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풍성의 목소리에는 속절없이 당한 것에 대해 난감해하는 빛이 역력했다.“우리 화 씨 집안이 도성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카지노를 운영해 도박왕이라고 불렸는데 노년에 이렇게 망신을 당할 줄은 몰랐어...”“하지만 자네 걱정하지 마. 대구 엔터테인먼트 지분을 뺏기더라도 다른 도박장으로 꼭 보상해 주겠네.”“자네가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이니까.”화풍성의 말 속에는 자존심을 세우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비록 구원의 손길을 구하고는 있었지만 집안의 자존심도 지키려고 무척 애쓰는 모습이었다.하현은 헛웃음이 났으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얼굴색을 가다듬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어르신. 더 이상 농담은 집어치우겠습니다.”“자, 솔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지금 화 씨 집안과 싸우는 상대는 매우 까다로운 사람인 거죠?”“확실히 까다롭긴 하지만 뭐 내 손으로 통제할 수는 있지...”화풍성은 잠시 침묵한 뒤 어렵게 말을 내뱉었다.하지만 그는 하현의 대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좋아, 그래. 솔직히 말해서 너무 까다로워.”“상대방이 네 번 왔는데 올 때마다 딱 세 판만 해. 세 판 중에 두 판은 완승. 21점으로 완벽한 블랙잭이었지!”“나흘 연속으로 우린 졌어.”“첫날과 둘째 날은 우리가 보통 실력의 사람을 내보내서 졌으니 뭐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지.”“하지만 3일 차, 4일 차에는 우리도 진짜 고수를 내보냈거든. 그런데도 졌어...”이 말을 했을 때 화풍성은 자신도 모르게 어이가 없는지 말꼬리를 흐렸다.당당했던 카지노 집안이 상대방에게 네 번이나 연달아 지다니!이 일은 정말 입 밖에 내기도 창피했다.사실 이 일은 벌써부터 며칠 동안 도성을 떠들썩하게 했다.하지만 하현이 계속 항성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성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줄 몰랐을 뿐이다.하현은 핸드폰을 쥐고 차를 한 잔 따라 마신 뒤 침착하게 말했다.“상대방이 나흘 연달아 카지노
하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상대방에게 무슨 특별한 이력이라도 있습니까?”화풍성은 이미 조사를 마친 듯 천천히 되뇌이며 말했다.“그게 좀 특이해. 노국 귀족 이 씨 집안 자제인데다 성전 기사단의 기사단장 이영돈.”하현은 살짝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노국 귀족 이 씨 집안, 성전 기사단 등 꽤나 친숙하게 느껴지는 말들이었지만 이영돈이라는 이름은 정말 처음 들었다.“구체적으로 좀 더 말씀해 주세요.”“노국의 이 씨 가문은 당시 항성의 이 씨 가문에서 갈라져 나간 가문이야.”“노국 이 씨 가문의 장손 이름이 이걸윤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은 예전에는 항성 S4의 우두머리였대. 심성이든 사회적 수완이든 아주 뛰어나다고 해.”“이영돈은 그의 휘하에서 제일가는 맹장이야.”“이걸윤, 이영돈, 항성 이 씨 가문...”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다가 잠시 후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한번 가겠습니다. 가서 CCTV를 좀 봐야겠어요.”상대방의 이력과 행동 스타일을 보고 하현은 뭔가 짚이는 데가 있었다.왕자가 돌아온 건지 강자가 왕림한 것인지 확인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다....4시간 후.어둠이 안개처럼 소리 없이 사방에 깔리기 시작했다.하현은 도성에 있는 대구 엔터테인먼트에 도착했다.이곳은 원래 도성 화 씨 가문의 화옥현과 대구 정 씨 가문이 합작하여 만든 오락 시설이었다.하지만 설은아는 이미 지분을 포기한 셈이었다.그리고 화 씨 가문 쪽에서는 하현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이것의 지분을 그에게 넘기려고 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 이영돈이라는 사람과 이런 일이 생겨서 모든 것이 순조롭지 못했다.하현이 카지노에 도착했을 때 화풍성은 일찌감치 나와 있었다.하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는 다른 말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하현, 어서 오시게. 30분 전에 소식을 들었는데 이영돈이 이미 그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나와 이곳으로 차를 몰고 오고 있다고 하네.”
하현은 테이블 위에 있던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동영상을 조정하게 하여 이영돈의 정면을 똑바로 보았다.지금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며 하현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한편 이영돈은 자리에 앉은 후 주위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딜러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리따운 아가씨가 오셨군요. 오늘 밤도 수고 많으십니다.”“사장님께 말씀 좀 전해주세요. 오늘 밤 규칙도 원래 하던 대로라고.”“아무나 보내주셔도 된다고 하세요.”“중간에 바꿔도 아무 상관없어요.”말을 할 때는 온유하다고 할 만큼 위압감이나 권위 의식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이영돈은 이웃집 오빠처럼 부드럽게 분위기를 이끌어갔다.이런 태도는 주위의 구경꾼들로 하여금 그에 대한 호감도를 급상승시켰을 뿐만 아니라 카지노의 종업원들마저도 설레게 했다.어찌 되었건 카지노 특성상 돈 많고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눈만 뜨면 짜증을 내는 사람들을 많이 봐온 터였다.그러니 눈앞에 있는 이영돈은 그야말로 종업원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한 고객이었다.이 모습을 본 하현은 비로소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재미있군요.”“이길 것을 확신하고 있거나 승패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거죠.”“카지노에 왔으니 승패에 연연해하지 않을 리는 없을 테고. 역시 이길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 같군요.”“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나?”하현이 화풍성을 힐끔 바라보았다.화풍성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알았다면 자네한테 전화하지 않았을 거야.”“내가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잘생긴 외모와 매너를 겸비한 이영돈은 이미 많은 귀족 자제들로부터 구애의 손길을 받으며 도박의 신으로 칭송받는다는군.”“솔직히 말해서 내가 과거에 했던 행동 방식으로 했다면 이영돈 같은 인물은 높은 가격을 치르고라도 명예 지배인으로 앉히거나 직접 주주로 삼았을 거야.”“안타깝게도 상대는 이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우리 카지노를 노리고 왔지만 말이야.”화풍성의 얼굴에 안타까운 기색이 역력했다.
비록 양측은 한판을 더 남겨 놓고 있었지만 나머지 판을 뒤집을 수 있다고 해도 이미 승패는 기울어져 있었다.카지노 측이 한 판을 이긴다고 해도 카지노의 체면이 조금 세워질 뿐이다.하지만 세 판을 모두 지면 화풍성에 내려보낸 이 도박사는 앞으로 계속 이곳에서 지낼 면목이 없을 것이다.오늘 밤도 또 기세가 기울자 화풍성은 난감한 기색을 띠며 하현에게 나지막이 말했다.“하현, 자네 뭐 특이한 점이라도 발견한 거 없나?”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화면 가까이 다가가 몇 군데를 확대해 보다가 딜러와 도박사 사이에 화면을 고정하도록 지시했다.거대한 스크린에 세 얼굴이 나란히 서 있었지만 이영돈의 담담한 얼굴에 비해 나머지 두 사람은 긴장한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화풍성도 이 장면을 보면서 긴장된 기색을 떨칠 수가 없었다.이 판에서 또 지면 카지노의 지분 60%를 잃는 것뿐만 아니라 15경기를 연속으로 패배하게 된다.그것은 도성 화 씨 가문에 치명타가 될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화풍성은 어느 때보다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탁!”화면 속에 이영돈은 손가락을 또 한 번 탁 튕기며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자, 다음 판 시작해도 되겠죠?”맞은편에 앉은 중년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하현은 두려운 기색이 맴돌았던 중년 남자의 얼굴에 순간 살짝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가 이내 뭔가 공허한 빛이 감도는 걸 보았다.하현의 표정이 살짝 변하는 걸 본 화풍성은 머뭇거리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 도박사는 우리 화 씨 집안에서 직접 고른 사람이야.”“기술도 운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우리 가문에 대한 충성심도 대단한 사람이지.”“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의 가족들이 우리 가문의 배려와 보살핌으로 아주 풍족하게 잘 살고 있고 우리 화 씨 집안에서는 그들의 안전을 무엇보다 신경 쓰고 있다네.”“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우리 가문을 배신할 리가 없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어
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래서 가벼운 최면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이런 최면술은 과거 노국의 성전 기사가 자신들에게 썼던 이른바 성술이었습니다.”“목적은 간단합니다. 자신이 성전 기사라는 것을 스스로 각인시키고 공격을 받으면 반드시 이기고 어떤 싸움에서도 반드시 이긴다는 최면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거는 겁니다.”“어느 정도 전력에 영향을 줄 수 있죠.”“한 사람의 감정은 그 사람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자신의 백전백승을 믿는 기사들은 보통의 기사들보다 더 용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상대하기가 더 무섭죠.”“제 예상이 맞는다면 성전 기사단 출신의 기사 대장이 이 최면술을 익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그는 상대의 행동을 철저히 통제할 필요도 없이 상대에게 자신이 질 것이라는 심리적 암시를 주기만 하면 됩니다.”“게다가 상대가 진작에 자신감을 잃고 사기가 떨어진 상태라면 당연히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요.”화풍성은 처음 듣는 얘기였지만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심리적 암시는 확실히 다른 사람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예를 들어 의학적 위약 요법은 심리적 암시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이다.다만 이러한 심리적 암시는 일반적으로 조건을 충족시켜야 성공할 수 있다.환자의 경우 자신이 믿었던 전문의가 최면을 걸어야만 심리적 암시가 작용하여 스스로 최면에 걸릴 수 있다.그런데 이런 카지노에서 그런 조건을 충족시킬 만한 게 어디 있겠는가?화풍성은 자신의 생각에 의문을 품었다.그러자 하현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제 추측이 맞다면 아마 그 손가락 튕기는 소리일 겁니다.”“그 소리가 울리는 순간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이영돈의 손끝을 쳐다보게 되는데 이때부터 이영돈은 도박사에게 심리적 암시를 던지는 거예요.”“다만 가벼운 최면 상태인 상대에게 심리적 암시를 주입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심지어 이런 가벼운 최면을 상대방에게 적용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기도 합
카지노장 안은 온통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모든 사람들은 도성 화 씨 가문이 그들의 지분 10%를 잃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다.이영돈이 이렇게 계속 나흘만 더 이기면 대구 엔터테인먼트는 그야말로 주인이 바뀔 것이다.감시실에 있던 화풍성의 안색이 일그러졌다.하현은 방금 말한 대로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다.이영돈은 손가락 튕기는 소리를 통해 상대방에게 심리적 암시를 내렸고 이를 통해 상대를 제압한 뒤 요 며칠 동안 도성 화 씨 가문을 송두리째 거머쥐려 하고 있다.“이영돈, 수완이 보통이 아니군!”화풍성은 심호흡을 하고 일어섰다.“자네 알려주어서 고맙네. 우리 도성의 규율에 따라 카지노장에서 편법을 써서 상대를 속인 자는 손가락이 부러질 거야.”“이영돈은 닷새 연속으로 카지노에 와서는 속임수를 썼어. 사람을 시켜 그의 손을 자르게 할 수 있어.”화풍성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살의를 숨기지 않는 모습이 진정한 도박왕 화풍성다웠다.“어르신,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우리는 소위 가벼운 최면, 심리적 암시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CCTV를 통해 이영돈이 손가락을 튕기는 장면만 봤을 뿐이에요.”“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습관을 가지고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둘째,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이영돈은 겉으로는 별로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실상 그의 배후에는 엄청난 세력과 배경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세간의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의 손을 실질적인 증거도 없이 자른다면 일이 제대로 마무리될 리 없잖습니까?”“세 번째,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데요. 어르신이 이영돈에게 손을 쓸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잊지 마세요. 이영돈은 카지노 지분의 60%를 가지고 있어요!”“그가 화가 나서 이 놀이를 그만하고 싶어진다면 지분 60%를 가지고 카지노의 주인을 바꾸려 할 수도 있어요. 아
이후 화풍성은 하현의 지시에 따라 슬슬 작업에 돌입했다.그는 이영돈을 만나러 가지 않고 SNS를 통해 대구 엔터테인먼트는 이영돈의 지속적인 카지노 방문을 환영한다는 글을 올렸다.동시에 화풍성 측은 진정한 고수를 맞을 만반의 준비에 착수했다고 알렸다.이 소식이 알려진 후 도성 전체가 들썩였다.어찌 되었건 화풍성 같은 카지노계 거물이 이렇게 대중 앞에 전면으로 나선 적은 최근 몇 년 동안 없었다.그런 그가 대중 앞에 나타나 이런 소식을 전한 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첫째 이전에는 화 씨 집안이 정식으로 이런 일에 개입하지 않은 것이 집안의 체면을 생각해서였다는 것이다.둘째 그럼에도 이번에는 화 씨 집안이 정식으로 개입할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이후에 벌어지는 판에서 만약 화 씨 집안이 이긴다면 화 씨 집안을 둘러싼 모든 의혹들이 사라질 것이다.마찬가지로 지게 되면 도성 화 씨 집안은 완전히 체면을 구길 것이다.하현이 보기엔 도성 화 씨 가문 측에선 이미 배수의 진을 친 것이었다.도성의 소란스러운 일은 그 정도로 해 두고 하현은 항성의 가든 별장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을 했다.해변의 상쾌하고 촉촉한 바닷바람은 온 정신을 맑게 일깨워 주는 듯했다.오늘 밤 하현은 도성에 가서 이영돈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이른 아침이기도 한 지금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았다.가든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하수진이 이미 외출한 것을 본 하현은 잠시 생각한 끝에 차를 타고 항도 재단으로 향했다.비록 항도 재단은 이제 전반적으로 안정을 되찾았지만 하수진이 최고 상석으로 올라가는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어서 하현은 자신이 가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총재실 앞에 와 보니 총재실 안에 이미 모르는 얼굴의 남녀가 와 있는 것이 보였다.남자 둘 여자 둘, 보아하니 그들은 서양인이었고 키가 크고 말쑥한 차림에 마치 자신들의 체취를 감추려는 듯 향수로 목욕을 했는지 향수 냄새가 진동했다.딱 봐도 사람들에게 강한 인
”당신은 그저 우리 도련님의 선의를 거절했을 뿐이겠지만 도련님으로서는 당신의 거부가 도발이자 선전 포고로 여겨질 수 있어요.”“당신은 똑똑한 사람이라 잘 알겠지만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는 미국의 뉴타운이 아니라 노국의 런셀입니다...”“당신은 런셀에서 어마어마한 파워를 가진 우리 도련님의 미움을 사게 되는 겁니다.”“그것이 앞으로 항도 재단과 항도 하 씨 가문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하수진 아가씨,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이영돈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하수진에게 은근한 협박의 메시지를 던졌다.“게다가 당신은 항도 재단 집행총재일 뿐이에요.”“당신은 도련님을 거절할 수 있겠지만 항도 재단, 항도 하 씨 가문을 대표해서 우리 도련님을 거절할 수 있습니까?”“그러니까 거절하지 말고 잘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그렇게 된다면 우리 둘 다 조금씩 물러설 여지가 있지 않겠습니까?”위협적인 말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주는 척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말투와 위선적인 미소였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이영돈을 지켜보았다.이영돈의 입에서 나오는 도련님이란 사람이 하수진과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사람이 바로 항성 S4의 우두머리였던 이걸윤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아차렸다.이영돈의 말은 하수진을 설득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위장된 협박에 불과했다.하현은 급하게 다가가지 않고 복도 구석에 서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이영돈, 걱정 어린 당신의 충고 잘 받았어요.”이영돈의 위협에도 하수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그건 내 일이니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어요!”“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내 대답은 같습니다. 거절합니다.”“가서 이걸윤에게 전하세요. 나 하수진이 지나가는 거렁뱅이에게 시집을 갈지언정 그에게는 절대 시집가지 않을 거라고요. 다시는 헛된 꿈 꾸지 말라구요!”“아가씨, 소문대로 정말 강하시군요. 아주 성정이 보통이 아닙니다.”이영돈은 어이없다
30분 후, 하현의 일행과 양호남의 일행이 양 씨 가문 장원의 대청에 모였다.양 씨 가문 장원은 산과 물을 따라 지어져 있었으며 남양 지역 특색의 건축 양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대하의 강남 스타일과 북유럽의 건축양식이 잘 어우러져 건축가의 웅장한 이상과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지금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은 이미 위태로워져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대청홀은 200평방미터 가까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는 귀한 침향목 의자가 놓여 있었다.양옆에는 황화목으로 만든 의자가 늘어져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하현 일행이 자리를 잡자마자 뒤쪽에서 일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대여섯 명의 남녀가 백발이 성성한 노부인을 둘러싸고 걸어 나왔다.이 노부인은 몸집이 약간 작고 등이 구부러져 있었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전체적으로 매우 야윈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꼿꼿하게 날이 서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외부인인 하현에게 떨어졌다.마치 예리한 침으로 정곡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이라 하현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었다.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은 양 씨 가문 안주인이자 양제명의 아내였다.곧이어 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자손들이 나타났다.그들은 모두 구석에 서서 기웃거렸다.다만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바라볼 때는 눈에서 혐오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 몇 명은 양유훤이 머리가 나쁘거나 안목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입을 삐죽거렸다.하현처럼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을 데려오다니!그녀들은 양 씨 가문은 절대 양유훤이 데려온 저 남자를 데릴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들의 고귀한 가풍이 더럽혀지면 안 될 일이다!“할머니!”양호남, 양신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노부인은 이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의자에 가서 앉았다.그런 다음
하현은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성격상 이런 굴욕적인 요구를 들어줄 리 없었다.양유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은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날 위협하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양호남 일행에게 차가운 눈빛을 떨어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만약 자신이 떠났더라면 양유훤 혼자 저들에게 마음대로 휘둘렸을지도 모른다.하현의 눈빛을 본 양호남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뭘 봐? 우리 집안의 손해가 이렇게 막대한데 대가를 치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연한 거야!”“양호남의 수법이 다소 과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잘못은 양유훤이 한 거야!”염소 수염을 한 양 씨 가문 어른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우리 양 씨 가문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아!”“어렵게 페낭 무맹과의 협력을 이뤄냈는데 양유훤 때문에 망치게 생겼어!”“난 방금 전까지도 양유훤을 살짝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어!”“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남자는 거리낌 없이 사람을 때렸어!”“이런 남자를 선택하다니 앞으로 양유훤이 어떻게 되겠어?”“아주 개념 없는 연놈들이야!”“우리는 어서 양유훤을 양 씨 가문에서 출가시켜 다시는 우리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못하게 해야 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양유훤은 눈살을 찌푸렸다.자신 때문에 페낭 무맹의 납품권이 사라지게 된 것에는 부인하지 않았다.하지만 여수혁에게 시집가라고 강요하고 양제명을 독살하려 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양호남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수백억의 납품권을 위해서.”“집안사람을 강제로 시집보내고.”“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까지 독살하려 했어.”“양 씨 가문은 정말 단결력이 강하고 우애도 깊군.”“뭐라고!”양호남의 안색이 살짝 변하며 흠칫했다.“할아버지를 독살하려 했다니?!”“우린 사람을 보내 할아버지를 돌보게 했을 뿐이
양유훤을 다독인 후 하현은 양호남에게 냉담한 시선을 떨어뜨렸다.이제야 하현은 양유훤이 왜 자신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집안사람들의 천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라도 하현이 위험에 빠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개자식! 어디서 튀어나온 망나니 같은 놈이 감히 우릴 때려?”이때 양신이가 정신을 차리며 얼굴을 가린 채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입을 열었다.“죽여버릴 거야!”“당신 같은 연놈들은 칠흑 같은 감옥에 갇혀 평생을 고통스럽게 썩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구!”“아하, 당신이 양유훤이 말한 그 남자 맞지?”양호남도 역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감싸쥐고 일어나 이를 갈며 울부짖었다.“이 개자식아! 여자는 수치도 모르고 남자는 제멋대로구만! 짐승만도 못한 것들!”양호남은 하현을 죽이기 위해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하현의 행동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잘 알고 있어서 그저 하현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됐어! 이 개 같은 연놈들한테 쓸데없는 소리 해 봐야 소용없어. 관청에 보고하고 그들을 끌어내면 돼!”머리를 풀어헤친 양신이도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내가 저 연놈들을 가만히 두면 성을 갈겠어!”“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하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손을 뻗어 양유훤의 몸에 몇 개의 혈을 짚으며 그녀의 상처와 통증을 완화시킨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양유훤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녀는 원래 하현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이 이미 이곳에 나타났으니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어젯밤에 양유훤이 당신 같은 뻔뻔한 남자를 위해 여수혁을 다치게 했어!”“오늘 아침, 여수혁의 아버지이자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신 여영창 어르신이 우리 양 씨 가문을 찾
”개자식!”자신의 여동생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것을 본 양호남은 욕설을 퍼부으며 반사적으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매서운 표정으로 양호남의 목을 조른 뒤 그의 머리를 눌러 가장자리에 있던 대리석 테이블 위에 찧어 버렸다.양호남은 저절로 절을 하는 꼴이 되었고 ‘퍽'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의 찻잔이 그대로 으스러졌다.양호남의 머리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하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양호남을 발로 차 내동댕이쳐서 날려버렸다.한쪽에 서 있던 양 씨 가족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때 그중 한 명이 의자를 들쳐업고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손바닥을 날려 그를 내동댕이쳤고 뒤이어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손바닥을 날려 쓰러뜨렸다.이 모든 것이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사람들과 그들의 경호원들이 얼굴이 붓고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어이, 젊은이, 당신이 어떤 경력이 있든 어떤 묘수가 있든 간에!”“이곳은 양 씨 가문 땅이야!”“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이라구!”“개나 소나 다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구!”전통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셋째 집안 어른이 나서서 의젓한 표정으로 하현을 호통쳤다.“우리 사람을 때리고 다치게 하다니! 도대체 당신 눈엔 법도 뭣도 안 보이는 거야?”“이 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당신...”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셋째 집안 어른의 잔소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손바닥을 휘갈겼다.“양호남 무리들이 손찌검을 할 때는 왜 제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는 법 운운하시겠다?”“지금 뛰쳐나와서 그런 얘기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의 말에 이번에는 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양호남은 뻔뻔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안사람들을 혼내려 했을 뿐, 그 방법이 좀 과격하다고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