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하하하!”주변에서 좋은 구경거리라도 보는 양 시시적거리던 남녀들이 소리내어 비웃었다.강옥연의 얼굴에 난 손자국을 보고 하현은 가만히 침묵했다.구경하던 남녀들은 하현이 겁에 질려 입을 꾹 다물었다고 생각했다.헛소리 치다가 정작 일이 벌어지니 아무 말도 못하는 소인배라고 여긴 것이다.“쯧쯧쯧, 미인을 구하는 영웅이라도 된 듯 말하더니! 흥!”“어서 구해 봐?”“아니면 입만 놀릴 줄 아는 뻔뻔한 인간이었던 거지!”용정재는 샴페인 잔을 천천히 흔들며 흥겨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당신이 날 건드리면 난 당신을 죽여 버릴 수 있어.”“하지만 당신의 그 겁없이 덤벼드는 용기는 가상해. 내가 이 여자들이랑 놀고 있을 때 든든하게 내 뒤나 봐 주면 딱 좋겠는데, 어때?”“당신이 뒤만 잘 봐 준다면 말이야.”“내가 이 여자들을 상으로 줄 수 있어. 내가 고기를 먹으면 당신은 고기 국물이라도 맛봐야지, 안 그래?”용정재의 거침없는 발언에 주변에 있던 남녀들은 모두 자지러지게 웃어 댔다.하현을 바라보는 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의 표정은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마냥 일그러졌다.보아하니 하현이란 놈은 큰소리만 뻥뻥 쳐댔지 영웅 행세를 할 깜냥도 되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그런 사람이 저런 허세를 부리다니!용정재 앞에서 허세 부리다가 결국 여자도 못 구한 주제에 어떻게 용정재의 뒤를 봐 준단 말인가?남자가 이 정도 체면 구기는 지경에 이르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망신도 무슨 저런 망신인가!하현은 태연스럽게 뒷짐을 지고 단호한 얼굴로 용정재에게 다가갔다.“내가 방금 그렇게 말한 건 그나마 용인서의 체면을 봐서였어. 당신 가문에게 기회를 준 것이었고 용문 집법당에게도 기회를 준 것이었지.”“그런데 당신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다가 내 깊은 뜻도 이해하지 못하니 내가 직접 당신에게 알려줄 수밖에 없지!”“개자식! 누가 당신한테 이런 가당찮은 용기를 준 거야?”“알려주긴 뭘 알려줘!”“오히려 내가 매
장 어르신은 결연한 표정으로 하현을 향해 전력으로 덤벼들었다.절정의 병왕은 기세가 하늘로 치솟았다.목표는 오직 하나, 하현을 죽이는 것.그가 해야 할 일은 하현 일행을 일벌백계하는 것이다.감히 집법당을 건드리고 용정재를 위협한 자는 죽어 마땅했기 때문이다.“휙휙!”장 어르신의 주먹은 휘두를 때마다 번개가 치듯 빛이 번쩍이는 것 같았고 믿을 수 없이 빠른 손놀림이 상대를 제압하려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몇몇 여인들은 이 장면을 바라보면서 장 어르신을 향한 흠모의 시선을 멈추지 않았다.역시 강한 남자들은 어디서나 여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반면 하현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서는 경멸과 비아냥으로 가득 차 있었다.장 어르신을 만났으니 죽지는 않을 수도 있으나 적어도 중상은 입을 거라 예상했던 것이다.“쓰레기 같은 놈.”“힘도 못 쓰고 주저앉을 거야!”“장 어르신 앞에서 감히 주먹을 휘두를 생각을 하다니!”한 무리의 여자들은 빈정거리는 얼굴로 하현을 바라보며 무시하는 눈빛을 던졌다.하현은 이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바닥을 휘둘렀다.순간 장 어르신을 향한 선망의 시선 속에서 하현의 손바닥이 장 어르신의 주먹 위로 떨어졌다.“퍽!”주먹과 손바닥이 마주치자 뭔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울렸다.장 어르신의 주먹에서 나오는 힘이 그대로 하현의 손바닥에 전해졌다.대단한 위력이 담겨 있었다.그러나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장 어르신의 주먹에 폭풍 같은 충격이 전해져 그대로 팔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아악!”장 어르신은 비명을 지르며 튕겨져 나와 땅바닥에 떨어진 뒤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그는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했다.망했다!뜻밖에도 그의 힘이 하현에게는 먹히지 않았다!“아악!”“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그가 손바닥 한 방으로 장 어르신의 주먹을 물리쳤다고?”“장 어르신이 적을 너무 얕잡아본 거 아니야?”많은 여자들
용정재의 눈빛이 흔들렸다.그리고 그는 다시 하현을 향해 총구를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다.“탕탕탕!”하현은 날랜 몸놀림으로 총알을 피하며 바로 용정재의 얼굴에 손바닥을 휘둘렀다.“찰싹!”용정재는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눈앞이 캄캄해졌고 몸이 그대로 붕 떴다가 땅바닥에 널브러졌다.뺨 한 대일 뿐이었는데 완전히 그의 몸이 무력화되었다.“개자식!”“빌어먹을 놈!”입가에 피를 흘리던 용정재는 허우적거리며 뒤로 물러나면서 미친 듯이 손에 든 총기를 들어 올려 방아쇠를 마구 당겼다.“탕탕탕!”연이은 총소리는 장내에 전쟁터 같은 공포를 몰고 왔다.하현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용정재 앞에 섰다.그것을 지켜보던 남녀들은 믿을 수가 없어 눈을 껌뻑껌뻑거렸다.공송연은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용정재, 조심해!”용정재는 자신이 총을 계속 쏘는데도 하현이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서자 오른손을 허리춤에 넣더니 이윽고 리볼버를 꺼내 들었다.그러나 그가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하현은 앞으로 달려가 그의 손을 발로 걷어찼다.“탕!”용정재의 총은 방향을 잃고 자신의 왼쪽 얼굴을 향해 주둥이를 벌렸다.순간 핏줄기가 튀어 오르며 용정재의 귀가 반쯤 날아가 버렸다.“아악!”용정재는 한동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정신을 잃었던 그는 갑자기 창백해진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온몸에 식은땀을 흘렸다.마치 미치광이처럼 발작을 일으키며 몸부림쳤다.자신이 하현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으리라 회심의 무기를 꺼냈건만 결과는 처참했다.용정재는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다행히 용정재에겐 용 씨 집안 자존심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었다.그렇지 않았으면 그는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렸을 것이다.용정재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는 듯 정신이 혼미해졌다.그런 그의 모습을 본 남녀들의 얼굴은 완전히 새하얗게 변했다.어떤 여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온몸을 벌벌 떨었다.그들이 보고
”용정재를 놓아줘!”“함부로 굴지 마!”집법당 제자들이 당황하며 허둥지둥 달려들었다.만약 용정재가 죽는다면 그들의 말로도 끔찍할 거라는 걸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용정재의 안위를 책임지는 세 명의 고수들도 일어서려고 발버둥을 쳤다.문 앞에 있던 공송연은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다.집법당에서 소위 정예라 할 수 있는 제자들이 최문성에게 일격을 당해 이미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밖에는 이미 용전 제복을 입은 남녀들이 싸늘한 기색으로 들어섰다.최영하가 온 것이 분명했다.이 모습을 본 공송연은 얼굴에 절망이 가득 들어찼다.만약 하구천의 사람들이 온다면 그들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하지만 용전 항도 지부 사람들까지 왔으니 모든 것이 이미 끝장이었다.용정재가 죽은 개처럼 하현의 발아래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고 하현의 총은 용정재의 이마를 향해 있었다.현장에 있던 여자들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도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그녀들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소리쳤다.“하 씨, 당신 무슨 자격으로 지금 그러는 거야?”“용정재는 용문 집법당 당주의 아들이야!”“또한 대하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인 용 씨 집안 자제라고!”“당신 용정재를 이렇게 만들고도 멀쩡하게 살아남을 줄 알아?”예쁘장한 여자들은 형세를 읽지 못하고 여전히 호들갑을 떨기 바빴다.장 어르신 역시 비틀거리며 일어나 하현을 손가락질하며 입을 열었다.“하현, 당신 지금 뭘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당신은 지금 외부와 내통했다는 죄목을 지고 있어! 그런데 감히 용정재를 다치게 하다니!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문주가 와도 당신을 구해 주지 못할 거야!”“당신은 이제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야!”“당주께서 내일 몸소 항성과 도성을 방문한다는 걸 알기나 해?”“용정재를 건드리면 당주께서 납시는 거야. 당신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 응?”비록 하현의 몸놀림이 무섭고 두렵기는 하나 지금 용정재의 부하들은 전설
이때다 싶었는지 공송연도 사나운 표정으로 거들었다.“하 씨, 더 이상 함부로 행동하지 마!”“그렇지 않으면 당신 정말 후회하게 될 거야!”이때 장 어르신은 핸드폰을 꺼내 영상통화를 켜고는 TV로 통화 화면을 옮겼다.갑자기 엄중한 표정을 한 사람이 TV에 나타났다.용문 집법당 당주, 용오행!용오행은 이미 항성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는 듯 한껏 심각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난 용오행일세!”“용문 집법당 당주!”“용 씨 가문 십삼대 종손!”“내 신분이나 지위에 대해서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잘 들어. 당신이 예전에 섬나라 귀인의 미움을 산 뒤 남양인과 결탁한 일을 난 이미 보고를 들어서 알고 있어!”“내 아들을 항성에 파견한 것은 당신의 그 행동을 멈추게 하고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는 걸 막기 위해서였어!”“그래서 난 지금 당신에게 명령하겠어. 내 아들 놓아주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그렇지 않으면 내일 내가 항성에 가자마자 해야 될 일이 당신을 죽이는 일이 될 거야!”“당신을 죽인 뒤 당신과 관계 있는 모든 사람들도 응당의 벌을 받을 거야, 알아듣겠어?”용오정은 위엄을 떨치며 거침없이 내뱉었다.“내가 한 말은 즉시 그 자리에서 실행될 거야. 명심해!”“지금 당장 내 아들을 놓아주지 않으면 바로 죽을 거란 얘기야!”“정말 당신 용당주 맞습니까? 용 씨 가문 종손 맞냐고요?”하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홀의 스크린을 바라보았다.“내가 당신 아들을 풀어주길 바라세요? 그건 문제없어요. 언제든지 풀어줄 수 있어요. 하지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우리 용문 규칙에 따르면 용문 제자들이 모여 어지럽고 지저분하게 뒤섞여 놀았는데 벌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이런 건 상관하지 않으세요? 당신은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데요? 당신은 집법당 당주잖습니까?”“당신은 일개 대구 지회장에 불과하고 장로회에선 아직 인정도 하지
총성이 울리고 용정재의 미간에는 검붉은 핏구멍이 생겼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튀어나왔다가 그대로 힘을 잃고 풀썩 늘어졌다.곳곳에선 비명이 터져 나왔다.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들은 도저히 이 장면이 믿기지가 않았다.용정재가 하현의 손에 저리 쉽게 처리되다니?용정재가 힘을 잃고 널브러지자마자 최문성은 손을 흔들었다.그러자 용전 항도 지부에서 나온 사람들이 줄지어 나와 장내에 진입해 사람들을 감옥으로 압송했다.몇몇 병왕급 인사들도 모두 압송되었다.용오행과의 타협은?처음부터 하현은 이 가능성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결국 하현을 향한 용문 집법당의 끊임없는 도발로 하현 쪽에서는 이미 집법당의 많은 제자들을 죽였는데 어떻게 쌍방이 타협할 수 있겠는가?집법당 뒤에 있는 장로회의 생각이 어떠한지, 용문주 쪽의 태도는 어떠한지 하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그는 이렇게 제멋대로 날뛰고 왕법을 무시하는 집법당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만 생각했다.강 씨 가문 쪽에서는 강학연과 강옥연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다만 용문 항도 지회를 당분간 하현에게 일임하기로 했지만 항도 지회의 심복들은 강 씨 가문 측이 데리고 갔다.이 사람들은 강 씨 가족을 보호하는 데 힘쓸 것이다.최 씨 가문, 허 씨 가문, 동 씨 가문은 원래 항성과 도성에서 뿌리 깊은 집안이어서 스스로 가문을 보호할 수단이 다 갖추어져 있었다.비록 내일 용오행이 항성에 올 것이지만 이것은 결국 용문 내부의 일이며 다른 사람이 절대 연루되어서는 안 된다.모든 준비가 철저히 이루어지고 전문 인력이 용문 도관을 말끔히 청소한 뒤에야 하현은 용문 도관 뒤뜰에 있는 정자에 허리를 걸쳤다.그는 차를 한 잔 마시면서 멀리 빅토리아 항을 내려다보았다.야경이 눈에 시리도록 아름다웠다.이 아름다운 도시에 내일 용오행이 올 것이다.항성과 도성에는 검은 구름이 잔뜩 뒤덮을 것이라는 생각이 하현의 마음을 짓눌렀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들
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단정하듯 말했다.“그 쓰레기들 나한테 달려오는 족족 다 죽여 버릴 거야!”최영하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하현, 잘 들어. 내가 이렇게 말하는 목적은 당신한테 가서 다 죽여 버리라고 하려는 게 아니야.”“돌아가려면 오늘 밤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거야.”“내륙으로 돌아가면 용오행이 당신을 귀찮게 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섬나라 전쟁의 신 미야타가 감히 당신을 귀찮게 하지는 못 할 거야.”하현은 실소를 터뜨렸다.“오늘 집법당을 평정하고 용정재를 처리했는데 내가 이대로 도망간다고?”“그러면 내 체면은 뭐가 되겠어?”최영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하현, 당신이 체면을 중시하는 건 알겠지만 이건 생사가 걸린 문제야. 생사 앞에서 체면 따위는 하등의 가치도 없는 거야!”“당신이 완전히 철저하게 그들을 제압할 승산이 없다면 난 지금 당신이 떠나는 게 맞다고 봐.”“혹시 우리를 걱정하는 거라면 나도 당신과 함께 같이 떠날게.”“심지어 용전 항도 지부도 깨끗이 포기할 거야!”여자는 할 수 있는 모든 용기를 내어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그녀의 차갑고 부드러운 얼굴에 붉은 홍조가 감돌았다.분명 냉철하고 차가운 미녀였으나 지금 그녀의 얼굴은 푸근한 옆집 누나 같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수줍음이 가득한 그녀의 미소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왜? 내가 내일 그들에게 지고 죽을까 봐? 죽을까 봐 걱정돼?”“그래서 지금 떠나라고 날 설득하는 거야? 심지어 자신도 모든 것을 던지고 따라가겠다고?”“만약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난 당신 옆에서 당신의 그림자로 살 수도 있어.”최영하의 눈동자에 핑크빛 온기가 가득 흘러넘쳤다.하현은 깊은 한숨을 쉬었고 이 주제에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길 바라며 딴청을 부렸다.“자자, 우리 이런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자고.”“내가 집법당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니 섬나라
”그 당당하신 용문 집법당 당주는 내가 섬나라 음류들과 내통했다는 당치도 않는 죄명을 뒤집어씌우려 하고 있어.”하현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이런 것만 봐도 그는 내 손에 죽어 마땅해!”“그가 죽지 않으면 앞으로 용문에서 얼마나 더 많은 대하인들이 그의 손에 처단되어 나갈지 몰라!”“미아탸 신노스케는 섬나라의 전신이자 음류 검객이니 어찌 보면 나를 괴롭히는 게 정상이야.”“어쨌거나 내가 섬나라 음류의 일을 망쳤으니.”“나도 언제 섬나라에 한번 가서 섬나라 음류를 들추어내 볼 생각이었어.”“그런데 지금 그들이 이렇게 온 이상 난 힘을 조금 아끼게 된 셈이지.”“섬나라 사람들은 정말이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을 너무 좋아한다니까.”“그 사람들이 온다고 하니 한 명도 갈 생각하지 마.”하현의 말에 최영하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그러고 나서 그녀는 생각에 잠시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참, 다른 소식이 있어.”“대하에 있는 몇몇 무학 성지도 내일 여기 섬나라 사람들과 집법당 사람들이 온다는 걸 알고 있다고 해.”“오매 도관을 필두로 젊은 세대의 교만함이 아마 가관일 거야.”“인솔자는 당신도 잘 아는 오매 도관의 사송란이야.”“그밖에 섬나라 쪽 6대 유파가 대표를 보내왔다고 해.”“신당류인 텐푸 다이토가 직접 인솔해 왔다고 하고.”“텐푸 다이토는 섬나라 신당류 검신 텐푸 쥬시로의 친아들이야.”“아버지가 가진 거의 대부분의 전술을 이어받았다고 해.”“이 사람들은 좋은 구경거리를 놓치기 싫은 마음뿐만 아니라 감 놔라 배 놔라 심판이라도 할 생각일 거야.”“그들은 당신과 미야타 신노스케의 한 판을 보고 싶은 거지.”하현은 실소를 터뜨렸다.“내 사소한 일들이 언제 무학 성지들의 심판을 받아야 할 일이 된 거야?”“이 사람들 그냥 문제를 크게 만들어 날 곤란하게 만들려는 심산인 거 아냐?”“그리고 신당류의 텐푸 쥬시로는 입만 열면 날 죽여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사람 아니야?”“자기
30분 후, 하현의 일행과 양호남의 일행이 양 씨 가문 장원의 대청에 모였다.양 씨 가문 장원은 산과 물을 따라 지어져 있었으며 남양 지역 특색의 건축 양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대하의 강남 스타일과 북유럽의 건축양식이 잘 어우러져 건축가의 웅장한 이상과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지금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은 이미 위태로워져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대청홀은 200평방미터 가까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는 귀한 침향목 의자가 놓여 있었다.양옆에는 황화목으로 만든 의자가 늘어져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하현 일행이 자리를 잡자마자 뒤쪽에서 일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대여섯 명의 남녀가 백발이 성성한 노부인을 둘러싸고 걸어 나왔다.이 노부인은 몸집이 약간 작고 등이 구부러져 있었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전체적으로 매우 야윈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꼿꼿하게 날이 서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외부인인 하현에게 떨어졌다.마치 예리한 침으로 정곡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이라 하현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었다.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은 양 씨 가문 안주인이자 양제명의 아내였다.곧이어 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자손들이 나타났다.그들은 모두 구석에 서서 기웃거렸다.다만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바라볼 때는 눈에서 혐오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 몇 명은 양유훤이 머리가 나쁘거나 안목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입을 삐죽거렸다.하현처럼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을 데려오다니!그녀들은 양 씨 가문은 절대 양유훤이 데려온 저 남자를 데릴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들의 고귀한 가풍이 더럽혀지면 안 될 일이다!“할머니!”양호남, 양신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노부인은 이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의자에 가서 앉았다.그런 다음
하현은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성격상 이런 굴욕적인 요구를 들어줄 리 없었다.양유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은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날 위협하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양호남 일행에게 차가운 눈빛을 떨어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만약 자신이 떠났더라면 양유훤 혼자 저들에게 마음대로 휘둘렸을지도 모른다.하현의 눈빛을 본 양호남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뭘 봐? 우리 집안의 손해가 이렇게 막대한데 대가를 치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연한 거야!”“양호남의 수법이 다소 과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잘못은 양유훤이 한 거야!”염소 수염을 한 양 씨 가문 어른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우리 양 씨 가문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아!”“어렵게 페낭 무맹과의 협력을 이뤄냈는데 양유훤 때문에 망치게 생겼어!”“난 방금 전까지도 양유훤을 살짝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어!”“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남자는 거리낌 없이 사람을 때렸어!”“이런 남자를 선택하다니 앞으로 양유훤이 어떻게 되겠어?”“아주 개념 없는 연놈들이야!”“우리는 어서 양유훤을 양 씨 가문에서 출가시켜 다시는 우리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못하게 해야 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양유훤은 눈살을 찌푸렸다.자신 때문에 페낭 무맹의 납품권이 사라지게 된 것에는 부인하지 않았다.하지만 여수혁에게 시집가라고 강요하고 양제명을 독살하려 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양호남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수백억의 납품권을 위해서.”“집안사람을 강제로 시집보내고.”“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까지 독살하려 했어.”“양 씨 가문은 정말 단결력이 강하고 우애도 깊군.”“뭐라고!”양호남의 안색이 살짝 변하며 흠칫했다.“할아버지를 독살하려 했다니?!”“우린 사람을 보내 할아버지를 돌보게 했을 뿐이
양유훤을 다독인 후 하현은 양호남에게 냉담한 시선을 떨어뜨렸다.이제야 하현은 양유훤이 왜 자신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집안사람들의 천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라도 하현이 위험에 빠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개자식! 어디서 튀어나온 망나니 같은 놈이 감히 우릴 때려?”이때 양신이가 정신을 차리며 얼굴을 가린 채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입을 열었다.“죽여버릴 거야!”“당신 같은 연놈들은 칠흑 같은 감옥에 갇혀 평생을 고통스럽게 썩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구!”“아하, 당신이 양유훤이 말한 그 남자 맞지?”양호남도 역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감싸쥐고 일어나 이를 갈며 울부짖었다.“이 개자식아! 여자는 수치도 모르고 남자는 제멋대로구만! 짐승만도 못한 것들!”양호남은 하현을 죽이기 위해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하현의 행동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잘 알고 있어서 그저 하현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됐어! 이 개 같은 연놈들한테 쓸데없는 소리 해 봐야 소용없어. 관청에 보고하고 그들을 끌어내면 돼!”머리를 풀어헤친 양신이도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내가 저 연놈들을 가만히 두면 성을 갈겠어!”“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하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손을 뻗어 양유훤의 몸에 몇 개의 혈을 짚으며 그녀의 상처와 통증을 완화시킨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양유훤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녀는 원래 하현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이 이미 이곳에 나타났으니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어젯밤에 양유훤이 당신 같은 뻔뻔한 남자를 위해 여수혁을 다치게 했어!”“오늘 아침, 여수혁의 아버지이자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신 여영창 어르신이 우리 양 씨 가문을 찾
”개자식!”자신의 여동생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것을 본 양호남은 욕설을 퍼부으며 반사적으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매서운 표정으로 양호남의 목을 조른 뒤 그의 머리를 눌러 가장자리에 있던 대리석 테이블 위에 찧어 버렸다.양호남은 저절로 절을 하는 꼴이 되었고 ‘퍽'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의 찻잔이 그대로 으스러졌다.양호남의 머리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하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양호남을 발로 차 내동댕이쳐서 날려버렸다.한쪽에 서 있던 양 씨 가족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때 그중 한 명이 의자를 들쳐업고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손바닥을 날려 그를 내동댕이쳤고 뒤이어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손바닥을 날려 쓰러뜨렸다.이 모든 것이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사람들과 그들의 경호원들이 얼굴이 붓고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어이, 젊은이, 당신이 어떤 경력이 있든 어떤 묘수가 있든 간에!”“이곳은 양 씨 가문 땅이야!”“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이라구!”“개나 소나 다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구!”전통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셋째 집안 어른이 나서서 의젓한 표정으로 하현을 호통쳤다.“우리 사람을 때리고 다치게 하다니! 도대체 당신 눈엔 법도 뭣도 안 보이는 거야?”“이 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당신...”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셋째 집안 어른의 잔소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손바닥을 휘갈겼다.“양호남 무리들이 손찌검을 할 때는 왜 제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는 법 운운하시겠다?”“지금 뛰쳐나와서 그런 얘기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의 말에 이번에는 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양호남은 뻔뻔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안사람들을 혼내려 했을 뿐, 그 방법이 좀 과격하다고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