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는 성혜원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는 듯 머리를 갸웃하고는 약을 들고 성휘의 병실로 갔다. 병실 앞을 지키는 두 명의 보디가드는 익숙한 얼굴을 보고 막아서지 않았다.간호사가 주사기 안에 든 약을 성휘에게 놓으려고 한 순간 그는 눈을 번쩍 뜨고 과호흡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간호사는 그만 주사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황급히 밖으로 달려 나가며 소리를 질렀다.“교수님! 교수님!”한 무리의 의사들이 병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성휘를 응급실로 데려갔다. 간호사는 텅 빈 병실 안에서 바닥에 떨어진 주사기를 집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 이참에 쓰레기통까지 비웠다.복도 끝에 서 있던 성혜원은 의사들이 부랴부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체내에 들어간 순간 죽을 수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독약이었으니 말이다.이때 성혜원의 시선에 쓰레기를 들고나오는 간호사가 보였다. 쓰레기의 가장 위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녀가 준비한 약이었다.“약은 그냥 버리는 거예요?”“네, 환자 상태가 갑자기 이상해져서요. 좋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응급실로 갔어요.”성혜원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만약 성휘가 정신을 차린다면 집에서 쫓겨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어떡해... 어떡하지...’성혜원은 성한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서 일어난 일들을 얘기해줬다. 그러자 성한은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집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성혜원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성한은 무조건 성혜인을 상대하러 갈 것이기 때문이다.성혜원의 생각이 맞았다. 성한은 로즈가든 근처에 매복해서 성혜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혜인이 눈에 띄는 순간 처리해 버릴 작정으로 말이다.성한을 부추기고 난 성혜원은 앞으로 성휘가 깨어나는 것을 막던지, 반승제와 결혼하던지 둘 중 하나는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번 일부러 가장 섹시한 옷을 입고 반승제를 찾아갔지만 쓰레기 취급을 당한 일이 생각나며 그녀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온시환은 반승제의 말이 이해가 안 가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그 여자?”“페니 말이야.”“미친, 나 지금 윤단미 얘기하고 있거든?”“그래?”반승제는 약간 멈칫하며 머리를 숙였다. 그 모습이 웃겼던 온시환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러니까 네 말은 너랑 페니 씨가 어떻게 될지는 페니 씨의 생각에 달렸다는 거지?”‘설마 이러다 페니가 결혼하겠다고 억지를 부려도 동의하는 거 아니야?’온시환의 질문에 반승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온시환은 당황한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너 설마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내가 윤단미 얘기를 하는 동안 한마디도 듣지 않고 유부녀 생각만 하고?”“아니거든.”온시환은 반승제를 힐끗 노려봤다. 그러고는 반승제의 취중 진담을 듣기 위해 일부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여자를 가리키며 물었다.“저 여자 어때? 페니 씨랑 비교해 봤을 때.”반승제는 머리를 들더니 차가운 눈빛으로 여자를 힐끗 보고는 금세 시선을 거뒀다.“별로야.”온시환은 감탄하는 표정으로 반승제의 앞에 놓인 빈 술병을 봤다. 반승제가 오늘처럼 경계를 풀고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아주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그래서 그는 곧장 핸드폰을 꺼내 들고 녹음하기 시작했다.“승제야, 왼쪽에 있는 여자는? 몸매가 죽여주는데, 페니 씨보다 낫지?”온시환은 내일 반승제에게 녹음을 들려주며 아주 재미나는 반응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승제는 차가운 눈빛으로 가만히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취하고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반승제의 경계심에 온시환은 제 풀에 꺾여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덕분에 반승제가 성혜인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진지한지는 알게 되었다. 별다른 취미가 없는 온시환에게 이는 최근 가장 큰 재밋거리였다.두 사람은 프라이빗 룸이 아닌 로비에 앉아 있었다. 온시환의 말로는 ‘가면을 벗어던진 채 욕망에 찌든 반인반수’들을 구경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아주 훌륭한 영감이 되어주고는 했다.온시환은 반승제를 부축
“왈왈!”이때 겨울이의 소리가 끝방 쪽에서 들려왔다.성혜인은 유경아가 문을 잠그는 것을 깜빡했겠거니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겨울이는 한달음에 거실로 달려가 그녀의 앞에서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마치 방 안에 들어가기 싫다고 애원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겨울이의 소리에 유경아가 깰까 봐 걱정되었던 성혜인은 부랴부랴 그를 데리고 끝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흥분한 겨울이는 죽어도 방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성혜인은 겨울이가 너무 오래간만에 자신과 만나서 흥분했을 것으로 여기고 억지로라도 방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때 그녀는 예고 없이 들려온 출입문 여는 소리에 그대로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다.이 시간에 도우미가 왔을 리는 난무했다. 입주 도우미인 유경아일 리도 절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진작에 잠들었기 때문이다.‘도둑인가? 아니야, 포레스트의 경비를 뚫을 수 있는 도둑은 없어.’겨울이는 성혜인이 생각에 잠긴 틈을 타서 미친 듯이 거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왈왈!”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을 반기는 듯 신이 나게 짖으면서 말이다.성혜인은 어쩔 수 없이 겨울이를 따라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멈춰 섰다.“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아?”반승제는 겨울이의 이마에 남은 선명한 흉터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성혜인은 몰래 뒷문으로 나가서 포레스트를 떠났다. 하지만 겨울이는 어쩔 수 없이 남겨지게 되었다.로즈가든에 도착하고 놀란 가슴이 조금 진정된 후에야 성혜인은 유경아에게 전화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지만 오늘따라 깊게 잠든 유경아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포레스트에서 개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면 안 된다는 문자만 보내뒀다.반승제는 느긋하게 셔츠 단추를 풀었다. 겨울이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주변을 뱅뱅 맴돌았다.“겨울이?”혹시나 하는 마음에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이름을 불러보니 겨울이는 훌쩍 뛰어오르며 꼬리를 흔들었다.“역시 너 맞
성혜인은 반승제가 무조건 취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안 그러면 이렇게 낯간지러운 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단호하게 대답했다.“걱정한다기보다는... 이 시간에 대표님이 찾아오시면 남편이 오해할까 봐서요.”이 말을 들은 반승제는 순간 침묵에 잠겼다. 핸드폰을 사이 두고도 그 위압감이 전해질 정도로 말이다.성혜인이 말을 계속하려던 찰나 반승제가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성혜인은 실수로 끊어진 줄 알고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계속해서 통화 연결음만 들려오고 나서야 성혜인은 그가 자신을 일부러 무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갑자기 왜 이러지?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근데 나는 유부녀라는 컨셉을 유지하고 싶었을 뿐인데...’반승제는 잠잠해진 핸드폰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당당하게 소파로 올라가려는 겨울이를 향해 머리를 돌렸다.“너도 그놈의 남편에 비해서는 뒷전인가 보군.”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한 겨울이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반승제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모르는 척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반승제가 귀국하기 전에 겨울이는 줄곧 거실의 소파에서 잠을 잤다. 그래서 오늘도 늘 그랬듯이 소파에 엎드린 채 편안하게 잠들었다.기분이 언짢았던 반승제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컴퓨터와 문서를 발견하지도 못했다. 그는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곧장 욕실로 가서 차가운 물을 틀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진정되지 않았다. 알코올의 작용으로 인해 겨울이를 팔아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성혜인이 괴로워하는 표정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남편... 남편... 바람이나 피우는 남자를 왜 자꾸 입에 달고 사는 거야. 진짜 정신과라도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반승제가 전화를 받지 않자, 성혜인도 더 이상 걸지 않았다. 끈질기게 전화를 걸다가는 오히려 반작용만 일으킬까 봐서 말이다.통화하는 내내 정체에 관해 묻지 않는 걸 봐서는 다행히 테이블 위의
성혜인은 놀란 표정으로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만약 유경아와 연락하지 않았더라면 반승제의 말을 믿었을지도 모른다.‘겨울이를 왜 안 돌려주려고 하는 거지?’뒤늦게 정신 차린 성혜인은 반승제가 멀어진 것을 보고 후다닥 쫓아가며 말했다.“대표님, 저 진짜 겨울이를 잃어버렸어요. 대표님이 헛것을 본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어디에서 봤는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반승제는 우뚝 멈춰 섰다. 깔끔한 정장, 날카로운 인상, 차가운 목소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리감이 느껴지게 하는 모습이었다.“남편이랑 같이 찾으러 다니지 그래?”성혜인은 순간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점점 멀어지는 반승제를 바라봤다. 그리고 또다시 엘리베이터 앞까지 쫓아가며 말했다.“제 남편은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요...”반승제는 감정 하나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불안에 떠는 성혜인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금방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그러면 시간이 있을 때 다시 찾던가. 난 5분 후에 회의 들어가야 해. 인테리어 일 때문이 아니라면 여기서 귀찮게 굴지 마.”이때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반승제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대표 전용 엘리베이터이기 때문에 주변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성혜인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문이 서서히 닫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반승제가 왜 겨울이를 돌려주지 않으려고 않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성혜인은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내 유경아에게 문자를 보냈다.「겨울이는 당분간 대표님의 뜻에 따라 포레스트에서 지내게 해요. 대신 절대 원래도 포레스트에서 지냈다는 걸 들키면 안 돼요.」성혜인의 사정을 잘 아는 유경아는 곧바로 답장했다.「물론이죠, 시름 놓고 저한테 맡기세요.」유경아라면 문제없을 것으로 생각한 성혜인은 자신이나 겨울이를 찾는 척 제대로 연기하기 위해 핸드폰을 만지작댔다. 반승제에게 의심받지 않으려면 열심히 찾는 척 행동을 보여줘야 했다.성혜인은 자신의 SNS에 겨울이의 사진과
성혜인은 보여 주기 식의 글을 올리고 나서 병원으로 가려고 했다. 이때 반승혜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페니 씨, 겨울이를 언제 잃어버렸어요? 저도 같이 찾아줄게요.”반승혜가 이토록 열정적으로 나올 줄 몰랐던 성혜인은 약간 머뭇거리며 답했다.“어... 하루 전이요.”“페니 씨 지금 어디에 있어요? 제가 갈게요. 저랑 같이 CCTV를 보면서 겨울이를 찾아요.”반승혜는 개 주인인 성혜인보다도 더 급한 말투로 말했다.“아니에요, SNS에 올렸으니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더구나 겨울이는 똑똑하잖아요.”“아무리 똑똑해도 개는 개예요. 그리고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요? 나쁜 사람한테 팔려 가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저 승제 오빠한테 연락했어요. 근데 답장은 없더라고요.”‘그 승제 오빠라는 사람이 승혜 씨 연락을 무시하고 겨울이도 데리고 있어요...’성혜인은 어두운 표정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아직도 반승제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혹시 윤단미의 고양이를 위해 복수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금세 자신의 추측을 사실이라 단정 짓고 미간을 찌푸렸다.이것도 성혜인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내일이 지구 종말이라는 말을 믿을지언정 반승제가 자신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윤단미를 떠올리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남자한테 첫사랑은 진짜 엄청난 존재구나. 지나간 일로 아직도 이렇게 신경 써줄 정도라니...’“페니 씨, 저한테 문자로 위치를 보내줘요. 저 지금 차 탔어요.”반승혜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던 성혜인은 로즈가든의 주소를 보내줬다. 그리고 그녀도 운전해서 로즈가든으로 돌아갔다.주차장에 차를 세운 성혜인은 차에서 내리려고 하다가 언뜻 백미러를 바라봤다. 그리고 주변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그녀의 차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낯선 이를 발견했다. 얼마 전 금방 정신을 잃고 술집에 끌려간 적 있기 때문에 그녀는 곧바로 경각심을 일깨우고 차 문부터 잠갔다.낯선 이는 성혜인
성한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창문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운전하고 있던 소윤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닥쳐요!”눈에 빨갛게 충혈된 성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돈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원하는 건 성혜인뿐이라고요!”소윤은 몸을 흠칫 떨더니 핸들을 꼭 잡았다. 성한의 집착에 그녀마저도 겁이 나기 시작했다.‘이게 다 성혜인 그년 때문이야!’“한아...”소윤은 조심스럽게 성한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불안한 표정으로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성휘가 언제 깨어날지 모를 상황이니 단두대에 올라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같은 시각, 성혜인은 포레스트로 돌아간 후에도 한참 진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성한을 처리해야 하는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가만히 당하기만 하는 것은 그녀의 스타일이 아니거니와 지금 이대로라면 마음 놓고 외출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성혜인은 심호흡하며 진정하더니 평소 자주 입지 않는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와 마스크도 썼다. 그러고는 강민지도 절대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간 다음에야 밖으로 나갔다.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때쯤 성혜인은 포레스트의 두 운전기사와 함께 외출했다. 그들은 반태승이 직접 고용한 사람이기 때문에 믿을만했다. 유경아의 말로 그들 중 한 명은 운전 기술이 뛰어나 수십 대의 차가 쫓아온다고 해도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성혜인은 운전 기술이 좋은 기사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 자신은 포레스트에 항상 세워져 있는 다른 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이렇게 성한을 유인해 내서 처리해 버리기로 했다.사전 준비를 마친 성혜인은 성한에게 문자를 보냈다.「지금 어디예요? 할 말 있으니까 지금 좀 만나요.」성한은 금방 답장을 보냈다. 그는 자신이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술집에 있으니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찾아오라고 했다. 보나 마나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CCTV가 없는 술집일 것이다.눈에 뻔히 보이는 수단이기는 하지만 성혜인은 일부러
진산로는 젊은이들이 저녁에 몰래 모여서 레이싱을 즐기는 곳이었다. 길이 가파른 데다가 구불구불해서 스릴을 즐기는데 완벽했다.“성한은 요즘도 종종 이곳에 와서 레이싱해요.”성혜인은 통화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이는 이곳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전적으로 성한의 탓이라는 뜻이기도 했다.성혜인의 말뜻을 알아들은 운전기사는 곧바로 드리프트를 하며 코너 몇 개를 돌았다. 흥분에 겨운 채 시뻘게진 성한의 눈에는 성혜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운전 기술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점점 더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는 게 만족스러울 따름이었다.‘조금만 더 따라가다가 억지로 멈춰 세워야겠어. 이런 곳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발견하는 사람이 없을 거야. 하하하!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되겠구나, 성혜인!’급코너를 앞두고 성한은 힘껏 핸들을 꺾었다. 그러자 차는 귀를 찌르는 소리와 함께 미끄러지기 시작했다.성한의 점점 수축하는 눈동자와 함께 차는 절벽을 향해 미끄러져 갔다.쾅!차가 절벽 밑으로 떨어지기 직전 성한은 간신이 밖으로 몸을 날려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자 뼈가 완전히 부스러진 것처럼 아픈 다리 때문에 얼굴이 일그러졌다.“아악!!!”비명을 지르던 성한은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운전기사는 성한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보고 곧바로 사고가 났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U턴하고 왔던 길로 돌아가며 성혜인에게 말했다.“사모님, 해결했습니다.”이 말을 들은 성혜인은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알겠어요.”이는 성혜인이 처음으로 누군가를 해칠 목적으로 함정을 파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한의 행동은 그녀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니 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더구나 성혜인은 이미 성한에게 뒤돌아설 기회를 줬었다. 복수에 눈이 가려져서 미친 짓을 한 것은 어디까지나 성한 본인이다.두 대의 차량은 포레스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혹시 반승제가 포레스트에 있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던 성혜인은
공지민은 섬에서 한 달을 푹 쉬었고 그 사이 연승혁의 상처도 조금씩 나아졌다.그녀는 텔레비전에서 염정아의 판결 결과를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염정아는 카메라를 보며 미소를 지었고 분명히 이는 그녀가 선택한 결말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운명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으니까.판결 결과를 본 날 공지민은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주변의 바람이 매우 거셌다. 그녀는 자신이 흘리는 눈물이 악어의 눈물처럼 느껴졌다. 염정아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자신 때문이었다. 자신이 그녀에게 칼을 쥐여준 것처럼 느껴졌다.공지민은 입을 틀어막으며 울음소리가 흘러나오지 않게 참았으며 고통에 젖어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고 연승혁이 다가왔다.“지민아, 오늘 밤에 해산물 바비큐 할 건데 저번에 먹었던 킹크랩 또 먹을래? 이따가 나랑 시장에 가서 사 오자.”연승혁은 공지민 앞에 서서 그녀의 붉어진 눈을 보더니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야? 울었어?”최근 며칠 동안 연승혁은 매우 부드러워졌고 이전의 그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의 친구들이 여기 있었다면 아마 그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공지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오늘 바람이 너무 세서 눈에 모래가 들어갔어요.”연승혁은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얼굴을 받쳐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혹시 뉴스 때문에 그래? 봤었어? 사실 무기징역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법정 쪽에 말대로라면 법정에서 자기가 직접 자백하며 죽는 걸 원했대. 아무도 살릴 수 없었어. 지민아,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고 오늘 밤에 뭐 먹을지 생각해 보자.” 공지민의 눈빛에는 조롱이 가득했다. 오늘 밤 뭐 먹을지가 한 생명보다 중요하다고? 마음속에서 조롱이 커질수록 그녀의 얼굴에는 더욱 감동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의 목을 감싸며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연승혁의 눈빛이 깊어지고 손은 그녀의 허리에 닿아 한껏 힘을 주었다. 공지민은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연승혁은 웃음을 터뜨렸고
온시환은 일어나서 집을 나와 헬기를 타고 염정아의 집에 가기로 했다. 그녀의 집에 아이들이 다섯 명이나 있었으니까. 그가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옆에는 두 사람이 따라왔고 모두 그의 사람들이었다. 염정아의 집을 알아낸 후 그는 서둘러 그곳으로 갔다.아래층 슈퍼마켓 사장님은 그들을 보고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염정아에게 부탁받고 왔다는 걸 듣고 몇 마디 더 묻고 나서야 방 열쇠를 건넸다. 온시환은 문 앞에 서서 잠시 망설였다. 문에는 작은 광고들이 잔뜩 붙어 있었고 집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그렇게 크지도 않아 보였다. 그는 열쇠를 꽂고 들어갔을 때 방 안에 있던 몇 명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 일부는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었고 일부는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아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었다.온시환은 입을 열려고 하다가 이 아이들이 아마 죽음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아이만이 어느 정도 어른스러워 보였다. “아저씨, 엄마 아빠가 우리 보러 오라고 하신 건가요? 우리는 언제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어요?”온시환은 웃어보려 했지만 어떻게 해도 웃어지지 않았다. 염정아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고 곧 처형될 예정이다. 그는 정말 이 아이들을 모두 복지관에 보내야 할까? 그는 잠깐 망설였다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아이들 챙겨. 제원으로 간다.”만약 아이들을 이곳 복지관에 두면 이곳은 너무 멀어서 아이들이 괴롭힘을 당해도 알지 못할 수 있다. 차라리 제원 복지관에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온시환은 이 아이들을 직접 돌볼 고민도 했었지만 그들을 보면 염정아의 인생이 떠올랐다.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고 그걸 떠올리면 마음이 불편했다.그는 제원의 복지관에 기부할 수 있었고 매주 사람을 보내 아이들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자라도록 챙기고 학교에 보내어 나중에 직장을 찾아서 스스로 먹고살 수 있게 할 수 있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그는 늘 자신이 쓴 시나리오가 가장 막장 같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잔을 비우고 또 비웠다. 문득 공지민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속의 쓰라림도 점점 더 커졌다. 그때 VIP룸의 문이 열리고 반승제는 조금 늦게 도착했다. 그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보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셔.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이러는 거야? 아니면 우리 다 같이 시간 내서 놀러라도 가자. 마침 혜인이도 요즘 놀러 가고 싶어 하던데.” 한때 온시환은 노는 걸 가장 즐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갈 생각만으로도 힘이 빠졌다. 그는 멍하니 손에 든 술잔을 바라보다가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그때 반승제가 물었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그 여자가 나를 사랑하게 될까?’ 그때 그는 우습게 느껴졌다. 반승제처럼 완벽한 남자가 여자의 사랑이 부족할 리가 있나? 세상에 여자는 넘쳐나는데 이 여자가 아니면 다른 여자를 찾으면 될 일 아닌가.하지만 세상일은 돌고 도는 법이라더니 그도 결국 한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하물며 그 사람은 그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를 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른 남자의 감정을 갖고 장난치려 들었다. 그날 경찰서 앞에서 연승혁을 봤을 때 온시환은 공지민의 대략적인 계획을 알 것 같았다. 그때 연승혁이 그녀를 바라보던 눈빛은 분명히 순수하지 않았고 연승혁도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빠졌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온시환은 질투가 아니라 씁쓸함을 느꼈다. ‘연승혁 너도 참. 평생을 거만하게 살아온 네가 유일하게 사랑한 여자가 오히려 네 목숨을 노리다니.” 온시환은 술을 또 한 모금 마시며 자신과 연승혁 중 누가 더 불행한지 가늠할 수 없었다. 옆에 앉아 있던 서주혁은 손을 천천히 내밀어 그가 마시려던 술을 가로챘다. “그만 마셔. 위 출혈 나서 병원에 실려서 가고 싶어?” 온시환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
연승혁의 상처가 조금 나아졌을 때 공지민은 그를 데리고 해변을 거닐었다. 마치 그들이 처음 섬에 왔을 때처럼. 연승혁은 체력이 좋아 빠르게 회복되었고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연인처럼 보였다. 이 섬에 와서 부상을 당한 그날을 제외하고 그는 매일 자신과 공지민이 연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진실이 무엇인지. 그것은 오직 그만이 알고 있었다. 그날 두 사람이 다시 여기서 석양을 바라보고 있을 때 연승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지민아, 여기서 돌아가면 나랑 함께할래?” 공지민은 잠시 의아해하며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우리가 이미 함께 있는 게 아니에요? 전에 우리가 미혼 부부였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렇긴 한데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네가 나를 선택한다면 그 문제들은 내가 모두 해결할 거야.” 김경자 쪽에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가 한 일이 기존의 규범을 어기는 일이었지만 반대하는 이들을 모두 없애 버리면 그만이었다. 예전처럼 말이다. 어차피 김경자도 그가 하는 방식에는 이미 익숙해졌을 터였다. 그는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더니 그녀를 품에 안았다. “너만 원하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공지민은 속눈썹을 내렸다. 머릿속에는 연승혁과의 일보다는 염정아가 떠올랐다.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사건이 그렇게 커졌는데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온시환은 염정아를 도왔을까?’ 그녀는 심지어 이런 생각도 했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온시환은 슬퍼할까?’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예전부터 살고 싶은 의욕이 없었다. 그래서 제원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반드시 방법을 찾아 연승혁이 자신과 함께 여기 남아있게 할 것이다. 마치 그때 구은우가 영원히 바닷가에 남았던 것처럼. 제원 쪽에서 온시환은 더 이상 공지민과 연락하려는 시도를 포기했다. 그가 들은 바에 따르면 공지민은 이미 연승혁과 함께 그 섬으로 갔고 그 섬에는 그가 배치해
공지민이 눈을 떴을 때 천장이 보였는데 연승혁이 말한 대로 안전해진 것 같았다.그녀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연승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공지민은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었다. 밖에 서 있던 연승혁의 부하들은 그녀가 나오는 걸 보고 격정스런 눈빛을 지었다. “공지민 씨, 괜찮으신가요?”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오빠는요?”“형님은 아직 의식이 없으십니다.” “오빠 보러 가고 싶어요.”그때 그녀는 일부러 미친 척하며 그를 몇 번 밀쳤고 기억에 의하면 그를 불더미 속에 밀어 넣었다. 그의 등은 아마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하지만 연승혁은 정말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를 안고 탈출할 수 있었으며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잘 보호했다.공지민은 감동하기보다는 오히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원래는 그와 함께 그곳에서 같이 죽을 생각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연승혁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연승혁은 병상에 누워 있었고 의사가 그의 상처를 살펴보고 있었다.섬의 의료 수준은 제원에 미치지 못했다. 연승혁은 등 부상으로 인해 이미 이틀째 의식을 찾지 못했고 의사는 감염을 우려하며 그의 곁을 이틀 동안 지키고 있었다. 공지민의 눈빛에 조롱의 기색이 스쳤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왜 이 사람은 타 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곧 눈가가 붉어진 채 천천히 병상 옆에 앉았다.“오빠는 괜찮아졌나요?”의사는 그녀를 보며 공손하게 답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이제 깨어나기만 기다리면 됩니다.”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승혁의 손을 잡았고 그대로 병상 옆에 앉아 떠나지 않았다.의사는 곧 방을 떠났고 방 안에는 연승혁과 공지민 두 사람만 남았다.공지민은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이 방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그녀는 옆에 있는 베개를 가져다 이 남자를 질식시켜 죽일 생각도 했다. 그러면 모든 게 끝날 테니까. 그녀가 그렇게 하려던 찰나
남자는 이미 죽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연승혁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옆에 있는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옆에 있던 부하들에게 짧게 말했다. “정리해. 난 먼저 간다.” 호텔 쪽에는 이미 그의 부하들을 배치해 두었으니 원래라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방금 그 남자의 말이 자꾸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직접 돌아가 확인해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승혁은 자신이 공지민에게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이걸 단순한 게임으로만 여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만약 공지민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는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원래는 30분은 걸려야 할 거리였지만 그는 10여 분 만에 도착했다. 그가 머물던 호텔은 이미 짙은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고 서둘러 앞으로 나가 자신의 부하를 붙잡고 물었다. “공지민 어디 있어!” “형님, 공지민 씨는 아직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방 안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연승혁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바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불길은 이미 너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고 섬의 소방은 아직 빠르지 않아 불은 이미 1층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번져 있었다. 지금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연승혁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밖에서 소식을 기다려야 한다고 여겼다. 어쩌면 공지민이 운 좋게 스스로 탈출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이성을 차릴 수 없었다. 곧바로 옆에 있던 사람들을 밀쳐내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이 자던 방으로 들어갔다. “공지민! 공지민!” 그는 큰 소리로 외쳤고 곧 방 한구석에서 공지민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짙은 연기에 눈을 뜰 수 없었던 연승혁은 최대한 몸을 낮추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공지민은 방구석에 웅
연승혁은 즉시 공지민을 바라보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넌 이 방에 가만히 있어. 내가 가서 그 사람을 처리하고 나서 나랑 같이 제국으로 돌아가자.”공지민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오빠가 위험하진 않겠죠?”“걱정하지 마. 금방 돌아올 테니까 한잠 푹 자고 있어.”연승혁이 묵고 있는 호텔은 이 섬에서 가장 큰 호텔로 매우 호화로운 데다가 그의 부하들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공지민은 안전했다.공지민은 서서 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연승혁은 겨우 몇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매우 불안했고 심지어 공지민이 그와 함께 움직이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하는 건 결코 안전하지 않았고 그 사람이 혹시나 손에 총이 있다면 공지민은 위험할 수 있었다.그는 신이 아니었고 공지민을 100%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약간의 과실로 그녀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는 감히 모험할 수 없었고 그녀를 호텔에 남겨 둘 수밖에 없었다.연승혁은 차에 올라탔고 차는 30분 동안 달리다가 암초가 있는 곳에 멈췄다.근처의 암초는 크고 새까맣기 때문에 숨어 있기에 좋은 장소였다.연승혁은 옆에 있는 부하한테 물었다.“여기에 있는 게 확실해?”“네. 확실해요. 저희 쪽 사람들이 지금 수색하고 있어요. 늦어도 30분이면 결과가 나올 거예요.”연승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소매를 입고 있었는데 평소의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고 휴가를 온 것 같았다.멀지 않은 곳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양측이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연승혁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이제 그 사람은 도망칠 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부하들은 온몸이 새까만 남자를 붙들고 걸어왔다.어쩐지 이 남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 있더라니 그의 몸에는 검은 물감이 칠해져 있었고 마치 암초와 융합된 것처럼 보였으며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연승혁은 담배에 불을 붙였고 밤바다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그는 심호흡한 뒤 그 남자
연승혁은 한동안 그녀와 꽁냥꽁냥하다가 해변의 경치를 구경하러 가자고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공지민은 바다를 극도로 두려워했다. 구은우가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후 그녀는 평생 악몽 속에서 살았다.그녀는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이 격하게 오르내리기 시작했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연승혁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모래 위를 걸었다.“지민아, 어때? 여기 달이 특별히 예쁜 것 같지 않아?”공지민은 얼굴에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뻐요. 이렇게 예쁜 달은 처음 봐요.”연승혁의 입꼬리는 올라갔고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말없이 서 있었다.그는 정말로 여기의 달이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여자와 함께 경치를 보면서 느낀 감정은 뭔가 더 특별했고 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공지민은 내내 연승혁한테 맞춰줬고 그가 바닷물을 만지고 싶다고 해서 그녀도 따라나섰다.바닷물에 발을 담그면서 연승혁이 물었다.“이런 해변을 보고 있으면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공지민의 눈에는 의문으로 가득 찼고 그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연승혁은 구은우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 그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공지민은 그때 구은우를 매우 사랑했고 그들이 서로를 가장 열정적으로 사랑할 때 구은우가 사망했는데 그녀가 그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이상우가 최면술을 사용했음에 불구하고 연승혁은 그녀가 갑자기 기억해 낼까 봐서 걱정이었다.하지만 공지민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연승혁은 안도감을 느꼈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기억 안 나면 됐어. 손 줘봐. 우리 여기 좀 둘러보다가 돌아가자.”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오빠가 잡으려는 그 사람은요?” “아마 일주일 안에 잡힐 거야. 이 섬이 제국만큼 크지는 않지만 숨을 수 있는 동굴이 많아. 그 사람이 이곳에 들어온 후 바로 숨어버렸어. 그래서 내 부하들이 그를 찾아내려면 구석구석을 돌아다녀야 해.”그들이 며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