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천일그룹의 상장은 확정됐다. 설은아는 하현 옆에 앉아 다소 복잡한 기색을 보이더니 잠시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원래 네가 처음에 한 말이 모두 사실이었네.”“네가 바로 하 세자구나!”이때 설은아의 목소리는 전에 없던 부드러운 목소리였고 마음 속에 하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겼다. 전에 그녀는 늘 자기 남편은 다 좋은 데 큰소리 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오히려 하현이 말했던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처음부터 자신이 그를 믿었더라면 서로의 관계는 아마 하루 만에 천리에 이르렀을 것이다. “무슨 세자든 아니든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당신 앞에서 나는 영원히 너희 설씨 집안의 데릴사위야.”하현은 차를 한 잔 마시며 평온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네가 나를 많이 오해했어도 나는 너를 탓하지 않았어. 어쨌든 내가 남원을 강제로 떠나야 했을 때 많은 계획이 있긴 했지만 실제로 무일푼이었으니까.”“그러니 너도 너무 부담 갖지 마.”“천일그룹은 어쨌든 네가 장사하는 걸 좋아하니 앞으로 너한테 맡길게.”“어!?”설은아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살짝 이슬기에게 시선을 돌리며 다소 질투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천일그룹을 맡으면 네 예쁜 비서가 불만이 있을 거 같은데.”말을 하면서 은아는 하현의 허벅지를 소리 없이 꼬집었다. 전에는 슬기가 하현에게 너무 잘 해준다고만 생각했는데 설은아도 여자라 직감적으로 그녀를 매우 꺼려했다. 이렇게 예쁜 미인이 자기 남편의 비서였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이쯤 되자 설은아의 질투심은 폭발했다. 설은아의 힘을 느낀 하현은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자기가 비록 문제를 해결하긴 했지만 더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느꼈다. 하현과 설은아 사이의 애매모호한 감정을 감지한 듯 슬기는 싸늘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하현에게 인사를 한 후 미리 준비한 사직서를 꺼내 하현에게 건네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하
천일그룹, 천상화원. 용인서는 뒷짐을 지고 서서 아래쪽의 수레와 물결을 보았지만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현 역시 그의 곁에 서서 한참이 지나서야 담담하게 말했다. “용문주님, 오늘 일에 대해 저에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하현과 용인서는 과거에 친분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며칠 전 하현이 직접 조중천을 불구로 만들고 난 후 그가 죽게 되자 용문은 하현을 살인자라 생각했다. 원래대로라면 용인서가 오늘 찾아와 문제를 일으켰어야 맞는데 그가 플랫폼을 제공하려고 했다니 이건 뭔가 말이 안 되는 부분이었다. 용인서는 잠시 하현을 곁눈질로 쳐다보다가 잠시 후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소년 영웅 대장님, 제가 오늘 왜 왔는지 모르시겠어요?”하현은 입을 열지 않고 옆으로 몸을 돌려 담담하게 용인서를 쳐다보았다. 용인서의 몸의 기운이 갑자기 광포해지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높은 사람에게서만 번지는 무서운 위압감이 그에게서 번지기 시작했다. 이 순간 하현은 속으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때 용인서는 그가 이 순간 모든 사람의 생사를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그에게 강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현을 포함해서 말이다. 다음 순간, 용인서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대장님 먼저 한 수 받아 주시죠!”말을 마치고 용인서는 몸을 움직이며 밋밋한 주먹을 앞을 향해 날렸다. 하현은 안색이 변했지만 이때 뒤로 물러나지 않고 한 발짝을 내디디며 이때 동시에 앞으로 주먹을 날렸다. “파파파______”두 사람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장난치는 듯 큰 소리를 내지 않고 가벼운 소리를 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허공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두 사람의 옷은 펄럭거렸다. “쨍그랑______”거의 같은 시각, 옥상 위의 유리가 모두 깨져 가루가 되었다. 두 사람은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었고 하현은 별다른 움직임 없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용인서는 세 발짝 뒤로 물러서며 눈동자에는 의아한 빛을 띠었다.
용인서는 계속해서 말했다. “둘째, 저는 은퇴한 대장님이 여전히 전설처럼 대단한지 보고 싶었습니다.”“셋째, 조중천을 위해 약간의 정의를 세우고 싶었던 셈입니다. 어쨌든 그는 제 부하니까요.”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죽고 싶으면 내가 언제든지 보내드리겠습니다.”용인서는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은 한 번 흔들었다. 그러자 옥처럼 보이지만 옥은 아닌 영패가 하현 앞에 떨어졌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넷째, 용문 대구 지회를 저는 오랫동안 배치해왔습니다.”“조중천이 대장님에게 살해를 당했든 아니든, 그가 대장님 때문에 죽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조중천이 죽자 대구의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저는 대장님이 한달 내에 영패를 들고 용문 대구 지회를 인수해 모든 문제를 바로 잡아 주시길 바랍니다.”하현이 웃었다. “용문주님, 꿈도 크시네요?”“용전국이 여러 번 나를 9대 병부 대장으로 초청했지만 나는 거절했습니다.”“용문주의 신분으로 나를 용문 대구 지회장으로 몰아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용인서는 미소를 지었다. “대장님, 공연한 걱정이십니다. 저는 명령을 하는 것도 아니고 강요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대장님이 이 일을 하실 수 있으실 거라 생각했던 겁니다.”그는 하현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입을 열었다. “대하가 세계 민족 대열에 오르자 5대 강대국은 우리를 적대시 해왔습니다.”“수년 전 유라시아 1차 대전에서 대장님은 혼자 힘으로 5대 강국 연합군을 휩쓸었습니다!”“이후 변방에서는 가끔 소규모의 충돌이 있긴 했지만 더 이상 전쟁은 없었습니다.”“강대국이 망하더라도 대하는 죽지 않습니다.”“물고기와 용이 한데 섞여 있는 대구는 각 방면에서 각축을 벌이는 교두보 입니다.”“얼마 전 섬나라 남문의 많은 사람들이 대구에 잠복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목적은 불분명합니다.”“제가 이 일을 조사하라고 대구에 배치해 놓은 사람이 바로 조중
이 말을 듣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쳐다봤다. 잠시 후에야 당인준이 조용히 말했다. “대장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만약 용문주의 말대로 대구에 섬나라 남문이 움직이고 있다면 보통 사람들은 확실히 이 일을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그 정도의 사람들은 대부분 섬나라 남문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성급하게 갔다간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할 겁니다.”“대장님은 지난 몇 년간 은둔 생활을 하셨잖아요. 하 세자의 신분은 노출이 되었지만 진짜 정체는 아무도 모릅니다.”“대장님이 이 일을 조사하시는 것이 가장 좋을 겁니다.”“게다가 대장님은 여러 해 동안 칩거하셔서 당도대 형제들은 대장님이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려 보자.”하현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높은 곳에서는 추위를 견디기 어렵고 높은 곳에 설수록 책임도 커진다.하현은 이 점을 너무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그는 간신히 은퇴를 했는데 만약 다시 나서서 세상으로 들어가게 되면 앞으로는 아마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변백범은 잠시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대장님, 만약 가기 싫으시면 제가 대신 가겠습니다.”“성가신 섬나라 사람 몇 명일 뿐인데 이렇게 대장님을 몰아 붙이다니 너무한 거 아닙니까?”“입 다물어!”원경천은 변백범을 노려보았다. “대구의 수심은 아주 깊어. 대구 여섯 세자가 어디 간단한 줄 알아?”“더구나 조씨 집안은 지금 대장님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어.”“네가 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대장님이 대구에 가신다고 해도 아마 위험이 클 거야.”변백범은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대장님의 솜씨로 누가 두렵겠어요?”“네가 뭘 알아. 보이는 곳에서 날아오는 창은 피하기 쉽지만 몰래 쏘는 화살은 막아 내기 어려운 법이야! 대구 같은 곳에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게다가 지금 용문 대구 지회 사람들은 대장님에 대해 죽을 만큼의 원한을 품고 있으니 함부로 나섰다가는 쉽게
하현은 소파에 기대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잠시 생각을 못했는데 늙은 여우 두 마리에게 속은 거 같아 기분이 언짢네.”“게다가 용문 대구 지회 쪽 일을 정말 맡는다고 해도 지금은 그럴 필요 없어.”“열흘 보름 정도 기다리면서 그들이 충분히 싸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얘기하자.”동시에 우윤식이 들어오더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하 회장님, 이 비서 쪽 일은 제가 사람을 보내 알아봤습니다.”“그런데 뭔가 잘못된 것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마치 평범한 사람이 사표를 낸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하지만 이게 아주 정상적인 건 아니니 직접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듣기로 내일 비행기로 남원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윤식의 말을 듣고 당인준과 원경천, 변백범은 하나같이 눈을 내리깔았다. 이것은 대장의 집안 일이니 개입해서는 안되고 개입할 수도 없었다. 하현은 미간을 문지르더니 잠시 후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떴다. 30분 후 하현은 슬기의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슬기는 화장을 하지 않은 예쁜 얼굴로 나왔다. 집에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평소 입던 오피스 룩 대신 헐렁한 파자마를 입고 나왔다. 그녀의 늘씬한 몸매는 감춰졌지만 모든 것이 다 드러나 보이는 듯해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슬기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하현이 온 것을 보자 그녀는 살짝 멍해졌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작은 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어떻게 오셨어요?”하현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내 곁에 오래 있으면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줬는데 설명 한 마디도 없이 퇴사를 하다니, 이건 좋지 않은 거 같은데?”“그래서 오늘 밤 설명을 들으러 왔어.”“물론 내 도움이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봐. 최선을 다할게.”슬기는 하현을 진지하게 바라보더니 갑자기 소파에 앉아 기지개를 키며 말했다. “하현, 나는 이제 더 이상 당신의 비서가 아니
슬기는 요 며칠 스트레스 받고 있었던 일들을 단숨에 모두 털어놓았고 순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난 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천일그룹이 어렵게 상장을 했으니 항성 4대 가문과 상성재벌, 대구 정가를 상대하는 건 이미 아주 큰 일입니다.”“저는 더 이상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대구 심씨 집안도 10대 최정상 가문 중 하나죠?”이슬기는 탄식하며 말했다. “제 외할아버지가 바로 대구 심가성이에요!”“뭐!?”하현은 놀라 펄쩍 뛰었다. “이남 갑부 심가성?”“그리고 그 방 도련님은 연경 방씨 집안 사람이고.”“게다가 너희 연경 이씨 집안까지 더하면 이건 10대 최고 가문 중의 세 집안이잖아!”여기까지 말하고 하현은 오히려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가 신분이 있다 해도 이 세 집안을 들었을 때 머리가 아팠다. 이슬기가 사임할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해 보였다. 어쨌든 그녀는 자기에게 큰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똑똑똑______”하현이 아직 감탄하고 있을 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슬기야, 문 열어. 너 데리러 왔어!”문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엄마예요……”멀쩡하던 슬기의 표정이 갑자기 바뀌더니 몸이 굳어졌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으면서 하현을 숨겼다. 하현은 어이가 없었다. “엄만데 뭐가 무서워? 그리고 난 네 사장이고 넌 내 비서야. 내가 너한테 신경 써주는 게 뭐 어때서?”슬기는 골치 아파하며 말했다. “회장님, 우리 엄마가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지 모르실 거예요. 그렇지 않았으면 제가 강제로 사임하지도 않았을 거예요.”말을 마치고 슬기는 사방을 응시하며 둘러 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방안에는 가구가 많지 않아 여전히 허전해 보였다. 사람을 숨긴다고 해도 오랫동안 숨기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해명하기가 아주 어려워. 만에 하나 내가 숨었다가 들키면 그때는 정말 물 속에 뛰어들어도 씻기가 어려울 거야.”하
헐렁한 파자마를 입고 외투를 가볍게 걸친 슬기의 모습을 보고 딸의 몸매가 보일 듯 말 듯 하자 이때 슬기 엄마는 하현을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러자 슬기는 황급히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엄마, 제 동료예요. 인수인계 하러 온 거예요.”“동료?”“인수 인계?”슬기 엄마의 얼굴에는 서리가 내렸다. “한밤 중에 남자 동료가 집에 와서 인수인계를 하니?”“게다가 낮에는 인수인계가 안되고 여기서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 거야?”“너 내가 네 말을 믿을 거 같아?”“솔직히 말해 봐. 이 볼썽 사나운 남자랑 무슨 관계야?”“이 사람 도대체 누구야?”슬기 엄마는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며 일종의 높은 사람의 위엄을 띠었다. 동시에 그녀는 하현을 죽어라 쳐다보았다.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딸의 순결함을 더럽힌 이 녀석은 벌써 수천, 수만 번 죽었을 것이다. 슬기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심가의 요구에 응했고, 하현을 보호하기 위해 선을 보러 가기로 했다. 하지만 오늘 슬기 엄마와 부딪혔다. 만에 하나라도 하현의 신분이 알려지면 천일그룹은 그날로 끝장 날 것이다. “아주머니, 슬기씨 말이 맞아요. 저는 확실히 슬기씨 동료예요.”하현이 대범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는 회사 회장이고, 슬기씨는 제 비서입니다. 오늘 그녀가 갑자기 사임을 한다고 해서 제가 회장으로서 반드시 이유를 알아야겠기에 온 겁니다.”“만약 누군가가 그녀를 협박하거나 그녀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려고 하면 저는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하현은 더없이 솔직했다. 거기다 슬기를 지키려는 태도가 확고했다. “회장!?”슬기 엄마의 시선은 순식간에 더 없이 날카로워졌다. “네가 천일그룹 회장, 하현이구나!”“내 딸을 지체하게 만든 남자구나!?”“접니다.”하현이 말했다. “그래! 좋아!”슬기 엄마는 하현을 정면으로 가리키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어 그녀는 슬기를 노려보며
“네가 비록 성이 이씨이긴 하지만 반은 심씨 집안 사람인 셈이야!”“심씨 집안과 함께 영광을 누렸으니 고난도 함께 해야 하는 거야. 네가 심씨 집안에서 혜택을 받았으니 반드시 의무도 다 해야지!”“심씨 집안이 잘 나갈 때야 네가 뭘 하든지 나는 상관하지 않아!”“하지만 지금 심씨 집안에 위기가 닥쳤으니 너는 반드시 나랑 같이 돌아가 문제를 해결 해야 해!”“그러니 네가 방현진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있든 없든 네 외할아버지와 약속을 했으니 반드시 지켜야 돼!”“더구나 연경 방씨 집안과 결혼한다고 하면 연경 이씨 집안은 분명 수긍할 거야!”“양 대 가문이 고개를 끄덕이면 너는 반드시 무조건 해야 돼!”“그러니 여기서 말한 걸로 됐어. 대구로 돌아간 다음에는 다시는 이런 말 듣고 싶지 않아!”“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될 지는 네가 잘 알 거야!”슬기 엄마는 지금 목소리와 표정이 아주 사나웠다. 전혀 여지를 주고 있지 않았다. 하현은 항상 강인하고 자신만만해 하던 슬기의 얼굴에 막연함과 어쩔 수 없어하는 기색이 떠오른 것을 발견했다. 잠시 후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몇 방울의 눈물을 흘렸지만 서둘러 닦아냈다. 지금 이 순간, 하현은 자신의 마음이 이유 없이 아프다는 것을 느꼈다. 슬기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했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했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연경을 떠났고 대구를 떠나 먼 강남으로 왔지만 결국 그녀의 운명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대 가문 출신인 그녀는 가문의 제물이 될 운명이었다. 슬기 엄마의 말도 맞다. 대 가문의 권력을 누렸으니 대가문의 의무도 반드시 져야 한다. 슬기 엄마는 이 광경을 보면서 차갑게 말했다. “울지 마. 넌 어렸을 때부터 알았잖아. 우리에게 눈물이란 건 아무런 의미도 없고 헐값이라는 거!”“내가 오늘 남원에 와서 직접 너를 데리고 가는 건 이제 곧 보게 될
하현은 희미한 시선으로 말했다.“장생전?”“네, 맞아요. 장생전이요.”엄도훈은 하현이 이를 짐작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자세한 내막을 캐묻지 않고 장생전에 관해 세심하게 설명을 이어갔다.“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여섯 은둔가의 조상이 모두 제왕을 지냈기 때문에 신선을 찾아 장생전에 대해 알아보고 또한 그것을 꿈꿨다고 합니다.”“왕조가 멸망한 후 이러한 일들은 자연스럽게 후손들의 손에 넘어갔죠.”“여섯 은둔가들이 손에 쥐고 있는 비밀들을 모을 수만 있다면 분명 장생전을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에 장생이 어디 있겠냐는 것입니다.”“제가 아는 한 여섯 은둔가가 가진 비밀은 사실 가문에만 전승되어 오던 것입니다.”“절대 다른 곳에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그래서 완연결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알게 된 여섯 은둔가는 간민효의 지도 아래 완연결을 토벌하였습니다.”“완연결은 하룻밤 사이에 강인하고 야심찬 인물에서 포로로 전락하였고 수많은 그의 부하들도 사상을 입게 되었습니다.”“다만 감옥으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그의 차가 납치되었습니다.”“그 순간 우리는 그가 장생전에서 왔다는 걸 알게 되었죠.”말을 마치고 난 엄도훈은 심하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장생전을 입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은 매우 흥미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여섯 은둔가가 이 상황에서 서로 연합한 것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왜 간민효가 손을 썼을까?”엄도훈은 의아한 듯 눈을 살짝 찡긋거리며 말했다.“말하자면 완연결이 운이 나빴다고 할 수 있죠.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늘 간민효에게 관심을 가졌어요. 간민효를 차지하려고 여러 번 시도를 했고요.”“처음에는 간민효도 그를 무시하고 말았는데 나중에는 화가 나서 여섯 은둔가와 연합을 하고 나섰어요...”하현은 이 말을 듣고 눈초리를 가늘게 늘어뜨렸다.간민효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긴 했지만 이렇
완연결은 장생전에서 지위가 낮지 않았고 당시 금정 지부 수장이었다.지금 땅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은 모두 그의 수하에 있는 유능한 인재들이었고 모두 일등 고수들이었다.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현과 맞붙어 제대로 방어도 해 보지 못하고 널브러졌다니?!하현은 엄도훈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상관하지 않고 얼른 부상 상태를 처리한 후 일어섰다.“됐어. 다친 곳은 기껏해야 3일 정도면 다 나을 거야. 시간 되면 한의사한테 찾아가서 약이나 몇 첩 지어서 컨디션 조절해.”엄도훈은 그제야 정신을 번쩍 자리고는 안간힘을 쓰며 일어섰다.“형님,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지금부터 언제든지 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별말을 다 하는군. 별거 아니야. 게다가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건 나니까 나한테도 책임이 있어.”“그건 그렇고 여기는 당신 사람들을 좀 시켜서 정리하라고 해.”“당신은 나랑 함께 같이 가자고. 아니면 여기서 기다릴 거야?”“아니요. 같이 가시죠.”엄도훈은 주변을 휘익 둘러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형님, 어떻게 이런 곳에서 날 보자고 하셨어요?”“내 추측이 맞다면 이곳은 아마 예전에도 험악한 곳이었을 텐데요.”“이곳은 금정 전체에서도 가장 흉악한 곳이에요!”“여기서 만나자고 할 줄 알았더라면 아마 죽어도 안 왔을 거예요.”엄도훈은 이 사실을 미리 떠올리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깊이 후회했다.“흉악한 곳? 이곳은 그냥 버려진 흉가 아니야?”엄도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예전에 관청의 최고 책임자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여름에 피서를 하기 위한 별장을 짓고 싶어 했죠...”“결국 반쯤 지어졌을 때 땅속에 있던 큰 무덤을 건드리게 되었고 일하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이 소식이 끊겼다고 합니다...”“그러고 나서 이곳은 봉쇄되어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되었고요!”“엽기적인 사건을 띄워 조회수라도 올려 볼까 했던 블로거들이 탐험하러 왔다고 들었는데 전부
”이런 살인술은 기이하긴 하지만 나한테는 어린아이들 소꿉장난이나 마찬가지지.”하현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여전히 담담했다.“단 3분 만에 내가 당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요염한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가로 엄도훈을 풀어 달라는 거지? 그렇지?”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로서는 지금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어쨌든 어렵게 장생전과 관련된 몇 개의 실마리를 찾았는데 만약 그들이 죽기라도 하면 얼마나 낭패스러운가?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어떻게 진술을 받아낼 수 있겠는가?“아주 매력적인 조건이지만 아쉽게도 난 당신한테 동의할 수 없어.”요염한 여자는 차가운 얼굴로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렸다.“하지만 우릴 생각해 준 당신의 마음이 가상해서 나중에 우리가 당신을 죽일 때는 고통이 길지 않게 단번에 죽여 줄게.”하현은 이 말을 듣고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그는 요염한 여자가 자신이 내건 조건을 승낙할 줄 알았다.그녀가 아무리 엄도훈에게 깊은 원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하지만 상대방이 헌신짝 버리듯 하현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보아 사혈이 막힌 그들의 상태는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행위였음이 분명했다.기꺼이 사혈을 틀어막은 것이다.그들을 이 지경에까지 만든 사람은 보통 잔인하고 냉혹한 사람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그렇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무릎을 꿇지는 않았을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사혈을 봉인해야 그들이 살 수 있는 것이다.사혈이 풀린다면 그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그래서 하현의 제안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난 당신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어.”“그런데 아쉽게 되었군!”“아쉬울 것 없어!”요염한 여자가 당차게 내뱉으며 웃었다.“당신은 이곳에 와서 몰래 염탐만 해도 될 일이었어.
요염한 여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완연결 선생 뒤에 누가 있는지 당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거야.”“당신 같은 사람이 우리 완연결 선생을 상대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 순진하기는!”“내 말은 그러니까,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이란 거야. 발버둥치지 말고. 왜냐? 그래 봐야 아무 소용없으니까.”“당신을 도와줄 동료들이 지금 옆에 없는 걸 탓할 필요도 없어. 왜냐하면 간민효가 여기 있었다면 그녀도 무릎을 꿇었을 테니까.”말을 하면서 여자는 쭈그리고 앉아 엄도훈에게 주사를 놓으려고 했다.“꿈도 꾸지 마!”엄도훈은 버럭 소리를 질렀고 순간 바닥에 흩어져 있던 유리 파편을 얼른 집어 자신의 목을 향했다.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훨씬 낫다!“퍽!”여자는 긴 다리를 휘둘러 유리 파편을 들고 있던 엄도훈의 손을 발로 차서 날려 버렸다.그런 다음 한 발을 엄도훈의 가슴에 짓누르며 주사기를 엄도훈의 몸에 찌르려고 했다.“아이 참...”그때 어디선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하현은 두 손을 뒷짐지고 유유히 걸어 나왔다.이 일은 원래 그와 무관했지만 상대방이 하는 말에 이 일이 간민효와 장생전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로서도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어쨌든 그가 금정에 있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이기도 했다.하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요염한 여자와 그녀의 일행들은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굳어졌다.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런 흉가에 누군가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 분명했다.순간 그들은 총과 칼, 쇠몽둥이들을 들어 올려 하현을 겨냥했다.요염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당신 누구야?”여자가 말을 하는 동안 그녀의 일행들은 빠르게 흩어져 하현의 퇴로를 막아서며 잡아먹을 듯 사나운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엄도훈은 그제야 누가 왔는지 알아보았다.그도 처음에는 구원자가 나타난 줄 알고 기뻐했으나 이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형님, 어서 도망가세요! 이놈들은 보통 놈들
”생화학 무기?”이것을 보자마자 엄도훈은 숨을 헐떡이며 꿈틀거리는 것의 정체를 알아차렸다.“당신들이 미국과 한통속이 되어 이렇게 역겨운 짓까지 할 줄은 몰랐어!”“그러나 당신들이 이런 물건을 들이댄다고 해서 내가 눈 하나 깜빡할 줄 알아?”“당신들이 내 몸을 갈기갈기 찢고 뼈를 가루로 만든다고 해도 난 절대 두희랑을 배신하지 않을 거야!”“어서 단번에 날 죽여!”“그렇지 않으면 당신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만약 내가 살아 돌아간다면 당신들 하나하나 갈기갈기 찢어 버릴 테니까!”“오호! 그 당찬 기개 정말 마음에 들어!”요염한 눈매의 여자가 메이크업 파우치를 닫고 나서 주사기를 꺼내 집게손가락으로 툭툭 털었다.“다만 그런 당찬 기개도 우리 앞에선 아무 소용이 없어.”“당신은 이게 뭔지 잘 알 거야. 우리가 이걸 당신 몸에 넣기만 하면 1분 안에 아무리 기개가 강철 같은 사람도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게 될 거야!”“그렇게 되면 당신은 우리 말에 절대 복종하게 될 거야!”이 말을 듣고 엄도훈의 안색이 크게 일그러졌고 그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이 바닥에 오랫동안 굴러먹은 그는 분명 주사기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임에 틀림없다.미국인들이 개발한 생화학 무기는 사람을 해치는 가장 사악한 술법인 묘강고술의 특성과도 깊이 결합되었다.일단 몸에 들어가면 사람이 절대 자신의 의지력으로 살아갈 수 없고 완전히 통제력을 잃게 된다.순간 엄도훈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뻔뻔스러운 놈들!”요염한 여인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여섯 은둔가들 사이에 균열을 만들어 두희랑을 죽이게 된다면 서남 천문채의 금정 지부는 수장이 없는 꼴이 돼.”“우리가 조금 비열하고 뻔뻔스럽다고 해서 그게 뭐 어때서?”엄도훈은 치를 떨며 내뱉었다.“그 당시 당신들을 내쫓은 사람은 금정 간 씨 가문 간민효였어!”“당신들은 사람도 아니야!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야! 지금 와서 두희랑에게 그 분풀이를 하려고 하다니!
회사 입구를 나온 하현은 아우디 A8 안으로 들어가 나박하에게 시동을 걸라고 손짓을 했다.나박하는 방금 그 장면을 목격했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지금 하현은 나박하의 눈앞에서 흉악한 발톱을 드러낸 셈이었다.이를 통해 나박하는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하현이 결코 밥이나 축내는 데릴사위가 아니라는 것, 그렇게 쉬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완전히 깨달았다.시동을 건 후 나박하는 백미러를 보며 물었다.“하현, 어디로 갈까요?”“엄도훈과 자금산에서 만나기로 하지 않았어요?”“그를 만나야죠.”“만나서 확실하게 얘기해야죠. 그가 이천억을 받아온다면 우린 한 푼도 가지지 않을 거라고.”“이천억. 그들 신사 상인 연합회가 십 년 동안 보호비를 걷어도 이렇게 많지는 않을 거예요.”“아마 그는 열심히 돈을 받아오려고 할 거예요.”하현은 의자에 기대어 앉아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는 김탁우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김탁우의 천성으로 봐서 그는 절대 이 돈을 갚지 않을 것이다.더군다나 오늘 금정 간 씨 가문 간소민이 함께 있었으니 김탁우는 이 사람 앞에서 절대 체면을 구길 수 없을 것이다.김준영을 몰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남 천문채을 공범으로 만들어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것이다.여섯 은둔가 중 두 씨 가문이 이 일을 가장 좋아할 것이다.30분 후 나박하의 차는 짓다 말아 흉가가 된 별장 근처에 멈춰 섰다.이곳은 그들이 엄도훈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였다.하현은 이 기회를 틈타 엄도훈 뒤에 있는 서남 천문채 수장을 만나고 싶었다.그러나 눈앞을 보니 엄도훈의 차 이외에도 여러 대의 지프가 나타나 있었다.이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엄도훈의 개조된 차량을 들이받았고 현장에는 칼자국과 탄환 자국이 흩어져 있었다.짐작컨대 이곳에서 방금 치열한 혈투가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차 문을 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박하, 차를 구석으로 몰아요. 시동 끌지
”게다가 당신은 방금 모든 것이 공평하고 공명정대해야 한다고 했는데 왜 이제 와서 좋은 말할 때 그만하라는 거야?”“내가 오늘 고의로 이런 문제를 일으켰더라도 분명히 해야 해!”“어제 김탁우가 내 집복당을 봉쇄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이런 일도 없었을 거야!”“상대가 놀자고 하는데 놀아 줘야지!”“지면 인정하고 혼쭐이 나야지. 그래야 정신을 차리지!”하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간소민은 기세를 수그리며 말했다.“하현,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김탁우는 점잖고 교양 있는 사람이야. 당신이 말한 그런 사람이 아니야!”김탁우도 차갑게 얼굴이 가라앉았다.속으로 짚이는 데가 있다고 해서 함부로 발설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하현, 함부로 남을 헐뜯지 마! 증거 있어?!”김나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이처럼 기세 좋게 대드는 것을 보고 아직 이홍파 측이 하현에게 손을 쓰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녀는 조만간 있을 대역전극을 볼 기대로 차올랐던 것이다.하지만 이홍파는 이미 하현에게 손을 썼을 뿐만 아니라 무참히 짓밟힌 후였다.의기양양하게 하현을 찾아갔지만 결국 하현은 아무 일 없이 끝났고 오히려 이홍파와 황택호 두 사람은 단번에 고개를 숙였다.“김탁우, 함부로 남을 헐뜯는 사람인지 아닌지,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는 당신이 이미 잘 알고 있을 거야.”“지금 이런 얘기하는 게 의미가 있어?”하현은 당당한 얼굴로 김탁우를 바라보았다.“설은아의 체면을 봐서 특별히 천억에 합의해 주는 거야. 내일 밤 어두워지기 전에 수표를 가져와야 할 거야.”하현이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밀어붙이자 간소민은 버럭 화를 냈다.“하 씨!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당신이 금정에서 이렇게 함부로 날뛰는 건 우리 간 씨 가문 여자를 등에 업었기 때문이잖아!”“내 말 똑똑히 들어! 이 일은 여기서 끝내야 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내가 간민
”비슷한 물건들이 항성과 도성 경매장에서 대략 이천억에 팔렸어!”“나도 방금 형 씨 가문에서 이천억에 샀어.”“봐. 여기 가격표가 있잖아?!”하현은 비닐봉지를 열어 바닥에 파편을 쏟으며 영수증을 한 장 꺼냈다.“내 아내한테 결혼기념일 선물로 주려고 산 거였어!”“그런데 어떻게 되었는지 잘 봐!”“당신 차에 부딪혀 완전히 부서졌어!”“이천억의 가치가 있는 물건들인데 당신들이 이천만 원을 준다고 해서 이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지금 나 놀리는 거야?”“물론 당신들은 믿고 싶지 않겠지. 그렇다면 감정 요청을 해 봐! 그럼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어!”이천억?!김 씨 남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가 이내 파랗게 질려 버렸다.두 경찰도 어안이 벙벙한 채 하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하현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이 일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는가?하현은 확실히 정당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에게 양보하는 것이 도로교통법이었다.하현은 골동품 도자기 영수증도 가지고 있었다.완벽했다.간단히 말해서 이 사건의 모든 증거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하현이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일부러 이런 일을 꾸민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긴 했지만 두 경찰은 반발할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방금까지 의기양양해하던 간소민은 순식간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이 굳어졌다.하현이 너무 터무니없는 말을 쏟아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이천억이라니!김탁우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액수였다!만약 김탁우가 죽는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돈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저희는 사고의 책임 소지만 밟힐 수 있습니다. 그 후 어떻게 처리할지는 양측이 서로 협의해야 합니다!”“협의가 안 되면 법정에서 해결하시면 됩니다!”두 경찰은 골치 아픈 일에 엮일까 봐 얼른 책임 소지를 밝힌 책임 인정서만 발급하고 줄행랑을 쳤다.이것은 도저히 자신들이 건드릴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김탁
”김탁우. 미안하지만 이번 사고를 전체적으로 조사한 결과 모든 책임은 당신한테 있습니다.”김탁우가 백일몽을 꾸고 있을 때 대머리 경찰이 현장을 자세히 살핀 후 침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도로법에 따라 당신은 하현에게 모든 손해 배상을 해야 합니다.”김탁우의 득의양양한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분명 생각지도 못한 결과임에 틀림없었다.그는 하현이 경찰서 사람들과 내통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 경찰들은 순찰 중 무작위로 파견되었기 때문에 전혀 이해관계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가 쓸데없는 말을 내뱉기라도 한다면 자신의 처지가 더욱 곤란해질 것이 뻔했다.순간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어갔다.별 볼 일 없는 사람 한 명 짓밟는 일이 이렇게 번거로울 줄은 몰랐다.“아니, 지금 뭐라고 하는 거예요?”“잘 들어요! 이 일은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에요!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요!”김나나는 화가 나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이 사람은 그저 무책임한 인간일 뿐이에요. 여기저기 사기나 치고 다니는 인간이라고요! 경찰이라면 이런 사람을 잡아가서 취조를 해야지 우리한테 책임을 전가하다니요?”“당신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아니면 머리가 아주 나쁜 거예요?”김나나가 강경한 얼굴로 몰아붙이자 경찰은 침착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횡단보도에선 보행자에게 양보하는 것이 도로교통법입니다.”“불복한다면 소송을 하십시오.”“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전적으로 당신들 잘못입니다!”김나나는 이를 악물고 버럭 소리쳤다.“우리가 지나가는데 갑자기 나타났으니 당연히 이 사람 책임이죠!”경찰은 점잖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우리가 CCTV를 확인했는데 사고 당시 차를 몰던 김탁우가 옆에 앉은 분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분명히 전방 주시 의무를 소홀히 했어요.”“그래서 당신들 잘못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건 어딜 가도 바뀌지 않아요.”또 다른 경찰이 영상을 꺼내 김 씨 남매에게 보여 주었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