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가 성혜인의 손을 부드럽게 문지르다 품에 안고 가볍게 토닥였다.“일단 들어가서 좀 자.”성혜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향기가 또 코끝에 퍼지는 것이 느껴져 짜증이 났다.더 이상 임수아의 일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짜증이 났다.“이 훈향 진세운에게서 가져온 거예요?”“승제 씨, 이 훈향 좀 전문 기관에 가져가서 검사해 보면 안 돼요? 냄새가 너무 불편해요.”그녀는 K 씨에게서 맡았던 향기에 대해 감히 말할 수 없었다. 어쨌든 진세운은 자신을 도와주었고 이 일로 인해 반승제가 또 자신에게 의심을 품는다면 앞으로 그들의 관계는 절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천하의 죄인이 될 것이다.성혜인은 터질 듯이 아픈 머리를 어루만지며 또 화가 치밀어올랐다.“그냥, 훈향의 성분이 궁금해서 그러는 거예요.”그녀가 특정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을까 걱정되었던 반승제는 얼른 심인우를 시켜 검사해 보도록 했다.한 시간 후 기관의 검사 보고서가 왔는데 훈향의 모든 성분은 안전하며 건강에 좋은 것들이었다.반승제는 특별히 이 검사 보고서를 성혜인에게 읽어주었다.“이 재료 중에 혹시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어? 세운이한테 제거해달라고 하면 돼.”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 다음에야 널뛰기하던 심장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그러나 성혜인은 여전히 자신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과하게 화를 내고 의심이 많아졌다.반승제를 다치게 한데다가 지금은 뺨까지 때렸다.심지어 임수아가 구구절절 반승제가 자신을 얼마나 아꼈었는지 설명할 때, 포커페이스조차 되지 않았다.그녀는 반승제에게 가차 없이 심한 욕설을 퍼붓고 싶어졌고, 이른바 그의 호감까지 비웃고 싶었다.이는 평소의 감정 컨트롤을 잘하던 그녀와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이렇게 추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었던가.성혜인이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뺨... 부었어요?”“아니, 걱정 안 해도 돼.”임수아는 이미 끌려간 뒤였고 짐도 보이지 않았다
반승제의 손에 이끌려 침대에 누웠지만 심한 두통 때문인지 졸리지도 않았다.“혹시 세운 씨 제 두통의 원인에 대해서 말한 적 없어요?”“그때 머리 부상 때문에 아직도 피가 고여있어서 가끔 어지럼증을 느낄 거라 했어. 그러니까 많이 쉬어야지.”성혜인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품에 안겼다. 고작 십몇분의 시간이었는데 이마는 이미 두통으로 인해 땀이 맺혔다.반승제가 끊임없이 성혜인의 등을 토닥이며 책을 읽어주었다.“읽어줄게.”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듣기 좋았다. 특히나 책을 읽어줄 때.반승제의 목소리를 들으니 조금씩 졸음이 몰려왔다.졸리면서 행복하기도 했다.꿈과 현실 그 사이의 흐린 의식 속에서 또 K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그날 서재 밖에서 몰래 들은 대화처럼 말이다.목소리는 마치 귓가에서 울리는 듯 가까웠다.성혜인은 문득 겁이 나며 불안해졌다. 처음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성혜인은 며칠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했다.그럼 이번엔 또 얼마나 혼수상태에 빠지려는 건가.성혜인의 몸은 석상처럼 딱딱히 굳어있었다. 옆에선 그 목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그들은 낮은 목소리로 어떻게 성혜인을 자기 뜻대로 조종할지 의논 중이었다.그 말들을 들으면서도 성혜인은 가위에 눌린 듯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누군가 손으로 그녀의 몸을 쓰다듬을 때까지.성혜인은 깜짝 놀라며 손을 피하려 했다. 숨을 가쁘게 쉬며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몸은 중력을 10배로 받은 듯 무거웠고 손가락조차 들 수 없었다.“놔! 놔요!”성혜인이 손을 뿌리치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지려 했다. 그러나 이때 K 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혜인 씨, 이건 혜인 씨가 제 말을 듣지 않은 대가예요. 누가 혜인 씨더러 그 피어싱을 빼라고 했죠? 저 지금 너무 화나는데요?”“우리가 다시 협력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당신에게 달려있다고 분명 말했을 텐데요. 혜인 씨는 오늘 확실히 절 실망하게 했어요.”K 씨의 목소리는 전과 다름없이 온화하고 부드러웠지만 여전히 웃음 속에 칼
네이처 빌리지에 들어선 배현우가 사방을 둘러보았다.이 별장은 확실히 성혜인이 좋아하는 인테리어이다.문득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한 생각에 놀라 온몸이 굳었다. 성혜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그가 어떻게 이 인테리어가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이렇게 확신하는 건가.양미간을 찌푸리며 둘러보던 그가 반승제의 외침을 들었다.“혜인이 봐줘요.”배현우는 가소롭게 생각했다. 이 여자가 죽든 말든 자신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혹시 죽으면, 반승우가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르는데?반승제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그는 다가갈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그러나 그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소파에 누워있는 성혜인을 향했다. 성혜인은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린 채였고 이마가 땀으로 젖어있었다.반승제는 한 손으로는 성혜인의 손을 다정히 잡고, 한 손으로는 부지런히 땀을 닦아주었다.배현우는 저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와 성혜인을 관찰했다.“혜인이 최근에 뭐 먹은 거 없어?”반승제가 얼른 성혜인에게 물었다.“혜인아, K 씨가 혹시 뭐 먹였어?”성혜인은 자신이 먹었던 이상한 약들을 떠올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약은 여러 번 먹었는데 성분은 잘 몰라요. 그저 그중 하나가 한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만 알아요.”성혜인은 고통에 시달리며 맥없이 반승제의 손을 잡았다.반승제가 배현우를 바라보았다.“채혈이라도 해볼까요? 혹시 아직 약물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니까요.”이때 배현우가 옆에 앉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나한테 보여줘서 뭐 해. 내가 의학을 아는 것도 아닌데.”말실수한 것을 자각한 그가 어깨를 약간 으쓱했다.“네 의학 잘 안다는 친구 오면 다시 보지 뭐.”배현우의 말이 끝나자 머릿속에 반승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신체에 아직 약물이 남아있다면 해독제는 내가 빠르게 만들 수 있어. 약물이 남아있지 않다면 해결하기 어려울 거야.”“얼마나 어려운데?”그러나 반승우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혜인이한테 지금 느낌이 어떤지 물어봐 줘. 혹시
“지능 높은 사람들을 통제한다는 게 무슨 뜻이야?”“지능 높은 사람들은 이 약물을 먹으면 초반에는 마음이 더 굳세어지지만 며칠 더 지나면 아예 무너져버려. 최대 열흘이면 정신 나간 미치광이가 돼. 만약 이 약물이 맞다면 연구기지 사람이 혜인이 쪽에 붙은 거야.”배현우가 눈에 빛을 내며 씩 웃었다.그는 반승우가 연구기지를 언급할 때 목소리가 가라앉아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두려움이 아니다. 반승우는 복수를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 기지에서 당했던 모든 일에 대한 복수.“배현우, 내가 말한 거 그대로 전달해 줘.”“아니, 싫어. 너나 반승제나 다 멍청이야? 내가 왜 너흴 도와줘?”배현우는 득의양양하게 대답하며 옆에 있는 컵의 물을 마시려 했다.그러나 물이 아직 입에 들어오기도 전에 반승제가 컵을 쳐냈다.“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으면서 왜 마셔요. 물은 돈 안 내요?”그의 차가운 말투 속에 독기가 서렸다.“계속 봐줘야죠.”배현우: “...”제원에서 반승제를 이길만한 뒷배만 있었다면 배현우는 진작 그를 죽여버렸을 것이다.배현우는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치료 못 해. 아마 연구기지의 약일 거고 혜인이처럼 마음이 굳센 사람들 의지를 꺾기 위해 만든 약이야. 길어야 10일 버틸 수 있고 그 이후엔 정신이상자, 미치광이가 될 거야. 약 만든 사람이라야 해결할 방법을 알겠지. 연구기지는 세계의 의학 천재들이 모인 곳이야. 그 사람들이 연구해 낸 약물인데 고작 엘리트 하나가 어떻게 해독제를 만들어.그럼 혜인이 데려가서 가서 정밀검사 시킬 테니 신체에 남은 약물이라도 대조하면서 해독제 만들어요.”“내가 말했지. 엘리트 한 명 혼자서 절대 못 한다고. 게다가 이미 약물이 사라진 지 오래일 텐데. 이래서 그 무리가 무섭다는 거야. 보아하니 너흴 견제하는 사람들이 꽤 대답한 신분인 것 같은데. 연구기지에서도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 적어도 관리계층 급이야.”반승제의 안색이 눈에 띄게 흐려졌다.사업으로 돈을 버는
고통 때문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어도 성혜인은 반승제가 한 말을 똑똑히 들었다.무엇을 알겠다는 거야?성혜인이 그의 소매를 꽉 쥐었지만 그는 묵묵히 성혜인을 껴안을 뿐이었다.성혜인은 그저 자신이 깊은 물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들고 귓가가 윙윙거렸다.반승제가 옆의 두 사람에게 물었다.“고통을 줄이는 약은 없나요? 진통제는요?”진세운이 성혜인의 얼굴을 훑어보더니 대답했다.“나한테 진통제가 있긴 한데. 효과는 겨우 3일이야. 게다가 3일이 지나면 고통이 배가 돼.”배현우가 의외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연구기지에서 만들어낸 약물에 대응할 수 있는 진통제, 그 진통제가 있는 사람 역시 보통이 아니다.“그럼 먹게 해줘. 힘들어하는 거 더는 못 보겠어.”잠긴 목소리로 어렵게 대답한 반승제가 진세운이 바늘을 꺼내 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이때, 성혜인이 어디서 힘이 솟구친 건지 반승제의 손목을 움켜쥐었다.“주사 안 맞을래요. 승제 씨 마음 다 이해하는데 그래도 전 가고 싶지 않아요. 승제 씨 곁에 있을래요.”성혜인은 혼신의 힘을 다해 한자 한자 어렵게 말하고 있었다. 안색은 백지장같이 창백했고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얼굴에 아무런 핏기가 보이지 않았고, 게다가 눈앞도 보이지 않으니 말로써 그 초췌함을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그런데 반승제가 어떻게 제 애인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혜인아, 일단 진통제만.”“싫어요.”그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만 까무러칠 뻔했다.진세운도 동작을 멈추고 반승제에게 다시 물었다.“정말 맞힐 거야? 설마 3일째 되는 날 효과가 사라지면 바로 보낼 생각인 거야?”반승제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별다른 방법이 없다.전에 성혜인이 K 씨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의 목적이 무엇이든 적어도 성혜인의 목숨을 살려둘 것이다. 또 수령에 대해 말하기도 했었다. 지금 상황도 말을 듣지 않아 복수 당한 것이라고 했다.반승제가 한쪽
반승제에게 있어 누군가를 이토록 정성스럽게 보살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성혜인의 몸을 깨끗하게 씻기고, 수건으로 세심하게 닦은 후에야 침대에 눕혔다.성혜인의 머리카락도 섬세하게 수건으로 감싸고 씻겼으므로 조금도 젖지 않았다.반승제는 밤새 성혜인의 침대 곁을 지키며 한 발짝도 떠나지 않은 채 얼굴을 주시했다.아무리 봐도 보고 싶은 얼굴이다.반승제는 성혜인과 손가락을 살며시 걸고 침대에 엎드린 채 밤을 새웠다....성혜인이 깬 것은 다음 날 아침 7시였다. 눈을 뜬 그녀는 아무 탈 없이 목이 잠긴 것만 느꼈다.“승제 씨, 지금 몇 시예요?”“아침 7시.”“저 어제 어떻게 잤어요? 조금 어수선한 것 같았는데.”“세운이가 약 처방해 주고 갔어.”성혜인은 어제 정신이 몽롱했던 상태였기에 어젯밤 들은 내용은 이미 잊은 뒤였다.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몸 상태가 유달리 좋은 것을 느꼈으며 기분도 상쾌했다.“무슨 약이요? 저 오늘 상태가 많이 좋아진것 같아요. 요즘 계속 머리도 무겁고 이상한 착각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승제 씨가 제 옆에 있다는 게 실감 나서 너무 기분 좋아요.”성혜인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그의 손을 더듬었다.반승제는 입술을 꾹 깨물며 그녀를 꼭 안았다.“응.”“매일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몸이 편해져서인지 얼굴의 미소가 더 환해 보였다.반승제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성혜인을 안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이렇게 반승제가 말이 없을 때면 성혜인은 불안했다.“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아니, 오늘은 아침으로 뭘 해줄지 생각하고 있었어. 내가 직접 요리해 줄게.”요리한단 말에 성혜인은 자신이 칼로 찔렀던 것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상처 좀 볼게요.”성혜인이 그의 옷을 벗기려 할 때, 반승제가 성혜인의 손을 꽉 잡았다. 마치 그녀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소중히.성혜인은 설레는 마음에 입꼬리를 올리며 예쁘게 웃었다.“깊게 찌른 것도 아닌데, 괜찮아. 나 요리하러 갈 테니까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
반승제에게 부축되어 차에 탄 성혜인은 더듬거리며 자신의 핸드폰을 찾아 꺼냈다.“승제 씨랑 대화창 어떻게 들어가는지 알려줘요.”반승제가 그녀의 핸드폰을 가져와 자신과의 카카오톡 대화창을 열었다.성혜인이 또 물었다.“그럼 음성메시지는요?”반승제가 성혜인의 손가락을 잡고 위치를 알려주며 화면을 터치했다.“여기, 길게 누르면 음성메시지가 보내져요.”성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운전해요.”반승제가 안전벨트를 매주고 조용히 차를 몰았다.회사의 최상층까지 부축받아 도착했을 때,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 한 여인의 귀청을 찢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다 회사 동료 아니에요? 어떻게 애 일을 하나도 몰라? 설마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걔 몸이 탐나서 돈 주고 산 건 아니죠? 어쩐지 어린 계집애가 돈을 잘 벌어온다 했더니, 다 이렇게 벌어온 거였구나! 전엔 온몸에 누군가한테 빨린 흔적이 가득한 채로 나 만나러 나온 적도 있었지. 정말 천한 년이야. 대체 어떻게 나한테서 저런 천한 년이 나왔을까!”“여기저기 흘리고 꼬시고 다니느라 정신없지. 역겨워 죽겠어, 정말. 지금 당장 저한테 설명해야 할 거예요. 여기 사장 안 나오면 바로 내려가서 언론사 불러올 거야. 당신들 회사 어떤지 똑똑히 알게!”성혜인은 자신의 딸을 저렇게 폄하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그녀가 금방 최상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한서진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대표님.”다른 사람들도 분분히 성혜인을 향해 인사했다.“대표님, 안녕하세요.”곧이어 모두의 시선이 반승제에게 집중되었다. 모두 놀란 눈치였다.반승제와 임수아 사이 관계에 대해서는 모두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대표님과 만나는 건가?어떤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왔다.특히 그중 온수빈은 주먹을 꽉 쥐며 분해했다.모두가 성혜인에게 인사하는 것을 보고 노임향은 도도하게 고개를 돌렸다.“당신이 여기 대표예요? 대체 직원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예요! 하리가 밖에서 몸 판단
노임향은 장하리를 붙잡더니 목에 있는 스카프를 뜯어버렸다.장하리는 어젯밤 심하게 시달리는 바람에 오늘 아침 늦잠을 잤다. 게다가 어젯밤 바로 남자가 사는 곳에서 자버렸기에 알람을 설정하는 것도 잊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회사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목의 울긋불긋한 자국들이 그대로 드러났고, 노임향은 딸의 옷을 직접 아래로 끌어내려 사람들이 더 잘 볼 수 있도록 했다.“다들 봤어요? 아, 회사 대표라는 작자도 보셨어요? 이 천한 년이 분명 남자 만나기 위해 출근도 안 한 게 분명해. 이게 몇 번째인지는 아무도 모르겠죠. 이 흔적들 다 여태 얘가 몸 판 남자들이 남긴 거야. 이제 정말 더러워서 더 못 봐주겠기에 회사에 고발하러 온 거예요. 여러분, 모두 보세요! 이런 애와 일해서 무슨 전염병에라도 걸릴까 두렵지 않아요?”“엄마!”아침에 생리를 막 시작했기에 장하리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기력 없이 자기 옷을 끌어 올리는데 또 한 번 노임향에게 뺨을 맞았다.젊었을 때 배달일을 했던 노임향은 손아귀 힘이 엄청났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몸이 좋지 않은 장하리는 피하려야 도저히 피할 수도 없었다.목의 흔적을 본 순간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안색은 눈에 띄게 변했다.모두가 이제 노임향의 말을 믿게 되었다. 그게 아니라면 저 울긋불긋한 흔적들은 어떻게 생긴 것이겠는가.게다가 장하리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말은 종래로 들은 적이 없었다. 한 남자 동료가 그녀에게 구애할 때 장하리는 본인이 솔로라고 했었다.그런데 몸에 흔적이 이리도 많이 남은 것을 보니, 어젯밤 남자와 격하게 밤을 보낸 듯 했다.평소에 조신하게 행동하던 장하리가 실제로는 이렇게 문란하게 놀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모두 갑자기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성혜인은 앞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했다. 그저 노임향이 장하리의 뺨을 때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성혜인이 반승제의 몸에 살짝 기대며 속삭였다.“무슨 일이에요?”왜 사람들이 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