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네 번째도 공포탄이었지만 폭탄을 두른 호위대 요원은 식은땀을 계속 흘렸다.다른 요원들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 놀란 눈을 껌뻑거렸다.앞의 세 발은 어찌저찌 참을 수 있었지만 방금 전의 한 발은 마치 저승길 문턱까지 갔다 온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하운빈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호위대의 총을 빼앗고 싶었지만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상대방이 어떤 충동적인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죽음의 먹구름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덮치자 모두 오한을 일으키며 덜덜 떨었다.하구봉은 음흉한 미소를 보이며 몸을 비틀었다.“하 씨, 당신이 날 놓아주지 않고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으면 다음 한 방에 우리 모두가 죽을지도 몰라!”“그래?”하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순간 하현은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몸을 움직였다.강력한 폭약을 몸에 두른 호위대 요원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얼른 그의 손에 있던 리볼버 권총을 빼앗았다.“개자식!”하구봉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이를 갈았다.하지만 하현은 하구봉을 힐끔 쳐다보다가 강력한 폭약을 두른 호위대 요원에게 직접 리볼버 권총을 겨누었다.하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하구봉, 당신이 이렇게 놀기를 좋아하니 나도 당신 놀음에 놀아 줄 수밖에 없지!”“이 총에는 두 번의 기회가 더 있어.”“첫 번째 기회에 다 같이 죽든지, 두 번째 기회에 다 같이 죽든지!”“이제 선택은 당신한테 달렸어!”하현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자, 스스로 오른손을 망가뜨리고 무릎을 꿇고 당난영 부인께 머리를 조아려 잘못을 인정해.”“그렇지 않으면 바로 쏴 버릴 거야!”하구봉은 눈살을 찌푸리며 어리둥절해하다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흥! 하 씨! 감히 네까짓 것이 날 협박해?”“너희 내륙 놈들은 하나같이 목숨을 아까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군!”“능력이 있거든 어서 쏴!”“당신이 그 총을 쏘지 않으면 당신은 개자식이야!”
미친 사람처럼 날뛰던 하구봉이 마지막 순간에 겁을 먹고 꽁무니를 뺄 줄은 아무도 몰랐다.하구봉 자신도 이렇게 미친 짓을 할 줄은 몰랐지만 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기는 미친 짓을 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엄마를 외치며 꽁무니를 빼는 하구봉의 모습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런 반응도 할 수가 없었다.이것이 미친 듯이 날뛰던 하구봉의 민낯인가?하구봉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하던 사람들이 순간 갑자기 정적에 휩싸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폭발하지 않은 건가?왜? 어떻게 폭발하지 않았지?총을 쏘면 모두가 부둥켜안고 다 함께 죽는 게 아니었던가?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지?공포에 떨었던 하구봉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하지만 이 짧은 순간에도 하구봉은 틈새를 비집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생사를 걸고 모든 사람을 협박하던 하구봉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엄마를 부르짖으며 꽁무니를 빼다니...순간 하구봉은 자신이 맹인호와 같은 급으로 취급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울어버린 것이다.사람들의 모든 이목은 한가운데 있는 하현에게 떨어졌다.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리볼버 권총을 쳐다보았다.“걸렸나?”“다들 운이 좋은가 봐.”심드렁하게 말을 내뱉은 하현은 다시 리볼버를 들고 강력한 폭약을 몸에 두른 호위대 요원을 겨누었다.방아쇠를 당긴 순간 ‘펑'하는 소리는 났지만 총알은 나오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현이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부여잡아야만 했다.비록 총알은 나오지 않았지만 살 떨리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호위대 요원들의 얼굴은 보기 힘들 정도로 새하얗게 빛을 잃어갔다.그들이 평소에 아무리 날뛰고 거칠 것이 없던 사람들이었어도 대장이 엄마를 찾으며 울부짖는 마당에 제대로 정신줄을 부여잡기 힘들 것이다.호위대는 오늘부터 항성과 도성에서 가장 큰 웃음거리로 전락할 판이었다.“재미없군. 총을 바꿔서 놀아 봐야겠어.”하현이 리볼버
하구봉은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딱 봐도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하현은 도무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하구봉 자신보다 훨씬 악독한데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따로 없었다.하구봉은 마음속으로 잔뜩 겁을 집어먹었지만 오랫동안 고귀한 몸으로 살아온지라 이 순간만큼은 존엄을 다 내려놓고 용서를 빌 수 없었다.게다가 지금 이렇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면 하구봉이든 호위대든 항성과 도성에선 분명 큰 웃음거리가 될 거라는 건 뻔한 일이었다.“당신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어. 오른손을 부러뜨리고 당난영 부인께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사죄해.”“아니면 가만히 앉아서 당신의 죽음을 기다리든지.”하운빈의 입에서 하구봉이 어떤 운명에 처했는지 상세한 설명이 흘러나왔다.하구봉은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렸다가 뭔가 결심이 선 듯 자신의 오른손을 붙잡았다.그때였다.하늘의 장막이 걷히기라도 할 듯 갑자기 큰 굉음이 들려왔다.그러자 열 대의 거대한 검은색 헬기가 쉭쉭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멀리서 바다를 가르며 위엄 서린 아우라를 풍기는 무장 헬기였다.사람들이 어리둥절한 채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한 사이 무장 헬기는 어느새 가든 별장 정수리를 향해 날아왔다.그리고 헬기에서 거대한 총 한 자루가 머리를 내밀더니 현장에 있던 호위대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그때 허공에서 호령하듯 냉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여기는 항도 하 씨 가문 문주 친위대다.”“이제부터 여기는 우리가 인수하겠다.”“총을 버리면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산신령 같은 목소리가 하늘을 뒤덮자 얼굴을 가리고 있던 하구봉의 안색이 흙빛이 되었다!호위대 요원들은 하나같이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며 손에 든 총을 땅바닥에 풀썩 떨어뜨렸다.항성과 도성에서 감히 문주 친위대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문주 친위대였다.누가 감히 그 앞에서 함부로 할 수 있겠는가?하운빈은 그제야 정신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문주께서 돌아오셨군.”하
호위대도 가든 별장 경호원도 하인들도 모두 지금 이 순간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항상 오만하고 흉악했던 하구봉은 하문준 앞에서 갑자기 자신이 어릿광대처럼 우습고 어리석어 보였다.그의 광기, 히스테리도 이 남자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잠시 후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숙여 공손히 말했다.“문주님 오셨습니까?”하현만이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눈앞의 카리스마를 풍기는 중년 남자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하문준이 이번에 항성에 온 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오늘 밤 호위대를 맞서는 일에 혼자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당난영과 가든 별장이 받은 수모와 억울함은 반드시 공명정대하게 처리될 것이다.이렇게 하면 하현 자신도 많은 힘을 아낄 수 있다.웃는 듯 마는 듯한 하현의 시선 속에서 하구봉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얼굴을 가리고 하문준 앞으로 다가가 공손히 한마디 내뱉었다.“숙부님 오셨습니까?”하구봉은 항도 하 씨 가문의 약한 고리라도 이용해 살아갈 구멍을 찾느라 안간힘을 쓰는 게 분명해 보였다.하문준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조카를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호위대는 먼저 죽이고 나중에 보고해도 된다는 말은 내가 한 것이 분명해.”“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어쩔 수 없이 불법적으로 침투를 해야 한다는 것도 이해해.”“네가 문주령을 깨뜨려도 난 너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이 없어.”“어쨌든 난 항상 호위대의 일을 지지해왔고 호위대가 있었기에 우리 가문의 기강을 확실히 할 수 있었으니까.”“하지만 넌 가든 별장을 장악한 후 규칙에 따르지 않고 모조리 죽이려고만 했어. 문주 부인을 존중하지도 않았어.”“심지어 호위대를 움직이면서도 나에게는 한마디 보고도 없었어.”“오늘 밤 내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너의 숙모, 문주 부인까지 해치울 심산이었어?”그러자 하문준은 손을 뻗어 하구봉의 턱을 잡고 옆으로 휙 젖히며 담담하게 말했다.“노부인 생신 후에 하구천이 후계자로 올라설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지?”“그
”넌 호위대를 이끌고 가든 별장을 포위하고 문주령을 부쉈어. 제멋대로 날뛰며 행동했지.”“만약 네가 절차를 밟았다면 나한테 전화를 했겠지. 이것이 규칙을 준수하는 거니까.”“그랬다면 너의 행동을 이해해 줄 수도 있었을 거야.”“심지어 평화롭게 말로 해결할 수도 있는 문제였어. 이렇게 망신을 당하는 일까지는 없었을 거라고.”“여러 말하지 않겠어.”“내가 오랫동안 호위대를 아끼고 중요시했다는 걸 이용해 넌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로 남용했어.”“넌 내가 호위대를 위해 오랫동안 해 온 모든 가치를 유린했어!”“하구봉, 정말 실망이야.”말을 마친 하문준은 한숨 섞인 눈으로 하구봉을 바라보았다.머뭇거리는 듯한 하구봉의 눈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때 호위대 요원들이 하나둘 서로의 눈을 마주 보다가 갑자기 무릎을 털썩 꿇었다.“잘못했습니다, 문주님.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무릎을 꿇은 사람들을 보고 하구봉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는 이 남자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 평생 일어설 생각을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하구봉은 갑자기 웃으며 입을 열었다.“숙부님, 제가 숙부님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여기 온 것은 행화루의 저격수를 잡기 위해서였습니다.”“혹시라도 다른 저격수들이 항성에 잠복해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의 고위층들을 노릴까 봐 염려되었기 때문이죠.”“누가 다칠까 봐 조바심이 났던 겁니다!”“제가 잘못했다고 하시면 사과드리겠습니다.”“문주 부인께도 사과드리겠습니다!”“부인께서 불편하셨다면 제 뺨을 후려갈기셔도 좋습니다. 절대로 피하지 않겠습니다.”하구봉은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지 보여주려는 듯 부러진 왼손과 손바닥 자국이 나 있는 얼굴을 일부러 드러내 보였다.두 발 전진을 위한 한 발 후퇴였다.하구봉은 이런 이치를 아주 능숙하게 써먹었다.하문준이 조금만 아량을 베풀어 가볍게 풀어줄 의향이 있다면 그 기회를 틈타 하현을
”네가 이런 놀이를 좋아한다니 나도 같이 놀아 줘야지.”“내가 빼낸 총알 다섯 개는 항도 하 씨 가문의 다섯 집을 대표하는 거야. 그나마 너의 체면을 세워 준 거라고.”“마지막 총알은 한 남자가 남편으로서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면 돼.”“그다음은 모든 것이 너의 운에 달렸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문준은 직접 리볼버 권총을 들고 하구봉의 오른쪽 어깨에 들이댔다.그리고 덤덤한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겼다.“탕!”굉음과 함께 하구봉의 온몸이 움찔거리더니 거대한 힘에 이끌려 그대로 날아갔다.땅바닥에 널브러지는 순간 하구봉은 온몸을 미친 듯이 떨며 비명을 지르려는 본능을 부여잡고 이를 악물었다.총알 하나가 회전탄창에 들어 있는 총이었는데 그것이 적중해 버리다니 하구봉이란 놈은 운이 정말 나빴다.하현은 하문준을 유심히 쳐다보았다.항도 하 씨 가문의 문주는 역시 달랐다.능력도 있고 기백도 출중했다.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만약 이 정도 능력도 없었다면 그가 어떻게 항도 하 씨 가문을 호령할 수 있겠는가?하구봉은 끊임없이 몸을 꿈틀거리며 움직여 보려고 애썼지만 두 손이 모두 망가져 죽어 가는 개처럼 땅바닥을 헤매고 있었다.호위대 요원들은 모두 무릎을 꿇은 채 아무도 감히 그를 부축하려 들지 않았다.순간 하구봉의 눈 깊숙이 원망의 빛이 가득 차올랐다.과거에는 그가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몇 마디 훈계로 끝났었다.후사가 없던 하문준은 항상 조카들을 소중하게 여겼다.정말 화가 나더라도 기껏해야 뺨을 몇 대 때리고 발길질을 한 것이 다였다.항도 하 씨 가문 자제들에겐 훈육의 일환으로서 여겨졌다.그러나 하문준이 직접 총을 들고 하구봉을 쏘아 오른팔을 망가뜨려 놓다니!하구봉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은 하구봉에게 있어서 삶의 큰 수치일 뿐만 아니라 그의 미래도 끝났음을 의미했다.게다가 자신은 가문의 셋째 아들 자제였다.자신의 아버지는 항도 하 씨 가문 셋째 아들
”첫째, 오늘부터 호위대는 주인이 바뀌어 하운빈이 책임지고 원래 책임자였던 하구봉은 가문의 집법당으로 보내 심문하기로 한다.”“둘째, 항도 하 씨 가문 가든 별장은 금지 구역으로 지정한다. 앞으로 내 명령이 없으면 누구도 이곳에서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셋째, 하현은 용문 집법당 당주로서 존귀한 신분이다. 지금부터는 내 귀빈이며 항성과 도성에서는 나의 신분과 동등하다.”“하현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자는 나 하문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자로 여길 것이다.”“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말을 마친 하문준의 시선이 하현에게로 향했고 희미한 감사의 빛이 두 사람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하현은 하문준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문주께서 이리 호의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하현은 자신이 그동안 항성과 도성에서 한 일을 하문준이 분명 알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모든 것을 알고도 하현을 귀빈으로 대한다는 것에서 하문준은 자신의 의사을 확실히 표한 것이었다.우산을 받쳐주던 사여빈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몇 번 쳐다보았다.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평범해 보이지만 범상치 않은 눈빛을 띤 이 남자를 문주가 왜 이렇게 귀하게 대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그러나 그녀는 군말 없이 문주의 명령을 받들며 고개를 숙였다.“예, 알겠습니다!”바닥에 쓰러져 있던 하구봉은 ‘가문 집법당'이라는 말을 듣고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얼굴에 핏기를 잃어갔다.“숙부님, 전 숙부님의 조카입니다!”“지금까지 항상 숙부님께 충성을 다해 왔는데 절 이렇게 대하시면 안 됩니다!”“숙부님!”하문준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가든 별장 깊은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마치 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반면 사여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고 문주 친위대들이 하구봉을 붙잡고 헬기로 들여보냈다.거센 폭풍이 몰아친 밤이었다.하구봉은 실각하고 하운빈이 호위대 수장에 오른 것은 앞으로 항도 하 씨 가문에 몰아칠 거센
”괜찮아요.”당난영이 돌아보며 환한 미소로 하문준에게 화답했다.그녀의 눈빛에는 미안함이 가득 고여 있었다.“지난 십 년 동안 내가 당신을 너무 외롭게 했어요.”“아이를 잃은 슬픔 때문에 마음이 텅 비어 버렸죠. 그래서 당신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어요.”“나의 이런 모습이 당신한테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 당신 마음속에 늘 걱정거리를 안겨주었어요.”“게다가 아이를 잃은 후에는 다시 또 아이를 낳을 엄두도 내지 못했고 어머님은 당신에게 하구천을 양아들로 들이라고 계속 강요하셨죠.”“그런 이유로 하구천은 가문에서 적지 않은 권세를 갖게 되었고 결국 그것이 당신을 위기로 몰았어요.”“다 나 때문이에요. 나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거라구요.”당난영의 말에 하문준은 정신이 멍해졌다.줄곧 우울한 채 죽은 사람처럼 지내던 아내가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헤아려 줄줄은 몰랐다.전에 하인에게 전해 듣기로 하현이 아내의 마음의 병을 고쳤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었단 말인가?당난영의 마음속 병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인맥을 동원하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른다.하지만 단 한 번도 효과가 없었다.그런데 하현은 당난영의 뺨을 몇 대 때린 것으로 그녀를 정상으로 돌려놓은 것이다.하문준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눈앞에서 당난영을 확인하기 전까지 그는 도저히 믿을 수도 없어서 하현을 만나면 제대로 혼을 내줘야겠다고 나름 벼르고 있었다.그런데 정상으로 돌아온 당난영의 모습을 보니 그는 하현을 원망하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하문준은 당난영의 손을 잡고 속삭이듯 말했다.“난 당신을 탓한 적이 없어.”“아이를 잃은 슬픔이 얼마나 아픈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야.”“하지만 이제 다 지나간 일이니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있어.”당난영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하게 굳어졌다.“아뇨,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하문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당난영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난 이미 내가 가진 모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