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퍽퍽!”건물 구석에서 이따금씩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적의 습격을 눈치챈 신당류들이 반응을 하다가 목숨을 잃는 소리였다.항도 하 씨 가문의 가차없는 습격에 신당류는 큰 낭패를 보았다.주변에 건물을 지키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하현 일행은 현대적인 건물들을 스쳐 지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는 오래된 건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오래된 비석 하나가 앞에 나타났고 그 위에는 섬나라 문자가 번잡하게 새겨져 있었다.순간 비석 양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섬나라 검객이 무릎에 가로놓고 있던 장도를 들어 잠에서 번쩍 깨어났다.“누구야?!”“웬 놈들이냐?”사납게 생긴 두 명의 검객은 본능적으로 일어나 굳은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그들이 본격적으로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하현이 한 걸음 나아가 오른손으로 그들을 후려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병왕급 신당류 검객 두 명이 그대로 날아와 몸을 착지하는 순간 이미 숨을 헐떡거리기 시작했다.오른손으로 뺨을 후려갈겼을 뿐인데 두 병왕급의 존재를 무력화시켜 버렸다.하현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방이었다.뒤에 있던 하구봉의 눈동자가 금세 움츠러들었다.하지만 하현은 멈추지 않고 하구봉 일행들과 함께 계속 속도를 높였다.곧 전방에서 소리를 듣고 온 신당류 검객 십여 명이 나타났다.그러나 신당류 검객들이 허리춤에 찬 장도를 꺼내들기도 전에 하현의 몸이 이미 그들을 스쳐 지나갔고 낭랑하고 찰진 소리와 함께 신당류 검객들의 몸이 하나둘씩 날아올랐다.하현의 전진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왜냐하면 그의 목적은 뚜렷했기 때문이다.이의평을 찾는 것.어쨌든 지금 덤벼드는 사람들은 신당류의 핵심 인물들이 아니었다.기껏해야 텐푸 쥬시로가 키우는 사람들일 뿐이다.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가능한 한 빨리 사람을 찾아내야 했다.혹여 상대방이 도망이라도 가게 된다면 다시는 그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게다가 이곳은 텐푸 쥬시로의 본거지이다.일
”텐푸 쥬시로는 잘 있어?”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나가 죽으라고 해!”“병신 같은 놈! 당신도 부담없이 당신 스승 언급해도 돼!”무사복을 입은 사내의 안색이 급변했다.순간 그는 하현의 얼굴을 똑똑히 본 듯 갑자기 얼굴빛이 일그러졌다.“당신이 하현?!”“어서 해치워!”하현의 신원을 알아본 순간 무사복을 입은 사내는 쏜살같이 명령을 내렸다.그러나 안타깝게도 명령을 내리기엔 이미 늦었다.하현은 몸을 움직여 군중 속으로 뛰어들었다.여덟 명의 병왕급 검객들이 소리를 지르며 허리춤에 찬 섬나라 장도를 꺼내들려고 했다.그러나 그들이 허리춤에 손을 대기도 전에 온몸이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그들의 입과 코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고 순간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무사복을 입은 남자는 낯빛이 어두워졌고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려 물러서려고 했지만 그의 동작은 이미 너무 늦었다.하현은 몸을 움직여 그의 앞에 다가와 손바닥으로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무사복을 입은 남자의 머리가 땅에 세게 부딪혔고 순간 남자는 두 눈이 뒤집힌 채 의식을 잃었다.하구봉은 이 장면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그가 멍하니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는 동안 하현은 이미 앞으로 나가 문을 발로 걷어찼다.주위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불빛에 녹아들어 순식간에 하현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해 왔다.이를 본 하구봉은 손을 크게 흔들었고 총을 들어 섬나라의 적진을 향해 총탄을 쏟아부었다.그러나 빗발치는 총탄도 섬나라 검객들에겐 아무 소용없었다.수포로 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주위의 분위기를 더 살벌하게 만들어 버렸다.“이 자식들!”“섬나라 검객들이다!”하구봉은 낯빛이 일그러졌고 총알을 다시 장전하는 그의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그도 전쟁터에 나가 본 사람이다.강한 상대를 만나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그였으나 눈앞의 기괴한 광경은 그를 긴장시키고 위기감을 고조시키기 충분했다.그제야 하구봉은
”어디서 수작이야!”이 광경을 본 하현은 담담하게 미소 짓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곧이어 하구봉이 들고 있던 총을 빼앗은 뒤 안전장치를 풀고 망설임 없이 머리 위로 방아쇠를 당겼다.“탕탕탕!”하현의 머리 위에서 총탄이 사방으로 날아올랐다.그의 머리 위에서 몰래 모습을 드러내던 섬나라 검객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이 굳어졌다.이윽고 그들의 미간에서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리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사방에서 피가 튀는 사이 하현은 총의 방향을 바꾸어 이번에는 자신의 바로 뒤쪽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뒤편에서 또 다른 검객들이 소리를 지르며 픽픽 쓰러졌다.섬나라 검객들이 숨 쉴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하현은 계속해서 방향을 바꾸어 가며 총구를 돌렸고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섬나라 검객들이 픽픽 쓰러졌다.“탕!”마지막 한 발이 정면을 향해 돌진했다.섬나라 검객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신출귀몰하던 섬나라 검객들은 순식간에 하현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모든 검객을 소탕한 후 하현은 총을 들어 하구봉의 손에 다시 던지며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쾅!”하현이 발길질을 하며 문을 열었다.그러자 마치 궁정과도 같은 내부가 눈앞에 펼쳐졌다.“솩!”칼날이 번쩍하며 눈앞에서 나무 문이 두 동강이 났다.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텐푸 쥬시로는 섬나라 장도를 들고 서서 하현 일행을 맞았다.“제법 대범하군. 감히 우리 섬나라 신당류 본산을 쳐들어오다니!”“죽고 싶어?”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텐푸 쥬시로, 내가 말했잖아. 당신 찾으러 오겠다고.”“하현?!”텐푸 쥬시로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러나 그는 이내 덤덤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멀리서 날 보러 오셨는데 마중을 못 나가서 미안하게 됐어.”“당신이 미리 말만 해 줬으면 우리 부하들한테 융숭한 대접을 하라고 했을 텐데 말이야.”“그럼 지금처럼 미안하지도
순간 하현의 시야에 살벌한 기운이 가득 들어왔다.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칼은 마치 지옥에서 마귀가 튀어나온 것처럼 섬뜩한 기운을 몰고 왔다.신당류 검객은 역시 만만찮은 상대는 아니었다.텐푸 쥬시로는 확실히 전신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하현은 손가락을 튕기며 본능적으로 재빠르게 뒤로 물러섰다.“촹!”양측의 공세가 부딪히자 낭랑하고 맑은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파도처럼 음파를 타고 칼소리가 파동을 일으켰고 하현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비록 하현은 텐푸 쥬시로를 과소평가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보여준 신당류의 실력은 확실히 지난번보다 강한 것 같았다.지난번 패배 이후 분명 텐푸 쥬시로는 뼈를 깎는 아픔으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것 같았다.텐푸 쥬시로가 오늘 보여준 실력은 확실히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었다.하현은 땅바닥에 떨어진 섬나라 장도를 집어 들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텐푸 쥬시로, 당신이 최근에 열심히 연마를 한 것 같지만 나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어.”전생의 신이든 최고의 영웅이든 하현의 눈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그래?”“그럼 어디 한번 해 보시지!”텐푸 쥬시로의 안색이 일순 굳어졌다.오랫동안 준비한 방법이 허사가 될 줄은 몰랐다.다만 상황이 이쯤 되자 텐푸 쥬시로도 더 이상 자신이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현이 하구봉과 함께 이곳에 온 것은 이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의미한다.텐퓨 주시로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합을 넣듯 가벼운 추임새를 넣은 뒤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다가 갑자기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했다.“촹촹촹!”이번에는 텐푸 쥬시로의 동작이 아까보다 조금 빨라졌다.그는 단숨에 섬나라 장도를 휘둘렀다.칼날에 서린 매서운 기운이 사방으로 흩어졌다.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처절한 광경을 예고라도 하는 듯 맹렬하게 번쩍였다.하현은 오른손을 들어 섬나라 장도를 휘둘러 텐푸 쥬시로의 칼을 단번에 막아냈다.하현은 결코 서두르지 않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군. 고수는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아.”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고 순간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손에 든 섬나라 장도를 휘둘렀다.천하의 무공은 그 무공이 강하면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이 없고 빠르면 부수지 못하는 것이 없다!텐푸 쥬시로의 번잡스러운 칼놀림과 달리 하현의 칼놀림은 빠르고 매서웠다.단번에 허공을 가르는 하현의 칼이 순식간에 텐푸 쥬시로의 눈앞에서 칼춤을 추는 듯했다.자신만만해하던 텐푸 쥬시로는 순식간에 안색이 변했다.하현의 칼놀림이 이렇게 화려하고 매서울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순식간에 식은땀이 텐푸 쥬시로의 온몸을 적셨고 그는 소리를 지르며 하현의 칼을 막기 바빴다.“촹!”하현이 휘두르는 섬나라 장도의 칼날이 여기저기 무지갯빛 부채살을 수놓았다.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린 텐푸 쥬시로는 더 이상 하현의 매서운 칼놀림을 막을 수 없었는지 얼빠진 얼굴로 뒤로 물러섰다.도저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아무리 생각해도 하현의 칼놀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단순한 칼놀림이 아니었다.산과 바다를 뒤엎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집념이 가득한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칼날에 묻어 있는 것 같았다.그 어떤 독기도, 집념도 하현 앞에서는 막아설 재간이 없을 듯했다.텐푸 쥬시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하현이 항성에서 보여 주었던 실력은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허공을 가르는 하현의 칼놀림은 그야말로 전설 속의 무아지경 그 이상이었다.“말도 안 돼!”“당신이 아무리 모태부터 수련을 했어도 이 지경에 이르진 못했을 거야!”“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섬나라 검객들이 문을 내닫고 수련에 온 힘을 기울였어.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텐푸 쥬시로가 소리쳤다.말할 수 없는 압박감과 죽음의 기운이 몰려오는 것을 감지한 것이다.순간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에 든 섬나라 장도를 휘두르며 쏜살같이 뒤로 물러났다.“촹!”칼날
”뭐? 당신이 이의평이라고?”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며 얼굴 가득 험악한 기색을 떠올렸다.“당신은 섬나라 신당류 종주이자 일대의 검객이야. 섬나라 10대 검객 중 하나라고!”“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비명횡사'의 우두머리일 수가 있어?”텐푸 쥬시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만약 내가 이의평 본인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당신들이 온 목적을 단번에 알아챘겠어?”이 말을 듣고 하현은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방금 어렴풋이 눈치채긴 했었지만 텐푸 쥬시로가 자신을 이의평이라고 밝히자 여전히 약간의 의아함이 남았던 것이다.“좋아. 당신이 이의평이라면 내가 묻는 말에 답할 수 있겠군.”하구봉은 날카로운 눈빛에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십 년 전 문주의 아들을 죽인 사람이 당신이야?”텐푸 쥬시로는 눈꺼풀을 살짝 움찔거리며 입을 열었다.“당신 하구봉, 맞지?”“내가 범인이길 바라? 아니면 아니길 바라?”“탕!”하구봉이 손을 들어 텐푸 쥬시로의 어깨에 총을 쐈다.선혈이 흩날리고 텐푸 쥬시로는 죽을 듯이 끙끙거렸지만 비명은 없었다.텐푸 쥬시로는 당연히 피할 수 있었다.그러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하현은 손을 쓰지 않았지만 텐푸 쥬시로는 잘 알고 있었다.만약 자신이 반항한다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것을.텐푸 쥬시로가 자신의 정체를 폭로한 이상 그는 자신이 쉽게 죽고 싶지 않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었다.비록 조그마한 기회라도 있다면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생명줄을 잡고 싶었다.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은 것이다.이런 텐푸 쥬시로의 모습을 보며 하현은 하구봉의 동작을 말리지 않고 그저 담담히 텐푸 쥬시로의 표정을 지켜보며 일생일대의 검객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예의주시하고 있었다.하구봉은 또 한 번 방아쇠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그리고 나서 몇 걸음 앞으로 나가 텐푸 쥬시로의 이마에 총부리를 겨누며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텐푸 쥬시로, 허튼수작은
텐푸 쥬시로의 말에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하구봉은 얼른 정신을 다잡았다.“개자식! 배후가 누군지 어떻게 모를 수 있어?”“자신이 이의평이라고 실토했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고?”“이 자식!”“퍽!”하구봉이 발작에 가까운 포효를 채 끝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텐푸 쥬시로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후려쳐 일생일대의 검객을 그 자리에서 기절시켜 버렸다.손을 거둬들이며 하현은 휴지를 꺼내 손가락을 닦았다.“지금은 그런 걸 물을 때가 아니야.”“항성에 돌아가면 얼마든지 추궁할 수 있어.”“그가 당신과 이런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는 건 단지 시간을 끌기 위한 수작에 불과해.”“가자!”하현의 명령과 함께 하구봉도 냉정도 되찾았다.텐푸 쥬시로가 불러들인 신당류 고수들이 들이닥쳐 그들을 포위하기 전에 하현 일행은 호위대들을 이끌고 뒷산으로 대피했다.동시에 최영하가 아까 미리 파놓은 함정이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하현 일행은 누구보다 철저했고 떠나면서 함정을 폭파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여기저기서 모인 신당류 고수들은 넘어지고 서로 얽혀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그 사이 하현 일행은 무사히 자취를 감추었다....아침 7시.항성 빅토리아항.이른 아침 항성 부둣가는 오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그래서 다행히도 검은색 요트 몇 척이 접안했을 때 주위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곧 호위대 사람들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던 것처럼 소리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요트 선실에 남은 사람은 하현, 하구봉, 최영하 세 사람뿐이었다.거꾸로 묶여 선실 바닥에 손을 향하고 있는 텐푸 쥬시로를 바라보던 하구봉의 얼굴에는 벅찬 감정이 끓어올랐다.어젯밤 지시를 받았을 때만 해도 정말로 사람들을 데리고 천 리를 건너 섬나라로 달려가 십 년 전 그 일의 주범을 데려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그러나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고 이제야 항도 하 씨 가문의 셋째 아들네도 하문준에게 어느 정도 해명을 했다고 볼 수 있다.적
하구봉은 눈을 반짝거리다가 고개를 들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하현, 내가 상석에 오르면 항성과 도성의 안정을 보장할 수 있어.”“노국이든 섬나라든 아무도 항성과 도성에 와서 함부로 할 수 없을 거야. 장담해.”“이렇게 된다면 내가 상석에 올라갈 기회도 있을까?”하구봉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하현이 입을 열었다.“도대체 당신의 이 용기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거지?”“하구천이 상석에 올랐다고 해도 그렇게는 안 될 거야.”하구봉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삐죽거렸다.“나와 하구천은 달라.”“하구천이 가장 좋아하는 일은 모략을 짜는 거야!”“그는 모든 것이 자기 손아귀에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야. 그걸 위해선 외부의 힘을 빌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지!”“외부의 세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항도 하 씨 가문 내부에서 그를 반대하는 소리도 쉽게 억누를 수 있기 때문이야.”“그가 항도 하 씨 가문에 집권하면 항도 하 씨 가문뿐만 아니라 항성과 도성도 불안정해지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외부에서 빌려온 힘에는 결국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지.”“하지만 나의 이념은 하구천과는 달라.”“내가 만약 상석에 오른다면 섣불리 가문 전체를 장악하지 않고 천천히 차근차근 해나갈 생각이야.”“아마도 속도는 느리겠지만 기본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가문을 끌고 나갈 수가 있지...”하현이 웃으며 말했다.“생각도 좋고 방향성도 좋은데 당신은 운이 좀 좋지 않다고나 할까?”“그 길에서 하수진이 당신보다는 훨씬 빠르고 멀리 갈 수 있기 때문이야.”“문주가 지지하는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되지.”하구봉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하현, 그런 말 하면 재미없어...”“하수진도 나쁘지 않지만 결국 하수진은 딸이라는 걸 잊지 마.”“하수진이 잠시 상석에 오른다고 해도 문주의 미봉책에 불과해!”“문주께서 훗날 후사를 보지 않는 한.”“나중에 항도 하 씨 가문의 권력 이양에는 큰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