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이 남자는 손이 가는 대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담배를 한 모금 피운 뒤에야 웃으며 말했다. “하현, 하 세자의 대변인이자 설씨 집안의 데릴사위, 맞지?”“너는 또 누구야?”하현이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 “내 소개를 하자면 구씨, 구성진이야.” 구성진은 점잖고 예의 바른 모습이었다. “내가 너한테 미움을 샀어?”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정말 자기와 구씨 집안이 무슨 갈등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너는 확실히 우리 구씨 집안에는 미움을 산 적이 없어. 근데 너는 절대로 둘째 도련님에게 미움을 사서는 안돼.”구성진은 웃음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둘째 도련님?”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너 설마 하민석 그 폐물을 말하는 건 아니지?”“응? 너 둘째 도련님을 폐물이라고 그랬어?”구성진은 멍해졌다. 하민석이 강남에서 어떤 신분인가?그가 지금 항성으로 패주하긴 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라도 감히 그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하씨 가문은 진정한 권세가 있던 가문이라 몰락했다 해도 실력이나 영향력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눈 앞에서 이 하현이 하민석을 폐물이라고 말하다니. 구성진은 바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감정이 그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는 뜻밖에도 자신이 하현을 납치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렸다. ……같은 시각. 설은아와 육해민 두 사람은 최가의 입구에 도착했다. 어렵사리 최씨 집안 사람들을 불렀다. 최준은 냉담한 얼굴로 말했다. “이거 우리 설은아 설 회장님 아니십니까?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오셨는지 모르겠네요?”다른 최가 사람들도 하나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설은아를 쳐다보았다. 심지어 이미 입가에는 비아냥거리는 냉소가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 최가는 오늘 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고, 이미 설은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 앞에서
“이 무리들은 줄곧 악행을 일삼았는데 하현이 그들에게 미움을 산데다 또 잡혀갔으니 그러면 그는 분명 죽을 거야!”“너는 재혼할 준비나 해!”최우현은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이때 그는 조금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계획대로라면 하현 그 폐물은 벌써 죽었겠지?이 폐물이 감히 자기를 그에게 무릎 꿇게 하다니!지금 강도의 손에 죽었다니, 쌤통이다!모두가 냉소하는 것을 보고 은아는 절망했다. 그녀는 순간 최가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말했다. “외할머니, 하현이 아무리 그래도 할머니 외손녀 사위잖아요!”“잊으셨어요? 전에 할머니 생신 때 그가 애써서 축하 선물도 드렸었잖아요!”“이런걸 봐서라도 제발 외삼촌이 그를 구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최가 할머니는 냉소하며 말했다.“그 알약 하나로 인심을 사겠다는 거야? 꿈꾸고 있니?”“은아야, 만약 네가 아직도 우리 최가를 생각한다면 이 일은 신경 쓰지 마!”“그의 죽음이 확실해지고 나면 너는 가서 장례 절차를 밟아. 외할머니가 좋은 집안을 새로 준비해줄게!”이것이 바로 최가의 목적이었다. 하현이 죽기만 하면 은아에게 재혼을 강요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일정 기간 점진적으로 여러 방법을 통해 백운회사의 지분을 조금씩 횡령할 수 있을 것이다. 설은아는 이 음모를 눈치채지 못한 채 최가 할머니의 종아리를 끌어안고 흐느끼며 말했다.“외할머니, 저는 그를 구해주시기만 바랄 뿐이에요! 제발이요!”“백운회사의 지분을 원하시지 않으셨어요? 그를 구해주시기만 하면 제가 주식을 드릴게요!”설은아의 이 말을 듣고 최가 할머니는 멍해졌다. 그녀는 최준과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쇠 신이 닳도록 찾아 다녀도 구하기가 어렵더니 애를 쓰지 않고도 얻게 된다는 말은 바로 이런 걸 보고 하는 말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백운회사의 지분을 빼앗으려고 계획을 했었다. 이것이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지도 못하게 번거로운 수단이 전혀 필요 없게 되었다
최가 사람들은 이 날만을 기다렸다. 정말 너무 오래 기다렸다!최가는 벼슬아치 집안이라 쇼핑몰에서는 이렇다 할 업적이 없었다. 돈이 부족한 관계로 최가는 최정상 가문이 될 방법이 없었다. 이제 백운회사를 손에 넣었으니 최가는 최고의 가문이 될 날이 머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최가 사람들의 눈에는 지금 이 순간 그들이 최고의 가문이라고 여겨졌다. 은아가 사인을 마치자 최준은 전화기를 들고 곧장 전화를 걸었다. “남원 경찰서 총 수사반장 위원용이야? 나 최준이야!”“내 외손녀 사위 하현이 태국에서 도망쳐온 강도들에게 납치됐어. 이 일은 너에게 맡길 테니 처리해. 반드시 24시간내에 결과를 내야 해!”“네!”전화 맞은편에서 위원용은 재빨리 경례를 하고 제일 먼저 여러 가지 일들을 안배했다. 전화를 끊고 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 “조용히 소식을 기다려 보자. 위원용은 남원 경찰서 총 수사반장이야. 그가 손을 댄 이상 분명 단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할 거야.”최준의 가볍고 평온한 모습을 보고 은아와 육해민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최준은 도울 의사가 전혀 없었다. 이 일의 모든 과정에 최가가 관여하고 있었기에 최준은 위원용이 24시간 내에 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절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맨 마지막에 시체 한 구를 가지고 돌아올 것이다. 그 합의서로 최준의 마음도 조금 움직였다. 하현이 돌아오기만 하면 죽든 살든 설은아는 백운회사의 모든 지분을 반드시 넘겨줘야 한다. 이번에는 일석이조라고 불릴 만했다. 한편으로는 하민석의 임무를 완수하고 하현을 해결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백운회사의 모든 지분을 순조롭게 확보할 수 있다. 이때 최준의 마음속은 뿌듯함으로 가득 찼다. 백운회사가 있으면 그는 앞으로 강남 2인자의 자리를 노릴 수 있지 않겠는가?하현의 생사에 대해서는 그에게는 전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만약 상석에 앉기 위해 설은아까지 해치워야 한다면
“퍽______”한 사람의 형체가 날아와 때마침 구성진을 내리쳤다. 웃음을 머금고 있던 구성진의 얼굴은 갑자기 어두워졌고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나 눈앞의 이 광경을 보는 순간 그는 벌벌 떨기 시작했다. 무슨 상황이지?용병 30-50명이 이렇게 전부 쓰러지다니? “너, 너 도대체 누구야!?” 구성진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누구냐고? 나는 네가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나를 도와서 네 뒤에 있는 사람에게 선물을 보내. 그리고 날 건드리면 이렇게 된다고 전해!” 하현은 구성진 앞으로 걸어갔다. 구성진은 놀라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고 놀라 두려워하며 말했다. “오지 마!”“털컥!”하현은 그와 쓸데없는 말을 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앞으로 걸어와 그의 오른쪽 다리를 걷어찼다. “으악!”오른쪽 다리가 부러진 구성진은 바닥에서 뒹굴었다. 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몇 번 더 밟아 그의 팔다리를 바로 밟아 부러뜨렸다. 금의옥식하던 구성진이 언제 이런 일을 당해본 적이 있겠는가?곧 그는 아파서 바로 기절을 했다. 하현은 변백범을 불러 이 일의 배후를 확실히 조사 해 주동자가 누군지 알아낸 후 빨리 은아를 찾으러 가라고 했다. 어쨌든 오늘 이 일은 은아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는 그녀가 걱정할까 봐 염려가 되었다. ……최가.“외삼촌, 하현이 도대체 언제 돌아올 수 있을까요?”설은아는 초조해 안절부절 못하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미 남원경찰서 사람들에게 온 도시를 다 수색하라고 했으니 분명 단 시간 내에 결과가 있을 거야.”최준은 차를 마시며 가벼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방금 그는 구성진에게 사고를 하나 일으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곧 ‘뜻밖의 죽음’을 맞이한 하현을 찾게 되겠지?육해민은 다소 냉정을 되찾았고, 그는 최가 사람들의 태도가 심상치 않아 경계하며 입을 열었다. “은아야, 우리 먼저 가자. 정말 안될 거
“하현, 괜찮아? 그들이 널 어떻게 한 건 아니지?”은아는 많은 것들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직접 하현을 안고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번에 그녀는 걱정이 돼서 거의 정신을 잃을 뻔했다. 만약 강인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마 벌써 병원에 누워있었을지도 모른다. “여보, 난 괜찮아. 울지마. 돌아가자.”하현은 은아의 눈가의 눈물 자국을 부드럽게 닦아냈다. 이 일은 그가 분명 끝까지 따질 것이지만 은아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너 먼저 해민이 공항에 데려다 줘. 해민이가 네 일 때문에 비행기를 놓치겠어.”“나는 외삼촌과 상의할 일이 있어.”은아는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하현은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별 생각 없이 육해민을 남원국제공항에 데려다 주었다. 한편, 최준은 이미 변호사를 불러 증인으로 세웠다. “두 분, 당신들의 합의에 따라 지금 이 순간부터 설은아 아가씨의 손에 있던 모든 지분은 모두 최가의 손으로 넘어갑니다.”변호사는 말을 하면서 서류 한 부를 꺼내 쌍방이 서명을 하도록 했다. “네. 알겠습니다!”설은아는 괴로운 마음을 억누르며 서명을 했다. 이것은 그녀가 오랫동안 분투하며 얻은 회사였는데 오늘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주어야 한다. 최가는 계약서를 보며 하나같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최준은 이때 고양이가 쥐를 보며 울 듯 거짓 자비의 미소를 지었다. “은아야, 이 백운회사는 네가 비교적 잘 알고 있고 또 다른 회사와 연결된 프로젝트도 있잖아.”“외삼촌 생각에 네가 업무 매니저가 되는 게 좋을 거 같아. 내가 매달 4백만원씩 줄게. 어때?”“4백만원이면 나쁘지 않지!”최씨 집안 사람들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맞아, 지금 밖에서 일하면 한 달에 몇 십만 원도 괜찮은 편이지!”“우리가 식구인 걸 봐서 너한테는 이렇게 높은 임금을 주는 거야!”“이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돼!”분명 최가는 백운회사의 모든 것은 얻으려고 할 뿐 아니라 은아의
“네 말은……”최가 할머니가 약간 중얼거렸다. “엄마, 연극은 풀 세트로 해야 해요. 오늘 우리가 방금 백운회사를 얻었잖아요. 만약 이틀 안에 누군가 하현을 죽인다면 은아는 우리를 쉽게 의심할 거예요.”“설령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도 만에 하나 우리를 조사하면 귀찮아 질 거예요!”“이번에 우리 최가가 이미 큰 이익을 얻었으니 모든 것은 자연히 조심해서 해야죠.”최준은 백운회사를 얻었다고 해서 머리가 뜨거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냉정해졌다. 최가 할머니는 말했다. “우리 최가는 문제가 없지만 나가와 구가, 그들은 속수무책인데?”“그리고 둘째 도련님 쪽엔 어떻게 설명하지?”최준은 잠시 조용히 중얼거리다 제갈량이 살아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남원경찰서에 순찰을 강화하라고 하고, 대외적으로 강남 병부 수장 교체식 준비를 위해 준비하는 거라고 선전할 거예요!”“그리고 둘째 도련님 쪽에는 구씨 집안이 실패해 지금 남원 전역의 보안 강도를 높였다고 하면서 지금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고 하고, 수비 교체식이 다 끝나면 그 때 다시 얘기 하자고 합시다.”“그래, 그렇게 하자!”최가 할머니도 단호했다. 어쨌든 이번에 최가는 이미 큰 이익을 챙겼으니 당연히 최가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곧 최준은 나성곤과 구기승에게 각각 전화를 걸었다. 전화 맞은편에서 나성곤과 구기승 두 사람은 같이 앉아 있었고 안색은 더할 나위 없이 안 좋았다. 실패했다. 뜻밖에도 구성진이 실패하다니! 최준이 제시한 요구에 대해 그들은 잠시 따져본 후 동의했다. 최준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직 구성진이 불구가 되었다는 소식을 못 들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구가의 스타일로 볼 때 그들은 결코 이대로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변백범은 이미 이 일을 확실히 조사했고, 가장 먼저 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 대표님, 이미 조사를 마쳤습니다. 이 사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후 설은아는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미 하현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 약간 서먹서먹한 것이 있어 정상적인 부부처럼 생활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을 겪으면서 설은아는 이미 하현을 떠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특히 그가 괴한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았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은아는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면 이 참에 오늘 밤 방을 같이 쓸까?이 집에서의 마지막 추억이 될 수 있지 않을까?설은아는 창백했던 얼굴에 수줍은 빛이 떠올랐다. 옆에 있던 하현은 영문을 모른 채 쳐다보았다. 여자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울다가, 웃다가, 또 다시 수줍어하네?“여보,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 별 일 없다고 했잖아.”하현은 자기도 모르게 위로하며 말했다. “별거 아니야. 그냥 조금 울고 싶었어. 참, 너 오늘 저녁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해줄게.”은아는 화제를 바꾸었다. “난 다 괜찮아. 내 아내가 만들어 준 거라면 난 다 좋아.”하현이 웃었다. 비록 은아의 요리 솜씨는 재난 수준이었지만 하현은 그녀에게 협조하기로 결정했다. 두 부부가 웃으며 식사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미친 듯이 문을 두드렸다. 하현이 문을 열자 재석과 희정 두 사람이 이때 미친 듯이 돌진해 들어왔다.“설은아, 너 머리에 문제 있는 거 아니야?”“너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어!”“네가 이 일을 하기 전에 우리에게 조언을 구할 수는 없었던 거야?”“너 우리 둘한테 나중에 밥 구걸하라고 할 셈이야?”희정은 속사포처럼 설은아를 노려보며 격렬하게 입을 열었다. 재석은 실망한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현은 분노하는 부모를 보며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랐다. “아버지, 어머니, 은아가 왜요? 왜 은아에게 욕을 하시는 거예요?”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욕을 하
하현의 말을 듣고 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했다. 설마 자신이 정말 속은 건가? 하현 스스로 빠져 나온 건가?곰곰이 생각해보면 타임라인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최준은 24시간 안에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현은 사라진 지 1시간 만에 나타났다. “하현,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여기서 허풍을 떨어!”“너 잡아간 사람이 누군지 알아? 기성 변두리 쪽에서 도망친 강도들이야! 이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존재들이야!”“만약 최가가 때마침 강남 경찰계를 지휘해서 많은 수사관들을 보내 너를 찾고 그 흉악범들에게 엄청난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면 너는 살아 나오지 못했을 거야!”“너는 아마 지금쯤 벌써 시체가 되었을 거라고!”“너 거리에서 경찰들 못 봤어? 너 때문에 남원의 보안이 더 강화됐던 거야!”재석과 희정은 자신들이 자초지종을 다 알아냈다고 자인하며 이때 화가 더욱 치밀었다. 그들이 보기에 하현이 큰 소리 치기 좋아하는 버릇은 정말 구제불능이었다. 분명히 은아가 모든 것을 바쳐서 그를 내보낸 것인데 그는 여전히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아가 이때 입을 열었다. “아빠, 엄마, 진실이 어떻든 그건 중요하지가 않아요.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우리 가족들이 모두 무사하다는 거예요.”설은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하현도 잘 설명하지 못했다. 이런 일은 그야말로 신화나 전설과 같았다. 보통 사람들은 누군가가 혼자서 수십 명의 강도들과 싸울 수 있다는 것은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도 이렇게는 찍지 않는다. 최가 쪽에서 그의 연기가 탁월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하현이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명령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 모든 것은 너무 우연히 일치였다. “하현, 은아가 너를 위해 이렇게 많은 것을 바쳤는데, 너는 은아를 위하는 생각은 해줄 수 없는 거야? 이런 말을 하다니!”“은아는 백운회사에서 최소 4천억
저녁 9시.술과 밥을 배불러 먹은 하현은 소항 회관을 떠나 설 씨 가문으로 돌아갔다.하루 종일 고생한 그는 전에 최희정과 한바탕 크게 싸운 것도 있고 해서 그녀를 다시는 맞닥뜨리고 싶지 않아 소리 없이 2층으로 올라갔다.자신의 방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설은아의 방에서 ‘아앗’하는 소리가 들렸다.하현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갔다.방에 들어서자마자 향긋한 꽃향기가 물씬 풍겨왔다.설은아는 방금 목욕을 한 것으로 보였고 하얀 목욕 수건은 몸의 중요 부위만 감싸고 있었다.그녀의 백옥 같은 긴 다리는 수건 바깥으로 훤히 드러나 있어서 하현의 눈앞을 아찔하게 만들었다.하현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미녀들을 만났다.그녀들 각각의 매력도 상당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그를 가장 설레게 한 사람은 역시 설은아였다.순간 하현은 자신의 호흡이 가빠지고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다행히 그는 곧바로 냉정을 되찾아 얼른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들어왔어?”누군가 들어오자 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며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지만 하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후 긴장을 풀었다.하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이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길래 들어왔어. 괜찮아?”설은아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 조금 삔 것뿐이야. 주물러주면 괜찮아질 거야.”“내가 해줄게.”하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설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설은아는 침대에 앉아 곧고 긴 다리를 하현 앞에 쭉 뻗었다.하현은 설은아 앞에 쭈그리고 앉아 긴 다리를 주물렀다.손끝이 닿을 때마다 심장이 펄쩍 뛰었다.백옥같이 아름답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을 만큼 그녀의 다리는 곱고 매끄러웠다.하현은 거의 무아지경으로 그녀의 다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설은아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하현, 안마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 왜 만지작
고명원의 눈꺼풀이 파르르 흔들렸다.“뭐라구요?”정홍매도 넋이 나간 듯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그녀는 남편이 고향에 가서 조상님께 향불을 올리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줄곧 그 이유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다.그런데 이런 이유가 있었다니!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간단합니다. 당신은 기가 강한 사람입니다. 남을 압도할 만큼. 그래서 당신의 강한 기운이 조상의 기운을 눌렀던 거죠.”“만약 당신의 기운이 충분히 강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당신은 열 번도 더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스스로 잘 생각해 보세요. 당신 평생, 당신 아들이 태어난 후 당신이 몇 번이나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는지!”하현의 말을 듣고 고명원은 마침내 큰 충격을 받았고 탄복해 마지않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하현, 당신은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엄 회장님이 이렇게 당신을 좋아하는군요!”“맞습니다. 난 정말이지 몇 번이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그때마다 중상을 입었지만 죽지는 않았어요.”“하지만 운이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거죠.”“옛날 사람들은 큰 재난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훗날 반드시 복이 온다고 했어요.”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런 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당신에게 조상의 비호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당신에게 후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죠!”“그래서 지금이라도 가능하다면 아들이든 딸이든 낳아 보길 권합니다.”“그러면 다음에 조상님께 제를 올릴 때 저절로 향불을 태우고 싶을 겁니다.”“봉분의 풀들도 그렇게 푸르지는 않은 것 같군요.”“조상들의 숨결이 모두 기운을 다했기 때문이죠!”“개자식!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야!”“자꾸 그런 말 하면 내가 당신 입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여보! 가! 가자구!”“자기가 무당이야? 뭐야?”“저 말을 믿느니 차리리 죽는 게 나아!”말을 마치자마자 정홍매는 고명원을 데리고 얼른 나가려고 했다.“
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의술은 정말 잘 몰라. 하지만 살인술은 좀 알지.”“한번 보여줘?”“단번에 당신의 목숨을 앗아버릴 수 있는데.”하현의 말을 들은 엄도훈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리고 나서 아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농담하지 마세요! 형님! 농담도 참!”“간 떨어질 뻔했잖아요! 전 지금 형님이 제 목숨을 구해 주길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구요!”하현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은침을 자신의 손가락에 살짝 찔러 피 한 방울을 짜낸 뒤 엄도훈의 미간에 떨어뜨렸다.그리고 큰 혈이 지나가는 명치 몇 군데에도 떨어뜨렸다.그러자 가슴에 있던 흔적이 천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어? 어? 사라지고 있어?! 정말로 사라졌다구!”몇몇 측근들은 모두 놀란 얼굴을 한 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왜냐하면 그들은 눈앞에서 흔적들이 서서히 옅어지다가 사라지는 것을 똑바로 목격했기 때문이다.엄도훈은 처음에 하현이 뭘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그런데 이제 보니 흔적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온몸을 얽매고 있는 기운도 함께 사라졌고 이윽고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았다.고명원도 눈앞의 광경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그는 처음에 하현이 농간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일을 보고 자신의 식견이 이렇게 모자랄 줄은 몰랐다.“형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정말 대단해요!”“정말 감동했어요! 이건 정말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동이에요!”엄도훈의 얼굴은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였다.“다만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있긴 해요.”“집이나 가게에 팔괘경을 비치하는 것을 좋아하는 어른들을 많이 봤어요. 하지만 그들은 모두 무사했는데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은 거예요?”“그 물건이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다들 그런 골동품을 쓰니까요.”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신이 가지고 있던 팔괘경은 출토될 때부터 원한에 얽혀 있었어. 만약 내 추측이 맞다면 그 팔
”뭐야?”엄도훈의 가슴에 있는 용 무늬를 보고 고명원과 정홍매 두 사람은 모두 숨을 헐떡거렸다.어떻게 이럴 수가?그들의 안색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엄도훈의 성격상 이런 비밀스러운 일을 하현에게 절대 알리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 씨 성을 가진 저놈이 설마 이렇게나 능력이 있다고?엄도훈은 지금 당장 고명원 부부를 결판낼 생각은 없었기에 그저 긴장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기만 했다.“형님, 이게 전신용이란 거군요. 그런데 왜 난 하나도 아프지도, 간지럽지도 않습니까?”“난 이름 모를 바이러스인가 하고 생각했어요.”“바이러스라면 오히려 다행이지.”하현은 희미한 눈빛으로 말했다.“전신용의 머리와 꼬리가 연결되면 죽음에 직면하는 거야.”엄도훈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그럼 설마 제가 요 며칠 겪었던 재수 없는 일들도 바로 이것 때문이에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용은 천지의 영물이야. 용이 온몸을 휘감으면 기운이 먼저 손상되지.”“당신의 운이 다하면 용의 머리와 꼬리가 서서히 연결돼.”“그러면 당신은 결국 목숨을 잃게 되는 거고.”“아!”하현의 말을 들은 엄도훈은 깜짝 놀랐다.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가슴팍에 있는 흔적을 닦아내려고 했지만 도저히 닦아낼 수가 없었다.이를 지켜보던 정홍매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실룩거렸다.“무슨 얼토당토않은 말을 지껄이는 거야?”“무슨 드라마 찍어? 용에 뭐 기운이 있어?”“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고?”“아니, 저 흔적이 뭔지도 모르지만 저게 움직인다는 게 말이나 돼?! 도저히 믿을 수 없어!”엄도훈이 뭐라고 항변하기도 전에 전신용이 스르르 움직이며 한 치가 자랐고 머리와 꼬리 사이의 거리는 거의 1센티미터밖에 남지 않았다.머리와 꼬리는 곧 이어질 듯 서로를 향해 뻗어 있었다.눈앞에서 이를 본 정홍매는 혼비백산했다.과학적 사실에만 생각이 뻗쳐 있던 고명원도 화들짝 놀라며 눈
하현이 하는 말을 듣고 정홍매는 끝내 참지 못했다.그녀는 냉소적으로 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뭐? 뭘 닮아? 용?”“원한은 무슨 원한?”“하 씨! 당신은 사기꾼이야! 방금 우리가 그 사실을 폭로하지 않은 것은 엄 회장의 체면 때문이었어.”“그런데 지금 이 꼴을 봐? 정말 거짓말이 끝이 없어!”“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말로 사람을 속이려 드는 거야? 후환이 두렵지도 않아?”“게다가 나도 당신을 조사해 봤어. 당신은 데릴사위였다가 지금은 그마저도 쫓겨난 신세라던데!”“뭐가 그리 득의양양한 거야?!”“당신이 풍수지리에 대해 뭘 알아?!”“허 참!”“엄 회장 앞에서 이렇게 들추어내게 되어서 미안하지만 난 당신이 더 이상 엄 회장을 속이고 있는 꼴을 볼 수가 없어! 절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말을 마치며 정홍매는 얼굴을 바꿔 끼운 듯 상냥한 표정으로 엄도훈을 바라보며 비위를 맞췄다.“엄 회장님. 난 회장님한테 망신을 주려고 한 것도 아니고 일부러 하현을 노린 것도 아니에요. 복수한 것은 더더욱 아니구요!”“내 성격이 직설적이어서 남이 뭘 속이는 꼴을 못 참아요.”“그러니 절대 속으면 안 됩니다!”“며칠 동안 사고가 잦았던 것은 재수가 없었던 것뿐이에요.”“그가 당신을 미행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 것이 틀림없어요!”“심지어 그가 음모를 꾸며 일부러 그런 일을 만들었을 수도 있구요!”“엄 회장님. 지금이라도 당장 그를 붙잡아 고문해야 해요! 그가 회장님한테 도대체 뭘 얻으려고 그런 짓을 한 건지 추궁해야 한다니까요!”정홍매는 스스로 정의감에 취해 한껏 자랑스럽게 하현을 헐뜯고 있었다.한참을 쏟아내고 나니 그녀는 속이 후련했다.하현이 엄도훈을 믿고 자신의 아들을 짓밟았다면 그녀도 엄도훈을 등에 업고 무참히 하현을 짓밟아야 했다!그래야 마음속의 분노와 억울함이 한 점도 남김없이 말끔히 사라질 것 같았다!흥!눈에는 눈! 이에는 이!“닥쳐!”결국 정홍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
하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비수 좀 보여줘 봐.”엄도훈은 몸에 지니고 있던 비수를 황급히 꺼내 하현 앞에 공손히 내놓았다.비수는 익히 아는 보통의 비수였다.하지만 깨끗하게 닦여 티끌 하나 없었다.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위에 묻어 있던 혈흔은 지운 거야?”하현이 뭔가 꺼림칙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정홍매는 입가에 비아냥거림과 냉소를 가득 떠올렸다.이까짓 솜씨로 감히 사람을 속이려 하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엄도훈은 당연하다는 듯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깨끗한 비수를 몸에 지녀야 좋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어요. 너무 더러우면 안 좋잖아요? 만약 뭔가 잘못될 수도 있으니까 찝찝해서 깨끗하게 씻었죠...”“어리석기는!”하현은 한숨을 푹 쉬었다.“내가 당신한테 비수를 지니라고 한 것은 그 위에 묻은 혈흔이 당신 체내의 악운을 누그러뜨리고 심지어 조금 풀어주기 때문이야.”“그런데 당신은 비수를 깨끗하게 씻어 버렸으니 아무런 효과가 없는 거지.”“그리고 내 추측이 맞다면 아마도 당신은 어제 누군가가 비명횡사하는 모습을 목격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하현의 말을 들은 엄도훈과 그의 몇몇 측근들은 모두 온몸을 덜덜 떨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모두 바닥에 떨어뜨렸다.그들은 하현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듯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엄도훈은 유난히 더 입꼬리를 부르르 떨다가 겨우 입을 뗐다.“하현 형님, 역시 대단하십니다.”“내가 전에 만났던 그 무슨 유명한 풍수지리사들보다도 훨씬 대단해요!”“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다니!”“맞아요. 어젯밤 집으로 오는 중에 몇몇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중에 한 명이 화단에 부딪혀 어떻게 하다가 그만 죽어버렸어요.”“그 죽은 사람은 여자였던 것 같았는데 붉은 치마를 입고 있었어요.”여기까지 말한 엄도훈의 얼굴엔 마치 하현이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감탄해 마지않는 기색이 역력했다.그러나 정홍매는 냉
”나한테 사과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엄도훈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여기서 끝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하현 형님에게 달렸지요.”“하현?”“하현 형님?”고명원은 이미 사건이 발생한 경위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그는 사건의 근본 원흉인 작자가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며 병원에서 고통에 울부짖는 자신의 아들의 모습을 떠올렸다.순간 그의 눈에서 음흉한 빛을 뿜어져 나왔다.그러나 그도 인물은 인물이었다.그는 겉으로는 조금도 그런 내색은 하지 않은 채 미소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하현, 안녕하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모든 것이 우리가 제대로 키우지 못한 죄입니다. 우리가 눈치를 채지 못했어요.”“그러니 대인께서 관대하게 여기시어 너그러이 봐주십시오!”“성양이한테는 우리가 제대로 잘 타이르겠습니다!”말을 하면서 고명원은 허리를 굽혔다.그의 모습에선 수조원 자산가의 위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리고 그는 얼른 수표 한 장을 꺼내 하현 앞에 공손히 놓았다.열 자리 숫자, 이십억이었다!이를 바라본 정홍매의 눈동자엔 한기가 가득했다.엄도훈이 현장에 있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하현의 뺨을 때리고도 남았을 것이다.그들 장청 캐피털은 확실히 엄도훈에게는 굽신거려야 하지만 하현의 신원을 알아낸 그들에게 하현은 그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 데릴사위일 뿐인데 뭐가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게다가 하현과 엄도훈이 사이가 좋게 된 이유가 풍수지리 때문이라는데 그것도 하현이 엄도훈을 속인 게 아닌가 하고 두 부부는 의심하고 있었다.간단히 말해서 정홍매의 눈에 하현은 그저 사기꾼일 뿐이었다.지금은 엄도훈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하현에게 굽신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녀는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의를 숨기지 않고 하현을 매섭게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고 사장님, 고맙지만 이 일은 엄 회장이 다 처리한 일이니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나 사장님, 설은아 좀 데려다주세요.”출구에 다다랐을 때 하현은 얼굴이 창백하기 이를 데 없는 나박하를 향해 손뼉을 치며 불러 세웠다.“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전화주세요.”“네, 알겠습니다. 형수님 잘 모셔다드리겠습니다!”하현의 말을 들은 나박하는 믿음직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그는 전화를 걸어 임시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어쨌든 지금 이 상황을 가볍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설은아도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하현이 엄도훈과 함께 일을 처리할 거라는 걸 알고 그녀는 바로 스포츠카로 향했다.그러나 운전석 문을 열면서 설은아는 하현을 쳐다보며 한마디했다.“하현, 얼른 돌아와!”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인 후 설은아를 떠나보냈다....30분 후.소항 회관 프레지던트 룸.엄도훈은 고성양의 일을 처리한 후 가장 호화로운 룸 파티를 열어 하현을 초대했다.값비싼 음식은 물론이고 82년산 라피트 두 병을 준비해 하현을 대하는 그의 성의를 보여주었다.하현은 엄도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가 다시 그의 핸드폰 안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이곳은 새로 인테리어한 신사 상인 연합회 사무실이었다.팔괘경은 이미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사를 불러 가구 배치도 다르게 했다.하현은 쓱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사무실이 이전에 비해 훨씬 괜찮아졌다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엄도훈의 몸에는 여전히 불운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고 미간도 검게 변해 있었다.요 며칠 동안 엄도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들으며 하현은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의 질긴 생명력에 새삼 감탄했다.재수가 없는 사람을 만났더라면 아마 이미 열두 번은 더 죽었을 것이다.하현이 엄도훈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살피려고 했을 때 엄도훈의 전화기가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으며 하현을 향해 옅은 미소를 보였다.“형님, 정말 죄송합니다.”“고명원이 형님한테 직접 사과를
엄도훈의 말에 고성양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는 자신의 아버지인 장청 캐피털 고명원의 이름이 엄도훈 앞에서 조금도 먹히지 않을 줄은 몰랐다.하지만 엄도훈의 말이 맞았다.장청 캐피털이 고리대금을 풀어 소시민들을 괴롭히더라도 엄도훈 같은 독한 사람을 만나면 당장 무릎을 꿇어야 했다.심지어 배후에 있는 은둔의 왕 씨 가문의 그림자가 없었더라면 장청 캐피털은 이런 일로 몇 번이나 짓밟혔을지 모를 일이었다.얼굴이 일그러진 고성양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엄도훈은 시선을 돌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이런 놈 체면을 세워 주려고 당신들은 여기 이러고 있는 거야?”진서기 일행은 하나같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 틈을 찾아 따지고 싶었지만 엄도훈의 시선이 너무 무서웠다.이때 이미 고성양은 모든 게 절망적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하지만 엄도훈은 하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여기서 멈출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그는 차가운 눈빛과 말투로 입을 열었다.“하현 형님은 마음이 착하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하지만 나 엄도훈은 달라. 인과응보. 잘못을 한 상대가 있으면 응당 되돌려줘야지!”“오늘 밤 하현 형님을 괴롭혔거나 형수님의 심기를 건드린 사람은 자진해서 나와.”“나와서 한 손씩 잘라. 그러면 이 일은 없던 일로 해주지!”“아무것도 못 들은 척, 아무것도 못 본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다가 나한테 걸리면 죽는 거야!”엄도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말속에는 살의가 가득했다.이 광경을 본 하현은 웃으며 설은아의 손을 잡고 룸을 나서면서 나박하에게 자신을 따라나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진서기와 임민아는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은아, 살려줘!”설은아는 발걸음을 떼었다가 멈칫했지만 하현은 마음 약해질 틈을 주지 않고 얼른 그녀를 끌고 룸을 빠져나왔다.“풀썩!”진서기와 임민아 두 사람은 좀 전의 악독한 얼굴은 온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