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는 말을 하며 마음속으로 차가운 웃음을 연이어 터뜨렸다. 슬기의 외모, 몸매 그리고 카리스마 모두 그녀보다 한 수위 높았다. 주리는 질투를 조금 느꼈지만 기어코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기분이 몹시 안 좋았을 뿐이다.이 도둑은 참 대단했다. 블랙 카드 한 장 가지고 자기가 무슨 대표라고 다른 사람들을 속여? 이런 파렴치한을 봤나.슬기는 주리를 쳐다보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여기 아가씨, 말을 할 때는 가려서 하세요. 이분은 우리 회사 대표님이신데, 이렇게 예의 없게 대하시면 우리 회사는 다른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는 것도 개의치 않아요. 당신들의 사업이 거대한 건 맞아요. 하지만 서울 전체에 당신들 은행 하나밖에 없는 건 아니잖아요.”우리 회사 대표님은 아무렇게나 수백억 원 이상의 투자를 하시는데,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표님이 사기꾼이라니? 하늘 아래 제일 웃긴 농담이었다.주리는 위아래로 슬기를 훑어보더니 조롱하며 말했다. “저 사람은 도둑이 아니라고요? 그럼 아닌 거예요? 이 블랙 카드가 뭔지 당신들은 알고 있기나 해요? 우리 은행에 유동자금 1000억 원이 없고 재테크 상품 1조 원이 없는 사람은 이런 은행 카드를 가지고 있을 수가 없어요! 당신은 이런 거지 같은 남자가 어딜 봐서 그렇게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이 블랙 카드는 훔친 게 아니라면 어떻게 갖고 있는 건데요?”슬기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당신 정말 억지 부리지 않으면 안 돼요? 우리 대표님 카드인지 아닌지는 카드를 긁어서 비밀번호를 눌러보면 알 수 있는 거 아니에요?”이 이야기를 듣자 주리의 얼굴에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고, 그녀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카드를 긁어요? 비밀번호를 누른다고요? 이런 카드는 핸드폰이랑 연동되어 있는 거 몰라요? 누군가 카드를 긁으면 비밀번호가 맞든 안 맞든 카드 주인 쪽에 힌트가 표시될 거예요! 만약 카드 주인이 우리 은행이 결례를 범했다고 생각하면 어떡해요? 그렇게 단순한 생각으로 사람을 해치지
“대표님, 저는 괜찮습니다. 근데 대표님은…” 슬기는 걱정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 대표님이 어떤 신분인데, 이런 누추한 곳에서 이렇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을 수가 있나?하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나도 괜찮아요. 이따가 은행장이 오게 해요. 내 개인 계좌, 회사 계좌, 그리고 우리가 투자한 다른 기업과 회사들의 계좌도 이 은행에 있어서는 안 되겠네요.”“네!” 슬기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 대표님은 역시 대표님이었다. 간단한 말 한마디에 이 은행의 생사가 이미 결정되었고, 나중에 은행장이 온다고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척은! 이런 순간에도 척이나 하고, 당신들은 배우를 안 한 게 너무 아까워요!” 주리는 꾸짖었다. “당신, 가서 은행 카드를 들고 와요!”경호원 한 명이 대답한 다음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와 하현의 손에 있던 블랙 카드를 낚아챘다.하현은 싸늘하게 웃으며 반항할 의사 없이 오히려 그들이 블랙 카드를 가져가게 놔뒀다.......은행 사무실에서 주리는 공손한 태도로 지점장에게 블랙 카드를 넘겼다.지점장은 술배를 토닥거리며 빙긋 웃은 채 입을 열었다. “주리 씨, 이번에 잘했어요. 이렇게 신중하고 꼼꼼히 하는 것은 우리 상업은행이 지닌 특성이에요. 우리의 중요한 고객의 자산을 이렇게 안전하게 보호해줬으니, 이 일을 내가 본사에 보고하면 분명 주리 씨에게 상을 줄 거예요. 승진할 날만 기다리시고, 나중에 이 노인네를 잊으면 안 돼요!”주리는 존경심을 담은 얼굴로 말했다. “지점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이 안전 의식은 다 지점장님이 평소에 가르쳐 주신 거 아닌가요? 본사에서 사람이 온다면 그것도 지점장님의 공로입니다.”“하하하, 좋아, 좋아. 역시 주리 씨는 똑똑한 사람이라니까… 안심하세요. 올해의 우수하고 모범적인 인물로 주리 씨를 먼저 고려할 거고, 연말에 받을 상도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받는다면 주리 씨도 받을 거예요!” 지점장은 큰 소리로 하하 웃었다.“좋아요, 먼저
그러나 하현은 꽤 자제했다. 슬기에게 손대려고 했던 경호원 외에, 하현은 다른 사람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이 시각, 그 경호원은 몸이 비틀려져 있었고, 얼굴은 계속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아팠다. 이 도둑의 솜씨가 아주 좋고 매우 민첩한 거 아닌가?비록 이 몇몇 경호원은 수년간 사치스럽고 안일한 나날을 보내며 능력을 모조리 잃었지만, 실력은 아직 그대로였기에 지금 이렇게 비참하게 패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이 광경을 지켜보던 주리는 아연실색했고 순간 반응하지 못했다. 만약 이 세상에 후회 약이 있다면, 그녀는 분명 하현의 핸드폰을 낚아챌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하현도 일을 마무리할 의향이 없어 경호원의 종아리를 발로 차며 그를 무릎 꿇렸다. 이어서 하현은 태연하게 말했다. “남자로 태어나서 어떤 상황에서든 여자를 때리지 않는 게 원칙이야.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내가 오늘 철저히 네 몸을 망가뜨릴 거야.”“아! 개자식아! 여기가 어딘 줄 알아? 너는 죽었어!” 이 경호원은 경호 팀장이어서 회사 내에서 조금이나마 지위가 있었다. 그가 언제 이런 대우를 받아봤겠나? 이 순간 그는 이를 악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쉽게 패배를 인정할 리가 있나.“그래?” 현장에서 공포에 떨던 시선들을 모두 한 몸에 받은 채, 하현은 다리를 쭉 뻗더니 뚝 소리와 함께 경호팀장의 종아리를 걷어차서 부러뜨렸다.그런 다음, 하현의 시선이 다른 쪽 다리에 떨어지더니 그는 차갑게 말했다. “사과할 거야?”“여기… 사람 살려요! 얼른 사람 살려요!” 주리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잽싸게 보안실 대문을 열며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주리는 눈 앞에 펼쳐진 이 장면을 차마 믿지 못했다. 은행 측 네다섯 명의 경호원은? 결국 이 도둑놈이 이렇게까지 미쳐 날뛰었다고? 더 이상 살기가 싫어졌나? 우리가 경찰에 고소할까 봐 두렵지 않나?그 자리에 있던 이들 중에 유일하게 슬기만 당연하다는 얼굴을 내비쳤다. 자기 대표님이 얼마나
“쿵!’바로 이때, 보안실 입구에 또 한 무리의 사람이 나타났다. 열 몇 명은 되는 경호원들이 배 나온 지점장을 둘러싸며 들어왔다.지점장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더니 눈가에 살짝 경련을 일으켰다. 그가 전화 한 통을 하는 동안 이렇게 큰일이 벌어졌을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은행장이 거의 도착했으니, 지점장에게도 기댈 수 있는 큰 산이 있어 그의 마음속은 확신으로 가득 찼다.“이봐요, 애초에 은행 카드 한 장만 훔쳤을 때는 경찰서로 이송되더라도 며칠만 갇혀 있었을 텐데. 지금은 말이죠, 일이 그렇게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 같네요.” 지점장은 씩 웃으며 말했다.하현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지점장 어르신께서 또 오셨네요? 지점장 어르신께 여쭤보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지금 이렇게 건방지게 구시면 나중에 철판에 발을 찍혔을 때 제 앞에서 무릎 꿇어도 소용이 없을까 봐 두렵지 않으세요?”지점장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거 젊은이, 당신 솜씨가 좀 좋고 싸움을 잘한다는 것은 인정해요…”“하지만,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요. 싸움 좀 한다고 대단한 게 아니라고요. 대단해 봤자 총탄보다도 대단하겠어요? 혼자서 백 명을 상대로 싸울 수 있어요?”“사회에서 제일 대단한 것은 두 단어예요. 하나는 돈, 하나는 권력. 고작 단어 하나가 당신의 인생이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어요. 이 이치가 이해돼요?”하현은 깨달음을 얻고 대답했다. “이런 이치가 있었군요. 간단히 말하자면, 당신 세계에서는 돈 많고 권력 있는 게 제일 대단한 거네요.”지점장은 살짝 멍해 있다가 이내 웃으며 장난을 치듯이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저의 세계에서는… 돈 많고 권력 있는 게 당연히 대단하죠.”“권력은 그렇다 쳐요, 하지만 돈은 제가 많이 갖고 있어요. 당신들 은행을 망가뜨려도 할 말이 없겠죠?” 하현은 면전에서 느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지점장을 바라보았다.“네, 당신이 돈만 있다면 이 은행을 망가뜨리는 것은 말도
이 말인즉슨, 그 핸드폰의 주인은 바로 상업 은행의 VIP 고객이었다.블랙카드에 핸드폰 속의 번호를 더하면, 비록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여전히 가난뱅이 같아 보였지만, 지점장은 겁을 먹기 시작했다.이 세상에 우연이 있기는 했다. 블랙 카드가 거지 손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개인 고객 센터가 전화를 잘못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두 가지 우연이 서로 겹치게 되었을 때, 어떤 일들은 필연이 되어버린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만하기 짝이 없던 지점장은 지금 온몸에 식은땀을 줄줄 흘렸으며, 흰 셔츠가 몸에 다 달라붙을 정도였다.그는 몹시 힘겹게 고개를 들어 하현을 바라봤는데, 하현이 이미 그 경호팀장을 아무렇게나 옆에 던져 놓은 다음 여유로운 표정으로 의자 위에 앉은 것을 보았다.하현은 무심하게 자신이 마실 물 한 잔을 따랐다. “왜요? 전화 안 받아요? 잘 얘기해봐요!”“철퍼덕!” 지점장은 이내 무릎을 꿇었다. “고객님, 아니, 아니, 대표님, 제 눈이 멀어서 사람을 깔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해주세요!”이 순간, 그는 옆에 사람이 수두룩한지 신경 쓰지 못한 채 손을 들어 자신의 두 뺨을 때렸다.지점장의 뒤를 따르던 경호원 열 몇 명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사람들도 은행에서 일한 지 오래되어 눈치가 빨랐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모두 털썩하며 무릎을 꿇었다. 어찌 됐든 지점장이 무릎을 꿇었는데, 그들이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있나.“아…” 얼굴에 난폭한 기색이 역력한 경호팀장은 이 광경을 보자 화들짝 놀랐다. “지점장님, 왜 이 도둑놈한테 무릎을 꿇으세요? 왜 그러세요? 열 받으니까 사람을 시켜서 이놈의 다리를 부러뜨리세요!”“어… 어떻게 이럴 수가…” 주리도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반응을 못했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점장이 얼마나 건방진 사람인데, 잘하고 있다가 왜 갑자기 무릎을 꿇은 거지?“쾅!”이때, 보안실 대문이 거세게 걷어차여서 열렸다. 몸집이 거대한 남자 열 몇 명이 한꺼번에
지점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은행장님,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고객의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VIP 고객님이 직접 카운터로 와서 업무를 처리할지 어떻게 알았겠어요? 누가 고객님의 카드를 훔친 줄 알았어요!”동하는 안색이 어두워져 앞으로 걸어가 지점장의 가슴을 발로 찬 다음, 뒤돌아서서 웃으며 말했다. “하 대표님, 이것 좀 봐주세요. 이 밑에 있는 사람들도 좋은 마음으로 하다가 일을 그르치게 된 것이니, 넓은 마음을 가지고 계신 대표님께서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아 주실 수 있을까요?”“그러죠.” 하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가게가 클수록 손님을 업신여기는 일이 본래도 많았지만, 정의 구현되기를 기대한 내가 바보죠.”“은행장님, 조그마한 도움을 주실 수 있을까요?”“네, 말씀하세요. 저의 능력이 되는 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동하는 진지한 얼굴을 내비쳤다. 이런 VIP 고객이 무언가를 부탁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이 일은 지나갔고, 그는 더 이상 따지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만약 하현이 이 순간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면, 동하는 오히려 불안했을 것이다.“사실 별로 큰일도 아니에요. 그냥 제가 느끼기에, 고객은 서비스 태도가 좋은 곳을 찾아 업무를 처리하는 게 맞잖아요? 이따가 제 비서가 저 대신 회사와 개인 자산을 이전하는 일을 대신 처리해줄 건데, 은행장님께서 귀하신 손으로 저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문제될 거 없죠? 서명만 해주시면 됩니다.” 하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띠었다.동하는 눈앞이 깜깜해져 기절할 뻔했다.지점장 사무실이 잠시 쓰였다.하현은 정중하게 안으로 안내 받은 다음,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슬기가 그에게 차 한 잔을 대접해 그는 천천히 음미했다.반대편에서는 동하가 어색한 얼굴로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하 대표님, 근 몇 년 동안 저희 은행이 대표님 대신 해외 계좌를 힘들게 관리해드린 점을 봐서라도 저희 체면을 살려주실 수 있을까요…” 동하는 어렵게
사람들이 모두 떠날 때까지 기다린 후, 동하는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 “하 대표님, 원하신다면 오후에 저들을 바로 해고할 수 있습니다…”하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이건 당신들 은행 내부의 일이지,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네, 네, 네…” 동하는 화제를 전환했다. “그리고, 여전히 대표님께서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자산 이전에 관한 일은 없던 걸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이 말을 하며 동하는 식은땀으로 얼굴을 흥건히 적셨다. 하엔 그룹 계좌에는 얼마 없고 1000억 원 정도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현은 달랐다. 그의 계좌 안에 담긴 금액은 매우 충격적이어서, 하현이 개인 계좌를 이전한다면 나동하 이 은행장은 거기서 끝이었다.“은행장님, 당신의 체면을 안 세워주는 게 아니라, 그냥 나라는 사람이 항상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싫어요.”“안 그러겠습니다, 절대 안 그러겠습니다.” 동하는 일어섰다. “앞으로 저희 상업 은행이 대표님을 위한 맞춤 전문 팀을 꾸리겠습니다. 어떤 업무든 최단 시간 안에 직접 대표님에게 달려가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안 될까요?”하현은 침묵을 유지했다.동하는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 오늘 밤에 서울에서 대형 경매가 열릴 텐데, 유명한 집안의 진귀한 물건들이 많이 경매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이 경매는 회원초청제라 같이 데려가 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화려한 집안 출신이라도 경매장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제가 마침 초대장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대표님께서 오늘 저녁에 얼굴을 비추실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대표님께서 무엇을 마음에 들어 하시든 다 제가 결제하겠습니다.”이 말을 듣자 하현은 흥미가 조금 생겼다. 그는 초대장을 건네 받아 몇 번 본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은행장님 덕 좀 보겠습니다. 그리고 제 블랙 카드 한도를 올리는 일은 가능한 빨리 해결해주세요.”여기까지 말하자, 하현은 어이없는 얼굴을 보였다. 자신의 카드에 돈이 그렇게나 많이 들어있는데, 카드에 한도가
“당신 일은 이미 세리 씨에게 들었어요. 별일 아니니 제가 이따가 전화 한 통만 하면 잘 해결될 거예요.” 진우는 심오한 표정으로 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본 뒤 감탄을 했다. “역시 은아 씨는 하늘에만 있고 땅에는 없는 서울 여신이라니까요. 저는 원래 믿지 않았는데, 오늘 이렇게 직접 만나 뵈니 역시 듣던 대로군요. 은아 씨가 이미 결혼하신 게 안타깝네요. 안 그랬으면 제가 은아 씨를 쫓아다녔을 거예요.”진우는 막무가내로 입을 열었다. 그의 욕심 가득한 시선이 은아에게 닿자, 그녀는 아주 불편했다. 문제는 진우를 통해 하엔 그룹의 고위층과 가까워져야 했기 때문에, 은아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서 대표님,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우리 집 은아는 결혼한 게 맞지만 유명무실한 결혼이에요. 그 쓰레기 데릴사위는 3년 동안 은아의 손도 한 번 안 만져봤어요. 게다가 희정이 이모는 계속 그 데릴사위를 쫓아내려고 하고 있어요. 만약에 당신같이 훌륭한 남자가 있다면, 희정이 이모든 설 씨 집안이든 당신을 두 팔 벌려 환영할 거예요.” 세리는 희희 웃으며 말했다. 오늘 밤 그녀의 목적은 애초에 진우와 은아가 잘 되게 관계를 맺어주는 거였다.“진세리,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나는 하현이랑 이혼할 생각 없어.” 은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와중에도 그녀는 속으로 찔렸다. 며칠 전에 하현을 쫓아내서 그는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가 지금 어디 갔는지도 모른다.진우는 씩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세리를 깊은 눈으로 흘깃 쳐다보았다.세리는 확신에 가득 차 은아의 가녀린 허리를 잡고 말했다. “은아야, 무슨 생각 해? 그 쓰레기가 좋을 게 뭐가 있다고? 한낱 데릴사위에 맨날 너희 집에서 먹고 자기만 하고, 몇 마디 좀 꾸짖었다고 감히 집에 돌아오지를 않아?”“그리고 내가 말하는데, 그 자식은 여자한테 빌붙고 사는 데 도가 텄어. 며칠 전에 거리에서 그 놈이 어떤 부잣집 여자 차의 조수석에 앉아있는 걸 봤어!”“부잣
이산들은 하현에게 코웃음을 치면서 얇은 입술을 치켜들어 연신 냉소를 흘렸다.“당신도 나박하랑 똑같아. 아무것도 없으면서 허세나 잔뜩 부리는 쓰레기들이야!”임수범도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말을 보태었다.“야, 당신이 정말로 나와 금정개발의 협력을 중단시킬 수 있다면 내가 당장이라도 여기서 당신한테 무릎 꿇고 아버지라 부를게!”주변에 있던 예쁘장한 여자들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키득키득 웃으며 임수범의 말에 동조했다.하현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경멸과 멸시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들은 하현이 허무맹랑한 말로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다.하현은 임수범을 힐끔 쳐다보며 냉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어디 내 아들이 되어 볼 테야?”“흥! 가당치도 않지!”“뭐? 너...”하현에게 잔뜩 화가 난 임수범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이산들의 핸드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녀는 곁눈으로 슬쩍 핸드폰을 본 뒤 얼른 통화버튼을 눌렀다.그러자 그녀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벌벌 떨기 시작했고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하게 핏기를 잃어갔다.화를 내던 임수범은 당혹스러워하는 이산들의 표정을 보고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이산들, 무슨 일이야? 왜? 무슨 일이냐고?”이산들은 얼이 나간 모습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금정개발 고위층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당신과의 계약에 문제가 있어서 날 해고하기로 결정했대...”“그리고 경찰서 사람들이 내가 구매한 건에 대해 전면적으로 개입하겠다고 했대!”“뭐라도 하나 꼬투리가 잡히면 난 끝장이야!”“임수범, 나 좀 도와줘! 제발 나 좀 도와줘!”“난 당신 여자잖아!”이 말을 들은 여자들은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졌다.도무지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그녀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하현에게로 넘어갔다.이산들도 그제야 이 모든 게 하현이 한 짓이라는 걸 눈치채고는 이를 갈며 그를 노려보았다.“개자식! 감히 날 이렇게 만들어?!”“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하현은 임수범 일행들이 호들갑을 떨든 뭘 하든 내버려두며 눈길도 주지 않았다.그저 술잔을 빙글빙글 흔들며 몇 모금 음미하고만 있었다.나박하는 하현이 겁을 먹은 줄 알고 얼른 일어나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임수범, 오해야. 이 모든 게 다 오해라고!”“내가 당신을 오해한 거라고?”임수범은 손을 뻗어 나박하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거리낌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당신이 뭔데?”“무슨 자격으로 내 앞에서 오해네 어쩌네 그러는 거야?”말을 마치며 임수범의 시선이 하현에게로 향했다.임수범은 차가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마. 난 마음씨가 착해서 함부로 손을 쓰지 않아! 내 사람들이 손을 쓰게 하지도 않아!”“어쨌든 때리고 죽이는 일은 우리 같은 고귀한 도련님한테는 안 어울리는 일이거든. 너무 저급하잖아!”“너무 무능한 짓거리고!”“하지만 당신 가족이 직접 나서서 당신의 이 보잘것없는 놈을 죽이게 만들 거야!”“그리고 난 뒤 난 그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예쁜 마누라를 얻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만약 그렇지 않고 예쁜 마누라를 얻는다면 결국 나 좋은 일만 되는 거지!”험악한 말을 내뱉은 임수범은 오만하게 웃었다.“앉아요.”하현은 저자세를 보인 나박하를 끌어당겼고 무덤덤한 얼굴로 임수범을 쳐다보았다.“임수범?”“건축자재업을 한다지?”“맞아. 내가 바로 임수범이야!”“내가 뭘 하는지는 왜 말하는 건데? 용서라도 빌려고? 아니면 나한테 덤비겠다는 거야?”“그런데 당신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 난 당신을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감히 나한테 덤벼들다니!”“내가 매달 몇 번씩이나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들을 짓밟긴 하지만 당신처럼 이렇게 당돌한 사람은 처음이야.”“자자, 그래 내 이름 내 배경, 내 회사 다 알려 줄게. 어디 능력 있으면 마음대로 날 건드려 봐!”잠시 후 임수범은 명함 한 장을 꺼내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이산들은 이 광경을
왕인걸의 안내를 따라 하현과 나박하는 자리에 앉았다.하지만 나박하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현은 룸에 들어가는 것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그는 세트 메뉴를 주문하고 레드 와인 한 병을 개봉하여 마시기 시작했다.“하현, 우리 여기서 나가는 게 어때요?”나박하가 망설이는 얼굴로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내가 당신 실력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비록 이산들을 난처하게 만들어 나박하의 원한이 조금은 풀리긴 했지만 그녀 뒤에 있는 임수범을 떠올리자 그는 머리가 지끈거렸다.지금의 그는 누굴 건드리고 말고 할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무슨 말이에요?”하현은 똑바로 앉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당신은 이제 나의 형제이자 친구입니다.”“당신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나한테도 미움을 산 것입니다.”“당신 체면이 서지 않으면 내 체면도 서지 않는 거죠!”“지금은 떨어진 당신의 자존심을 조금 들쳐 세웠을 뿐인데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예요?”나박하는 옅은 미소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하현, 당신이 날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 알고 있어요...”“하지만 난 정말로 당신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요!”“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내가 당신을 형제라고 여긴 이상 다른 건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하현은 나박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어서 식사를 계속하라는 듯 손짓을 했다.“당신한테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금정 바닥에서 내가 당신을 보호하는 한, 천왕 노자가 와도 당신을 건드릴 수 없어요.”“날 믿어 보세요!”“퍽!”하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식당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누군가가 발로 문을 걷어차며 기세등등하게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선두에 선 남자는 아르마니 정장 차림이었고 걸리는 건 다 부숴버릴 것처럼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다.이산들의 인솔 하에 그는 나박하와 하현이 있는 곳
이산들은 지지 않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당신들 여기 설거지 알바하러 온 거지? 분명해! 그렇지?”“그런데 뭐? 누구? 어디 아파?”왕인걸이 앞으로 나가 그녀의 뺨을 때리려 하자 하현은 손을 흔들며 제제하고 나섰고 눈을 가늘게 뜨고 이산들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 혹시 몸에 병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이산들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당신이야말로 몹쓸 병균 덩어리야! 당신 가족 모두가 병균 덩어리들이라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만약 내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당신은 아무 일이 없어도 자주 딸꾹질을 했을 것이고 게다가 입안이 쓰다고 느꼈을 거야.”“심지어 말할 때 스스로도 입냄새가 난다고 느꼈을 거고.”“그래서 당신은 입냄새를 감추려 자꾸 껌을 씹었을 거야.”하현의 말에 이산들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당신이 어떻게 그걸 알아?”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의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무술을 배운 적은 있어.”“동양의학에서는 의술과 무술을 동시에 중시하기 때문에 난 의학에 대한 지식도 좀 있지.”“그리고 보아하니 당신은 잠을 깊이 못 자고 자꾸 잡다한 꿈을 꾸는 것 같은데. 얼음을 조금만 먹어도 위가 쓰리고 아프다고 느꼈을 거고...”하현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이대로 가다간 얼마 지나지 않아 위암에 걸릴 거야.”“무슨 헛소리하는 거야?!”하현이 이산들의 증상에 관해서 막힘없이 술술 늘어놓았지만 그녀는 그의 능력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운전이나 하면서 먹고사는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의술을 알 수 있겠어?”“경고하는데 자꾸 내 앞에서 거들먹거리지 마!”여자들도 못마땅한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따위가 한눈에 이산들의 증상을 간파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못 믿겠으면 단전 아래를 눌러 봐. 배꼽 아래 한 치 정도 되는 곳 말
나박하는 약간 어리둥절해다가 이내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그는 이곳의 멤버십 카드가 매년 수천만 원의 회원비를 낸다는 것을 떠올렸다.그러나 그는 자신의 자산이 동결된 이후 소위 회원비를 낼 돈이 없었다.비꼬는 어조가 다분히 담긴 직원의 말에 이산들 일행은 더욱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뭐? 카드가 만료되었다고?”“나박하,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된 거야?”“이런 꼴로 밥을 먹으러 오다니! 부끄럽지도 않아?!”“이 뚱보야. 들어가지도 못할 걸 왜 와서 이 창피를 당하는 거야? 하하!”“파산한 뚱보가 밖에서 밥을 빌어먹을 것이지 뭐 하러 여긴 와서 재벌 2세인 척하는 거야! 당신 여전히 그 허영심은 못 버렸구나!”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던 나박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분노와 슬픔을 삭혔다.호랑이가 평양에 가면 개한테 속고, 초라한 봉황은 닭보다 못하다고 했던가!나박하는 오늘 진정으로 그런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그는 이산들 일행에게는 눈길도 주지 못하고 미안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하현,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해요.”“좋은 곳에서 맛있는 밥을 사 주려고 했어요.”“그런데 이럴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나박하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다른 데로 가시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아니에요. 그냥 식당일 뿐인데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못 들어가겠어요?”손님을 맞이하던 직원 두 사람은 피식하고 코웃음을 쳤다.하현의 허풍이 너무나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저런 사람 따위가 이곳에 들어올 자격이 있어?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블랙골드 카드를 꺼냈다.그의 블랙골드 카드는 전 세계적으로 특권이 있었다.이런 곳에서도 당연히 최고 등급 멤버십의 효력이 있었다.두 직원은 아무 생각 없이 카드를 받아들었지만 그가 건넨 카드가 블랙골드 카드인 것을 본 순간 갑자기 온몸을 덜덜 떨었다.멤버십 카드가 없어도 블랙골드 카드를 가지고 있으면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게다가 블랙골드
오랫동안 사귄 전 여친과 그녀의 친구들에게 한껏 조롱을 당한 나박하는 자신이 아무리 심성이 좋아도 이 순간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그는 이산들을 조용히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산들,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내가 전에 당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당신 잘 알 거야. 지금 당신이 이런 날 어떻게 대하든 난 상관없어.”“그렇지만 더 이상은 안 참아...”“뭐? 뭐라고?!”이산들의 얼굴은 비아냥거리는 기색으로 가득했다.“이 거지 같은 쓰레기가 뭐라는 거야? 당신이 과거에 정말로 대단한 사업가인 줄 알아?”“아무런 역량도 재주도 없으면서 그래도 존심은 남아서 남자라는 거야, 지금?”“뭐?!”나박하는 이산들의 말에 말문이 막혀서 뭐라고 반박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나박하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나박하, 됐어요. 이런 천박한 여자들과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서 밥이나 먹으러 가요!”“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천박한 여자?!”“똑똑히 들어! 우리가 누군 줄 알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 거야? 우리 오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아?!”이산들은 경멸하는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게다가 뭐?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와서 밥을 먹겠다고?”“헛! 지금 농담하는 거야?”“여기 잔심부름하러 온 거 아니야?”“이곳 금정호텔은 회원제야!”“멤버십 카드가 없는데 어떻게 들어가겠다는 거야?”여자들은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하현과 나박하를 쳐다보았다.얼마나 더 경멸하는 눈빛을 보내야 알아먹는 거야?“헛소리 그만해! 당신들 이러는 거 정말 역겨워!”이산들은 흰색 멤버십 카드를 꺼내 살짝 흔든 다음 눈초리를 매섭게 치켜뜨며 말했다.“얘들아, 어서 들어가자.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와서 얼뜨기들하고 말 섞을 시간이 어디 있어? 한 시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아!”“당신들 둘은 밖에서 기다려. 이따가 우리가 다 먹고 남은 음식이 있으면 자비를 베
”저 뚱보는 누구야? 여자 처음 봐? 왜 우릴 자꾸 쳐다보는 거야?”“변태가 틀림없어. 봐 봐. 아직도 내 다리만 쳐다보잖아!”“정말 재수없어! 오늘 우리가 스타킹도 안 신고 나온 건 어떻게 알고 저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야?! 아 짜증나!”“저런 남자는 부끄러움도 몰라. 아마 우리가 꽃다운 처녀란 걸 모르나?”“저렇게 빤히 쳐다보면 나중에 우리가 어떻게 좋은 자리에 시집갈 수 있겠어?”“아 정말!”“변태 같은 놈!”“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단 말도 모르나?!”“주제도 모르고 넘보다니!”여자들은 서로 재잘거리며 떠들었다.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이산들도 이때 고개를 살짝 들었다.나박하에게 시선을 던진 순간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어머? 나박하? 나박하잖아!”이산들은 한눈에 나박하를 알아보았다.꽤 오랫동안 사귀었던 남자를 모를 리가 있겠는가?순간 지난 일을 떠올리던 이산들은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그녀는 아리따운 얼굴에 조롱하는 기색을 떠올렸다.“너네들 저 사람 몰라? 우리 금정에서 분리수거 사업을 하던 사람이잖아! 예전엔 내 꽁무니를 따라다녔지만 지금은 완전 파산한 빈털터리!”“그가 고급차를 몰고 있긴 하지만 사실 운전해서 버는 돈은 한 달 고작 벌어 봐야 얼마 되지도 않아!”처음에 나박하를 쫓아다닐 때만 해도 이산들은 자신이 부잣집에 시집가는 줄 알았다.하지만 나박하가 별 볼 일 없어지자 도저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얼른 임수범에게로 환승했다.나박하가 몰락한 뒤 그녀는 그를 한없이 원망했다.자신의 청춘을 엄한 놈에게 바쳤다고 생각하니 눈앞에서 그를 짓밟아 죽여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어머? 정말이야? 이산들, 정말이냐고?”“저런 사람이 네 꽁무니를 따라다녀?”여자들은 모두 어이없다는 듯 입술을 들썩거렸다.“집에 거울도 없대? 자기가 어떤 몰골인지도 모르나 봐!”“얼굴도 별 볼 일 없고 가난한 주제에 무슨 자신감이래?”“혹시 뭘 잘못 먹은 거
”전 여자친구예요. 이산들.”“그녀는 수년 동안 날 따라다녔고 결국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죠. 그녀에게는 세상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어요.”“그런데 뜻밖에도 형제와도 다름없는 그와 함께하고 있었죠!”“내가 관청에서 자산을 동결당해 일을 멈추었을 때 그녀는 내 마지막 남은 현금을 빼돌렸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꼬임에 내 도장으로 함부로 보증도 서서 결국 많은 빚을 떠안았어요...”“하지만 다행히 운이 좋았어요. 그때 형수님이 도와주셔서 너무 고마웠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지난 일을 떠올리자 나박하는 다시 그 감정에 휩싸인 듯 마음 깊이 고마움을 표했다.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녀가 원망스러워요?”“원망스럽지만... 요 며칠 동안 깨달았어요.”나박하의 얼굴엔 당당한 기색이 떠올랐다.“한 여자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없죠.”“정말 능력이 있으면 직접 복수하면 되는 거예요.”“안타깝게도 지금 난 능력이 별로 없어요. 구차하게 살아남는 것만 해도 벅차죠.”“복수할 자격도 능력도 없어요.”“그녀는 여러모로 나보다 훌륭해요.”“지금은 금정개발 구매 담당자로 연봉에 상여금까지 합하면 1년에 몇억은 벌 거예요.”“그리고 형제와도 같았던 임수범은 건축 자재업을 전문으로 하고 있어요. 지위가 나랑 비교가 안 되죠. 그래서 날 함부로 짓밟을 수 있는 거고요!”“임수범은 금정개발 사장인 임단과 친분이 있다고 들었어요.”“지금의 난 더더욱 그들을 건드릴 수 없어요!”나박하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그러나 그는 두 사람이 마치 버려진 개를 짓밟듯 자신을 대했다는 것만큼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입에 올릴 수 없었다.그저 속으로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금정개발이 그렇게 대단해요?”하현이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시총 이천억도 안 되는 이제 막 시작한 회사라고 들었는데.”“하고 많은 부동산 개발 회사 중에 보잘것없는 정도 아니에요?”
나박하는 한숨을 내쉬었고 하현은 한 남자의 삶의 고된 무게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하현은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누가 당신 일을 방해했죠?”“과거의 라이벌이라고 해도 어떻게 그렇게 비겁한 짓을 할 수가 있어요?”나박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한 사람은 나와 가장 가까운 형제 같은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내가 사랑했던 여자였어요...”“내가 초라해지자 두 사람은 완전히 얼굴을 돌리고 모른 척했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날 짓밟았어요!”“그가 몇 년 동안 내 사업에서 많은 돈을 몰래 빼돌렸다는 걸 나중에 알았죠.”“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여자와 내통하고 있었고요...”“난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요...”“그래서 그들은 내가 재기하는 꼴을 볼 수 없었던 거예요. 기를 쓰고 날 짓밟았죠.”“내가 재기하면 가장 먼저 그들을 죽일 거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난 이제 사업 같은 거 안 할 거예요. 나한테 차가 있으니 이걸로 차량 운전이나 하면서 살래요.”“그러면 그 사람들도 나한테서 마음을 놓을 것이고 나도 자유로워지겠죠.”“분리수거 사업이 다 정리되면 그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노후를 보낼 생각이에요.”그동안의 일들을 쭉 늘어놓은 나박하는 후련한 듯 소탈한 미소를 보였다.하지만 하현은 그의 강인함 뒤에 못내 내려놓을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한때 승승장구하던 분리수거 업자가 정부 정책의 변화 때문에 한순간에 초라한 신세로 전락했다.나박하 정도의 능력이라면 재기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하지만 과거에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짓밟힌 쓰라린 기억은 결국 그를 무너뜨리고 말았다.그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도록 아플까?그 슬픔이 얼마나 그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냈을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그는 닥쳐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받아들일 수밖에.하현은 짐짓 생각에 잠겼다가 손을 뻗어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