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대감이 역정을 냈다.“그간 정말 헛 키웠구나. 내가 자기한테 뭣을 못 해줬다고 저리 불효를 저지르는지…”“대감, 모르시겠어요? 제가 이 댁에 들어오던 순간부터 큰 마님께서 저를 무시하셨습니다. 아이도 본 게 있으니…”양 대감의 얼굴이 점점 굳었다. “어제 분명 진국공부에 대해 의논하기로 약조했거늘! 말도 없이 안 오는 게 무슨 경우더냐? 이젠 이혼한 시누와 연합하여 자기를 키워진 아비를 배반하는구나.”“아닙니다. 계모이니 위신이 안 설 수밖에요.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인정받아봤자 그 아이에겐 친모를 대신할 수 없는 거겠지요. 저 때문에 대감까지 원망하는 것 같습니다.”여씨는 부녀의 사이를 파고들어 끊임없이 흔들었다.“얼마나 대단한지 내 한번 지켜보겠다.”양 대감은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갔다. 여씨는 그를 달래려는 듯 뒤를 따라갔다.구경거리를 보기 위해 백성들이 대문 앞으로 모여들었다.여씨는 자기에 관한 비방글을 보고 표정을 관리할 수 없었다. 양 대감은 양자옥이 친정댁과 절연하겠다는 글을 보고 기가 막힌 듯 말했다.“이게 뭣이냐?”양 대감이 호통을 치자, 맨 앞에 있던 하인이 무릎을 꿇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감… 쇤… 쇤네…”“소관이 대감께 설명하지요.”내관이 태연하게 말했다.“뉘신지요?”높은 관직에 있지 않았던 양 대감은 대비의 최측근을 알지 못했다. “대비마마를 곁에서 모시는 내관입니다. 금일 대비마마의 자지를 전하기 위해 진국공부에 갔다가 이 댁 하인들이 장군 부인과 안국총관을 무시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지요. 대감께서 믿지 않으실까 봐, 소인이 이리 증언하러 왔습니다.”성질을 내려던 양 대감은 내관의 말에 기가 죽었다.“알아보지 못한 것을 사죄드립니다. 소관이…”“예를 갖추지 않아도 됩니다. 소인은 그저 대비마마의 뜻을 전할 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여씨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나으리께서 말씀하신 안국충관이…”내관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대비마마께서 진국
여씨는 하인들을 당장 죽여버리고 싶었다.“너희가 고생 많구나. 일도 제대로 못 한 주제에, 이젠 내가 직접 사죄까지 해야 하는구나.”여씨의 싸늘한 미소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등골이 서늘하게 했다.여씨의 잔인한 수법을 알고 있던 하인들은 최악의 사태까지 염두에 뒀다. “낯 뜨겁게 하지 말고 당장 그 나무판부터 내리거라.”한편, 태후의 내관이 진국공부가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왕의 교지를 전달하기 위해 또 다른 내관이 진국공부를 찾아왔다.“장군 부인과 안국총관을 뵙습니다.”대비의 책봉은 금세 궁 안에 널리 퍼졌다.“오 내관, 오셨군요.”양자옥이 황급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어명을 알리러 왔습니다. 강씨 모녀는 소인과 함께 가셔야겠습니다.”오 내관이 정중히 말했다.최안여의 도움으로 주상전하까지 알현한 강씨는 꿈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강씨 모녀를 괴롭히던 시모와 전장에서 돌아온 서방은 두 사람을 삶 속에서 도려내고 다른 여인과 새 가정을 차리려 했다.“잘됐소. 비열하고 악랄한 남자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직접 겪게 하시오.”양자옥은 강씨에게 말했다.오 공공은 말없이 미소를 지은 뒤, 강씨 모녀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걱정 마시오. 부인은 잘못한 게 없으니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가슴을 펴시오.”최안여의 말에 강씨 모녀는 무릎을 꿇어 인사를 올린 뒤, 오 내관을 따라갔다.주상은 아랫사람을 시켜 강씨의 남편이 안남후 휘하의 병사인 것과 그가 전장에서 어떤 공도 세우지 못한 평범한 병사인 것, 운 좋게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아 돌아온 뒤, 지아비를 잃은 오랜 친구부터 찾아간 것, 열 살 된 딸아이까지 외면한 사실까지 파악하게 했다. 백성의 자질구레한 일에 주상께서 직접 나서는 것은 과한 처사였다.하지만 강씨 부인의 일에 최안여와 왕세자 그리고 대비전까지 엵혀 있었기에 더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강씨 부인의 남편은 병부에서 제적당한 뒤, 형으로 곤장이 내려졌다. 그리고 강씨 부인의 남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여인은
그가 제일 걱정하는 것은 정성껏 준비한 혼례에 참석할 사람이 많지 않은 거였다.“최안여가 궁에 가던 중에 우연히 그 부인을 구했다고 하더군.”양씨의 말에 노부인이 웃음을 터트렸다.“걔와 엮여봤자 좋은 일이 없다. 합방을 하기 전에 전쟁하러 변경에서 가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안남후도 진국공 부자처럼 관에 누워 돌아왔을 거다. 주위 사람들을 전부 죽일 운명이지.”최안여는 어떤 혼수도 남기지 않았을뿐더러 그동안 썼던 모든 비용을 청구하고 노부인의 귀한 약재로 끊어버렸다. 노부인은 최안여가 죽길 바라며 저주를 남발했다.양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결국 이것도 인연입니다. 어머님, 지음이도 곧 우리 집에 들어올 것이고, 뱃속엔 우리 핏줄이 자라고 있어요. 어머님 건강도 두 해 전보다 많이 좋아지셨잖아요. 한 지붕 아래에 4대가 살고 있는 것만으로 얼마나 좋은 일인데요.”노부인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소중한 줄 모르고 자기 발로 나간 아이다. 부모 형제까지 없는 아녀자가 얼마나 잘 살아갈지 내 한번 두고 보겠다.”“대비마마께서 그 아이를 안국총관에 봉한 것은 그저 보여주기 위함이다. 양녀로 들인 것도 아니고, 친인척 관계도 없이, 왕실 명단에 오르지도 못한 총관이 무슨 위세를 떨칠 수 있겠느냐? 영공 저하 작위도 곧 몰수될 거다.”소량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현재 위치에 비추어 볼때, 남들처럼 행복할 자격이 충분했다. 하지만 최안여는 고고한 자세로 그를 무시했고, 그 역시 최안여에게 불만이 많았다.‘안국총관?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한편, 진국공부.강씨 모녀는 친정댁으로 돌아가기 전에 부형까지 데려와 최안여와 양자옥에게 고마움을 전했다.“총관께서 구해주지 않았다면 제 여식을 다시는 보지 못했을 겁니다. 어리석은 결정으로 여식을 잃을 뻔했습니다.”강씨 부인의 부친은 농사일을 하는 농부였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다.“나뿐만이 아니오. 여러분이 이리 빨리 여기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
“대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더냐?”최안여는 무덤덤하게 물었다.단청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웃는 얼굴로 물건을 가득 들고 왔습니다.”최안여는 양자옥의 표정부터 살폈다.“올케에게 사과하러 온 것이니, 올케가 처리해요.”잠시 고민하던 양자옥은 단청에게 말했다.“물건 챙겨서 가라고 하거라. 양씨 가문과 연을 끊었으니, 가식은 그만 떨라고 하거라.”최안여가 한마디 했다.“먼저 사죄하게 하고 쫓아내도 안 늦습니다.”“깜빡할 뻔했네요.”자리에서 일어나 대문으로 가던 양자옥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제가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요?”양씨 가문 사람들에게 아무 감정이 없었지만, 진국공부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으려면 잘 대응할 필요가 있다. 순종적인 태도가 습관됐던 그녀는 혼자 대응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자기 딸을 우리 오라버니와 혼인시키려고 했던 때를 떠올려보세요. 그러면 랑이도 없었겠지요.”“맞아요, 그 여자는…”양자옥은 이를 꽉 깨물었다.“올케의 집에 첩으로 들어가 부모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한 이간질들을 떠올려봐요.”최안여의 자극에 양자옥은 마음속 깊이 묻어뒀던 원한을 깨웠다.“부친께서 올케를 한 번이라도 믿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최안여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부녀의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부친의 앞에서 하는 게 의미 있는 것 같네요. 그러니 지금은 말하지 마세요.”여씨는 하인들을 데리고 대문 앞에서 기다렸다. 문 앞에 있던 시위에게 억지 미소를 계속 지으려니, 슬슬 버거워졌다.바로 그때 대문이 열렸다. “총…”최안여가 나올 줄 알았던 여씨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꼴도 보기 싫었던 양자옥이었다.“부인, 죄를 묻기 위해 온 것은 아니겠지요? 혹 우리 진국공부를 쳐들어올 생각으로 저 많은 하인들을 데리고 온 것이오?”양자옥은 걱정했던 것과 달리 침착하게 대응했다.여씨는 멍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하인의 말이 진짜인 것
여씨는 속으로 생각했다. ‘누군 네 어미가 되고 싶은 줄 아느냐? 넌 그 여자 따라 죽어야 했어.’“누가 뭐래도 난 계모이고 어릴 때부터 내 손으로 키웠다. 아랫것들 때문에 이런 불효를 저질러? 사죄하러 오라고 해서 내 이리 오지 않았느냐? 한데 왜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냐?” 여씨는 양 대감만 넘어갈 수 있는 수법을 양자옥에게 시전했다.“첩으로 들어온 여자에게 어찌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단 말이오? 그러면서 나를 키워? 모친께서 받은 지참금을 빼앗고 내겐 아껴먹고 아껴 쓰라 하면서 정작 친딸에겐 얼마나 관대했소?”예전이었다면 진국공 부자가 있었기에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많은 것이 달라진 지금, 그녀가 아들과 시누를 지켜야 했다. 아무에게도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여씨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양자옥의 모습에 당황하여 울먹였다.“네가 한 말이 무슨 뜻인 줄 아느냐? 큰 마님의 지참금은 대감께서 가져가셨다. 네가 먹고 쓰는 것도 대감의 뜻이다. 절약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 너를 위해 한 일이다.”“네가 안하무인으로 굴었으면 진국공부에 시집올 수 있었겠니? 그리고 네가 혼인하자마자 네 모친의 지참금은 네게 주지 않았더냐?”양자옥이 싸늘하게 웃었다.“우리의 혼사는 내 모친과 이 댁 마님께서 오래전 약조했던 것이오! 지참금 또한 서방님께서 받아온 것이지, 돌려준 것이 아니지 않소.”“친정이라는 명분으로 진국공부의 재산을 알아보고 진국공부에 들어올 생각을 하면서 시누를 데려왔다며 질책한 것도 모자라 내 아들로 겁박하지 않았소? 이게 계략이 아니면 뭣이란 말이오? 시누가 안국총관에 봉해지지 않았으면 이리 사죄하러 왔겠소?”여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때마침, 최안여도 밖으로 나왔다.“올케, 진정하세요. 올케의 신분으로 저런 자를 내쫓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니 괜한 기운 낭비하지 마세요.”“총관, 저희는 진심으로 사죄하러 왔습니다.”최안여는 헛웃음을 터트렸다.“내가 귀싸대기를 날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아시
양자옥은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간 발생했던 일들은 그녀의 신심을 지치게 했다. 친정에선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고, 그것 때문에 죽을 각오까지 했다.“아버님과 서방님께선 높은 자리에 계시면서도 남을 무시하고 권력을 남용하지는 않고 조정 대신들과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셨죠. 하온데, 그런 분들이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저러는 거죠?”양자옥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최안여는 간단한 예로 그녀에게 설명했다. “올케의 친모께서 살아생전 여씨에게 무슨 잘못을 했기에 부친을 빼앗고 올케가 잘살지 못하도록 괴롭힌 겁니까?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겁니다.”최안여가 계속 말했다.“인간이 아닌 자들을 사람의 기준을 적용하면 안 됩니다. 아직 대하는 그런 자들을 용인하고 있고 무조건 인과응보가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잖아요.”양자옥의 혼란스러운 표정에 최안여가 말했다.“용상에 앉아계신 분께서도 그런 분이잖아요. 가장 적은 벌을 내려 자신은 책임을 다했다 여기시는 분이잖아요.”요즘 들어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는 최안여 때문에 양자옥은 깜짝깜짝 놀란다.“그런 건 속으로만 생각하세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들어요.”양자옥이 목소리를 낮춰 주의 줬다. 최안여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한편, 밖으로 쫓겨난 여씨는 분에 못 이겨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가자! 돌아가서 대감께 양자옥이 친정댁을 무시하고 절연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알려야겠구나.”“마님, 이들은 어찌할까요?”하인은 묶여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호국장군 부인과 안국총관께 죄를 지어 양씨 가문에 누를 끼쳤다. 쓸모없는 것들이니 팔아버려라. 고생할 만한 곳으로 보내거라.”여씨는 매정하게 등을 돌렸다.여씨는 집으로 돌아가 사실을 과장하여 양 대감께 알렸다.다음 날, 양 대감은 양자옥의 불효와 불경, 인연을 끊으려 하는 것을 상소에 적어 올렸다.하지만, 어사는 양 대감이 가장의 역할을 소홀히 한 점,
원하는 대답에 임지원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처남이 와주면 우리도 안심이네. 장인어른 건강은 어떻소?”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진 온겨례는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두 차례 발병 시, 운 좋게 의선에게 병을 보였소. 안 그랬으면 상상할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됐을걸요.”“얼굴 한번 보기 힘든 존재라 들었소. 심지어 대비마마께서도 의선을 수년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지. 그런 분께서 장인어른을 치료해 주다니, 인복을 타고나셨소.”임지원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의선께서 직접 오신 게 아니라 의선께서 만든 약을 누군가 전달해 준 것이오. 그 정도로 충분히 놀라운 효과를 봤소. 1년 전에 완치되신 후로 다시는 발병하지 않았소.” 온겨례가 말을 바로 잡았다. 그럼에도 그의 눈에 비친 자긍심을 숨길 수 없었다.“장인어른께서 비록 요즘은 자주 조정에 나서지 않지만, 따르는 제자가 많고 영향력 또한 크잖소. 진국공께서 살아 있을 땐 장인어른과 가까이하지 않고 처남과도 거리를 뒀잖소.”“진국공처럼 전공을 많이 세운 장군께서 부친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야말로 두 가문에 좋은 일은 아니지. 이미 돌아가신 분 얘기는 그만 꺼내는 게 좋겠소.”평온하게 가라앉았던 마음이 다시 심란해졌다. 사실 온겨례는 임지원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자기 누이가 임지원과 혼인하겠다고 막무가내로 우기지 않았으면, 당연히 혼사를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한편, 최안여와 양자옥은 복장을 정갈히 하고 예를 갖춰 대비에게 인사 올렸다.“대비마마의 하늘과도 같은 은혜에 신녀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대비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일으켜 세웠다.“어제 일은 나도 전해 들었소. 자지가 큰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구려.”“미천한 신녀의 가문이 대비마마께 누를 끼친 것 같아 송구할 따름이옵니다.”양자옥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네의 잘못이 아니니 자책말게.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하면서 만족을 못하는 인간들이 간혹 존재하지 않소? 오르지도 못할 나무를 쳐다본 그들의 죄가 크
왕대비는 그녀의 영민함을 아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많은 이치를 깨우친 최안여를 좋게 봤다. “시름 놓고 총관에게 맡기겠소. 다만 보는 눈도 많은데, 세자 때문에 계속 궁으로 부를 순 없을 것 같소. 세자께는 시내에 있는 주점에서 기다리라고 일러뒀으니, 앞으로 어떤 식으로 진료할 것인지 토의해 보게.” 대비는 안국총관이라는 지위로 손자의 건강을 바꾸는 게 전혀 아깝지 않았다.“소인, 왕비마마를 뵙사옵니다.”“일어나시오.”왕비는 자신에게 인사를 올리는 게 최안여가 아닌 것을 알아차렸다. “황공하옵니다.”“왜 혼자 있는 것이오?”최안여와 대비가 보이지 않자, 왕비는 의아한 듯 물었다.양자옥이 공손하게 답했다.“대비마마께서 신녀더러 왕비마마를 맞이하라고 하셨사옵니다.”“궁녀들이 하는 일을 장군 부인께 하게 했구려. 내 사죄하오. 안국총관이 이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대비마마께서 직접 위로해주시려나 보오. 물론 진국공의 두 장군께서도 전사하였으나 명예는 지키지 않으셨소? 지아비에게 배신당한 총관보단 낫지 않소?”왕비의 말에 양자옥은 가슴이 싸늘해졌다.왕비의 신분만 아니었어도, 당장 욕부터 했을 것이다. “왕비, 오셨구려.”왕대비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안국총관과 장군 부인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리 왔사옵니다. 신첩이 임씨 가문의 낭자를 칭찬한 것 때문에 총관을 번거롭게 했잖습니까?”왕비의 말에 씨가 있었다.최안여는 답하는 대신, 예를 갖춰 인사를 하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대비는 무례한 왕비의 말에 기분이 언짢았다.“혹 임씨 가문의 낭자를 칭찬한 것을 여태 마음에 두고 있진 않겠지?”왕비는 미소를 지으며 캐물었고 대비는 왕비를 말리지 않았다. “마마, 농이 지나치십니다. 낭자께서 큰 공을 세운 것은 이 시대의 진정한 본보기이옵니다.”“하온데 왜 전하께서 혼례를 윤허하는 교지를 내리자마자, 이혼을 윤허한다는 교지를 내린 것이오? 백성들이 전하께서 변덕스러우시다고 여길까 염려되오.”왕비는 주상을 염려하는 것처럼
기럭 아범은 소량이 폭발 직전인 것을 알아차렸다.그는 혼례일인 것을 되새기며 애써 분노를 억눌렀다.“안내하게.”소량은 이를 악물고 한 마디 내뱉았다.기럭 아범은 얼른 걸음을 재촉했다. 오늘은 두 가문에게 몹시 중요한 날이다. 예정된 시간보다 늦을 시 책임을 묻는 것은 안남후부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쪽 길도 이미 다른 점포로 인해 여인들이 줄지어 있었다.이 점포도 최안여의 것으로, 여기선 옷감과 옷을 파는 점포였다. 역시나 반값에 팔고 있었다.억눌렀던 소량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계속 가거라.”소량이 서늘하게 명령했다.기럭 아범이 다급하게 말했다.“전부 여인들이오. 충돌한다면 누군가는 다칠 것이오. 혼삿날 피를 보는 것은 불길한 징조이니…”소량이 싸늘하게 말했다. “다른 길에는 최안여의 점포가 없을 것 같으냐?”소량은 최안여의 속셈을 알 것 같았다.기럭 아범은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편, 흥겹기만 하던 임씨 가문은 혼란스러워졌다.“시간이 다 되었거늘 왜 아직도 오지 않는 것이요?”온씨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임지원은 심기 불편한 얼굴로 서 있었다.“사람을 보내 알아보거라.”임지원은 수하를 보내 알아보게 했다.“어머님, 염려 마세요. 무슨 일이 생겨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습니다… 저랑 혼례 하겠다는 진심은 변함없을 겁니다.”다른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이기도 했으나, 사실은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기도 했다.온씨가 손에 쥔 손수건을 꽉 잡으며 임지원에게 말했다.“대감, 사람을 보내 알아보세요.”온 태사와 해씨 부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안남후부에서 여까지 얼마나 멀다고 이리 오래 걸리는 게냐? 아무 거리나 골라서 오면 될 것을, 좋아하는 것을 하나 택해서 오겠다느냐?”온 태사의 말에 뼈가 있었다.“외조부님, 안남후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길을 돌아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진국공부의 앞으로 돌아오느라 늦나 봅니다.”임지음도 마음이 초조했지만 어떻게든 소량을 옹호했다.
소량은 풍채가 좋은 말을 타고 안남후부에서 떠났다. 며칠 동안 아프다며 난리를 치던 노부인은 아무도 대꾸해 주지 않자 다시 기운을 차렸는지 그에게 당부했다.“안남후, 색시를 데리고 돌아올 때, 반드시 진국공부 앞으로 지나야 한다. 그 댁 여인에게 안남후부의 화려한 혼례를 보여줘야 한다. 몰락해 가는 진국공부에서 부군과 가족을 잃은 두 여인이 너의 혼례를 지켜볼 것이다.”소량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최안여에 대한 불만과 적대심이 갈수록 커졌기 때문이다. “조모님, 제가 그자들의 자존심을 짓밟겠습니다.”임지음이 소씨 가문에 들어오면, 소량도 온씨 가문의 외손서가 된다. 온 태사와 온 재신께서 과거의 일 때문에 그를 탐탁지 않아 했으나, 임지음을 봐서 소량에게 신경을 써줄 것이다.“가거라.”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하게 웃었다. 영친 행렬이 북을 울리며 흥겹게 나아갔지만, 길에는 백성들이 많지 않았다. 이 시각이면 임씨 가문으로 향하는 대로에는 백성들로 가득해야 했으나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세 가문의 일로 큰 소란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궁금해서라도 몰려들 것이다. 그러나 길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앞에서 가고 있던 기럭 아범도 이상함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안남후, 전방에 길이 막혔소.”“왜지?”안남후가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군악대의 북소리도 그쳤다. “백성들이 앞에 너무 몰려서 길을 내기 어렵소.”기럭 아범도 이런 일은 처음 겪는 듯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영친 행렬인데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단 말인가?”“인원이 워낙 많아…”기럭 아범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은자 좀 주고 길을 지켜달라 하게. 저들 때문에 시간 낭비할 수 없소.”소량이 한발 물러섰다.기럭 아범은 머뭇거리더니 그들에게 다가갔다.하지만 백성들이 워낙 많기도 했고 한 점포에 열정적으로 달려드는 바람에 제치기가 쉽지 않았다. “무슨 점포요?”소량은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기쁜 혼삿날, 혼례가 끝나면 최씨 가문에게 복수할 수 있을 것
소설령은 오라버니의 말에 대꾸하며 임천과 자신의 미래를 상상했다.소씨 가문에서 의도적으로 몸을 사리는 바람에, 사흘 동안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어느덧 시간이 유수처럼 흘러 혼례 당일 되었다.소씨 가문과 임씨 가문은 혼례 준비로 북적였다. 소량에 대한 소문이 어떻든 간에, 그가 이끌었던 병사들은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했다. 조정의 일부 대신들도 온씨 가문의 눈치를 보며 참석했다.임씨 가문에는 온겨례뿐만 아니라, 기분에 따라 조정에 나가는 온 태사도 참석했다.재신과 태사께서 여식의 혼례에 참석해 주자, 임지원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비록 딸의 명성을 잃긴 했으나, 시댁에서 체면을 차리긴 좋았다.“장인어른, 처남, 안으로 드시지요. 지음이가 두 분이 오신 걸 알게 되면 엉엉 울지도 모릅니다.”“좋은 날 울면 안 되지, 우리 이만 갈까요?”온겨례가 진지한 얼굴로 묻자 임지원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온씨가 거들었다.“오라버니, 좋은 날 농이 지나치십니다. 조카가 숙부 얼굴도 못 보고 시집가게 할 거예요?”끔찍이 아끼는 누이가 이리 부탁을 하니 그도 어쩔 수 없었다.“농이다. 부모님 두 분 다 오셨으니, 오늘은 내 말에 힘이 없겠구나.”온 태사의 부인. 해씨가 온겨례를 살짝 쳤다.“아드님 농 때문에 아범이 긴장했잖소.”임지원은 간신히 긴장을 풀었다.“어머님, 처남 농을 듣는 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간만에 하는 농인데, 그냥 봐주세요.”온 태사는 진중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자네 사위가 안남후가 됐다지? 평소엔 자네가 위엄이 있게 행동하게. 우리 가문의 외손녀를 데려간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아야 하네. 어쨌든 이혼한 남자잖소.”해씨는 두 사람이 얘기를 하는 틈을 타, 자기 딸에게 말했다. “남자끼리 얘기 나누라 하고 우린 지음이한테 가자꾸나.”온씨는 그녀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해씨의 뒤에는 온씨 가문의 서녀(庶女), 온여상이 있었다.“어머님, 올케랑 두 조카들은 왜 안 보입니까?”온씨가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늘 점잖고 우아하던 양씨의 기품은 온데간데없었다. 두 모녀는 비틀거리며 집으로 향했다.제 발로 찾아와 분풀이 상대가 되어준 두 사람 덕분에 최안여는 기분이 한결 좋았다.그녀는 육경침이 전해준 취선각의 찬들을 꺼내며 최랑을 불렀다.요 며칠 말을 잘 들었기에 주는 상이라고 했다.양자옥은 매번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최안여가 자기를 지켜주는 것 같아 미안했다. ‘다른 가문은 몰라도 우리 가문만큼은 내가 처리해야 해. 다음엔 절대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한편, 양씨와 소설령은 집에 가자마자 소량에게 알렸다.“왜 찾아갔습니까?”바로 최안여부터 비난할 줄 알았던 소량이 의외의 질문을 했다.“노부인의 설연을 구하기 위해 약포에 많은 사람을 보냈으나 안남후부라는 연유로 거절했소. 아무도 우리에게 팔지 않겠다고 하더군.”양씨는 전처럼 자애롭고 온순한 모습으로 돌아왔다.“소자가 방벚을 찾아보겠습니다. 혼인 전까지 다시는 최안여에게 시비 걸지 마세요.”혼례 준비로 바빴던 그는 요 며칠 조정에도 나지 않았다. 온씨 가문이 아직 그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온겨례는 두 사람의 혼례에 참석하겠다고 말은 했으나, 그것은 온전히 조카 임지음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함이었다.전에는 최안여가 있었기에 설연을 언제든지 노부인에게 줄 수 있었지만, 최안여가 없는 지금 안남후부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노부인의 약을 끊을 순 없었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단 며칠 사이에 소량은 명예를 잃고, 처가의 압박과 가족들의 난동, 조모의 끊임없는 요구로 소량은 이미 지쳤다.이것들을 처리하는 것이 전장에서 싸우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하지만 최안여 없이 자기 혼자 처리 못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 어미는 안남후가 최근 매우 지쳐있는 것을 아오. 아드님이 고집을 지나치게 부린 탓도 있소. 이 세상은 남자에게 관대하기에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새로운가 이야깃거리생길 것이고 우리도 자연스레 묻힐 것이오.”양씨가 소량을 위안했다.“어머님의 말씀,
“마님은 항상 온화하고 무해한 얼굴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 척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네요. 덕분에 사람들은 저를 독하고 계산적인 사람으로 여기니, 소씨 가문의 명성은 회복하겠네요.”“이건 지혜롭지 못한 수단입니다. 안남후의 모친께서 자기보다 어린 여인를 이겨보겠다고 수작 부리는 게 그리 현명해 보이지는 않습니다.”양씨의 속내를 꿰뚫는 최안여 때문에 양씨는 공든탑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시모에게 못하는 말이 없구나! 우리 어머님은 너보다 연장자다!”소설령은 촌수로 최안여를 압박하려 했다.“우리 집에서 먹고 잔 주제에 무슨 염치도 없니? 감히 우리 어머님을 모욕해?”소설령은 자기가 내세운 이유가 매우 타당하다고 여겼다.최안여는 이미 예상을 한 듯 비릿하게 웃었다.“소씨 가문 사람들도 우리 아버님과 오라버니를 욕보였잖아? 난 그저 모두 앞에서 진실을 말했을 뿐이다. 소씨 가문 사람 중에 우리 집안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더냐? 누구 덕에 그간 평탄한 삶을 영위했는데, 안남후는 아버님과 오라버니의 죽음으로 전공을 세우고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날 배반했다.” “내 비록 짐승만도 못한 너희를 상대하고 있다만, 내게 소총이 있었다면 당장 너희부터 쏴 죽였을 거다. 안남후와 이혼한 순간부터 소씨 가문과 인연도 끝났다. 설연은 고사하고 멸문하는 소씨 가문을 구할 수 있는 게 나밖에 없다 해도, 단호하게 거절할 것이다.”“맞습니다!”“우린 총관을 지지합니다!”소설령이 이를 꽉 물었다.“우리 가문의 생사가 네 손에 달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니 꿈 깨거라.”최안여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썩 꺼지지 않겠느냐? 설연을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냐? 사돈댁이 설연도 못 구할 정도로 가난하더냐? 임씨 가문 첫째 아드님과 혼인하기 위해 계속 임지음의 비위를 맞출 건지 제대로 고민해보거라.” 몸을 부들부들 떠는 소설령을 양씨가 황급히 진정시켰다. “얘야, 그만두어라… 안국총관께 무례를 범하면 안 된다.”최안여는 양씨에게 한마디 했다.“마
최안여의 직설적인 질문에 소설령은 듣기 불쾌했다.“안국총관까지 된 사람이 언행을 조심하는 게 어떠시오?”양씨는 소설령를 핑계 삼아 다시 연기를 했다.“설령아, 싸우지 말거라. 우린 그럴 자격이 없다. 우리 집안이 잘못한 것은 사실이잖니? 만일 약포에서 안남후부에 설연만 팔아준다면, 총관이 약포에 팔라는 명령만 내리면 너희 조모님은 연명할 수 있다. 어떤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참아야만 하느니라.”양자옥은 양씨의 의도를 완전히 파악했다. 그래서 최안여를 자기 뒤에 숨긴 뒤 양씨에게 맞섰다.“이보게, 자네는 어찌 그리 뻔뻔하시오? 우리 시누는 자기 혼수로 안남후부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했을 뿐, 약포에서 약을 안남후부에 공급하지 않는 것은 점포 주인이 안남후부와 거래하고 싶지 않았던 거요. 왜 우리 시누에게 뭐라 하시오?”양씨는 그 말에 눈물을 몇 방울 떨어뜨리며 말했다.“장군 부인의 질책에 반박할 수 없소. 소씨 가문이 잘못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오.”순순히 인정하는 양씨 때문에 양자옥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최안여는 양씨 같은 사람들이 제일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다.“소씨 가문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부인의 병을 돌봤습니다. 그때부터 노부인께서 자기 며느리는 한 번도 자기를 간호한 적 없다며, 입으로만 걱정한다며 한탄했습니다.”“그런데 이제 와서 걱정하는 척하는 것은 안남후의 혼사일 전에 상을 먼저 치를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겁니까? 뱃속의 아이도 신분 없는 아이로 태어날까 두려운 겁니까?”자신의 속내를 정확히 꿰뚫는 최안여 때문에 살짝 당황했다.“난… 사실대로 말하마. 노부인의 병이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상적인 생활에 영황을 끼쳐,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한다.”“좋은 날 노부인께서 혼자 고통을 호소하며 괴로워할까 봐 그러시는 겁니까?”양씨의 말문이 다시 막혔다.“아니다…”“마님, 노부인께서 다리가 불편하여 처음엔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제가 밤새 다리를 주무르며 찜질을 한 것입니다.
최안여는 대문 앞으로 걸어가 양자옥 곁에 나란히 섰다.양씨는 최안여를 발견하고 매우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나를 얼마나 원망하고 있는지 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안남후 잘못이 크다. 하지만 노부인께서 연세가 많으시고, 너도 알다시피 얼마 전에 병이 호전되었잖니? 어르신께서 병 치료 제대로 못 받으면 너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겠니?”양씨는 소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을 낮추며 명백한 잘못을 한 소량도 비판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최안여에게 통하지 않았다. “마님 말씀이 옳습니다. 궁에 들어가 전하께 이혼하겠다고 청한 것도 노부인께서 용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단호하게 불만이 있으면 궁에 들어 전하를 찾으라는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기세등등하시던 분이 어찌 편찮으실 수 있겠어요?”양씨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 했다.“안남후에게 화나 난 것을 알고 있다. 그날 노부인께서 말을 심하게 한 것 때문에 네가 화가 난 것을 알고 있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땐 너도 진국공 부자의 상을 치르느라 바빴고 우리도 네게 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안남후에게 솔직히 말하고 상의해 보라 전했거늘…”양씨는 자기 아들에게 속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결국 내 말을 듣지 않았고 임씨 가문에 명확한 뜻을 밝히겠다는 안남후를 말리지 못해 네게 상처를 줬다. 내가 대신 미안하다. 교지가 내려온 마당에 우리가 뭣을 할 수 있겠니? 안남후에게 화가 났으나 전하를 찾아가 명을 거둬달라고 할 순 없잖니?”“네가 이리 열성적인 줄은 몰랐다. 우리에게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곧장 집을 나갈 줄이야. 그 뒤에 발생한 일은 우리의 예상을 초월했다…”최안여는 말 없이 양씨의 말을 들었다.양씨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현혹할지 보고 싶었다.최안여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양씨는 자신감을 가졌다.“왜 모든 약포에서 설연 공급을 중지한 것이니? 그러면 안 된다. 노부인께서 설연으로 연명하셨는데 모든 약포에서 네 허락 없인 안남후부에 절대 안 팔겠다고 하더구나. 노부인께서
허심은 약곡에게 속삭였다.“모든 물건을… 반값에… 사람들이 많겠지.”약곡은 최안여가 체면 때문에 억지로 화를 참는 성격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앞으로 여기서 만나지. 치료 시일은 그대 말에 따르겠소.”“시야가 훤하고 번잡한 시내를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네요. 사흘 후에 뵙겠습니다.” 사실 왕세자도 임지음의 혼삿날 어떤 소동이 일어날지 궁금했다.“의관의 말에 따르지.”“총관께서 집안 걱정을 하는 것 같아, 본 왕이 찬거리를 미리 준비하게 했으니 영공 저하와 장군 부인께 가져다주시오.”자리에서 일어난 그녀에게 왕세자가 한마디 더 했다.단청과 단주는 서로의 눈만 바라보았다. 취선각의 음식은 외부로 판매되지 않을뿐더러 절대 밖으로 들고 나갈 수 없었다.“저하, 감사하옵니다.”“독 안 들었으니 염려 말고 드시게. 필경 본 왕은 총관의 뛰어난 의술이 필요하지 않소?”“저하를 의심하지 않았사옵니다.”그는 한마디 덧붙였다.“안남후의 노부인께서 몸이 안 좋아졌다고 하더군. 설연이라는 약재를 찾아다닌다고 들었소. 그 댁 부인이 진국공부로 갔을 것이오.”최안여가 흠칫 놀라 물었다.“진국공부를 찾아가면 누가 약재라도 준답니까?”“한때는 그 집안 며느리였으니, 그 댁 부인의 성정과 목적은 나보다 총관이 더 잘 알듯 싶네만.”육경침은 말을 아꼈다.최안여는 한시가 급했다. 소씨 가문이 지위를 들먹이며 진국공부를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것 같았다. 단청과 단주도 마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씩씩거렸다.“어찌 이리 뻔뻔하단 말입니까? 온 대하에 소문이 다 났을 텐데 무슨 염치로 거길 찾아간답니까?”“인간도 아닌 자들이니,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거겠지요.”단주는 그나마 이성적인 편이었다.소매까지 걷어 올린 단청은 당장에라도 진국공부로 뛰어가 싸울 기세였다.“생각할수록 화가 납니다. 진국공부에서 교양 있게 행동하란 가르침만 안 받았어도 그날 제가 가만 안 있었습니다. 제대로 혼내줬을 겁니다.”단청의 씩씩거리는 모습에 단주가 웃음을 터트렸
“간만에 오셨는데 이 늙은이랑 담소 좀 나누다 가세요.”“…네.”대비는 두 사람을 위해 마차 두 대를 준비해 줬다. 최안여는 육경침을 만나러 가야 했다.“올케, 먼저 돌아가세요. 다른 일 좀 보고 갈게요.”“네, 조심하세요.”사실 양자옥도 집에 혼자 두고 온 최랑이 걱정되던 참이었다. 아무도 없는 틈에 양씨 가문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면 하인들도 막지 못할 것이다. 최안여를 태운 마차는 대비가 말했던 주점, 취선각에 도착했다. 보기만 해도 기품이 넘치는 주점은 손님도 가려 받는 것 같았다. 거칠고 천박한 사람들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었다.육경침은 2층에서 여유로운 얼굴로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고 허심과 약곡이 긴장된 얼굴로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육경침은 그녀가 준 방서대로 약을 지어 먹은 뒤로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그것을 직접 목격한 두 사람은 한시라도 빨리 치료를 진행했으면 한다.“저하, 그간 강녕하셨사옵니까?”위층으로 올라온 최안여가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허심과 약곡은 최안여를 보자마자 내심 반가워하며 눈을 반짝였다. 두 사람의 수상한 눈빛에 단청과 단주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자기 주인을 보호했다.“송구합니다, 저희… 저희는 그런 의도가…”허심이 말을 더듬거리며 변명했다.“괜찮소. 궁에 들어 인사를 드리던 중에 이상한 분과 마주치는 바람에 시간을 지체하였습니다.”육경침은 팔꿈치를 자연스레 식탁에 올려놓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번이 두 사람의 세 번째 만남이다. 조용히 자리에 앉은 최안여는 진맥부터 했다.“오랜 투병으로 장기 손상이 심각하옵니다. 전에 드린 방서는 증상을 완화하나 저하의 병을 완전히 치료할 순 없습니다. 모든 증상을 종합해 보면, 저하께서 오랫동안 중독에 노출된 것으로 예상되옵니다.”“오늘도 방서와 해독약 두 알을 드리겠습니다. 지난번 저하께서 빌려주신 호심단은 한 알 더 보태어 총 두 알을 갚겠습니다.”단청은 옷소매에서 약병 두 개를 꺼내어 약곡에게 건넸다. 육경침이 천천히 입을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