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이건 힘들 거 같아요.”윤혜인이 손에 쥔 명함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난감한 듯 말했다.물론 그녀도 이 작업실에서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도 전에 이 작업실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었으며 이곳 직원은 최저 학력도 디자인 학과 박사였다. 그뿐만 아니라 다들 해외 유학파들이었기에 안목과 작품들이 더할 나위 없이 대단했다.“힘들 게 뭐가 있어. 네가 대학교 때 디자인했던 작품을 임 대표님께 보여줬는데 너에게 아주 큰 관심을 보였어.”윤혜인은 한구운이 그녀를 위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기에 더욱 난감하고 미안했다.그녀가 뭘 고민하는지 잘 알고 있는 한구운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다독였다.“걱정하지 마. 임 대표님은 내가 추천한 사람이라고 절대 편의를 봐주진 않아. 넌 네 노력으로 이 일자리를 따내야 돼. 원고를 그릴 시간이 하룻밤밖에 없는데 괜찮겠어?”“그럼요, 문제없어요.”유일한 걱정이 사라지자 윤혜인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낙하산이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부를 보는 거라면 그녀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다.이때, 소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사전에 윤혜인과 약속이 잡혀 있었던 소원은 커피숍 앞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선배님, 죄송해요. 제가 다음엔 꼭 식사를 대접할게요.”윤혜인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하자 한구운이 다정하게 웃었다.“괜찮아.”커피숍에서 나와 소원의 차를 타고 떠나는 윤혜인을 지켜보던 한구운은 환한 미소가 점점 사라지더니 이내 무서울 정도로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한편, 소원과 윤혜인은 블루라인 와인바로 들어섰고 한 테이블에 자리잡고 앉았다.아직 저녁 7시밖에 되지 않았기에 와인바에는 아직 손님이 많지 않았다. 웨이터가 다가오자 소원은 이런저런 술을 다양하게 잔뜩 시켰고 술을 마시지 않는 윤혜인을 위해 자몽 주스도 한 잔 주문했다.오랜만에 만난 윤혜인을 보며 소원이 다급하게 물었다.“그래서 요즘 이준혁과 어떻게 지내?”“곧 이혼할 거야.”임세희가 오늘 하루만 해도 저렇게
임세희는 취조하는 듯한 이준혁의 눈빛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소식은 그녀가 임씨 아주머니를 시켜 이준혁 본가 도우미를 매통하여 얻은 정보였기에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세희야, 난 누가 나한테 거짓말하는 걸 제일 싫어해!”임세희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이준혁이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준혁 오빠,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말을 하던 임세희는 갑자기 서러운 표정을 지으며 눈물까지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내가 어떻게 알겠어? 그냥 추측한 거야. 오빠가 할아버지한테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잘하는데 당연히 그런 일은 할아버지께 비밀로 했겠지!”이준혁은 여전히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믿지 않는 눈빛이었다.임세희는 그의 눈빛에 화가 치밀어 올라서 참고 있던 말을 내뱉고 말았다.“준혁 오빠, 설마 혜인 씨를 좋아하게 된 거야? 그래서 이혼하기 싫은 거야?”오늘 이 질문을 여러 번 들은 이준혁은 눈살을 확 찌푸렸다.그가 윤혜인을 좋아하게 된 거라고? 그럴 리가! 그는 절대 아무도 좋아하게 될 리가 없다!그 순간, 머릿속에는 눈시울을 붉히고 있던 윤혜인의 모습이 떠올랐고 갑자기 마음이 움찔했다.이준혁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하고 있다.임세희는 아무 대답도 없는 이준혁을 보며 분노가 차올랐고 절망스러웠다!그녀가 계속 이준혁에게 따져 물으려던 찰나, 임씨 아주머니가 병실로 들어와 그녀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고개를 저었다.그러더니 갑자기 과장된 연기로 엉엉 울기까지 했다.“우리 가여운 아가씨, 조금 전에 의사가 흥분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떡하시려고 그래요!”순간, 임씨 아주머니의 의도를 눈치챈 임세희도 아주머니를 와락 끌어안더니 슬피 울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는 두 사람을 보며 이준혁은 그제야 임세희가 환자라는 사실이 떠올랐고 이내 날카로운 눈빛을 거뒀다.그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세희야, 네가 꼭 나에게 시집오고 싶은 지 잘 생
“아니, 친구가 차린 부업을 엎어버린 다니! 지금 그게 할 소리야?”김성훈의 호통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 이준혁이 병실을 나서기 전에 임세희를 안아 침대에 다시 눕혔다.이 모습에 임세희는 다시 의기양양했다. 그녀가 이렇게 불쌍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이준혁은 무조건 마음이 약해지니까! 이렇게 고분고분 그녀를 다시 안아주니까!두 사람은 알고 지낸 세월이 이렇게 긴데 이준혁은 그녀에게 정이 들지 않았을 리가 없다. 다만 그는 아직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모르고 있을 뿐이다.이런저런 생각에 눈물을 글썽이던 임세희가 손을 뻗어 이준혁의 목을 감싸려던 순간, 이준혁이 고개를 돌려 임씨 아주머니를 보며 싸늘하게 경고했다.“앞으로 아가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면 아주머니는 이제 그만 고향으로 내려가서 노후를 즐겨도 될 것 같습니다!”이 말은 당부이자 적나라한 경고였기에 듣고 있던 임씨 아주머니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아주머니는 임세희가 태어난 순간부터 그녀를 모시고 있었고 이 사실을 이준혁도 알기에 평소에 아주머니에게 예의를 갖췄다.오늘처럼 이렇게 직설적으로 경고를 한 건 처음이었다.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임씨 아주머니가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도련님.”임세희는 뒤에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뒤로 안 돌아보고 떠나는 이준혁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가 침대에서 내려와 그를 쫓아가려던 그때, 임씨 아주머니가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았다.“아가씨, 겨우 남은 준혁 도련님의 인내심까지 도전하지 마세요.”임씨 아주머니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온몸에 힘이 풀려버린 임세희가 침대에 축 늘어져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아줌마, 나 진짜 너무 무서워요. 준혁 오빠가 나 진짜 버리고 가면 어떡해요? 진짜 나 필요 없다고 하면 어떡해요?”임씨 아주머니가 임세희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아가씨, 준혁 도련님은 잠시 이혼을 미뤘을 뿐이에요. 두 사람을 이혼하게 만들 방법은 많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일단 참고 지켜보는 거예
“자, 어디 한번 소리 질러봐.”팍!남자가 깐족거리며 말을 하던 순간, 그의 머리 위로 와인병이 꽂혔고 유리조각들이 여기저리 튀었다.“당장 내 친구한테서 떨어져!”손에 절반 남은 와인병을 들고 있던 소원이 남자를 가리키며 언성을 높였고 얼굴에서 피가 줄줄 흐르던 남자가 소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이 천박한 계집애가! 너 남자한테 잘 보이려고 이렇게 입고 와인바에 온 거잖아! 어디서 순진한 척이야!”말을 하던 남자가 테이블 위에 있던 와인을 들더니 윤혜인을 보며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냈다.“이 계집애는 오늘 내가 반드시 따먹을 거야!”한편, 이를 지켜보던 웨이터가 곁에 있던 김성훈을 보며 다급하게 물었다.“대표님, 내려가서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우리가 나설 입장이 아니야.”김성훈이 가볍게 피식 웃었다.이때, 팍 소리와 함께 재킷을 입은 남자 손에 들고 있던 와인병이 그대로 본인의 머리에서 깨져버렸고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다.“이런 젠장, 누구…”남자가 욕설을 채 퍼붓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팔이 잡혔고 몸이 하늘 위로 붕 떴다가 이내 바닥에 던져졌다.다음 순간, 이준혁이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의 얼굴을 발로 짓밟았고 와인바에 남자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와인병 던지려고 했어?”싸늘하게 굳은 이준혁의 목소리가 들렸고 얼굴이 짓밟힌 남자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수려하게 생긴 이준혁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마치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 같았다.이때, 이준혁이 손가락을 살짝 튕기자 웨이터가 카트에 비싼 술을 가득 담아 그의 앞에 대령했고 이준혁은 그 중 한 병을 손에 쥐고는 얼굴을 짓밟고 있던 발을 거둔 채 술병을 그대로 떨어트렸다.술병이 바닥에 떨어진 채 산산조각이 났고 유리파편들은 이리저리 튀었으며 하마터면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남자의 눈에 박힐 뻔했다.“악! 악!”그 남자는 소름 끼칠 정도로 처참한 비명 소리를 질렀고 주위에 몰려 있던 손님들은 경악에 찬 눈빛으로 이준혁을 바라보았다.저런 사
윤혜인의 말은 이준혁이 더 이상 전처의 일에 관여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었다.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준혁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고 살기에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다.“난 아직 네 남편이고 네 일에 관여할 자격이 있어.”말을 마친 이준혁은 윤혜인을 확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품에 안아 올린 채 그대로 와인바를 나섰고 윤혜인은 주먹으로 그의 가슴팍을 때리며 소리를 질렀다.“이준혁 씨, 이거 당장 놔요! 당장 내려놓으라고요!”하지만 그녀의 힘으로는 이준혁에게 그 어떤 타격도 주지 못했다.김성훈이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끝까지 아니라고 하더니, 대체 누가 이혼하기 싫은 건지 모르겠네.’이때, 소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윤혜인을 쫓아가려고 했지만 김성훈이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소원 씨, 윤혜인 씨는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경한이가 위에서 소원 씨를 기다리고 있어요.”그의 말에 소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고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던 그녀는 김성훈의 부축에 겨우 몸을 가눴다.“소원 씨, 왜 그래요?”김성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도대체 육경한이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소원이 이렇게까지 겁을 먹은 거지?“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대표님.”겨우 정신을 차린 소원이 창백한 얼굴로 한 걸음씩 위층으로 올라갔다.한편, 위층의 룸이 비스듬히 열려 있었고 안에서는 야릇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소원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큰 결심을 한 듯 다가갔고 룸과 가까워질수록 살결이 맞닿은 마찰음이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밝은 불빛이 비추고 있던 룸 안에서 날카롭게 생긴 남자가 소파에 앉은 채 한 여인의 허리를 잡고 한데 엉켜 있었으며 그 여인은 황홀한 표정으로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도련님, 진짜 너무해요…”“좋아?”남자가 여인의 귀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으며 물었다.“너무 좋아요…”룸 밖에 서있던 소원은 안으로 들어가는 게 죽기보다 싫었지만 지난번 일을 생각하면 이를 악물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소파에
육경한이 소원을 두 팔에 가둔 채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 여긴 싫어? 밖에 가서 할래? 소씨 집안 공주님이 얼마나 방탕한 여자인지 보여주고 싶어?”입술을 덜덜 떨고 있던 소원이 육경한의 팔을 잡은 채 애원하듯 그를 쳐다보았다.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이 남자는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다.저번에 소원은 그저 싫은 내색을 조금 보였을 뿐인데 육경한은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소씨 가문 회사의 주식을 폭락하게 만들었고 충격을 이기지 못한 그녀의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소원이 아무리 빌고 애원해도 육경한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그녀를 만나주지 않았다.이제 드디어 그녀를 만나준 이상, 소원은 절대 이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된다.한편, 육경한이 싸늘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소원을 쳐다보며 그녀가 더러운 몸으로 순진한 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가 한국에 없던 이 몇 년 동안, 그녀의 몸은 수많은 남자들에게 놀아났을 것이다.이런 생각에 육경한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옷을 거칠게 찢어버린 뒤, 치마를 위로 올렸다.소원은 그렇게 목이 조인 채 소파에 누워 육경한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빛에는 조금의 연민도 없었으며 소원에게 끝없는 고통만 남겨주었다.소원은 시체 마냥 누워서 육경한의 갈취를 버텨내 수밖에 없었다.두 시간 뒤, 육경한은 소원의 몸 위에서 내려와 곁에 있던 옷을 바닥에 툭 던졌고 소원에게 입으라고 눈치를 줬다.소파에서 일어난 소원이 바닥에서 옷을 주웠다. 그 옷에서는 술집 아가씨들이 자주 쓰는 저렴한 향수 냄새가 물씬 풍겼다.소원은 코를 찌르는 향기에 속이 울렁거렸지만 그녀가 입고 온 옷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어졌기에 그가 준 옷을 입지 않을 수가 없었다.“우리 소씨 공주님이 표정이 별로 안 좋네, 왜? 만족 못했어?”육경한이 코웃음을 치며 비꼬자 휘청거리던 소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이 남자는 분명 조금 전에 그 여자와 충분히 즐겼을 텐데 대체 어떻게 아직도 힘이 저렇
하지만 윤혜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준혁이 왜 화를 내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화를 내야 하는 건 그녀 아닌가?이준혁은 증거도 없이 그녀를 모함한 것도 모자라 매번 임세희의 편에 서서 그녀를 괴롭힌 주제에…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윤혜인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이준혁 씨, 이준혁 씨… 제발 좀 천천히 달려요.”하지만 이준혁은 그녀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어 보였고 덜컥 겁이 난 윤혜인이 엉엉 울면서 쓰린 속을 부여잡았다.“이준혁 씨, 제발 차 좀 멈춰요! 저 진짜 토할 것 같아요. 제발 멈추라고요! 멈춰주세요… 웩…”결국 참다못한 윤혜인이 입을 막은 채 헛구역질을 했고 그제야 이준혁이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은 채 차를 세웠다.십 분도 안 된 사이에 두 사람은 스카이 별장에 도착한 것이다. 차가 멈추자 윤혜인이 다급하게 차에서 내려 별장 안에 있는 1층 화장실로 달려가더니 와락 토를 했다.하지만 저녁에 아무것도 먹지 않은 그녀는 속이 비어 있었기에 죽을 것처럼 아팠지만 아무것도 토해내지 못했다.이때, 이준혁이 그녀의 곁에 나타나 따듯한 물 한잔을 건넸고 윤혜인이 얼른 받아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참 마시고 나서야 속이 좀 편해진 윤혜인은 홱 돌아서서 이준혁의 가슴팍을 마구 때렸다.“이준혁 씨, 당신한테 생이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저는 살고 싶어요! 흑흑… 진짜 너무 놀랐단 말이에요…”엉엉 우는 윤혜인의 모습에 이준혁이 그녀를 품에 껴안았고 그의 셔츠 위로 떨어진 눈물은 그대로 그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조금 전에 너무 놀란 탓에 윤혜인은 아랫배에 통증이 조금씩 느껴졌고 혹시라도 뱃속의 아이에게 문제라도 생기진 않았을까 너무 걱정되었다.창백해진 윤혜인의 얼굴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 이준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어디 아파?”“이준혁 씨랑 무슨 상관이에요!”뱃속의 아이를 잃을 뻔했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오른 윤혜인이 그를 힘껏 밀어내며 소리를 질렀고 이준혁이 굳은 얼굴로 그녀를
윤혜인은 화장실의 차가운 벽에 등을 붙인 채 이준혁의 갈취를 받아내고 있었고 이 순간, 자신이 너무 못났다는 생각이 들었다.반항도 못하고 이렇게 이준혁에게 휘둘리다니.짜고 달달한 그녀의 눈물이 이준혁의 입술에 흘러 들자 그는 마음속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는 기분이 들었고 언짢은 듯 윤혜인을 놓아준 그는 그녀에게 완전히 흥미를 잃은 모습이었다.윤혜인이 손을 뻗어 그를 때리려던 순간, 이준혁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고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이준혁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경고를 날렸다.“어디 감히!”다시 한번 다른 남자를 위해 그에게 손찌검을 한다면 이준혁은 참지 못하고 그녀를 찢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이준혁이 너무 꽉 잡고 있었던 탓에 꼼짝도 할 수 없었던 윤혜인은 고개를 홱 돌린 채 그와의 스킨십을 피했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의 입술이 다른 여자의 몸에 닿은 적이 있다는 생각만 하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겨웠다.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강하게 반항하면 그녀만 손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윤혜인이 조금 전보다 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일단 이거 놔요.”간만에 부드러워진 윤혜인의 목소리에 마음이 약해진 이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녀를 놓아주었고 단 일초도 그와 함께 있고 싶은 않은 윤혜인은 홱 돌아서서 떠나려고 했다.하지만 다음 순간, 이준혁이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더니 그녀를 잡아당겨 다시 벽에 밀쳤다. 두 사람의 거리는 또다시 코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난 분명히 놨어.”이준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두 번 놓아주지는 않을 것이다.“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요…”말문이 막힌 윤혜인이 화가 난 듯 그를 노려보며 말했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준혁이 다시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이준혁은 왠지 화를 내는 윤혜인의 모습이 좋았으며 오늘 병원 주차장에서 영혼 없이 고분고분하던 그 모습보다는 훨씬 나았다.조금 전에 거칠었던 행동과 달리 이번에 이준혁이 선사한 키스는 매우 섬세했다. 목덜미로부터 시작하여 고
육연주는 다짜고짜 소원의 머리채를 붙잡아 탁자 위로 내리눌렀다.힘껏 눌러대며 외쳤다.“오늘 반드시 내가 그날 느낀 굴욕과 분노를 똑같이 느끼게 해줄 거야!”하지만 소원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이 정도의 고통쯤은 감내할 수 있었다.그녀는 그저 조용히 방민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방민아 씨, 약속은 지키셔야죠. 우리가 한 대로 이행해주세요.”방민아는 그녀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물론이죠. 전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니까요. 내가 한 말은 꼭 지킵니다.”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녀는 자기 이름이 거론될 일을 피하려고 애써 돌려서 말했다.소원은 방민아가 무슨 꾀를 부리든 상관하지 않았다. 약속만 지켜준다면 그걸로 충분했다.그렇지 않다면 육연주가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었다.육연주는 샴페인과 맥주를 들고 소원의 머리 위로 들이부었다.그러고는 미친 듯이 웃으며 외쳤다.“술 좋아한다며? 아니어도 괜찮아. 내가 좋아하게 만들어 줄 테니 잘 마셔 봐!”알코올이 따갑게 소원의 머리와 얼굴을 적셨다.소원은 눈을 꼭 감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육연주는 더욱 흥분하며 소원의 뺨을 두 차례나 세게 때렸다. 그래도 모자랐는지 술병을 집어 들어 그녀의 머리를 내리치려고까지 했다.그 순간, 방민아가 육연주의 손목을 꽉 잡아 멈췄다.“연주야, 내가 뭐라고 했어? 겉으로 티 나는 상처는 안 된다고 했잖아. 그러면 너한테도 안 좋아.”그들의 관심은 소원의 안전이 아니라 자신들의 재벌가 자제 이미지가 더러워질까 하는 것이었다.그렇게 육연주는 힘없이 손을 풀었고 술병은 바닥으로 떨어져 몇 번 굴러갔다.방민아는 처음부터 이렇게 경고했다. 목숨을 앗아가선 안 되고 모욕하고 짓밟는 건 가능하지만 눈에 띄는 외상은 절대 안 된다고.처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육연주는 분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소원을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그날 결혼식에서 소원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꼴이 됐는지, 모든 사람들에
“네, 괜찮아질 거예요...”잠시 충전한 덕에 상태가 많이 나아진 소원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언니, 이제 가서 일 봐요. 저도 제 일하러 갈게요.”“응.”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 갈 길을 갔다.소원은 방민아가 말한 그 방으로 향했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민아가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고 옆에 육연주가 함께 앉아 있었다.소원은 무표정하게 다가가 물었다.“방민아 씨, 제가 뭘 하면 되죠?”방민아는 입술을 가리며 웃었다.“무슨 일이 있어서 그쪽을 부른 게 아니에요. 연주가 보고 싶다고 해서요.”소원은 육연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갑자기 육연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들어 소원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며칠 못 봤더니 눈이 멀었나 봐? 나 못 봤어?”소원의 얼굴은 한쪽으로 젖혀졌고 귀가 웅웅거릴 정도로 아팠다.이 뺨 한 대를 때리기 위해 육연주는 며칠 동안이나 참아왔던 것이다.지난번 그녀가 결혼식에 난동을 부렸을 때 이미 목이라도 졸라 죽이고 싶었다. 당시 육경한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소원은 이미 서씨 가문 사람들에게 반쯤 죽도록 맞았을 것이다.그런데 육경한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소문에 따르면 그는 소원을 구하기 위해 북쪽으로 갔다고 했다. 북쪽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다 아는 사실이었다.그들은 칼날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육연주와 같은 재벌 2세는 그들에게 단지 걸어 다니는 금고와 같았다.그런 사람들을 적으로 돌린 육경한이 앞으로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북쪽 사람들은 원한을 잊지 않고 반드시 갚는다고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이다.결혼식 후, 육연주는 소원을 제대로 혼내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소원이 육경한의 사람들에게 데려가져 함부로 행동하지 못했다.그녀는 부모도 두렵지 않고 세상 무엇도 겁내지 않았지만 육경한만큼은 무서웠다.육경한은 냉혹하게 행동할 때 진정으로 냉혹했으며 혈연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다행히 방민아가
소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괜찮아요. 사실 크게 다친 것도 없었고요.”그러나 사실 그녀의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육경한만큼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그녀도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심각한 일을 겪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숙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작은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이다.영숙은 소원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래도 여기 왜 온 건지 말해봐. 지금 상태로는 아무리 봐도 좀 더 쉬어야 하는 거 같은데?”“오늘은 일이 있어서 왔어요. 제가 아는 단골 손님이 요청해서요.”소원이 답했다.“단골 손님?”영숙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누군데?”소원은 이곳에서 일한 지 오래되지 않았고 그녀의 손님은 대부분 영숙이 직접 배정해준 사람들이었다.때문에 소원이 말하는 ‘단골 손님’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영숙은 알 수 없었다.영숙의 걱정은 진심이었다.소원은 왜 영숙이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없었지만 영숙이 굳이 말하지 않는 걸 보면 이유가 있겠거니 했다.하지만 소원은 이번 일의 진실을 영숙에게 말할 수 없었다.방민아가 오늘 밤 일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밖에 흘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이를 어기면 아이를 만나게 해주지 않을 거라고 경고했었다.“괜찮아요, 언니. 정말 아는 손님이라니까요.”소원은 모호하게 대답하며 상황을 넘기려 했다.그러자 영숙은 ‘그래’라고 짧게 대답하며 비웃듯 말했다.“넌 이제 네 멋대로 하는구나. 내가 상관할 수 없겠네.”소원은 피식 웃었다.“그럴 리가요. 언니가 저를 이 일로 이끌어주셨잖아요. 하루라도 스승이면 영원히 스승인데 제가 언제 영숙 언니 말 안 들은 적 있나요?”이 말을 듣고 영숙은 웃음을 터뜨렸다.“예전에 이렇게 말재간이 좋은 애인 줄 몰랐네.”“스승이니 뭐니 하지 마. 내 밑에 평생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조금 안정되면 얼른 나가.”사실 영숙은 방민아와 관련된 일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래서 그는 방민아가 나중에 유진이에게 잘못된 행동을 할까 봐 걱정하지 않았다.유진이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면 방민아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이런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은 그녀도 충분히 고려할 것이라 믿었다.“필요 없어. 임 교수님에게 빨리 수술 일정 잡아달라고 해줘.”육경한이 결혼을 위해 결단을 내린 건 아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속임수에 휘말려 또 다른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그는 다른 사람이 낳지 않은 아이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소종이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육경한은 단 한 번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는 이미 그의 마음이 완전히 굳었다는 것을 의미했다.육경한이 결정한 일은 아무도 바꿀 수 없었다.다만 소종은 이런 상황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재산이 그다지 많지 않은 소종조차도 대를 이을 아이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성별을 떠나 건강한 아이 하나는 꼭 낳고 싶었다.어쩌면 대를 잇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살다 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은 것일지도 몰랐다.하지만 육경한의 방식은 너무 위험해 보였다.그럼에도 소종은 당사자가 아니기에 그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곧이어 전화를 걸기 위해 소종이 막 나가려다가 육경한이 불러 세웠다.“잠깐.”“무슨 일이세요?”육경한은 말했다.“이 소식을 민아 씨에게 알려.”소종은 잠시 멍해졌다.‘정관 수술 한다는 걸 예비 신부에게 알리라고? 이건 결혼하기 전에 도망가라고 부추기는 일 아닌가?’그러나 육경한의 목적은 방민아를 시험해보기 위함이었다.이전에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평생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 말했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방민아더러 함께하자고 했다.그러자 방민아는 주저 없이 동의했다.육경한이 방민아에게 난관 수술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은 건 이것이 신체에 손상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결혼을 약속한 상대라면 충분한 존중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스스로 수술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이번에 소종을 통해 이 소식을 흘린 건
남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었고 표정조차 변화가 없었다.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소종이 입을 열었다.“소원 씨가 아이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제가 거절했습니다. 작은 도련님이 간신히 밝아졌는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육경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소종의 말을 묵인하는 듯 말이다.이제 됐다 싶어 소종은 긴 숨을 내쉬었다.그는 알고 있었다. 육경한이 이번에 얻은 상처는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육체뿐 아니라 마음까지 다친 그가 이제는 소원에 대해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지금과 같이 냉정한 사람은 마음이 다치면 자신을 철저히 닫아버린다.육경한의 모습은 그야말로 심장이 죽은듯한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남자는 가장 사랑했던 여자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된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소원은 이제 마음도 몸도 여기 있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를 붙잡는 건 양쪽 모두를 아프게 할 뿐이었다.소원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서현재 역시 제대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육경한이 많이 참은 셈이었다.육경한이 물어보지 않았기에 소종은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소종이 대신 육경한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여러 번 말을 해봤지만 소원은 전혀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그게 진정 사람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드는 일이었다.소종은 소원이 방민아가 유진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래서 유진의 상태를 더 꼼꼼히 살피고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방민아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는 없었다.다만 소종은 방민아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잠시 좋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 할 수는 없었다.오래도록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야 진정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방민아 씨가 과연 유진이를 자신의 자식처럼 대할 수 있을까? 자기 아이를 갖게 되면 유진이에 대한 태도가 변하진 않을까?’소종이 이런저런 생
소원은 방민아와 이런 복잡한 말싸움을 하는 걸 정말 싫어했다.연기를 하듯 감정을 숨기는 것조차 거부감이 들었다.“방민아 씨, 아주머니를 만나볼 수는 없나요?”“그건... 방금 경한 씨한테 전화했잖아요? 경한 씨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정말 미안해요, 소원 씨.”방민아는 곤란하고 미안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여유롭고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사실 소원이 대문 앞에서 보인 모든 행동을 방민아는 창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소원이 육경한에게 전화를 걸고 간절히 부탁했지만 끝내 허락받지 못한 모습을 보며 방민아는 확신했다.이제 자신이 육씨 가문의 안주인 자리를 완전히 굳혔다고.방민아는 속으로 생각했다.‘다행히 연주의 말을 믿고 소원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어. 그냥 현명한 아내이자 자상한 엄마처럼 행동했더니 효과가 좋네. 경한 씨도 이제 나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어. 소원? 이제 별로 두려워할 존재도 아니지.’소원은 한숨을 삼키며 자세를 낮추어 물었다.“그럼... 유진이랑 통화라도 할 수 있을까요?”그녀는 간절한 마음으로 최대한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부탁했다.방민아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소원 씨, 그건 저도 힘들 것 같네요. 경한 씨가 소원 씨가 유진이와 접촉하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요.”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거절당한 소원은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했다.방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소원 씨, 제가 기회를 드리지 않는 건 아니에요. 오늘 밤 일하러 가세요. 기분이 좋으면 유진이를 만나게 해줄 수도 있죠.”이 말에 놀란 소원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정말인가요?”“그럼요.”방민아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결국 경한 씨가 없을 땐 이 육씨 가문내 일이 다 제 손에 달려 있으니까요.”소원은 방민아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육경한은 집안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내부를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다.“좋아요. 하라는 대로 할게요. 하지만 유진이를 반드시 만나게 해줘야 해
소원은 필사적으로 몸을 버둥거렸지만 두 명의 건장한 보안요원을 이길 수는 없었다.보안요원은 그녀를 끌고 가면서 말했다.“저희도 이러고 싶진 않습니다. 저희는 월급 받는 대로 일하는 사람들이에요. 누구도 괜히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 제발 좀 협조해 주세요.”소원은 필사적으로 외쳤다.“제 아이가 위험해요! 경찰 부를 거예요, 경찰 부를 거라고요!”그러자 보안요원은 피식 비웃었다.“지금 농담하세요? 작은 도련님은 매일 베란다에서 뛰어놀 만큼 건강해 보이는데 뭐가 위험하다는 겁니까? 혹시 망상증 같은 거 있는 거 아니에요?”이 말을 듣고 소원은 잠시 안도했지만 마음속의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보안요원은 이어서 말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경찰이 이런 걸 받아주지도 않을 겁니다. 신고해 보세요. 아마 처음에 잡혀갈 사람은 그쪽일 겁니다. 정신병원으로 끌려갈지도 모르겠네요. 작은 도련님은 방민아 씨가 아주 잘 돌보고 있어요. 방민아 씨는 정말 좋은 새엄마예요. 얼마나 세심한지 매일 작은 도련님을 돌보러 오신다니까요.”소원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방민아는 결혼 전까지는 유진에게 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 후라면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소원은 방민아가 지금 아주머니를 건드린 것도 육경한의 반응을 떠보는 일환이라 확신했다.육경한이 아주머니의 병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유진이의 위험은 더 가까워질 것이다.아니, 육경한이 아주머니를 걱정하더라도 방민아의 속셈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물론 이 모든 것은 소원의 추측일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사란 늘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그녀는 속으로 다짐했다.만약의 가능성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갑자기 소원이 크게 외쳤다.“방민아 씨! 나와요! 방민아 씨, 당장 나와요!”보안요원이 그녀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소원은 두 보안요원의 손길을 뿌리치며 대문 앞으로 달려가 있는 힘껏 문을 두드리며 계속 외쳤다.“방민아 씨! 방민아 씨!”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이
소원은 일부러 유진이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혹여 유진이가 자극을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유진이는 보통 아이들과 달랐고 소원은 아이의 모든 것에 대해 항상 신중했다.소원은 입을 열어 크게 외쳤다.“백씨 아주머니! 백씨 아주머니, 계세요?”몇 번 부르지 않았는데 보안요원이 달려와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이렇게 소리치시면 안 됩니다. 여기는 주거 지역이에요. 계속 그러시면 강제로 내보낼 수밖에 없습니다.”보안요원의 말투는 점점 공손함을 잃어가고 있었다.상대가 까다로운 사람이든 아니든 겁낼 필요는 없었지만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하지만 소원의 행동을 보니 그녀가 육 대표님과 친분이 깊을 리는 없어 보였다.만약 친분이 있었다면 이렇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을 테고 육경한이 이미 문을 열어줬을 것이다.그러나 소원은 보안요원의 경고를 무시한 채 말했다.“오늘은 반드시 아주머니를 만나야 합니다. 아주머니 이름 부르는 게 싫다면 백해란 아주머니가 여기 계신지만 확인해 주시면 돼요. 확인만 해 주면 조용히 돌아가겠습니다.”보안요원은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런 건 저희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저희는 저택 안에 들어가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이렇게 계속 소리 지르시면 지금 당장 내보낼 겁니다.”보안요원의 태도는 한층 강경해졌고 소원은 이를 무시한 채 핸드폰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아주머니와 연락이 끊겼어요. 걱정돼서 왔습니다. 오늘 아주머니를 만나지 못하면 저는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 그쪽들도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 이렇게 하죠. 아주머니가 계신지 확인하고 그분이 저에게 전화만 주시면 저는 바로 떠나겠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어때요?”소원의 이 말은 어느 정도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타협을 제시하는 방식이었다.보안요원들은 상황을 재빨리 판단해야 했다.안으로 들어가 관리인에게 확인을 요청하는 건 큰일이 아니었지만 이 여자를 억지로 끌어내렸다가 경찰에 신고라도
소원이 침묵할수록 소종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그에게 소원은 냉혹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다.입장이 다르니 소종은 당연히 소원의 관점에서 이 일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그는 답답함에 목소리를 높였다.“알겠습니까? 모든 더러운 일은 내가 했습니다. 대표님은 저에게 너무 폭력적이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사업 세계는 깊은 수렁 같아서 독하지 않으면 발붙일 수 없어요! 그래서 전 자발적으로 대표님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누군가 칼로 저를 찔러도 대표님의 미래를 위해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갑자기 소종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제가 소원 씨가 대표님을 해치는 걸 가만히 두고만 보리라고 생각합니까?”소원은 그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소 비서님, 제가 육경한을 찾는 건 유진이 때문이에요.”지금 그녀는 육경한을 무너뜨릴 생각도 없었고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그녀의 마음에는 오직 유진이의 안전만이 자리하고 있었다.하지만 소종은 이 말을 듣고도 비웃으며 말했다.“소원 씨, 이제 와서 아들을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아들을 위한다면 아이의 친아버지를 그렇게 대했으면 안 됐죠.”“우리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다른 남자였으면 그쪽은 벌써 백번은 죽었을 겁니다.”소원은 다급히 물었다.“소 비서님, 요즘 유진이는 누가 돌보고 있습니까?”그녀는 소종이 자신을 얼마나 싫어하든 개의치 않았다.소종이 육경한에게 충성하는 만큼 유진이에게 해를 끼치도록 방치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소종은 잠시 찡그리며 대답했다.“방민아 씨가 돌보고 있습니다.”이 말에 소원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저는 유진이를 만나야 합니다. 지금 저 경원 저택 앞에 있습니다. 육경한에게 연락해서 제가 유진이를 만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주세요. 지금 당장이요. 유진이가 걱정돼요.”소종은 콧방귀를 뀌었다.“뭐가 걱정된다는 거죠? 방민아 씨가 아주 잘 돌보고 있어요. 어제는 유진이를 데리고 대표님을 보러 오기도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