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을 하니, 하현은 민혁을 신경 쓰기 싫어 곧장 뒤돌아서 하엔 그룹 회사 안으로 걸어갔다.“민혁 씨가 저 사람이 자기 집안 데릴사위라고 하지 않았나? 어째서 그냥 회사 정문으로 들어간 거지? 게다가 바로 회사 출입증을 찍었잖아?”“설마 이 자식이 무슨 높은 신분이라도 되는 건가?”적지 않은 구경꾼들의 의견이 분분했고 하현의 신분에 호기심을 가졌다.이 말을 듣자, 민혁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분은 무슨? 우리 집안 데릴사위는 하엔 그룹에서 청소부 일을 하고 있어요!”“청소부였구나!” 많은 사람이 깨달았다. 이 거지가 어떻게 안으로 들어갔는지 얘기하더니, 그런 거였구나, 어쩐지.민혁이 말을 끝마치자 실실 웃으며 슬기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슬기 씨, 저 머저리는 신경 쓰지 말고 기분 나빠하지 말아요. 저 자식이 우리의 행복한 시간을 망쳤으니, 오늘 밤에 다시 장소를 정해서 제대로 된 얘기를 해보는 게 어때요?”이 시각, 슬기는 어제 겨울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됐다. 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냉랭하게 말했다. “설민혁 씨, 첫 번째로 저는 당신한테 관심이 없습니다. 두 번째, 저희는 친하지 않아요. 세 번째, 저희 회사 규정에 따르면 이런 물건들을 다 치워야 합니다. 자, 경비를 불러서 당신을 데려가게 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아요. 모두의 체면을 떨어뜨릴 거예요.”민혁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이 비서님,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지금 서울 전체가 다 알아요. 어젯밤에 우리 설씨 집안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당신이 나 때문에 많이 질투했잖아요. 하지만 안심하세요. 우리 둘은 지금 모두가 인정하는 귀여운 한 쌍이에요. 쑥스러워하지 말아요, 당신이 나랑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당신…” 슬기는 얼굴을 찌푸렸다. 잠시 후, 그녀는 민혁에게 눈길 한번 안 주고 오히려 석진에게 달려가며 말했다. “이 물건들을 치우세요. 그리고 만약 이 사람이 안 간다면, 사람을 불러서 쫓아내세요. 한 번 쫓아낸 적 있으니 두 번도 가능하죠!”
아직 오전인데, 서울 전체에 이미 소식이 퍼졌다. 설민혁 이 멍청이는 슬기한테 가서 고백을 했는데 결국 하엔 그룹에서 쫓겨났고, 하엔 그룹과 SL 그룹의 협업은 민혁 때문에 수포가 되었다.......SL 빌라.설 씨 집안 사람 모두 빌라 홀에 모여 난장판이 되었다. 설 씨 어르신은 상석에 앉아 어두운 표정을 보였다.한편, 민혁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얼굴에 띠고 두 팔을 늘어뜨려 홀 가운데에 서 있었다.설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일그러진 얼굴로 민혁을 둘러싸 그를 비난하기 바빴다.“설민혁, 넌 정말 바보야!”“슬기 씨가 너한테 반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 결과는?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역시 넌 믿을 만한 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오늘 밤 어떻게든 우리한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야 해. 너는 우리 SL 그룹의 사업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우리 SL 그룹의 사업 평판도 망가뜨렸어!”사람들은 말할수록 화가 났다. 이 순간, 모두 눈에 불을 켜고 민혁을 잡아먹을 듯했다.“모두 조급해하지 마세요. 이 일은 분명 해결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냥 연인 사이에 일어난 말다툼일 수도 있죠. 다들 민혁이를 믿으세요!” 옆에서 동수는 불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지금 불안해하지 않을 수가 있나? 어젯밤에 민혁이 자신만만하게 말하더니, 겨우 오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일이 이 모양이 됐다. 자칫하면 설씨 집안이 민혁 때문에 파산할지도 모른다.그러나, 동수가 평소에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해도 지금 사람들 본인들의 이익과 관련되어 있으니, 누가 저 부자에게 친절히 대하겠나?이 시각, 상석에 있던 설 씨 어르신은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 민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민혁아, 나는 네가 우리 설씨 집안의 아직 숨겨져 있는 영웅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그 결과는? 너는 날 아주 실망하게 했어. 말해 봐봐,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 건데?”민혁은 울상을 지었다. “할아버지, 이 여자가 책장을 넘기는 것보다도 태도를 빠르게 바꿀지는 생각도 못 했어요.
“해결? 뭘 어떻게 해결하겠다고? 이번에는 누구한테 프러포즈할 건데? 남의 대표님? 문제는 남의 대표님은 남자잖아!”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이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이런 말이 나오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민혁을 비난했다. 본래 은아가 계약을 성사시켰을 때, 적은 금액일지라도 모두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녀석이 뛰쳐나와서 일을 저지르는 바람에 다들 궁지에 빠졌고 언제든지 파산할 위기에 처했다. 만약 어르신이 자리에 없었다면 민혁을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맞아! 은아가 따낸 계약만도 못하잖아!”“자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나불거리더니, 결국은? 쓰레기 자식!”“설민혁! 너 설마 다른 집안이 우리 설씨 집안에 보낸 스파이는 아닐 거 아니야!”민혁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 전에는 저한테 이렇게 말하지 않고 모두 저를 지지했잖아요. 그리고 저는 이 사건의 피해자예요… 다들 안심하세요. 제가 있는 한, 이 일을 반드시 해결할 거예요!”“무슨 재주로 해결할 건데?”“이 기생오라비 같은 얼굴만 믿고 나선다고?!”사람들은 민혁의 체면 따위 신경 안 쓰고 오히려 말을 할수록 흥분해 손찌검할 뻔했다.이때, 황급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어르신, 큰일 났어요. 우씨 집안의 우만식 어르신께서 오셨어요. 게다가 저희랑 협업 중인 다른 고객들도 전부 왔어요!”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세가 드높은, 딱 봐도 비즈니스계의 거물인 사람 몇 명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뜻밖에도 우씨 집안의 어르신 우만식이었다.“설 회장, 우리 두 집안이 어젯밤에 결정한 협업은 아무래도 취소해야겠어요!” 만식은 앞으로 걸어 나와 당연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는 친절하게 굴 생각이 없었다.안색이 살짝 어두워진 설 씨 어르신이 말했다. “우 회장, 이 협업은 어젯밤 당신이 나한테 부탁한 거예요. 어찌 그리 갑자기 취소해요?”이 순간, 백씨 집안의 백영길 어르신도 걸어 나와
“우 씨 어르신, 이건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격이죠!”“맞아요! 그렇게 사업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어젯밤에는 어르신들께서 초대도 없이 오시더니 이것저것 선물하시고는 본인이 직접 협업을 제안하셨잖아요. 근데 지금 하루 만에 마음 바꾸시다니! 정말 옹졸하시네요!”설 씨들의 질책을 받자, 만식과 다른 사람들은 약한 모습 보이지 않고 그에 맞섰다.설 씨 어르신은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로 화가 나 테이블을 한번 세게 내리치더니 소리쳤다. “됐어요, 그만 싸워요!”양쪽 사람들 모두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그는 만식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우 회장, 백 회장, 이런 말까지 나왔으니 더는 뭐라 말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오랜 세월의 우정이 있으니 내 체면 살려주는 셈 치고 사흘의 시간을 주세요. 사흘 내로 내가 하엔 그룹과의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한다면 협업을 취소하는 걸로 하죠, 어때요?”만식 무리는 서로를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오랜 친구이니 당신들에게 사흘의 시간을 드릴게요. 그렇지만 사흘 후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 땅을 주세요!”“당신들…” 설 씨 어르신은 온몸이 떨릴 정도로 분노를 느꼈다. 이 인간들은 그 땅만 바라보고 있다.설 씨 어르신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민혁이 이런 큰일을 저질렀으니 사흘 내로 하엔 그룹의 투자를 받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하지만 그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설씨 집안은 사흘의 시간조차 없었을 것이다.사람들이 웃으며 속속히 떠나는 모습을 보니, 설 씨 어르신의 눈에 이들은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아 보였다!이때, 구석에서 두 손을 늘어뜨리고 서 있던 민혁은 갑자기 뭔가 문득 떠올랐다. 그는 고개를 들어 망설이더니 말했다. “할아버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누구?” 설 씨 어르신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민혁은 음흉한 눈빛으로 사
설 씨 어르신의 눈이 반짝이더니,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은아야, 할아버지는 네가 삐졌다는 걸 알아. 할아버지가 전에 너를 충분히 믿지 못했으니 여기서 너한테 사과할게. 그리고 동수랑 민혁이, 너희 둘도 얼른 은아한테 사과해!”동수와 민혁이는 서로를 힐끗 쳐다보며 어색한 기색을 띠었다. 그들은 평소에 우위에 있는 것에 익숙했으니, 은아같이 겉도는 사람에게 사과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하지만 문제는 지금 달리할 방법이 없었다. 민혁은 깊은 한숨을 들이쉬더니 천천히 은아가 있는 방향으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은아 누나, 이번에는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줘요.”고개를 숙인 순간, 민혁의 얼굴은 음흉한 기색을 띠었는데 찰나였을 뿐이라 아주 잘 감췄다.반면, 동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은아야, 민혁이가 너에게 사과했으니, 큰 아빠도 이 자리를 빌려서 너에게 사과할게.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약속할게. 큰 아빠 체면을 살려서 하엔 그룹에 한번 가볼 수 있을까?“그 놈의 체면! 당신 부자한테 무슨 체면이 있다고? 툭 하면 은아를 찾고, 툭 하면 우리 집 은아를 걷어차고, 당신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람들 속에 있던 희정이 갑자기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희정은 본래 우위에 있었기에, 이번에 은아의 투자가 빼앗겨서 그녀 역시 화를 낼 엄두만 없었을 뿐이지, 분노가 잔뜩 차올라 있었다. 하지만 지금 기회를 손에 넣었으니 자연스럽게 희정은 폭발했다.“제수씨, 이러실 필요가 있을까요? 어찌 됐든 다 설씨 집안에 관한 일인데, 설마 이 작은 일 하나 때문에 설씨 집안이 파산했다고 제수씨가 잘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동수가 음침하게 입을 열었다.파산 두 글자를 듣자, 희정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아왔는데, 거지가 될 바에 그녀는 차라리 죽기를 원했다.그러자, 희정도 태도를 바꾸고 머뭇거리면서 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은아야, 아니면 억지로라도 제안을 받아들
“대표님, 사모님께서 또 하엔 그룹 투자 안건에 관해 얘기하러 오셨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은 지금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만약 민혁이 왔다면 가라고 소리쳤을 텐데 은아의 신분은 특별하다 보니 막 대할 수가 없었다.“어? 또 은아가 왔다고?” 하현은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설 씨 어르신은 늙은 여우 한 마리라 분명 이런 방법을 생각해냈을 것이다. 만약 하엔 그룹과 협력할 수 없다면 설씨 집안은 망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하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은아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약해져 말했다. “이번만큼은 500억을 투자해주자…”“네?” 겨울은 깜짝 놀랐다.“계약서는 저번이랑 똑같이 해요. 설씨 집안 쪽에서 막 나간다면 우리는 바로 이 자산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 하현은 한마디 보탰다.겨울은 확신에 찬 얼굴을 보였다. 역시 대표님은 대단하시다. 당근과 채찍을 양손에 하나씩 쥐고, 설씨 집안 사람들을 갖고 놀지를 않나.“대표님, 그럼 저는 계약을 하러 가볼까요?” 겨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하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가르쳐줘야 해? 일단 거절하고 튕기다가 마지막 날에 마지못해 계약서에 서명하는 걸로 해…”“네, 알겠습니다.” 겨울은 허리를 굽혀 인사한 다음 재빨리 물러났다. 그녀는 은아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엄두가 없었다.“설은아 씨였군요, 이번에는 어쩐 일로 오셨을까요?” 응접실에 들어가자, 겨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은아는 이렇게나 빨리 겨울을 만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 냉큼 일어서며 말했다. “김 부장님, 이번에도 투자에 관한 일이에요. 저번에 저희 SL 그룹 쇼핑몰 협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제 생각에는…”겨울은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설은아 씨, 제가 돕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당신네 설씨 집안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실 텐데… 그쪽 설씨 집안 도련님이 저희 프런트 여직원을 희롱했습니다. 저를 희
대표 사무실.하현은 뒷짐을 진 채 눈앞의 화면을 하나 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겨울이가 일 처리를 꽤 잘하네. 때가 되면 본부장 후보에 올리겠어.”하현 뒤에 서 있던 슬기는 오늘도 머리를 흩날리고 있었는데, 이 얘기를 듣자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 넘기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럼 제가 겨울 씨를 대신해서 먼저 대표님께 감사 인사를 하겠습니다…”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겨울이한테 전해줘요.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고 자세도 똑바로 갖춰야 한다고. 은아가 내 아내라고 과도하게 예의를 차릴 필요 없어요. 이 부부관계도 얼마나 오래 갈지 몰라요…”이 말을 하며, 하현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은아에게 진심이었지만…하현 뒤에서 슬기는 앞부분의 말을 들었는지도 모른 채 온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대표님, 이… 이혼하시려고요?!”“내가 이혼한다는 게 그렇게 이상해요?” 하현은 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인정할게요, 나는 지난 3년 동안 은아에게 진심이었어요. 하지만…”여기까지 말하자 하현은 더 이상 말하기 싫었다. 그는 원래 은아가 자신에게 호감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현은 지금 은아가 자신에게 품고 있는 감정이 사랑은 아니고 단순한 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강아지 한 마리처럼, 오래 키울수록 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하지만 하현은 이 말을 하면서도 오히려 그런 순간이 다가온다면, 자신이 반드시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하현이 외로운 모습으로 작게 탄식하는 걸 보니, 슬기는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그녀는 이 순간 뭐라 말할 엄두가 없었고 생각만 하다가 말했다. “대표님, 사람을 불러서 침실에 가구를 다 배치해 놨습니다. 그런데 욕실은 그렇게 빠르지 않고 인테리어 공사하는 데 며칠은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오늘 밤도 잠시 저의 집에서 머무르시겠어요?”“그래요.” 하현은 핸드폰을 꺼내 힐끗 쳐다보았다. 지금 그에게 핸드폰
아멕스 블랙 카드!이 순간,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말로만 듣던 블랙 카드였다! 이 카드는 서울에서도 다섯 장을 채 넘기지 않았는데, 블랙 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 누구의 신분이 안 놀라울까?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자, 주리는 갑자기 침착함을 되찾았다. 블랙 카드 고객이 손꼽을 정도로 적었고 본부 쪽에는 개개인을 따로 모시는 전문 상담사가 있는데, 이런 고객이 고작 한도를 높이는 사소한 일로 직접 찾아올 리가 있겠나? 심지어 이런 고객들은 상류사회 출신이며 하나같이 화려한 보석의 옷차림을 하는데, 이런 조그마한 카운터에서 줄을 설 리가 있나.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주리의 마음은 확신으로 가득 찼다. 눈앞에 있는 이 자식의 블랙 카드가 가짜거나, 그가 어딘가에서 훔쳐 왔거나 둘 중 하나다!요즘 사람들 같으니라고! 옛날만큼 도덕적이지를 못해!주리는 마음속으로 쉴 새 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 순간, 그녀는 더더욱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곧이어, 주리는 단호하게 카운터 밑에 있는 경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경보 울림소리가 큰소리로 빠르게 퍼졌고, 얼마 안 지나 무장을 한 경호원이 순식간에 구석에서 달려왔다.이 장면을 본 하현은 살짝 놀랐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설마 이 은행은 사람들이 돈을 찾게 하지 않는 건가? 그냥 이체하고 싶은 돈만 처리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하현의 표정을 보자, 주리는 더더욱 자신이 진실을 꿰뚫어 봤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일어서서 하현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더니 비웃으며 말했다. “제 예상이 틀리지는 않았나 보네요. 당신은 어딘가에서 은행 카드 한 장을 훔쳐 돈을 뽑아가려는 도둑이잖아요! 하지만 이건 몰랐죠? 이런 카드는 서울 전체에 다섯 장 밖에 없고, 카드 소지자들은 다 거물급 고객님들이세요, 당신 같은 거지꼴이 아니라!”주리는 자신이 도둑을 잡아낼 날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몹시 의기양양했다. 이 카드를 주인분의 손에 돌려드리는 그날, 이런 거물의 예쁨을 받
현장에는 얼굴이 사색이 된 페낭 TV 기자, 일간 신문 기자, 인플루언서, 사자춤, 용춤을 준비하는 팀들이 양가백약 앞에 도착했다.어쨌든 이들은 오늘 하현과 양유훤에게 미움을 잔뜩 샀으니 이 기회를 빌려 흥이라도 돋워주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하현은 이런 사람들과 왈가왈부하기 싫어서 적당한 보상을 해 주며 조용히 넘겼다.어쨌든 이 사람들은 많은 시민을 대표하기 때문이었다.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마음이 극도로 불안했다.많은 사람들이 이 중요한 순간에 어느 쪽에 서야 할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군중 속에서 넋이 나간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양호남의 어깨가 축 처졌다.그는 마치 마지막 희망의 끈이라도 되는 듯 원가령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원가령은 양호남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며 뿌리치듯 그의 손을 내버리고 하현 앞으로 걸어와 창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 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그녀는 하현의 무덤덤한 표정을 보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달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하현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그럼 우리 이전처럼 친구가 되는 거지?”“우리 좋은 친구였잖아, 안 그래?”하현은 한발 물러서며 원가령의 손을 뿌리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시간은 말이야.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야.”“우린, 되돌아갈 수 없어.”원가령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눈빛이 얼어붙었다가 순간 통곡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자신이 이미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자신이 놓친 게 고작 사람 한 명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보니 자신이 놓친 것은 자신의 소중한 일생이었다.바로 그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전화를 받자마자 전화기 맞은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형부, 어디세요? 왜 우리랑 같이 금정에 안 오셨어요?”전화를 건 사람은 설유아였다.하현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남양 쪽에 볼 일이 있어서 여기
”할머니!”양호남이 쏜살같이 달려갔다.“할머니, 괜찮으세요?!”양신이는 소리를 지르며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당신이 사람이야?!”“이렇게까지 우리 집안을 괴롭혀야 되겠어? 그래도 우리는 당신을 관대하게 봐줬다구!”“그런데 당신은 배은망덕하게도 우리 할머니를 쓰러지게 만들었어!”“은혜도 모르는 버러지 같은 놈!”양신이가 자신에게 마구 악담을 퍼붓자 하현은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미동도 하지 않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양 씨 가문에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내일 이맘때 양 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양유훤에게 내어 주지 않는다면!”“그리고 노부인이 직접 양호남과 양신이의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는다면!”“미안하지만 양 씨 가문은 이대로 끝나는 거야!”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서슬 퍼런 하현의 말에 노부인은 눈앞이 캄캄해졌다.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흉악한 낯빛으로 말했다.“네놈이 감히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양제명, 어떻게 외지인 놈과 손을 잡고 집안 식구들을 괴롭힐 수가 있어?!”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양제명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유지할 뿐이었다.“하현, 당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원가령이 참지 못하고 하현을 향해 소리쳤다.“사람을 이렇게 몰아붙이면 안 돼! 너그럽게 용서할 줄도 알아야지!”“노부인이 뭐라고 하시든 당신한테는 어르신이잖아!”“대하 사람들은 어른을 공경할 줄도 몰라?!”“그러고도 당신이 오천 년 역사를 앞세워 큰소리칠 수 있는 거야?”원천신도 매서운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그렇게 속이 좁아서 어떻게 남자가 큰일을 이룰 수 있겠어?”“사람이 대범해야지!”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원천신을 쳐다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원 사장님. 제가 기회를 드리죠. 악인을 옆에서 부추기며 나쁜 짓을 한 거, 당장 사과하세요!”“사과?”원천신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우리 원 씨 가문을 뭘로 보고 이래? 나한테
”꺼져!”하현이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양유훤이 얼른 눈물을 닦으며 손바닥을 휘둘러 양신이를 날려버렸다.“그만 망신당하고 저리 꺼져!”“양유훤, 감히 날 때려?”“네가 뭔데 날 때려?”양신이는 더욱 분노에 치를 떨며 몸부림치다가 앞으로 나와 양유훤에게 대들었지만 양유훤은 가볍게 손바닥을 휘둘러 양신이의 얼굴을 후려갈겼다.양신이는 다른 양 씨 가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양제명의 서슬 퍼런 시선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양제명은 전쟁의 신이었다.비록 몇 년을 꼼짝 않고 힘을 쓰지 못했지만 그가 뿜어내는 아우라와 위엄은 여전했다.만약 이번에 노부인이 악의로 그를 음해하지 않고 브라흐마 바찬에게 패배하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양 씨 가문의 지존으로 자리했을 것이다.“그만!”양유훤에게 뺨을 맞고도 망신스럽게 달려드는 양신이를 보고 노부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망신 그만 당하고 이제 돌아와!”“늙은 영감탱이, 수완 한 번 좋군!”“하현, 나도 자네를 기억하네!”노부인이 음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런데 이렇게 해서 우리가 무너질 줄 알아? 우리가 모든 걸 잃고 망할 줄 알아? 그렇다면 당신은 너무 순진한 거야!”“그동안 난 이미 충분한 자산을 빼돌려 미국으로 보냈어.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하게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어.”추악한 노부인의 행태를 목격한 양제명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했다.“홍매, 내가 당신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당신과 난 오랜 세월 부부의 연을 맺었어. 난 모든 면에서 당신의 뜻을 존중했어.”“당신이 원하는 걸 내가 주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왜 이 지경까지 된 거야?!”“왜 이렇게까지 된 거냐고?”노부인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당신은 깨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양 씨 가문은 진작에 내 손안에 있었어. 내가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의 진정한 주인이라고!”“나야말로 양 씨 가문의 유일한 주인이야!”“그런데 당신이 왜
거의 자포자기한 듯한 노부인은 원래 같으면 입에 발설하지 않았을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그녀는 능력도 없는 하현이 감히 양 씨 가문을 갈라놓으려 한다는 것에 격분하며 비웃음을 쳤다.지금 무슨 장난하는 거야?!노부인의 치밀한 계략 아래 한 세대를 쥐락펴락하는 전신들도 함부로 그녀 앞에서 날뛰지 못했는데 하물며 대하 외지인이 감히?거칠 것 없는 노부인의 말에 원천신과 원가령도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어쨌든 하현이 아무리 잘난 척해도 양 씨 가문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다.양 씨 가문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이다!그리고 양 씨 가문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인물이 노부인이었다!이런 가문의 후계자가 양호남이었다!오늘 이 정도 체면이 깎인다고 뭐 어떻게 되겠는가?!자산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그렇습니까?”노부인의 말에 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며 말했다.“어르신, 어르신 짐작이 맞으신 듯합니다.”“어르신께 약을 먹은 사람은 어르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하현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후방에서 희미한 탄식과 피로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독사의 입에 있는 독, 말벌 꼬리에 있는 침. 둘 다 지독한 독이지만 가장 지독하고 치명적인 독이 여자의 마음이라더니.”목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하구봉과 강옥연이 휠체어를 밀고 천천히 나오고 있었다.휠체어에 앉은 사람을 보자마자 양유훤은 감정에 격한 표정으로 달려 나왔다.“할아버지, 깨어나셨군요!”그녀는 양제명에게 달려들었고 미소 띤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양제명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깨어나지 않았으면 주변 사람들의 추악한 몰골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느냐?”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남양의 전신이 회복된 것인가?이는 앞으로 남양이 여전히 그의 천하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양 씨 가문 사람들은 눈꺼풀을 펄쩍였고 입가에 경련
정의의 편?정의를 지켜?이 말을 들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은 하마터면 여수혁의 얼굴을 칠 뻔했다.여수혁이 정의를 내걸고 배신을 해?!여수혁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얼른 앞으로 나서며 세상 정의로운 얼굴로 말했다.“당신들 양 씨 가문 사람들은 염치도 모르고 나를 회유해 양유훤의 자산을 동결하게 만들었어. 그리고 은밀하게 그 자산을 이전하길 바랐어!”“하지만 나같이 정의로운 사람이 어떻게 그런 당신들과 한패가 될 수 있겠어?”“당신들이 날 믿도록 하기 위해 난 일부러 고육지책으로 하현을 찾아가 얻어맞기까지 했어!”“결국 당신들은 날 믿었고 난 그 틈을 타 얼른 고소를 취하했지. 동결한 자산이 양유훤에게 돌아간 지 이미 오래야!”“이미 모든 절차는 완료되었어.”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여수혁을 쳐다보았다.그때 분명 여수혁은 자신에게 뺨을 맞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기꺼이 하현의 개가 되겠다고 했던 여수혁의 입에서 어떻게 ‘정의’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가?정말 여수혁은 보통 얍삽한 놈이 아니었다!하지만 하현은 이 사실을 들추어낼 마음이 없었다.효과가 있으면 된 것이었다.여수혁의 말에 노부인을 비롯한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양유훤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양 씨 가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그녀가 마음이 약해서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아무도 모르게 동결된 자산이 자신의 수중으로 들어왔고 지금은 아무도 가져갈 수 없게 단단히 문단속을 해 놨기 때문이었다.쌍방에서 몰래 뒤를 친 것도 모자라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있는 하현을 보니 양호남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양호남은 화를 이기지 못해 벌떡 일어나 튀어나와 악랄하게 악담을 퍼부었다.“양유훤, 무슨 근거로 양 씨 가문 자산을 빼돌린 거야?!”“넌 이제 양 씨 가문 사람이 아니야!”“양 씨 가문의 자산은 우리 양 씨 가문의 것이어야 해!”양신이도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맞장구쳤다.“맞
안타깝게도 양 씨 가문 노부인은 양호남을 자리에 앉히기 위해 양유훤을 모함해 물러나게 만들면서 이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이 일로 그녀는 양 씨 가문의 앞길을 망친 꼴이 되었고 동시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물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다.양 씨 가족들의 시선은 누구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노부인에게로 향했다.그들의 눈동자에 원망의 날이 매섭게 서 있었다.그들은 양 씨 가문 어르신으로서 노부인이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노부인은 지팡이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꽉 주며 이를 악물었다.아무리 해도 지금 이 국면을 만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노부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지금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이 얼마나 의기양양한지, 반대로 양 씨 가문은 얼마나 망신스러운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순간 노부인은 이런 수모를 당하게 한 하현을 죽이고 싶었다.“할머니...”하현의 뒤에 서 있던 양유훤이 조용히 걸어 나왔다.“정말 후회되세요?”양유훤의 말에 노부인의 눈꺼풀은 마치 불에 덴 낙타처럼 펄쩍였고 살의마저 느껴지는 눈빛으로 양유훤을 쏘아보았다.“양유훤, 감히 날 할머니라고 부르다니?!”“네가 우리 양 씨 가문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날 그렇게 부르느냐? 우리 양 씨 가문에는 너 같은 불효녀를 둔 적이 없어!”“왜? 이렇게 되니까 사람들 앞에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고 싶으냐? 날 후회하게 만들고 싶으냐?”“허! 어림도 없다!”양유헌이 담담한 눈길로 자신을 쳐다보자 노부인은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네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신세가 된다고 해도! 내 앞에서 잘난 척 좀 한다고 해도!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우리 양 씨 가문은 너처럼 체면이 당당하게 서진 못하지만 그래도 몇천억의 가산이 있어!”“우리가 지금 문을 닫고 사업을 접는다고 해도 앞으로 몇백 년은 끄떡없어!”“우리 양 씨 가문을 뭉개버리려고? 양 씨 가문 앞에서 잘난 척하고 싶으냐?”“양유훤, 하현. 잘 들어
”하현...”원가령은 망연자실한 듯 멍하니 하현을 쳐다보았다.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그곳에는 그녀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남자가 서 있는 것 같았다....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이 원가령의 마음속에 무겁게 가라앉았다.양호남은 페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지만 하현은 심무해를 자신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었고 기업청 최고 책임자는 스스로 서류철을 갖다 바쳤다.남양 무맹 대표는 직접 현판을 써서 가져왔다!이런 일이 양호남에게 일어날 수 있을까?일어난다고 해도 몇십 년은 더 걸리지 않을까?아무리 생각해도 양호남의 능력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낮았다.아니,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거의 백 퍼센트였다!그가 전신으로 태어난다면 모를까!하지만 양호남 같은 사람이 일대의 전신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그것은 그야말로 헛된 꿈이다!이런 생각이 원가령의 머릿속을 휘젓자 그녀의 마음은 절망과 후회로 가득 찼다.“뭐야? 하현은 진정한 거물이었어!”“남양 3대 가문이 우습게 보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남자였어!”“그가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에 아무런 화도 내지 않았던 것은 나약하고 무능해서가 아니었어!”“그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다 하찮게 보였기 때문이야!”“대하의 촌뜨기라고 생각했는데.”“운 좋게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벌써 감옥에 갔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하현 같은 사람 백 명 천 명이 와도 양호남한테 안 될 줄 알았는데.”“이제 보니 양호남 같은 사람 만 명, 억 명이 와도 그의 앞에서는 감히 무릎을 꿇을 자격도 없는 거였어.”“잘난 척한 사람은 바로 나였어!”순간 원가령은 자신의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충격?후회?현실 부정?아니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절망?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에 원가령의 표정은 극도로 일그러졌다.심지어 목에서 피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아 하마터면 구역질
노부인의 얼굴은 사흘 밤낮을 지샌 사람처럼 새하얗게 변했다.그리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뒤쪽에서 고개를 내민 원청산을 보았다.“하현, 개업 축하해.”“남양 무맹을 대표해 선물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원청산이 손을 흔들자 남양 무맹 제자들이 현판을 들고나왔다.현판 위에는 ‘양가백약’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양가백약!”글자 아래에는 낙관이 찍혀 있었다.남양 무맹.구매 계약서도 주문서도 없이 양가백약, 남양 무맹이라는 여덟 글자뿐이었지만 사람들은 이 현판을 보고 모두 깨달았다.남양 무맹의 상처치료제는 모두 하현의 가게에서 구입할 것이라는 것을!가장 중요한 것은 이 현판이 이곳에 있는 한, 양가백약은 계속해서 사업을 확장할 것이고 관청이든 깡패들이건 아무도 감히 양가백약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이다!심지어 이 현판만 있으면 남양 무맹이 뒤에 있다는 걸 만천하에 알리는 꼴이 된다.돈을 넘어서는 천군만마 그 이상이었다!“뭐라고?!”원천신 일행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들은 이 광경을 보고 현기증이 난 듯 휘청거렸다.노부인 일행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페낭 무맹이 페낭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좌지우지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하물며 남양 무맹이라니!남양에서 남양 무맹의 입김은 실로 말할 것도 없었다.이 현판은 그야말로 천금과도 비견할 만했다.이것만 있으면 하현과 양유훤의 개가죽 연고 가게는 틀림없이 날개 돋친 듯 남양 전역으로 확장할 것이다!노부인 일행은 지금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결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하현과 양유훤이 일어서기만 하면 양 씨 가문 절반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양 씨 가문의 양씨백약이 어떻게 활로를 찾을 수 있겠는가?양 씨 가문 사람들은 눈앞의 상황이 제발 꿈이길 바랐지만 아무리 눈을 꼬집고 봐도
순간 우덕의는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설설 기며 하현 앞으로 굴러와서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감찰관님,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멀어서 하늘 높으신 분을 몰라뵈었습니다!”“제발 대인답게 관대하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부디 이 하찮은 놈을 불쌍히 여기시어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말을 하면서 우덕의는 자신의 뺨을 수십 대 후려갈겼다.“제발 기회를 주십시오!”그리고 십여 명의 그의 심복들도 황공히 얼른 무릎을 꿇었다.감찰관의 공적은 다들 어느 정도 들어봐서 잘 알고 있었다.곧이어 하현의 낡은 가게 앞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원천신 일행은 정신이 혼미해졌고 눈가에는 쉴 새 없이 경련이 일어났다.그녀들은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우덕의는 하현에게 혼쭐을 내주겠다며 큰소리를 뻥뻥 쳤었다.그런데 왜?왜 갑자기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는 것인가?이 무슨 장난 같은 상황이란 말인가?하현은 그냥 대하의 촌뜨기 아니었던가?설마 그에게 또 다른 신분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우덕의를 무릎 꿇릴 만큼?원가령은 이 모든 상황이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눈앞의 광경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그녀는 하현의 가게가 손님은 하나도 없고 파리만 날려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모습을 목격하고 싶었다.하현이 목놓아 눈물을 흘리고 몹시 원통해하며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자신의 행동이 틀렸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해 주고 싶었다.하지만 이런 결과를 보게 될 줄이야!바윗덩이 같은 무거운 좌절감이 원가령의 마음을 짓눌렀다.그녀는 어금니를 와그작 깨물었다.괴로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하현, 순풍에 돛 단 듯 사업 번창하길 바랍니다.”“하현, 이 상처치료제는 정말 효과가 좋은 것 같아요.”“감찰관, 축하하네.”원가령이 이를 악물고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