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리는 차에 앉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그녀는 남자가 오늘 저녁 기분이 별로 안 좋다는 것을 예민하게 눈치챘다.그가 기분이 안 좋을 때면 그녀는 더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호텔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녀는 겁을 먹어 손바닥에 땀이 맺혔다.방에 도착했을 때 남자는 귀찮은 듯 양복을 벗더니 손목시계를 풀면서 그녀에게 엎드리라는 신호를 보냈다.장하리는 이걸 하기 전에 샤워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남자는 흥미만 중요했다.“샤워하고 오겠습니다.”“필요 없어. 엎드리면 돼.”장하리는 감히 그를 거역하지 못했다. 그 앞에서 그녀는 발언권이 없었다.말을 잘 들어야 조금 부드럽게 했다.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창턱에 엎드려 실크 스커트를 위로 허리춤까지 끌어올렸다.냉정히 말해서, 그녀는 몸매가 좋고 일을 잘하는데 하필 성격은 연약해 그 사람 앞에서 줏대가 없었다.처음에 그녀는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것이 역겨웠다. 처음 몇 번은 계속 토했지만 지금은 토하지 않는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억눌려 있던 소리를 내기도 한다.남자는 그녀가 그런 소리를 내도록 유도한 후 그녀를 모욕하고, 수치와 분노로 그녀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는 것에 재미가 들린 것 같다.그녀가 엎드리자, 그도 사양하지 않고 허리띠를 풀었다.장하리는 빛이 반사되는 거울을 감히 보지 못했고, 그가 다가오자 몸이 제멋대로 떨렸다.곧이어 그가 그녀의 그곳에 무언가를 바르는 것 같았다.“이게 뭐예요?”그녀는 조금 당황했다. 그가 저속한 곳에서 저속한 처방을 받아왔을까 봐 걱정됐다.“너를 즐겁게 해주는 물건이니 움직이지 마. 곧 알게 될 거야.”장하리는 겁에 질려 온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런 떨림은 남자에게 쾌감을 주었다.그는 그녀의 허리를 어루만지며 가볍게 애무했다.그럴수록 장하리는 더 무서웠다. 그녀는 곧 가려움을 느꼈지만 이 가려움은 겉이 아니라 깊은 곳에 있어 긁을 수 없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몸을 비비 꼴 수밖에 없었다.그 물건이 효과를 냈다는 것을 안 남자는 이때다 싶어
방우찬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씩씩거렸다. 그는 ‘창녀’ 두 글자를 아예 장하리의 이마에 새기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장하리는 가소롭기만 했다. 그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자신을 비난하는지 알 수 없었다.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아 문을 닫으려는 찰나, 방우찬이 그런 장하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왔다,방 안의 냄새는 이미 거의 사라진 뒤였는데 장하리가 어제 입은 옷이 여전히 창가에 널브러져 있는 걸로 보아 어디에서 거사를 치른 건지 추측할 수 있을 정도였다.그리고 장하리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은 그녀가 직접 가져온 것이었다.방우찬이 옷이 있는 창가를 가리키며 윽박질렀다.“야, 좋았냐?”인격모독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장하리가 또다시 뺨을 내리치려고 손을 들었지만, 이번에는 방우찬의 억센 힘에 막혀버렸다.“내가 틀린 말 했어? 이런 대담한 짓을 할거였으면 들킬 것도 각오했었어야지. 두고 봐, 장하리. 지금 바로 어머님께 네가 밖에서 몸 팔고 다닌다고 다 말해버릴 거니까.”부모님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장하리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이 몇 년 동안 돈으로 어렵게 가족의 환심을 샀는데 방우찬 하나 때문에 또 무너뜨릴 순 없다.“당장 나가.”방우찬은 냉소하며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그 남자도 그냥 그러했나 보지? 아니면 지금 내 앞에서 이렇게 소리칠 힘이 남아있을 리가. 규연이는 나랑 한 번 하고 나면 싸울 힘도 없이 며칠간 곤히 누워있어. 하리야, 그쪽으로 만족하지 못하겠으면 나 찾아와도 돼. 그 사람이 주는 돈 따위 나도 줄 수 있어.”장하리는 역겨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전에 저런 남자를 맘에 들어 했던 자신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다.“6억. 그 사람이 준 돈이야. 오빠도 이만큼 줄 수 있어?”뭐? 6억? 고작 여자랑 하룻밤을 위해 6억이라고?방우찬은 자신이 환청을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그가 또 냉소했다.“웃기시네. 넌 네 몸이 그만큼 한 값이
방우찬이 떠나고 나서야 장하리는 맥없이 문을 닫고 벽에 기대었다.온몸이 아팠다. 이렇게 방우찬이 소란을 피우고 가니 더욱 피곤한 듯했다.장하리는 눈마저 뻑뻑한 듯 해 힘겹게 눈을 깜박였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늘이 주말이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침대에 몸을 뉘려던 찰나,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에게서 온 전화였다.그녀에게 남은 가족은 어머니 한 명뿐이었다이었다. 이미 몇 년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더구나 딸에게 전화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오늘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장하리는 심장이 떨려옴을 느끼며 핸드폰을 들었다. 손가락까지 벌벌 떨렸다.수신 버튼을 여러 번 헛누르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다.“엄마...?”“하리야, 저녁에 시간 좀 있니? 할 말이 있다.”어머니가 먼저 약속을 잡은 것이 처음이었기에 장하리는 조금 놀라운 마음이었다.예전에 부모님께서 이혼하지 않으셨을 때 그녀는 아버지에게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만 재판 당시 어머니에게 양육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가족 간의 사랑이란 느낄 수 없는 것이 되었다.사람은 늘 어릴 적 갖지 못한 것에 미련을 갖는 법이다. 장하리는 자신의 어머니가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용돈을 드릴 때만 말투가 부드러워진다는 것을 눈치챘음에도 모른척했다. 그 부드러움이 바로 자신이 미친 듯이 원하던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는 병적인 심리이기도 했다. 일찍부터 알아차렸지만 고칠 수 없었고 그런 자신을 미워하기도 했다.하지만 이미 집에 돈을 보내는 것도 습관이 된 터였다.어머니의 입에서 관심 어린 말이 들릴 때마다 그녀는 더더욱 울분이 쌓였다.“네, 엄마. 장소 정해주세요.”노임향은 딸이 나올 것을 확신하고 위치를 보냈다.주소를 본 장하리는 오후까지 호텔에서 숙면을 취했다.이제 가을이 되었으므로, 그녀는 스카프까지 두르고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만나기로 한 곳은 국숫집이었다. 돈을 지극히도 아끼는 노임향이 딸에게 비싼 음식을 대접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차로 돌아온 장하리는 피곤함을 느끼며 좌석에 기대었다. 어젯밤 잘 쉬지 못한데다가 볼까지 이따금 아팠다. 차창을 통해 가게를 들여다보면 돈뭉치를 세며 기뻐하는 노임향의 얼굴이 보였다. 눈에 희열이 가득한 모습. 잠시 후, 한 남성이 가게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장하리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자신의 의붓 아버지였다. 처음엔 하마터면 어머니의 남자에게 당할 뻔했었지. 그때 노임향과 마주친 뒤에도 그는 얼굴에 당황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노임향이 절대적으로 딸을 불신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노임향은 장하리의 말따위 듣지 않고 매를 들었다. “이 천한 년. 어린 애가 어떻게 아버지를 꼬실 생각을 해? 당장 꺼져버려.”장하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자신이 그런 일을 겪고서도 어머니에게 뺨을 맞고 욕설을 들었어야 했는지.나중에 방우찬과 만나게 된 후 아버지는 더이상 자신에게 손을 대지 못했다. 장하리는 두 손으로 운전대를꽉 잡았다. 아예 액셀을 밟아 지금 당장 차로 치어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생겼다. 그는 살이 더 찐 상태였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꿈틀거리는 벌레같았다. 왜 자신의 어머니가 저런 남자를 보물단지처럼 애지중지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장하리는 역겨워졌다. 서둘러 차에서 내려 한쪽에 있는 화단 앞으로 가 헛구역질을 했다. 그 사람의 등장에 어릴적의 트라우마가 다시 발작해 눈앞이 어지러워졌다. 그녀는 심지어 방금 자리에 어머니가 저 사람까지 초대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더 메스꺼워져 두번이나 토했지만 나오는 것은 노란 액체 뿐이었다. 오늘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까. 장하리는 차에서 생수 한병을 꺼내 입을 헹구려고 했다. 그러나 정신이 혼미해졌을 무렵 귓가에 느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리? 하리 맞구나. 너무 멀어서 못 알아봤어.”살이 뒤룩뒤룩 찐 벌레가 장하리에게로 걸어온다. 장하리가 고개를 들자 기름진 턱과 번쩍이는 이
성혜인의 허리를 감싸 안으려던 반승제가 빠르게 뒷걸음치는 그녀를 보았다. 너무 갑작스레 뒤로 물러나는 바람에 하마터면 옆에 있는 큰 화분에 부딪힐 뻔했다.“혜인아!”다급히 성혜인을 부른 그가 성큼성큼 다가가려 했다.성혜인은 몸을 움츠렸고 머릿속이 심하게 복잡해졌다.그녀는 더듬거리며 몸을 일으켰다.“승제 씨, 저 가서 쉴게요. 머리가 아파서.”손가락 끝이 벽에 닿자 곧바로 벽을 더듬으며 성혜인은 반승제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바로 떠났다.반승제가 얼른 쫓아 나왔다. 성혜인이 복도로 왔을 때,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반승제 씨 오늘은 있어요? 여러 번이나 왔는데 나와서 만나지도 않고. 제 물건이 아직도 네이처 빌리지에 있는걸요.”밖에서 들려오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임수아가 고개를 들어 성혜인을 보았다. 그녀는 단번에 자신과 비슷한 얼굴인 이 여인이 반승제가 좋아한다는 그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성혜인은 그저 발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 없이 벽을 더듬으며 떠나려 했다.임수아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생각했다.‘그래서, 그 좋아한다는 여자가 맹인인 건가?’그녀는 순간적으로 자신에게 승산이 있다고 느껴졌다. 정상적인 남자라면 당연히 맹인보다는 정상인이 나지 않겠는가.그녀가 입꼬리를 반달처럼 예쁘게 접으며 그제야 성혜인을 발견한 듯 능청스럽게 말을 걸어왔다.“언니, 앞이 잘 안 보여요? 어디 가시려고요?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저 여기 잘 알아요.”성혜인이 대답도 하기 전에 임수아가 그녀의 팔뚝을 잡아 부축했다.이에 성혜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거절했다.“아,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이제 그만 놔주세요.”성혜인은 정말로 다른 사람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게다가 낯선 사람에게 부축받는 건 더 익숙하지 않았다.지금 성혜인은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후각과 청각은 매우 영민해진 상태였다. 슬쩍 다가오는 여인의 향기를 맡아보니 전에 반승제에게서 맡았던 냄새와 같았다.성혜인은 배현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러나 실천에 옮길 용기는 없었기에 그저 눈물이 나왔다.“대표님 분명 저 좋아한다고, 절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했었으면서... 다 거짓말이었어.”그 목소리가 매우 컸기 때문에 침실 안에 있는 성혜인은 듣지 못했을 리 만무했다.성혜인은 그제야 제가 사라졌던 그 시간 동안 확실히 반승제가 다른 여자에게 곁을 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적어도 이 점에 대해서 배현우는 성혜인을 속이지 않았다.여자아이의 울음소리에 성혜인이 벌컥 문을 열었다.반승제는 짜증이 나던 터였다. 이미 저에게서 몇억이나 가져가 놓고 이런 행패를 부리고 있으니.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며 뒤돌아보았고 문 앞에 서 있는 성혜인을 발견했다.성혜인은 앞이 보이지 않았기에 한 손으로 담담히 문틀을 잡고 있었다.“승제 씨.”성혜인의 부름에 반승제가 우물쭈물 대답하며 얼른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 혜인아, 일단 좀 더 자는 건 어때? 안색이 안 좋아 보여.”“승제 씨, 이 여자애는 누구죠?”반승제는 시원히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성혜인의 손을 꼭 잡을 뿐이었다.오히려 곁에 있던 임수아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저는 반 대표님 여자 친구예요. 얼마 전에 사귀게 되어서 저 때문에 회사도 여러 개 인수했는데 이제 와서 헤어지자네요... 언니, 혹시 제 존재가 언니한테 위협이 되는 거예요? 전 대표님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다른 명분은 다 필요 없고 전 그냥 대표님이 정말 좋아서 곁에 있고 싶은 것뿐이에요. 용서해주세요...”임수아가 무릎을 꿇었다.성혜인은 그저 무릎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만 들었다.잠시 멍해 있다가 성혜인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이 아이는 용서를 구하는 방법으로 오히려 자신을 순진한 동생 하나 품어주지 못하는 나쁜 언니로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성혜인은 아무 말 없이 차갑게 서 있었다.그리고 그녀가 말이 없자 반승제는 더 조급해졌다.결국 반승제가 잘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는 얼른 심인우와 경호원을 불러왔다
반승제가 성혜인의 손을 부드럽게 문지르다 품에 안고 가볍게 토닥였다.“일단 들어가서 좀 자.”성혜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향기가 또 코끝에 퍼지는 것이 느껴져 짜증이 났다.더 이상 임수아의 일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짜증이 났다.“이 훈향 진세운에게서 가져온 거예요?”“승제 씨, 이 훈향 좀 전문 기관에 가져가서 검사해 보면 안 돼요? 냄새가 너무 불편해요.”그녀는 K 씨에게서 맡았던 향기에 대해 감히 말할 수 없었다. 어쨌든 진세운은 자신을 도와주었고 이 일로 인해 반승제가 또 자신에게 의심을 품는다면 앞으로 그들의 관계는 절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그녀는 천하의 죄인이 될 것이다.성혜인은 터질 듯이 아픈 머리를 어루만지며 또 화가 치밀어올랐다.“그냥, 훈향의 성분이 궁금해서 그러는 거예요.”그녀가 특정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을까 걱정되었던 반승제는 얼른 심인우를 시켜 검사해 보도록 했다.한 시간 후 기관의 검사 보고서가 왔는데 훈향의 모든 성분은 안전하며 건강에 좋은 것들이었다.반승제는 특별히 이 검사 보고서를 성혜인에게 읽어주었다.“이 재료 중에 혹시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어? 세운이한테 제거해달라고 하면 돼.”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 다음에야 널뛰기하던 심장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그러나 성혜인은 여전히 자신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녀는 과하게 화를 내고 의심이 많아졌다.반승제를 다치게 한데다가 지금은 뺨까지 때렸다.심지어 임수아가 구구절절 반승제가 자신을 얼마나 아꼈었는지 설명할 때, 포커페이스조차 되지 않았다.그녀는 반승제에게 가차 없이 심한 욕설을 퍼붓고 싶어졌고, 이른바 그의 호감까지 비웃고 싶었다.이는 평소의 감정 컨트롤을 잘하던 그녀와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이렇게 추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었던가.성혜인이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뺨... 부었어요?”“아니, 걱정 안 해도 돼.”임수아는 이미 끌려간 뒤였고 짐도 보이지 않았다
반승제의 손에 이끌려 침대에 누웠지만 심한 두통 때문인지 졸리지도 않았다.“혹시 세운 씨 제 두통의 원인에 대해서 말한 적 없어요?”“그때 머리 부상 때문에 아직도 피가 고여있어서 가끔 어지럼증을 느낄 거라 했어. 그러니까 많이 쉬어야지.”성혜인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품에 안겼다. 고작 십몇분의 시간이었는데 이마는 이미 두통으로 인해 땀이 맺혔다.반승제가 끊임없이 성혜인의 등을 토닥이며 책을 읽어주었다.“읽어줄게.”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듣기 좋았다. 특히나 책을 읽어줄 때.반승제의 목소리를 들으니 조금씩 졸음이 몰려왔다.졸리면서 행복하기도 했다.꿈과 현실 그 사이의 흐린 의식 속에서 또 K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그날 서재 밖에서 몰래 들은 대화처럼 말이다.목소리는 마치 귓가에서 울리는 듯 가까웠다.성혜인은 문득 겁이 나며 불안해졌다. 처음 잠에서 깨어났을 때, 성혜인은 며칠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했다.그럼 이번엔 또 얼마나 혼수상태에 빠지려는 건가.성혜인의 몸은 석상처럼 딱딱히 굳어있었다. 옆에선 그 목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그들은 낮은 목소리로 어떻게 성혜인을 자기 뜻대로 조종할지 의논 중이었다.그 말들을 들으면서도 성혜인은 가위에 눌린 듯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누군가 손으로 그녀의 몸을 쓰다듬을 때까지.성혜인은 깜짝 놀라며 손을 피하려 했다. 숨을 가쁘게 쉬며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몸은 중력을 10배로 받은 듯 무거웠고 손가락조차 들 수 없었다.“놔! 놔요!”성혜인이 손을 뿌리치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지려 했다. 그러나 이때 K 씨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혜인 씨, 이건 혜인 씨가 제 말을 듣지 않은 대가예요. 누가 혜인 씨더러 그 피어싱을 빼라고 했죠? 저 지금 너무 화나는데요?”“우리가 다시 협력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당신에게 달려있다고 분명 말했을 텐데요. 혜인 씨는 오늘 확실히 절 실망하게 했어요.”K 씨의 목소리는 전과 다름없이 온화하고 부드러웠지만 여전히 웃음 속에 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