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몸에 손을 댔고 칼날이 통째로 살에 박혔다.그의 잘생긴 얼굴은 순식간에 미세한 구슬땀으로 물들었고 고통을 억지로 참으며 칼을 빼냈다.“아악!”윤혜인은 입을 막은 채로 가슴 아픈 비명을 내뱉었다!“아아악!”말을 할 수 없었기에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며 화면을 향해 머리를 세차게 가로저었다.슬픔의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하지 마요!준혁 씨, 저 말 믿지 마요!송소미는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안타깝게도 이준혁은 이 소리 없는 외침을 들을 수 없었다.그녀는 이미 송소미의 의도를 간파했다. 이준혁이 힘을 잃기를 기다려 둘을 함께 죽일 생각이었다.애초에 그들을 보내주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그 순간 윤혜인의 가슴은 커다란 돌덩어리로 꽉 눌려 짓누르는 것만 같아 숨을 쉴 수가 없었다.대체 언제부터 이 남자를 신경 쓰기 시작한 걸까.그녀는 다시는 그렇게 쉽게 넘어지지 않겠다고 수없이 스스로에게 경고했다.하지만 이 순간, 그녀는 마음속에 굳어버린 단단한 얼음이 또다시 남자 때문에 녹아내려 흐르는 강물이 되고 말았다.“하하하하...”송소미는 화면을 보며 우는 것보다 더 듣기 싫은 웃음소리를 내더니 잔뜩 비꼬며 말했다.“준혁 오빠, 아주 잘했어요!”이 칼질 한 번에 송소미는 통쾌하고 속이 시원해서 곧바로 재촉했다.“아직 한번 남았어요.”푹-이준혁은 마디가 두드러진 손으로 칼자루를 꽉 움켜쥐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다리를 찌른 뒤 곧바로 칼을 뽑아 바닥에 던졌다.“이제 됐어?” 이준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됐어요. 이제 혼자 갈대숲을 따라 들어와요. 다른 사람들이 보이면 내가 바로...”송소미는 칼을 윤혜인의 목에 대고 목을 긋는 동작을 취했다.순식간에 날카로운 칼날이 연약한 피부를 스치며 윤혜인의 목에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알아요! 혜인이는 건드리지 마!”이준혁의 표정이 확 굳어지며 으름장을 놓았다.늘 침착하고 차분하던 남자가 순식간에 이성을
송소미가 흥분한 채 다시 한번 칼을 들어 베기를 기다리던 윤혜인은 기회를 엿보다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서걱-송소미의 칼날이 마침 윤혜인 손에 묶여있던 밧줄을 베었지만 동시에 윤혜인의 팔에도 상처가 났고 순식간에 피가 솟구쳤다.윤혜인은 고통을 견디며 칼을 향해 돌진했다.송소미는 오랫동안 학대를 당해 온 터라 몸이 약해진 탓에 윤혜인보다 힘이 강하지 않았다.원래는 이준혁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준혁이 무력해질 때까지 계속 고문한 다음, 윤혜인을 한 방에 찔러서 고통스럽게 끝낼 생각이었고 그렇게 두 사람을 동시에 보내려 했다.그런데 윤혜인이 먼저 반격할 줄이야!지금 송소미의 유일한 무기는 손에 쥔 칼뿐이라 필사적으로 칼을 휘두르며 윤혜인의 얼굴을 베려고 했다.윤혜인은 막아내지 못하고 연이어 후퇴하며 기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윤혜인의 손에 묶인 결박은 사라졌지만 팔의 부상으로 인해 거동이 크게 불편해졌다.송소미는 피식 웃으며 일어서더니 얼굴이 일그러지고 흉측하게 변했다.“이 나쁜 년, 너를 제대로 고문하고 괴롭히다가 죽이려고 했는데 그렇게 원하니 지금 당장 죽여주마!”그녀는 칼을 휘두르며 미친 듯이 달려들었고 윤혜인은 싸우지 않고 뒤로 피하기만 했다.이제 통제에서 벗어난 그녀는 이준혁이 오기만 기다린 뒤 별다른 위협만 없다면 두 사람이 함께 송소미 한 명을 상대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하지만 역시나 송소미의 미친 상태를 과소평가한 그녀는 송소미가 주머니에서 하얀 알약 몇 알을 꺼내 그대로 삼키는 것을 보았다.이건 늙은 어부가 먹던 흥분제로 바다 밑 물고기 기름으로 만든 것인데, 매번 두 알을 먹고 나면 그는 힘이 거대해져 밤새도록 괴롭혀댔다.송소미는 마지막에 알약 열 몇 개를 가루로 만들어 그를 죽일 수 있었다.지금 몇 알 먹었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힘은 무척 세질 것이다.송소미는 윤혜인을 향해 힘차게 돌진하며 독하게 욕설을 내뱉었다.“이 나쁜 년! 지옥에나 가!”털썩-윤혜인은 그녀에 의해 바닥에 쓰러졌다.날카로운
바닥에 쓰러진 이준혁은 몇 번을 애를 써도 일어나지 못했다.다리를 못 쓰는 사람처럼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마치 심장마저 멈춘 듯 온몸이 굳어버렸다.“대표님!”사람들과 함께 들어온 주훈은 이준혁의 시선을 따라 바닥에 어두운 그림자와 크게 벌어진 피 웅덩이를 보았다.크고 작은 일들을 많이 봐왔지만 그도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보고는 영혼이 날아갈 것 같았다!입을 벙긋하던 주훈은 목이 메었다.“사모님...”이준혁은 부축하려는 주훈의 손을 뿌리치고 검은 그림자를 가리켰다.“가... 확인해.”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 그는 믿지 않을 것이다.“네!”주훈은 즉시 앞으로 나아가 어두운 그림자 쪽으로 가서 확인했다.그러나 사람은 아래를 향한 채 떨어졌고 넘어지면서 심하게 다쳐 여성으로 보이는 형체를 제외하고는 얼굴은 진작 훼손된 상태였다.바닥에는 커다란 피 웅덩이가 고였고 끈적끈적한 선홍색 피가 뿜어져 나오는 걸 보아 머리가 터진 것 같았다. 그 장면은 너무 끔찍해서 누구도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경호원 한 명이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구토를 했다.주훈은 몸을 웅크린 채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장신구 같은 것이 있는지 확인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사모님이 맞든 아니든 이대로 놔두는 것도 좋지 않았기에 주훈은 사람을 시켜 검은 천으로 시체를 덮게 했다.“맞아?”뒤에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주훈이 뒤를 돌아보자 어느 틈엔가 이준혁이 다가와 있었다.그는 망설이다가 대답했다.“대표님, 죄송하지만 정말 모르겠습니다.”이준혁이 차갑게 쏘아붙였다.“비켜!”주훈은 그의 의도를 감지했다. 직접 확인하려는 듯했으나 그 형체는 차마 보기 흉했다. 만약 진짜 사모님이라면 이는 평생 그의 악몽이 될 것 같았다.그가 나서서 말렸다. “대표님, 차라리 의사의 판단을 기다리시죠. 보기 그렇습니다.”그는 에둘러 말했다. 현장은 보통 보기 힘든 게 아니라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지경이었다.선홍색과 붉
“윤혜인...”윤혜인은 고개를 돌려 남자에게 물었다. “오빠, 괜찮아요?”한구운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입가에는 아직도 피가 고여 있었고 혹시 장기라도 다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괜찮아... 혹시나 잘못되면 우리 부모님 좀 부탁해...”“그럴 리 없어요!” 윤혜인은 단호하게 말하며 얼굴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오빠 괜찮을 거예요, 괜찮을 거야...”윤혜인의 머릿속은 아직 멍한 상태였다. 조금 전 지쳐서 몸부림치는 것을 포기하자 송소미의 칼이 그녀의 살갗을 스쳐 지나갔고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한구운이 튀어나와 단숨에 송소미에게 달려들어 아래로 함께 떨어졌다.윤혜인은 바닥에 흩뿌려진 피를 보며 그도 죽었다는 생각에 무너져 내리기 직전이었다.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자 다행히 아직 의식을 잃지 않고 누워있는 선배를 보며 윤혜인의 마음은 감사함으로 가득 찼다.다행히 선배는 죽지 않았지만 자칫 자신 때문에 그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았을 것이다!다행이라 여기면서도 여전히 마음이 쿵쾅거렸다.조금만, 아주 조금만 늦었어도 얼굴이 일그러진 채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이 자신이 될 뻔했다.이준혁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그녀가 연락이 끊긴 순간부터 그의 심장은 단 1초도 긴장을 늦출 틈도 없이 팽팽히 당겨져 있었다.언뜻 바닥에 쓰러진 사람이 그녀라고 생각했을 때 그의 심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심하게 찢어지는 것 같았고 지금까지도 통증이 느껴졌다.무사한 그녀의 모습에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너무도 기쁜 나머지 그대로 그녀를 품에 안고 싶은 걸 얼마나 참았는지 오직 하늘만이 알 것이다.하지만 그녀는...그녀의 눈에는 오직 한구운만 보이는 듯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을 쳐다보지 않았다.그 순간 이준혁의 심장은 다시 한번 칼에 찔린 듯했고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워졌다.그는 자신이 여기 서 있는 자체가 그토록 초라하게 우습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구급대원들이 이준혁에게 들것에 타라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다.그는 심하게 다친 다리를 고통스럽게 앞으로 끌고 가면서 이 고통을 조금 더 단단히 기억하고 싶었다.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저 여자를 위해 다시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윤혜인은 차갑고 무정한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누군가 심장을 움켜쥐는 듯 마음이 괴로웠다.주훈은 자신의 상사를 대신해서 한 소리 했다.“사모님, 방금 대표님께서 바닥에 쓰러진 사람이 사모님인 줄 알았을 때 일어나지도 못하셨습니다.”꾹 참던 윤혜인의 눈은 순식간에 빨개졌다.그는 지금 화가 나서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는 것이다.“주 비서님, 병원 가면 어떻게 됐는지 저한테 알려주실 수 있나요?”주훈이 해서는 안 될 말이었지만 지금 그는 규정 따위 개의치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대표님께서는 진심으로 걱정하셨어요. 이쪽 일 마무리되면 직접 대표님을 보러 오시는 게 제가 전하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될 거예요.”이렇게 말한 후 그는 서둘러 뒤를 따랐고 경호원들은 모두 철수했다.윤혜인은 구급차 안에서 간단히 외상을 치료한 뒤 경찰서로 가서 진술했다.송소미가 납치했다는 사실은 분명했기 때문에 윤혜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서 밖으로 나왔다.그녀는 몸에 묻은 핏자국을 보며 고민 끝에 일단 옷을 갈아입고 이준혁과 한구운을 만나러 병원에 갔다.병원에 도착했지만 주훈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한참을 수소문한 끝에 이준혁이 치료를 마치고 위층 VIP 병실로 옮겼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조마조마하던 윤혜인은 마침내 안도할 수 있었다.그 순간 주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고 윤혜인은 황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그런데 주훈은 지금 만나기 불편하다는 말을 전했고 전화기 너머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며 간간이 이씨 집안 내외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했다.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알겠어요.”만약 그의 부모님이 계시는 거라면 그녀가 가기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그녀는 뒤돌아 2층에 있는 한구운을 찾아갔다
매번 누군가 보러 올 때마다 이준혁의 눈빛은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지는 걸 보아 분명 원하는 사람이 오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문이 닫히는 소리에 눈을 감은 채 쉬고 있던 이준혁이 눈을 떴다.방문객을 본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외면했다.표정만 봐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본 게 분명했다.순간 윤혜인의 마음이 다시 아프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입술을 다물고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 서 있었다.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보온병을 들고 고개를 숙인 채 들어와 물었다.“준혁 씨, 다친 데는 좀 괜찮아요?”시선을 돌린 이준혁의 잘생긴 얼굴에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누가 들어오래?”그의 말투와 표정이 윤혜인에게 정말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순식간에 윤혜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돌아서서 떠나고 싶은 충동이 가슴속에서 솟구쳤지만 발은 뿌리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그녀는 손을 꽉 말아쥐며 그래도 해명하려 애썼다.“어제는 준혁 씨를 신경 쓰지 않은 게 아니라 선배가 눈앞에서 떨어지는 걸 보고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순간 당황해서 잠깐 이성을 잃었어요. 그땐 그냥 무서워서...”누군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다 죽는 건 생각만 해도 다리에 힘이 풀렸고, 자연스레 더 다친 사람에게 먼저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그녀의 양심과 본능 모두 이준혁에게 먼저 다가갈 수 없게 했다.또한 사실이 그러하듯 한구운은 조금 더 심하게 다쳐 지금까지도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그녀가 말을 이어갔다.“나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다치게 하는 준혁 씨 모습에 진심으로 감동했어요...”이준혁은 차마 들어줄 수가 없었다.감동?누가 감동 따위 바랬나.한구운이 나타난 게 수상해 어젯밤 휠체어를 타고 한구운이 있는 병동으로 내려가 혹시나 단서가 있는지 살펴봤다.그 결과 윤혜인이 남자의 침대에 엎드려 밤새 남자의 곁을 지키는 모습이 보였다.마음이 있다면 밤에 그를 보러 왔어야지.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자신을 무시하고 있었다
자신감이 없는 듯 윤혜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한 번도 먼저 다가선 적이 없었는지라 그의 옆에 붙어 있는 팔은 긴장해서 굳어 있었다.이준혁은 무심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맞으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때?”수치심을 버리고 윤혜인은 가장 어려운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의 차가운 표정을 보자 이내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도 자신을 구해줄 때의 그를 생각하며 애써 참아냈다.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이준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정말로 절 보고 싶지 않다면, 다신 귀찮게 안 할게요.”눈앞에 있는 꽃잎 같은 입술에서는 마치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이준혁은 별다른 표정 없이 손가락을 더욱 꽉 쥐었다. 피도 점차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분명 무슨 스킬을 쓴 것도 아니고 그저 가볍게 닿은 것뿐인데 그는 윤혜인을 바로 눕혀버리고 싶었다.그러나 어젯밤의 장면을 떠올리니 곧 마음이 다시 식어버렸다.“네 남자친구는 어디에 두고 이러는 거야?”놀란 윤혜인은 한동안 이준혁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채지 못했다.하지만 금세 떠올리고 막 해명하려던 찰나, 이준혁이 조롱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아니면 두 사람 다 갖고 싶은 거야?”윤혜인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마음도 무언가에 세게 잡아당겨 지는 듯했다.‘여태 날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팽팽하던 공에 바람이 빠진 것처럼, 혼란스러웠던 머리가 갑자기 맑아진 것 같았다.어렵게 쌓아 올린 용기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이제 두 사람은 몇 마디 말로 해결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윤혜인은 조금 전 자신의 충동적이었던 행동을 매우 후회하며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미안해요, 방해해서.”말을 마치고 나서 그녀는 투명인간처럼 바로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하지만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는 이준혁에게 손목을 덥석 잡히고 말았다.곧이어 그는 윤혜인의 손을 단단히 쥐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선택하기 그렇게 어려워?”이준혁은 정말이지 윤혜인 때문에
그때, 원지민의 손목을 바라본 윤혜인은 순간 충격을 받아 얼굴이 창백해졌다.원지민이 착용하고 있는 옥 팔찌는 바로 윤혜인이 문현미에게 돌려준 팔찌였기 때문이었다.윤혜인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 옥 팔찌를 잠시 바라보다가 마침내 손을 내밀어 가볍게 악수를 했다.그러고는 문현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아주머니, 그럼 두 분 얘기 나누세요. 저는 먼저 가볼게요.”“어머님”이 아닌 “아주머니”라고 부른 것만으로도 현재 그녀의 태도가 드러났다.문현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윤혜인이 막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이준혁의 냉랭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가지 마.”윤혜인은 걸음을 멈칫했지만 이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급하게 침대에서 내려오던 이준혁은 상처가 벌어져 “윽.”하고 짧게 신음소리를 냈다.문현미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 서둘러 그를 막았고 원지민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지민아, 네가 여기서 준혁이 좀 돌봐줘. 난 혜인 씨 배웅하러 가봐야 할 것 같다.”곧 다시 눕혀진 이준혁이 창백해진 입술로 힘겹게 말을 꺼냈다.“혜인이한테 말해줘요. 아직 할 말이 남았다고.”안색이 어두워졌지만 문현미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밖으로 윤혜인을 따라가 그녀를 불러세웠다.“혜인 씨, 잠시 얘기할 수 있을까요?”윤혜인은 거절하지 않았고 얼마 후 문현미가 입을 열었다.“소미 사건에 대해 다 알고 있어요.”문현미의 표정은 그닥 좋지 않았다. 송소미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비록 그녀도 송소미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었으니 기분이 언짢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게다가 문미정은 이준혁을 찾아와 그가 윤혜인을 위해 송소미를 몰아붙이지 않았더라면 송소미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떠들어댔다.결국, 송소미는 처참한 결말을 맞이했다.친척 간에 교류가 없더라도 문현미는 사람 목숨이 걸린 일로 번지기를 원치 않았다.그녀가 신중하게 말했다.“지민이는 준혁이랑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