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래서 가벼운 최면이라고 말씀드린 겁니다.”“이런 최면술은 과거 노국의 성전 기사가 자신들에게 썼던 이른바 성술이었습니다.”“목적은 간단합니다. 자신이 성전 기사라는 것을 스스로 각인시키고 공격을 받으면 반드시 이기고 어떤 싸움에서도 반드시 이긴다는 최면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거는 겁니다.”“어느 정도 전력에 영향을 줄 수 있죠.”“한 사람의 감정은 그 사람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자신의 백전백승을 믿는 기사들은 보통의 기사들보다 더 용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상대하기가 더 무섭죠.”“제 예상이 맞는다면 성전 기사단 출신의 기사 대장이 이 최면술을 익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그는 상대의 행동을 철저히 통제할 필요도 없이 상대에게 자신이 질 것이라는 심리적 암시를 주기만 하면 됩니다.”“게다가 상대가 진작에 자신감을 잃고 사기가 떨어진 상태라면 당연히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요.”화풍성은 처음 듣는 얘기였지만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심리적 암시는 확실히 다른 사람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예를 들어 의학적 위약 요법은 심리적 암시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이다.다만 이러한 심리적 암시는 일반적으로 조건을 충족시켜야 성공할 수 있다.환자의 경우 자신이 믿었던 전문의가 최면을 걸어야만 심리적 암시가 작용하여 스스로 최면에 걸릴 수 있다.그런데 이런 카지노에서 그런 조건을 충족시킬 만한 게 어디 있겠는가?화풍성은 자신의 생각에 의문을 품었다.그러자 하현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제 추측이 맞다면 아마 그 손가락 튕기는 소리일 겁니다.”“그 소리가 울리는 순간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이영돈의 손끝을 쳐다보게 되는데 이때부터 이영돈은 도박사에게 심리적 암시를 던지는 거예요.”“다만 가벼운 최면 상태인 상대에게 심리적 암시를 주입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됩니다.”“심지어 이런 가벼운 최면을 상대방에게 적용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들기도 합
카지노장 안은 온통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모든 사람들은 도성 화 씨 가문이 그들의 지분 10%를 잃는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다.이영돈이 이렇게 계속 나흘만 더 이기면 대구 엔터테인먼트는 그야말로 주인이 바뀔 것이다.감시실에 있던 화풍성의 안색이 일그러졌다.하현은 방금 말한 대로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다.이영돈은 손가락 튕기는 소리를 통해 상대방에게 심리적 암시를 내렸고 이를 통해 상대를 제압한 뒤 요 며칠 동안 도성 화 씨 가문을 송두리째 거머쥐려 하고 있다.“이영돈, 수완이 보통이 아니군!”화풍성은 심호흡을 하고 일어섰다.“자네 알려주어서 고맙네. 우리 도성의 규율에 따라 카지노장에서 편법을 써서 상대를 속인 자는 손가락이 부러질 거야.”“이영돈은 닷새 연속으로 카지노에 와서는 속임수를 썼어. 사람을 시켜 그의 손을 자르게 할 수 있어.”화풍성은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살의를 숨기지 않는 모습이 진정한 도박왕 화풍성다웠다.“어르신,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우리는 소위 가벼운 최면, 심리적 암시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CCTV를 통해 이영돈이 손가락을 튕기는 장면만 봤을 뿐이에요.”“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습관을 가지고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둘째,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이영돈은 겉으로는 별로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실상 그의 배후에는 엄청난 세력과 배경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세간의 지지를 받고 있는 사람의 손을 실질적인 증거도 없이 자른다면 일이 제대로 마무리될 리 없잖습니까?”“세 번째,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데요. 어르신이 이영돈에게 손을 쓸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잊지 마세요. 이영돈은 카지노 지분의 60%를 가지고 있어요!”“그가 화가 나서 이 놀이를 그만하고 싶어진다면 지분 60%를 가지고 카지노의 주인을 바꾸려 할 수도 있어요. 아
이후 화풍성은 하현의 지시에 따라 슬슬 작업에 돌입했다.그는 이영돈을 만나러 가지 않고 SNS를 통해 대구 엔터테인먼트는 이영돈의 지속적인 카지노 방문을 환영한다는 글을 올렸다.동시에 화풍성 측은 진정한 고수를 맞을 만반의 준비에 착수했다고 알렸다.이 소식이 알려진 후 도성 전체가 들썩였다.어찌 되었건 화풍성 같은 카지노계 거물이 이렇게 대중 앞에 전면으로 나선 적은 최근 몇 년 동안 없었다.그런 그가 대중 앞에 나타나 이런 소식을 전한 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첫째 이전에는 화 씨 집안이 정식으로 이런 일에 개입하지 않은 것이 집안의 체면을 생각해서였다는 것이다.둘째 그럼에도 이번에는 화 씨 집안이 정식으로 개입할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이후에 벌어지는 판에서 만약 화 씨 집안이 이긴다면 화 씨 집안을 둘러싼 모든 의혹들이 사라질 것이다.마찬가지로 지게 되면 도성 화 씨 집안은 완전히 체면을 구길 것이다.하현이 보기엔 도성 화 씨 가문 측에선 이미 배수의 진을 친 것이었다.도성의 소란스러운 일은 그 정도로 해 두고 하현은 항성의 가든 별장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을 했다.해변의 상쾌하고 촉촉한 바닷바람은 온 정신을 맑게 일깨워 주는 듯했다.오늘 밤 하현은 도성에 가서 이영돈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이른 아침이기도 한 지금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았다.가든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하수진이 이미 외출한 것을 본 하현은 잠시 생각한 끝에 차를 타고 항도 재단으로 향했다.비록 항도 재단은 이제 전반적으로 안정을 되찾았지만 하수진이 최고 상석으로 올라가는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어서 하현은 자신이 가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총재실 앞에 와 보니 총재실 안에 이미 모르는 얼굴의 남녀가 와 있는 것이 보였다.남자 둘 여자 둘, 보아하니 그들은 서양인이었고 키가 크고 말쑥한 차림에 마치 자신들의 체취를 감추려는 듯 향수로 목욕을 했는지 향수 냄새가 진동했다.딱 봐도 사람들에게 강한 인
”당신은 그저 우리 도련님의 선의를 거절했을 뿐이겠지만 도련님으로서는 당신의 거부가 도발이자 선전 포고로 여겨질 수 있어요.”“당신은 똑똑한 사람이라 잘 알겠지만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는 미국의 뉴타운이 아니라 노국의 런셀입니다...”“당신은 런셀에서 어마어마한 파워를 가진 우리 도련님의 미움을 사게 되는 겁니다.”“그것이 앞으로 항도 재단과 항도 하 씨 가문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하수진 아가씨,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이영돈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하수진에게 은근한 협박의 메시지를 던졌다.“게다가 당신은 항도 재단 집행총재일 뿐이에요.”“당신은 도련님을 거절할 수 있겠지만 항도 재단, 항도 하 씨 가문을 대표해서 우리 도련님을 거절할 수 있습니까?”“그러니까 거절하지 말고 잘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그렇게 된다면 우리 둘 다 조금씩 물러설 여지가 있지 않겠습니까?”위협적인 말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주는 척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말투와 위선적인 미소였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이영돈을 지켜보았다.이영돈의 입에서 나오는 도련님이란 사람이 하수진과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사람이 바로 항성 S4의 우두머리였던 이걸윤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아차렸다.이영돈의 말은 하수진을 설득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위장된 협박에 불과했다.하현은 급하게 다가가지 않고 복도 구석에 서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이영돈, 걱정 어린 당신의 충고 잘 받았어요.”이영돈의 위협에도 하수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그건 내 일이니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어요!”“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내 대답은 같습니다. 거절합니다.”“가서 이걸윤에게 전하세요. 나 하수진이 지나가는 거렁뱅이에게 시집을 갈지언정 그에게는 절대 시집가지 않을 거라고요. 다시는 헛된 꿈 꾸지 말라구요!”“아가씨, 소문대로 정말 강하시군요. 아주 성정이 보통이 아닙니다.”이영돈은 어이없다
”거절한다고 했잖아요!”“얼른 꺼져요!”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하수진은 누가 들어오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버럭 화부터 냈다.“하 총재, 방금 당신을 상석에 올려준 사람을 이렇게 대할 거야?”하현이 웃으며 말했다.하현의 목소리를 듣고 마침내 하수진은 뒤를 돌아보았다.하현이 들어온 것을 본 그녀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얼른 냉정을 되찾았다.“미안해. 난 또 그 사람이 들어온 줄 알고...”하현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미안해할 것 없어.”“마침 방금 밖에 있었는데.”“왜? 집행총재가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누가 또 와서 문제를 일으킨 거야?”하현은 대화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하수진에게 사적인 공간을 남겨 주었다.그러나 하수진은 숨기는 기색 없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방금 밖에 있었으니 아마 무슨 일인지 짐작했을 거야.”“아까 그 사람 이영돈이라는 사람인데 이걸윤 휘하의 맹장이야. 당신 이영돈을 혹시 알아?”하현은 무심한 듯 말했다.“대충 들어봤지만 잘 몰라.”하수진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이걸윤은 한때 항성과 도성에서 가장 전설적인 인물이었어. 항성 4대 가문 중 하나인 항성 이 씨 가문 장손이야.”“다만 그는 노국의 런셀에서 줄곧 자랐어.”“그러다가 6년 전쯤 항성에 나타났지.”“그 몇 년 사이에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사분오열된 항성 이 씨 가문을 통합해서 4대 가문 중 최고의 자리에 당당히 올려놓았지.”“그가 있었을 때 항성 이 씨 가문은 항도 하 씨 가문에 비견될 정도였으니까.”“그러나 나중에 그의 야심을 눈치챈 항도 하 씨 가문은 항성 이 씨 가문 내부에서 이장윤을 추켜세우고 이걸윤을 런셀로 내쫓듯이 보내버렸어.”“노국으로 돌아간 뒤 기세가 주저앉은 이걸윤을 보고 사람들은 그가 폐위될 운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마음에 두지 않았어.”“다시 6년 만에 그가 왕의 귀환을 할 줄은 몰랐어.”“지금 여기 온 사람은 이영
하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거기에 문주도 포함되는 거야?”하수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 아버지는 분명 동의하지 않으실 거야.”“시집간 딸은 출가외인이야. 나와 이걸윤의 혼사에 동의한다면 이는 내가 항도 하 씨 가문의 핵심에서 완전히 떠나겠다는 걸 의미해.”“하지만 이 혼사를 취소하는 대가가 너무 커서 노부인은 절대 취소하지 않으려고 하실 거야.”“그리고 아버지는 효자셔...”하수진은 고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그래서 아마 이번에 난 시집가게 될 것 같아.”“귀족 가문들은 서로 정이 별로 없어. 하물며 난 수양딸에 불과해.”하현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가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지금 이 상황을 보니 역시 이번 일은 당신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문주를 겨냥한 것이 분명해.”“문주께서 당신을 이용해 하구천을 견제했잖아.”“이번엔 하구천 쪽에서 아예 끝장을 보려고 손을 쓴 거야. 그래서 이걸윤을 끌어들인 거라고.”“위나라를 포위해 조나라를 구한 제나라처럼 항도 하 씨 가문을 압박해 하구천을 구해내려는 거지.”하현의 말을 듣고 하수진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이를 악물었다.그 바람에 하마터면 그녀는 어금니를 깨물 뻔했다.“하구천, 개자식!”“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해? 설마 하구천이 승리의 거만한 미소를 짓는 꼴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해?”하현은 옥처럼 부드럽게 미소 짓는 이영돈의 얼굴을 떠올렸고 벌떡 일어서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야.”“이걸윤이 스스로 파혼하게 만들면 모든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그런데 중요한 건 이걸윤이 파혼하겠냐는 거야.”“왕의 귀환이라...”하현은 눈을 희미하게 뜨며 말을 이었다.“이걸윤이 등장한 이 판은 결국 우리와 하구천의 재대결인 셈이야.”“이걸윤의 등장이 왕의 귀환이든 강자의 귀환이든 그건 아무 상관없어.”“우리가 이 판에서 물러난다면 그동안 했던 모든 것은 아무 의
요즘 플랫폼에서 인기 있는 스타 진소흔이 노국에서 영주권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그러자 플랫폼에는 그녀의 영상들로 도배가 되었다.영상의 내용은 간단했다.모두 노국을 찬양하는 말들로 가득했다.하현이 그 영상을 열자 진소흔이 화려한 옷을 입고 청초하고 섹시한 매력을 뽐내는 모습이 보였다.아주 유명한 여배우가 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있었다.“팬들이 왜 노국의 영주권을 받았냐고 저한테 물어보세요.”“그러면 전 이렇게 말씀드립니다.”“신선하고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라고.”“닷새 전 대하에서 비행기를 타고 노국으로 왔을 때였어요.”“노국에 올 때 마스크를 다섯 개 준비했었고 마스크 하나를 꺼내 쓰려고 했죠.”“그런데 노국의 첫 공기를 들이마신 순간 마스크를 다시 집어넣었어요.”“공기가 너무 상쾌하고 심지어 달달한 맛이 느껴질 정도였어요.”“이해 안 되실지 모르겠지만 전 정말 이런 이유로 노국의 영주권을 신청해 받았어요.”간단하고 짧은 동영상이었지만 수천만 건의 트래픽을 이끌며 인기를 얻고 있었다.영상 아래 댓글에는 진소흔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고 매국노라 칭하며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하지만 결국 이 영상 때문에 진소흔이 더 관심을 끌게 된 건 부인할 수 없었다.“이 여자...”하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영상을 몇 개 더 뒤져보았다.빅데이터 때문인지 진소흔과 연관된 많은 영상들을 손쉽게 볼 수가 있었다.동영상에는 진소흔에 대한 평가가 반반이었지만 대체적으로 젊은이들은 진소흔의 자유분방함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듯했다.비록 수많은 젊은이들의 댓글이 고용된 댓글 부대의 글이라는 걸 하현도 눈치챘지만 여전히 뭔가 거북스럽고 불편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이런 댓글들이 범람하면 젊은 세대의 가치관은 치명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양심적인 기업들은 이런 일을 좌시해서는 안 된다.하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슬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비록 진소흔은 그에게 있어 별로 큰 존재는 아니었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 몇 명이 강경한 얼굴로 하현의 길을 막았다.경호원들은 하현 일행뿐만 아니라 다른 손님들도 앞을 가로막았다.흰색 제복을 입은 여자가 경호원들을 헤치고 뒤에서 나와 싸늘한 표정으로 하현을 힐끗 쳐다보았다.“진소흔 아가씨가 안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니 들어가면 안 돼요.”“당신들이 나타나면 진소흔 아가씨가 식사하시는 데 방해가 될 거예요.”“그러니까 진소흔 아가씨가 다 먹고 나면 그때 들어가세요.”흰색 제복을 입은 여자는 이런 일이 익숙한 듯 아주 당연스럽게 여기며 말했다.하현은 사람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들은 이 식당의 주인입니까? 아니면 지배인입니까?”하현의 질문에 여자는 대답했다.“둘 다 아닙니다.”하현은 흥미로운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었다.“그럼 당신이 말한 진소흔이라는 사람이 오늘 이 식당을 통째로 빌렸습니까?”“뭐라고요? 당신 제정신입니까?”“이 식당을 통째로 빌리려면 최소 몇천만 원은 들 텐데 그거 알고나 하는 소립니까?”“우리가 그런 바보로 보여요?”흰 제복을 입은 여자는 깔보듯 눈을 내리깔고 하현을 바라보았다.“우리가 머리가 총을 맞았다고 해도 그런 데에 지갑을 열지는 않아요.”하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심드렁하게 말했다.“당신은 이 식당 사람도 아니고 식당 전체를 빌리지도 않았어요.”“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우릴 막는 겁니까?”이때 저지당한 다른 손님들도 분노의 눈빛으로 경호원 무리들을 노려보며 한마디씩 거들었다.그러자 흰색 제복을 입은 여자가 말했다.“내 말 못 들었습니까?”“다시 한번 말하겠어요. 마지막이니 잘 들어요.”“진소흔 아가씨가 지금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어요!”“팬들을 위해서 항성에 나오긴 했는데 여긴 공기가 너무 나빠요. 그래서 아가씨가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아요.”“그런데 당신들은 진소흔 아가씨더러 파리 떼들과 같이 식사를 하라는 겁니까?”“당신들 때문에 아가씨가 속이 메스꺼워 식사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