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네 번째도 공포탄이었지만 폭탄을 두른 호위대 요원은 식은땀을 계속 흘렸다.다른 요원들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 놀란 눈을 껌뻑거렸다.앞의 세 발은 어찌저찌 참을 수 있었지만 방금 전의 한 발은 마치 저승길 문턱까지 갔다 온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하운빈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호위대의 총을 빼앗고 싶었지만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상대방이 어떤 충동적인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죽음의 먹구름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덮치자 모두 오한을 일으키며 덜덜 떨었다.하구봉은 음흉한 미소를 보이며 몸을 비틀었다.“하 씨, 당신이 날 놓아주지 않고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으면 다음 한 방에 우리 모두가 죽을지도 몰라!”“그래?”하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순간 하현은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몸을 움직였다.강력한 폭약을 몸에 두른 호위대 요원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얼른 그의 손에 있던 리볼버 권총을 빼앗았다.“개자식!”하구봉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이를 갈았다.하지만 하현은 하구봉을 힐끔 쳐다보다가 강력한 폭약을 두른 호위대 요원에게 직접 리볼버 권총을 겨누었다.하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하구봉, 당신이 이렇게 놀기를 좋아하니 나도 당신 놀음에 놀아 줄 수밖에 없지!”“이 총에는 두 번의 기회가 더 있어.”“첫 번째 기회에 다 같이 죽든지, 두 번째 기회에 다 같이 죽든지!”“이제 선택은 당신한테 달렸어!”하현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자, 스스로 오른손을 망가뜨리고 무릎을 꿇고 당난영 부인께 머리를 조아려 잘못을 인정해.”“그렇지 않으면 바로 쏴 버릴 거야!”하구봉은 눈살을 찌푸리며 어리둥절해하다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흥! 하 씨! 감히 네까짓 것이 날 협박해?”“너희 내륙 놈들은 하나같이 목숨을 아까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군!”“능력이 있거든 어서 쏴!”“당신이 그 총을 쏘지 않으면 당신은 개자식이야!”
미친 사람처럼 날뛰던 하구봉이 마지막 순간에 겁을 먹고 꽁무니를 뺄 줄은 아무도 몰랐다.하구봉 자신도 이렇게 미친 짓을 할 줄은 몰랐지만 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기는 미친 짓을 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엄마를 외치며 꽁무니를 빼는 하구봉의 모습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런 반응도 할 수가 없었다.이것이 미친 듯이 날뛰던 하구봉의 민낯인가?하구봉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하던 사람들이 순간 갑자기 정적에 휩싸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폭발하지 않은 건가?왜? 어떻게 폭발하지 않았지?총을 쏘면 모두가 부둥켜안고 다 함께 죽는 게 아니었던가?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지?공포에 떨었던 하구봉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하지만 이 짧은 순간에도 하구봉은 틈새를 비집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생사를 걸고 모든 사람을 협박하던 하구봉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엄마를 부르짖으며 꽁무니를 빼다니...순간 하구봉은 자신이 맹인호와 같은 급으로 취급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울어버린 것이다.사람들의 모든 이목은 한가운데 있는 하현에게 떨어졌다.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리볼버 권총을 쳐다보았다.“걸렸나?”“다들 운이 좋은가 봐.”심드렁하게 말을 내뱉은 하현은 다시 리볼버를 들고 강력한 폭약을 몸에 두른 호위대 요원을 겨누었다.방아쇠를 당긴 순간 ‘펑'하는 소리는 났지만 총알은 나오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현이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부여잡아야만 했다.비록 총알은 나오지 않았지만 살 떨리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호위대 요원들의 얼굴은 보기 힘들 정도로 새하얗게 빛을 잃어갔다.그들이 평소에 아무리 날뛰고 거칠 것이 없던 사람들이었어도 대장이 엄마를 찾으며 울부짖는 마당에 제대로 정신줄을 부여잡기 힘들 것이다.호위대는 오늘부터 항성과 도성에서 가장 큰 웃음거리로 전락할 판이었다.“재미없군. 총을 바꿔서 놀아 봐야겠어.”하현이 리볼버
하구봉은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딱 봐도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하현은 도무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하구봉 자신보다 훨씬 악독한데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따로 없었다.하구봉은 마음속으로 잔뜩 겁을 집어먹었지만 오랫동안 고귀한 몸으로 살아온지라 이 순간만큼은 존엄을 다 내려놓고 용서를 빌 수 없었다.게다가 지금 이렇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면 하구봉이든 호위대든 항성과 도성에선 분명 큰 웃음거리가 될 거라는 건 뻔한 일이었다.“당신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어. 오른손을 부러뜨리고 당난영 부인께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사죄해.”“아니면 가만히 앉아서 당신의 죽음을 기다리든지.”하운빈의 입에서 하구봉이 어떤 운명에 처했는지 상세한 설명이 흘러나왔다.하구봉은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렸다가 뭔가 결심이 선 듯 자신의 오른손을 붙잡았다.그때였다.하늘의 장막이 걷히기라도 할 듯 갑자기 큰 굉음이 들려왔다.그러자 열 대의 거대한 검은색 헬기가 쉭쉭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멀리서 바다를 가르며 위엄 서린 아우라를 풍기는 무장 헬기였다.사람들이 어리둥절한 채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한 사이 무장 헬기는 어느새 가든 별장 정수리를 향해 날아왔다.그리고 헬기에서 거대한 총 한 자루가 머리를 내밀더니 현장에 있던 호위대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그때 허공에서 호령하듯 냉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여기는 항도 하 씨 가문 문주 친위대다.”“이제부터 여기는 우리가 인수하겠다.”“총을 버리면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산신령 같은 목소리가 하늘을 뒤덮자 얼굴을 가리고 있던 하구봉의 안색이 흙빛이 되었다!호위대 요원들은 하나같이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며 손에 든 총을 땅바닥에 풀썩 떨어뜨렸다.항성과 도성에서 감히 문주 친위대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문주 친위대였다.누가 감히 그 앞에서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하운빈은 그제야 정신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문주께서 돌아오셨군.”하
호위대도 가든 별장 경호원도 하인들도 모두 지금 이 순간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항상 오만하고 흉악했던 하구봉은 하문준 앞에서 갑자기 자신이 어릿광대처럼 우습고 어리석어 보였다.그의 광기, 히스테리도 이 남자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잠시 후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숙여 공손히 말했다.“문주님 오셨습니까?”하현만이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눈앞의 카리스마를 풍기는 중년 남자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하문준이 이번에 항성에 온 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오늘 밤 호위대를 맞서는 일에 혼자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당난영과 가든 별장이 받은 수모와 억울함은 반드시 공명정대하게 처리될 것이다.이렇게 하면 하현 자신도 많은 힘을 아낄 수 있다.웃는 듯 마는 듯한 하현의 시선 속에서 하구봉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얼굴을 가리고 하문준 앞으로 다가가 공손히 한마디 내뱉었다.“숙부님 오셨습니까?”하구봉은 항도 하 씨 가문의 약한 고리라도 이용해 살아갈 구멍을 찾느라 안간힘을 쓰는 게 분명해 보였다.하문준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조카를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호위대는 먼저 죽이고 나중에 보고해도 된다는 말은 내가 한 것이 분명해.”“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어쩔 수 없이 불법적으로 침투를 해야 한다는 것도 이해해.”“네가 문주령을 깨뜨려도 난 너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이 없어.”“어쨌든 난 항상 호위대의 일을 지지해왔고 호위대가 있었기에 우리 가문의 기강을 확실히 할 수 있었으니까.”“하지만 넌 가든 별장을 장악한 후 규칙에 따르지 않고 모조리 죽이려고만 했어. 문주 부인을 존중하지도 않았어.”“심지어 호위대를 움직이면서도 나에게는 한마디 보고도 없었어.”“오늘 밤 내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너의 숙모, 문주 부인까지 해치울 심산이었어?”그러자 하문준은 손을 뻗어 하구봉의 턱을 잡고 옆으로 휙 젖히며 담담하게 말했다.“노부인 생신 후에 하구천이 후계자로 올라설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그
”넌 호위대를 이끌고 가든 별장을 포위하고 문주령을 부쉈어. 제멋대로 날뛰며 행동했지.”“만약 네가 절차를 밟았다면 나한테 전화를 했겠지. 이것이 규칙을 준수하는 거니까.”“그랬다면 너의 행동을 이해해 줄 수도 있었을 거야.”“심지어 평화롭게 말로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였어. 이렇게 망신을 당하는 일까지는 없었을 거라고.”“여러 말하지 않겠어.”“내가 오랫동안 호위대를 아끼고 중요시했다는 걸 이용해 넌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로 남용했어.”“넌 내가 호위대를 위해 오랫동안 해 온 모든 가치를 유린했어!”“하구봉, 정말 실망이야.”말을 마친 하문준은 한숨 섞인 눈으로 하구봉을 바라보았다.머뭇거리는 듯한 하구봉의 눈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때 호위대 요원들이 하나둘 서로의 눈을 마주 보다가 갑자기 무릎을 털썩 꿇었다.“잘못했습니다, 문주님.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무릎을 꿇은 사람들을 보고 하구봉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는 이 남자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 평생 일어설 생각을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하구봉은 갑자기 웃으며 입을 열었다.“숙부님, 제가 숙부님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여기 온 것은 행화루의 저격수를 잡기 위해서였습니다.”“혹시라도 다른 저격수들이 항성에 잠복해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의 고위층들을 노릴까 봐 염려되었기 때문이죠.”“누가 다칠까 봐 조바심이 났던 겁니다!”“제가 잘못했다고 하시면 사과드리겠습니다.”“문주 부인께도 사과드리겠습니다!”“부인께서 불편하셨다면 제 뺨을 후려갈기셔도 좋습니다. 절대로 피하지 않겠습니다.”하구봉은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지 보여주려는 듯 부러진 왼손과 손바닥 자국이 나 있는 얼굴을 일부러 드러내 보였다.두 발 전진을 위한 한 발 후퇴였다.하구봉은 이런 이치를 아주 능숙하게 써먹었다.하문준이 조금만 아량을 베풀어 가볍게 풀어줄 의향이 있다면 그 기회를 틈타 하현을
”네가 이런 놀이를 좋아한다니 나도 같이 놀아 줘야지.”“내가 빼낸 총알 다섯 개는 항도 하 씨 가문의 다섯 집을 대표하는 거야. 그나마 너의 체면을 세워 준 거라고.”“마지막 총알은 한 남자가 남편으로서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면 돼.”“그다음은 모든 것이 너의 운에 달렸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문준은 직접 리볼버 권총을 들고 하구봉의 오른쪽 어깨에 들이댔다.그리고 덤덤한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겼다.“탕!”굉음과 함께 하구봉의 온몸이 움찔거리더니 거대한 힘에 이끌려 그대로 날아갔다.땅바닥에 널브러지는 순간 하구봉은 온몸을 미친 듯이 떨며 비명을 지르려는 본능을 부여잡고 이를 악물었다.총알 하나가 회전탄창에 들어 있는 총이었는데 그것이 적중해 버리다니 하구봉이란 놈은 운이 정말 나빴다.하현은 하문준을 유심히 쳐다보았다.항도 하 씨 가문의 문주는 역시 달랐다.능력도 있고 기백도 출중했다.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만약 이 정도 능력도 없었다면 그가 어떻게 항도 하 씨 가문을 호령할 수 있겠는가?하구봉은 끊임없이 몸을 꿈틀거리며 움직여 보려고 애썼지만 두 손이 모두 망가져 죽어 가는 개처럼 땅바닥을 헤매고 있었다.호위대 요원들은 모두 무릎을 꿇은 채 아무도 감히 그를 부축하려 들지 않았다.순간 하구봉의 눈 깊숙이 원망의 빛이 가득 차올랐다.과거에는 그가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몇 마디 훈계로 끝났었다.후사가 없던 하문준은 항상 조카들을 소중하게 여겼다.정말 화가 나더라도 기껏해야 뺨을 몇 대 때리고 발길질을 한 것이 다였다.항도 하 씨 가문 자제들에겐 훈육의 일환으로서 여겨졌다.그러나 하문준이 직접 총을 들고 하구봉을 쏘아 오른팔을 망가뜨려 놓다니!하구봉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은 하구봉에게 있어서 삶의 큰 수치일 뿐만 아니라 그의 미래도 끝났음을 의미했다.게다가 자신은 가문의 셋째 아들 자제였다.자신의 아버지는 항도 하 씨 가문 셋째 아들
”첫째, 오늘부터 호위대는 주인이 바뀌어 하운빈이 책임지고 원래 책임자였던 하구봉은 가문의 집법당으로 보내 심문하기로 한다.”“둘째, 항도 하 씨 가문 가든 별장은 금지 구역으로 지정한다. 앞으로 내 명령이 없으면 누구도 이곳에서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셋째, 하현은 용문 집법당 당주로서 존귀한 신분이다. 지금부터는 내 귀빈이며 항성과 도성에서는 나의 신분과 동등하다.”“하현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자는 나 하문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자로 여길 것이다.”“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말을 마친 하문준의 시선이 하현에게로 향했고 희미한 감사의 빛이 두 사람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하현은 하문준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문주께서 이리 호의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하현은 자신이 그동안 항성과 도성에서 한 일을 하문준이 분명 알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모든 것을 알고도 하현을 귀빈으로 대한다는 것에서 하문준은 자신의 의사을 확실히 표한 것이었다.우산을 받쳐주던 사여빈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몇 번 쳐다보았다.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평범해 보이지만 범상치 않은 눈빛을 띤 이 남자를 문주가 왜 이렇게 귀하게 대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그러나 그녀는 군말 없이 문주의 명령을 받들며 고개를 숙였다.“예, 알겠습니다!”바닥에 쓰러져 있던 하구봉은 ‘가문 집법당'이라는 말을 듣고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얼굴에 핏기를 잃어갔다.“숙부님, 전 숙부님의 조카입니다!”“지금까지 항상 숙부님께 충성을 다해 왔는데 절 이렇게 대하시면 안 됩니다!”“숙부님!”하문준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가든 별장 깊은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마치 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반면 사여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고 문주 친위대들이 하구봉을 붙잡고 헬기로 들여보냈다.거센 폭풍이 몰아친 밤이었다.하구봉은 실각하고 하운빈이 호위대 수장에 오른 것은 앞으로 항도 하 씨 가문에 몰아칠 거센
”괜찮아요.”당난영이 돌아보며 환한 미소로 하문준에게 화답했다.그녀의 눈빛에는 미안함이 가득 고여 있었다.“지난 십 년 동안 내가 당신을 너무 외롭게 했어요.”“아이를 잃은 슬픔 때문에 마음이 텅 비어 버렸죠. 그래서 당신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어요.”“나의 이런 모습이 당신한테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 당신 마음속에 늘 걱정거리를 안겨주었어요.”“게다가 아이를 잃은 후에는 다시 또 아이를 낳을 엄두도 내지 못했고 어머님은 당신에게 하구천을 양아들로 들이라고 계속 강요하셨죠.”“그런 이유로 하구천은 가문에서 적지 않은 권세를 갖게 되었고 결국 그것이 당신을 위기로 몰았어요.”“다 나 때문이에요. 나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거라구요.”당난영의 말에 하문준은 정신이 멍해졌다.줄곧 우울한 채 죽은 사람처럼 지내던 아내가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헤아려 줄줄은 몰랐다.전에 하인에게 전해 듣기로 하현이 아내의 마음의 병을 고쳤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었단 말인가?당난영의 마음속 병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맥을 동원하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른다.하지만 단 한 번도 효과가 없었다.그런데 하현은 당난영의 뺨을 몇 대 때린 것으로 그녀를 정상으로 돌려놓은 것이다.하문준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눈앞에서 당난영을 확인하기 전까지 그는 도저히 믿을 수도 없어서 하현을 만나면 제대로 혼을 내줘야겠다고 나름 벼르고 있었다.그런데 정상으로 돌아온 당난영의 모습을 보니 그는 하현을 원망하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하문준은 당난영의 손을 잡고 속삭이듯 말했다.“난 당신을 탓한 적이 없어.”“아이를 잃은 슬픔이 얼마나 아픈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야.”“하지만 이제 다 지나간 일이니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있어.”당난영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하게 굳어졌다.“아뇨,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하문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당난영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난 이미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