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사모님께서 또 하엔 그룹 투자 안건에 관해 얘기하러 오셨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은 지금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만약 민혁이 왔다면 가라고 소리쳤을 텐데 은아의 신분은 특별하다 보니 막 대할 수가 없었다.“어? 또 은아가 왔다고?” 하현은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설 씨 어르신은 늙은 여우 한 마리라 분명 이런 방법을 생각해냈을 것이다. 만약 하엔 그룹과 협력할 수 없다면 설씨 집안은 망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하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은아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약해져 말했다. “이번만큼은 500억을 투자해주자…”“네?” 겨울은 깜짝 놀랐다.“계약서는 저번이랑 똑같이 해요. 설씨 집안 쪽에서 막 나간다면 우리는 바로 이 자산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 하현은 한마디 보탰다.겨울은 확신에 찬 얼굴을 보였다. 역시 대표님은 대단하시다. 당근과 채찍을 양손에 하나씩 쥐고, 설씨 집안 사람들을 갖고 놀지를 않나.“대표님, 그럼 저는 계약을 하러 가볼까요?” 겨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하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가르쳐줘야 해? 일단 거절하고 튕기다가 마지막 날에 마지못해 계약서에 서명하는 걸로 해…”“네, 알겠습니다.” 겨울은 허리를 굽혀 인사한 다음 재빨리 물러났다. 그녀는 은아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엄두가 없었다.“설은아 씨였군요, 이번에는 어쩐 일로 오셨을까요?” 응접실에 들어가자, 겨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은아는 이렇게나 빨리 겨울을 만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 냉큼 일어서며 말했다. “김 부장님, 이번에도 투자에 관한 일이에요. 저번에 저희 SL 그룹 쇼핑몰 협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제 생각에는…”겨울은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설은아 씨, 제가 돕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당신네 설씨 집안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실 텐데… 그쪽 설씨 집안 도련님이 저희 프런트 여직원을 희롱했습니다. 저를 희
대표 사무실.하현은 뒷짐을 진 채 눈앞의 화면을 하나 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겨울이가 일 처리를 꽤 잘하네. 때가 되면 본부장 후보에 올리겠어.”하현 뒤에 서 있던 슬기는 오늘도 머리를 흩날리고 있었는데, 이 얘기를 듣자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 넘기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럼 제가 겨울 씨를 대신해서 먼저 대표님께 감사 인사를 하겠습니다…”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겨울이한테 전해줘요.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고 자세도 똑바로 갖춰야 한다고. 은아가 내 아내라고 과도하게 예의를 차릴 필요 없어요. 이 부부관계도 얼마나 오래 갈지 몰라요…”이 말을 하며, 하현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은아에게 진심이었지만…하현 뒤에서 슬기는 앞부분의 말을 들었는지도 모른 채 온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대표님, 이… 이혼하시려고요?!”“내가 이혼한다는 게 그렇게 이상해요?” 하현은 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인정할게요, 나는 지난 3년 동안 은아에게 진심이었어요. 하지만…”여기까지 말하자 하현은 더 이상 말하기 싫었다. 그는 원래 은아가 자신에게 호감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현은 지금 은아가 자신에게 품고 있는 감정이 사랑은 아니고 단순한 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강아지 한 마리처럼, 오래 키울수록 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하지만 하현은 이 말을 하면서도 오히려 그런 순간이 다가온다면, 자신이 반드시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하현이 외로운 모습으로 작게 탄식하는 걸 보니, 슬기는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그녀는 이 순간 뭐라 말할 엄두가 없었고 생각만 하다가 말했다. “대표님, 사람을 불러서 침실에 가구를 다 배치해 놨습니다. 그런데 욕실은 그렇게 빠르지 않고 인테리어 공사하는 데 며칠은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오늘 밤도 잠시 저의 집에서 머무르시겠어요?”“그래요.” 하현은 핸드폰을 꺼내 힐끗 쳐다보았다. 지금 그에게 핸드폰
아멕스 블랙 카드!이 순간,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말로만 듣던 블랙 카드였다! 이 카드는 서울에서도 다섯 장을 채 넘기지 않았는데, 블랙 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 누구의 신분이 안 놀라울까?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자, 주리는 갑자기 침착함을 되찾았다. 블랙 카드 고객이 손꼽을 정도로 적었고 본부 쪽에는 개개인을 따로 모시는 전문 상담사가 있는데, 이런 고객이 고작 한도를 높이는 사소한 일로 직접 찾아올 리가 있겠나? 심지어 이런 고객들은 상류사회 출신이며 하나같이 화려한 보석의 옷차림을 하는데, 이런 조그마한 카운터에서 줄을 설 리가 있나.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주리의 마음은 확신으로 가득 찼다. 눈앞에 있는 이 자식의 블랙 카드가 가짜거나, 그가 어딘가에서 훔쳐 왔거나 둘 중 하나다!요즘 사람들 같으니라고! 옛날만큼 도덕적이지를 못해!주리는 마음속으로 쉴 새 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 순간, 그녀는 더더욱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곧이어, 주리는 단호하게 카운터 밑에 있는 경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경보 울림소리가 큰소리로 빠르게 퍼졌고, 얼마 안 지나 무장을 한 경호원이 순식간에 구석에서 달려왔다.이 장면을 본 하현은 살짝 놀랐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설마 이 은행은 사람들이 돈을 찾게 하지 않는 건가? 그냥 이체하고 싶은 돈만 처리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하현의 표정을 보자, 주리는 더더욱 자신이 진실을 꿰뚫어 봤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일어서서 하현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더니 비웃으며 말했다. “제 예상이 틀리지는 않았나 보네요. 당신은 어딘가에서 은행 카드 한 장을 훔쳐 돈을 뽑아가려는 도둑이잖아요! 하지만 이건 몰랐죠? 이런 카드는 서울 전체에 다섯 장 밖에 없고, 카드 소지자들은 다 거물급 고객님들이세요, 당신 같은 거지꼴이 아니라!”주리는 자신이 도둑을 잡아낼 날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몹시 의기양양했다. 이 카드를 주인분의 손에 돌려드리는 그날, 이런 거물의 예쁨을 받
주리는 말을 하며 마음속으로 차가운 웃음을 연이어 터뜨렸다. 슬기의 외모, 몸매 그리고 카리스마 모두 그녀보다 한 수위 높았다. 주리는 질투를 조금 느꼈지만 기어코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기분이 몹시 안 좋았을 뿐이다.이 도둑은 참 대단했다. 블랙 카드 한 장 가지고 자기가 무슨 대표라고 다른 사람들을 속여? 이런 파렴치한을 봤나.슬기는 주리를 쳐다보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여기 아가씨, 말을 할 때는 가려서 하세요. 이분은 우리 회사 대표님이신데, 이렇게 예의 없게 대하시면 우리 회사는 다른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는 것도 개의치 않아요. 당신들의 사업이 거대한 건 맞아요. 하지만 서울 전체에 당신들 은행 하나밖에 없는 건 아니잖아요.”우리 회사 대표님은 아무렇게나 수백억 원 이상의 투자를 하시는데,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표님이 사기꾼이라니? 하늘 아래 제일 웃긴 농담이었다.주리는 위아래로 슬기를 훑어보더니 조롱하며 말했다. “저 사람은 도둑이 아니라고요? 그럼 아닌 거예요? 이 블랙 카드가 뭔지 당신들은 알고 있기나 해요? 우리 은행에 유동자금 1000억 원이 없고 재테크 상품 1조 원이 없는 사람은 이런 은행 카드를 가지고 있을 수가 없어요! 당신은 이런 거지 같은 남자가 어딜 봐서 그렇게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이 블랙 카드는 훔친 게 아니라면 어떻게 갖고 있는 건데요?”슬기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당신 정말 억지 부리지 않으면 안 돼요? 우리 대표님 카드인지 아닌지는 카드를 긁어서 비밀번호를 눌러보면 알 수 있는 거 아니에요?”이 이야기를 듣자 주리의 얼굴에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고, 그녀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카드를 긁어요? 비밀번호를 누른다고요? 이런 카드는 핸드폰이랑 연동되어 있는 거 몰라요? 누군가 카드를 긁으면 비밀번호가 맞든 안 맞든 카드 주인 쪽에 힌트가 표시될 거예요! 만약 카드 주인이 우리 은행이 결례를 범했다고 생각하면 어떡해요? 그렇게 단순한 생각으로 사람을 해치지
“대표님, 저는 괜찮습니다. 근데 대표님은…” 슬기는 걱정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 대표님이 어떤 신분인데, 이런 누추한 곳에서 이렇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을 수가 있나?하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나도 괜찮아요. 이따가 은행장이 오게 해요. 내 개인 계좌, 회사 계좌, 그리고 우리가 투자한 다른 기업과 회사들의 계좌도 이 은행에 있어서는 안 되겠네요.”“네!” 슬기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 대표님은 역시 대표님이었다. 간단한 말 한마디에 이 은행의 생사가 이미 결정되었고, 나중에 은행장이 온다고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척은! 이런 순간에도 척이나 하고, 당신들은 배우를 안 한 게 너무 아까워요!” 주리는 꾸짖었다. “당신, 가서 은행 카드를 들고 와요!”경호원 한 명이 대답한 다음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와 하현의 손에 있던 블랙 카드를 낚아챘다.하현은 싸늘하게 웃으며 반항할 의사 없이 오히려 그들이 블랙 카드를 가져가게 놔뒀다.......은행 사무실에서 주리는 공손한 태도로 지점장에게 블랙 카드를 넘겼다.지점장은 술배를 토닥거리며 빙긋 웃은 채 입을 열었다. “주리 씨, 이번에 잘했어요. 이렇게 신중하고 꼼꼼히 하는 것은 우리 상업은행이 지닌 특성이에요. 우리의 중요한 고객의 자산을 이렇게 안전하게 보호해줬으니, 이 일을 내가 본사에 보고하면 분명 주리 씨에게 상을 줄 거예요. 승진할 날만 기다리시고, 나중에 이 노인네를 잊으면 안 돼요!”주리는 존경심을 담은 얼굴로 말했다. “지점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이 안전 의식은 다 지점장님이 평소에 가르쳐 주신 거 아닌가요? 본사에서 사람이 온다면 그것도 지점장님의 공로입니다.”“하하하, 좋아, 좋아. 역시 주리 씨는 똑똑한 사람이라니까… 안심하세요. 올해의 우수하고 모범적인 인물로 주리 씨를 먼저 고려할 거고, 연말에 받을 상도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받는다면 주리 씨도 받을 거예요!” 지점장은 큰 소리로 하하 웃었다.“좋아요, 먼저
그러나 하현은 꽤 자제했다. 슬기에게 손대려고 했던 경호원 외에, 하현은 다른 사람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이 시각, 그 경호원은 몸이 비틀려져 있었고, 얼굴은 계속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아팠다. 이 도둑의 솜씨가 아주 좋고 매우 민첩한 거 아닌가?비록 이 몇몇 경호원은 수년간 사치스럽고 안일한 나날을 보내며 능력을 모조리 잃었지만, 실력은 아직 그대로였기에 지금 이렇게 비참하게 패배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이 광경을 지켜보던 주리는 아연실색했고 순간 반응하지 못했다. 만약 이 세상에 후회 약이 있다면, 그녀는 분명 하현의 핸드폰을 낚아챌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하현도 일을 마무리할 의향이 없어 경호원의 종아리를 발로 차며 그를 무릎 꿇렸다. 이어서 하현은 태연하게 말했다. “남자로 태어나서 어떤 상황에서든 여자를 때리지 않는 게 원칙이야.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내가 오늘 철저히 네 몸을 망가뜨릴 거야.”“아! 개자식아! 여기가 어딘 줄 알아? 너는 죽었어!” 이 경호원은 경호 팀장이어서 회사 내에서 조금이나마 지위가 있었다. 그가 언제 이런 대우를 받아봤겠나? 이 순간 그는 이를 악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쉽게 패배를 인정할 리가 있나.“그래?” 현장에서 공포에 떨던 시선들을 모두 한 몸에 받은 채, 하현은 다리를 쭉 뻗더니 뚝 소리와 함께 경호팀장의 종아리를 걷어차서 부러뜨렸다.그런 다음, 하현의 시선이 다른 쪽 다리에 떨어지더니 그는 차갑게 말했다. “사과할 거야?”“여기… 사람 살려요! 얼른 사람 살려요!” 주리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잽싸게 보안실 대문을 열며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주리는 눈 앞에 펼쳐진 이 장면을 차마 믿지 못했다. 은행 측 네다섯 명의 경호원은? 결국 이 도둑놈이 이렇게까지 미쳐 날뛰었다고? 더 이상 살기가 싫어졌나? 우리가 경찰에 고소할까 봐 두렵지 않나?그 자리에 있던 이들 중에 유일하게 슬기만 당연하다는 얼굴을 내비쳤다. 자기 대표님이 얼마나
“쿵!’바로 이때, 보안실 입구에 또 한 무리의 사람이 나타났다. 열 몇 명은 되는 경호원들이 배 나온 지점장을 둘러싸며 들어왔다.지점장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더니 눈가에 살짝 경련을 일으켰다. 그가 전화 한 통을 하는 동안 이렇게 큰일이 벌어졌을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은행장이 거의 도착했으니, 지점장에게도 기댈 수 있는 큰 산이 있어 그의 마음속은 확신으로 가득 찼다.“이봐요, 애초에 은행 카드 한 장만 훔쳤을 때는 경찰서로 이송되더라도 며칠만 갇혀 있었을 텐데. 지금은 말이죠, 일이 그렇게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 같네요.” 지점장은 씩 웃으며 말했다.하현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지점장 어르신께서 또 오셨네요? 지점장 어르신께 여쭤보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지금 이렇게 건방지게 구시면 나중에 철판에 발을 찍혔을 때 제 앞에서 무릎 꿇어도 소용이 없을까 봐 두렵지 않으세요?”지점장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거 젊은이, 당신 솜씨가 좀 좋고 싸움을 잘한다는 것은 인정해요…”“하지만, 사회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요. 싸움 좀 한다고 대단한 게 아니라고요. 대단해 봤자 총탄보다도 대단하겠어요? 혼자서 백 명을 상대로 싸울 수 있어요?”“사회에서 제일 대단한 것은 두 단어예요. 하나는 돈, 하나는 권력. 고작 단어 하나가 당신의 인생이 괴로움을 벗어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어요. 이 이치가 이해돼요?”하현은 깨달음을 얻고 대답했다. “이런 이치가 있었군요. 간단히 말하자면, 당신 세계에서는 돈 많고 권력 있는 게 제일 대단한 거네요.”지점장은 살짝 멍해 있다가 이내 웃으며 장난을 치듯이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요, 저의 세계에서는… 돈 많고 권력 있는 게 당연히 대단하죠.”“권력은 그렇다 쳐요, 하지만 돈은 제가 많이 갖고 있어요. 당신들 은행을 망가뜨려도 할 말이 없겠죠?” 하현은 면전에서 느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지점장을 바라보았다.“네, 당신이 돈만 있다면 이 은행을 망가뜨리는 것은 말도
이 말인즉슨, 그 핸드폰의 주인은 바로 상업 은행의 VIP 고객이었다.블랙카드에 핸드폰 속의 번호를 더하면, 비록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여전히 가난뱅이 같아 보였지만, 지점장은 겁을 먹기 시작했다.이 세상에 우연이 있기는 했다. 블랙 카드가 거지 손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개인 고객 센터가 전화를 잘못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두 가지 우연이 서로 겹치게 되었을 때, 어떤 일들은 필연이 되어버린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만하기 짝이 없던 지점장은 지금 온몸에 식은땀을 줄줄 흘렸으며, 흰 셔츠가 몸에 다 달라붙을 정도였다.그는 몹시 힘겹게 고개를 들어 하현을 바라봤는데, 하현이 이미 그 경호팀장을 아무렇게나 옆에 던져 놓은 다음 여유로운 표정으로 의자 위에 앉은 것을 보았다.하현은 무심하게 자신이 마실 물 한 잔을 따랐다. “왜요? 전화 안 받아요? 잘 얘기해봐요!”“철퍼덕!” 지점장은 이내 무릎을 꿇었다. “고객님, 아니, 아니, 대표님, 제 눈이 멀어서 사람을 깔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용서해주세요!”이 순간, 그는 옆에 사람이 수두룩한지 신경 쓰지 못한 채 손을 들어 자신의 두 뺨을 때렸다.지점장의 뒤를 따르던 경호원 열 몇 명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사람들도 은행에서 일한 지 오래되어 눈치가 빨랐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모두 털썩하며 무릎을 꿇었다. 어찌 됐든 지점장이 무릎을 꿇었는데, 그들이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있나.“아…” 얼굴에 난폭한 기색이 역력한 경호팀장은 이 광경을 보자 화들짝 놀랐다. “지점장님, 왜 이 도둑놈한테 무릎을 꿇으세요? 왜 그러세요? 열 받으니까 사람을 시켜서 이놈의 다리를 부러뜨리세요!”“어… 어떻게 이럴 수가…” 주리도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반응을 못했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점장이 얼마나 건방진 사람인데, 잘하고 있다가 왜 갑자기 무릎을 꿇은 거지?“쾅!”이때, 보안실 대문이 거세게 걷어차여서 열렸다. 몸집이 거대한 남자 열 몇 명이 한꺼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