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아에서.국내에서 반승제의 세력이 제한됨으로 인해 그에게 소식이 닿는 속도 역시 느려졌다.그는 여전히 서주혁의 죽음에 대해 어딘가 의심쩍다 생각하고 있었다.그러나 여전히 서주혁에게 감히 전화를 걸지 못했다.백겸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만일 서주혁과 반승제의 결탁관계가 드러나면 반승제는 결코 법의 심판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머리는 해외에 머물러야 함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서주혁이 정말 목숨을 잃었다면 모두 자신이 넘긴 임무 때문일 텐데 어떻게 냉정할 수 있겠는가.반승제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욕실로 들어가 세수했다. 욕실에서 나왔을 땐 장미 누나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배현우 쪽에서 하겠다네.”배현우는 탄생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반승우에 대한 거부감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반승우의 업적을 반복해서 상기시켰으니 아마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방에서 끌려 나오면서도 배현우는 분노 가득한 얼굴로 반승제를 노려보았다.당장이라도 달려가 주먹을 휘두르고 싶었지만 두 손, 두 발에 모두 족쇄가 채워져 있었으므로 2미터 밖으로 갈 수 없었다.그는 반승제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가볍게 웃었다.“고작 연구기지에 관한 일 아닌가? 난 그쪽 기억은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니 더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그럼 반승우 나오게 해. 형은 알고 있으니까.”“나도 나오게 하고 싶거든? 걘 이미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는 바람에 이제 나올 힘도 없어. 성혜인이 있어야 반응이라도 있지.”성혜인을 언급하자 반승제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반승제가 동요하는 것을 눈치챈 배현우가 사악한 모습으로 고개를 들었다.“네 형은 성혜인을 사랑해. 죽다가도 살아 돌아올 만큼. 연구기지에서 끝까지 실성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성혜인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겼기 때문이야. 넌 그저 운이 좋아서 네 형이 돌아오지 못할 동안 자리를 빼앗은 거야.”“운도 실력이지.”예전의 반승제였다면 형과 성혜인의 이야기를 들었
장하리가 떠나려는 유해은을 붙잡고 몇 마디 당부를 건넸다.“이번 일로 괜히 또 마음 주지 말고 알아서 잘해야 해요. 어렵게 벗어났잖아요.”유해은이 자신 있게 장하리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걱정 마요. 저 그동안 연예계에서 단련 많이 했어요.”단련?백현문 때문에 상처 받지 않았다면 과연 단련이 이 정도로 되었을까.장하리가 떠나고 유해은은 곧바로 스카이웨어로 향했다.스카이웨어는 제원시의 모든 부잣집 자제가 모이기 가장 좋아하는 장소였다.백현문은 최근 위세가 대단했다. 백씨 가문의 풍기를 숙청한 이후 그는 가문의 손색 없는 가장이자 모든 자원을 장악하는 사람이 되었다.게다가 원씨 가문의 미치광이와 함께다. 두 미치광이가 만났는데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그러나 사람들은 백현문이 한 여자 연예인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남자와 침대에서의 사진으로 유명세에 오른 뻔뻔한 여자 연예인.비록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 역시도 그저 명성을 바라는 천한 여인이라는 사실을 덮어줄 수 없었다.백현문처럼 고귀한 인물이 도대체 무엇에 홀려 그 연예인을 좋아하게 된 건지 알 수 없다. 이 몇 년간 백현문이 이성에게 잘해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구설수 많은 연예인을 좋아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그러나 모두 이런 생각을 감히 입에 올리지는 못하고 백현문을 떠받들 뿐이었다.유해은이 스카이웨어에 도착했을 때 입구를 지키고 있던 종업원이 그를 힐끗 보았다.최근 연예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유해은은 남자 스타와 찍은 한 사진 한 장으로 연예계에 풍파를 일으킨 뒤 할리우드 출연까지 알려지며 단숨에 톱스타로 떠올랐다.아무도 감히 그녀와 같은 독기 가득한 길을 걸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으로라도 그녀는 확실히 성공했다.남자 종업원이 그녀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 보였다. 공개된 사진 속에서 노출은 없었지만 몸매가 좋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한 몸매를 싫어하는 남자는 아마 이 세상에 없을
유해은은 끈나시 원피스에 얇은 카디건 하나를 걸쳤는데 매우 우아해 보였다.백현문은 그녀가 걷는 매 발걸음이 자기 심장을 짓밟는 것 같았다.최근 백현문은 줄곧 유해은과 만나고 싶어 했지만 유해은은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다. 완전히 그에게서 뒤돌아선 것이다.유해은은 대외적으로 이미 스캔들에 함께 휘말린 남자 친구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와 허민환이 언제 헤어질지 궁금해했지만 두 사람은 그들의 기대를 짓밟기라도 하듯 틈틈이 SNS에 연인 사이를 티 내곤 했다.백현문은 이미 연예계에 대해 적지 않은 지식을 알고 있었다. 비서가 그에게 이르길, 일종 영업방식이라고 했다. 두 사람의 인기를 동시에 올리기 위한.“해은 씨.”그가 유해은을 품에 안고 탐욕스럽게 그의 체향을 킁킁 맡았다.전에 향기가 짙다고 향수를 싫어하던 유해은이 이제 듬뿍 뿌리고 다닌다.“오늘 무슨 향수 뿌렸어요?”“직접 제작한 건데, 향 좋아요?”전혀 헤어진 커플로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의 대화.유해은은 자신이 그의 기분에 맞춰주지 않으면 도움받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다.“네. 좋네요.”“현문 씨 도움이 필요해요. 서주혁 씨가 사고를 당했다고 들었는데 정말 죽은 건지, 차를 몰고 나간 밤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람을 보내서 확인해 줄 수 있나요?”그 누구든 백현문의 도움을 받으려면 좋은 말로 잘 구슬려가며 눈치를 보아야 한다.유해은은 태연하게 그의 품에서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저한텐 중요한 일이에요.”백현문이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으며 눈을 맞췄다.전이었다면 유해은은 초롱초롱한 예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팔을 이리저리 애교 부리듯 흔들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네? 안 돼요?”그러나 지금 유해의 말투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그녀의 눈에 백현문은 그저 사건 조사를 더 쉽게 하도록 도움을 주는 백 대표일 뿐 좁은 방에서 스킨십하며 설렘을 느끼게 하던 백현문이 아니다.그의 동공이 잠시 흔들렸다. 그는 눈을 깜박거리더니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룸문이 갑자기 열리며 재벌 2세들이 우르르 들어오려 했다. 그리고 마침 공교롭게도 그들은 백현문이 누군가의 치마를 찢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유해은이 그들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재벌 2세들은 그녀가 스카이웨어의 접대녀라 생각했다.“대표님 부럽습니다.”“대체 어떤 아가씨가 백 대표님 마음을 움직인 겁니까?”그들은 백현문의 화난 안색을 눈치채지 못한 듯 여전히 소란스럽게 말하고 있었다.백현문은 자신의 윗 정장을 벗어 유해은의 다리에 둘러주고는 재벌 2세들에게 소리쳤다.“나가. 당장.”그의 험상궂은 표정에 놀란 사람들이 꽁무니 빠지게 바로 도망갔다.문이 닫히고 깜짝 놀란 백현문은 요동치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려 노력했다.“이미 조사하게 했으니 늦어도 오늘 밤까지는 결과가 나올 거예요. 집에 데려다줄게요.”유해은은 꼿꼿이 선 채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차오른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그는 얼른 위를 쳐다보며 눈물을 참고는 돌아서서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정말 대단하세요.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전 정말 사람 보는 눈이 없나 봐요. 이렇게 카리스마 있으신 분을 어떻게 배달원이라고 철석같이 믿었을까요?”참 어리석기도 하지. 배달원이라는 거짓말에 속아 바보처럼 몸을 내주었다.백현문은 문 앞에 선 채로 비수가 꽂힌 듯 아린 심장을 애써 무시했다.그는 문을 열어 복도의 시원한 공기가 들어오도록 했다. 방 안이 답답하게 느껴져서.“데려다줄게요.”유해은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그러나 스카이웨어 밖을 나오자 그녀는 자기 차에 올라탔다.“대표님, 괜찮아요. 저녁에 다시 촬영하러 가야 해서요.”순식간에 마음이 공허해진 듯한 마음에 백현문이 다급히 물었다.“서주혁의 일이 궁금하다면서요. 친구한테도 도와달라고 했는데, 원씨 가문과 백씨 가문이 다 조사에 참여했으니 새벽 전에 결과를 알수 있을 거예요.”잠시 고민한 유해은은 차에서 내렸다.“그럼 현문 씨 집에 가서 결과 기
남성이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들이 타고 있는 선박은 크지 않으며 소형 화물을 운송하는 데 사용된다.선박의 가장자리로 자리를 옮겨 사람을 확인한 남성은 가볍게 웃었다.“보물단지를 건졌네. 백현문한테 연락해 봐. 사람 찾았다고.”부하가 즉시 서주혁을 건져 올렸다.완전히 혼수상태에 빠진 서주혁은 온몸이 뜨거운 데다 상처도 곪아있어 치료가 필요했다.백현문의 연락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사람을 찾았으므로, 원철은 기분이 좋은 편이었다.그는 갑판 위의 남자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당장 의사에게 진찰받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최근 서씨 가문에서는 장례식을 치르는 준비를 하느라 바삐 보내는 것 같았는데, 그 장본인이 이렇게 물에 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원철은 소위 부잣집의 비밀 따위 파헤치고 싶은 흥미는 없었다.“배 얼른 뭍에 대고 의사 불러.”“어르신, 간병인은 안 보내십니까?”“필요 없어. 이 자식 친구 반승제란 놈이 얼마 전에 내 화물 운반작업을 망친 적이 있어. 이대로 죽이지 않는 건 다 내가 백현문 그놈 체면 봐줘서 그러는 거야.”부하가 목을 움츠리며 더 이상 질문하지 못했다.이곳은 제원과 거리가 조금 먼 곳으로, 제원에서 100km 떨어진 한 작은 도시였다.곧이어 배가 뭍에 오르고 서주혁은 보잘것없는 작은 별장에 옮겨졌다.한편 연락을 받은 백현문은 서주혁이 아직 살아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전화를 끊은 그가 유해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서주혁은 지금 원철 손에 있어요. 원철은 절대 간병해 주지 않을 테니 제가 사람을 보내야겠어요.”“아니요. 제가 반 대표님께 연락해서 물어볼게요.”유해은의 말에 백현문의 안색이 눈에 띄게 흐려졌다.전에 그들과 일면식조차 없던 유해은이 이제 매우 친해진것 같아 보였다.백현문은 그녀가 핸드폰을 꺼내 능숙하게 반승제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줄곧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들려올 줄은 몰랐다.한참 후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이 일,
메시지를 본 장하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어젯밤 병원에 갔을 때 우연히 만난 온시환에게서 서주혁이 죽었다는 말을 확실히 들었다.그런데 이제 와서 또 서주혁이 살아있다고?유해은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다.“하리 씨, 반 대표님께서 직접 시킨 일이에요. 서주혁 씨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가 된 거예요?”장하리는 잠시 동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렸고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을 주며 꽉 쥐었다.“그... 그냥 업무 중에 몇 번 만났어요.”유해은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장하리는 성혜인의 비서였으므로 대표님을 따라 크고 작은 파티에 출석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었다.게다가 장하리는 한눈에 봐도 일 잘하고 온화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다.“시간이 늦었으니 지금 바로 운전해서 가야 해요. 아마 밤 10시까지 운전해야 할 것 같은데 도착하면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하리씨와 서주혁 씨 외에 그 작은 별장에는 의사만 출입할 수 있어요. 반 대표님께서 이 일은 당분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어요.”“온시환까지요?”“네. 모든 사람이요.”“네. 알겠어요.S.M에 함께 몸 담그고 있는 이 사람들은 서로를 매우 신뢰했다.장하리는 바로 자신의 임무를 한서진에게 맡겼다.한서진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한마디 당부할 뿐이었다.“다치지 말고 몸조심해요.”이 회사의 사람들은 마치 한 가족 같았다.황급히 집으로 돌아온 장하리는 갈아입을 옷 다섯 벌을 챙겼다. 그리고 가까운 곳 쇼핑몰로 향해 서주혁이 입을만한 남성 옷 여덟 벌을 산 후에야 비로소 차를 타고 별장으로 향했다.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 반이었다.별장 앞은 누군가 지키고 있었고 경비원은 그녀와 사진을 번갈아 보며 확인하더니 곧 들여보내 주었다.장하리는 차를 별장 입구에 세운 뒤 곧바로 로비로 들어갔다.유해은이 별장의 비밀번호를 메시지로 보내주었으므로 그녀는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2층으로 올라가니 안방에 서주혁
미스터 K가 그녀의 행동을 보고 물었다.“보여?”“희미하게만 보여요.”“네가 우려낸 약이 좋은가 보네. 일주일 내로 회복되겠어. 역시 성녀가 네 몸을 훈련했던 게 분명해. 그렇지 않았다면 약효가 이렇게 빨리 나타났을 수 있겠어?”성혜인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뒤로 벌러덩 누워버렸다.매일 훈련이 끝나면 성혜인은 졸음이 몰려왔다.“편히 쉬고, 필요한 게 있으면 002한테 말해.”“002가 누구죠?”“번호 002부터 005까지 모두 수령의 인선이야. 당연히 그 전제는 내가 널 찾지 못했을 때 이야기고. 지금은 네가 돌아왔으니 다 네 조력자가 되었지.”말을 마친 미스터 K가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그가 자리를 뜨니 002가 입을 열었다.“BKS의 수령 자리를 맹인에게 맡길 수는 없어요. 저 포함 다른 사람들 모두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미스터 K의 이번 결정은 너무 경솔했어요. 아니면 혹시 당신이 무슨 수단을 써서 현혹했나요?”성혜인은 미스터 K가 BKS에서 지위가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든 이곳의 수령이 되려면 그의 인정을 받아야 했다.그러나 002는 수령 자리를 원한 것뿐만 아니라 미스터 K를 흠모하여 성혜인에 대한 적대심이 큰 것 같았다.성혜인은 몸도 아프고 잠도 오지 않았다. 하여 기꺼이 002의 도발에 대응했다.“어제 미스터 K가 저에게 말하길, 전 부수령이라고 했어요. 그쪽은 제 말에 불복해도 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안 되는 거죠, 맞죠?”002의 안색이 흐려졌다. 그녀는 원망을 가득 담은 얼굴로 성혜인을 바라보았다.좀 예쁜 것 빼고는 괜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받아온 그들에게는 성혜인이 얼마나 꼴불견일까.“당신은 자격이 없어요. 당신은 그저 침대 위를 기어다니는 것 밖에는 할 줄 모르는 쓰레기일 뿐이고, 미스터 K는 그저 현혹된 것뿐이에요.”“나가서 무릎 꿇으세요.”성혜인이 담담한 말투로 빛이 가장 강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마 그곳이 밖일 것이다.“제가 만족할 때까지요.”
성혜인은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아마 연못의 특별한 물에 의해 단련되었을 것이다. 직접 통증을 느껴보니 손가락이 바늘에 찔리는 것이 그다지 견디기 힘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연못에 몸을 담그는 것은 마치 만 개의 바늘에 온몸이 찔리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하여 그녀는 지금 손가락이 아프긴 했지만 그저 무언가에 한 입 물린 듯한 느낌일 뿐이었다.성혜인은 귀비탑에 기대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눈꺼풀이 저도 모르게 천천히 감겼다.다음날 돌아온 미스터 K는 성혜인의 태도가 쌀쌀해졌다고 느꼈다.처음 채찍을 피하는 데 실패했을 때 몇 마디 한 것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침묵의 연속이었고 그저 가끔 끙끙 앓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성혜인은 자신이 정말 미친 것 같았다. 한동안 벙어리가 되었을 때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는데 이제 와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게 느껴졌다.그저 수령의 자리에 대한 갈망만 더 간절해졌을 뿐.강해지고 싶었고 권력을 얻고 싶어졌다.아직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므로 절대 이곳에서 쓰러지면 안 되었다.또 한 번 채찍에 맞은 후, 성혜인은 땅에서 쓰러지고 말았다.한 걸음 앞으로 걸어가 부축하려던 미스터 K 가 성혜인이 오늘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하고 눈살을 찌푸렸다.“혹시 지금 성질부리는 거냐?”성혜인은 채찍에 맞은 부위를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채찍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미스터 K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언짢은 마음에 힘껏 채찍을 휘둘렀다.그러나 성혜인은 가볍게 뒤로 피해 이 자비 없는 채찍질을 피해버렸다.미스터 K가 조금 놀라며 다시 한번 휘둘렀다.그러나 민첩하게 피하지 못하고 넘어지는 바람에 채찍의 꼬리가 허리를 휘감아버렸다.미스터 K는 채찍을 놓고 다가와 성혜인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오늘 전보다 반응이 빨라졌네. 혹시 예전에 성녀와 함께 살았던 일이 생각나기라도 한 거야?”성혜인은 대답 없이 꼿꼿이 서 있기만 했다.말 없는 무표정의 성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