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 괜찮아? 그들이 널 어떻게 한 건 아니지?”은아는 많은 것들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직접 하현을 안고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이번에 그녀는 걱정이 돼서 거의 정신을 잃을 뻔했다. 만약 강인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마 벌써 병원에 누워있었을지도 모른다. “여보, 난 괜찮아. 울지마. 돌아가자.”하현은 은아의 눈가의 눈물 자국을 부드럽게 닦아냈다. 이 일은 그가 분명 끝까지 따질 것이지만 은아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너 먼저 해민이 공항에 데려다 줘. 해민이가 네 일 때문에 비행기를 놓치겠어.”“나는 외삼촌과 상의할 일이 있어.”은아는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하현은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별 생각 없이 육해민을 남원국제공항에 데려다 주었다. 한편, 최준은 이미 변호사를 불러 증인으로 세웠다. “두 분, 당신들의 합의에 따라 지금 이 순간부터 설은아 아가씨의 손에 있던 모든 지분은 모두 최가의 손으로 넘어갑니다.”변호사는 말을 하면서 서류 한 부를 꺼내 쌍방이 서명을 하도록 했다. “네. 알겠습니다!”설은아는 괴로운 마음을 억누르며 서명을 했다. 이것은 그녀가 오랫동안 분투하며 얻은 회사였는데 오늘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주어야 한다. 최가는 계약서를 보며 하나같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최준은 이때 고양이가 쥐를 보며 울 듯 거짓 자비의 미소를 지었다. “은아야, 이 백운회사는 네가 비교적 잘 알고 있고 또 다른 회사와 연결된 프로젝트도 있잖아.”“외삼촌 생각에 네가 업무 매니저가 되는 게 좋을 거 같아. 내가 매달 4백만원씩 줄게. 어때?”“4백만원이면 나쁘지 않지!”최씨 집안 사람들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맞아, 지금 밖에서 일하면 한 달에 몇 십만 원도 괜찮은 편이지!”“우리가 식구인 걸 봐서 너한테는 이렇게 높은 임금을 주는 거야!”“이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돼!”분명 최가는 백운회사의 모든 것은 얻으려고 할 뿐 아니라 은아의
“네 말은……”최가 할머니가 약간 중얼거렸다. “엄마, 연극은 풀 세트로 해야 해요. 오늘 우리가 방금 백운회사를 얻었잖아요. 만약 이틀 안에 누군가 하현을 죽인다면 은아는 우리를 쉽게 의심할 거예요.”“설령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도 만에 하나 우리를 조사하면 귀찮아 질 거예요!”“이번에 우리 최가가 이미 큰 이익을 얻었으니 모든 것은 자연히 조심해서 해야죠.”최준은 백운회사를 얻었다고 해서 머리가 뜨거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냉정해졌다. 최가 할머니는 말했다. “우리 최가는 문제가 없지만 나가와 구가, 그들은 속수무책인데?”“그리고 둘째 도련님 쪽엔 어떻게 설명하지?”최준은 잠시 조용히 중얼거리다 제갈량이 살아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남원경찰서에 순찰을 강화하라고 하고, 대외적으로 강남 병부 수장 교체식 준비를 위해 준비하는 거라고 선전할 거예요!”“그리고 둘째 도련님 쪽에는 구씨 집안이 실패해 지금 남원 전역의 보안 강도를 높였다고 하면서 지금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고 하고, 수비 교체식이 다 끝나면 그 때 다시 얘기 하자고 합시다.”“그래, 그렇게 하자!”최가 할머니도 단호했다. 어쨌든 이번에 최가는 이미 큰 이익을 챙겼으니 당연히 최가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곧 최준은 나성곤과 구기승에게 각각 전화를 걸었다. 전화 맞은편에서 나성곤과 구기승 두 사람은 같이 앉아 있었고 안색은 더할 나위 없이 안 좋았다. 실패했다. 뜻밖에도 구성진이 실패하다니! 최준이 제시한 요구에 대해 그들은 잠시 따져본 후 동의했다. 최준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직 구성진이 불구가 되었다는 소식을 못 들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구가의 스타일로 볼 때 그들은 결코 이대로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변백범은 이미 이 일을 확실히 조사했고, 가장 먼저 하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 대표님, 이미 조사를 마쳤습니다. 이 사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후 설은아는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미 하현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 약간 서먹서먹한 것이 있어 정상적인 부부처럼 생활할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을 겪으면서 설은아는 이미 하현을 떠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특히 그가 괴한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았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은아는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면 이 참에 오늘 밤 방을 같이 쓸까?이 집에서의 마지막 추억이 될 수 있지 않을까?설은아는 창백했던 얼굴에 수줍은 빛이 떠올랐다. 옆에 있던 하현은 영문을 모른 채 쳐다보았다. 여자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울다가, 웃다가, 또 다시 수줍어하네?“여보,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 별 일 없다고 했잖아.”하현은 자기도 모르게 위로하며 말했다. “별거 아니야. 그냥 조금 울고 싶었어. 참, 너 오늘 저녁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해줄게.”은아는 화제를 바꾸었다. “난 다 괜찮아. 내 아내가 만들어 준 거라면 난 다 좋아.”하현이 웃었다. 비록 은아의 요리 솜씨는 재난 수준이었지만 하현은 그녀에게 협조하기로 결정했다. 두 부부가 웃으며 식사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미친 듯이 문을 두드렸다. 하현이 문을 열자 재석과 희정 두 사람이 이때 미친 듯이 돌진해 들어왔다.“설은아, 너 머리에 문제 있는 거 아니야?”“너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어!”“네가 이 일을 하기 전에 우리에게 조언을 구할 수는 없었던 거야?”“너 우리 둘한테 나중에 밥 구걸하라고 할 셈이야?”희정은 속사포처럼 설은아를 노려보며 격렬하게 입을 열었다. 재석은 실망한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현은 분노하는 부모를 보며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몰랐다. “아버지, 어머니, 은아가 왜요? 왜 은아에게 욕을 하시는 거예요?”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욕을 하
하현의 말을 듣고 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했다. 설마 자신이 정말 속은 건가? 하현 스스로 빠져 나온 건가?곰곰이 생각해보면 타임라인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최준은 24시간 안에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현은 사라진 지 1시간 만에 나타났다. “하현,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여기서 허풍을 떨어!”“너 잡아간 사람이 누군지 알아? 기성 변두리 쪽에서 도망친 강도들이야! 이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존재들이야!”“만약 최가가 때마침 강남 경찰계를 지휘해서 많은 수사관들을 보내 너를 찾고 그 흉악범들에게 엄청난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면 너는 살아 나오지 못했을 거야!”“너는 아마 지금쯤 벌써 시체가 되었을 거라고!”“너 거리에서 경찰들 못 봤어? 너 때문에 남원의 보안이 더 강화됐던 거야!”재석과 희정은 자신들이 자초지종을 다 알아냈다고 자인하며 이때 화가 더욱 치밀었다. 그들이 보기에 하현이 큰 소리 치기 좋아하는 버릇은 정말 구제불능이었다. 분명히 은아가 모든 것을 바쳐서 그를 내보낸 것인데 그는 여전히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아가 이때 입을 열었다. “아빠, 엄마, 진실이 어떻든 그건 중요하지가 않아요.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우리 가족들이 모두 무사하다는 거예요.”설은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하현도 잘 설명하지 못했다. 이런 일은 그야말로 신화나 전설과 같았다. 보통 사람들은 누군가가 혼자서 수십 명의 강도들과 싸울 수 있다는 것은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도 이렇게는 찍지 않는다. 최가 쪽에서 그의 연기가 탁월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하현이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명령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 모든 것은 너무 우연히 일치였다. “하현, 은아가 너를 위해 이렇게 많은 것을 바쳤는데, 너는 은아를 위하는 생각은 해줄 수 없는 거야? 이런 말을 하다니!”“은아는 백운회사에서 최소 4천억
하현의 호언장담하는 말을 듣고 재석과 희정 둘 다 멍해졌다. 잠시 후 재석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어. 일이 이미 이렇게 됐으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게.”“너 오늘 힘들었을 텐데 푹 쉬어.”말을 마치고 재석은 희정을 데리고 갔다.실망했다!그들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깊은 실망만 있을 뿐이었다!이 와중에 하현은 여전히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지금 그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기가 싫었다. 그들의 눈에 하현 같은 사람은 이미 구제불능으로 보였다. 은아는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여보, 나 놀리지 마!”“앞으로 우리 작은 사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평생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사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거야.”“정 안되면 우리 노점상 하자. 요즘 노점상도 많지 않아? 아니면 오늘 밤부터 시작하자!”은아는 한다면 하는 성격이었고, 실행력도 강했다. 그녀는 직접 인터넷으로 근처의 몇 개 작은 상품 도매 시장을 찾아본 후 기분 좋게 하현을 데리고 물건을 사러 갔다. 하현은 할 말을 잃었다. 곧 은아는 팔 만한 물건을 준비했고 산책로에 노점을 하나 구했다. 은아의 말에 따르면 오늘 그들 부부는 개업을 한 셈이다. 은아가 선택한 곳은 산책로 중심가로 평일에도 인파가 많이 몰렸지만 밤이 되면 더욱 붐볐다. 은아는 물건도 잘 골랐고 값도 싼 데가 요괴급 미녀였다. 그래서 이 노점은 세팅이 끝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고 안팎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렸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곧 물건들이 거의 다 팔렸다. 하현은 은아가 이렇게 웃는 것을 보니 어떻게 말하든 아내가 기뻐하면 그만이었다. 노점상을 하면 또 뭐가 어때서?노점상도 창업이다!“어? 이거 설은아 회장 아니야? 내가 듣기로 설 회장 회사는 현재 회사 시가가 몇 천억이라던데. 그리고 벤틀리를 몰고 다닌다면서요.”“그래 귀하디 귀한 부자 설 회장이 오늘 밤 체험을 하러 나왔단 말인가요?”바로 이 때 양복차림의 대
은아는 얼굴색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녀는 노점을 차리고 나서 이덕재처럼 옹졸하고 구역질 나는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 “이 매니저님, 손에 들고 있는 이 양말은 별로 좋지 않은 거 같은데요!”“맞아요!”이덕재는 분명 이 부하들 앞에서 설은아 얘기를 여러 차례 했을 것이다. 그는 설은아가 자신을 해고시킨 일에 대한 원망이 컸을 뿐 아니라 줄곧 설은아를 탐내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이때 하현이 뒤에서 나와 인상을 찡그리며 이덕재를 쳐다보았다. 은아가 노점상을 이렇게 즐겁게 하니 막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는 놈이 와서 어지럽히고 있으니 하현은 조금 화가 났다. 이때 하현의 눈빛은 차가웠다. 눈빛만으로도 이덕재는 몸서리가 쳐지는 느낌이었다. 하현이 나서는 것을 보고 은아는 깜짝 놀라며 속삭이며 말했다. “하현, 이 녀석들은 상대할 필요가 없어. 우리는 장사하러 나왔고, 기분 좋게 돈을 벌었잖아.”분명 그녀는 하현이 참지 못하고 손을 대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이 되었다. 지금 그녀는 백운회사의 회장이 아니었다. 만에 하나라도 하현이 손을 대서 사람이 다치기라도 해서 지구 경찰서에 끌려가면 어떻게 하겠는가?하현은 은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네 말 들을 게.”말을 마치고 그는 이덕재를 힐끗 쳐다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우리는 너 같은 손님은 환영하지 않아. 꺼져.”하현의 말을 들은 이덕재의 얼굴이 갑자기 괴상하게 변했다. 그는 하현을 잠시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갑자기 ‘피식’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 분, 설 회장의 전설의 데릴남편이죠?”“듣기로 기둥서방으로 대단하다던데, 설 회장에게 장가든지 3년이 됐는데도 설가에 기여한 바가 하나도 없다면서요?” “이제 설 회장의 회사는 다른 사람 손에 넘어 갔고 그녀가 노점을 해서 벌어 먹여야 한다니.”“임마, 인정하지 않을래야 안 할 수가 없잖아. 너 이 기둥서방은 허풍이 너무 심해!”
이렇게 굽실거리는 은아의 말을 듣고 이덕재는 더욱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설 회장, 당신이 이 정도까지 말을 한 이상 그럼 나도 당신의 사업을 잘 보살펴 드려야죠!”“당신 양말들 내가 다 살게요!”말을 마치고 이덕재는 옹졸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옹졸했다. “저도 한 켤레 살래요!”“하하하……”이덕재의 부하들은 옹졸하게 웃기 시작했고 침을 뚝뚝 흘리는 눈빛으로 은아를 쳐다 보았다. 이덕재는 더욱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설은아, 내가 듣기로 네가 이미 백운회사의 주식을 다 내줬다고 들었어. 그러니까 너는 지금 가난해서 아마 방세도 내지 못할 거야.” “이렇게 하자. 우리 회사가 최근에 마침 비서를 한 명 뽑고 있거든. 한 달에 백만 원이야.”“계속 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만약 네가 생각이 좀 있으면 이 자리를 너한테 줄 수 있어!”“근데 내 비서가 되려면 한가지 원칙을 기억해야 돼. 그건 일이 있을 때 비서가 일을 처리해야 하는 거야.” 하현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녀석은 너무 옹졸하다. 이때 그는 참을 수 없어 뺨을 한 대 때리고 머리를 변기에 쑤셔 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은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여보, 됐어. 우리가 가면 돼.”“앞으로 노점상을 하면 비슷한 일들이 많을 거야. 당신이 별 일도 아닌데 손을 대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장사를 해?”은아의 진지한 표정을 본 하현은 차마 그녀를 실망시키지 못하고 싸늘한 표정으로 이덕재를 쳐다보았다. 하현의 옷이 찌질한 것을 보고 이덕재는 하하하 큰 소리로 웃었다. “설은아, 네 남편 안되겠다. 내가 이 기둥서방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거야? 너는 그가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어쨌든 너는 미인이잖아. 이런 폐물과 뭘 할 수 있겠어? 나는 네가 나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 아니면 네 예쁜 얼굴이 아깝잖아.”이번에는 이덕재가 입만 열었을 뿐 아니라 옹졸한 얼굴로 다가와 은아의
이덕재는 땅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허둥지둥 대며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다이얼을 눌렀다. “파리 형님, 저예요. 이씨요!”“제가 산책로에서 노점상한테 맞았어요!”“여기 형님네 구역이잖아요. 반드시 저 대신 바르게 처리 좀 해주세요!”파리 형님이라는 호칭을 듣자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안색이 변했다. 잠시 후 어떤 사람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 어르신, 당신이 말한 파리 형님이라는 분이 설마 산책로 관리인은 아니겠죠?”“네가 좀 볼 줄 아는 구나. 그 파리 형님이야!”“파리 형님은 길바닥 보스 중의 한 분이라 이 산책로 일대는 모두 그가 관할하고 있어!”“그 분이 바로 우리 큰 형님이야!”이덕재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안색이 급변했다. 특히 일부 노점상들은 지금 안색이 극도로 안 좋아졌다. 그러자 몇몇 친절한 노점상들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아가씨, 빨리 가요!”“이 파리 형님은 간단하지가 않아요! 여기서 노점상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보호비를 내야 해요!”“만약 내지 않으면 노점을 부수고 심하게는 때리기도 해요!”“게다가 그 파리 형님은 아주 여자들을 좋아해서 노점상의 아가씨들이 그에게 많이 당했어요!”“그리고 이 작은 형님도 손해는 절대 보지 않으니 빨리 가세요. 물건도 바라지 말고요!”“안 그랬다가 파리 형님이 오면 당신들은 가지도 못할 거예요!”분명 구경꾼 중에는 좋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의 말이 비록 조금 과장되었다고 해도 문제는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밑바닥 생활에도 밑바닥의 울타리가 있다. 포장마차가 있는 산책로에 보호비를 받는 큰 보스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방금 다들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 다들 은아같이 예쁜 아가씨가 파리 형 같은 사람한테 짓밟힐 걸 생각하니 참아 볼 수가 없었다. 이때 이덕재가 냉소하며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가? 이럴
30분 후, 하현의 일행과 양호남의 일행이 양 씨 가문 장원의 대청에 모였다.양 씨 가문 장원은 산과 물을 따라 지어져 있었으며 남양 지역 특색의 건축 양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대하의 강남 스타일과 북유럽의 건축양식이 잘 어우러져 건축가의 웅장한 이상과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지금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은 이미 위태로워져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대청홀은 200평방미터 가까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는 귀한 침향목 의자가 놓여 있었다.양옆에는 황화목으로 만든 의자가 늘어져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하현 일행이 자리를 잡자마자 뒤쪽에서 일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대여섯 명의 남녀가 백발이 성성한 노부인을 둘러싸고 걸어 나왔다.이 노부인은 몸집이 약간 작고 등이 구부러져 있었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전체적으로 매우 야윈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꼿꼿하게 날이 서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외부인인 하현에게 떨어졌다.마치 예리한 침으로 정곡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이라 하현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었다.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은 양 씨 가문 안주인이자 양제명의 아내였다.곧이어 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자손들이 나타났다.그들은 모두 구석에 서서 기웃거렸다.다만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바라볼 때는 눈에서 혐오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 몇 명은 양유훤이 머리가 나쁘거나 안목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입을 삐죽거렸다.하현처럼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을 데려오다니!그녀들은 양 씨 가문은 절대 양유훤이 데려온 저 남자를 데릴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들의 고귀한 가풍이 더럽혀지면 안 될 일이다!“할머니!”양호남, 양신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노부인은 이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의자에 가서 앉았다.그런 다음
하현은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성격상 이런 굴욕적인 요구를 들어줄 리 없었다.양유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은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날 위협하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양호남 일행에게 차가운 눈빛을 떨어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만약 자신이 떠났더라면 양유훤 혼자 저들에게 마음대로 휘둘렸을지도 모른다.하현의 눈빛을 본 양호남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뭘 봐? 우리 집안의 손해가 이렇게 막대한데 대가를 치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연한 거야!”“양호남의 수법이 다소 과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잘못은 양유훤이 한 거야!”염소 수염을 한 양 씨 가문 어른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우리 양 씨 가문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아!”“어렵게 페낭 무맹과의 협력을 이뤄냈는데 양유훤 때문에 망치게 생겼어!”“난 방금 전까지도 양유훤을 살짝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어!”“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남자는 거리낌 없이 사람을 때렸어!”“이런 남자를 선택하다니 앞으로 양유훤이 어떻게 되겠어?”“아주 개념 없는 연놈들이야!”“우리는 어서 양유훤을 양 씨 가문에서 출가시켜 다시는 우리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못하게 해야 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양유훤은 눈살을 찌푸렸다.자신 때문에 페낭 무맹의 납품권이 사라지게 된 것에는 부인하지 않았다.하지만 여수혁에게 시집가라고 강요하고 양제명을 독살하려 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양호남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수백억의 납품권을 위해서.”“집안사람을 강제로 시집보내고.”“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까지 독살하려 했어.”“양 씨 가문은 정말 단결력이 강하고 우애도 깊군.”“뭐라고!”양호남의 안색이 살짝 변하며 흠칫했다.“할아버지를 독살하려 했다니?!”“우린 사람을 보내 할아버지를 돌보게 했을 뿐이
양유훤을 다독인 후 하현은 양호남에게 냉담한 시선을 떨어뜨렸다.이제야 하현은 양유훤이 왜 자신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집안사람들의 천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라도 하현이 위험에 빠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개자식! 어디서 튀어나온 망나니 같은 놈이 감히 우릴 때려?”이때 양신이가 정신을 차리며 얼굴을 가린 채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입을 열었다.“죽여버릴 거야!”“당신 같은 연놈들은 칠흑 같은 감옥에 갇혀 평생을 고통스럽게 썩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구!”“아하, 당신이 양유훤이 말한 그 남자 맞지?”양호남도 역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감싸쥐고 일어나 이를 갈며 울부짖었다.“이 개자식아! 여자는 수치도 모르고 남자는 제멋대로구만! 짐승만도 못한 것들!”양호남은 하현을 죽이기 위해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하현의 행동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잘 알고 있어서 그저 하현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됐어! 이 개 같은 연놈들한테 쓸데없는 소리 해 봐야 소용없어. 관청에 보고하고 그들을 끌어내면 돼!”머리를 풀어헤친 양신이도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내가 저 연놈들을 가만히 두면 성을 갈겠어!”“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하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손을 뻗어 양유훤의 몸에 몇 개의 혈을 짚으며 그녀의 상처와 통증을 완화시킨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양유훤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녀는 원래 하현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이 이미 이곳에 나타났으니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어젯밤에 양유훤이 당신 같은 뻔뻔한 남자를 위해 여수혁을 다치게 했어!”“오늘 아침, 여수혁의 아버지이자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신 여영창 어르신이 우리 양 씨 가문을 찾
”개자식!”자신의 여동생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것을 본 양호남은 욕설을 퍼부으며 반사적으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매서운 표정으로 양호남의 목을 조른 뒤 그의 머리를 눌러 가장자리에 있던 대리석 테이블 위에 찧어 버렸다.양호남은 저절로 절을 하는 꼴이 되었고 ‘퍽'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의 찻잔이 그대로 으스러졌다.양호남의 머리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하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양호남을 발로 차 내동댕이쳐서 날려버렸다.한쪽에 서 있던 양 씨 가족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때 그중 한 명이 의자를 들쳐업고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손바닥을 날려 그를 내동댕이쳤고 뒤이어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손바닥을 날려 쓰러뜨렸다.이 모든 것이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사람들과 그들의 경호원들이 얼굴이 붓고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어이, 젊은이, 당신이 어떤 경력이 있든 어떤 묘수가 있든 간에!”“이곳은 양 씨 가문 땅이야!”“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이라구!”“개나 소나 다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구!”전통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셋째 집안 어른이 나서서 의젓한 표정으로 하현을 호통쳤다.“우리 사람을 때리고 다치게 하다니! 도대체 당신 눈엔 법도 뭣도 안 보이는 거야?”“이 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당신...”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셋째 집안 어른의 잔소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손바닥을 휘갈겼다.“양호남 무리들이 손찌검을 할 때는 왜 제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는 법 운운하시겠다?”“지금 뛰쳐나와서 그런 얘기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의 말에 이번에는 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양호남은 뻔뻔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안사람들을 혼내려 했을 뿐, 그 방법이 좀 과격하다고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