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문성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이시카와 유키코, 사람을 잘못 보신 거 아닙니까?”“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의 소주는 하구천이지 하현이 아닙니다.”이 말의 의미는 간단했다.하현은 항도 하 씨 사람이 아니니 이렇게 공손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하문성은 이시카와 다이치의 곁으로 다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이시카와 다이치, 어제 일 나도 들었어요.”“별일도 아니고 이미 다 지난 일이니 이제 일어나세요.”말을 하면서 그는 손을 뻗어 이시카와 다이치를 부축해 일으키려고 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시카와 다이치는 그를 무시한 채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자신의 뺨을 계속 때렸다.“하 회장님의 배려에 감사하지만 우리 이시카와 가문에서는 자신이 잘못했다면 인정해야 하는 규율이 있습니다.”“저는 오늘 하현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왔습니다.”이시카와 유키코는 하문성의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현을 향해 몸을 숙였다.그녀는 말로는 분명히 말하지 않았지만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보여준 셈이었다.이를 본 하문성의 얼굴에 약간 언짢은 빛이 스쳤다.이시카와 유키코가 하현에게 이렇게 고개를 숙일 정도로 큰일이 일어난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머리를 숙이고 있는 이시카와 유키코의 모습을 계속 보고 싶지는 않았다.그러자 하문성은 하수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수진아,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 해. 맺힌 채로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는 옛말이 있어. 용서할 것은 용서해야 해.”“이시카와 대표가 굉장히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으니 이제 그만 됐다고 말씀드려.”하문성의 입장에서는 이시카와 유키코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현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모습을 오래 보이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그는 의도적으로 이런 국면을 전환해 보려고 애를 썼다.하수진은 하문성의 말을 무시한 채 하현을 보고만 있었다.오늘 이 일은 하현이 결정해야만 하는 일인 것 같았다.“이시카와 다이치 도련님이 어떻게 무릎을 다
하문성과 이사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누가 봐도 하현이 그들의 위에서 군림하는 광경이었다.하수진이 데려온 고문이란 작자가 이시카와 집안사람들을 개처럼 취급하며 무릎을 꿇리고 짓밟아 버렸다.이 광경을 보고 앞으로 항도 재단에서 누가 감히 하수진에게 반항하겠는가?앞으로 하수진이 집행총재로서 자리를 굳건히 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당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사람답게 살게.”이시카와 다이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이시카와 유키코가 그에게 슬쩍 눈길을 던지며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하현이 오빠를 용서해 주지 않았다면 아마 바다에 물고기 밥이 되었을 거야.”“고맙게 생각해!”이시카와 유키코가 단호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하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적잖이 실망한 얼굴이었다.섬나라 사람들은 정말 잔인하다.적에게 잔인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잔인했다.하현은 옅은 미소와 함께 흥미로운 시선으로 이시카와 유키코를 쳐다보았다.동시에 섬나라 사람들에게는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만약 자신이 이시카와 유키코를 제압하지 않았다면 아마 오늘 여기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손목이 부러진 사람은 이시카와 다이치가 아니라 자신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이번에 꽤나 먼 길을 온 이시카와 유키코가 이렇게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니 앞으로 이시카와 가문을 괴롭힐 명분은 사라지게 되었다.말하자면 이시카와 유키코가 보인 이 수법은 두 발 전진을 위한 한 발 후퇴와도 같은 것이었다.이렇게 함으로써 모든 것은 그녀가 마음먹은 대로 순조롭게 진행된 셈이었다.그래서 지금 공손해 보이는 이시카와 유키코를 눈앞에 두고도 하현은 조금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이다.결국 섬나라 민족이 이렇다.굽신거리고 찌질할 때는 한없이 굽신거리고 찌질해 보인다.하지만 그들은 독사 같아서 어두운 구석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어나와 딩신을 모질게 물어뜯을지도 모른다.“하현, 이건 대하 권역에서 우리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계약서에 딸려 오는 이익만 눈에 보였겠지만 하현은 지금 이시카와 유키코가 계약서 이면에 숨겨 놓은 음흉한 속셈을 간파한 것이다.말인즉슨 하현이 대리점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순간 그는 항도 재단, 나아가서는 항도 하 씨 가문의 눈엣가시로 전락할 것임이 틀림없다.그다음의 일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자신을 죽이기 전까진 끝나지 않을 싸움으로 번지게 될 것이다.이시카와 유키코는 하현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마찬가지로 항도 하 씨 가문은 5대 문벌 중 하나로서 실로 어마어마한, 감히 예측할 수도 없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이런 양측이 정말 쉬지 않고 싸우면 그 싸움은 양측 간의 문제가 아니라 대하 상류층에까지 번질 것이다.3년 동안 독점 계약이라는 미끼를 던져 놓고 하현과 항도 하 씨 가문 둘 다 죽여 버리려는 속셈이었다.대하를 혼란에 빠뜨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섬나라 사람들에게 이것은 손해 볼 것 없는 안정적인 거래였다.잠시 생각에 잠겼던 하현은 손을 내밀어 이시카와 유키코의 옥같이 아름다운 턱을 치켜올리고는 입을 열었다.“이시카와 아가씨, 3년 독점 계약으로는 부족해.”“두 가지 조건이 더 있어.”잠시 어리둥절해하던 이시카와 유키코는 이내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요구하는 건 뭐든지 우리 이시카와 가문에서 들어줄게요.”“그래, 좋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첫째, 3년 동안 대하 지역의 독점 계약으로는 부족해. 난 당신네 섬나라 본토를 포함한 극동 지역의 독점 계약도 원해.”이시카와 유키코는 흠칫 놀랐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좋아요. 들어드리죠.”“둘째, 3년 동안 극동 지역을 제외한 전 세계 각지에서 우리도 이시카와 그룹의 모든 물건을 팔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공정하게 경쟁하자는 거지.”이시카와 유키코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잠자코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이시카와 유키코는 원하는 바를 얻기
하수진이 독점 판권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적음으로써 이시카와 그룹 사태가 일단락되었다.또한 이것은 하수진이 항도 재단에서, 심지어 항도 하 씨 가문에서 공식적으로 상위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했다.뒤도 돌아보지 않고 꽁무니를 내빼는 이시카와 유키코 일행을 지켜보던 하현은 냉랭한 표정으로 맹효남에게 시선을 돌렸다.맹효남은 흠칫 놀라며 뒷걸음질쳤고 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맹 부장님, 어제 우리가 했던 약속 기억하시죠?”“내가 오늘 이시카와 그룹과의 계약을 따내면 당신은 당장 짐을 싸서 물러나야 한다는 약속 말이에요.”“이제 계약은 성사되었는데 부장님은 언제 짐을 싸실 생각입니까?”하현의 말을 들은 임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하현의 시선을 피하듯 서로를 쳐다보았다.이 시점에서 하현이 그 일을 언급할 줄은 몰랐다.맹효남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신음하듯 더듬거렸다.“나, 내, 내가...”“나 뭐요?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죠!”순간 하문성이 세상 정의롭고 늠름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맹효남, 하 고문과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지. 어서 나가.”“여러 해 동안 우리 항도 재단을 위해 일해 온 노고를 생각해 퇴직금으로 1년 치 연봉을 줄 테니 앞으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여기 어서 돈 줘서 보내!”하문성은 정의롭고 호방한 듯이 행동했지만 사실은 은밀히 맹효남을 감싸 준 것이었다.어찌 되었건 하수진과 하현이 이시카와 그룹의 대리점 계약을 손에 넣었다.게다가 조금 이익이 남는 게 아닌 막대한 이윤을 볼 수 있는 계약이었다.이런 상황에서 하문성도 함부로 하수진의 미움을 사는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쓸데없이 다른 사람들의 미움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하문성의 말이 떨어지자 비서가 맹효남을 데려가려고 다가왔다.하수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히려 하현이 앞으로 나서며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잠깐만요, 하 회장님.”“회장님이 회장님의 오랜 최측근의 아들
”당신 정말!”하문성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결국 차가운 표정으로 하현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 자리를 떠났다.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해서 하문성은 항도 재단에서 절대적인 신망을 잃게 되었다.하수진이 그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개자식!”빅토리아 항에 있는 오피스텔로 돌아온 후에도 하문성은 완전히 냉정해질 수 없었다.그의 손에 든 찻잔이 끊임없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그의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를 말해 주었다.그의 시선은 맞은편에 앉은 하구천에게로 향했다.“구천아,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함부로 넷째네를 건드리지 말라고. 특히 당난영은 주의해야 할 인물이야. 절대 함부로 건드려선 안 돼.”“그 여자는 문주의 가장 큰 역린이라고.”“무슨 일이 있어도 건드리지 말아야 됐어!”“그런데 넌 어땠니? 그 여자를 건드렸을 뿐만 아니라 넷째를 격노하게 했고 지금 모든 수단을 동원해 수양딸을 상석에 앉혀 너와 경합하게 만들었어!”“이제 어떻게 할 거야?”“노부인 생신날까지 이제 닷새 남았어.”“그런데 지금 이런 일이 생겼으니 원.”“까딱 잘못하다간 항도 재단이 그 계집애의 손에 넘어갈 판이야...”“이시카와 그룹이 치욕스럽게 머리를 조아리며 하수진과 독점 계약을 했다는 게 관건이야.”“하수진이 독점 계약권을 손에 넣었으니 이제 항도 재단에서 최고 자리에 오르는 건 시간문제야...”하문성은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되새겨 보았다.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의아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움이 앞섰다.하현과 하수진이 별다른 공도 들이지 않고 손쉽게 그가 놓은 함정에서 벗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항도 재단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보 후퇴하는 능수능란한 수를 썼다는 것이다.이렇게 계속 끌려가다간 항도 재단의 모든 발언권을 그 천한 하수진에게 다 뺏길지도 모른다.그것은 하문성으로서는 정말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하백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하문성을 바라보다가 잠시 후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빠, 이번 일이 모두 나와 구천이 잘못이라는 거야?”“오빠한테 정확한 자료를 제공하지 못해서 우리가 이렇게 큰 손해를 봤다는 거냐고?”하문성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백진아, 내 말은 그게 아니야.”“정확한 자료가 있었다면 우리가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말하는 거야.”“이제 와서 누구를 탓해 봐야 무슨 소용이겠어!”“하 씨 그놈이 음흉하고 악랄한 것을 탓해야 하고 하수진 그 계집애가 교활한 걸 탓해야지. 그 둘이 손을 잡고 우릴 맞설 줄은 정말 몰랐어!”“아버지, 이번 일은 순전히 제 잘못이에요.”침묵하고 있던 하구천이 마침내 입을 열었고 그는 하문성 앞으로 다가가 몸을 굽혔다.“제가 하현을 얕잡아 봤어요.”“난 하수진 같은 애는 단칼이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여자가 항도 재단에 들어간들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고 방심했던 거예요.”“그런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어요.”“하현이든 하수진이든 모두 쉽지 않은 상대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아요.”“아버지가 지금 화를 내시는 건 이해하지만 이런 일로 아버지와 고모 사이에 갈등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모든 잘못은 사실 하현과 하수진에게 있어요.”“나한테도 물론 있구요.”“하지만 지금 급선무는 서로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기세가 오른 하수진을 꺾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거예요.”“하수진의 명성에 기세까지 갖춘다면 앞날은 정말 장담할 수가 없어요. 할머니의 생신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두려워요.”하구천의 말을 듣고 하문성과 하백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들에게 지금 이런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일은 노부인의 생신날 하구천이 정식으로 후계자 자리를 꿰차는 일이었다.하지만 하수진의 부상이 하구천의 지위를 무섭게 위협하고 있었다.이것이야말로 그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두려운 일이었다.하문성은 항성에서 가장 잘
이걸윤을 돌아오게 하려고 하구천이 음모를 꾸미고 있던 그때 하현은 항성에서 걸려온 전화에 낮잠을 깼다.핸드폰에 뜬 번호를 보고 하현은 몹시 의아해했다.도박왕 화풍성 이 늙은 여우가 예전부터 정식으로 대구 엔터테인먼트의 지분을 하현의 명의로 넘기겠다고 했지만 이 일은 결국 실행되지 않았었다.게다가 하현과 화 씨 집안의 관계는 이미 많이 가까워져서 모두 같은 진영 사람이라 생각한 탓인지 자연스럽게 흐지부지된 것이었다.그런데 지금 화풍성이 하현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어찌 되었건 늙은 여우 같은 화풍성이 아무 일도 없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 리는 만무했다.잠시 고민한 후 핸드폰이 두 번째로 울렸을 때 하현은 비로소 통화 버튼을 눌렀다.전화기 맞은편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이 눈치챌까 조심스러웠는지 화풍성은 얼른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자네, 왜 이렇게 한동안 연락이 뜸했나?”“설마 항성에서 너무 재미있게 노느라 도성에 처박혀 있는 나 같은 늙은이 잊은 건 아니지? 그렇게 재미있는가?”하현은 차분하게 말했다.“어르신, 그럴리가요?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전화기 맞은편에서 화풍성은 멋쩍은 듯 침을 삼켰다가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아니야, 별일 없어.”“별일 없다구요?”하현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별일 없는데 어르신이 이렇게 전화를 하신다구요? 어르신은 제가 도성에 다시는 오지 않았으면 하시는군요, 그렇죠?”화풍성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 별건 아닌데. 자네한테 주려던 지분을 손님한테 잃을 것 같아서 말이야.”“그렇지만 자네 걱정하지 말게. 내가 이미 다 손을 써 두었네. 이 까다로운 손님을 해결할 방법을 다 생각해 뒀어!”“어차피 우리 같이 카지노업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일을 두려워하겠나, 안 그래?”화풍성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하지만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화풍성의 목소리에는 속절없이 당한 것에 대해 난감해하는 빛이 역력했다.“우리 화 씨 집안이 도성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카지노를 운영해 도박왕이라고 불렸는데 노년에 이렇게 망신을 당할 줄은 몰랐어...”“하지만 자네 걱정하지 마. 대구 엔터테인먼트 지분을 뺏기더라도 다른 도박장으로 꼭 보상해 주겠네.”“자네가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이니까.”화풍성의 말 속에는 자존심을 세우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비록 구원의 손길을 구하고는 있었지만 집안의 자존심도 지키려고 무척 애쓰는 모습이었다.하현은 헛웃음이 났으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얼굴색을 가다듬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어르신. 더 이상 농담은 집어치우겠습니다.”“자, 솔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지금 화 씨 집안과 싸우는 상대는 매우 까다로운 사람인 거죠?”“확실히 까다롭긴 하지만 뭐 내 손으로 통제할 수는 있지...”화풍성은 잠시 침묵한 뒤 어렵게 말을 내뱉었다.하지만 그는 하현의 대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좋아, 그래. 솔직히 말해서 너무 까다로워.”“상대방이 네 번 왔는데 올 때마다 딱 세 판만 해. 세 판 중에 두 판은 완승. 21점으로 완벽한 블랙잭이었지!”“나흘 연속으로 우린 졌어.”“첫날과 둘째 날은 우리가 보통 실력의 사람을 내보내서 졌으니 뭐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지.”“하지만 3일 차, 4일 차에는 우리도 진짜 고수를 내보냈거든. 그런데도 졌어...”이 말을 했을 때 화풍성은 자신도 모르게 어이가 없는지 말꼬리를 흐렸다.당당했던 카지노 집안이 상대방에게 네 번이나 연달아 지다니!이 일은 정말 입 밖에 내기도 창피했다.사실 이 일은 벌써부터 며칠 동안 도성을 떠들썩하게 했다.하지만 하현이 계속 항성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성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줄 몰랐을 뿐이다.하현은 핸드폰을 쥐고 차를 한 잔 따라 마신 뒤 침착하게 말했다.“상대방이 나흘 연달아 카지노
진홍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눈꺼풀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파르르 떨렸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자신이 한없이 무시했던 데릴사위가 이렇게 강한 자였다니?!그리고 자신이 의지했었던 남자가 이렇게 나약하게 무릎을 꿇고 얼굴이 부어터지도록 만신창이가 되다니!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복잡한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럽던 진홍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그럴 리가 없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일어나! 모르는 건 죄가 아니야!”장천중과 장용호의 태도를 보고 잠자코 있던 하현이 결국 나서서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다만 앞으로는 꼭 기억해야 해. 우리가 풍수술을 배우는 것은 겉치레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허세를 부리려고 하는 것도 아니야.”만약 오늘 자신이 마침 이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장용호의 서툰 솜씨에 황보정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장용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 꼭 명심할게요! 우리 할아버지에게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지금부터 그 말을 꼭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하현은 무릎을 꿇고 있는 장용호에겐 더 이상 눈길도 주지 않고 장천중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화자결은 확실히 황보정의 체내에 있는 나쁜 기운과 사악한 기운을 없앨 수 있습니다.”“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기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은 될지 모르나 그녀의 두 눈을 뜨게 할 수는 없습니다!”“작은 배가 안정적으로 항해할 수 있게 하려면 파도도 바람도 잔잔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작은 배의 능력이 충분히 좋아야 멀리 항해할 수 있는 이치와 똑같습니다.”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하현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말을 이었다.“그래서 화자결은 황보정의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아! 화자결로도 해결 못 하는 건가?”장천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난 하 대사의 방법으로 하면 황보정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할 수 있을
순간 장천중의 얼굴엔 제대로 영글지 못한 모자란 손자를 향한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그 후로도 그는 장용호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어느새 장용호은 피범벅이 된 채 얼굴이 볼썽사납게 부풀어 올랐다.장촌중은 장용호의 멱살을 잡고 바로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무릎을 꿇었다.“대사, 용서해 주게.”“내가 잘못 가르쳤네.”“내가 이놈에게 화자결을 알려줬어!”“배움이 부족한 이놈이 자네 앞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용서해 주게.”“제발 한 번만 봐줘!”대사?!황보동이든 장용호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장천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진홍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라 불리며 대하 풍수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만세당 장천중이 하현을 대사라 칭하며 무릎을 꿇을 줄은!이 소식이 금정 전체에 퍼진다면 아마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이놈아, 잘 들어!”“화자결은 하 대사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신 거야!”이때 장천중은 손을 들어 또다시 장용호의 얼굴을 내리쳤다.장용호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하현은 내 스승일 뿐만 아니라 네 조상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야!”“넌 지금 조상님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보인 거야!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한 거라고! 얼른 용서를 빌어!”장천중은 배움이 모자란 손자가 황보정의 몸을 살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손자가 목숨을 잃을까 봐 얼른 달려온 것이다.역시나 모자란 자신의 손자는 잘난 척 기고만장해서는 도리어 하현에게 비법을 도둑질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본 장천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하무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이런 행동을 하면 만세당의 그 수많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모르
황보정은 온몸이 약간 회복된 듯 보였으나 갑자기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약간의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용호는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하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자세를 보였다.“자,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쓰겠습니다.”“화자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거기, 당신은 좀 나가주지. 내가 하는 방법을 몰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이건 우리 만세당의 독점술이나 마찬가지니까!”“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 배우면 곤란하지!”말을 마친 뒤 장용호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하현이 떠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독점술?”하현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장천중이 알려줬어?”“개자식! 어디서 함부로 내 할아버지 함자를 입에 올리는 거야?”“게다가 우리 독점술을 누가 알려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장용호는 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다.“아무튼 간에 난 당신 같은 나쁜 놈은 보고 싶지 않아!”“여기서 당장 꺼져 주지 않으면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진홍민도 나서서 장용호의 말을 거들었다.“하현, 당신은 그냥 나쁜 사기꾼일 뿐이야!”“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면 장용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거야!”“왜냐하면 당신이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을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일이니까!”“당신 같은 사람이 못 할 짓이 뭐야?”간민효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가로저으며 그녀를 만류했고 이어 장용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기운을 풀어주려고 마지막 한 수로 침을 놓을 때 꼭 명심해. 반드시 주사 광물을 찍어야 해.”“풀어진 기운은 몸 안에 유입되어야 해. 공중에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황보정은 숨이 막혀서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오
장용호는 진홍민의 눈빛을 알아듣고 헛기침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다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요즘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누군가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이 집복당을 무료로 준다고요, 사실입니까?”황보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진홍민을 쳐다본 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신이 내 손녀를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이 집복당을 가져도 돼.”“게다가 우리 황보 집안을 잇게 되는 거야.”황보동의 말을 듣고 진홍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용호, 걱정하지 마. 우리 이모할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야!”“그래도 당신이 안심을 못 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보증할게!”“퍽!”황보동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서가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장용호 앞에 내던지듯 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준비해 두고 있었어.”“누구라도 내 손녀를 구해 낸다면 바로 이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어.”진홍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계약서를 얼른 낚아채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다.“맞아. 이 계약서는 원본이고 유효해. 양측이 여기 서명만 하면 돼.”“좋아요. 황보대사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모든 걸 다 쏟아 보겠습니다!”“여러분들에게 주역에서 가장 뛰어난 풍수술과 화자결을 보여드리죠!”말을 마치며 장용호는 호탕한 웃음을 보인 뒤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은침 한 개와 붉은 주사 광물을 꺼냈다.“우선 황보정의 온몸에 가득 찬 살기를 제거하여 그녀의 몸을 회복시킨 다음 기력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장용호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용호는 바로 은침을 쥐고 소독한 후 약간의 주사 광물을 묻힌 후 천천히 황보정의 눈썹 위에 찍었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작부터 틀렸어.”장용호는 이 말을 듣고 미간
서류 뭉치에는 하현의 사진과 철인도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진홍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허! 가짜 증명서인 게 틀림없어!”그녀는 냉소를 연발했다.“이모할아버지, 정말로 이 사기꾼을 믿기로 하신 건 아니죠?”“야! 사기 치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진홍민의 비아냥거림에 줄곧 입을 열지 않았던 장용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황보대사님, 어디서 이런 사기꾼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요.”“왜 이런 사기꾼을 믿게 된 거예요? 도저히 모르겠어요.”“전 단지 지금 황보정의 상황은 우리 만세당 말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요.”황보동은 자신감 넘치는 장용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유가 뭔가?”“이유요?”장용호는 팔짱을 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주역의 ‘화자결’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세상의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요!”‘화자결’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황보동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 주역?”“그럴 리가 없는데. 주역은 오래전에 전수가 끊겼는데.”“자네 날 속일 셈인가?”황보동이 의아한 눈빛으로 몰아붙이자 장용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얼마 전 진정한 고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죠.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주역의 ‘화자결’을 몽땅 전수해 받았다고요!”“이걸 전수받은 풍수지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장용호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기고만장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기엔 황보정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이런 벌을 받은 거예요!”“내가 그녀를 그 업보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홍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이모할아버지, 어서 장 대사님을 오라고 하세요!”“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주역의 화자결?하현은 이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