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경한의 체면을 지켜주고자 진아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안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움직임 소리를 그녀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이 빌어먹을 년이 또 경한 씨를 유혹하는 거야?! 심지어 이런 병원에서조차도? 발정 난 개가 따로 없구나, 아주.’방 안에서, 육경한은 전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는 오랜만에 소원을 만난 것 같이한 번 만지면 멈출 수가 없었다. 소원이 무슨 약이라도 되는 듯이 육경한은 그녀에게 중독되어 버린 것 같았다.그녀와 함께할 때만 육경한은 공허함을 채울 수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떠나려는 모습만 보이면 육경한은 이러한 행위로 소원을 굴복시키려고 했다!노크 소리가 계속되었고 진아연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만약 계속 여기에 남는다면 그녀는 굴욕을 면치 못할 것이다.진아연의 생일날, 육경한은 계획을 취소하려고 전화를 걸었다가 진아연이 미리 사람들을 매수해 이미 한이 그룹에 문제가 생긴 계약 건들을 전부 취소하고 환불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그녀가 엿들었다. 게다가 그들은 언론을 이용하여 대중에게 한이 그룹이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렸다.엎질러진 물은 되돌릴 수 없었다.그 후로 육경한은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해져 진아연과 함께 있을 마음조차 없었다.나중에 심지어는 소원이 크루즈선에 못 올라오도록 막기까지 했다.이윽고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진아연은 한 가지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다.‘소원 씨를 크루즈 선에 못 오르게 한 건 설마 그 여자를 지키기 위해서였던 거야? 내가 소원 씨를 괴롭힐까 봐?’이전에는 그냥 넘겼지만 이제 진아연은 확실히 그가 여전히 소원과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예상을 벗어난 이러한 상황에 그녀는 여태껏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공포에 휩싸였다.왜냐하면 육경한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오직 소원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나서라는 것밖에 없어서이니 말이다.어쩌면 육경한 자신조차도 몰랐을 수 있다. 자신이
육경한은 순간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수술 동의서? 수술이라니... 그렇게 심각한 건가? 그냥 조금 말랐을 뿐인데 그게 수술까지 할 정도라고? 웃기고 있네. 분명히 자기 입으로도 자기가 연약하게 생겼지만 몸은 건강하다고 했던 앤데...’육경한은 어두운 눈빛으로 간호사를 노려보았다.“그게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예요?!”그의 매서운 눈빛에 간호사는 깜짝 놀랐다.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불만스럽게 말했다.“보호자 분, 여기는 병원입니다. 저희는 절대 이런 일로 장난을 치지 않아요. 환자는 말기 위암이며 현재 악성 출혈이 발생했습니다. 보호자님께서 사인하지 못하시겠다면 즉시 다른 보호자님께 연락하세요!”육경한의 머릿속에서는 ‘윙’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그는 간호사의 손목을 꽉 쥐더니 입술까지 덜덜 떨며 물었다.“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다시 말해봐요!”간호사는 눈살을 찌푸렸다.“환자분이 위암 말기라고요, 못 알아들으셨어요?”이렇게 말하며 간호사는 육경한의 손을 뿌리쳤다. 그가 너무 아프게 쥐고 있어서 말이다.꽈당!검은색의 용머리 장식의 검은색 지팡이가 땅에 넘어졌다!육경한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더니 다행히 바닥에 넘어지지 않고 벽에 기댔다.그의 머릿속은 마치 탄약에 맞아 내장이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퍼져 갔다!온몸은 언제든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하하, 위암 말기... 분명히 내가 잘못 들은 걸거야! 그 여자가 어떻게 그런 병을 앓아?! 게다가 목숨이 위태로워? 웃기고 있네. 그렇게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거북이보다도 오래 살아야 할 텐데?! 그 여자가 어떻게 죽어?!’하지만 앞에 있는 간호사는 계속 말했다.“보호자 분, 지금 환자 상태가 매우 위급하고 언제든지 쇼크 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1분이라도 더 지체하면 위험이 더 커져요. 정말 가족 맞으십니까?”머릿속에서 이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의 눈앞에 있는 수술 동의서에는 명확히 적혀있었다.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통해서 수술 후
육경한은 일어서서 의사들이 소원이 눕힌 침대를 끌고 나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파왔다.그러다 갑자기 눈앞이 어지러워지더니 육경한은 ‘쿵’하고 바닥에 쓰러졌다!가슴에서는 선홍빛 피가 새어 나와 코트를 적시고 있었다.“경한 씨!”진아연은 바닥에 넘어진 그를 안고 큰소리로 외쳤다.“의사 선생님!”곧 의사가 나와 그의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그가 입은 검은색 셔츠를 자르고 보니, 옷은 이미 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셔츠에는 말라버린 핏덩이들이 잔뜩 붙어있었다.“장난하는 겁니까, 지금?!”의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화를 냈다.“이건 새로운 상처잖아요! 염증이 생겨서 이렇게 된 겁니다. 보아하니 몇 시간 동안 피를 흘린 것 같은데 살펴보지도 않고... 죽으려고 작정하신 것인지!”진아연은 원한이 가득 찬 눈빛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역시 남자는 믿을만한 게 아니야. 이번 생에 육경한의 아내가 될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하더니... 그깟 평범한 여자 하나 때문에 목숨을 포기할 정도로!’육경한이 치료를 받고 안정이 되자 진아연은 소원의 병실로 가다 우연히 담당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그녀를 보고 물었다.“조금 전 그 보호자랑 같이 오신 분인가요?”“네, 저는 그 여자 환자의 제일 친한 친구입니다.”진아연은 슬픔에 잠긴 얼굴을 하고 물었다.“소원이... 진짜 위암 말기인가요? 수술은 가능할까요?”육경한이 쓰러지기 전에 그녀는 수술 동의서를 보았다. 보자마자 그녀는 하늘을 향해 웃고 싶었다.‘이 빌어먹을 여자가 드디어 죽는다니, 너무 잘됐잖아!’의사는 그녀가 얼굴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위로를 건넸다.“환자분 상황이 꽤 심각합니다. 수술로 완치될 가능성은 매우 적어요. 저희는 가족분들께 말기 간호를 할 것을 권장해 드립니다. 그러면 환자를 너무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을 수 있어요.”진아연은 마음속으로 기뻤지만 겉으로는 슬픔이 가득한 얼굴을 했다. 의사가 다시 말했다.“그리고 여기 보니까 전에 입원한 기록이 있더라고요. 이번
소원은 걱정스러워하며 물었다.“설마 너 이준혁한테서 빌려온 거야?!”그러면서 그녀는 카드를 다시 돌려주었다.“나는 이거 필요 없어! 그러니까 빨리 가서 돌려줘. 나 때문에 너까지 괴롭게 만들고 싶지 않아.”윤혜인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이거 준혁 씨한테 빌린 거 아니야. 이 돈은 내가 대학 시절 그린 ‘그리움’이라는 그림을 팔고 번 거야.”“뭐라고? 너 그 그림 팔았어?”놀란 소원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 그림은 윤혜인이 꿈속에서 어머니를 보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작품으로, 그녀가 몇 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이었다.당시 그녀는 그림의 일부를 찍어 해외 소셜 미디어에 올렸고 누군가가 그림을 사고 직접 작가와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었다.소원이 윤혜인의 의견을 물었지만, 그녀는 동의하지 않았고 결국 그 포스팅을 삭제했다.하지만 현재 윤혜인은 소원을 위해 그 그림을 팔아 버렸다.소원은 거부했다.“나 이 돈 받을 수 없어. 가서 그림 되찾아와.”“그냥 받아둬. 나 온라인 경매 사이트에서 판 거야. 그래서 내 그림을 산 사람이 누구인지 정보를 알 수조차 없어. 지금 돌려받으려고 해도 이미 받을 수 없게 됐다고.”처음에 소원이 그 작품을 올렸을 때 상대방은 6억을 제안했다고 한다.하지만 시간이 얼마간 흐르자 가격은 바로 10억까지 뛰어올랐고 심지어 경매가 이루어지기도 했다.인터넷상에는 확실히 이상한 사람이 많다. 윤혜인은 매우 신중하게 거래를 마치고 바로 계정을 삭제했다.소원이 여전히 돈을 받기를 거부하자 결국 윤혜인이 다시 말을 꺼냈다.“나 전에 그 집 팔았잖아. 이 돈으로 너희 집 산다고 치자. 그럼 나 앞으로는 집세 안 낼 거야!”“그거랑은 다르지. 우리 집은 6억에도 팔리지 않아, 겨우 4억 정도라면 모를까.”“말 섭섭하게 한다? 자꾸 이러면 네가 날 좋은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길 거야. 남은 돈은 내가 투자한다고 치면 되잖아. 손해 보면 방법 없는 거고 벌게 되면 나한테 네가 나한테 나눠주면 되지!”윤
윤혜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여기서 뭐해요?”그녀는 어젯밤 이미 충분히 자기 의사를 똑똑히 밝혔었다.때문에 이준혁처럼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이 다시는 그녀를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왜, 내가 방해됐어?”남자가 이를 악물고 몇 마디 내뱉었다.‘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또 이렇게 불쾌해하는 거야...’하지만 이미 두 사람 사이에는 희망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으니 철저히 끝내는 것이 맞았다.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네, 정말 방해돼요. 제가 어제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요, 이준혁 씨?”이준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나랑 재결합하지 않겠다는 이유가 한구운 때문이야?”윤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자꾸 다른 사람 끌어들이지 않으시면 안 돼요?”그러자 이준혁의 표정이 굳어졌다.“하... 아까 보니까 되게 즐겁게 문자 주고받더라?”‘...혹시 아까 내가 문자 나누는 거 봤나?’하지만 그녀와 한구운은 그저 업무 이야기만 나누었을 뿐이고 두 사람은 정말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심지어 지난번 일도 윤혜인은 이준혁을 속이기 위해 그렇게 말했을 뿐, 둘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직접 해명한 적이 있다.아마 그는 처음부터 그녀를 믿지 않았던 것 같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가능성이 없으니 윤혜인은 이준혁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마음대로 생각하세요.”해명할 의욕도 없었는지라 윤혜인은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다.이준혁은 안색이 갑자기 차가워지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뒤에서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고 몸을 돌려세워 문에 밀어붙였다. 이윽고 그의 입술이 윤혜인의 입술을 덮쳤다.“웁...”윤혜인은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렸다. 밀쳐낼 새도 없이 그의 혀는 이미 그녀의 입안을 마구 헤집고 있었다. 마치 못다 한 욕구를 해소하려는 듯 거센 키스가 이어졌다.윤혜인의 입은 온통 그의 숨결로 가득 찼다. 이런 강제적인 키스가 그녀는 매우 불쾌했다.그래서 강하게
윤혜인은 고개를 숙였다. 눈가가 조금 촉촉이 젖어 들었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열 번을 말해도 똑같아요...”과거의 여러 가지 일들이나 이준혁 부모님의 반대 등... 모두가 그녀에게 이준혁에게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그럼 하지 마.”이준혁은 고개를 숙여 윤혜인의 얼굴을 감싸더니 그녀의 눈물에 강압적으로 입을 맞췄다.“말하지 마, 듣고 싶지 않으니까.”윤혜인은 여전히 몸부림치려 했지만 이준혁은 그녀를 아주 꼭 껴안았다. 너무 꽉 껴안다 못해 그녀를 자신의 몸속에 녹여 넣으려는 것 같았다.그가 말했다.“알아, 네가 하는 말이 진심이 아닐 거라는 거. 그렇게 빨리 거절하지 말고, 잘 생각한 다음에 나한테 말해줘, 응?”그녀를 껴안는 이준혁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자존심이 강한 그가 현재 모든 주도권을 이 여자에게 넘겨버렸다.그는 자신이 너무 비굴해졌다고 느꼈다. 지금 윤혜인이 단 한마디만 뱉어도 그는 무너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이준혁이 떠난 후, 윤혜인은 문을 열고 온몸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았다.오랫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다시는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수없이 스스로 다짐했지만, 이준혁과 가까워지기만 하면 마음속 깊이 자리한 뭔지 모를 감정이 꿈틀거렸다.충분히 단호하지 못한 것 같아 후회하면서도 그녀는 동시에 두려움에 사로잡혔다.자신이 깊이 빠져버릴까 봐, 떨어져 내릴까 봐, 산산조각이 나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까 봐......다음 날.윤혜인은 병원에 있는 소원에게 국을 가져다주러 갔다.집을 나서기 전, 그녀는 눈 밑의 다크서클을 가리기 위해 옅게 화장을 했다.막 병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윤혜인은 안에서 들려오는 의사의 목소리를 들었다.“태아에 관한 일은 오직 환자분만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신중히 생각하시길 바라요.”윤혜인은 온몸이 얼어붙었다.의사가 나간 후,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소원을 마주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소원아, 너... 임신했어
하지만 상대방은 양보하지 않았다. 당시 한구운은 투자 은행에서 그의 기를 적잖이 꺾어놨었다. 때문에 방혁수는 이 기회를 빌어 한구운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그는 앞으로 나와서는 두 사람의 길을 막으며 말했다.“뭐야, 여자친구랑 식사하는 거야?”윤혜인은 반박하려 하자 남자의 시선이 갑자기 그녀에게로 돌아갔다.“이쁜이, 그거 알아? 이 사람 회사에서 위반 행위로 해고되었었어. AI한테 해고됐다는 건 한마디로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란 말이지. 국내의 어떤 투자 은행에서도 얘를 다시 뽑지 않을거야. 이런 쓰레기랑 미래가 있을 것 같아? 그러니 나를 따라오는 건 어때?”한구운의 안색이 차가워졌다. 그는 늘 분노를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는데 말이다.그는 윤혜인을 자신의 뒤로 물러나게 하고는 말했다.“방혁수, 너 말 좀 조심해. 내 친구 성가시게 하지 말고.”그러자 방혁수가 헤벌쭉하고 웃는 것이다.“이 이쁜이가 반드시 너를 따를 거라고 어떻게 보장해? 넌 지금 직장도 없잖아. 이쁜이 나랑 가자. 오빠가 멋진 거 보여주고 맛있는 거 먹게 해줄게. 어때? 내 카드 다 너한테 맡길게.”한구운은 방혁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윤혜인을 끌어당겼다.“무시해요. 우리 이만 갑시다.”표면상으로는 차분해 보였지만, 윤혜인은 한구운의 팔이 굳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그가 왜 해고당했는지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구운은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써도 절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방혁수 같은 인간쓰레기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다니, 윤혜인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그녀는 제자리에 우뚝 서서 물었다.“방 대표님이시죠?”“음, 응, 맞아.”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방혁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생각 다 한거야, 이쁜이? 가자, 가자. 오빠 따라와.”그가 내민 손을 보자 윤혜인은 역겨움을 느꼈다.“교양이 있으면 어디 가서든 존중을 받습니다. 다음에 외출하실 때는 꼭 함께 챙기시길 바라요.”방혁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가, 비로소
식사가 반쯤 진행됐을 무렵,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로 올라와 연주하기 시작했다.윤혜인은 그것이 레스토랑의 마케팅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듣고 있었다.곡이 끝나자, 그녀는 연주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했다.그때, 갑자기 연주자가 마술처럼 큰 붉은 장미 다발을 꺼내어 윤혜인에게 건넸다. 당황한 윤혜인은 손을 뻗어 받지 않았다.“자, 이번에는 이벤트 시간입니다. 이 아름다운 장미는 우리 레스토랑 2주년 기념 이벤트에 참여한 특별한 손님들 중 가장 아름다운 분께 드리는 선물이예요.”‘아, 이벤트였구나.’윤혜인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장미 다발을 받아들었다.그리고 다음 순간, 한구운이 벌떡 일어나더니 테이블 주위를 돌아 윤혜인에게 다가왔다.그러고는 보석 상자를 꺼내 열었는데 그 안에는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팔찌가 들어있었다.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혜인아, 내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윤혜인은 완전히 멍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오빠가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거지?!’주변에서 식사하던 손님들도 박수를 치며 “받아줘, 받아줘!” 라고 외치고 있었다.부끄러움에 윤혜인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그녀는 한구운에게 조심스럽게 귓속말로 물었다.“오빠,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예요?”그러자 한구운은 미소를 띠며 반은 농담 반 진심 반으로 말했다.“아직도 모르겠어? 네가 내 여자친구가 되어줬으면 하는 거잖아.”“네?!”윤혜인은 급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저, 전 안 돼요!”그 말을 들은 한구운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말했다.“혜인아, 아홉 시 방향에 있는 저 여자가 해외에서부터 국내까지 날 따라다녔어. 난 저 여자가 나한테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나 좀 도와줄래?”“저...”윤혜인은 사람을 속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지난번 가짜 연인 행세를 한 것도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었다.그래서 또다시 가짜 연인 행세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