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의 호언장담하는 말을 듣고 재석과 희정 둘 다 멍해졌다. 잠시 후 재석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어. 일이 이미 이렇게 됐으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게.”“너 오늘 힘들었을 텐데 푹 쉬어.”말을 마치고 재석은 희정을 데리고 갔다.실망했다!그들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깊은 실망만 있을 뿐이었다!이 와중에 하현은 여전히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지금 그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기가 싫었다. 그들의 눈에 하현 같은 사람은 이미 구제불능으로 보였다. 은아는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여보, 나 놀리지 마!”“앞으로 우리 작은 사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평생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사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거야.”“정 안되면 우리 노점상 하자. 요즘 노점상도 많지 않아? 아니면 오늘 밤부터 시작하자!”은아는 한다면 하는 성격이었고, 실행력도 강했다. 그녀는 직접 인터넷으로 근처의 몇 개 작은 상품 도매 시장을 찾아본 후 기분 좋게 하현을 데리고 물건을 사러 갔다. 하현은 할 말을 잃었다. 곧 은아는 팔 만한 물건을 준비했고 산책로에 노점을 하나 구했다. 은아의 말에 따르면 오늘 그들 부부는 개업을 한 셈이다. 은아가 선택한 곳은 산책로 중심가로 평일에도 인파가 많이 몰렸지만 밤이 되면 더욱 붐볐다. 은아는 물건도 잘 골랐고 값도 싼 데가 요괴급 미녀였다. 그래서 이 노점은 세팅이 끝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고 안팎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렸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곧 물건들이 거의 다 팔렸다. 하현은 은아가 이렇게 웃는 것을 보니 어떻게 말하든 아내가 기뻐하면 그만이었다. 노점상을 하면 또 뭐가 어때서?노점상도 창업이다!“어? 이거 설은아 회장 아니야? 내가 듣기로 설 회장 회사는 현재 회사 시가가 몇 천억이라던데. 그리고 벤틀리를 몰고 다닌다면서요.”“그래 귀하디 귀한 부자 설 회장이 오늘 밤 체험을 하러 나왔단 말인가요?”바로 이 때 양복차림의 대
은아는 얼굴색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녀는 노점을 차리고 나서 이덕재처럼 옹졸하고 구역질 나는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 “이 매니저님, 손에 들고 있는 이 양말은 별로 좋지 않은 거 같은데요!”“맞아요!”이덕재는 분명 이 부하들 앞에서 설은아 얘기를 여러 차례 했을 것이다. 그는 설은아가 자신을 해고시킨 일에 대한 원망이 컸을 뿐 아니라 줄곧 설은아를 탐내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이때 하현이 뒤에서 나와 인상을 찡그리며 이덕재를 쳐다보았다. 은아가 노점상을 이렇게 즐겁게 하니 막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는 놈이 와서 어지럽히고 있으니 하현은 조금 화가 났다. 이때 하현의 눈빛은 차가웠다. 눈빛만으로도 이덕재는 몸서리가 쳐지는 느낌이었다. 하현이 나서는 것을 보고 은아는 깜짝 놀라며 속삭이며 말했다. “하현, 이 녀석들은 상대할 필요가 없어. 우리는 장사하러 나왔고, 기분 좋게 돈을 벌었잖아.”분명 그녀는 하현이 참지 못하고 손을 대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이 되었다. 지금 그녀는 백운회사의 회장이 아니었다. 만에 하나라도 하현이 손을 대서 사람이 다치기라도 해서 지구 경찰서에 끌려가면 어떻게 하겠는가?하현은 은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네 말 들을 게.”말을 마치고 그는 이덕재를 힐끗 쳐다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우리는 너 같은 손님은 환영하지 않아. 꺼져.”하현의 말을 들은 이덕재의 얼굴이 갑자기 괴상하게 변했다. 그는 하현을 잠시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갑자기 ‘피식’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 분, 설 회장의 전설의 데릴남편이죠?”“듣기로 기둥서방으로 대단하다던데, 설 회장에게 장가든지 3년이 됐는데도 설가에 기여한 바가 하나도 없다면서요?” “이제 설 회장의 회사는 다른 사람 손에 넘어 갔고 그녀가 노점을 해서 벌어 먹여야 한다니.”“임마, 인정하지 않을래야 안 할 수가 없잖아. 너 이 기둥서방은 허풍이 너무 심해!”
이렇게 굽실거리는 은아의 말을 듣고 이덕재는 더욱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설 회장, 당신이 이 정도까지 말을 한 이상 그럼 나도 당신의 사업을 잘 보살펴 드려야죠!”“당신 양말들 내가 다 살게요!”말을 마치고 이덕재는 옹졸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옹졸했다. “저도 한 켤레 살래요!”“하하하……”이덕재의 부하들은 옹졸하게 웃기 시작했고 침을 뚝뚝 흘리는 눈빛으로 은아를 쳐다 보았다. 이덕재는 더욱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설은아, 내가 듣기로 네가 이미 백운회사의 주식을 다 내줬다고 들었어. 그러니까 너는 지금 가난해서 아마 방세도 내지 못할 거야.” “이렇게 하자. 우리 회사가 최근에 마침 비서를 한 명 뽑고 있거든. 한 달에 백만 원이야.”“계속 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만약 네가 생각이 좀 있으면 이 자리를 너한테 줄 수 있어!”“근데 내 비서가 되려면 한가지 원칙을 기억해야 돼. 그건 일이 있을 때 비서가 일을 처리해야 하는 거야.” 하현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은 너무 옹졸하다. 이때 그는 참을 수 없어 뺨을 한 대 때리고 머리를 변기에 쑤셔 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은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여보, 됐어. 우리가 가면 돼.”“앞으로 노점상을 하면 비슷한 일들이 많을 거야. 당신이 별 일도 아닌데 손을 대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장사를 해?”은아의 진지한 표정을 본 하현은 차마 그녀를 실망시키지 못하고 싸늘한 표정으로 이덕재를 쳐다보았다. 하현의 옷이 찌질한 것을 보고 이덕재는 하하하 큰 소리로 웃었다. “설은아, 네 남편 안되겠다. 내가 이 기둥서방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거야? 너는 그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어쨌든 너는 미인이잖아. 이런 폐물과 뭘 할 수 있겠어? 나는 네가 나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 아니면 네 예쁜 얼굴이 아깝잖아.”이번에는 이덕재가 입만 열었을 뿐 아니라 옹졸한 얼굴로 다가와 은아의
이덕재는 땅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허둥지둥 대며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다이얼을 눌렀다. “파리 형님, 저예요. 이씨요!”“제가 산책로에서 노점상한테 맞았어요!”“여기 형님네 구역이잖아요. 반드시 저 대신 바르게 처리 좀 해주세요!”파리 형님이라는 호칭을 듣자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안색이 변했다. 잠시 후 어떤 사람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 어르신, 당신이 말한 파리 형님이라는 분이 설마 산책로 관리인은 아니겠죠?”“네가 좀 볼 줄 아는 구나. 그 파리 형님이야!”“파리 형님은 길바닥 보스 중의 한 분이라 이 산책로 일대는 모두 그가 관할하고 있어!”“그 분이 바로 우리 큰 형님이야!”이덕재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안색이 급변했다. 특히 일부 노점상들은 지금 안색이 극도로 안 좋아졌다. 그러자 몇몇 친절한 노점상들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가씨, 빨리 가요!”“이 파리 형님은 간단하지가 않아요! 여기서 노점상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보호비를 내야 해요!”“만약 내지 않으면 노점을 부수고 심하게는 때리기도 해요!”“게다가 그 파리 형님은 아주 여자들을 좋아해서 노점상의 아가씨들이 그에게 많이 당했어요!”“그리고 이 작은 형님도 손해는 절대 보지 않으니 빨리 가세요. 물건도 바라지 말고요!”“안 그랬다가 파리 형님이 오면 당신들은 가지도 못할 거예요!”분명 구경꾼 중에는 좋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의 말이 비록 조금 과장되었다고 해도 문제는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밑바닥 생활에도 밑바닥의 울타리가 있다. 포장마차가 있는 산책로에 보호비를 받는 큰 보스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방금 다들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 다들 은아같이 예쁜 아가씨가 파리 형 같은 사람한테 짓밟힐 걸 생각하니 참아 볼 수가 없었다. 이때 이덕재가 냉소하며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가? 이럴
파리 형님은 냉소하며 말했다. “어르신 구역에서 노점을 차리는데 감히 보호비를 안 내? 좀 재미있네!”“이렇게 시시비비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말을 하는 동안 파리 형님은 ‘퉤’하고 땅에 침을 뱉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 놈아, 이 침 깨끗이 핥아. 그리고 다시 무릎 꿇고 어르신과 얘기 좀 하자!”“아니면 어르신이 오늘 네 손발을 모두 부러뜨릴 거야!”이 말에 이덕재와 그의 부하들은 냉소를 터뜨렸다. 이덕재는 더더욱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 놈아, 들었어? 빨리 무릎 안 꿇어!”“너 지금 말 들어. 파리 형님이 아직 너를 안 죽이셨잖아!”“네가 말을 듣지 않으면 이따가는 기어나가지도 못할까 봐 걱정된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이덕재가 거기서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며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때 은아는 황급히 하현에게 다가가 그를 막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현, 이 사람들은 모두 길바닥 사람들이야. 우리는 지금 건드릴 수 없어.”말을 마치고 그녀는 파리 형님에게 사과를 하며 말했다. “파리 형님, 저희가 처음 와서 이곳의 규칙을 잘 몰랐어요.”“어떻게 내야 할지를 몰라서 그랬어요. 이따가 비용을 지불하도록 할게요.”파리 형은 은아를 보지 못했었는데 지금 이 요괴급 미녀를 보고 그는 완전히 멍해졌다. 잠시 후 그는 얼굴에 사악한 미소를 드러내며 말했다. “여동생, 이 노점 네가 차린 거야?”“사람을 때린 게 당신 남편이고?”“네. 만약 병원비를 원하시면 저희가 배상하겠습니다.”설은아가 말했다.“병원비? 그건 필요 없어!”파리 형님은 하하하 큰 소리로 웃었다. “이렇게 하자. 너 오늘 밤 오빠랑 같이 가자. 오빠랑 재미있게 놀고 앞으로는 오빠가 너를 보살펴 줄게. 네 남편이 사람 때린 일은 그냥 잊어 버리자.”이 말을 하고 파리 형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산책로에서 그는 비슷한 수단으로 얼마나 많은 소녀들을 유린했는지 모른
이때 파리 형님의 여자친구 이윤희가 갑자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여보, 이 사람 정말 날뛰네. 당신은 안중에도 없어.”“이 사람 정말 사리분별을 못하네!”이 말을 들은 파리 형의 눈동자가 차가워졌다. 산책로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냈으니 지구 경찰서 서장이라도 그를 만나면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르는 덜렁이가 감히 이렇게 체면을 구기다니?자기보고 쓰레기통에 들어가서 무릎을 꿇으라고? 무슨 웃기는 소리야?“내가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무릎 꿇고 깨끗이 핥아!”파리 형님이 냉소하며 입을 열었다. 장내는 온통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숨조차 쉬지 못했다. 다들 파리 형님이 정말 화가 났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산책로의 3분의 1구역에서 파리 형님을 화나게 하면 절대 좋은 결말을 맺을 수가 없다. 유독 하현만 움직이지 않고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이윤희가 갑자기 앞으로 나서더니 은아가 벌여놓은 노점을 발길로 걷어찼다.“사람 말 못 알아들어? 무릎 꿇고 깨끗이 핥으라고! 너 귀머거리야?”이 이윤희는 분명 불량소녀 같은 사람이었다. 지금 막돼먹은 여자 같았다. 이 장면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노점을 엎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은 완전히 체면을 구기는 것이었다!그러자 많은 사람들의 기괴한 시선이 은아에게로 떨어졌다. 이윤희가 갑자기 이렇게 흥분한 것은 사실 그녀를 겨냥한 것이겠지?이윤희는 갑자기 튀어나온 설은아가 파리 형님 옆에 있던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 대신 차지 할까 봐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이때 누군가가 ‘좋은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임마, 어서 무릎 꿇어!” 네가 무릎을 꿇지 않으면 오늘 이 일은 안 끝나!”“맞아, 어떻게 팔이 허벅지를 비틀 수 있겠어? 젊은 사람은 들어가고 빠질 때를 알아야 해!”“지금 파리 형님께 절을 하면 방금 전의 공손하지 못했던 것은 용서해 주실 거야!”“자존심 좀 잃
“하씨, 너 미쳤어? 너 파리 형님의 큰 형님이 누군지 알아? 사과를 하러 오라니? 너희들이 감히 사과를 받아 주려고?”“그 분은 길바닥의 진정한 보스야. 구름과 비를 손바닥 뒤집듯 하는 그런 사람인데, 그런 보스가 너에게 머리를 숙이길 바라는 거야?”“너 노점상의 데릴사위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네가 그럴 자격이 있어?”……이덕재와 사람들은 지금 하현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분명 그들은 이렇게 시비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었다. 은아는 뜨거운 냄비 위의 개미처럼 더욱 초조해졌다. 길바닥 보스보고 자기에게 사과하라고 하다니?하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건가?은아는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떨면서 최준과 최우현에게 각각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정말 부탁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최가 사람들에게 나서달라고 부탁하지 않으면 은아는 정말 하현이 파리 형과 같은 사람들에게 생매장 당할까 봐 두려웠다. 그리고 파리 형님은 하현이 자기 보스에게 와서 직접 자기의 손발을 끊고, 거기다 이 계집애한테 사과를 하라는 말을 들었다. 이때 파리 형님은 화가 나서 폐가 터질 지경이었다. 파리 형은 욕을 하며 앞으로 나서더니 하현의 뺨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퍽!”1초만에 하현은 손을 뒤로 젖히고 파리 형님의 뺨을 내리쳤다. “퍽!”동시에 하현은 파리 형님의 아랫배를 발로 찼다. “아______”방금 기세가 대단했던 파리 형님은 지금 돼지를 잡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하현 앞에 무릎을 꿇었다. “퍽______”하현은 또 이윤희를 땅바닥에 엎어뜨렸다. 곧 두 사람은 하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장면은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 데릴사위 너무 독한데? 먼저 손을 써서 파리 형님과 그의 여자까지 때려 눕히다니?“이 놈아, 너 미쳤어? 너 감히 우리 보스한테 손찌검을 해? 너 살고 싶지 않아?”“같이 가자!”후방에
하현이 이 지경까지 날뛰자 파리 형님의 얼굴에는 온통 피에 굶주린 웃음이 떠올랐다. “임마, 넌 끝장이야!”“우리 보스가 오면 너는 죽을 ‘사’자를 어떻게 쓰는 지 알게 될 거야!”“너뿐만 아니라 네 아내를 포함해 내가 가만 놔두지 않을 거야!”하현은 아무 말 없이 쇠파이프를 주워 들고는 파리 형님의 얼굴을 내리쳤다. “악______”파리 형님은 이가 바로 부숴졌고, 뜻을 알기 어려운 비명을 질러댔다. 지금 하현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원망과 악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위협을 가하고 싶었지만 하현이 계속 손을 댈까 무서워 또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하현은 끝장났다. 이 일은 아마 손발을 끊는다고 해결 될 수 없을 것이다. 은아는 놀라서 울 것 같았다. 그녀는 하현이 이렇게 충동적일 줄은 몰랐다. 이제 최가가 나선다고 해도 이 일은 수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때 은아는 하현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여보, 우리 빨리 가자. 우리 남원을 떠나서 서울로 돌아가자.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자.”“하늘가와 바다 끝이라도 나는 너랑 같이 갈 거야!”하현이 웃었다. “우리가 왜 가야 돼? 다들 이성이 있는 사람들이야. 이 일은 또 내 잘못도 아니니 그들이 우리한테 사과할 때까지 기다려야지!”“이제 와서 도망치면 우리가 너무 약해 보이지 않겠어?”은아는 하현의 가벼운 모습을 보고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잠시 후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최가가 메시지를 받고 빨리 손을 써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같은 시각, 최가. 최준은 핸드폰의 메시지를 보고 갑자기 실소를 하며 말했다. “하현 이 놈의 머리는 괜찮은 거겠지? 노점을 차리고는 뜻밖에도 소 사부님을 건드리다니?”최우현은 옆에서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버지, 이 소 사부님은 길바닥에 계신 분이시죠?”“맞아, 바로 그 사람이야!”최우현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아버지, 이 집안은 문제
저녁 9시.술과 밥을 배불러 먹은 하현은 소항 회관을 떠나 설 씨 가문으로 돌아갔다.하루 종일 고생한 그는 전에 최희정과 한바탕 크게 싸운 것도 있고 해서 그녀를 다시는 맞닥뜨리고 싶지 않아 소리 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자신의 방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설은아의 방에서 ‘아앗’하는 소리가 들렸다.하현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갔다.방에 들어서자마자 향긋한 꽃향기가 물씬 풍겨왔다.설은아는 방금 목욕을 한 것으로 보였고 하얀 목욕 수건은 몸의 중요 부위만 감싸고 있었다.그녀의 백옥 같은 긴 다리는 수건 바깥으로 훤히 드러나 있어서 하현의 눈앞을 아찔하게 만들었다.하현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미녀들을 만났다.그녀들 각각의 매력도 상당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그를 가장 설레게 한 사람은 역시 설은아였다.순간 하현은 자신의 호흡이 가빠지고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다행히 그는 곧바로 냉정을 되찾아 얼른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들어왔어?”누군가 들어오자 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며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지만 하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후 긴장을 풀었다.하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이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길래 들어왔어. 괜찮아?”설은아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 조금 삔 것뿐이야. 주물러주면 괜찮아질 거야.”“내가 해줄게.”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설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설은아는 침대에 앉아 곧고 긴 다리를 하현 앞에 쭉 뻗었다.하현은 설은아 앞에 쭈그리고 앉아 긴 다리를 주물렀다.손끝이 닿을 때마다 심장이 펄쩍 뛰었다.백옥같이 아름답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을 만큼 그녀의 다리는 곱고 매끄러웠다.하현은 거의 무아지경으로 그녀의 다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설은아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하현, 안마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 왜 만지작
고명원의 눈꺼풀이 파르르 흔들렸다.“뭐라구요?”정홍매도 넋이 나간 듯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그녀는 남편이 고향에 가서 조상님께 향불을 올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줄곧 그 이유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그런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니!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간단합니다. 당신은 기가 강한 사람입니다. 남을 압도할 만큼. 그래서 당신의 강한 기운이 조상의 기운을 눌렀던 거죠.”“만약 당신의 기운이 충분히 강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당신은 열 번도 더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스스로 잘 생각해 보세요. 당신 평생, 당신 아들이 태어난 후 당신이 몇 번이나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는지!”하현의 말을 듣고 고명원은 마침내 큰 충격을 받았고 탄복해 마지않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하현, 당신은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엄 회장님이 이렇게 당신을 좋아하는군요!”“맞습니다. 난 정말이지 몇 번이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그때마다 중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어요.”“하지만 운이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거죠.”“옛날 사람들은 큰 재난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훗날 반드시 복이 온다고 했어요.”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런 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당신에게 조상의 비호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당신에게 후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죠!”“그래서 지금이라도 가능하다면 아들이든 딸이든 낳아 보길 권합니다.”“그러면 다음에 조상님께 제를 올릴 때 저절로 향불을 태우고 싶을 겁니다.”“봉분의 풀들도 그렇게 푸르지는 않은 것 같군요.”“조상들의 숨결이 모두 기운을 다했기 때문이죠!”“개자식!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자꾸 그런 말 하면 내가 당신 입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여보! 가! 가자구!”“자기가 무당이야? 뭐야?”“저 말을 믿느니 차리리 죽는 게 나아!”말을 마치자마자 정홍매는 고명원을 데리고 얼른 나가려고 했다.“
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의술은 정말 잘 몰라. 하지만 살인술은 좀 알지.”“한번 보여줘?”“단번에 당신의 목숨을 앗아버릴 수 있는데.”하현의 말을 들은 엄도훈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리고 나서 아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농담하지 마세요! 형님! 농담도 참!”“간 떨어질 뻔했잖아요! 전 지금 형님이 제 목숨을 구해 주길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구요!”하현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은침을 자신의 손가락에 살짝 찔러 피 한 방울을 짜낸 뒤 엄도훈의 미간에 떨어뜨렸다.그리고 큰 혈이 지나가는 명치 몇 군데에도 떨어뜨렸다.그러자 가슴에 있던 흔적이 천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어? 어? 사라지고 있어?! 정말로 사라졌다구!”몇몇 측근들은 모두 놀란 얼굴을 한 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왜냐하면 그들은 눈앞에서 흔적들이 서서히 옅어지다가 사라지는 것을 똑바로 목격했기 때문이다.엄도훈은 처음에 하현이 뭘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그런데 이제 보니 흔적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온몸을 얽매고 있는 기운도 함께 사라졌고 이윽고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았다.고명원도 눈앞의 광경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그는 처음에 하현이 농간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일을 보고 자신의 식견이 이렇게 모자랄 줄은 몰랐다.“형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정말 대단해요!”“정말 감동했어요! 이건 정말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동이에요!”엄도훈의 얼굴은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였다.“다만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있긴 해요.”“집이나 가게에 팔괘경을 비치하는 것을 좋아하는 어른들을 많이 봤어요. 하지만 그들은 모두 무사했는데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은 거예요?”“그 물건이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다들 그런 골동품을 쓰니까요.”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신이 가지고 있던 팔괘경은 출토될 때부터 원한에 얽혀 있었어. 만약 내 추측이 맞다면 그 팔
”뭐야?”엄도훈의 가슴에 있는 용 무늬를 보고 고명원과 정홍매 두 사람은 모두 숨을 헐떡거렸다.어떻게 이럴 수가?그들의 안색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엄도훈의 성격상 이런 비밀스러운 일을 하현에게 절대 알리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 씨 성을 가진 저놈이 설마 이렇게나 능력이 있다고?엄도훈은 지금 당장 고명원 부부를 결판낼 생각은 없었기에 그저 긴장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기만 했다.“형님, 이게 전신용이란 거군요. 그런데 왜 난 하나도 아프지도, 간지럽지도 않습니까?”“난 이름 모를 바이러스인가 하고 생각했어요.”“바이러스라면 오히려 다행이지.”하현은 희미한 눈빛으로 말했다.“전신용의 머리와 꼬리가 연결되면 죽음에 직면하는 거야.”엄도훈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그럼 설마 제가 요 며칠 겪었던 재수 없는 일들도 바로 이것 때문이에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용은 천지의 영물이야. 용이 온몸을 휘감으면 기운이 먼저 손상되지.”“당신의 운이 다하면 용의 머리와 꼬리가 서서히 연결돼.”“그러면 당신은 결국 목숨을 잃게 되는 거고.”“아!”하현의 말을 들은 엄도훈은 깜짝 놀랐다.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가슴팍에 있는 흔적을 닦아내려고 했지만 도저히 닦아낼 수가 없었다.이를 지켜보던 정홍매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실룩거렸다.“무슨 얼토당토않은 말을 지껄이는 거야?”“무슨 드라마 찍어? 용에 뭐 기운이 있어?”“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고?”“아니, 저 흔적이 뭔지도 모르지만 저게 움직인다는 게 말이나 돼?! 도저히 믿을 수 없어!”엄도훈이 뭐라고 항변하기도 전에 전신용이 스르르 움직이며 한 치가 자랐고 머리와 꼬리 사이의 거리는 거의 1센티미터밖에 남지 않았다.머리와 꼬리는 곧 이어질 듯 서로를 향해 뻗어 있었다.눈앞에서 이를 본 정홍매는 혼비백산했다.과학적 사실에만 생각이 뻗쳐 있던 고명원도 화들짝 놀라며 눈
하현이 하는 말을 듣고 정홍매는 끝내 참지 못했다.그녀는 냉소적으로 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뭐? 뭘 닮아? 용?”“원한은 무슨 원한?”“하 씨! 당신은 사기꾼이야! 방금 우리가 그 사실을 폭로하지 않은 것은 엄 회장의 체면 때문이었어.”“그런데 지금 이 꼴을 봐? 정말 거짓말이 끝이 없어!”“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말로 사람을 속이려 드는 거야? 후환이 두렵지도 않아?”“게다가 나도 당신을 조사해 봤어. 당신은 데릴사위였다가 지금은 그마저도 쫓겨난 신세라던데!”“뭐가 그리 득의양양한 거야?!”“당신이 풍수지리에 대해 뭘 알아?!”“허 참!”“엄 회장 앞에서 이렇게 들추어내게 되어서 미안하지만 난 당신이 더 이상 엄 회장을 속이고 있는 꼴을 볼 수가 없어! 절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말을 마치며 정홍매는 얼굴을 바꿔 끼운 듯 상냥한 표정으로 엄도훈을 바라보며 비위를 맞췄다.“엄 회장님. 난 회장님한테 망신을 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일부러 하현을 노린 것도 아니에요. 복수한 것은 더더욱 아니구요!”“내 성격이 직설적이어서 남이 뭘 속이는 꼴을 못 참아요.”“그러니 절대 속으면 안 됩니다!”“며칠 동안 사고가 잦았던 것은 재수가 없었던 것뿐이에요.”“그가 당신을 미행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 것이 틀림없어요!”“심지어 그가 음모를 꾸며 일부러 그런 일을 만들었을 수도 있구요!”“엄 회장님. 지금이라도 당장 그를 붙잡아 고문해야 해요! 그가 회장님한테 도대체 뭘 얻으려고 그런 짓을 한 건지 추궁해야 한다니까요!”정홍매는 스스로 정의감에 취해 한껏 자랑스럽게 하현을 헐뜯고 있었다.한참을 쏟아내고 나니 그녀는 속이 후련했다.하현이 엄도훈을 믿고 자신의 아들을 짓밟았다면 그녀도 엄도훈을 등에 업고 무참히 하현을 짓밟아야 했다!그래야 마음속의 분노와 억울함이 한 점도 남김없이 말끔히 사라질 것 같았다!흥!눈에는 눈! 이에는 이!“닥쳐!”결국 정홍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
하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비수 좀 보여줘 봐.”엄도훈은 몸에 지니고 있던 비수를 황급히 꺼내 하현 앞에 공손히 내놓았다.비수는 익히 아는 보통의 비수였다.하지만 깨끗하게 닦여 티끌 하나 없었다.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위에 묻어 있던 혈흔은 지운 거야?”하현이 뭔가 꺼림칙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정홍매는 입가에 비아냥거림과 냉소를 가득 떠올렸다.이까짓 솜씨로 감히 사람을 속이려 하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엄도훈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깨끗한 비수를 몸에 지녀야 좋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어요. 너무 더러우면 안 좋잖아요? 만약 뭔가 잘못될 수도 있으니까 찝찝해서 깨끗하게 씻었죠...”“어리석기는!”하현은 한숨을 푹 쉬었다.“내가 당신한테 비수를 지니라고 한 것은 그 위에 묻은 혈흔이 당신 체내의 악운을 누그러뜨리고 심지어 조금 풀어주기 때문이야.”“그런데 당신은 비수를 깨끗하게 씻어 버렸으니 아무런 효과가 없는 거지.”“그리고 내 추측이 맞다면 아마도 당신은 어제 누군가가 비명횡사하는 모습을 목격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하현의 말을 들은 엄도훈과 그의 몇몇 측근들은 모두 온몸을 덜덜 떨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모두 바닥에 떨어뜨렸다.그들은 하현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듯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엄도훈은 유난히 더 입꼬리를 부르르 떨다가 겨우 입을 뗐다.“하현 형님, 역시 대단하십니다.”“내가 전에 만났던 그 무슨 유명한 풍수지리사들보다도 훨씬 대단해요!”“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다니!”“맞아요. 어젯밤 집으로 오는 중에 몇몇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중에 한 명이 화단에 부딪혀 어떻게 하다가 그만 죽어버렸어요.”“그 죽은 사람은 여자였던 것 같았는데 붉은 치마를 입고 있었어요.”여기까지 말한 엄도훈의 얼굴엔 마치 하현이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감탄해 마지않는 기색이 역력했다.그러나 정홍매는 냉
”나한테 사과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엄도훈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여기서 끝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하현 형님에게 달렸지요.”“하현?”“하현 형님?”고명원은 이미 사건이 발생한 경위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그는 사건의 근본 원흉인 작자가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며 병원에서 고통에 울부짖는 자신의 아들의 모습을 떠올렸다.순간 그의 눈에서 음흉한 빛을 뿜어져 나왔다.그러나 그도 인물은 인물이었다.그는 겉으로는 조금도 그런 내색은 하지 않은 채 미소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하현, 안녕하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모든 것이 우리가 제대로 키우지 못한 죄입니다. 우리가 눈치를 채지 못했어요.”“그러니 대인께서 관대하게 여기시어 너그러이 봐주십시오!”“성양이한테는 우리가 제대로 잘 타이르겠습니다!”말을 하면서 고명원은 허리를 굽혔다.그의 모습에선 수조원 자산가의 위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리고 그는 얼른 수표 한 장을 꺼내 하현 앞에 공손히 놓았다.열 자리 숫자, 이십억이었다!이를 바라본 정홍매의 눈동자엔 한기가 가득했다.엄도훈이 현장에 있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하현의 뺨을 때리고도 남았을 것이다.그들 장청 캐피털은 확실히 엄도훈에게는 굽신거려야 하지만 하현의 신원을 알아낸 그들에게 하현은 그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 데릴사위일 뿐인데 뭐가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게다가 하현과 엄도훈이 사이가 좋게 된 이유가 풍수지리 때문이라는데 그것도 하현이 엄도훈을 속인 게 아닌가 하고 두 부부는 의심하고 있었다.간단히 말해서 정홍매의 눈에 하현은 그저 사기꾼일 뿐이었다.지금은 엄도훈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하현에게 굽신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녀는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의를 숨기지 않고 하현을 매섭게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고 사장님, 고맙지만 이 일은 엄 회장이 다 처리한 일이니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나 사장님, 설은아 좀 데려다주세요.”출구에 다다랐을 때 하현은 얼굴이 창백하기 이를 데 없는 나박하를 향해 손뼉을 치며 불러 세웠다.“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전화주세요.”“네, 알겠습니다. 형수님 잘 모셔다드리겠습니다!”하현의 말을 들은 나박하는 믿음직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그는 전화를 걸어 임시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어쨌든 지금 이 상황을 가볍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설은아도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하현이 엄도훈과 함께 일을 처리할 거라는 걸 알고 그녀는 바로 스포츠카로 향했다.그러나 운전석 문을 열면서 설은아는 하현을 쳐다보며 한마디했다.“하현, 얼른 돌아와!”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인 후 설은아를 떠나보냈다....30분 후.소항 회관 프레지던트 룸.엄도훈은 고성양의 일을 처리한 후 가장 호화로운 룸 파티를 열어 하현을 초대했다.값비싼 음식은 물론이고 82년산 라피트 두 병을 준비해 하현을 대하는 그의 성의를 보여주었다.하현은 엄도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가 다시 그의 핸드폰 안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이곳은 새로 인테리어한 신사 상인 연합회 사무실이었다.팔괘경은 이미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사를 불러 가구 배치도 다르게 했다.하현은 쓱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사무실이 이전에 비해 훨씬 괜찮아졌다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엄도훈의 몸에는 여전히 불운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고 미간도 검게 변해 있었다.요 며칠 동안 엄도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들으며 하현은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의 질긴 생명력에 새삼 감탄했다.재수가 없는 사람을 만났더라면 아마 이미 열두 번은 더 죽었을 것이다.하현이 엄도훈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살피려고 했을 때 엄도훈의 전화기가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으며 하현을 향해 옅은 미소를 보였다.“형님, 정말 죄송합니다.”“고명원이 형님한테 직접 사과를
엄도훈의 말에 고성양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는 자신의 아버지인 장청 캐피털 고명원의 이름이 엄도훈 앞에서 조금도 먹히지 않을 줄은 몰랐다.하지만 엄도훈의 말이 맞았다.장청 캐피털이 고리대금을 풀어 소시민들을 괴롭히더라도 엄도훈 같은 독한 사람을 만나면 당장 무릎을 꿇어야 했다.심지어 배후에 있는 은둔의 왕 씨 가문의 그림자가 없었더라면 장청 캐피털은 이런 일로 몇 번이나 짓밟혔을지 모를 일이었다.얼굴이 일그러진 고성양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엄도훈은 시선을 돌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이런 놈 체면을 세워 주려고 당신들은 여기 이러고 있는 거야?”진서기 일행은 하나같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 틈을 찾아 따지고 싶었지만 엄도훈의 시선이 너무 무서웠다.이때 이미 고성양은 모든 게 절망적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하지만 엄도훈은 하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여기서 멈출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그는 차가운 눈빛과 말투로 입을 열었다.“하현 형님은 마음이 착하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하지만 나 엄도훈은 달라. 인과응보. 잘못을 한 상대가 있으면 응당 되돌려줘야지!”“오늘 밤 하현 형님을 괴롭혔거나 형수님의 심기를 건드린 사람은 자진해서 나와.”“나와서 한 손씩 잘라. 그러면 이 일은 없던 일로 해주지!”“아무것도 못 들은 척, 아무것도 못 본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다가 나한테 걸리면 죽는 거야!”엄도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말속에는 살의가 가득했다.이 광경을 본 하현은 웃으며 설은아의 손을 잡고 룸을 나서면서 나박하에게 자신을 따라나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진서기와 임민아는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은아, 살려줘!”설은아는 발걸음을 떼었다가 멈칫했지만 하현은 마음 약해질 틈을 주지 않고 얼른 그녀를 끌고 룸을 빠져나왔다.“풀썩!”진서기와 임민아 두 사람은 좀 전의 악독한 얼굴은 온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