 이르진 못했을 거야!”“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섬나라 검객들이 문을 내닫고 수련에 온 힘을 기울였어.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텐푸 쥬시로가 소리쳤다.말할 수 없는 압박감과 죽음의 기운이 몰려오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순간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에 든 섬나라 장도를 휘두르며 쏜살같이 뒤로 물러났다.“촹!”칼날
”뭐? 당신이 이의평이라고?”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며 얼굴 가득 험악한 기색을 떠올렸다.“당신은 섬나라 신당류 종주이자 일대의 검객이야. 섬나라 10대 검객 중 하나라고!”“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비명횡사'의 우두머리일 수가 있어?”텐푸 쥬시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만약 내가 이의평 본인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당신들이 온 목적을 단번에 알아챘겠어?”이 말을 듣고 하현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방금 어렴풋이 눈치채긴 했었지만 텐푸 쥬시로가 자신을 이의평이라고 밝히자 여전히 약간의 의아함이 남았던 것이다.“좋아. 당신이 이의평이라면 내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겠군.”하구봉은 날카로운 눈빛에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십 년 전 문주의 아들을 죽인 사람이 당신이야?”텐푸 쥬시로는 눈꺼풀을 살짝 움찔거리며 입을 열었다.“당신 하구봉, 맞지?”“내가 범인이길 바라? 아니면 아니길 바라?”“탕!”하구봉이 손을 들어 텐푸 쥬시로의 어깨에 총을 쐈다.선혈이 흩날리고 텐푸 쥬시로는 죽을 듯이 끙끙거렸지만 비명은 없었다.텐푸 쥬시로는 당연히 피할 수 있었다.그러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하현은 손을 쓰지 않았지만 텐푸 쥬시로는 잘 알고 있었다.만약 자신이 반항한다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것을.텐푸 쥬시로가 자신의 정체를 폭로한 이상 그는 자신이 쉽게 죽고 싶지 않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었다.비록 조그마한 기회라도 있다면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생명줄을 잡고 싶었다.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은 것이다.이런 텐푸 쥬시로의 모습을 보며 하현은 하구봉의 동작을 말리지 않고 그저 담담히 텐푸 쥬시로의 표정을 지켜보며 일생일대의 검객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예의주시하고 있었다.하구봉은 또 한 번 방아쇠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그리고 나서 몇 걸음 앞으로 나가 텐푸 쥬시로의 이마에 총부리를 겨누며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텐푸 쥬시로, 허튼수작은
텐푸 쥬시로의 말에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하구봉은 얼른 정신을 다잡았다.“개자식! 배후가 누군지 어떻게 모를 수 있어?”“자신이 이의평이라고 실토했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고?”“이 자식!”“퍽!”하구봉이 발작에 가까운 포효를 채 끝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텐푸 쥬시로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후려쳐 일생일대의 검객을 그 자리에서 기절시켜 버렸다.손을 거둬들이며 하현은 휴지를 꺼내 손가락을 닦았다.“지금은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야.”“항성에 돌아가면 얼마든지 추궁할 수 있어.”“그가 당신과 이런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는 건 단지 시간을 끌기 위한 수작에 불과해.”“가자!”하현의 명령과 함께 하구봉도 냉정도 되찾았다.텐푸 쥬시로가 불러들인 신당류 고수들이 들이닥쳐 그들을 포위하기 전에 하현 일행은 호위대들을 이끌고 뒷산으로 대피했다.동시에 최영하가 아까 미리 파놓은 함정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하현 일행은 누구보다 철저했고 떠나면서 함정을 폭파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여기저기서 모인 신당류 고수들은 넘어지고 서로 얽혀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그 사이 하현 일행은 무사히 자취를 감추었다....아침 7시.항성 빅토리아항.이른 아침 항성 부둣가는 오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그래서 다행히도 검은색 요트 몇 척이 접안했을 때 주위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곧 호위대 사람들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던 것처럼 소리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요트 선실에 남은 사람은 하현, 하구봉, 최영하 세 사람뿐이었다.거꾸로 묶여 선실 바닥에 손을 향하고 있는 텐푸 쥬시로를 바라보던 하구봉의 얼굴에는 벅찬 감정이 끓어올랐다.어젯밤 지시를 받았을 때만 해도 정말로 사람들을 데리고 천 리를 건너 섬나라로 달려가 십 년 전 그 일의 주범을 데려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그러나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고 이제야 항도 하 씨 가문의 셋째 아들네도 하문준에게 어느 정도 해명을 했다고 볼 수 있다.적
하구봉은 눈을 반짝거리다가 고개를 들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하현, 내가 상석에 오르면 항성과 도성의 안정을 보장할 수 있어.”“노국이든 섬나라든 아무도 항성과 도성에 와서 함부로 할 수 없을 거야. 장담해.”“이렇게 된다면 내가 상석에 올라갈 기회도 있을까?”하구봉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하현이 입을 열었다.“도대체 당신의 이 용기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거지?”“하구천이 상석에 올랐다고 해도 그렇게는 안 될 거야.”하구봉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삐죽거렸다.“나와 하구천은 달라.”“하구천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모략을 짜는 거야!”“그는 모든 것이 자기 손아귀에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야. 그걸 위해선 외부의 힘을 빌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지!”“외부의 세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항도 하 씨 가문 내부에서 그를 반대하는 소리도 쉽게 억누를 수 있기 때문이야.”“그가 항도 하 씨 가문에 집권하면 항도 하 씨 가문뿐만 아니라 항성과 도성도 불안정해지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외부에서 빌려온 힘에는 결국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지.”“하지만 나의 이념은 하구천과는 달라.”“내가 만약 상석에 오른다면 섣불리 가문 전체를 장악하지 않고 천천히 차근차근 해나갈 생각이야.”“아마도 속도는 느리겠지만 기본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가문을 끌고 나갈 수가 있지...”하현이 웃으며 말했다.“생각도 좋고 방향성도 좋은데 당신은 운이 좀 좋지 않다고나 할까?”“그 길에서 하수진이 당신보다는 훨씬 빠르고 멀리 갈 수 있기 때문이야.”“문주가 지지하는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되지.”하구봉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하현, 그런 말 하면 재미없어...”“하수진도 나쁘지 않지만 결국 하수진은 딸이라는 걸 잊지 마.”“하수진이 잠시 상석에 오른다고 해도 문주의 미봉책에 불과해!”“문주께서 훗날 후사를 보지 않는 한.”“나중에 항도 하 씨 가문의 권력 이양에는 큰
순간 하구봉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그는 무심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고 그 자리에서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하, 하구천?!”최영하도 힐끔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틀림없이 하구천이 맞아.”“하구천이 여길 왜 왔어?”하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가 뭐 때문에 왔든 당신도 상석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당당히 하구천한테 말할 수 있겠군.”“잘 됐어. 당신의 그 혈기를 보여줘.”“만약 하구천이 상석에 오를 자격이 없다고 당신이 그에게 말한다면 아마 나도 당신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하구봉의 표정이 일순 결연하게 변하더니 잠시 후 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봐, 어서 가서 하 소주를 영접해!”하 소주라는 세 글자가 하구봉의 입에서 나오자 하현의 눈에서는 비아냥거리는 빛이 희미하게 스쳐 지나갔다.방금까지 하구봉은 하구천이 상석에 오를 자격이 못 된다는 둥 호기롭게 큰소리쳤다.하지만 하구천이라는 세 글자는 여전히 항도 하 씨 가문 2세들의 마음을 짓누르는 큰 바위였다.당장이라도 하구천을 칠 것 같았던 하구봉이 중요한 순간에 겁을 먹지 않았는가?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소 민망해하는 듯한 하구봉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비록 하구봉이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시치미를 뗐지만 하구천이 나타난 것을 보자 불안하게 조여오는 심정은 하구봉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어찌 되었건 하구봉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상석에 오르고 싶었고 하구천은 그럴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나쁘지 않은 전개였다.그러나 지금은 절대 아니다.하구봉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구봉아, 방금 천 리를 건너 섬나라에 가서 문주를 대신해 십 년 전 그 일의 주범을 생포했다는 소식을 들었어.”“항도 하 씨 가문의 젊은 세대 중 널 능가할 수 있는 공로는 없었을 거야.”“정말 기쁘게 생각해.”지방시 실크 양복을 입은 하구천은 화려한 옷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
여수혁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하현, 나 여수혁이야! 페낭 무맹 무맹주의 여 씨 가문 사람이라구!”“내 스승님은 남양 무맹 맹주야!”“나한테 당신 같은 사람은 목숨도 아니야!”“당신 지금 이런 행동한 거,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땅바닥에 널브러진 여수혁은 힘겨운 얼굴로 남은 힘을 끌어모아 내뱉었다.“퍽!”“저리 꺼져!”하현은 여수혁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그러자 여수혁은 벽에 몸을 부딪혔고 입에서는 봇물 터지듯 핏물이 솟구치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배후에 누가 있든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어.”하현은 앞으로 나가 손을 뻗어 여음채의 창백한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당신한테 기회를 주겠어. 잠시 문을 닫고 정리하면서 잘 생각해 봐.”“다음에도 또 이런 일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어오면 정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땐 인정사정없이 완전히 풍비박산을 만들어 버릴 테니까!”...궁지에 빠진 여음채와 여수혁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하현은 길을 막고 있는 페낭 무맹 제자들을 발로 걷어차고 원가령을 부축하며 양유훤의 차에 올라탔다.양유훤은 사람들을 양 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갔고 원가령을 응급실 침대에 눕힌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현, 오늘 밤 가령이 일로 귀찮게 해서 미안해.”“어떻게 된 건지 들어서 잘 알고 있어.”“당신이 없었다면 오늘 밤 가령이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하현이 병원 대기실 소파에 앉자 하이힐을 신은 양유훤이 그에게 다가와 생수 한 병을 건넸다.“당연한 일을 한 걸 가지고 뭐. 마침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 난 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오늘 밤 원가령의 일은 아마 십중팔구 당신을 노리고 한 짓일 거야.”“조심하는 게 좋아.”양유훤도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나 때문에 온 게 분명해.”“이번에 내가 천억 대금을 순조롭게 회수해서 적자에 허덕이
”퍽!”여수혁은 무맹 사람이고 남양 무맹의 맹주에게서 수련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 맹주였다.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했다.그래서 그가 하현과의 거리가 좁힌 지금 한 번에 몸을 날리자 무서운 기세가 펼쳐졌다.방금 양유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이 주먹으로 하현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대하 촌놈! 죽어!”여수혁은 섬뜩한 미소로 쏜살같이 덤벼들었다.이런 벼락같은 기세라면 소 한 마리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광경을 보고 여음채와 부일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수혁의 대담한 기세에 깜짝 놀란 것이다.“양유훤, 봤지?!”“이게 당신이 선택해야 할 남자의 모습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양 씨 가문 데릴사위가 되지!”“입으로만 떠드는 남자가 무슨 소용있어?”“여수혁 같은 고수를 만나면 바로 무릎을 꿇을 거야!”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띠며 하현을 주제넘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주변 구경꾼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왜 여수혁을 감히 도발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장내에 오직 양유훤과 하구봉만이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그들은 모두 하현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만약 여수혁 같은 사람 한 명도 수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하현은 헛수고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퍽퍽퍽퍽!”여수형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온몸을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다.동시에 하현은 그의 두 손을 짓밟아 부러뜨렸다.“이럴 수가?!”여음채와 부일민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여수혁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그리고 소위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지금은 눈가
그러자 여수혁의 옆에 있던 여음채가 얼굴을 가리고 노기를 띠며 말했다.“하 씨! 당신 뭐가 좋은지 나쁜지 몰라?”“양유훤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 준 거라고!”“좋게 끝났을 때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나중에 얼굴이 찢겨 봐야 아는 거야?”여음채의 마음속에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올랐다.하현은 계속 자신의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이빨이 부러지도록 만신창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콧대 높은 여음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이 도발하며 여수혁을 추궁하는 것을 보고 여음채는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그녀가 특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가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쉽게 살려는 자들이다.양유훤을 믿고 호랑이처럼 위세를 부릴 뿐만 아니라 아주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라니!여음채의 상식으로 어떻게 하현 같은 사람을 여수혁과 동급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운이 좋아서 양유훤의 치마폭에 싸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현은 벌써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좋은 게 좋은 거라고?”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잘난 척 기고만장한 여음채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여음채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렇지 않아? 똑똑히 들어. 양 씨 가문의 호가호위만 믿고 설치는 짓,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당신이 정말로 양유훤의 남자인 줄 알아? 당신이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도 된 줄 알아?”“당신이 정말로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해도 여자 치마폭에 싸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하겠어?”여음채는 엄청 호의를 베풀 듯이 호기롭게 훈계를 했다.“당신이 어떤 속셈이 있고 무슨 실력이 있든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하현은 여음채가 하는 말을 더는 듣기 귀찮아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닥쳐!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재잘재잘 너무 시끄럽군!”“뭐?!”여음채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입에 차가운 재갈을 물리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
남양 무맹 사람들이 나섰음에도 양유훤은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여수혁의 안색이 일그러졌다.그는 자신이 오늘 하현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 씨, 오늘은 내가 운이 나빴군. 하지만 아직 기회는 많아!”“능력이 있으면 어디 이 여자가 영원히 당신을 비호하도록 만들어 봐!”“이 여자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 얼마나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그는 하현을 노려보다 냉소를 흘리며 돌아섰다.여음채도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외지인 남자가 여자한테 기대서 큰소리치는 꼴이라니!세상은 좁아서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법이다.이 남자가 괴로워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거기 서!”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던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순간 하현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강하게 감돌았다.비록 양유훤이 나서서 자신을 비호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하현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현재 양유훤의 처지를 거의 파악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양유훤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하현이 한 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하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그들은 하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여수혁 같은 거물이 그를 벌하려는 걸 양유훤이 겨우 구해줬는데 뭘 또 바란단 말인가?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여수혁은 발걸음을 뚝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오늘은 운이 나쁜 걸로 친다고 했는데 뭘 또 바라는 거야?”하현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정말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돈을 받고도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은 권세로 사람들을 자꾸만 괴롭히려고 해.”“날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만들려고 했어.”“이 모든 것에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