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인데, 서울 전체에 이미 소식이 퍼졌다. 설민혁 이 멍청이는 슬기한테 가서 고백을 했는데 결국 하엔 그룹에서 쫓겨났고, 하엔 그룹과 SL 그룹의 협업은 민혁 때문에 수포가 되었다.......SL 빌라.설 씨 집안 사람 모두 빌라 홀에 모여 난장판이 되었다. 설 씨 어르신은 상석에 앉아 어두운 표정을 보였다.한편, 민혁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얼굴에 띠고 두 팔을 늘어뜨려 홀 가운데에 서 있었다.설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일그러진 얼굴로 민혁을 둘러싸 그를 비난하기 바빴다.“설민혁, 넌 정말 바보야!”“슬기 씨가 너한테 반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 결과는?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역시 넌 믿을 만한 놈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오늘 밤 어떻게든 우리한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야 해. 너는 우리 SL 그룹의 사업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우리 SL 그룹의 사업 평판도 망가뜨렸어!”사람들은 말할수록 화가 났다. 이 순간, 모두 눈에 불을 켜고 민혁을 잡아먹을 듯했다.“모두 조급해하지 마세요. 이 일은 분명 해결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냥 연인 사이에 일어난 말다툼일 수도 있죠. 다들 민혁이를 믿으세요!” 옆에서 동수는 불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지금 불안해하지 않을 수가 있나? 어젯밤에 민혁이 자신만만하게 말하더니, 겨우 오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일이 이 모양이 됐다. 자칫하면 설씨 집안이 민혁 때문에 파산할지도 모른다.그러나, 동수가 평소에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해도 지금 사람들 본인들의 이익과 관련되어 있으니, 누가 저 부자에게 친절히 대하겠나?이 시각, 상석에 있던 설 씨 어르신은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 민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민혁아, 나는 네가 우리 설씨 집안의 아직 숨겨져 있는 영웅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그 결과는? 너는 날 아주 실망하게 했어. 말해 봐봐,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 건데?”민혁은 울상을 지었다. “할아버지, 이 여자가 책장을 넘기는 것보다도 태도를 빠르게 바꿀지는 생각도 못 했어요.
“해결? 뭘 어떻게 해결하겠다고? 이번에는 누구한테 프러포즈할 건데? 남의 대표님? 문제는 남의 대표님은 남자잖아!”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이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이런 말이 나오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민혁을 비난했다. 본래 은아가 계약을 성사시켰을 때, 적은 금액일지라도 모두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녀석이 뛰쳐나와서 일을 저지르는 바람에 다들 궁지에 빠졌고 언제든지 파산할 위기에 처했다. 만약 어르신이 자리에 없었다면 민혁을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맞아! 은아가 따낸 계약만도 못하잖아!”“자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나불거리더니, 결국은? 쓰레기 자식!”“설민혁! 너 설마 다른 집안이 우리 설씨 집안에 보낸 스파이는 아닐 거 아니야!”민혁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 전에는 저한테 이렇게 말하지 않고 모두 저를 지지했잖아요. 그리고 저는 이 사건의 피해자예요… 다들 안심하세요. 제가 있는 한, 이 일을 반드시 해결할 거예요!”“무슨 재주로 해결할 건데?”“이 기생오라비 같은 얼굴만 믿고 나선다고?!”사람들은 민혁의 체면 따위 신경 안 쓰고 오히려 말을 할수록 흥분해 손찌검할 뻔했다.이때, 황급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어르신, 큰일 났어요. 우씨 집안의 우만식 어르신께서 오셨어요. 게다가 저희랑 협업 중인 다른 고객들도 전부 왔어요!”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세가 드높은, 딱 봐도 비즈니스계의 거물인 사람 몇 명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뜻밖에도 우씨 집안의 어르신 우만식이었다.“설 회장, 우리 두 집안이 어젯밤에 결정한 협업은 아무래도 취소해야겠어요!” 만식은 앞으로 걸어 나와 당연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는 친절하게 굴 생각이 없었다.안색이 살짝 어두워진 설 씨 어르신이 말했다. “우 회장, 이 협업은 어젯밤 당신이 나한테 부탁한 거예요. 어찌 그리 갑자기 취소해요?”이 순간, 백씨 집안의 백영길 어르신도 걸어 나와
“우 씨 어르신, 이건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격이죠!”“맞아요! 그렇게 사업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어젯밤에는 어르신들께서 초대도 없이 오시더니 이것저것 선물하시고는 본인이 직접 협업을 제안하셨잖아요. 근데 지금 하루 만에 마음 바꾸시다니! 정말 옹졸하시네요!”설 씨들의 질책을 받자, 만식과 다른 사람들은 약한 모습 보이지 않고 그에 맞섰다.설 씨 어르신은 가슴이 뜨거워질 정도로 화가 나 테이블을 한번 세게 내리치더니 소리쳤다. “됐어요, 그만 싸워요!”양쪽 사람들 모두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그는 만식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우 회장, 백 회장, 이런 말까지 나왔으니 더는 뭐라 말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오랜 세월의 우정이 있으니 내 체면 살려주는 셈 치고 사흘의 시간을 주세요. 사흘 내로 내가 하엔 그룹과의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한다면 협업을 취소하는 걸로 하죠, 어때요?”만식 무리는 서로를 한번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오랜 친구이니 당신들에게 사흘의 시간을 드릴게요. 그렇지만 사흘 후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 땅을 주세요!”“당신들…” 설 씨 어르신은 온몸이 떨릴 정도로 분노를 느꼈다. 이 인간들은 그 땅만 바라보고 있다.설 씨 어르신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민혁이 이런 큰일을 저질렀으니 사흘 내로 하엔 그룹의 투자를 받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하지만 그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설씨 집안은 사흘의 시간조차 없었을 것이다.사람들이 웃으며 속속히 떠나는 모습을 보니, 설 씨 어르신의 눈에 이들은 양의 탈을 쓴 늑대 같아 보였다!이때, 구석에서 두 손을 늘어뜨리고 서 있던 민혁은 갑자기 뭔가 문득 떠올랐다. 그는 고개를 들어 망설이더니 말했다. “할아버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누구?” 설 씨 어르신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민혁은 음흉한 눈빛으로 사
설 씨 어르신의 눈이 반짝이더니,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은아야, 할아버지는 네가 삐졌다는 걸 알아. 할아버지가 전에 너를 충분히 믿지 못했으니 여기서 너한테 사과할게. 그리고 동수랑 민혁이, 너희 둘도 얼른 은아한테 사과해!”동수와 민혁이는 서로를 힐끗 쳐다보며 어색한 기색을 띠었다. 그들은 평소에 우위에 있는 것에 익숙했으니, 은아같이 겉도는 사람에게 사과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하지만 문제는 지금 달리할 방법이 없었다. 민혁은 깊은 한숨을 들이쉬더니 천천히 은아가 있는 방향으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은아 누나, 이번에는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줘요.”고개를 숙인 순간, 민혁의 얼굴은 음흉한 기색을 띠었는데 찰나였을 뿐이라 아주 잘 감췄다.반면, 동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은아야, 민혁이가 너에게 사과했으니, 큰 아빠도 이 자리를 빌려서 너에게 사과할게.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약속할게. 큰 아빠 체면을 살려서 하엔 그룹에 한번 가볼 수 있을까?“그 놈의 체면! 당신 부자한테 무슨 체면이 있다고? 툭 하면 은아를 찾고, 툭 하면 우리 집 은아를 걷어차고, 당신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람들 속에 있던 희정이 갑자기 일어서서 큰 소리로 말했다. 희정은 본래 우위에 있었기에, 이번에 은아의 투자가 빼앗겨서 그녀 역시 화를 낼 엄두만 없었을 뿐이지, 분노가 잔뜩 차올라 있었다. 하지만 지금 기회를 손에 넣었으니 자연스럽게 희정은 폭발했다.“제수씨, 이러실 필요가 있을까요? 어찌 됐든 다 설씨 집안에 관한 일인데, 설마 이 작은 일 하나 때문에 설씨 집안이 파산했다고 제수씨가 잘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동수가 음침하게 입을 열었다.파산 두 글자를 듣자, 희정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아왔는데, 거지가 될 바에 그녀는 차라리 죽기를 원했다.그러자, 희정도 태도를 바꾸고 머뭇거리면서 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은아야, 아니면 억지로라도 제안을 받아들
“대표님, 사모님께서 또 하엔 그룹 투자 안건에 관해 얘기하러 오셨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은 지금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만약 민혁이 왔다면 가라고 소리쳤을 텐데 은아의 신분은 특별하다 보니 막 대할 수가 없었다.“어? 또 은아가 왔다고?” 하현은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설 씨 어르신은 늙은 여우 한 마리라 분명 이런 방법을 생각해냈을 것이다. 만약 하엔 그룹과 협력할 수 없다면 설씨 집안은 망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하현은 잠시 고민하더니 은아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약해져 말했다. “이번만큼은 500억을 투자해주자…”“네?” 겨울은 깜짝 놀랐다.“계약서는 저번이랑 똑같이 해요. 설씨 집안 쪽에서 막 나간다면 우리는 바로 이 자산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 하현은 한마디 보탰다.겨울은 확신에 찬 얼굴을 보였다. 역시 대표님은 대단하시다. 당근과 채찍을 양손에 하나씩 쥐고, 설씨 집안 사람들을 갖고 놀지를 않나.“대표님, 그럼 저는 계약을 하러 가볼까요?” 겨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하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가르쳐줘야 해? 일단 거절하고 튕기다가 마지막 날에 마지못해 계약서에 서명하는 걸로 해…”“네, 알겠습니다.” 겨울은 허리를 굽혀 인사한 다음 재빨리 물러났다. 그녀는 은아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엄두가 없었다.“설은아 씨였군요, 이번에는 어쩐 일로 오셨을까요?” 응접실에 들어가자, 겨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은아는 이렇게나 빨리 겨울을 만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해 냉큼 일어서며 말했다. “김 부장님, 이번에도 투자에 관한 일이에요. 저번에 저희 SL 그룹 쇼핑몰 협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제 생각에는…”겨울은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설은아 씨, 제가 돕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당신네 설씨 집안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실 텐데… 그쪽 설씨 집안 도련님이 저희 프런트 여직원을 희롱했습니다. 저를 희
대표 사무실.하현은 뒷짐을 진 채 눈앞의 화면을 하나 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겨울이가 일 처리를 꽤 잘하네. 때가 되면 본부장 후보에 올리겠어.”하현 뒤에 서 있던 슬기는 오늘도 머리를 흩날리고 있었는데, 이 얘기를 듣자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 넘기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그럼 제가 겨울 씨를 대신해서 먼저 대표님께 감사 인사를 하겠습니다…”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겨울이한테 전해줘요.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고 자세도 똑바로 갖춰야 한다고. 은아가 내 아내라고 과도하게 예의를 차릴 필요 없어요. 이 부부관계도 얼마나 오래 갈지 몰라요…”이 말을 하며, 하현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은아에게 진심이었지만…하현 뒤에서 슬기는 앞부분의 말을 들었는지도 모른 채 온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대표님, 이… 이혼하시려고요?!”“내가 이혼한다는 게 그렇게 이상해요?” 하현은 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인정할게요, 나는 지난 3년 동안 은아에게 진심이었어요. 하지만…”여기까지 말하자 하현은 더 이상 말하기 싫었다. 그는 원래 은아가 자신에게 호감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현은 지금 은아가 자신에게 품고 있는 감정이 사랑은 아니고 단순한 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강아지 한 마리처럼, 오래 키울수록 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하지만 하현은 이 말을 하면서도 오히려 그런 순간이 다가온다면, 자신이 반드시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하현이 외로운 모습으로 작게 탄식하는 걸 보니, 슬기는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그녀는 이 순간 뭐라 말할 엄두가 없었고 생각만 하다가 말했다. “대표님, 사람을 불러서 침실에 가구를 다 배치해 놨습니다. 그런데 욕실은 그렇게 빠르지 않고 인테리어 공사하는 데 며칠은 걸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오늘 밤도 잠시 저의 집에서 머무르시겠어요?”“그래요.” 하현은 핸드폰을 꺼내 힐끗 쳐다보았다. 지금 그에게 핸드폰
아멕스 블랙 카드!이 순간,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말로만 듣던 블랙 카드였다! 이 카드는 서울에서도 다섯 장을 채 넘기지 않았는데, 블랙 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 누구의 신분이 안 놀라울까?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자, 주리는 갑자기 침착함을 되찾았다. 블랙 카드 고객이 손꼽을 정도로 적었고 본부 쪽에는 개개인을 따로 모시는 전문 상담사가 있는데, 이런 고객이 고작 한도를 높이는 사소한 일로 직접 찾아올 리가 있겠나? 심지어 이런 고객들은 상류사회 출신이며 하나같이 화려한 보석의 옷차림을 하는데, 이런 조그마한 카운터에서 줄을 설 리가 있나.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주리의 마음은 확신으로 가득 찼다. 눈앞에 있는 이 자식의 블랙 카드가 가짜거나, 그가 어딘가에서 훔쳐 왔거나 둘 중 하나다!요즘 사람들 같으니라고! 옛날만큼 도덕적이지를 못해!주리는 마음속으로 쉴 새 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 순간, 그녀는 더더욱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곧이어, 주리는 단호하게 카운터 밑에 있는 경보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경보 울림소리가 큰소리로 빠르게 퍼졌고, 얼마 안 지나 무장을 한 경호원이 순식간에 구석에서 달려왔다.이 장면을 본 하현은 살짝 놀랐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설마 이 은행은 사람들이 돈을 찾게 하지 않는 건가? 그냥 이체하고 싶은 돈만 처리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하현의 표정을 보자, 주리는 더더욱 자신이 진실을 꿰뚫어 봤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일어서서 하현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더니 비웃으며 말했다. “제 예상이 틀리지는 않았나 보네요. 당신은 어딘가에서 은행 카드 한 장을 훔쳐 돈을 뽑아가려는 도둑이잖아요! 하지만 이건 몰랐죠? 이런 카드는 서울 전체에 다섯 장 밖에 없고, 카드 소지자들은 다 거물급 고객님들이세요, 당신 같은 거지꼴이 아니라!”주리는 자신이 도둑을 잡아낼 날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몹시 의기양양했다. 이 카드를 주인분의 손에 돌려드리는 그날, 이런 거물의 예쁨을 받
주리는 말을 하며 마음속으로 차가운 웃음을 연이어 터뜨렸다. 슬기의 외모, 몸매 그리고 카리스마 모두 그녀보다 한 수위 높았다. 주리는 질투를 조금 느꼈지만 기어코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기분이 몹시 안 좋았을 뿐이다.이 도둑은 참 대단했다. 블랙 카드 한 장 가지고 자기가 무슨 대표라고 다른 사람들을 속여? 이런 파렴치한을 봤나.슬기는 주리를 쳐다보며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여기 아가씨, 말을 할 때는 가려서 하세요. 이분은 우리 회사 대표님이신데, 이렇게 예의 없게 대하시면 우리 회사는 다른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는 것도 개의치 않아요. 당신들의 사업이 거대한 건 맞아요. 하지만 서울 전체에 당신들 은행 하나밖에 없는 건 아니잖아요.”우리 회사 대표님은 아무렇게나 수백억 원 이상의 투자를 하시는데,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표님이 사기꾼이라니? 하늘 아래 제일 웃긴 농담이었다.주리는 위아래로 슬기를 훑어보더니 조롱하며 말했다. “저 사람은 도둑이 아니라고요? 그럼 아닌 거예요? 이 블랙 카드가 뭔지 당신들은 알고 있기나 해요? 우리 은행에 유동자금 1000억 원이 없고 재테크 상품 1조 원이 없는 사람은 이런 은행 카드를 가지고 있을 수가 없어요! 당신은 이런 거지 같은 남자가 어딜 봐서 그렇게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이 블랙 카드는 훔친 게 아니라면 어떻게 갖고 있는 건데요?”슬기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당신 정말 억지 부리지 않으면 안 돼요? 우리 대표님 카드인지 아닌지는 카드를 긁어서 비밀번호를 눌러보면 알 수 있는 거 아니에요?”이 이야기를 듣자 주리의 얼굴에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고, 그녀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카드를 긁어요? 비밀번호를 누른다고요? 이런 카드는 핸드폰이랑 연동되어 있는 거 몰라요? 누군가 카드를 긁으면 비밀번호가 맞든 안 맞든 카드 주인 쪽에 힌트가 표시될 거예요! 만약 카드 주인이 우리 은행이 결례를 범했다고 생각하면 어떡해요? 그렇게 단순한 생각으로 사람을 해치지
경찰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여자의 말이 틀린 데가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하현은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깁스를 했다고 불법은 아니지. 하지만 깁스 안에 규조토를 섞으면 불법이지.”하현은 천천히 손에 든 홍차를 깁스 위에 뿌렸다.하현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여자의 안색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규조토는 매우 특별한 화학 물질이었기 때문에 약용이나 C4 총기의 원료로만 쓰인다.“규조토를 폭발시키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물질이 필요하지. 게다가 그건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야. 바로 알코올이지!”“규조토 위에 소주, 보드카 등 독한 술을 한 잔만 뿌려도 끔찍한 폭발이 일어날 수 있어!”“그 폭발의 위력은 아주 무서워!”“이론적으로 깁스 형태로 만들 정도로 규조토를 썼다면 그 폭발력은 어마어마해. 아마 이 비행기는 중간 어느 지점에서 두 동강이 나고도 남아!”“아마도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공중에서 폭발했을 거야!”“그러면 이 비행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 죽는 거지!”“뼈도 하나 못 추릴 만큼 가루가 되어서 흩어지는 거야!”여기까지 말한 하현은 스튜어디스에게 비상 탈출구를 열라고 지시한 다음 작은 깁스 부스러기를 집어서 떨어뜨리며 보드카 한 잔을 뿌렸다.“쾅!”보드카와 깁스 부스러기가 닿는 순간 굉음과 함께 불꽃이 번지는 것이 보였다.이다송과 양효리는 모두 아연실색했다.만약 정말로 비행 중인 비행기 안에서 폭발이 일어난다면 모두 죽는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간단히 말해서, 하현은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듯했지만 그의 행동이 모두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깁스를 한 여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이 자신의 계략을 모두 간파했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중년 형사는 식은땀을 쫙 흘렸다.신고가 들어온 비행기를 자신이 살핀 뒤에
하지만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흥미로운 듯한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그러자 그녀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녀는 분명 하현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고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려는 심사인 듯했다.“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죠.”“여러분의 시야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뭔가를 숨기는 사람도 많으니까요.”하현은 홍차를 한 잔 따라 마시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공항 경찰이라 그런가? 별로 프로답지 못하시군요들!”“내가 경찰서장이라면 다른 일 다 제쳐두고 당신들 해고하는 일부터 할 겁니다!”“당신들은 스스로가 다 찾아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C4 총기를 가장 잘 숨기기 좋은 곳을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거예요!”말을 하면서 하현은 들고 있던 홍차를 여자의 다친 왼손에 부었다.“아!”여자는 뜨거운 찻물에 데여 비명을 지르며 하현을 향해 버럭 화를 냈다.“개자식! 지금 뭐 하는 거야?”“다친 손인데 조사할 게 뭐 있다는 거야?”“내가 정말 C4 총기를 숨기고 있는 줄 알아?”“설마 나 스스로 내 목숨을 끊고 당신들과 이 자리에서 죽으려고 한다고 거야?”“난 연봉 수억을 받는 임원이야. 내 목숨은 누구보다 소중해!”말을 하면서 여자는 수사대장에게 지갑에 든 명함을 꺼내 신분을 증명하려고 제시하려고 했다.그러자 제일 앞에 있던 중년의 수사대장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젊은이, 여기서 이렇게 함부로 굴지 마. 우쭐대고 싶어서 주위의 시선을 좀 모으려나 본데!”“방금 우리가 확인했어. C4 총기 같은 건 전혀 없었어!”하현은 중년 형사의 경고를 무시한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왼손을 다쳤다고 했지만 몸에서는 아무 약 냄새도 나지 않아.”“그리고 지금 보니 당신은 얼굴에 아주 풀메이크업을 했군. 분명 본인이 한 거겠지.”“그런데 말이야. 한 손으로는 이렇게 완벽한 화장을 할 수 없어.”“무엇보다 팔을 다친
곧이어 사복을 입은 여자 경찰이 쏜살같이 앞으로 나와 여자의 온몸을 뒤졌다.잠시 후 여자 경찰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여자의 몸을 수색했지만 지갑과 핸드폰 외에는 아무것도 나온 게 없었고 이상한 단서라고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여자 경찰은 여기서 단념하지 않고 또 한 번 빠르게 수색했다.이번엔 여자의 발바닥까지 뒤졌지만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여자 경찰은 어두운 표정으로 중년의 사복 경찰을 향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 수밖에 없었다.중년의 경찰은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가 일등석 바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이다송, 양효리. 당신들 둘 다 죽고 싶어?”“이 여자한테서 C4 총기가 발견되었다고 하지 않았어?”“당신들 말 때문에 귀한 일등석 손님들한테 피해를 줬잖아? 이제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할 거야?”양효리와 이다송 두 사람은 창백한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그늘진 그녀들의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보통 이런 일을 발견하면 공을 세운 만큼 큰 보상을 받게 된다.그것이 적어도 수천만 원이나 된다.하지만 지금은?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그녀들은 웃음거리가 되었다.경찰서에서든 회사에서든 피해를 일으킨 것에 배상하기 위해 본보기로 두 사람을 해고할 것이다.모든 책임을 두 사람에게 떠넘기는 셈이다.“수사대장님, 죄송합니다. 저희도 신고가 들어와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승객 한 분이 이 여자한테 문제가 있다고 해서 저희도 사실대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이다송이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중년 경찰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어떤 승객이 그따위 소리를 해? 누구야? 우리와 함께 경찰서에 좀 가 줘야겠어!”“그 사람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이 일에 책임을 져야지!”“아가씨, 정말 죄송합니다.”말을 하면서 중년 경찰은 바닥에 쓰러진 여자에게 굽실거리며 말했다.“이 일은 저희가 반드시 책임지고 제대로 처리하겠습니다.”“제대로 처리하겠다고요?”여자는
하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그 여자가 나한테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난 이미 냄새를 맡았다구요!”“냄새요?”“당신이 무슨 개코인 줄 아세요?”“그렇게 예리한 후각을 가졌다구요?!”두 스튜어디스가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가 경멸에 가득 찬 눈빛으로 다시 하현에게 시선을 돌렸다.분명 여기저기서 허세나 부리며 날뛰는 미친놈이라 생각한 듯했다.“마지막으로 기회를 줄 테니 어서 지금 바로 자리로 돌아가세요.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불러 당신을 잡아가라고 할 겁니다!”늘씬한 스튜어디스가 거만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여기는 수백 명이 탑승한 비행이 안입니다.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안 되는 곳이라구요!”“당신이 아무리 일등석 고객이라도 소용없어요!”스튜어디스는 차갑게 말을 이었다.“당신 코가 그렇게 예리한 후각을 가졌다니 그럼 이것도 좀 맡아 보세요? 내가 무슨 향수를 썼는지 알아맞춰 보시라구요!”하현은 눈앞에 곱게 화장한 두 스튜어디스의 얼굴에서 그녀들의 가슴에 달려 있는 이름표로 눈길을 돌렸다.그리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양효리, 당신은 어젯밤에 우유 욕조에 몸을 담그고 샤넬 5호 향수를 뿌렸어요. 그런데 평소 근검절약하는 습성 때문에 아끼고 아끼던 향수의 유통기한은 이미 지나버려서 지금은 거의 베이스 향만 남았군요.”“그리고 이다송, 당신은 어젯밤에 두 명의 남자랑 함께 보냈군요. 한 명은 값싼 향수를 쓰는 한량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좀 신분이 있는 남자였을 겁니다. 에르메스 향수를 쓴 것 보니...”“두 가지 향수가 당신 몸에 섞여 있어요. 아마도 어젯밤 당신은 너무 피곤해서 샤워할 틈도 없이 바로 오늘 아침 출근한 것이 틀림없어요...”하현의 말을 듣고 두 스튜어디스의 얼굴이 갑자기 추위에 얼어붙은 고목처럼 얼어붙었다.이다송은 하현이 어떻게 자신의 비밀을 알아챘는지 따질 겨를도 없이 바로 기장을 찾아 허둥지둥 뒷걸음질쳤다.두 사람이
이 모습을 본 일등석의 스튜어디스가 열정적으로 다가와 그녀를 도와주었다.여자는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남은 자리에 앉았다.주변 승객들은 힐끔 쳐다볼 뿐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은 살짝 찡그린 얼굴로 그녀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깁스를 한 그녀의 손에 자꾸 시선이 갔던 것이다.뭔가 미심쩍은 냄새가 진동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낌새를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하현은 수년 동안 전쟁터에서 굴러온 사람이라 이런 낌새에 기가 막히게 촉각이 발달해 있었다.순간 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는 곧장 몸을 돌려 일등석을 떠났고 힐끔 뒤를 돌아 그녀를 쳐다보았다.그러나 그 여자는 하현의 움직임에 신경도 쓰지 않았다.하현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순간 하현은 본능적으로 멈춰 섰다.이것은 상대방이 자신을 노리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이때 아리따운 용모의 스튜어디스가 하현에게 다가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손님, 비행기가 곧 이륙합니다. 죄송하지만 자리로 돌아가 앉아 주시겠어요?”또 다른 스튜어디스가 거들며 나섰다.“화장실에 가실 거면 이륙 후에 이용해 주십시오.”하현이 일등석에서 나왔기 때문에 스튜어디스들은 불만이 있어도 상냥하게 응대해야 했다.만약 다른 손님이 비행기 이륙에 방해를 했다면 아마 호되게 창피를 당했을 것이다.하현은 앞으로 나와 일등석의 유리문이 자동으로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기장님께 연락 좀 해 주십시오. 제가 기장님을 만나야 합니다.”하현의 표정을 본 스튜어디스는 상냥한 미소로 말했다.“손님, 아무리 일등석 손님이어도 마음대로 기장님을 볼 수 있는 없습니다.”“비행기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저희가 따로 등록을 해 드릴 수는 있어요. 괜찮으시겠습니까?”스튜어디스는 하현을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소위 인플루언서쯤으로 생각한 게 분명했다.최근 몇 년 동안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기장을 찾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차는 곧 항성 국제공항에 도착했다.하수진과 다정하게 포옹을 나눈 후 하현은 곧바로 공항으로 들어갔다.하현은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는 일반 통로로 들어가지 않고 VIP 통로를 이용해 들어가 비행기 일등석 자리에 앉았다.지난번 페낭에 갈 때 비행기를 탔던 일이 떠올라 이번에는 번거로운 일을 피하기 위해 일등석을 선택했다.그는 앉자마자 스튜어디스에게 담요를 요청하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스튜어디스를 찾기도 전에 하이힐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곧이어 향기로운 기운이 코끝을 스쳤다.그리고 검은 상의를 입은 여자가 여러 명의 남자들을 거느리고 일등석으로 들어섰다.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힐끔 그쪽을 쳐다보았다.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커다란 선글라스로 얼굴의 반쯤 가린 채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롱부츠의 힐에 짧은 가죽바지를 입은 여자는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서 한 번 눈길만 스쳐도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일게 만들었다.하얀 박꽃 같은 허벅지가 남자들의 심장에 방망이질을 해 대었다.이런 일에 무던한 하현도 저도 모르게 몇 번이나 눈길이 갈 정도였다.여자는 작은 입과 뾰족한 턱만 드러났는데도 예쁘다는 인상을 풍겼다.그녀의 옆에 서 있던 남자들이 하현을 매섭게 쏘아보았다.아마도 하현의 시선이 불만인 듯했다.이들의 시선은 일등석 안을 휘저었고 여자가 앉을 곳을 샅샅이 뒤져본 후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게 확인되자 여자를 앉혔다.여자는 마침 하현의 앞자리에 앉았다.선글라스를 벗은 뒤 스카프를 벗은 그녀는 의자를 뒤로 조절한 뒤 고개를 돌려 하현을 쳐다보았다.“죄송하지만 조금만 뒤로 젖힐게요. 푹 쉬고 싶어서요.”하현은 상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말했다.“괜찮습니다. 금정까지 몇 시간이나 되니까요. 충분히 쉬고 싶은 게 정상이죠.”“여기 아직 공간이 있으니 괜찮습니다.”여자는 하현의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별말 없이 눈을 지그시 감고 좌석에 기대었다.은은한 향내가 뒤
”왜? 장생전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어?”하현이 뭔가 의아한 듯 눈이 동그래지며 하수진을 쳐다보았다.항도 하 씨 가문은 5대 문벌 중 하나였고 고대부터 지금까지 존재해 온 집안이었으니 장생전에 대해 아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하수진이 드디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장생전의 뿌리가 어디인지는 지금도 알려진 것이 없어.”“왕조 말기부터 대하는 장생전이 가장 많이 활동한 곳이었지.”“그리고 또 다른 곳은 섬나라야.”“장생전의 목적은 간단해. 불로장생.”“그래서 그들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많은 일을 해 왔어.”“예를 들어 킬러가 되거나 권력자가 되거나. 그래서 듣기로는 남양 지역의 일부 소국에서는 정권 교체에도 장생전의 입김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하더라구.”“간단히 말해서 불로장생을 위해서라면 그들은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온갖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쟁취하려고 들지.”“하지만 그들은 역사의 어두운 이면에 오랫동안 숨어 있었어. 역사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추진했기 때문이야.”“그래서 우리 5대 문벌이든 10대 가문이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장생전을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았어.”“그렇지만 항도 하 씨 가문이 항성과 도성에 뿌리를 내린 이후로 장생전과 몇 번 부딪힌 적은 있었어.”“변변찮은 반격도 하지 못한 채 항상 항도 하 씨 가문이 열세였지.”여기까지 말하고 나자 하수진의 안색이 급격히 일그러졌다.하현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대하의 오랜 5대 문벌 중 하나인 항도 하 씨 가문이 장생전과의 싸움에서 몇 번이나 밀렸다?!하지만 생각해 보니 수긍이 가는 일이었다.장생전은 오랫동안 음지에서 이어져 온 조직이었다.강력하면서도 은밀하고 치밀한 조직이다.“그렇다면 내가 장생전을 상대하려고 하는 건 좀 위험하다는 얘기야?”하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수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말
하문준은 곧바로 답장을 보내왔다.그들 부부가 또 아이를 임신했다는 좋은 소식도 함께 보냈다.지금 대하를 떠나 있는 것은 항도 하 씨 가문의 비바람을 피해 안심하고 뱃속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라는 말도 덧붙였다.그들의 기쁜 소식에 하현도 진심으로 기뻐했다.그래서 그는 문자를 받자마자 어떤 정보도 누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곧바로 삭제했다.그런 다음 하현은 하수진에게 부탁해 공항으로 좀 데려다 달라고 했다.오늘 밤 금정으로 날아갈 생각이었다.길쭉한 롤스로이스에서 검은 스타킹을 신은 하수진이 샴페인 한 잔을 손에 쥐고 하현에게 건넸다.“오빠, 정말 항성에서 며칠 더 머물 생각 없어?”“문주께서도 말씀하셨어. 원한다면 아예 여기 남아도 괜찮다고.”“항도 하 씨 가문은 이제 내 것이기도 하고 오빠 것이기도 해.”샴페인 한 잔을 넘긴 하수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숨겨왔던 자신의 감정이 들킨 것 같아 얼른 얼굴을 돌렸다.하현은 못 본 척하며 싱긋 웃었다.“항도 하 씨 가문, 좋지. 하지만 항도 하 씨 가문의 노부인은 나를 반기지 않아.”“이제 겨우 당신들이 가까스로 항성과 도성의 상황을 평온하게 유지했는데 내가 남으면 또 비바람이 몰아칠 거야.”하수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누가 감히 내 앞에서 딴소리를 하겠어? 겁도 없이.”“항성 S4네, 4대 규수네 뭐네 해도 지금 다들 내 밑에서 조용해!”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아니야. 내가 감히 어떻게 항성과 도성에서 당신의 위세를 등에 업고 우쭐댈 수 있겠어?”“하지만 항성에 있는 대구 엔터테인먼트, 잘 좀 부탁해.”“그건 내 사업이니까 집안에서 누가 꿀꺽하지 않도록 말이야.”하현이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는 걸 아는 하수진은 소리 없이 웃었다.도박왕 화풍성이 아무리 배짱이 좋고 담력이 세도 감히 대구 엔터테인먼트를 삼키지는 못할 것이다.게다가 만약 그녀의 추측이 맞다면 아마도 대구 엔터테인먼트는 순조롭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마세요!”“장생전의 비밀이나 털어놓으시죠!”“그러면 그들에게 기회를 주겠습니다!”“그렇지 않으면 내 명령 한 마디면 저들은 상어 밥이 될 거예요!”하현은 단호하고 거침없이 내뱉었다.노부인과 계속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끌고 싶지도 않았다.어쨌든 하현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것이다.노부인은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하현, 내가 장생전과 관계가 있다고 해서 많은 걸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외부 연락선일 뿐이야!”“그런 내가 어떻게 내부의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있겠어?!”“내가 아는 건 이미 전부 다 말했어!”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장조림을 한 조각 집어 들었다.“다른 사람이라면 지금 그런 말을 믿었을 거예요.”“하지만 노부인 당신이 하는 말은 믿지 않습니다.”“왜냐하면 당신 같은 인물은 계산에 아주 밝은 사람이니까요. 충분한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양제명 어르신이 고분을 찾을 수 있도록 했겠습니까?”“만약 당신이 일정한 지위가 없다면 몇 번이고 전신을 죽이려고 했을 겁니다, 아닌가요?”“말하자면 장생전이 당신한테 아무런 담보도 대가도 주지 않고서야 어떻게 당신이 그렇게 기꺼이 그들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했겠어요?”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사실 하현은 장생전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이 없었다.심지어 대부분은 단편적인 추측을 통해 얻은 것이다.그러나 그는 노부인이 장생전과 관련이 있다고 거의 확신했다.그리고 노부인도 계속 이 점을 부인하지 않아서 하현은 그녀가 파악하고 있는 모든 것을 토해내도록 유도를 하고 있었다.하현의 말을 들은 노부인은 자신도 모르게 침묵에 빠졌다.이때 하현은 웃으며 손뼉을 쳤다.“황천화, 당신한테 한 가지 임무를 주겠어. 가서 양호남과 양신이의 배를 침몰시켜!”“그 일이 끝나면 당신은 바로 남양으로 돌아가도 돼!”하현의 말을 들은 황천화는 바로 몸을 돌려 곧바로 떠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