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불복하려고요?”하현은 앞으로 나서서 손을 내밀어 하구봉의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불복하고 날 죽이기라도 하려고요?”“감히 날?”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하는 하현을 보고 있자니 하구봉의 눈에는 분노의 경련이 일렁거렸다.순간 그는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바로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하현의 이마에 갖다 대었다.“하 씨, 그 입 닥쳐!”“잘 들어!”“여기는 항도 하 씨 가문이 지배하는 곳이야!”“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날아다니는 용도 감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해, 호랑이 같은 맹수라도 엎드려 있어야 한다구!”“우리 항도 하 씨 가문 영역에서 감히 당신 따위가 날뛰고 있을 차례가 아니야!”“똑똑히 새겨들어. 저격수가 당신을 다치게 했든 안 했든, 당신네 용문이 날 심문하든 안 하든 난 눈도 깜짝하지 않을 거야!”“난 딱 한 가지만 알면 돼! 사람을 넘겨줄 거야? 말 거야?”“사람을 넘겨주지 않겠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난 당신네 용문의 체면 따위 절대 봐주지 않을 거니까! 나중에 원망이나 하지 마!”“당신이 버틸 수도 있을 거라는 거 알아. 하지만 버틴다면 총 앞에서도 굳건하게 버틸 자신이 있어야 할 거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십 명에 가까운 호위대 요원들이 동시에 총구를 꺼내어 하현을 향해 일제히 겨누었다.하구봉의 한 마디면 호위대 요원들은 당장에라도 하현의 온몸을 벌집 쑤시듯 총알을 박아 넣을 것 같았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을 지을 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그는 그저 빙긋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내 손에 있는 사람을 데려가고 싶거든 당신의 진짜 실력을 좀 보여줘야 할 겁니다.”“하구봉 당신의 실력과 총알 수십 발만 믿고 그런 말을 한다면 큰 코 다칠 거라구요!”“뭐?”하구봉은 냉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내 말 잘 들어. 우리 항도 하 씨 가문 앞에서는 용전도, 용옥도, 용위도 아무 소용없어. 당신을 포함한 용문도 마찬가지야!”“4대 초석,
호위대가 겁을 먹고 꼼짝도 못 하며 기가 눌린 듯이 서 있자 하구봉은 분노에 휩싸였다.그는 손을 번쩍 흔들며 냉소적으로 말했다.“이놈이 사람을 내놓지 않겠다니 어서 이놈을 잡아!”“내 말을 거역하는 자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하구봉의 명령을 듣고 호위대 요원들은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절대적인 명령 앞에서는 두려움도 뭣도 버리고 오로지 돌진해야만 했다.섬뜩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총구가 하현의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호위대가 한 발 한 발 천천히 다가왔다.마치 하현이 갑작스럽게 반격해 올까 봐 겁을 먹은 듯 조심스러워 보였다.하현은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날 감당할 수 있겠냐고 내가 말했었지?”말 한마디 동작 하나하나에 위엄이 가득 서려 있었다.만고의 푸른 하늘을 짓누르는 듯한 기운이 퍼져와 호위대 요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마치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총기를 겨누는 것은 일종의 신성 모독이자 무례한 짓을 범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호위대 요원들의 소극적인 자세에 하구봉의 얼굴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그는 눈을 흘기며 하현을 노려보았다.“하 씨, 당신도 실력이 출중하다는 거 알아.”“당신이 직접 미야타 신노스케를 죽인 것도 잘 알고 있고.”“신당류의 풍뢰팔자도 단숨에 제압했다더군.”“텐푸 쥬시로는 감히 당신과 정면으로 맞서지도 못했고 말이야!”“정말 대단하고 강해! 하지만 당신 이거 생각해 본 적 있어?”“당신이 말하는 그 실력이라는 게 총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당신 혼자서 우리 호위대의 총 오십 자루를 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당신이 우리 호위대를 어찌저찌 물리쳤다고 해도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에는 삼천 명의 호위무사가 있어!”“정 안 되면 항성과 도성에 흩어져 있는 각 세력들을 모두 동원할 수도 있어. 아마 십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족히 팔만은 넘을 거야!”“혼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겠어?”“용문
하구봉의 얼굴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그는 애써 화를 가라앉힌 후 냉정을 되찾아 입을 열었다.“내 기억이 맞다면 당난영 부인은 분명 문주 부인이지만 십 년 전부터 아들을 잃은 아픔 때문에 항도 하 씨 가문의 지위와 권세를 포기한 걸로 아는데.”“우리가 가문 법규를 어겼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우선 당난영이 문주 부인으로서 병든 환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여야 할 거야.”“당신이 관 뚜껑을 보기 전까지는 인정하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아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한 뒤 하운빈에게 손을 내밀었다.하운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품에서 금빛 영패를 꺼내 하현의 손에 조심스럽게 놓았다.하현은 ‘퍽'하고 금빛 영패를 하구봉의 얼굴에 내리치며 차갑게 말했다.“눈 똑바로 뜨고 똑똑히 보세요!”“항도 하 씨 가문 문주령. 당신들의 문주는 문주 부인을 보호할 영패를 보내셨죠!”“문주를 아뢰듯 이 영패를 보아야 할 겁니다!”“죄를 지었으니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제 집 물건 가져가듯이 편안하게 사람을 데려가겠다고요? 가든 별장을 풍비박산 내겠다고요?”“내 말 똑똑히 들어요. 하구봉 당신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신 뒤에 있는 하구천이 여기에 온다고 해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없을 거예요!”“그래?”하구봉의 얼굴이 일순 얼어붙으며 하현을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그는 손에 든 총을 돌려 금빛 영패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펑'하는 소리와 함께 영패는 순식간에 박살이 나 버렸고 더 이상 원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하구봉은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문주령이 어디 있어? 난 못 봤는데!”“문주령이 없으면 이 땅에선 우리 호위대가 제일 힘이 세!”말을 마치며 하구봉은 차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반항하는 자는 즉각 사살해도 좋다!”“다 부숴버려!”호위대 요원들이 움직이려던 찰나였다.하현은 얼른 한 걸음 먼저 앞서 손바닥을 휘갈겼다.“퍽!”하구봉은 피할
냉담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였지만 하현이 풍기는 기세는 호위대 요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충분했다.호위대 요원들은 이를 보고 감히 앞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지금 이 순간 하현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는 미야타 신노스케도 한 발로 밟아 죽인 인물이었다.창술만 수련하고 무학을 수련하지 않은 하구봉은 일찌감치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결국 하구봉은 하현의 발길질에 저절로 무릎을 꿇은 꼴이 되었다.하구봉의 눈가는 계속 경련을 일으키며 더욱더 볼썽사나운 얼굴이 되어 갔다.그는 하현이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분명히 하현은 열세였다.그런데 감히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때리다니!게다가 한 발로 그를 땅바닥에 주저앉히다니!하구봉은 처음으로 하현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어쩐지 하구천 같은 인물이 하현을 맞서는데 주저하더라니!하구천이 예전만 못한 것이 아니라 하현의 실력이 너무나 강하고 위협적이었기 때문이었다.적어도 지금까지 하구봉의 기억 속에 내륙에서 온 내로라할 강자 중에 이렇게 함부로 손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개자식! 어서 하구봉 대장님을 놓아줘!”“당장 풀어줘! 그렇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야!”“개자식아! 여기가 누구 땅인지 알기나 해?!”호위대 요원들은 마침내 정신을 차린 듯 하나같이 총구를 들고 하현을 향해 겨누며 욕을 퍼부었다.하운빈도 짐짓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조용히 말했다.“하현,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하구봉을 죽이면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어.”“어쨌든 그는 항도 하 씨 가문 셋째 아들이니까.”하구봉은 분노가 가득 담긴 눈으로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하 씨, 당신 나 잘못 건드린 거야.”하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항성과 도성에서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적지 않았지.”“곽영준, 진태유, 무카이 나오토...”“너무 많아. 너무 많아서 도대체 몇 명인지도 모르겠어.”“그런데 내게
살기는 광기로 번졌다.모두가 살기 어린 광기를 띤 채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하구봉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졌고 이제는 비명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그의 입가에선 사악한 웃음기만이 감돌았다.“하 세자, 집법당 당주, 배짱 한번 좋으시군!”“감히 내 손을 밟아 부러뜨려?!”“그렇지만 잘 들어.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당신 손목을 부러뜨릴 수밖에!”“당신은 감히 날 밟아 죽일 수 없어!”“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결국 당신은 겁을 먹었단 얘기야!”“당신은 날 이길 수 없는 운명이라고!”“배짱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날 죽여 보시든가!”“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죽여 버릴 테니까!”“지금이라도 어서 내가 원하는 사람을 내놓지 그래?”“다른 선택이 없을 텐데. 있다면 어디 한번 해 보셔!”말을 마친 하구봉은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분명 왼손이 망가진 상태였지만 마치 흥분제라도 먹은 사람처럼 포악하고 흉측한 얼굴이 되었다.매섭게 눈을 뜨고 자신을 노려보는 하구봉을 보면서 하현은 이 사람이 진정으로 기개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만큼 미쳐 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예전에 항성 S4 중 한 명인 맹인호도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구봉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졌다.항성과 도성에서 오랜 세월 동안 항도 하 씨 가문이 우뚝 설 수 있었던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듯했다.이렇게 기개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하현은 이번에는 왼발을 들어 하구봉의 오른손을 밟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오늘 밤 내가 여기 있는 한 당신은 아무도 데려갈 수 없어.”“당신 하나 죽이는 것에는 난 관심 없어.”“하지만 당신 오른손도 가만히 내버려둘 순 없어. 오른손도 왼손처럼 만들어 놔야지!”“당신은 절세의 총잡이였잖아? 백발백중 아니었어?”“두 손이 다 망가진 후에 절세의 총잡이께서 어떻게 소란을 피우실지 내가 똑똑히 두고 볼게.”“내 두 손을
”악!”이 총은 공포탄이었지만 가든 별장의 많은 하인들은 모두 소스라치게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하구봉의 수법은 너무나 악랄했다.요원들을 모두 데리고 자살 폭탄 테러를 하려 하다니 간담이 서늘했다.누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하구봉은 다시 흉악한 미소를 짓더니 손가락을 까딱했다.“펑!”강력한 폭약을 몸에 두른 호위대 요원은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이번에도 공포탄이었지만 그 과정은 가든 별장 경호원과 하인들을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모두 호위대의 광기에 놀라 겁을 먹고 물러섰다.미치광이 같은 하구봉의 놀음에 혹여라도 목숨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하운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하구봉, 이 개자식아!”“부인께 변고가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고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 같아!?”“하하하하.”“그때가 되면 아마 모두 부둥켜안고 저승길에서 길동무가 되어 있을 텐데 무슨 목숨 따위가 필요하겠어?”“저승에 갈 배짱이 있다면 날 죽여 보시든가!”험상궂은 얼굴을 한 하구봉은 하늘을 향해 미친 듯이 웃으며 자신의 오른손을 밟고 있는 하현을 노려보았다.“하 씨, 능력이 있으면 날 죽여 봐!”“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내 명령에 당장이라도 총알받이 신세가 될 테니까!”“당신이 총에 맞아 죽을지 우리가 모두 부둥켜안고 죽을지는 아무도 몰라!”“어때?”“너무 짜릿하지 않아?”“너무 재미있지? 아주 신나 죽겠지?”하구봉은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날 짓밟았어? 협박을 해? 감히 날 때려?”“당신은 내가 맹인호처럼 바보 멍청이인 줄 아나 본데.”“잘 들어. 난 시체산과 피바다를 헤쳐 나왔어. 세상에서 가장 두렵지 않은 것이 너 따위 놈의 위협이고 모두가 함께 죽는 거야!”하현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하구봉은 다시 손가락을 까딱했다.“펑!”운이 좋아서 앞의 두 발은 공포탄이었지만 경호원과 하인들은 모두 겁에 질릴 대로 질려 있었다.공포탄 수
”펑!”네 번째도 공포탄이었지만 폭탄을 두른 호위대 요원은 식은땀을 계속 흘렸다.다른 요원들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 놀란 눈을 껌뻑거렸다.앞의 세 발은 어찌저찌 참을 수 있었지만 방금 전의 한 발은 마치 저승길 문턱까지 갔다 온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하운빈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호위대의 총을 빼앗고 싶었지만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상대방이 어떤 충동적인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죽음의 먹구름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덮치자 모두 오한을 일으키며 덜덜 떨었다.하구봉은 음흉한 미소를 보이며 몸을 비틀었다.“하 씨, 당신이 날 놓아주지 않고 무릎 꿇고 사과하지 않으면 다음 한 방에 우리 모두가 죽을지도 몰라!”“그래?”하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순간 하현은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몸을 움직였다.강력한 폭약을 몸에 두른 호위대 요원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얼른 그의 손에 있던 리볼버 권총을 빼앗았다.“개자식!”하구봉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이를 갈았다.하지만 하현은 하구봉을 힐끔 쳐다보다가 강력한 폭약을 두른 호위대 요원에게 직접 리볼버 권총을 겨누었다.하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하구봉, 당신이 이렇게 놀기를 좋아하니 나도 당신 놀음에 놀아 줄 수밖에 없지!”“이 총에는 두 번의 기회가 더 있어.”“첫 번째 기회에 다 같이 죽든지, 두 번째 기회에 다 같이 죽든지!”“이제 선택은 당신한테 달렸어!”하현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자, 스스로 오른손을 망가뜨리고 무릎을 꿇고 당난영 부인께 머리를 조아려 잘못을 인정해.”“그렇지 않으면 바로 쏴 버릴 거야!”하구봉은 눈살을 찌푸리며 어리둥절해하다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흥! 하 씨! 감히 네까짓 것이 날 협박해?”“너희 내륙 놈들은 하나같이 목숨을 아까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군!”“능력이 있거든 어서 쏴!”“당신이 그 총을 쏘지 않으면 당신은 개자식이야!”
미친 사람처럼 날뛰던 하구봉이 마지막 순간에 겁을 먹고 꽁무니를 뺄 줄은 아무도 몰랐다.하구봉 자신도 이렇게 미친 짓을 할 줄은 몰랐지만 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기는 미친 짓을 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엄마를 외치며 꽁무니를 빼는 하구봉의 모습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런 반응도 할 수가 없었다.이것이 미친 듯이 날뛰던 하구봉의 민낯인가?하구봉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하던 사람들이 순간 갑자기 정적에 휩싸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폭발하지 않은 건가?왜? 어떻게 폭발하지 않았지?총을 쏘면 모두가 부둥켜안고 다 함께 죽는 게 아니었던가?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지?공포에 떨었던 하구봉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하지만 이 짧은 순간에도 하구봉은 틈새를 비집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생사를 걸고 모든 사람을 협박하던 하구봉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엄마를 부르짖으며 꽁무니를 빼다니...순간 하구봉은 자신이 맹인호와 같은 급으로 취급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울어버린 것이다.사람들의 모든 이목은 한가운데 있는 하현에게 떨어졌다.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리볼버 권총을 쳐다보았다.“걸렸나?”“다들 운이 좋은가 봐.”심드렁하게 말을 내뱉은 하현은 다시 리볼버를 들고 강력한 폭약을 몸에 두른 호위대 요원을 겨누었다.방아쇠를 당긴 순간 ‘펑'하는 소리는 났지만 총알은 나오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현이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부여잡아야만 했다.비록 총알은 나오지 않았지만 살 떨리는 순간이었기 때문에 호위대 요원들의 얼굴은 보기 힘들 정도로 새하얗게 빛을 잃어갔다.그들이 평소에 아무리 날뛰고 거칠 것이 없던 사람들이었어도 대장이 엄마를 찾으며 울부짖는 마당에 제대로 정신줄을 부여잡기 힘들 것이다.호위대는 오늘부터 항성과 도성에서 가장 큰 웃음거리로 전락할 판이었다.“재미없군. 총을 바꿔서 놀아 봐야겠어.”하현이 리볼버
진홍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눈꺼풀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파르르 떨렸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자신이 한없이 무시했던 데릴사위가 이렇게 강한 자였다니?!그리고 자신이 의지했었던 남자가 이렇게 나약하게 무릎을 꿇고 얼굴이 부어터지도록 만신창이가 되다니!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복잡한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럽던 진홍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그럴 리가 없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일어나! 모르는 건 죄가 아니야!”장천중과 장용호의 태도를 보고 잠자코 있던 하현이 결국 나서서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다만 앞으로는 꼭 기억해야 해. 우리가 풍수술을 배우는 것은 겉치레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허세를 부리려고 하는 것도 아니야.”만약 오늘 자신이 마침 이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장용호의 서툰 솜씨에 황보정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장용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 꼭 명심할게요! 우리 할아버지에게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지금부터 그 말을 꼭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겠습니다!”하현은 무릎을 꿇고 있는 장용호에겐 더 이상 눈길도 주지 않고 장천중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화자결은 확실히 황보정의 체내에 있는 나쁜 기운과 사악한 기운을 없앨 수 있습니다.”“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기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은 될지 모르나 그녀의 두 눈을 뜨게 할 수는 없습니다!”“작은 배가 안정적으로 항해할 수 있게 하려면 파도도 바람도 잔잔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작은 배의 능력이 충분히 좋아야 멀리 항해할 수 있는 이치와 똑같습니다.”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하현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말을 이었다.“그래서 화자결은 황보정의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아! 화자결로도 해결 못 하는 건가?”장천중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난 하 대사의 방법으로 하면 황보정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할 수 있을
순간 장천중의 얼굴엔 제대로 영글지 못한 모자란 손자를 향한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그 후로도 그는 장용호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어느새 장용호은 피범벅이 된 채 얼굴이 볼썽사납게 부풀어 올랐다.장촌중은 장용호의 멱살을 잡고 바로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무릎을 꿇었다.“대사, 용서해 주게.”“내가 잘못 가르쳤네.”“내가 이놈에게 화자결을 알려줬어!”“배움이 부족한 이놈이 자네 앞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용서해 주게.”“제발 한 번만 봐줘!”대사?!황보동이든 장용호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장천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진홍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라 불리며 대하 풍수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만세당 장천중이 하현을 대사라 칭하며 무릎을 꿇을 줄은!이 소식이 금정 전체에 퍼진다면 아마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이놈아, 잘 들어!”“화자결은 하 대사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신 거야!”이때 장천중은 손을 들어 또다시 장용호의 얼굴을 내리쳤다.장용호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하현은 내 스승일 뿐만 아니라 네 조상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야!”“넌 지금 조상님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보인 거야!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한 거라고! 얼른 용서를 빌어!”장천중은 배움이 모자란 손자가 황보정의 몸을 살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손자가 목숨을 잃을까 봐 얼른 달려온 것이다.역시나 모자란 자신의 손자는 잘난 척 기고만장해서는 도리어 하현에게 비법을 도둑질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본 장천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하무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이런 행동을 하면 만세당의 그 수많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모르
황보정은 온몸이 약간 회복된 듯 보였으나 갑자기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약간의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용호는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하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자세를 보였다.“자,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쓰겠습니다.”“화자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거기, 당신은 좀 나가주지. 내가 하는 방법을 몰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이건 우리 만세당의 독점술이나 마찬가지니까!”“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 배우면 곤란하지!”말을 마친 뒤 장용호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하현이 떠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독점술?”하현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장천중이 알려줬어?”“개자식! 어디서 함부로 내 할아버지 함자를 입에 올리는 거야?”“게다가 우리 독점술을 누가 알려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장용호는 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다.“아무튼 간에 난 당신 같은 나쁜 놈은 보고 싶지 않아!”“여기서 당장 꺼져 주지 않으면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진홍민도 나서서 장용호의 말을 거들었다.“하현, 당신은 그냥 나쁜 사기꾼일 뿐이야!”“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면 장용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거야!”“왜냐하면 당신이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을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일이니까!”“당신 같은 사람이 못 할 짓이 뭐야?”간민효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가로저으며 그녀를 만류했고 이어 장용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기운을 풀어주려고 마지막 한 수로 침을 놓을 때 꼭 명심해. 반드시 주사 광물을 찍어야 해.”“풀어진 기운은 몸 안에 유입되어야 해. 공중에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황보정은 숨이 막혀서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오
장용호는 진홍민의 눈빛을 알아듣고 헛기침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다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요즘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누군가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이 집복당을 무료로 준다고요, 사실입니까?”황보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진홍민을 쳐다본 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신이 내 손녀를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이 집복당을 가져도 돼.”“게다가 우리 황보 집안을 잇게 되는 거야.”황보동의 말을 듣고 진홍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용호, 걱정하지 마. 우리 이모할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야!”“그래도 당신이 안심을 못 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보증할게!”“퍽!”황보동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서가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장용호 앞에 내던지듯 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준비해 두고 있었어.”“누구라도 내 손녀를 구해 낸다면 바로 이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어.”진홍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계약서를 얼른 낚아채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다.“맞아. 이 계약서는 원본이고 유효해. 양측이 여기 서명만 하면 돼.”“좋아요. 황보대사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모든 걸 다 쏟아 보겠습니다!”“여러분들에게 주역에서 가장 뛰어난 풍수술과 화자결을 보여드리죠!”말을 마치며 장용호는 호탕한 웃음을 보인 뒤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은침 한 개와 붉은 주사 광물을 꺼냈다.“우선 황보정의 온몸에 가득 찬 살기를 제거하여 그녀의 몸을 회복시킨 다음 기력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장용호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용호는 바로 은침을 쥐고 소독한 후 약간의 주사 광물을 묻힌 후 천천히 황보정의 눈썹 위에 찍었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작부터 틀렸어.”장용호는 이 말을 듣고 미간
서류 뭉치에는 하현의 사진과 철인도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진홍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허! 가짜 증명서인 게 틀림없어!”그녀는 냉소를 연발했다.“이모할아버지, 정말로 이 사기꾼을 믿기로 하신 건 아니죠?”“야! 사기 치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진홍민의 비아냥거림에 줄곧 입을 열지 않았던 장용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황보대사님, 어디서 이런 사기꾼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요.”“왜 이런 사기꾼을 믿게 된 거예요? 도저히 모르겠어요.”“전 단지 지금 황보정의 상황은 우리 만세당 말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요.”황보동은 자신감 넘치는 장용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유가 뭔가?”“이유요?”장용호는 팔짱을 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주역의 ‘화자결’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세상의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요!”‘화자결’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황보동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 주역?”“그럴 리가 없는데. 주역은 오래전에 전수가 끊겼는데.”“자네 날 속일 셈인가?”황보동이 의아한 눈빛으로 몰아붙이자 장용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얼마 전 진정한 고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죠.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주역의 ‘화자결’을 몽땅 전수해 받았다고요!”“이걸 전수받은 풍수지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장용호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기고만장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기엔 황보정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이런 벌을 받은 거예요!”“내가 그녀를 그 업보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홍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이모할아버지, 어서 장 대사님을 오라고 하세요!”“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주역의 화자결?하현은 이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