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은은 약간 겁나기 시작했다. 비록 그녀의 아우성으로 나온 제안이기는 하지만 그녀 자신도 받아들이기 꺼려졌다. 그녀는 사무실의 다른 직원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들은 전부 눈을 피하기에 바빴다. 아무도 그녀가 실수로 만든 판에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난감한 상황에 한지은은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평소 성혜인의 뒷담화를 하던 사람들도 지금은 모르는 척 머리를 숙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성혜인을 이기지도 못할 거면서 바보같이 총대를 멘 자신 때문도 있었다.한지은은 손톱이 살에 박히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이건 불공평해요. 반승제 씨랑 그만큼 만났으면 좋아하는 스타일에 대해 이미 알고 있을 거 아니에요. 아무런 정보도 없는 우리가 무슨 수로 혜인 씨를 이기겠어요?”한지은은 완벽한 핑곗거리를 찾아냈다. 어쩔 수 없이 도박을 받아들였다가 진다고 해도 이 핑계를 사용할 수 있었다. 떳떳하지 못한 사람은 어디까지나 성혜인이지 그녀가 아니었다.성혜인은 천천히 머리를 들며 말했다.“도전할 용기가 없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해요. 핑곗거리를 찾는다고 해서 이미 사라진 체면이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니잖아요?”성혜인의 말투는 아주 덤덤했고 날카로운 목소리의 한지은과 선명한 대비를 이뤘다.말문이 막힌 한지은은 가만히 서서 속으로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이 년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 저격하는데! 반승제도 눈이 잘못된 거 아니야? 디자인을 배운 적도 없는 사람한테 무슨 생각으로 별장을 맡겨!’한지은도 속으로 생각할 뿐이지 입 밖으로 낼 용기는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만약 지금 이대로 꼬리를 내린다면 그녀는 출근할 면목도 없었다.한지은은 만약 반승제가 자신의 외모와 몸매를 보게 된다면 분명 생각을 바꿀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희망을 품고 도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누가 안 한대요? 하지만 도전하기 전에 저도 반승제 씨를 만나야겠어요.”성혜인은 이해가 안 되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한지은이 이어서 말했다.“
BH그룹의 꼭대기층.반승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사무실에 앉아있었다. 그는 없는 시간을 겨우 짜내 집으로 돌아갔는데 글쎄 바람을 맞고 말았다. 성혜인에 대한 인상이 안 그래도 바닥 치고 있었는데 바람을 맞고 나니 더욱 나빠지고 말았다.이때 심인우가 서류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대표님, 외국에 있는 주치의가 방금 전화 왔는데 회장님께서 약 1주일 후 귀국하기로 계획하셨답니다.”‘이렇게 빨리?’반승제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천천히 말했다.“새로운 계약서가 필요해요. 변호사한테 연락해서 SY그룹을 도와 2차 융자를 넘기는 조건으로 아내라는 사람이 저의 연극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 봐요.”반승제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가 ‘아내라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상대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이다. 반태승이 ‘혜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적 있지만 성이 혜 씨인 건지 그냥 이름인 건지는 딱히 알아볼 관심이 없었다.심인우는 머리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가더니, 반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변호사가 만든 계약서를 반승제에게 보내줬다. 그리고 프린트부터 사인까지 금세 완성되어 계약서 얘기가 나온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성혜인의 집 앞까지 배달 왔다.회사에서 돌아온 성혜인은 어떻게 반승제와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홧김에 이혼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면 성휘의 기대를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문자를 보내는 게 좋을까? 아니면 통화를 하는 게 좋을까?’성혜인이 한창 주저하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문밖에는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가 있었다.“안녕하세요, 성혜인 씨. 이건 반 대표님이 전한 계약서인데 대표님은 이미 사인하셨어요. 성혜인 씨도 한 번 읽어보세요.”성혜인은 당연히 이혼에 관한 내용인 줄 알고 계약서를 꺼내봤다.‘2차 융자를 돕는 대신... 부부 연기를 해달라고?’이는 마침 성혜인이 원하던 바였기에, 그녀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반승제의 사인을 바라봤다. 계약서 뒷면에서도 흔적이 보일 정도로 힘껏 사인한 걸 봐서 아무래도 기분이 아주 언짢
변호사는 알아서 안 되는 진실을 알아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BH그룹으로 온 그는 반승제에게 계약서를 건네줬다.“대표님, 성혜인 씨가 사인을 끝냈습니다.”반승제는 성혜인의 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성혜인... 혜인은 이름이었군.’반승제는 또 계약서를 펼쳐보며 물었다.“다른 요구는 없었어요?”변호사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성혜인이 별다른 요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주 쿨하게 사인했다고 말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반승제는 피식 웃었다. 2차 융자를 도와주고 이혼을 미룬다고 하니 이렇게 빨리 사인을 했는데, 점심에 바람맞은 일은 이혼을 피하고자 일부러 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계약서를 한쪽에 놓으며 짧게 답했다.“알겠어요.”변호사는 반승제가 무언가 오해를 한 것 같기는 했지만 여전히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어차피 이혼할 사이에 서로 많이 알아봤자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사인을 하고 난 성혜인은 기분이 아주 후련했다. 2차 융자와 이혼을 전부 해결했으니 그녀는 더 이상 반씨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으로서 그녀는 반승제의 연기에 협조하며 디자인 일만 제대로 하면 되었다.이는 가뭄에 내린 단비 같은 일이었기에 성혜인은 최선을 다해 임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내일 인테리어 팀과 함께 현장 조사를 하고 구체적인 견적을 내보기로 했다.성혜인이 한시름 놓고 침대에 눕기 바쁘게 강민지가 위치와 함께 메시지를 보내왔다.「혜인아, 나 여기서 네 동생을 봤어.」‘스카이웨어? 몸도 아픈 애가 어떻게 술집에 있어?’「네가 잘못 본 거 아니야?」「그럴 리가. 너한테 문자 보내는 새로 사라졌네. 네가 직접 와서 찾아볼래?」성혜인은 부랴부랴 옷을 입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스카이웨어 앞에 도착한 성혜인은 자신의 VIP 카드를 꺼냈다. 이곳은 부자층을 노리고 만들어진 곳이기에 VIP 카드 한 장에 4억으로 판매됐다. 하지만 대부분 고객이 이곳에서 만나기를 좋아하는 관계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생각하니 이승주는 더욱 득의양양해져서 손을 뻗어 성혜원의 턱을 잡으려 했다. 놀란 성혜원의 질끈 감은 두 눈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쁜이는 데려가고 너는 나랑 위층으로 가서 좀 더 재밌게 놀까?”성혜인은 이승주가 진심으로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곳, 스카이웨이에서 혜인이 소리를 지른다면 바로 보디가드들이 달려올 것이다. 하지만 여긴 재벌 2세들이 제일 많이 찾는 사교모임 장소이니 이곳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가 망신을 당하는 건 본인이었다. 사업도 유지해야 하는데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간 이 사교모임에서 더 이상 얼굴도 못 들고 다닐 것이다. “승주 도련님이 말씀하시는 재밌는 거라는 게 위층의 도박장인가요?”이승주는 눈썹을 씰룩거리고 위층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얘기했다. “그래요, 와본 적이 있나 봐요?”성혜인은 입을 꾹 닫고 말을 하지 않았다. 성혜원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려 하는 것을 본 성혜인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성혜원을 풀어주세요. 까짓거 저랑 놀죠.”사실 이승주는 성혜원보다 성혜인에게 더욱 끌리고 있었다. 이승주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승낙했다. “그렇다면 혜인 씨 얼굴을 봐서라도 들어줘야겠네요. 그런데 혜인 씨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거예요. 난 재미없는 건 딱 질색이거든.”성혜인은 묵묵히 시선을 성혜원 쪽으로 옮겼다. 왜 그녀가 여기에 나타난 것인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혜원아, 먼저 돌아가.”얼굴이 창백해진 성해원을 잡고 있던 보디가드들이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런데 언니는...”“난 괜찮아.”성혜인은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넌 왜 여기에 혼자 오게 되었는지,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해줘야 할 거야.”성혜원은 고개를 푹 떨구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사람이 오늘 밤 여기에 있으니까, 그 사람을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참지 못하고 온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성혜인을 마주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근검절약하는 성혜인이 여기서 4억이나
이승주는 반승제의 반응을 보기 위해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승주의 기대와는 달리 반승제의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그의 예상이 맞았다. 같이 잤다고 해서 뭐가 있는 게 아니었다. 이 바닥에서 여인이라는 건 장식품과도 같았다. “네, 취향이 좀 바뀌었어요. 요즘은 페니가 좋더라고요.”그렇게 말하면서, 이승주는 손을 뻗어 성혜인의 턱을 잡고 더욱 가까이 붙었다. 성혜인이 그의 손목을 잡아채고 고개를 들어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승주 도련님, 까먹고 얘기를 못 한 게 있는데요, 저 남편 있어요. 여기서 함께 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이 테이블의 사람이 가장 많았기에 가장 주목 받는 것도 이 테이블이었다. 그 원인은 반승제가 이 테이블에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온시환까지. 두 사람 모두 제원의 권력 중심에 위치한 사람들이고 게다가 반승제가 호구처럼 돈을 계속 던져주고 있었으니까. 반승제는 도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보통 이곳에 끌려오는 게 대다수였다. 그리고 종래로 이기고 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금방 귀국했을 때 와서 잃은 돈은 파산 위기의 회사가 기사회생할 정도의 금액이었다. 툭하면 4000억 정도랄까. 이런 호구를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반승제가 이 테이블에 앉은 후 조금이라도 자격이 되는 사람들은 이 테이블에 바로 착석했다. 이승주가 또 성혜인을 데리고 왔으니 이 테이블은 수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낯이 깎인 이승주의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심지어 성혜인을 한 대 치고 싶은 생각까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진짜 한 대 친다면 자기의 명성이 바닥까지 떨어질 게 뻔했다. 이 년이 여기까지 계산하고 온 건가?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이승주가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래요? 남편이 누군데요? 설마 저번에 호텔에서 봤을 때 옆에 있던 남자는 아니잖아요?”목숨이 열 개 주어진대도 이승주는 직접 반승제의 이름을 거론할 담이 없었다. 성혜인
윤선미는 이런 곳에서 성혜인을 만나게 될 줄 생각도 못 했다. 성혜인을 노려보는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불꽃이 일 것 같았다. 전에 성혜인 때문에 반승제 앞에서 크게 망신당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반승제의 호감을 다시 사기 위해 계획 중이었는데 성혜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니. 성혜인은 윤선미를 무시한 채 반승제에게로 시선을 돌려 부드럽게 물었다. “반 대표님, 칩 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두 배로 돌려드릴게요.”둘러 모인 사람들은 반승제에게 말을 거는 성혜인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늘 반승제의 등장에 수많은 여자가 말을 걸려고 노력했지만 반승제의 냉랭한 태도에 그 누구도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성혜인이 이리도 많은 사람 앞에서 먼저 말을 걸다니? 그녀가 솔로라면 목적은 분명히 반승제와 엮이고 싶어서 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결혼 한 유부녀가 반승제한테서 돈을 빌리다니?어리석은 방법이었다. 반승제가 성혜인이 자기한테서 돈을 빌리려는 것을 예상치 못해 굳어있을 찰나 그 옆의 온시환이 자신의 칩 절반을 밀어서 주었다. 웃음을 짓는 정교한 눈매 밑으로 조롱이 살짝 섞여 들어갔다. 온시환의 생각도 다른 사람들과 같았다. 성혜인이 반승제의 관심을 끌려고 이런 저급한 방법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너무 저급해서 재미도 없을 정도였다. “이 거래 너무 욕심나는데, 페니 씨 제 칩을 빌려드려도 괜찮죠?”성헤인이 반승제를 찾아 돈을 빌리려던 것은 단지 이 테이블에 친한 사람이 없어서였다. 반승제는 이후에도 같이 사업을 하는 사이이니 돈을 빌려달라는 말을 하기가 쉬웠을 뿐이다. 하지만 빌려주는 사람이 있다니 그녀도 거절하지 않았다.“감사드려요.”온시환은 성혜인을 쳐다보지도 않고 입술만 끌어올렸다. 누가 봐도 온시환이 이 기회로 성혜인을 꼬시려는 것은 아니었다. 성혜인은 개의치 않고 칩을 가진 후 딜러를 쳐다보았다. 딜러는 급히 영업용 미소를 장착하며 이어 나갔다. “그럼, 다들 준비되신 것 같으니 시작하겠습니다...”“
보다시피 반승제의 기분은 꽤 좋았다. 현장의 분위기도 오묘해졌다. 이승주는 성혜인과 기 싸움을 해봐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계속해서 기 싸움을 이어간다면 화병이 도지는 것은 이승주 본인뿐이었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딜러를 향해 말했다. “시작하죠.”딜러는 모든 사람이 준비된 것을 확인하고 포커를 꺼냈다. 성혜인의 주위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그중 대다수는 재미를 보러 온 것이고 간혹 그녀를 동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까 성혜인이 칩의 가치도 모른 채 두 배로 갚는다고 했으니 온시환에게 4000억을 갚아야 하는 셈이다. 게다가 아마추어인 그녀가 노리밋 텍사스 홀덤의 테이블에 들어와 앉았다니. 이런 도박은 웬만한 타짜도 재차 고려하는 판이었다. 심지어 이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은 다 손에 꼽히는 재벌 2세들이지만 성혜인은 얼굴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등을 곧게 편 성혜인 오른쪽의 두 사람이 먼저 보지 않고 각각 2억과 4억을 베팅했다. 그리고 그녀의 차례가 되었다. 성혜인은 자기 손에 들어온 두 장의 카드를 보고 생각하더니 포기했다. 다들 그녀의 이런 행동이 교활하다고만 느껴졌다. 반승제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윤선미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실력도 안 되면서 자리나 차지하고 계신 거예요? 다들 시간이 남아돌아서 여기 온 줄 아나.”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딜러한테 물었다. “포기하면 안 되는 거예요?”딜러는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대답했다. “되긴 합니다.”하지만 지금 단 한 장의 공유 카드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는 베팅도 하지 않고 포기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돈을 잃기도 싫고, 잃기 두려워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여기에 앉아있는 걸까. 노리밋 텍사스 홀덤에 참가하는 사람은 돈이 흘러넘치게 많은 사람이다. 그 정도의 재력이 없다면 이곳에 끼지 말았어야지. 주변이 소란스러워지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지켜보던 사람들도 불만스러워했지만 성혜인은 개의치 않
이러한 도발에도 성혜인은 개의치 않고 고개를 들어 이승주를 쳐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승주 도련님, 전 분명히 유부녀라고 말씀드렸는데, 마음을 거절했다고 해서 이렇게 저만 쥐 잡듯 잡을 필요가 있나요?”그 말인즉슨 남자로서 속이 참 좁다는 뜻이었다. 정확한 발음과 청량한 목소리로 내뱉은 성혜인의 말은 곧장 퍼져나가 주위 사람들의 웃음을 불러일으켰다. 이승주의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제가 마음을 받아달라고 했었나요?”성혜인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다. 대답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방관자들이 추측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승주가 성혜인을 데려왔건만 유부녀라는 소리에 태도가 완전히 변했으니. 갖지 못하면 부숴버린다는 것인가? 성혜인이 너무 적게 베팅하는 것은 맞지만 거절당했다고 해서 여자 하나를 물고 늘어지는 건 품위 없는 행동이었다. 이승주는 체면을 잃어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이 년을 너무 얕잡아 봤다. 다른 사람까지 이용하다니. 이 바닥에서는 원래 남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에게 머무는 시선들이 의미심장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적 가운데서 윤선미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음 쳤다. “승주 도련님이 뭐가 부족하다고 당신처럼 헤픈 여자를 좋아하겠어요? 진짜 별꼴이라니까.”자기가 이승주를 거절했다는 둥, 제까짓게 뭐라고 감히 여기서 자기를 치켜세워?성혜인은 윤성미를 의문스러운 눈길로 물었다. “누구세요?”윤선미는 표정이 순간 굳었다. 윤선미는 성혜인이 자기를 모른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런 연기를 이어가려는 건지, 이 불여시 같으니라고. 이승주가 성혜인을 괴롭힐 때 그녀는 억울한 척 기회를 잘 잡아 판세를 뒤집었다. 윤선미는 처음부터 성혜인을 대하는 태도가 좋지 않았다. 윤선미는 성혜인의 말끝마다 시비를 걸었지만 성혜인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윤선미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시비를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