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누군가 보러 올 때마다 이준혁의 눈빛은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지는 걸 보아 분명 원하는 사람이 오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문이 닫히는 소리에 눈을 감은 채 쉬고 있던 이준혁이 눈을 떴다.방문객을 본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외면했다.표정만 봐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본 게 분명했다.순간 윤혜인의 마음이 다시 아프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입술을 다물고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 서 있었다.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보온병을 들고 고개를 숙인 채 들어와 물었다.“준혁 씨, 다친 데는 좀 괜찮아요?”시선을 돌린 이준혁의 잘생긴 얼굴에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누가 들어오래?”그의 말투와 표정이 윤혜인에게 정말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순식간에 윤혜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돌아서서 떠나고 싶은 충동이 가슴속에서 솟구쳤지만 발은 뿌리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그녀는 손을 꽉 말아쥐며 그래도 해명하려 애썼다.“어제는 준혁 씨를 신경 쓰지 않은 게 아니라 선배가 눈앞에서 떨어지는 걸 보고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순간 당황해서 잠깐 이성을 잃었어요. 그땐 그냥 무서워서...”누군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다 죽는 건 생각만 해도 다리에 힘이 풀렸고, 자연스레 더 다친 사람에게 먼저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그녀의 양심과 본능 모두 이준혁에게 먼저 다가갈 수 없게 했다.또한 사실이 그러하듯 한구운은 조금 더 심하게 다쳐 지금까지도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그녀가 말을 이어갔다.“나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다치게 하는 준혁 씨 모습에 진심으로 감동했어요...”이준혁은 차마 들어줄 수가 없었다.감동?누가 감동 따위 바랬나.한구운이 나타난 게 수상해 어젯밤 휠체어를 타고 한구운이 있는 병동으로 내려가 혹시나 단서가 있는지 살펴봤다.그 결과 윤혜인이 남자의 침대에 엎드려 밤새 남자의 곁을 지키는 모습이 보였다.마음이 있다면 밤에 그를 보러 왔어야지.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자신을 무시하고 있었다
자신감이 없는 듯 윤혜인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한 번도 먼저 다가선 적이 없었는지라 그의 옆에 붙어 있는 팔은 긴장해서 굳어 있었다.이준혁은 무심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맞으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때?”수치심을 버리고 윤혜인은 가장 어려운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의 차가운 표정을 보자 이내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도 자신을 구해줄 때의 그를 생각하며 애써 참아냈다.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이준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정말로 절 보고 싶지 않다면, 다신 귀찮게 안 할게요.”눈앞에 있는 꽃잎 같은 입술에서는 마치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이준혁은 별다른 표정 없이 손가락을 더욱 꽉 쥐었다. 피도 점차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분명 무슨 스킬을 쓴 것도 아니고 그저 가볍게 닿은 것뿐인데 그는 윤혜인을 바로 눕혀버리고 싶었다.그러나 어젯밤의 장면을 떠올리니 곧 마음이 다시 식어버렸다.“네 남자친구는 어디에 두고 이러는 거야?”놀란 윤혜인은 한동안 이준혁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채지 못했다.하지만 금세 떠올리고 막 해명하려던 찰나, 이준혁이 조롱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아니면 두 사람 다 갖고 싶은 거야?”윤혜인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마음도 무언가에 세게 잡아당겨 지는 듯했다.‘여태 날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팽팽하던 공에 바람이 빠진 것처럼, 혼란스러웠던 머리가 갑자기 맑아진 것 같았다.어렵게 쌓아 올린 용기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이제 두 사람은 몇 마디 말로 해결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윤혜인은 조금 전 자신의 충동적이었던 행동을 매우 후회하며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미안해요, 방해해서.”말을 마치고 나서 그녀는 투명인간처럼 바로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하지만 돌아서려는 순간 그녀는 이준혁에게 손목을 덥석 잡히고 말았다.곧이어 그는 윤혜인의 손을 단단히 쥐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선택하기 그렇게 어려워?”이준혁은 정말이지 윤혜인 때문에
그때, 원지민의 손목을 바라본 윤혜인은 순간 충격을 받아 얼굴이 창백해졌다.원지민이 착용하고 있는 옥 팔찌는 바로 윤혜인이 문현미에게 돌려준 팔찌였기 때문이었다.윤혜인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 옥 팔찌를 잠시 바라보다가 마침내 손을 내밀어 가볍게 악수를 했다.그러고는 문현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아주머니, 그럼 두 분 얘기 나누세요. 저는 먼저 가볼게요.”“어머님”이 아닌 “아주머니”라고 부른 것만으로도 현재 그녀의 태도가 드러났다.문현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윤혜인이 막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이준혁의 냉랭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가지 마.”윤혜인은 걸음을 멈칫했지만 이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급하게 침대에서 내려오던 이준혁은 상처가 벌어져 “윽.”하고 짧게 신음소리를 냈다.문현미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 서둘러 그를 막았고 원지민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지민아, 네가 여기서 준혁이 좀 돌봐줘. 난 혜인 씨 배웅하러 가봐야 할 것 같다.”곧 다시 눕혀진 이준혁이 창백해진 입술로 힘겹게 말을 꺼냈다.“혜인이한테 말해줘요. 아직 할 말이 남았다고.”안색이 어두워졌지만 문현미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밖으로 윤혜인을 따라가 그녀를 불러세웠다.“혜인 씨, 잠시 얘기할 수 있을까요?”윤혜인은 거절하지 않았고 얼마 후 문현미가 입을 열었다.“소미 사건에 대해 다 알고 있어요.”문현미의 표정은 그닥 좋지 않았다. 송소미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비록 그녀도 송소미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었으니 기분이 언짢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게다가 문미정은 이준혁을 찾아와 그가 윤혜인을 위해 송소미를 몰아붙이지 않았더라면 송소미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떠들어댔다.결국, 송소미는 처참한 결말을 맞이했다.친척 간에 교류가 없더라도 문현미는 사람 목숨이 걸린 일로 번지기를 원치 않았다.그녀가 신중하게 말했다.“지민이는 준혁이랑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윤혜인은 살짝 웃으며 거절하지 않고 말했다.“생각 해보겠습니다.”사실 윤혜인은 원래 해외로 나갈 계획이 있었고 굳이 문현미에게 불편을 주고 싶지 않았다. 아무래도 문현미를 진심으로 좋아했었고 자신의 어머니처럼 생각했으니 말이다.문현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할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은 다시 각자 있어야 할 곳으로 떠났다.한편 병실 안.원지민은 병색이 도는 듯하지만 여전히 잘생긴 이준혁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오랜만에 만나면 꼭 한 번 세게 안아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약해진 줄은 몰랐네.”그러자 이준혁이 물었다.“왜 이렇게 꾸미고 다녀?”예전의 원지민은 항상 남자아이처럼 다녔었고 심지어 어릴 때의 이준혁은 그녀를 남자아이라 착각하고 함께 놀았었다.15,16살이 될 때까지도 원지민은 남자아이처럼 꾸미고 다녔다.그 후엔 그녀가 유학을 떠나면서 거의 만나지 못했다.이준혁의 물음에 원지민의 표정이 굳어졌다.“왜, 별로야?”이준혁은 긍정도 부정도, 아무런 평가도 하지 않았다.예쁘고 안 예쁜 것에 그닥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었으나 원지민은 처음 윤혜인과 마주쳤을 때 그녀의 미소에 마음이 녹아버렸다.조금 전 상황을 되돌려보며 웃다가 원지민은 다시 평소처럼 돌아와 어깨로 이준혁을 툭 쳤다.“보기 불편하면 그냥 예전의 원지민을 생각해. 어차피 난 변하지 않았으니까.”그렇게 원지민을 살펴보던 이준혁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꽉 잡더니 물었다.“이 팔찌 어디서 난 거야?”원지민은 손목이 아파 얼굴을 찌푸렸다.“이모가 주신 거야.”이준혁도 눈살을 찌푸리더니 가감 없이 말했다.“빼.”그러자 놀란 원지민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이준혁, 너 왜 이렇게 옹졸해졌어?”이준혁은 딱히 설명할 마음도 없었다.“얼른 빼라니까.”정말이지 화가 나서 원지민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그렇게 팔찌를 빼려고 손을 뻗었는데 너무 힘을 주다가 그만 땅에 떨어뜨렸다.“쨍그랑.”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옥 팔찌가 두 동강 났고 이준혁은 그걸 보며
‘절단이라니?! 그렇게 심각한 건가?!’윤혜인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의사 선생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나요?”박미선은 슬픔에 잠겨 울며 말했다.“그래요, 누구보다 유능하고 훌륭한 내 아들... 다리가 없어지면 어떻게 살겠어요!”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윤혜인도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였다.‘그렇게 뛰어난 사람인데... 선배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이때 박미선이 갑자기 말했다.“혜인 씨, 우리 구운이 버리지 않을 거지? 혜인 씨 구하다가 구운이 이렇게 된 거잖아. 버리지 않을 거지?”윤혜인은 멍해졌다.‘우리 둘이 가짜 연인 사이라는 거... 설마 아직 알려드리지 않았나?’곧 그녀가 중얼거렸다.“아주머니, 저랑 구운 오빠는...”하지만 그녀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박미선이 통곡하며 무릎을 꿇었다.“풀썩!”박미선은 눈물 콧물을 흘리며 말했다.“혜인 씨,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인제 와서 우리 구운이를 버리지 말아줘. 절대 그 충격을 견딜 수 없을 거야. 우리 아들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도 콱 죽어버릴 거야!”박미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윤혜인이 얼른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하려 했다.주변을 지나가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윤혜인을 마치 배은망덕한 사람처럼 보는 것 같았다.어떻게 해도 일으켜 세울 수 없자 윤혜인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아주머니, 일어나서 말씀해주세요, 네?”하지만 박미선은 일어나기는커녕 오히려 한재철도 불러들였다.“여보, 빨리 와서 우리 며느리한테 구운이 버리지 말라고 빌어봐.”윤혜인은 할 말을 잃었다.다행히도 비교적 이성적이었던 한재철은 다가와서 박미선을 나무랐다.“당신 뭐 하는 거야?”한재철이 박미선을 일으켜 벤치에 앉혔지만 그녀는 계속 울고 있었다.물론 한재철의 얼굴도 좋지 않았다.“미안해요, 애 엄마가 너무 흥분해서... 많이 놀랐죠?”윤혜인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이해할 수 있어요.”이런 큰일 앞에서 누구나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법이다.한재철은 부드럽게 말했
윤혜인은 한구운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말했다.“당연히 알죠. 오빠 다리가 저 때문에 다친 거니까, 제가 책임지고 치료를 도와야 해요.”그녀의 말을 들은 한구운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역시, 그녀는 단순했다. 다른 생각이 있을 리 없었다.그렇게 한구운은 후속 치료 계획을 받아들였고 해외 전문가와도 연락을 마쳤으며 이틀 후에는 수술을 위해 출국할 준비까지 했다.경찰이 나중에 기록을 작성하러 왔을 때 한구운은 그날 밤 왜 그곳에 있었는지 설명했다. 그날 밤 윤혜인이 걱정되어 집으로 갔다가 송소미가 그녀를 납치하는 것을 보고 추적하여 구해냈다고 말이다.남아있는 감시 카메라 경로와 시간대도 일치했다.시간을 계산해본 윤혜인은 휴가를 연장해야겠다는 결론을 지었다.수술과 이동 시간을 포함하면 최소 한 달은 휴가를 내야 했으나 회사에서 그렇게 긴 휴가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사직을 고려하게 되었다.주로 한구운의 이번 일에 그녀가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만약 그가 없었다면, 끔찍한 결과를 맞이한 사람은 분명 그녀 자신이었을 것이다.하지만 이게 웬일이었을까, 예상과 다르게 상사는 윤혜인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녀의 자리를 남겨주기로 했다. 또 그녀가 가르치던 학생들도 전화를 걸어와 잘 공부하겠다고 다짐했다.특히 이하진은 180도 변한 태도로 자신 있게 그녀에게 약속했다. 그녀가 돌아오면 최소한 50등은 오를 거라며 말이다.이 말에 윤혜인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자신이 직접 가르친 학생들이기에 그녀도 쉽게 떠나기 어려웠다.떠나기 전에 그녀는 요양원에 가서 이태수를 만나, 해외로 한구운의 치료를 도우러 갈 것이라는 말 대신 학술 교류를 위해 간다고 말했다. 온전히 이태수가 걱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아니나 다를까 이태수는 매우 기뻐하며 윤혜인이 큰일을 해냈다고 칭찬했다.그 후, 그녀는 소원을 만나러 갔다. 소원은 병원에서 퇴원해 회사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어디서 돈을 마련했는지 모르겠지만 소원은 이미 은행에 160억 원
윤혜인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괜찮아요.”원지민도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저랑 준혁이는 그냥 좋은 친구일 뿐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고 준혁이는 절 한번도 여자로 본 적 없습니다.”윤혜인은 원지민이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이준혁의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오해한 적 없습니다.”원지민이 웃으며 대답했다.“오해하지 않았다니 다행이네요. 만약 저 때문에 두 사람이 싸우게 된다면 많이 미안할 것 같았거든요.”그러자 윤혜인이 다급히 설명했다.“저 준혁 씨랑 아무런 사이 아닙니다. 그러니 신경 안 쓰셔도 돼요.”“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뇨? 두 사람...”원지민이 더 말하려고 하자 이준혁이 끼어들었다.“너 갈 거야 말 거야?”그의 말투는 매우 성가신 듯했다.원지민은 말을 멈추고 윤혜인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그럼 전 이만 갈게요. 나중에 기회 되면 다시 얘기해요.”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면서, 원지민이 이준혁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살짝 밀더니 웃으며 무언가를 말하는 모습이 보였다.당당한 그녀의 모습은 이준혁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곧 엘리베이터가 닫히고, 내부에는 익숙한 차가운 향기와 함께 다른 여자의 향기가 감돌았다.그 냄새를 맡은 윤혜인은 코끝이 시큰해짐과 동시에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다.병실로 돌아온 윤혜인은 간호사가 한구운의 상처에 붕대를 갈아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여러 겹의 붕대 아래로 보이는 흉측한 상처와 약물 냄새, 강한 피비린내가 섞여 윤혜인은 속이 메슥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내며 버티고 있었다.그때, 간호사가 그녀에게 말했다.“저기, 이쪽에 있는 붕대 좀 잡아주실 수 있을까요?”윤혜인은 겨우 대답했다.“네... 웁!”그녀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구역질이 났다.윤혜인의 격한 반응에 간호사와 한구운의 안색이 모두 변했다.“죄송해요. 아무래도 뭘 잘못 먹었나 봐요...
“그럴 일 없을 거예요.”윤혜인이 한구운을 달래며 말했다.“내 말은 만약에...”한구운이 잠시 하던 말을 멈칫했다. 은은한 불빛 속에서 그의 온화한 얼굴이 조금 차갑게 보였다.“너 나랑 평생 함께 있어 줄 거야?”윤혜인은 사실 그렇게 먼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이 짧은 몇 초의 망설임이 한구운은 매우 불쾌했다. 그는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의 다른 손을 꽉 잡았다.그러자 어리둥절해진 윤혜인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곧이어 한구운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한 말을 기억해.”윤혜인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 순간, 한구운이 조금 낯설게 느껴져서 말이다.그때였다.“끼익!”급정거 소리가 나더니 차가 급히 멈췄고 뒤이어 차 문이 ‘쾅' 하고 열렸다.차 문 앞에 서 있던 이준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두 사람이 꽉 잡고 있는 손을 응시하더니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혐오감이 가득 담긴 그의 눈빛에 윤혜인은 마치 온몸이 찢기는 것 같았다.“내려.”이준혁이 차갑게 명령했다.윤혜인은 거의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 했지만, 한구운이 꽉 잡고 있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한구운은 이준혁과 눈을 맞추며 담담하게 말했다.“이준혁 씨, 미안하지만 저희는 비행기를 타야 해서요.”이준혁은 그를 한 번 쓱 훑어보더니 이내 무시하고 윤혜인을 강제로 차 밖으로 끌어냈다.하지만 그런데도 한구운이 손을 놓지 않아 윤혜인은 곧 몸이 두 동강 날 것 같았다.“아파요.”그녀의 외침에 이준혁은 손을 놓았고 한구운도 손을 풀었다.그 순간, 이준혁은 윤혜인을 번쩍 안아 자신의 차로 데리고 갔다.한구운은 뒤에서 담담하게 말했다.“혜인아, 기다릴게.”그 말에 윤혜인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비행기 타러 가야 하는데... 이 사람 뭐 하려는 거지?’그녀는 차갑게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이준혁 씨, 저 내려 줘요.”그러나 이준혁은 못 들은 척하고 그녀를 차 뒷좌석에 밀어 넣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