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가 할머니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안돼요. 제가 듣기로 강남 길바닥의 새로운 왕이 변백범이라고 들었는데 그 사람은 하 세자 사람이에요.”“우리가 길바닥 사람들을 이용해서 손을 쓰려고 하는 건 기본적으로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에요.”이때 구석에 있던 젊은이, 구씨 집안의 세자 구성진이 불쑥 튀어나와 조용히 말했다. “세 가주님, 할 말이 있습니다.”세 가주는 동시에 그를 쳐다보았고 잠시 후 구기승이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이 있어?”구성진는 뒷짐을 진 채 차갑게 말했다.“우리가 강남 길바닥 사람들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이상 상대를 이기려면 강남 밖에서 사람을 불러 오는 건 어떤가요?” “기성 변방 쪽에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용병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이 사람들은 돈만 주면 뭐든지 다 할 거예요. 우리 세 집안이 힘을 합쳐서 이 사람들을 불러오면 감쪽같이 하현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나성곤과 최가 할머니는 서로 눈을 마주쳤고, 그를 높이 평가하는 눈빛이었다. 나성곤은 탄식하며 말했다. “구 어르신, 당신네 세자는 인재군요!”“우리 생각이 좀 멈춰져 있었는데 이런 방법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구기승은 수염을 만지며 득의양양한 얼굴이었다. 구성진은 그가 선택한 세자였는데 이런 자리에서 이런 건설적인 의견을 내다니, 그의 체면을 충분히 세워준 것이다. 중얼거리다 잠시 후 최가 할머니가 천천히 말했다. “기왕 구 세자가 아이디어를 냈으니, 내 생각엔 이 일은 전부 구 세자에게 일임하는 건 어떨까요?”“만약 일이 잘 성사되면 우리 최가는 당신들 구가에게 신세를 지게 되는 거죠!”“나씨 집안도 구씨 집안에게 신세를 지겠습니다!”나성곤이 말했다.“만약 이 사람들을 모셔올 수 있다면, 우리 나가가 책임지고 그들의 주둔지가 외부에 절대 발각되지 않게 하겠습니다.”구기승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자, 이왕 이렇게 된 거 성진이가 책임을 지고 사람들을 초청하도록 합시다.
하현은 ‘피식’웃으며 말했다.“너 태국에서 왔지?”“내가 왜 너희들을 따라 가야 돼?”남자는 차갑게 말했다.“네가 미움을 사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미움을 샀으니까!”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내가 누구한테 미움을 샀는데?”“너 빨리 가기나 해. 우리가 너한테 강제로 손 쓰게 하지 말고. 실수로 뒤에 있는 두 계집애들을 다치게 했다고 우리를 탓하지 마!” 이 앞장선 사람은 이미 좀 짜증이 났다. 이 곳은 비록 교외지역이긴 했지만 행인들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라도 경찰이 알게 되면 좀 곤란해질 것이다. “나는 너희들을 따라가도 괜찮지만 최소한 내가 누구에게 미움을 샀는지는 나한테 말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하현은 당연한 듯 말했다.“좋아, 네가 화나게 한 사람은 구씨 집안의 구성진 도련님이야. 그가 우리를 고용해서 너를 데리고 오라고 했어!”선두의 선 남자는 직접 차 문을 열고 하현을 끌어내 승합차에 태웠다. 하현은 이 사람들이 실수로 은아와 육해민을 다치게 할 까봐 저항하지 않았다. 이 몇 대의 승합차는 빠르게 왔고 가는 것도 빠르게 갔다. 빨리 사라져 도로 끝으로 사라졌다. 뒤에 앉아 있던 은아와 육해민 두 사람은 그제서야 반응을 했고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은아야, 어떡하지? 내가 해외에 있을 때 듣기로 태국 쪽 강도들은 악랄하게 사람을 해치운다고 들었어. 이 강도들은 다 그쪽에서 왔는데 만에 하나라도 하현을 죽이면 어쩌지?”이때 육해민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목소리가 떨렸다. 비록 그녀는 하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 강도에게 끌려가는 것을 빤히 지켜보면서 그녀의 마음속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설은아는 이때 눈앞이 캄캄해져 까무러칠 뻔했다. 그녀는 가까스로 일어서며 말했다.“해민아, 너 하현이 도대체 누구에게 미움을 샀는지, 누가 하현을 끌고 갔다고 했는지 잘 들었어?”“그 앞장선 강도가 무슨 구가의
이때 이 남자는 손이 가는 대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운 뒤에야 웃으며 말했다. “하현, 하 세자의 대변인이자 설씨 집안의 데릴사위, 맞지?”“너는 또 누구야?”하현이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내 소개를 하자면 구씨, 구성진이야.” 구성진은 점잖고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 “내가 너한테 미움을 샀어?”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정말 자기와 구씨 집안이 무슨 갈등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너는 확실히 우리 구씨 집안에는 미움을 산 적이 없어. 근데 너는 절대로 둘째 도련님에게 미움을 사서는 안돼.”구성진은 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둘째 도련님?”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너 설마 하민석 그 폐물을 말하는 건 아니지?”“응? 너 둘째 도련님을 폐물이라고 그랬어?”구성진은 멍해졌다. 하민석이 강남에서 어떤 신분인가?그가 지금 항성으로 패주하긴 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라도 감히 그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하씨 가문은 진정한 권세가 있던 가문이라 몰락했다 해도 실력이나 영향력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눈 앞에서 이 하현이 하민석을 폐물이라고 말하다니. 구성진은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감정이 그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는 뜻밖에도 자신이 하현을 납치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렸다. ……같은 시각. 설은아와 육해민 두 사람은 최가의 입구에 도착했다. 어렵사리 최씨 집안 사람들을 불렀다. 최준은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 “이거 우리 설은아 설 회장님 아니십니까?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오셨는지 모르겠네요?”다른 최가 사람들도 하나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설은아를 쳐다보았다. 심지어 이미 입가에는 비아냥거리는 냉소가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 최가는 오늘 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고, 이미 설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 앞에서
“이 무리들은 줄곧 악행을 일삼았는데 하현이 그들에게 미움을 산데다 또 잡혀갔으니 그러면 그는 분명 죽을 거야!”“너는 재혼할 준비나 해!”최우현은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이때 그는 조금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계획대로라면 하현 그 폐물은 벌써 죽었겠지?이 폐물이 감히 자기를 그에게 무릎 꿇게 하다니!지금 강도의 손에 죽었다니, 쌤통이다!모두가 냉소하는 것을 보고 은아는 절망했다. 그녀는 순간 최가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말했다. “외할머니, 하현이 아무리 그래도 할머니 외손녀 사위잖아요!”“잊으셨어요? 전에 할머니 생신 때 그가 애써서 축하 선물도 드렸었잖아요!”“이런걸 봐서라도 제발 외삼촌이 그를 구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최가 할머니는 냉소하며 말했다.“그 알약 하나로 인심을 사겠다는 거야? 꿈꾸고 있니?”“은아야, 만약 네가 아직도 우리 최가를 생각한다면 이 일은 신경 쓰지 마!”“그의 죽음이 확실해지고 나면 너는 가서 장례 절차를 밟아. 외할머니가 좋은 집안을 새로 준비해줄게!”이것이 바로 최가의 목적이었다. 하현이 죽기만 하면 은아에게 재혼을 강요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일정 기간 점진적으로 여러 방법을 통해 백운회사의 지분을 조금씩 횡령할 수 있을 것이다. 설은아는 이 음모를 눈치채지 못한 채 최가 할머니의 종아리를 끌어안고 흐느끼며 말했다.“외할머니, 저는 그를 구해주시기만 바랄 뿐이에요! 제발이요!”“백운회사의 지분을 원하시지 않으셨어요? 그를 구해주시기만 하면 제가 주식을 드릴게요!”설은아의 이 말을 듣고 최가 할머니는 멍해졌다. 그녀는 최준과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쇠 신이 닳도록 찾아 다녀도 구하기가 어렵더니 애를 쓰지 않고도 얻게 된다는 말은 바로 이런 걸 보고 하는 말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백운회사의 지분을 빼앗으려고 계획을 했었다. 이것이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지도 못하게 번거로운 수단이 전혀 필요 없게 되었다
최가 사람들은 이 날만을 기다렸다. 정말 너무 오래 기다렸다!최가는 벼슬아치 집안이라 쇼핑몰에서는 이렇다 할 업적이 없었다. 돈이 부족한 관계로 최가는 최정상 가문이 될 방법이 없었다. 이제 백운회사를 손에 넣었으니 최가는 최고의 가문이 될 날이 머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최가 사람들의 눈에는 지금 이 순간 그들이 최고의 가문이라고 여겨졌다. 은아가 사인을 마치자 최준은 전화기를 들고 곧장 전화를 걸었다. “남원 경찰서 총 수사반장 위원용이야? 나 최준이야!”“내 외손녀 사위 하현이 태국에서 도망쳐온 강도들에게 납치됐어. 이 일은 너에게 맡길 테니 처리해. 반드시 24시간내에 결과를 내야 해!”“네!”전화 맞은편에서 위원용은 재빨리 경례를 하고 제일 먼저 여러 가지 일들을 안배했다. 전화를 끊고 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 “조용히 소식을 기다려 보자. 위원용은 남원 경찰서 총 수사반장이야. 그가 손을 댄 이상 분명 단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할 거야.”최준의 가볍고 평온한 모습을 보고 은아와 육해민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최준은 도울 의사가 전혀 없었다. 이 일의 모든 과정에 최가가 관여하고 있었기에 최준은 위원용이 24시간 내에 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절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맨 마지막에 시체 한 구를 가지고 돌아올 것이다. 그 합의서로 최준의 마음도 조금 움직였다. 하현이 돌아오기만 하면 죽든 살든 설은아는 백운회사의 모든 지분을 반드시 넘겨줘야 한다. 이번에는 일석이조라고 불릴 만했다. 한편으로는 하민석의 임무를 완수하고 하현을 해결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백운회사의 모든 지분을 순조롭게 확보할 수 있다. 이때 최준의 마음속은 뿌듯함으로 가득 찼다. 백운회사가 있으면 그는 앞으로 강남 2인자의 자리를 노릴 수 있지 않겠는가?하현의 생사에 대해서는 그에게는 전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만약 상석에 앉기 위해 설은아까지 해치워야 한다면
“퍽______”한 사람의 형체가 날아와 때마침 구성진을 내리쳤다. 웃음을 머금고 있던 구성진의 얼굴은 갑자기 어두워졌고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나 눈앞의 이 광경을 보는 순간 그는 벌벌 떨기 시작했다. 무슨 상황이지?용병 30-50명이 이렇게 전부 쓰러지다니? “너, 너 도대체 누구야!?” 구성진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누구냐고? 나는 네가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나를 도와서 네 뒤에 있는 사람에게 선물을 보내. 그리고 날 건드리면 이렇게 된다고 전해!” 하현은 구성진 앞으로 걸어갔다. 구성진은 놀라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고 놀라 두려워하며 말했다. “오지 마!”“털컥!”하현은 그와 쓸데없는 말을 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앞으로 걸어와 그의 오른쪽 다리를 걷어찼다. “으악!”오른쪽 다리가 부러진 구성진은 바닥에서 뒹굴었다. 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몇 번 더 밟아 그의 팔다리를 바로 밟아 부러뜨렸다. 금의옥식하던 구성진이 언제 이런 일을 당해본 적이 있겠는가?곧 그는 아파서 바로 기절을 했다. 하현은 변백범을 불러 이 일의 배후를 확실히 조사 해 주동자가 누군지 알아낸 후 빨리 은아를 찾으러 가라고 했다. 어쨌든 오늘 이 일은 은아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는 그녀가 걱정할까 봐 염려가 되었다. ……최가.“외삼촌, 하현이 도대체 언제 돌아올 수 있을까요?”설은아는 초조해 안절부절 못하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미 남원경찰서 사람들에게 온 도시를 다 수색하라고 했으니 분명 단 시간 내에 결과가 있을 거야.”최준은 차를 마시며 가벼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방금 그는 구성진에게 사고를 하나 일으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곧 ‘뜻밖의 죽음’을 맞이한 하현을 찾게 되겠지?육해민은 다소 냉정을 되찾았고, 그는 최가 사람들의 태도가 심상치 않아 경계하며 입을 열었다. “은아야, 우리 먼저 가자. 정말 안될 거
“하현, 괜찮아? 그들이 널 어떻게 한 건 아니지?”은아는 많은 것들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직접 하현을 안고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번에 그녀는 걱정이 돼서 거의 정신을 잃을 뻔했다. 만약 강인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마 벌써 병원에 누워있었을지도 모른다. “여보, 난 괜찮아. 울지마. 돌아가자.”하현은 은아의 눈가의 눈물 자국을 부드럽게 닦아냈다. 이 일은 그가 분명 끝까지 따질 것이지만 은아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너 먼저 해민이 공항에 데려다 줘. 해민이가 네 일 때문에 비행기를 놓치겠어.”“나는 외삼촌과 상의할 일이 있어.”은아는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하현은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별 생각 없이 육해민을 남원국제공항에 데려다 주었다. 한편, 최준은 이미 변호사를 불러 증인으로 세웠다. “두 분, 당신들의 합의에 따라 지금 이 순간부터 설은아 아가씨의 손에 있던 모든 지분은 모두 최가의 손으로 넘어갑니다.”변호사는 말을 하면서 서류 한 부를 꺼내 쌍방이 서명을 하도록 했다. “네. 알겠습니다!”설은아는 괴로운 마음을 억누르며 서명을 했다. 이것은 그녀가 오랫동안 분투하며 얻은 회사였는데 오늘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주어야 한다. 최가는 계약서를 보며 하나같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최준은 이때 고양이가 쥐를 보며 울 듯 거짓 자비의 미소를 지었다. “은아야, 이 백운회사는 네가 비교적 잘 알고 있고 또 다른 회사와 연결된 프로젝트도 있잖아.”“외삼촌 생각에 네가 업무 매니저가 되는 게 좋을 거 같아. 내가 매달 4백만원씩 줄게. 어때?”“4백만원이면 나쁘지 않지!”최씨 집안 사람들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맞아, 지금 밖에서 일하면 한 달에 몇 십만 원도 괜찮은 편이지!”“우리가 식구인 걸 봐서 너한테는 이렇게 높은 임금을 주는 거야!”“이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돼!”분명 최가는 백운회사의 모든 것은 얻으려고 할 뿐 아니라 은아의
“네 말은……”최가 할머니가 약간 중얼거렸다. “엄마, 연극은 풀 세트로 해야 해요. 오늘 우리가 방금 백운회사를 얻었잖아요. 만약 이틀 안에 누군가 하현을 죽인다면 은아는 우리를 쉽게 의심할 거예요.”“설령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도 만에 하나 우리를 조사하면 귀찮아 질 거예요!”“이번에 우리 최가가 이미 큰 이익을 얻었으니 모든 것은 자연히 조심해서 해야죠.”최준은 백운회사를 얻었다고 해서 머리가 뜨거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냉정해졌다. 최가 할머니는 말했다. “우리 최가는 문제가 없지만 나가와 구가, 그들은 속수무책인데?”“그리고 둘째 도련님 쪽엔 어떻게 설명하지?”최준은 잠시 조용히 중얼거리다 제갈량이 살아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남원경찰서에 순찰을 강화하라고 하고, 대외적으로 강남 병부 수장 교체식 준비를 위해 준비하는 거라고 선전할 거예요!”“그리고 둘째 도련님 쪽에는 구씨 집안이 실패해 지금 남원 전역의 보안 강도를 높였다고 하면서 지금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고 하고, 수비 교체식이 다 끝나면 그 때 다시 얘기 하자고 합시다.”“그래, 그렇게 하자!”최가 할머니도 단호했다. 어쨌든 이번에 최가는 이미 큰 이익을 챙겼으니 당연히 최가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곧 최준은 나성곤과 구기승에게 각각 전화를 걸었다. 전화 맞은편에서 나성곤과 구기승 두 사람은 같이 앉아 있었고 안색은 더할 나위 없이 안 좋았다. 실패했다. 뜻밖에도 구성진이 실패하다니! 최준이 제시한 요구에 대해 그들은 잠시 따져본 후 동의했다. 최준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직 구성진이 불구가 되었다는 소식을 못 들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구가의 스타일로 볼 때 그들은 결코 이대로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변백범은 이미 이 일을 확실히 조사했고, 가장 먼저 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 대표님, 이미 조사를 마쳤습니다. 이 사
최희정이 하현에게 눈길을 돌렸고 그녀의 눈 밑이 두툼하게 응어리졌다.그리고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홀 한가운데로 가서 당당하게 의자에 앉은 뒤 이영산을 가리켰다.“영산아, 그림 가져와 보렴.”“아버지와 함께 잘 살펴볼게.”두 사람은 모두 대가족 출신이라 이 방면에 대해 피상적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 안목이 있었다.특히 설재석은 요즘 강남에서 소장품을 열심히 연구하며 더 많은 지식을 쌓은 터였다.그렇지 않았다면 이영산이 누군가의 비위를 맞춰 가며 ‘맹호하산도’를 구해 왔을 리가 없다.이영산은 황급히 하현을 보고는 얼른 그의 손에 든 ‘맹호하산도’를 설재석에게 공손히 건네주었다.설재석은 짐짓 돋보기를 꺼내 신중하게 쳐다보았다.몇 분 뒤 설재석은 최희정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최희정은 귓속말을 듣고 이영산을 힐끔 쳐다보았다.그녀의 눈빛에 살짝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이영산은 순간 소름이 확 끼쳤다.그녀의 눈빛이 너무나 무서웠던 것이다.‘맹호하산도’가 위작임을 간파한 것임이 분명하다고 그는 짐작했다.설은아와 설유아도 싸늘한 표정으로 이영산을 바라보고 있었다.감히 양아들인 주제에 가짜를 가지고 설 씨 집안에 와서 큰소리를 치다니 죽어야 마땅했다!그러나 최희정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그녀는 잠시 이영산을 쳐다보다가 하현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하현, 자네 그 입 좀 작작 놀리지 그래?”“이 그림은 분명 진짜야! 당인의 진품이 맞아!”“적어도 억은 넘을 거야!”“안목도 천박한 놈이 어쩌다 운이 좋아서 내 딸한테 붙어먹더니! 그 부귀영화 좀 누린다고 골동품과 서화까지 이러쿵저러쿵하는 거야? 자네가 그럴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더욱 웃긴 것은 자네가 감히 내 소중한 아들을 무시하고 모욕했다는 거야. 얼른 무릎 꿇고 그에게 사과해!”“그렇지 않으면 이 집에 발붙일 생각도 하지 마!”하현의 눈빛에 차가운 파도가 일렁거렸다.그는 이 서화에 분명
정말로 능력이 있는 사람은 데릴사위가 될 수 없다.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사람들이 모두 이영산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이영산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하현, 아무것도 모르면 입 다물어! 헛소리하지 마!”“맞아! 자기가 뭔지도 모르는 놈이 이영산을 모독하다니!”“무슨 전문가인 척을 해?! 당신이 가짜라면 그게 가짜가 되는 거야?”“학벌도 없고 지식도 없으면서 감히 서화를 좀 아는 척 허세를 부려?”“이영산은 우리 금정 수장계에서는 소문난 존재야. 그러니 그가 진짜라고 했으면 틀림없는 진짜야!”친척들이 동요하며 하현에 대한 거침없는 비난과 비아냥을 이어가자 설은아는 그 말들이 귀에 거슬렸는지 점점 안색이 일그러져 갔다.설유아도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이영산이 이렇게까지 뻔뻔하게 나올 줄 몰랐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이 물건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전문가를 찾아서 직접 감별하게 하면 되겠죠.”“감정하는 비용은 제가 내겠어요!”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하현의 말에 이영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하현이 지나치게 담담하다는 것도 걸렸지만 그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보다 큰 이유는 이 그림이 오천만 원에 산 것이 아니라 몇백만 원에 인터넷으로 산 물건이기 때문이었다.만약 그가 돈이 있었다면 설 씨 가문의 양아들이 되려고 온갖 방법을 다 쓸 필요가 없다.가짜 그림을 판 판매자는 이 물건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누구도 감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호언장담했다.그러나 이영산은 그를 믿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희정과 설재석의 부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요즘 너무 많은 돈을 쓴 터라 진짜 그림을 살 돈이 없었다.그런데 최희정과 설재석이 말한 그 데릴사위가 이 사실을 까발린다고?정말로 그럴 수 있단 말인가?“이게 뭐라고 그렇게들 싸워?”“여기가 청과시장이야?”바로 그때 입구에서 약간의 위엄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리가 대가족이라는 걸 몰라? 버릇이 이렇게나 없어서야 되
”난 부모님의 친아들이 아니라 양아들에 불과해.”“하지만 나도 잘 알고 있어. 우린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만족스럽게 해 드릴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는 걸.”“그들이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다며 전 재산을 다 부어서라도 기꺼이 웃게 만들어야 해!”“하지만 당신들은 친자식이라는 이유로 대충대충 해도 마음만 전하면 된다?”“그래? 결국 난 남이라는 거지?”“부모님께 아무리 정성을 쏟는다고 해도 당신들의 흙 묻은 무보다도 못하다는 거지?”이영산은 억울한 듯 눈썹을 일그러뜨렸다.이윽고 그는 어지러운 듯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옆에서 장리나가 그를 부축하며 입을 열었다.“그러게 내가 당신한테 몇 번이나 말했어?!”“당신이 아무리 친자식처럼 효도한다고 해도 결국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혈육의 정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을 거라고 했잖아!”이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은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운 눈빛으로 이영산을 바라보았다.“맞아. 요새 이영산처럼 저렇게 효도하는 아들도 드물어.”“최희정과 설재석이 늘그막에 이렇게 효도하는 양아들을 만난 것은 크나큰 행운이야.”“무엇보다 이영산이 친딸보다 더 효도한다는 게 관건이야.”“오천만 원짜리 이 서화를 준비했다는 건 부모님을 위한 무한한 마음을 대변하는 거지.”“시집간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하는데 출가도 안 한 딸이 양아들 뒤꿈치도 못 따라간다니!”“내가 보기엔 최 여사 부부가 이영산한테 재산을 물려줘야 한다고 봐!”“저런 배은망덕한 것들한텐 절대 한 푼도 줘선 안 돼!”“당신들 정말...”사람들의 말을 들은 설유아는 화가 나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설은아의 표정도 차갑게 식었다.이 손님들이 이미 이영산 부부에게 매수되었다는 것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이영산은 그녀의 미색을 탐낼 뿐만 아니라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방주의 발언권이 설재석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꾸민 것이다.“설은아, 설유아. 그렇게 화내지 마.”“이 흙 묻은 무는
”하하하, 선물 가져왔어요?”이영산은 씩 웃으며 하현이 들고 있는 비닐봉지에 시선을 던졌다.“설마 이거 말하는 건 아니겠지?”“금정에 와서 부모님을 만나 뵙고 재결합하려고 하는데 비닐봉지라니? 부끄럽지도 않아?”설은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영산은 이미 하현이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빼앗아 자기 마음대로 열어 보았다.싹이 난 무같이 생긴 것이 눈에 들어왔다.“무? 조금 전 어디 밭에서 뽑아 왔어?”“포장도 따로 없이 검은 비닐봉지에?!”“이거 천 원은 하나?”“어쩐지 부모님이 당신을 두고 쓸모없다, 쓸모없다 하시더라니!”“재결합 선물에 이런 걸 선물이라고?”“천 원도 안 되는 것을! 염치가 없어도 원!”“썩 꺼져!”“우리 설 씨 가문에서 당신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최희정과 설재석이 금정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은 이영산의 말을 듣고 하나같이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그들의 시선에는 혐오감과 경멸함이 가득 들어 있었고 하현의 존재가 그들의 모임의 격을 떨어뜨려 놓았다고 느꼈다.하현은 이 사람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그저 그 사람들 중 아무도 이 백두산 산삼을 알아보는 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하현이 아무런 동요도 없는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데릴사위가 창피한 줄도 모른다며 비아냥거렸다.“정말 쓸모없는 인간이야!”이영산은 하현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자, 자, 자. 이번에 부모님을 위해 내가 준비한 선물을 좀 보시죠. 이것은 명나라 당인의 서화입니다.”이영산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서화 한 권을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미소를 지었다.“맹호하산도!”“당나라 말기 출세작이죠!”“이 물건을 구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수집가들과 주먹다짐을 했는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해요. 결국 거금 오천만 원을 주고 손에 넣었죠!”“아마 진정한 가치는 그 열 배도 넘을 거예요!”이영산은 자신이
말을 하는 동안 하현은 트렁크를 열고 짐을 챙기려 했다.그러자 검은 비닐봉지 같은 것이 보였고 그 안에는 흙 묻은 산삼 같은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백두산 산삼?”하현은 왕인걸이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백두산 산삼이라니?!이것은 진정한 강장제이다.일반 중장년층이 복용한다면 몸은 튼튼하게 해 주고 힘을 북돋아 준다.이번에 혼인증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하현은 최희정과 설재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그들의 체면을 세워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고 그는 지체 없이 비닐봉지를 손에 덥석 들었다.그때 소식을 접한 설은아가 건물 입구에서 달려 나왔다.하현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보고 그녀는 살짝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하현, 이건...”“오랜만에 부모님을 뵙게 되었는데 성의 표시는 해야지.”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 뿐 긴 말은 하지 않았다.설유아는 언니가 나오자 혀를 쏙 내밀며 쏜살같이 달아났다.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살짝 놀란 듯 어리둥절해했다.하현이 자신의 부모와 관계를 잘 풀어가기 위해 이런 선물을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하지만 그녀는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지금 새로 들인 양아들 내외가 마침 와 있어.”“그들이 말을 예쁘게 하지 않더라도 좀 참아.”말을 마친 뒤 설은아는 자신의 차에서도 선물 상자를 꺼낸 뒤 하현을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집안에는 이미 수십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모두 금정의 부유한 사람인 것 같았다.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하현이 모르는 남녀가 장내를 이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나이는 서른도 안 되어 보였고 남자는 무던한 표정에 여자는 서늘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아이고, 은아. 왜 안 보이나 했어?”“오늘은 아버지가 한턱내는 날인데 이집의 어엿한 반쪽 주인인 당신이 안 보여서 걱정했잖아!”“당신은 아버지 친딸이니까 이런 일에 좀 더 신경을 써야지,
원래 하현은 이 일에 자꾸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노인 혼자서는 절대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결국 잠시 생각에 빠진 하현은 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에게 말했다.“아가씨, 할아버지 몸에 뭔가 더러운 것이 있어요.”“당신들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아마 그것 때문일 겁니다.”“그러니 당신들이 시간이 된다면...”“더러운 거라뇨?”하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는 분노를 터뜨렸다.“당신은 일억 때문에 차량에 달려들어 우리 할아버지를 죽이려고 했어요!”“자기변명을 하려고 이제는 뭐라구요? 우리 할아버지한테 더러운 게 있다구요?”“그렇게 허튼소리 하다가는 제 명에 죽지 못할 거예요!”자신의 할아버지는 평생 덕을 쌓고 선을 행했고 자주 정진하고 염불을 외던 분이셨다.그처럼 선량한 사람에게 어떻게 더러운 기운이 붙을 수가 있던 말인가?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난 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는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탁!”그러나 그녀의 손바닥은 하현의 얼굴에 닿지 못했다.언제 하현의 곁에 왔는지 그새 설유아가 들어와 여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아가씨, 우리 형부는 좋은 마음으로 한 거예요!”“아무도 나서서 도와주려 하지 않았는데 우리 형부가 도와줬으면 고맙다고 해야지 이게 무슨 짓이에요?”“정말로 우리 형부가 한 행동이 당신 할아버지한테 해가 되었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하세요!”“형사가 우리 책임이라고 하면 우리가 책임지면 되죠!”“하지만 사람의 호의를 몰라보고 함부로 그런 말을 하는 건 못 참아요!”설유아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여자를 바라보았다.“게다가 당신이 뭐라도 된다고 생각해요?”“감히 내 형부한테 손찌검을 해?”본 적 없던 설유아의 패기에 하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자신의 눈에는 그저 어린 소녀처럼 보였던 설유아가 이렇게까지 성장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도 설유아의 기세에 놀랐는지 살짝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만약 이 상황에서 사람을 구해내지 않으면 양심에 걸려서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아.”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고 온화한 미소로 설유아를 안심시켰다.하현의 말을 들은 설유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자기가 형부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성격 때문이 아니었던가?이런 생각이 들자 설유아는 그의 손을 계속 잡고 있을 수 없었다.결국 설유아가 그의 손을 놓자 그가 한 걸음 내디디며 부리나케 벤츠 차량으로 뛰어들었다.“저기, 우리 할아버지 구해 주시려고요?”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는 다소 여윈 하현의 몸을 보고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죽은 사람의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이었다.그녀에겐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할아버지를 구해 주신다면 일억을 드릴게요. 제발 우리 할아버지 좀 구해 주세요!”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벤츠로 발걸음을 재촉했다.엄청난 디젤 냄새가 코를 찔렀고 벤츠 차량은 이미 완전히 변형되었다.노인의 하반신은 안쪽에 꽉 끼어 있었고 고통으로 인해 의식을 잃었으며 내장의 압박이 심한 듯했다.하현은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고 왼손으로 천천히 벤츠 차량의 철골을 받친 후 오른손으로 노인의 옷을 잡아당겨 그를 직접 끌어내려고 했다.“잠깐만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하현이 강제로 사람을 끌어내리려고 하자 보헤미안 옷차림의 여자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사람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아는 거예요? 지금 우리 할아버지를 죽일 셈이에요?”“이렇게 억지로 할아버지를 빼내려고 하다가 대동맥이라도 다처서 피를 흘리게 되면 어떻게 해요?”“사람을 구하려는 거예요? 아니면 죽이려는 거예요?”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삐걱’ 하는 소리와 함께 벤츠 차량의 골격이 다시금 흔들리며 아래쪽으로 천천히 내려앉았다.왈칵!의식을 잃은 노인은 거대한 철골 덩어리에 몸이 눌려 본능적으로 피를 토해내었다.하현은
여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여기 누구 좀 도와주시겠어요?”“우리 할아버지 좀 살려주세요!”노인의 안색은 더욱 나빠졌고 벤츠의 구겨진 철골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주변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볼 뿐이었다.트럭이 폭발하기도 전에 철골이 누르는 압력을 구겨진 벤츠가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그러면 노인은 구조되기도 전에 압사할 것이다.그때가 되면 119가 와도 아무 소용이 없다.울먹이는 여자를 보고 주변에서 동영상을 촬영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카메라를 끈 채 불안하고 허망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몇 명은 앞으로 나서려다 끝내 망설이며 발걸음을 움직이지 못했다.그들도 모두 잘 안다. 부자인 것 같은 이 노인을 구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를.하지만 상황이 너무나 위급했다.만약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같이 압사된다면 그야말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은, 아니 모두를 잃는 것이었다.삐걱삐걱!바로 그때 벤츠의 철골이 다시 거친 소리를 내며 무너질 듯 주저앉으려고 했다.의식을 잃은 노인은 고통스럽게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입가에는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이를 본 여자는 더욱 일그러진 얼굴로 안타까워했다.그녀는 주위에 있는 건장한 남자들을 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저기요! 제발 우리 할아버지 좀 살려주세요!”“도와주신다면 천만 원씩 드릴게요!”“아니, 일인당 일억씩 드릴게요!”보헤미안 옷차림을 한 여자의 말에 사람들은 이들이 정말 부자라는 생각에 더욱 주저하는 내색을 비췄다.하지만 그럴수록 아무도 감히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감히 나섰다가 사람을 살리지 못하면 괜히 역정만 듣게 되고 안 좋은 일이 엮이기만 할 뿐 아닌가?만약 이 사건에 명문가들의 원한이 뒤섞여 있다면 그야말로 괜히 나섰다가 된통 당하게 되는 것이다!이 광경을 보고 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설유아는 재빨리 그를 끌어당겼다.“형부, 왜 그러세요?”하현은 낮은 목소리로 말
하현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설유아, 날 믿어. 이 차도, 그리고 이 목걸이도 어쩌다 그냥 들어온 것뿐이야.”“다른 사람이 나한테 사과의 의미로 준 거야.”“알았어요, 알았다구요. 형부,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 형부가 언니를 위해 이런 걸 준비했다고 해서 화낼 사람 아무도 없어요.”“이제 곧 결혼기념일이잖아요.”“큰 선물을 준비해서 이참에 당연히 재결합까지 가야죠!”이 말을 한 순간 갑자기 설유아의 마음 저 깊은 곳이 아려왔다.그리고는 목에 걸려 있던 까르띠에 목걸이를 풀었고 아쉬운 표정을 뒤로하며 선물 상자 속에 넣었다.하현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입을 열었다.“뭐해?”“뭘 하긴요?”설유아는 콧방귀를 뀌며 입을 열었다.“언니 물건이니까 돌려줘야죠. 그런데 형부, 가끔은 좀 빌려 쓸 수도 있어요.”“나도 이건 탐이 나지만 언니 마음을 상하게 할 순 없어요.”말을 하면서 설유아는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이 물건이 정말 하현이 자신에게 주는 것이기를 바랐다.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여주인공이 아니라 단지 여주인공 뒤에 있는 어린 소녀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그러니 유리 구두는 반드시 여주인공에게 돌려줘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불경한 죄를 얻게 된다.하현은 이 모습을 보며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처제한테 주는 거라고 말했잖아. 정말로 처제한테 주는 거야.”“어서 집어넣어. 언니도 절대 뭐라고 하지 않을 거야.”“결혼기념일엔 내가 따로 준비하면 돼!”설유아는 하현의 말이 전혀 믿기지가 않았다.까르띠에 목걸이에 미련이 남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단호하게 선물 상자를 닫았다.“오늘 형부가 나 때문에 진홍헌의 얼굴을 때린 일은 비밀로 할게요.”“아마 언니가 알면 깜짝 놀랄 거예요!”“언니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주세요!”설유아는 주먹을 쥐며 위협적인 자세로 말했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절대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