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혀가 그녀의 입안으로 들어와 억지로 약을 삼키게 했다.소원은 그의 행동에 머리가 어질거렸고 반항할 힘조차 없었다.그렇게 그는 가져온 알약 4개를 전부 삼키게 하고 나서야 입을 뗐다. 그녀의 볼을 누르고 있던 남자는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언제부터 아프면 약 안 먹고 버티는 습관을 길들였지.”소원은 기가 찬 듯 크게 웃어버렸다.“누군 안 먹고 싶었나? 네가 내 약을 전부 버렸잖아.”그가 버린 약은 그녀의 몸에 무리 가지 않게 하면서 통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그녀도 서현재가 그 약을 어떻게 구했는지 몰랐다. 하지만 서현재는 이 약을 위해 며칠 동안이나 다른 곳으로 출장 갔으니 분명 힘들게 구한 약이라 생각했다.그러나 그 약은 전부 변기로 내려갔다. 꼭 마지막 살길이 막혀버린 것처럼 그녀의 앞길도 캄캄해진 기분이었다.육경한은 소원이 또 그가 버린 피임약을 언급하자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의 볼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조금 넣었다.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피임약을 자꾸만 언급하는 걸 보니 그녀가 얼마나 그의 아이를 배기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그는 점차 아이를 낳게 하는 것이 소원을 곁에 묶어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전에 유산한 아이가 떠오른 육경한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콩알만 했던 아이가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그 약을 버린 건 다 널 위해서야.”육경한은 절로 오한이 들게 하는 목소리로 말했다.소원은 두 눈은 빛을 잃어 공허했고 자조적으로 말했다.“그랬군요. 날 위해 버려줘서 정말 고맙네요.”육경한은 그녀의 비아냥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한번 결정한 것을 바꿀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어떻게든 그는 소원을 임신시켜 아이를 낳게 할 생각이었다.두 사람은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소원은 마음속에 커다란 불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불길은 거세지기만 했다.어릴 때부터 착했던 그녀는 살면서 죄가 될만한 일은 해본 적이
자꾸만 죽는다, 죽는다 언급하자 육경한은 소원이 왜 죽는다는 말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는 큰 손을 뻗어 여자의 가느다란 목을 잡으며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 그의 입술 사이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그렇게도 죽고 싶은 거야?”남자의 몸에서는 방금 씻은 듯한 은은한 비누 향이 났다. 그 향은 소원이 제일 좋아하는 향이었다.그러나 지금은 너무도 역겹게 느껴졌다. 육경한의 몸에서 나니 말이다.그녀는 울렁이는 속에 이를 악물며 말했다.“내 말은, 난 죽어도 네 내연녀 할 생각 없다는 소리야! 날 그만 좀 괴롭혀!”육경한의 관자놀이가 움찔거렸다. 그는 화가 나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테 반항하기 위해 그런 소리를 한 거라고?”소원의 두 눈은 아주 공허했고 화도 내지 않았다.“넌 네가 한 사람의 죽음도 막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해?”육경한은 그녀의 말에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정말로 눈앞에 있는 여자를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충동도 생겨났다.그러나 여자의 안색은 그가 봐도 너무도 창백했고 꼭 유리로 만든 인형처럼 살짝만 힘을 주어도 부서져 내릴 것 같았다.순간 그는 화도 낼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도 전부 상처가 되어 배로 그에게 돌아오는 것 같았다.육경한은 분노에 정신이 아찔해졌다.결국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거칠게 키스했다.그녀의 입안을 거칠게 헤집는 것으로 그는 분풀이를 했다.그 순간, 소원은 속이 울렁거렸고 위통이 더 심하게 느껴졌다.그를 확 밀어낸 그녀는 얼른 쓰레기통을 찾아 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에 그녀가 게워낸 것은 전부 위액이었다.그녀의 행동은 전부 육경한의 눈에 들어왔다.‘내가 토 나올 정도로 싫은 건가?'그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그래, 그래, 알겠어.”육경한의 눈빛이 써늘해지고 단단히 증오하는 어투로 말했다.“그런데 어쩌지? 넌 영원히 내 손바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해!”말을 마친 그는 문을 쾅 세게 닫고 나가버렸
결국 그는 양심 고백을 하게 된 것이다.안상철은 컴퓨터 앞으로 걸어가 USB를 꽂으면서 미안한 듯 말했다.“사장님, 이건 다른 사람이 사장님께 보여드리라고 한 겁니다.”곧이어 컴퓨터 화면에선 보는 사람마저 낯뜨거워지게 하는, 남자와 여자가 뒤엉켜 있는 영상이 흘러나왔다.소진용은 미간을 확 구겼다. 화면 속에 나오는 두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보려던 순간 그는 그 여자가 자신의 사랑스러운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리고 화면 속 남자도 그가 아는 사람이었다.그 남자는 바로 그때 그에게 매를 맞았던 육경한이었다.자세히 보면 그의 딸은 육경한의 거친 행동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즐겼다고 하기엔 애매했기에 차라리 육경한의 일방적인 괴롭힘 더 어울렸다.순간 소진용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그는 컴퓨터를 꺼버리고 싶어 손을 뻗었지만, 파킨슨병 환자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손가락을 펴보려고 애를 써도 펴지지 않았다.소진용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범벅이 되었고 세월의 흔적인 주름을 타고 흘러내렸다.얼른 컴퓨터를 꺼서 딸을 구해주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쿵!소진용이 휠체어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몸은 저절로 움츠러들면서 덜덜 떨리고 있었다.아무리 제 모습이 처참하다고 해도 그는 안성철에게 애원했다.“빨리, 빨리 그것 좀 꺼줘요. 빨리 내 딸을... 이렇게 부탁할 테니까... 내 딸을 구해줘요...”그는 정말로 영상만 꺼버리면 딸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그러나 안상철은 영상을 꺼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컴퓨터 화면을 옮겨 소진용 앞으로 가져다 놓고 끝까지 보게 했다.영상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육경한 외에 진아연이 그의 딸을 폭행하는 장면도 나왔다.소진용은 자신의 연약한 딸이 여러 남자에게 둘러싸여 폭행당하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게 되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내 딸...'‘내 소중한 딸이...'‘그렇게 말 잘 듣던 귀여운 딸을...'‘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 짐승보다 못한 자식들이!'“아..
서울, 성원 호텔.화려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예식장엔 수많은 붉은 장미로 장식되어 있었다.주례대의 마이크마저 스와로브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정 중앙엔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되어 눈길을 끌고 있었다.그야말로 극 호화로운 예식장이었던 터라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신부 대기실에 있던 진아연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채 메이크업 수정받고 있었다.그녀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물었다.“밖에 하객이 많이 와 있어요?”메이크업 아티스트는 고개를 저었다. 밖에는 호텔 직원들 외엔 아무도 없었다.호텔을 통째로 빌린 터라 오늘 하루 성원 호텔에서 결혼하는 커플은 진아연과 육경호 밖에 없었다.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진아연이 긴장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마에 땀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그녀는 휴지로 진아연의 땀을 닦아주며 긴장을 풀어주었다.“진아연 씨, 지금 9시 반이에요. 하객들 오기엔 아직 이르니까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요.”짝!경쾌한 소리가 들려오고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고개가 돌아갔다.그녀는 뺨을 손으로 감싸며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물었다.“왜 그러세요?”진아연은 흉악한 얼굴로 화를 냈다.“대체 어딜 봐서 내가 긴장했다는 거죠!”아침부터 진아연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눈꺼풀도 가끔 떨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의 가격이 600억이고 예식장에도 2000억을 들였으니 긴장할 것이 없다고 계속 달랬다.방금 뺨을 때린 것도 사실은 긴장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들켜 충동적인 마음에 그런 것이었다.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멍하니 서 있자 그녀는 짜증을 냈다.“당장 꺼져요.”‘눈치도 없네, 쯧.'신부 대기실은 다시 정적이 흘렀다.진아연은 핸드폰을 꺼내 육경한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는 아침부터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녀가 긴장하고 있는 이유도 이것이었다.이때 문이 열렸다.들어온 사람은 턱시도를 입은 육경한이었따.진아연은 얼른 치맛자락을 들며 육경한에게 달려가곤 애교를 부렸다.“경한 시
그녀는 너무도 불안했다.그가 대체 왜 사고를 하는 것일까?설마...불안이 그녀의 온몸으로 퍼지고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떨쳐냈다.몇 분 뒤면 입장해야 했으니 불길한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아연아, 오늘 우리 결혼식 없어.”육경한은 미안한 어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취소했어.”그는 새벽에 오아시스 아파트에서 나온 뒤 다른 별장으로 가서 조금 눈을 붙였다.그러나 계속 악몽만 꾸었다.꿈속에서 소원의 몸은 피로 흥건히 젖어버렸고 두 눈엔 눈알이 없었다. 꼭 누가 파버린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그에게 말도 걸었다.“육경한, 이제 만족해?”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낀 그는 억지로 꿈에서 깨어났다.머리가 너무 울렸다. 죽는 한이 있어도 그의 내연녀가 되지 않을 거라는 말이 계속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육경한은 결국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결혼을 취소하기로 했다.그는 비서 소종에게 연락해 모든 것을 취소하라고 했다.그의 말을 들은 진아연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육경한의 소매를 꽉 잡으며 말했다.“경한 씨, 지금 농담하는 거죠? 그렇죠? 결혼 준비 다 했잖아요. 다 했는데 왜 취소를 해요...”“미안해, 아연아. 내가 나중에 다른 거로 보상해줄게.”진아연은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세게 저었다. 화장도 이미 눈물에 번져 가련해 보였다.“안돼! 싫어요! 보상 안 받을래요!”“경한 씨, 내가 원하는 건 경한 씨에요! 경한 씨랑 결혼하는 거라고요! 경한 씨랑 결혼하는 게 아니라면 난 아무것도 가지지 않을 거예요!”“난 경한 씨의 신부가 될 거예요!”육경한은 그녀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단호했다.“아연아, 결혼 말고 원하는 것 있으면 내가 다 해줄게.”진아연은 결국 이성을 잃고 말았다.“싫다고요! 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지금 당장 나랑 결혼하자고요!”그녀는 육경한의 옷을 꽉 잡았다. 눈물이 그의 옷에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가련하게 말했다.“나한테 이러면 안 돼요... 잘
그는 서둘러 소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불길한 예감은 점점 더 심해졌다.육경한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소종에게 말했다.“차 대기시켜!”진아연의 안색이 파리해지고 얼른 달려갔다.“경한 씨, 경한 씨... 우리 결혼식...”남자는 무정하게 그녀는 뿌리치고 차에 올라탔다.진아연은 그렇게 육경한이 자신을 결혼식장에 버리고 가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그녀의 두 눈엔 원망과 울분이 가득했다.‘전부 그 여자 때문이야!'‘경한 씨가 그 여자 때문에 나와의 결혼은 취소했다고!'‘정말 제정신이 아니야!'그녀는 결혼식 당일에 소원 때문에 결혼식이 취소될 줄은 몰랐다.‘천박한 X!!! 이번엔 반드시 죽여버릴 거야!'진아연은 드레스를 올려잡고 호텔 리무진을 타곤 흉악한 얼굴로 말했다.“당장 앞차 쫓아가요.”차 안.육경한은 핸드폰으로 생방송을 보면서 입술을 틀어 물었다. 그에게선 서늘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툭, 투툭, 투투툭...이때 빗방울이 창문으로 떨어지면서 갑자기 비가 내렸다.어느새 비는 세게 내리고 있어 전체 도시를 우중충하게 만들었다.생방송을 튼 핸드폰에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에도 비명을 지르는 소리는 더 선명하게 들렸다.“꺄악! 세상에! 진짜로 뛰어내리려나 봐요! 어떡해요!”“왜 한이 그룹 옥상에 올라갔대요? 혹시 한이 그룹 직원이었나? 부당한 대우라도 받은 건가요?”“전 한이 그룹 사장님이라도 들었어요. 대체 왜 옥상을 올라가셨는지 모르겠지만 아까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한이 그룹 사장님을 찾으시는 것 같더라고요. 긴급 체포인가? 아마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올라간 거 아닐까요...”“...”제대로 편히 쉬지 못한 육경한의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당장 소진용이 무슨 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는지 알아봐.”“네.”육경한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그는 소진용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소진용은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이었다.그런 남자가 자살하려고 한다니, 말이 되는
모든 사람들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옥상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소원의 입술이 찢어지고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한 소방관은 그녀에게 물을 건네며 달랬다.“소원 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동료들이 이미 설득하러 올라갔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아버님께선 어쩌면 순간의 충동으로...”소원은 물을 받으며 감사 인사를 하려던 순간 누군가가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꺄아아아아악! 뛰어내렸어요!!!”소원은 고개를 확 들었다. 그러자 검은 형체가 빠르게 옥상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은 꼭 영혼도 생명도 없는 돌덩이 같았고 기이한 자세로 떨어졌다.쿵!빗소리보다 더 센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비명도 이내 들려왔다.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 말이다.순간 소원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툭.들고 있던 생수병이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갔다.소원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빗물이 그녀의 입과 코로 흘러 들어갔다.숨 막혀오는 절망에 순간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한참 후, 그녀의 시야가 드디어 밝아졌다.“아아... 아아아!!!”소원은 입을 벌렸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고 울부짖으며 피로 물든 형체가 있는 곳으로 기어갔다.그녀는 보았다.사람인지 아닌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그 시체를 보았다...시체가 입고 있는 네이비 정장은 오늘 아침 그녀가 직접 골라준 정장이었다. 거기다 파란색 땡땡이 넥타이도 있었다.그녀의 머릿속에 아침까지 소진용에게 애교를 부리던 장면이 떠올랐다.“아빠, 그렇게 입으시니까 한 십 년은 더 젊어지신 것 같아요.”소진용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젊으면 좋지. 젊으면 활력이 있어 보이잖아. 그러면 아무도 우리 원이를 다치게 할 수 없겠지...”비는 더 세차게 내렸다.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빗물에 씻겨 소원의 손까지 닿았다.그것은 그녀의 아빠의 피였다. 그녀를 낳고 길러준 아빠의 피...‘대체 왜 그러셨어요!'그녀는 이성을 잃어 미친 사람처럼 달려갔다. 그러자 소방관들이 그녀의 팔을 꽉
만족하냐는 말이 순간 육경한의 숨통을 조여왔다.소씨 집안은 결국 처참하게 끝났다. 그는 정말로 만족하고 있을까?아니었다.오히려 반대였다.그는 사실 소진용이 죽지 않기를 바랐다. 소진용이 죽는다는 것은 소원을 휘두를 방법이 하나 줄어든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울리는 머리 탓에 그는 생각을 이어가기도 힘들었다.지금도 믿기지 않았다. 소진용이 자살을 했다니.대체 왜 그런 것일까? 정말로 그 빚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소원이 그의 아이를 낳아주면 그가 당연히 그들의 빚을 갚아주지 않겠는가?“나랑 약속했잖아. 그 계약서 없애기로 약속했었잖아! 그런데 그 계약서를 이용해서 우리 아빠를 사지로 몰아?”“이 배신자! 비열한 놈!”소원은 너무 소리를 질러 가슴이 아파졌다. 원래부터 그녀는 목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자꾸만 소리를 지르니 더 쉬어버린 것이다.그녀의 말에 육경한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그때 없애버렸던 계약서는 사실 원본이 아니었다. 그는 원본을 몰래 남겨두어 집안 금고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그게 왜...그는 소원에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만족한 적 없다고, 계약서로 소진용을 사지로 몰아넣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그러나 입에 접착제라도 붙은 것인지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계약서의 출처는 그가 확실했으니 말이다.그와 무조건 연관이 있었다.소원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를 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그 계약서를 위해서 구치소에서 얼마나 많은 괴롭힘을 견뎌냈는지 알아? 그때 아이유 유산한 거로는 부족했어?”“육경한, 너 그 아이 유전자 검사는 해봤니? 그 아이 네 아이야! 아직도 속죄하기엔 부족한 거야?”아이를 언급하자 육경한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부족하지 않았다. 부족할 리가 없었다.그 아이에게서 느낀 아쉬운 마음 때문에 그는 그녀에게 아이를 하나 더 낳아달라며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소원은 울먹였다.“우리 가족이 전부 죽어야 속이 시원하겠어?”육경한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