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겠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얌전히 당하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반승제는 성혜인 얘기를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반승제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백연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투자 유치를 시작하는 성씨 집안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쉽게 BH그룹이 가져다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에 자꾸 잔소리하게 되었다.통화를 끝낸 반승제는 덤덤하게 휴대전화를 내려놨다.“10분이면 된다고 했나? 오늘은 뭐가 궁금해서 찾아왔지?”성혜인은 방금 전의 통화 내용에 신경 쓰지 않고 할 말만 했다.“오늘은 반 대표님의 미래 계획을 물어보려고 찾아왔어요. 대표님의 애인은 어떤 취미가 있어요? 독서 혹은 요가? 그리고 자녀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실내 디자인은 집주인의 습관에 따라 만들어야 했고 성혜인이 물은 것은 펜션의 구조를 좌우지할 것이다.반승제는 성혜인의 질문에 약간 멈칫했다. 애인이라는 질문에 문뜩 떠오른 사람은 애인이 아니었고, 아이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반승제는 생각하다 말고 성혜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성혜인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로 알아차리고 대답했다.“저는 피임약을 먹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커피를 들고 들어오다가 이 말을 들은 심인우는 순간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는 겨우 중심을 잡고 성혜인을 바라봤다.성혜인은 그가 여자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줬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반승제를 보자마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반승제와 하룻밤을 보내고도 이토록 덤덤할 수 있는 여자는아마 그녀 한 명뿐일 것이다.성혜인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아닌 상대를 아예 매력적인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는 듯한 태도였다.자고로 남자는 이 부분에 타고난 승부욕이 있어서, 반승제는 자신의 기술에 문제가 있는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반승제는 소파에 기대더니 이내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성혜인은 마치 싸늘한 분위기를 느끼지 못
빠른 사과에 반승제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성혜인과 대화를 할 때마다 속이 꽉 막히는 것만 같았다.“그럼 저는 오늘 펜션에 방문했다가 설계도를 그려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정확한 공사 일정은 설계도가 통과된 다음 다시 잡죠.”반승제는 짧게 대답하고 더 이상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사무실 밖으로 나온 성혜인은 한 여자가 커피를 들고 다가오는 것을 발견하고 옆으로 비켜섰다.화려한 옷에 정교한 메이크업을 한 여자는 성혜인의 곁을 지나칠 때 일부러 휘청거리면서 그녀를 향해 커피를 전부 쏟아부었다.옅은 색의 정장을 입은 성혜인은 당연히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몰골이 되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저급한 수를 부리는 여자를 바라봤다.여자는 눈썹을 찡긋거리더니 놀란 척하며 입을 가렸다.“죄송해요. 제가 젖은 손수건으로 닦아줄게요.”성혜인은 그녀의 명찰을 바라봤다.‘윤선미... 혹시 윤씨 집안 사람인가?’윤선미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상대가 당연히 예의상 거절할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성혜인은 가만히 서서 미소 지으며 말했다.“좋아요. 그럼 깨끗하게 부탁드릴게요.”윤선미의 표정은 굳어지더니 이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성혜인이 반승제의 사무실로 들어간 순간, 그녀는 일부러 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절대닦아지지 않을 진한 색의 커피를 만들었다.일이 자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을 보고 윤선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아무래도 손수건으로는 닦이지 않을 것 같아요.”“그럼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요. 정 안 되면 제가 입고 나갈 수 있는 새 옷을 준비하던가요. 제가 워낙 급한 일이 있어서 도무지 집으로 돌아가 옷 갈아입을 시간이 없어서요.”윤선미의 안색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그녀는 눈앞의 여자가 참 눈치 없다고 생각했다.비서실의 다른 직원들은 윤선미가 골탕 먹는 것을 보고 비웃기도 하고 수군거리기도 했다.윤선미는 BH그룹에 새로 온 인턴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집안을 믿고 아주 기세등등했다.자신의 사촌 언니 윤단미가 BH그룹 대표가 아직도
발목이 퉁퉁 부은 윤선미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고발하러 갔다.“형부, 이 여자가...!”성혜인은 CCTV를 가리키며 윤성미의 말을 가로챘다.“도대체 누가 잘못 했는지는 CCTV에 똑똑히 담겨 있어요. 그리고 제가 대표님을 찾아온게 마음에 안 들어서 이러는 거라면 대표님을 너무 얕본 게 아닌가요?”성혜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대표님이 얼마나 정직한 분인데 설마 여자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겠어요?”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없다고, 성혜인의 말은 반승제의 반박을 미연에 막아버렸다.그녀는 또 교활한 말투로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어찌 됐듯 인턴 직원인 윤선미 씨가 개입할 문제는 아닌 것 같네요. 이게 도대체사촌 언니를 위해서인지, 윤선미 씨 자신을 위해서인지 알 수가 있어야죠.”윤선미는 상대가 반승제 앞에서도 이토록 당당하게 말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제 분을 못 이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형부.”윤선미는 불쌍한 표정으로 반승제을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위해 나서주기를 기대하면서말이다.하지만 반승제의 시선은 시종일관 성혜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당당하게 반승제를 바라보는 성혜인은 교태 부릴 줄밖에 모르는 윤선미와 확연한 차이를만들었다.“형부, 저 진짜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윤선미는 슬슬 자신이 쫓겨나게 될까 봐 걱정되었다. 그녀는 BH그룹에 남아있어야만 사촌 언니 윤단미를 위해 정보를 줄 수 있었고 반승제의 잘난 얼굴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반승제는 윤선미가 내민 손을 단호하게 피했다. 그는 현재 상황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그건 CCTV를 보면 밝혀지겠지.”윤선미는 안색이 창백해서 주먹을 꼭 쥐었다.아무래도 반승제는 쉽게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BH그룹으로 올 때 언니가 분명 대표님한테 나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는데? 근데 왜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거야?’반승제의 말을 듣고 성혜인은 약간 다르게 생각했다. 아무리 반승제라고 해도 좋아하는 사람의 눈에 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대표님의 부인?’윤선미는 약간 놀란 눈치였다. 그녀는 성혜인이 당연히 반승제의 결혼 소식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이는 업계 사람도 잘 모르는 일이었고, 안다고 해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게 태반이었다.SY그룹은 작디작은 기업에 불과했고 BH그룹과 혼인 관계를 운운할 자격이 없었다.“부인이라면 설마 그 투명 인간을 말하는 거예요?”윤선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 인간은 단 한 번도 공식 석상에 얼굴을 비춘 적 없어요. 반씨 집안에서도 인정 안 하는 사람을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부인이라고 불러요?”반승제의 부인이 못생긴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공식 석상에 나오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 정도이니 오죽 심각했겠는가.윤선미의 말 중에 틀린 것 하나 없었다. 성혜인은 반씨 집안에서 하루살이보다 못한 존재였고 반태승 앞에서만 그나마 손주며느리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윤선미의 말을 듣고서도 덤덤하게 대답했다.“공식 석상에 나온 적 있든 없든, 두 분이 결혼했다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아요. 두 사람이 법적으로 부부로 인정받는 한, 바람을 피우는 것은 도덕적 및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하죠. 안 그래요?”윤선미의 말발은 성혜인을 이기지 못했다. 계속 변명하다가는 유부남을 넘본 불륜녀가 되고 말 것이다. 그녀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당신도 마찬가지잖아요. 얼굴이 예쁘장하면 우리 형부를 꼬실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우리 형부는 제 사촌 언니를 10년 동안이나 좋아했다고요.”“반 대표님이 그 정도로 일편단심인 분은 아닌 것 같던데요.”성혜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 앞에서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럼 내가 어떤 사람 같은데?”‘뭐야? 이 사람 회의하러 간 거 아니었어?’성혜인은 약간 멈칫한 모습이었다.반승제는 덤덤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윤선미가 들어오며 문을 닫지 않은 관계로 그는 두 사람의 대화를 전부 듣고 말았다.이 점을 인식한 성혜인은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윤선미는 꼴 좋다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며 반승제의 곁으로 갔다.
성혜인은 레스토랑 앞에서 완전히 얼어버렸다. 임경헌은 그녀의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창가에 앉아있는 여자분이 제 어머니예요. 진짜 무서운 분이라, 만약 제가 오늘 살아서 나갈 수 있다면 다 페니 씨 덕분인 거예요.”성혜인은 어쩔 줄은 몰라 일단 머리부터 숙였다. 하지만 반희월은 이미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와 시선을 마주친 임경헌은 몸을 흠칫 떨며 말했다.“그럼 실례할게요.”임경헌은 성혜인의 허리에 손을 올리더니 반희월을 향해 걸어갔다.반희월은 예리한 눈초리로 두 사람을 훑어봤다. 임경헌은 시종일관 젠틀한 미소를 유지하며 성혜인을 챙겨줬다.“어머니, 이쪽은 제 여자친구 페니 씨에요. 직업은 실내 디자이너예요.”머릿속이 하얘진 성혜인은 한참 진정한 후에야 이성을 되찾았다. 그리고 반희월은 그녀를 모르는 눈치였기에 한시름 놓고 임경헌을 돕기 위해 뻔뻔하게 입을 열었다.“처음 뵙겠습니다, 아주머니.”성혜인은 또렷한 이목구비와 하얀 피부 덕분에 차갑고 도도한 인상을 줬다. 한눈에 봐도 임경헌이 좋아하던 오만한 아가씨와 달랐기에 반희월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가 또 아무 여자나 데리고 와서 나를 골병 얻게 할 줄 알았더니 드디어 철이 든 모양이구나.”사실 임경헌은 아무 여자나 데리고 와서 한고비를 넘기기 위해 전 전 여자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선물을 사며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뺨을 맞고 방금 전의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다행히 그렇게 심하게 때린 건 아니었기에 지금은 아무런 자국도 보이지 않았다.“어머니, 페니 씨는 엄청 유능한 디자이너예요. 사촌 형의 네이처 빌리지도 페니 씨가 직접 디자인을 맡았다니까요. 그러니까 이젠 그만 걱정해요. 저 진짜 새사람 됐어요.”반승제가 선택한 사람이라면 능력이 100% 보장되었기에 반희월은 보면 볼수록 성혜인이 마음에 들었다.“이건 첫 만남 선물이야.”반희월은 자신이 손목에서 팔찌 하나를 빼더니 성혜인에게 건네줬다.성혜인은 연신 손사래를 쳤다.“아니에요. 저는 따로 준비한
반승제는 서류를 보다 말고 동작을 멈추고 머리를 들었다.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반희월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설마 너도 몰랐던 거야?”임경헌은 사촌 형인 반승제를 무서워했기에 연애 소식을 알리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얘가 요즘 너무 바빴는지 데이트할 시간이 없다고 하더라고. 네가 디자인까지 맡긴 아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참 괜찮은 것 같아. 얼굴도 예쁘장하니 인상이 참 좋아.”“혹시 페니를 말하는 거예요?”반승제는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는 페니가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반희월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래, 경헌이 데리고 온 여자 중에 이렇게 마음에 드는 아이는 처음이야. 그러니 너도 페니 양을 함부로 대하지 마. 미래에 한 가족이 될지 또 누가 알아?”반승제의 표정은 점점 식어갔다.“걱정하지 마세요.”반희월은 할 말을 끝내고 몸을 일으켰고, 반승제는 그녀를 전용 엘리베이터 앞까지 데려다줬다.이때 반희월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는지 발걸음을 멈췄다.“경헌이도 좋은 사람을 만났는데 너도 이제 서둘러야지. 성씨 집안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장님이 좋아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으니 한 번 제대로 만나보지 그래?”“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고모.”반승제의 단호한 모습에 반희월은 별말 없이 선글라스를 꼈다.“몸조심해. 위도 안 좋은 놈이 자꾸 식사를 거르지 말고.”반승제는 순순히 대답했다.“알겠어요.”반희월을 보내고 난 반승제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마침 커피를 들고 들어오던 심인우가 그의 어두운 안색을 보고 물었다.“경헌 도련님이 또 사고 쳤어요?”반승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사고까지는 아니고... 그냥 유부녀한테 빠진 모양이야.”심인우는 당황한 표정으로 멈칫했다. 여자친구를 옷보다 자주 바꾸던 사람이 갑자기 취향이 변했으니 말이다.‘아무리 임경헌이 철없다고 해도 똑같이 행동하면 안 되지. 자기 남편을 사랑한다고 그렇게 절절하게 말할 때는 언제고...’반승제는 언짢은 표정으로 생각했다.
“응.”성혜인이 주저 없이 답했다. 남과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 걸 꺼렸던 그녀는 말투가 아주 차가웠다. 하지만 성혜원의 얼굴에는 기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성씨 저택 안으로 들어온 성혜인은 성혜원만 바래다주고 바로 돌아가려 했는데 꽃에 물 주고 있던 성휘와 마주쳐 버리고 말았다. 성한도 그와 함께 있었다.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렸고, 성혜원은 이미 차에서 내려 쪼르르 달려갔다.“아빠! 오빠!”성한과 회사 얘기를 주고받던 성휘는 성혜인의 차를 보고 동작을 멈췄다. 성혜인은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내려와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성휘는 물 주는 일을 도우미에게 맡기고 바로 마중했다.“그래그래, 왔으면 됐다. 네 이모가 오늘 저녁 식사에 엄청 신경 썼어. 들어와서 밥이나 먹고 가라. 나도 마침 할 말이 있고.”성혜인은 아직 반승제를 만나러 가야 했기에 집 안에 들어가 앉을 시간이 없었다.“아빠, 저 아직 할 일 있어요. 저녁에 다시 얘기해요.”성휘가 흐뭇한 표정으로 성한의 어깨를 토닥이는 것을 보고 성혜인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성휘는 성혜인의 말을 듣는 체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한이가 제대로 된 직장이 없어서 네 이모가 인턴이라도 하라고 우리 회사에 보냈다. 보고하는 모습을 보니 신경 쓴 티가 나네. 참 잘 됐지?”성휘의 질문에 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윤이 자신의 아들을 회사로 보낸 의도가 너무 뻔했기 때문이다.“혜인아, 너도 오래간만에 돌아왔는데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성혜인은 차가운 표정으로 성한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어른 같이 말했다. 그리고 시선은 처음부터 성혜인의 몸매에 고정되었다.성한과 성혜인은 성휘의 곁에 서서 다정하게 얘기를 주고받았다. 분명 세 사람 다 코 앞에 서 있었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거리감이 느껴졌다.성혜인은 말 못 할 공허함에 휩싸여 또다시 말했다.“아빠, 저 진짜 할 일이 있어요.”이 말을 들은 성휘는 표정이 점점 굳어
성혜인은 무거운 마음으로 차에 올라탔다. 반씨 저택에 도착하고 나자, 시간은 어느덧 20분이나 흘렀다.문을 열러 온 도우미는 성혜인을 보자마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성혜인 씨, 왜 또 왔어요? 사모님 오늘 안 계세요.”집 안에는 청소하고 있는 도우미 외에 아무도 없었다. 반승제가 집에 있는지 물으려고 하자 도우미는 이미 몸을 돌려 떠나버렸다. 백연서가 성혜인을 대하던 태도를 따라 배운 도우미는 그녀가 조만간 버림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아예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누구 왔어요?”정원 문이 열리고 아름다운 소녀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새로온 도우미예요? 이렇게 젊은 분일 줄은 몰랐네요.”소녀는 악의 없이 단순하게 물었다. 도우미는 피식 비웃으며 얕보는 눈빛을 보내왔다. 하지만 성혜인은 화내기는커녕 덤덤하게 말했다.“아니요. 만약 도우미라면 직업복을 입었겠죠. 저는 반 대표님을 만나러 왔어요.”성혜인의 당당한 태도에 소녀는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깨닫고 바로 사과했다.“죄송해요. 제 사촌 오빠를 만나러 왔다고요? 근데 오빠는 반 시간 전에 나갔는데...”‘사촌 오빠?’성혜인은 반승혜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 알려줘서 고마워요.”성혜인은 진짜 볼 일이 있는 모양이었고, 더구나 자신이 오해한 게 미안했던 반승혜는 한 마디 더 보탰다.“아마 회사로 가서 회의하고 있을 거예요. 아까는 겨우 시간을 내서 돌아온 모양이던데요?”반승혜는 또 도우미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손님이 왔으면 차라도 대접해야지 왜 가만히 서 있어요?”도우미가 입술을 깨물며 반박하려 할 때, 성혜인이 말했다.“괜찮아요.”성혜인이 자신을 탓하지 않는 것을 보며 도우미는 한시름 놓으며 말했다.“보세요, 괜찮다고 하잖아요.”“뭐요?”반승혜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당신 해고예요.”도우미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반씨 저택의 월급이 아주 높았기에 그녀는 해고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성혜인에게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