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인은 임세희의 도발을 무시하려고 노력했지만 임세희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저런 악독한 말을 내뱉을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싸늘하게 굳은 눈빛으로 임세희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임세희 씨, 그럼 남의 결혼에 억지로 끼어드는 건 신분이 고귀한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짓인가요? 저와 이준혁 씨는 합법적인 부부입니다. 임세희 씨의 행동이 뭘 의미하는지는 알아요? 당신은 내연녀입니다! 그럼 신분이 고귀하신 임세희 씨는 왜 저급한 내연녀 노릇을 저지르고 있는 거죠?”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해진 임세희는 윤혜인이 저런 말로 자신을 모욕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당신이 뭔데! 그래봤자 준혁 오빠가 할아버지 비위를 맞추는데 쓰이는 도구일 뿐이에요! 나랑 준혁 오빠는 어릴 때부터 선남선녀로 서로 사랑하고 서로의 모든 걸 알고 지냈단 말이에요! 사랑받지 못하는 쪽이 내연녀라는 걸 몰라요?”윤혜인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임세희를 보며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전 그런 말을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네요. 임세희 씨,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임세희 씨처럼 파렴치하지는 않아요. 내연녀는 영원히 내연녀일 뿐이에요! 만약 제가 준혁 씨와 이혼하지 않는다면 임세희 씨는 평생 내연녀로 남아있게 되겠죠!”“당신… 당신이 감히!”이혼을 하지 않겠다는 말에 자극을 받은 임세희가 윤혜인에게 달려가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그녀의 얼굴을 할퀴려고 했다.찍!그 순간, 윤혜인의 옷깃이 찢어졌고 목덜미의 빨간 키스마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백옥같이 하얀 윤혜인의 살결에 빨간 키스마크는 유난히 눈에 잘 띄었다.이 키스마크를 누가 남겼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한 것이기에 임세희는 입술을 꽉 깨문 채 윤혜인의 목덜미를 찢어버리고 싶었다.그녀는 이준혁이 몽롱한 눈빛으로 윤혜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는 장면만 상상해도 미칠 것만 같았다.저런 천박한 계집애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너무 염치없는 거 아니에요?”임세희가 이를 악물며 사악한 눈빛으로 윤혜인을 죽일 듯이 노려보
점점 빛을 잃은 윤혜인은 허약한 종이인형 마냥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았다.이준혁은 임세희에 대한 욕구불만 때문에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이런 생각에 윤혜인은 속이 다시 울렁거렸으며 너무 역겨웠다.조금 전까지 당당하고 자신 넘쳤던 윤혜인은 강하게 뺨을 맞은 듯 얼굴이 얼얼했고 임세희는 얼굴이 창백해진 윤혜인을 보며 속으로 의기양양했다.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임세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준혁 오빠가 당신과 잠자리를 2년 동안 가졌다고 해서 당신을 떠나지 못할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마요. 준혁 오빠는 그저 습관이 됐을 뿐이에요. 준혁 오빠가 사랑하는 사람은 저라고요. 당신과 잠자리를 하든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하든 다 똑같아요. 당신들은 그저 도구일 뿐이라고요. 알겠어요?”임세희가 떠난 뒤, 윤혜인은 공기 빠진 풍선 마냥 바닥에 주저앉았고 도우미 아주머니가 다급하게 다가와 그녀를 부축하려 했지만 그녀가 거절했다.“아주머니, 전 나가서 좀 걷고 싶어요.”윤혜인이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아주머니는 꽤 난감한 기색이었다. 도련님이 집을 나서기 전에 사모님을 밖에 내보내지 말라는 명령은 내린 적이 없지만 이렇게 괴로워하고 허약한 사모님을 보고 있으니 혼자 보내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윤혜인이 집을 나서자 아주머니가 재빨리 이준혁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윤혜인은 그렇게 혼자서 길거리를 목적없이 걷고 있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마냥 길거리를 따라 걷기만 했다.윤혜인은 신선한 공기를 맡고 싶었다.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팠다.2년 동안 윤혜인은 이준혁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한 채 그에게 최선을 다했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들으면서 그의 심기에 거슬리지 않도록 노력했다.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런데 이준혁은 대체 왜 그녀에게 이렇게 매정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녀 심장에 칼을 꽂고 또 꽂을 수 있는 걸까?이제는 말도 안 되는 일까지 저질러 가면서 그녀를 모욕하고 있다.이준혁은 자신이 아끼는 여인만 지키고 있다. 하지
“혜인아!”그 순간, 따듯하고 커다란 손이 그녀를 꽉 끌어안았고 너무 놀란 윤혜인은 두 눈을 꼭 감았다가 위험한 상황이 끝났다는 걸 느끼고 나서야 서서히 두 눈을 떴다.금빛 테두리 안경을 쓴 한구운이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윤혜인을 쳐다보고 있었고 바닥에는 그가 조금 전에 떨어트린 우산이 놓여 있었다.심장이 쿵쾅거리고 있는 한구운은 한참동안이나 진정을 할 수 없었다. 하마터면 그녀가 길바닥에 쓰러질 뻔했다!흠칫하던 윤혜인이 휘청거리며 겨우 몸을 일으킨 뒤, 한구운을 보며 물었다.“구운 선배, 선배가 왜…”한구운이 주먹을 살짝 쥔 채 마음을 가다듬고 담담하게 대답했다.“소원이가 널 데리러 오라고 나한테 부탁했어. 이렇게 널 찾을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선배한테 또 신세를 지게 되었네요.”“신세는 무슨.”한구운이 바닥에 떨어트린 우산을 들고 그녀를 위해 비를 막아주다가 초라한 그녀의 행색에 동공이 흔들렸다.“어쩌다 이 꼴이 됐어?”“그게…”윤혜인은 입만 뻥긋할 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병원으로 가자.”한구운은 더 이상 묻지 않았고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양해 좀 구할게.”말을 하던 한구운이 그녀의 허리를 잡더니 그대로 안아들고 차에 태웠다.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발 뒤꿈치의 상처부터 치료한 뒤 의사가 그녀에게 혈액 검사를 진행했다.혈액 검사 보고서가 나오자 한구운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의사 선생님, 별 큰일 없죠?”의사가 한구운을 힐끗 쳐다보더니 그를 나무랐다.“임산부에게서 빈혈 증상이 보입니다. 남편으로써 그 정도로 모르고 있었나요? 돌아가면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잠자리는 적절하게 하시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와서 검사를 진행해야 합니다. 알겠죠?”의사 입에서 잠자리가 언급되자 담담하던 한구운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고 윤혜인은 너무 난감했다.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가 서둘러 변명을 하려던 그때, 한구운이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의사가 떠
이준혁 입가에 아니꼬운 미소가 번졌다.“저 남자는 네가 유부녀라는 걸 알아? 아니면 남이 쓰던 여자를 주워 쓰는 게 취미인가?”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거슬렸기에 윤혜인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한구운이 보는 앞이라 화를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선배님, 먼저 들어가세요. 오늘 고마웠어요.”그녀와 이준혁 문제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다.선배라고 부르는 윤혜인의 말에 이준혁의 신경이 순식간에 자극됐다. 그의 입꼬리는 웃는 듯했지만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차가웠다.“저놈을 당장 밖으로 내다버려!”이때,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두 명이 병실로 들어와 한구운에게 다가갔고 깜짝 놀란 윤혜인이 발에 난 상처도 잊은 채 두 경호원의 앞길을 막았다.“이준혁 씨, 당신 진짜 너무한 거 아니에요?”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분노가 차오른 이준혁이 주먹을 꽉 쥐었지만 창백한 윤혜인의 얼굴과 손에 난 상처를 보더니 끝내는 참았다.“당장 이 남자한테 꺼지라고 해!”“선배님, 정말 죄송해요. 다음에 제가 정식으로 사죄하러 갈게요.”윤혜인은 괜히 연루된 한구운에게 연신 사과를 했고 한구운은 대충 무슨 상황인지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윤혜인의 남편이기에 한구운이 함부로 나설 수도 없었다.‘윤혜인의 남편이 서울 이씨 가문의 도련님이구나.’하지만 윤혜인은 왠지 이준혁을 싫어하는 듯했고 이준혁도 그녀를 아끼지 않은 것 같았다.날카로운 눈빛으로 살기 가득한 이준혁의 눈을 빤히 쳐다보던 한구운이 다정한 목소리로 고개를 돌려 윤혜인에게 말을 걸었다.“집에 가서 푹 쉬어.”윤혜인이 고개를 끄덕였고 지켜보던 이준혁이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에 이를 갈았다.조금 전에 저 남자 머리통을 깼어야 하는 건데.한구운이 떠나고 병실에는 이준혁과 윤혜인만 남게 되었고 분위기는 살얼음판이었다.이때, 이준혁이 갑자기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그녀의 어깨를 부수려는 것처럼 꽉 잡았다.“이준혁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이준혁은 그녀가 걸치고 있던 검은 정장과
윤혜인은 충격에 머릿속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이준혁이 그녀의 머리를 좌석 등받이에 꾹 누른 채 창문을 열고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었고 지나가는 행인들은 그들이 뭘 하고 있는지 똑똑히 볼 수가 있었다.항상 침착하던 이준혁은 이성을 잃은 듯 머릿속에는 윤혜인에 대한 소유욕으로 가득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거친 그의 입맞춤은 키스가 아닌 분풀이 같았다.특히 조금 전에 일부러 운전 기사에게 속도를 늦춰서 한구운의 차량과 수평선에서 달리게 한 행동은 그야말로 적나라한 분풀이였다.지금까지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런 야릇한 행동이나 입맞춤을 한 적이 없는데 지금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윤혜인은 이렇게까지 그녀를 괴롭히는 이준혁에게 화가 잔뜩 났지만 손과 다리를 제압당한 탓에 꿈쩍도 할 수 없었으며 그에게 욕설을 퍼부으려고 해도 그의 거친 입맞춤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이준혁의 키스에는 약탈만 남았을 뿐, 다른 감정은 전혀 없었고 윤혜인의 손목을 잡고 있는 그의 손가락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꽉 주었다.한편,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구운은 더는 참지 못하고 속도를 올려 빠르게 떠나갔고 어느새 윤혜인의 눈가에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임세희와 번갈아 가며 그녀를 괴롭히는 이준혁 때문에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마음이 너무 아파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던 윤혜인은 이준혁이 그녀의 손을 놓아주자 다급하게 그의 가슴팍을 힘껏 때렸다.그제야 입맞춤을 멈춘 이준혁은 슬픈 얼굴로 울고 있는 윤혜인을 보며 두 눈이 충혈된 채 질투심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늘 침착하고 차분한 모습만 보이던 그는 오늘처럼 돌발 행동을 저지른 건 처음이었고 조금 전에 윤혜인의 발을 만지던 한구운만 생각하면 그의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결국 그녀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진 이준혁은 손가락으로 퉁퉁 부은 윤혜인의 입술을 만지다가 이내 그녀를 품에서 놓아주었고 겨우 정신을 차린 윤혜인은 손을 뻗어 그의 뺨을 강하게 내리쳤다.팍!마찰음은 차 안에서 유
왜 같이 있었냐는 이준혁의 질문에 윤혜인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나지 않았다.그녀가 맨발로 길거리를 걷다가 한구운을 만난 건 다 이준혁 탓인데…그와 임세희가 했던 더러운 짓에 윤혜인은 구역질이 났지만 그녀는 절대 이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 말을 하는 순간, 그녀가 아직도 이준혁에게 마음이 있다는 증거만 될 뿐이니까.이준혁에게 있어서 윤혜인은 그에게 추파를 보내는 수많은 여인들 중 한 명에 속할 뿐이며 그녀의 마음 따위는 그 어떤 가치도 없다.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 일이 임세희와 연관이 있는 이상 윤혜인은 절대 이길 수가 없다.입술을 꽉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윤혜인을 보며 이준혁은 화가 더욱 치밀어 올랐다.“왜? 네가 좋아하는 선배가 돌아왔다고 이제 나랑 말도 섞기 싫은 거야? 너 예전에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로 유학도 가고 싶어했잖아. 못 가서 아쉬워? 그래서 지금 그 연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거야?”이준혁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비꼬는 듯이 물었고 말투에는 본인조차도 눈치채지 못한 질투가 가득했다.“내 뒷조사를 한 거예요?”화가 난 윤혜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지만 이준혁은 그녀의 분논 가볍게 무시한 채 명함 한 장을 꺼내 들었다.“IA 투자은행 CEO, 한구운.”말을 하던 이준혁이 명함을 탁 튕겨서 윤혜인 발 앞에 버린 채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윤혜인, 내가 이 사람 하나쯤 무너트리는 건 식은 죽 먹기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한구운의 스펙이 화려하고 탄탄하긴 하지만 명문 가문인 이씨 가문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했다.윤혜인은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이준혁을 보며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이준혁 씨, 이건 우리 둘 사이의 일이에요. 화풀이하고 싶으면 나한테만 하세요.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을 잡고 늘어지지 말란 말이에요! 당신 남자가 맞긴 해요?”그녀의 말에 이준혁은 불타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채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차 세워!”윤혜인이 주변을 돌려보니 그들은 어느새
차가운 바람이 윤혜인의 새하얀 피부에 닿자 그녀가 몸을 살짝 떨었지만 분노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은 이준혁은 그녀의 반응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녀의 몸을 아래위로 훑었다.윤혜인의 가는 목에는 그가 남긴 키스마크가 보였고 백옥 같은 피부 때문에 유난히 눈에 띄었다.피부가 연한 탓에 조금만 부딪쳐도 상처가 깊게 났으며 며칠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았다.이준혁도 윤혜인을 이렇게 대하고 싶진 않지만 조금 전에 다른 남자를 위해 그에게 손찌검을 한 것만 생각하면 몸에서 천불이 났다.아무리 화를 억누르려고 해도 그게 잘 되지 않았다.진심으로 겁을 먹은 윤혜인은 불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준혁 씨, 저 지금 생리하고 있어요…”“그래?”이준혁이 싸늘하게 웃자 윤혜인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지금 상황으로 절대 이준혁과 잠자리를 할 수 없다.“내가 직접 확인해볼게.”말을 하던 이준혁이 손을 뻗어 그녀의 바지를 내리려고 했고 순간 당황한 윤혜인이 다급하게 제지했다.“안 돼요. 더럽단 말이에요…”하지만 이준혁은 의미심장하게 웃다가 갑자기 몸을 숙여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더니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생리가 왔으면 대신 이 입술이 있잖아…”이준혁의 말은 노골적이면서도 모욕감 가득했다.결혼 생활 2년 동안 그는 단 한번도 윤혜인에게 그런 짓을 시킨 적이 없는데 이제는…윤혜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이준혁은 오늘밤 윤혜인을 단단히 혼내 줄 생각이었으며 누가 그녀의 남자인지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하지만 조금 전에 했던 말은 단순히 그녀에게 겁을 주려고 했던 것으로 2년 동안이나 그녀에게 그런 요구를 한 적이 없는데 지금은 더더욱 그럴 리가 없다.대신 윤혜인이 본인의 입으로 다시는 그 남자와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은 받아내야 한다.그는 파랗게 질린 윤혜인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약해졌다.“네가 말만 잘 들었으면 내가 왜…”하지만 이준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참다못한 윤혜인이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리를 질렀다.
이준혁의 물음에 도우미 아주머니가 고개를 숙여 구급상자를 쳐다보며 대답했다.“아, 구급상자에 상처에 바르는 약이 있어서요. 사모님에게 약 좀 발라드리려고요.”“혜인이가 어디 다쳤어요?”이준혁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묻자 도우미 아주머니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도련님 못 보셨어요? 조금 전에 보니까 사모님 발에서 피가 흐르고 있던데.”이준혁은 도우미의 말에 흠칫했다.윤혜인의 발이 다쳤다고?조금 전까지 분노에 휩싸였던 그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아 참, 그리고 한가지 더 말씀드릴 일이 있어요.”도우미 아주머니가 말을 이어갔다.“오늘 오후에 임세희 씨라는 아가씨가 찾아왔어요. 두 분이 한참 대화를 나누시다가 임세희 씨가 가고 나서 사모님이 외출하신 겁니다.”임세희? 임세희가 이곳에 다녀갔다고?오후쯤 이준혁이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을 때, 주훈은 그저 그에게 윤혜인이 외출했다는 도우미의 보고를 받았다고 전했을 뿐, 임세희가 이곳에 왔었다는 말은 전해들은 바가 없었다.스카이 별장의 경호가 매우 엄한 편인데 아마도 임세희가 이준혁의 운전 기사에게 부탁해서 별장 안으로 들어왔을 것이다.“왜 진작 말하지 않으셨어요?”이준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아주머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전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인 줄 알았습니다.”“중요하지 않다니요? 앞으로 혜인이에 관한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반드시 저에게 보고하세요!”“알겠습니다, 도련님, 그럼 전 이만 사모님께 약을 발라드리러 갈게요.”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자 이준혁이 아주머니를 불렀다.“약을 저한테 주세요.”한편, 방안에서.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윤혜인이 찢어진 옷을 벗은 뒤,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발 뒤꿈치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고개를 숙여보니 상처가 다시 찢어진 듯 감고 있던 붕대가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윤혜인은 서러운 마음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예전에 그녀에게도 화려한 시절이 있었다. 전국 대회에서 상도 받고 선생님들의 칭찬도 끊이지 않았는데
“아직 성공하지 못했습니다.”안지철은 코피가 터져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병약한 여자 하나도 처리 못 해?”소종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운전 실력이 꽤 좋아 보였습니다. 저보다 나은 것 같아요. 저도 사람을 들이받은 적이 없어서... 감을 못 잡겠어요.”“빨리 끝내.”상대방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안지철은 몸을 떨며 말했다.“저 그만두면 안 될까요? 다른 사람을 찾아보세요. 저는 오늘 밤이라도 바로 떠나겠습니다.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을게요. 안 될까요?”더 이상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았고 안지철은 그저 몰래 도망치고 싶었다.다른 방식이면 몰라도 사람을 죽이라는 건 도저히 할 수 없었다.처음에 그는 소종에게 돈을 받고 유시연을 통해 혈액 샘플을 빼돌리게 했다.그러고는 일이 끝나면 바로 해외로 떠나겠다고 약속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하지만 유시연과 이전부터 내연 관계였던 그는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그녀와 시간을 보내려다가 일이 지체되고 만 것이다.사실 안지철은 이미 내일 떠날 계획을 세우고 정식 경로가 아니라도 은밀히 빠져나갈 방법까지 마련해 둔 상태였다.그런데 이런 일이 터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혼란스러워진 안지철은 소종에게 연락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고 소종은 그녀를 차로 들이받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라고요?”안지철은 살인을 저지를 용기가 전혀 없었다.그러자 소종은 말했다.“그래, 안 해도 돼.”안지철은 속으로 안도하며 말했다.“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분이시네요. 안심하세요. 저 절대 입도 뻥긋하지 않을 겁니다...”“하지만 받은 돈은 전부 돌려줘야 할 거야. 잔금도 지급하지 않을 거고.”여전히 싸늘한 소종의 목소리에 안지철은 당황하며 외쳤다.“그건 안 됩니다!”“일은 제가 다 했잖아요. 약속을 어기시면 저도 입을 다물지 못할 겁니다!”안지철이 소종을 협박했다.“그럼 지금 당장 떠들어봐. 어차피 그 여자 오늘 죽지 않으면 당신 정체도 전부 탄로 날
하지만 만약 안지철을 뒤쫓는다면 그는 절박해져서 소원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었다.소원은 주석훈에게 전화를 걸려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대신 상황을 문자로 알렸다.의외로 주석훈은 자고 있지 않았는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제가 이 사람에 대해 알아볼게요.]소원은 차로 돌아와 유시연의 집으로 다시 가 잠복할 준비를 했다.유시연을 돌파구로 삼아 증거를 찾으려는 것이었다.지금까지 얻은 정보만으로는 육경한의 감정 결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부족했다.확실한 증거, 예를 들어 자백 같은 것이 필요했다.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육경한은 항상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었고 매수한 사람들에게 상당히 유혹적인 조건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았다.또한 협박을 통해 입을 다물게 했을 가능성도 있었기에 그가 매수한 사람들은 보통 쉽게 입장을 번복하지 않을 것이었다.하여 소원은 증거를 더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특히 두 사람이 사적으로 교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를 증거로 활용할 수 있었다.이를 잘 이용하면 여론을 조성하거나 감정소를 압박해 육경한에 대한 재검사를 요구할 수 있었다.그렇게 차를 출발시켜 코너를 돌았을 때, 소원은 갑자기 정면에서 차 한 대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그 차량은 눈부신 상향등을 켜고 있었고 그 빛 때문에 소원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눈을 깜빡인 찰나, 차량은 순식간에 그녀 앞까지 다가왔다.그 속도는 마치 질주하듯 위협적이었다.이내 소원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이 차... 분명 나를 겨냥하는 거야!’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소원은 핸들을 급히 틀어 옆으로 차를 돌렸다.겨우 목숨을 건진 그녀는 차량이 은색 승용차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바로 조금 전 급히 떠났던 안지철의 차량이었다.소원은 곧바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급히 기어를 넣고 출발하려 했지만 차는 하도 낡아 얼마 가지도 못하고 시동이 꺼졌다.고요한
소원은 차에서 내려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그리고 그의 이름을 바로 불렀다.“안지철 씨.”남자는 깜짝 놀랐다. 이미 감정소를 퇴직한 그는 소원을 알 리 없었다.“누구세요?”그러자 소원이 가까이 다가서며 담담히 말했다.“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묻고 싶은 건, 이달 13일에 감정소의 혈액 샘플에 손을 댄 적이 있냐는 겁니다.”그러자 남자는 당황한 얼굴로 소원을 쳐다보더니 입을 움직였다.“무슨 헛소리 하는 거예요?! 난 벌써 퇴직했는데 감정소에 어떻게 손을 대겠어요?”순순히 인정하지 않을 거라는 걸 예상했지만 소원은 그의 표정에서 이미 뭔가 수상한 점을 느꼈다.하여 그녀는 여유롭게 말했다.“퇴직한 것 맞죠. 하지만 유시연 씨는 퇴직한 게 아니잖아요?”이 말에 남자의 얼굴이 굳어졌지만 이내 곧 침착함을 되찾았다.“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유시연 씨랑 난 아무 상관 없어요.”남자는 소원이 이미 며칠 동안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또한 그녀가 자신과 유시연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입조심해요. 헛소리 계속하면 입 찢어버릴 거니까!”남자는 으름장을 놓았다.지금은 한밤중이었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남자는 소원이 여자라 겁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기회 삼아 위협하려 한 것이다.하지만 소원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오히려 그가 자신을 해치며 이 기회에 그를 경찰에 넘겨 조사하게 만들 수 있겠다 생각하며 말이다.“아까 안지철 씨랑 유시연 씨가 이 식당에서 차례로 나왔잖아요. 이 안에 그런 곳이 있나 봐요? 지금 제가 경찰에 신고하면 안지철 씨는 조사받게 될 텐데... 어떡할래요?”그러자 남자는 잠시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당... 당신 나 따라다녔던 거예요?”“물론이죠. 안지철 씨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면 여기까지 찾아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유시연 씨는 남편이 있잖아요. 그 남편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소원은
“그건 절대 안 됩니다.”소원이 아무리 설득하고 애원해도 강백호는 단호했다.감정소에는 엄격한 규정이 있었고 강백호는 직원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도무지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던 소원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벽에 적힌 ‘자원봉사자 모집’ 문구를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소장님, 제가 자원봉사자로 일하면 안 될까요?”그러자 강백호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봤고 소원은 급히 손을 들어 보이며 약속했다.“걱정 마세요. 감정소의 물건을 훔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제 인품이 어떤지는 주석훈 변호사님께 물어보셔도 됩니다.”하지만 강백호는 여전히 망설이는 듯했다.“그래도 이렇게 하시면 제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요.”소원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소장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퇴직과 관련된 상황을 직접 알아보고 싶어서 그래요. 작은 희망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이렇게 솔직한 태도에 강백호는 오히려 그녀를 높이 평가했다.게다가 그는 소원이 조사한다고 해서 뭔가를 알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그녀가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 오히려 감정소에 대한 그의 신뢰는 더욱 확고해질 터였다.“자원봉사자 모집은 담당 직원에게 문의해야 합니다.”강백호는 말했다.“면접도 거쳐야 하고 그 과정에 제가 관여하지는 않을 겁니다.”소원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감사합니다, 소장님.”곧바로 소원은 자원봉사자 모집 담당자를 찾아가 절차를 밟았고 비교적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자원봉사자로 합격했다.주 2회 근무 조건으로 그녀는 매번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다.성실한 태도로 인해 감정소 직원들에게도 호감을 얻었고 일을 하며 틈틈이 정보를 수집해 최근 반년 동안 퇴직 의사를 밝혔던 직원들을 파악했다.소원은 단 한 명의 정보도 놓치지 않으려 범위를 넓혀 조사를 이어갔다.육경한처럼 신중한 사람이 무언가를 꾸미려 했다면 반드시 정밀하게 준비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그 결과, 최근
“감사합니다, 주 변호사님.”소원은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정보를 얻기가 더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주석훈이 너무나 성의껏 도와주자 소원은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했다.“다음에 제가 수고비 추가로 드릴게요. 시간을 뺏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요.”“그럴 필요 없습니다.”그러자 주석훈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처음에 합의한 금액 그대로 주시면 됩니다. 저는 사건 단위로 일을 처리하지 시간을 기준으로 하진 않아요.”“예전에 이선 그룹 이준혁 대표님한테서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이번 일도 이선 그룹 사모님께서 직접 부탁하신 거라 사건을 맡은 이상 전 끝까지 책임질 겁니다. 소원 씨, 나중에 문제 생기면 언제든 저와 상의하세요.”소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그렇게 주석훈과 헤어진 후, 소원은 주소에 적힌 감정 기관으로 택시를 타고 향했다.도착해서 본 기관은 규모도 크고 분위기가 엄숙했다.벽에는 여러 신고 관련 홍보 문구가 붙어 있었다.홍보 문구에는 ‘의사나 조수가 사적인 이익을 위해 부정행위를 저지르면, 익명 신고 시 거액의 포상이 지급된다’고 쓰여 있었다.이런 점을 보면 이 기관이 사법 당국에서 전문 기관으로 지정된 것은 인맥이 아닌 철저한 절차와 엄격한 심사를 통과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그럼에도 소원은 육경한이 어떻게 이런 철저한 검사를 피해갈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주석훈이 소개해 준 동창, 강백호를 찾아가 감정 과정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강백호는 말했다.“저희는 각 과정마다 최소 다섯 번 이상 검증을 거칩니다. 이렇게 철저히 검증하는 이유는 어떤 작은 오류나 부정행위도 용납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초반 두 번의 검사를 통과했다 하더라도 후반 세 번의 검사는 다른 기관으로 혼합 샘플을 보내 재검사하기 때문에 절대 통과할 수 없습니다. 이 재검사 기관들은 모두 비공개로 운영되며 샘플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조작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한테는 이렇게 대해야 마땅하지. 잘 대해줘봤자 소용없어!’“민아 씨한테 사과해.”육경한은 방민아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주려는 듯 말했다.이내 소원의 눈빛이 차가워졌지만 그녀는 유진을 떠올리며 결국 마지못해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제가 오해해서 그런 말을 했어요. 물론 민아 씨도 그런 의도가 없었다면 다행이고요.”소원이 잠시 멈추고 나서 말을 이어갔다.“나중에 엄마가 되어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모든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는다는 걸요.”소원은 사과하는 듯했지만 실상은 방민아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었다.유진에게 손을 대기라도 한다면 자신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워낙 통찰력이 뛰어났던 방민아는 이를 단번에 알아챘다.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물론이죠. 이해합니다. 저와 경한 씨와 결혼 후 바로 임신 준비를 할 예정이에요. 벌써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느껴지네요. 모든 엄마가 아이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도요. 그래서 아이를 위해서라면 하지 말아야 할 일도 하지 않을 겁니다.”가벼운 대답인 듯 보였지만 방민아 역시 소원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 것이었다.“미리 축하드릴게요.”자연히 그 뜻을 이해한 소원이 답했다.그러자 방민아는 부끄러운 듯 수줍게 웃었다.그들의 대화를 들을 마음이 없었던 육경한은 방민아에게 고개를 숙여 물었다.“걸을 수 있겠어요?”방민아가 말했다.“한 번 해볼게요.”한 걸음 내디디자마자 소원은 고통스러운 듯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윽...”결국 육경한은 방민아를 들어 올리며 뒤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차가운 바람이 지나가자 소원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불길한 예감이 그녀를 휘감으며 유진에 대한 걱정이 더욱 깊어졌다.그때 주석훈이 나와 말했다.“소원 씨, 육경한 씨가 감정을 의뢰한 기관은 이곳입니다.”그는 소원에게 주소를 건네며 덧붙였다.“이곳은 전문 사법 기관으로
방민아는 온몸을 육경한의 품에 기댄 채, 힘없는 모습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그 모습은 누가 봐도 애처로워 보였고 사람들의 동정을 불러일으켰다.“저... 저는 괜찮아요. 소원 씨랑은 상관없어요.”이 말은 소원을 감싸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갈등을 피하려는 방민아의 태도를 부각시켰다.억울함을 감내하는 부잣집 딸, 이 얼마나 보기 좋은 이미지인가.방민아의 말에 육경한의 날카로운 시선이 소원을 향했다.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민아 씨한테 사과해.”자신이 본 상황이 전부였기에 그는 방민아가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않았다.이 순간, 육경한은 예전의 그 차갑고 냉정한 남자로 되돌아갔다.소원이 자신의 뜻을 계속 거스르자 육경한은 이번에 확실히 그녀에게 교훈을 주기로 마음먹었다.이제 그는 더 이상 소원을 달래거나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그가 원하는 건 소원이 두려워하고 겁을 먹으며 예전처럼 자신에게 굴복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소원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첫째, 난 민아 씨를 밀지 않았어. 둘째, 내가 민아 씨를 죽이겠다고 한 건 민아 씨가 유진이에게 악의를 품었기 때문이야. 육경한, 만약 민아 씨가 유진이를 해치는 걸 묵인한다면 너도 함께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거야!”소원의 말에 방민아는 입을 가리고 크게 놀란 척하며 말했다.“소원 씨, 왜 이러세요.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한 적 없어요. 그냥 소원 씨가 안쓰러워서 그런 거예요.”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눈물은 뺨을 따라 뚝뚝 떨어졌다.“저는 단지 엄마로서 소원 씨가 안쓰러워서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말했을 뿐이에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소원 씨, 제발 사실을 왜곡하지 마세요.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어요. 이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그녀는 고개를 돌려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육경한에게 말했다.“경한 씨, 저희 집안의 명예를 걸고 맹세할게요. 저는 절대로 아이에게 나쁜 일을 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저
방민아는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소원 씨, 방금 법정에서 경한 씨가 아이를 이용해 소원 씨를 다시 곁으로 끌어들이려 한다고 하셨죠? 제 생각엔 그건 오해인 것 같아요.”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방민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말을 이어갔다.“경한 씨랑 약혼한 지 몇 달이 됐는데 그동안 저희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잘 지내왔어요. 게다가 결혼 날짜도 정해졌고요. 그래서 저는 경한 씨를 믿어요.”소원은 이 말을 듣고 방민아가 의도적으로 자신과 육경한의 관계를 자랑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민아 씨가 육경한을 믿는 건 민아 씨 일이고 굳이 저에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소원이 단호히 대답했다.“민아 씨는 민아 씨가 믿는 걸 믿으시면 되고 저도 제가 믿는 걸 믿을 겁니다.”방민아는 망신을 당했지만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고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경한 씨는 항상 말을 간결하게 하는 사람이라 어쩌면 소원 씨가 그 뜻을 잘못 이해한 걸 수도 있어요. 경한 씨는 절대 저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사실 소원은 방민아와 더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그럼 다행이네요.” 그래서 소원은 방민아에게 짧고도 간단한 대답을 해줬다.그러자 얼굴에 살짝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지만 방민아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말을 더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때 소원의 변호사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방민아는 곧 표정을 바꾸더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소원 씨, 걱정 마세요. 제가 아이 잘 돌볼 테니까.”이 말에 소원의 얼굴이 굳어졌다.잘 돌본다는 말의 의미는 결코 말 그대로의 뜻이 아니었다.방민아는 유진이를 빌미로 소원을 위협하려는 것이 분명했다.이런 생각이 들자 소원의 눈빛이 무서울 정도로 차가워졌다.“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세요. 유진이를 건드리면 그쪽도 후회하게 될 겁니다.”그러나 방민아는 오히려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소원 씨는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그녀는 육연주처럼 무모
소원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아이를 어머니 곁에서 빼앗는 것만큼 절망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육경한은 단 한 번의 말로 다시 한번 그녀를 깊은 늪으로 밀어 넣었다.소원은 마치 자신을 가로막는 커다란 그물이 머리 위에 드리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었다.주석훈은 소원의 절망적인 표정을 보고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애써 위로의 말을 건넸다. “소원 씨,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소원 씨 말대로라면 육경한 씨가 약을 복용해 온 건 확실한 사실일 겁니다. 이번엔 분명 무슨 술수를 쓴 거겠죠. 기운 내세요. 함께 노력하면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변호사는 냉철했고 고작 몇 마디 말로 소원을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그래, 육경한이 약을 복용하지 않았을 리 없어. 이번 결과에는 분명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고.’주석훈은 법원에 아는 사람을 찾아가 육경한이 감정을 받은 기관에 문제가 없는지 알아보기로 했다.그리고 소원에게 먼저 차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남겼다.그렇게 소원은 혼란스러운 상태로 입구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다 그만 한 사람과 부딪혔다.코를 세게 부딪쳐 아팠지만 그녀는 급히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괜찮습니다.”맑고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에 소원은 멈칫했다.얼굴을 들어 확인하니 역시나 서현재였다.원래도 아팠던 코가 더 시큰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소원은 고개를 숙이며 눈물이 터질까 봐 나지막한 소리로 다시 말했다.“미안해요.”그리고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잠시만요.”서현재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소원은 그의 부름에 걸음을 뚝 멈췄고 서현재는 그녀의 손을 가리킨 후 다정하게 손수건을 내밀며 말했다.“싸매요.”여전히 따뜻하고 친절한 서현재의 모습에 소원은 더 가슴이 아려왔다.하여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괜찮습니다. 고마워요.”이내 소원이 다시 떠나려 했지만 서현재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세게 잡았다.그러고 나서 단숨에 그녀의 상처를 손수건으로 감싸며 응급처치를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