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은 전화를 걸어, 윤혜인에게 어디까지 왔는지 묻고 싶었다.하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미간을 좁힌 이준혁이 다시 그녀에게 전화하려고 할 때, 병실 문이 열렸다.문현미가 손에 정갈한 도시락을 든 채 들어왔다.“준혁아, 엄마가 야식 사 왔어. 네가 제일 좋아하는 그 집이야.”이준혁은 입맛이 없어, 그저 담담히 답했다.“거기 두세요.”“빨리 나으려면 잘 먹어야지.”문현미가 직접 죽을 떠서 그에게 건넸다.문현미의 손에 걸려있는 팔찌를 본 이준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어머니, 이 팔찌가 왜 어머니한테 있어요?”문현미가 멈칫하더니 말했다.“오늘 혜인이가 돌려주더라고. 내가 필요 없다고 했는데, 이혼한 이상 남의 물건을 가지고 싶지 않다고 하더구나.”순간, 이준혁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문현미가 조심스레 그릇을 내려놓으며 달랬다.“혜인이는 이미 다 내려놓고 본인만의 생활을 해나가려고 마음을 굳힌 거 같더구나. 너도 좀 배워. 이선그룹의 중책은 네가 맡아야 하는데, 지금의 시장은 우리만 성장하게 두지 않을 거야. 그러니 다음에 새로 며느리를 맞이한다면, 우선 배경 먼저 봐야지. 사람이야 뭐, 단정하기만 하면 돼.”지금의 문현미는 정략결혼을 전적으로 동의했다. 감정 없이, 아이만 낳고 두 가문 사이의 이익을 공고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그날, 이준혁이 ICU에 누워있던 장면만 생각하면 문현미의 심장은 빨리 뛰며 어지러움과 이명마저 느껴졌다. 엄마의 눈에는, 아이의 목숨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나쁜 사람이 되더라도 그랬다.문현미가 이어 말문을 띄웠다.“정씨 집안의 그 아가씨가 너랑 어울릴 것 같았는데, 네가 싫어하니 급할 거 없이 천천히 찾아보자꾸나.”이준혁은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늘 아침 윤혜인이 이곳에서 나가던 순간들을 되짚어 보았다. ‘아무런 특이 사항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되었을까?’그녀가 답이 없는 이유는 수업하느라 바빠서라고 생각했다. 저녁이면 죽을 들고 병문안을 올 거
이준혁이 뱉은 말 한마디는 마치 끓는 기름 솥에 물을 부은 것처럼 정신 사납게 윤혜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윤혜인은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이준혁이 전의 반지를 꺼내며 해명했다.“이 반지는 할머니가 나한테 남겨준 거야.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평생 서로를 사랑하셨어. 당시에 너한테 이 반지가 나한테는 어떤 의미인지 잘 해석 못 해준 것 같아.”이어 그는 큰 캐럿의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내 두 반지 모두 윤혜인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이 반지는 제작한 거야. 오랜 시간을 거쳐 드디어 받았지. 우리 재결합하자.”강경한 그의 말은 윤혜인이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틀어막았다. 마치 뭔가 다급하게 만류하려는 모양새였다.윤혜인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며,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다 울음기를 겨우 삼켜냈다. 모든 게 너무 늦었다.그녀는 이제 더 이상 그와 함께할 용기도, 자신도 없었다.모든 사람이 축복해 주지 않는 사랑은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을 것이었다.윤혜인은 반지를 빼서 이준혁에게 돌려주며 차갑게 말했다.“준혁 씨, 저는 명확하게 표현한 줄 알았어요.”이준혁이 차가워진 표정으로 반지를 건네받지 않으며 물었다.“무슨 뜻이야?”“어제는 그저 사고예요.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아요.”이준혁이 입술을 달싹이기를 반복하며 말을 이었다.“사고? 어제 네가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 잊었어? 얼마나 나를 원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거야? 사고... 다섯 번이나 사랑을 나눠놓고 사고라고?”그의 말로 인해 윤혜인은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입술을 짓이긴 그녀가 답했다.“취했었잖아요.”그녀는 마음을 먹은 듯 작정하고 말을 이어 나갔다.“어제 준혁 씨가 아니더라도, 다른 남자였어도 그랬을 거예요. 저도 성인이에요, 성적인 욕구가 있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않나요?”그녀의 말에 상처받은 이준혁이 냉소를 지으며 큰 몸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성욕이 생길 때, 내 이름을 불렀어. 그런데 네 말을 믿으라고?”이준혁으로 인해 불편해진 윤혜인
윤혜인이 분노에 찬 눈으로 이준혁을 노려봤다.“무슨 헛소리예요! 어젯밤에는 분명 서로가 원해서 한 거잖아요!”이준혁도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목에는 여전히 어제 남겨둔 흔적이 있었다. 그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서로가 원해서 한 거면, 더 해도 되잖아?”윤혜인이 눈을 피하며 답했다.“안 돼요. 더 이상 안 할 거예요. 이제 더 얽히면 안 돼요.”이준혁은 그녀가 피하지 못하게 턱을 잡으며 눈을 맞췄다.“혜인아, 속이려고 하지 마. 어제 그 반응은 거짓이 아니야. 너도 여전히 나 사랑하잖아, 안 그래?”“준혁 씨, 당신이 밤 일을 잘해서 그래요. 그런 쾌락은 고급스러운 장난감을 사도 얻을 수 있어요.”윤혜인은 어두워진 이준혁의 표정을 모른척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다는 거 진심이에요. 이러는 거 정말 별로예요. 깔끔하게 물러나 줘요.”문현미의 말에 동의한 이상, 윤혜인은 약속을 지켜 이준혁이 단념하게 할 생각이었다.윤혜인은 이준혁의 오만함이 절대로 다른 사람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걸 용납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윤혜인은 손톱을 손바닥 깊숙이 박으며 가슴에 맺힌 통증을 덮으려 했다.“준혁 씨, 이 세상에 여자가 저만 있는 것도 아니고, 더 이상 집착하지 마요. 없어 보여요.”남자의 얼굴은 순식간에 흉악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 속에 감춘 상처도 무시할 수 없었다.그는 그녀를 응시하며 또박또박 물었다.“이게 네 진심이야?”윤혜인은 잠시 멈칫하다 입을 열었다.“네, 진심이에요. 앞으로는 저희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요. 더 이상 연락하지 마요.”“모르는 사람?”그녀의 대답이 그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었다.윤혜인의 얼굴은 평온한 상태로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몸 아래 감춰둔 손바닥은 이미 검붉게 변해있었다.쉬운 일인 줄 알았는데, 내뱉고 나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누군가가 그녀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것 같았다. 너무 아팠다.이준혁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떠났다
진아연은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기분 좋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여러 은행에서 이미 인정했어. 한이그룹은 대출을 갚을 능력이 없다고, 그래서 강제 조치를 취할 거라고 말이야. 소씨 집안은 끝났어!”청천벽력과 같았다!소원은 얼굴에 핏기가 싹 사라졌고 온몸이 떨렸다.‘우리 소씨 집안이... 정말 망했다고?! 부모님은 어떻게 하지? 직원들은? 빌린 돈은 어떻게 갚지?!’진아연은 소원의 표정을 보면서도 만족하지 못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냥 단순히 망하기만 한 게 아니야. 당신 아버지는 피고인이 될 거고, 돈을 갚지 못하면 감옥에 가야 할걸?”소원의 머릿속은 ‘윙’하는 소리로 가득 차 숨쉬기조차 힘들어졌다.진아연은 웃는 듯 아닌 듯한 얼굴로 소원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사악하기 그지없었다.“소원 씨, 성원그룹과 회진그룹의 계약 건 문제가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아? 게다가 이 두 회사뿐만이 아니라 동원그룹과 호성그룹에서 거절당했잖아. 안 그래?”소원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진아연을 바라보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뜻이야?!”육경한이 없으니 진아연의 가식적인 온화함은 즉시 사라졌다.그녀는 피식하고 웃더니 말했다.“경한 씨가 이 계약 건들은 당신이 술자리에서 목숨 걸고 따온 거라던데, 참 고생 많았겠더라. 혹시 처음부터 이 계약 건들은 경한 씨가 당신에게 주려고 준비한 것이라 생각해본 적 없어?”소원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그녀는 덜덜 입술을 떨며 물었다.“무슨 소리야? 제대로 말해봐!”“잘 생각해봐. 왜 이 문제들이 일찍 터지지도, 늦게 터지지도 않고 하필 내 생일 날 터졌을까.”진아연은 친절하게 상기시켜 주었다.“아직도 모르겠어?”진아연의 생일날 한이그룹의 제품들이 집단으로 문제가 생겼다.소원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몸은 만 개의 화살을 맞은 듯 모든 “상처”가 터지며 피가 흐르는 듯했다.“당신들이... 미리 계획한 거였어?!”소원의 목소리는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이 계약 건
자신의 순진함 때문에 소씨 집안이 이렇게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고 심지어 아버지가 감옥에 갈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소원의 머리는 찢어질 듯이 아팠다.그때 진아연이 얼굴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당신 아버지 몸 상태를 보니까 감옥에 들어가면 아마 거기서 죽을 것 같던데... 미리 수의를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두 벌 준비해야 할걸? 당신 엄마도 몸이 안 좋다고 들었거든. 그때 가서 허둥대지 않게 미리 준비해둬.”순간, 소원은 눈에 핏발이 서더니 이내 진아연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그녀의 목을 졸랐다.“죽여버릴 거야!”지금 소원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진아연을 죽이는 것!소원의 머릿속은 증오로밖에 가득 차지 않았다!그들이 이렇게 비열한 수단으로 소씨 집안을 망가뜨리고 부모님에게까지 저주를 퍼부으니, 소원은 그들을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먼저 진아연, 다음엔 육경한이야!’자신의 이 한 목숨으로 두 악마의 목숨과 바꾼다면, 소원은 그것 또한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아...”‘젠장... 그냥 자포자기하게 만들려고 했을 뿐인데 이렇게 미쳐 날뛸 줄이야. 이러다 나 진짜 죽겠네! 힘은 왜 이렇게 센 거야?!’진아연은 필사적으로 바닥을 두드렸지만, 문밖의 경호원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처럼 반응이 없었다.절망한 소원의 모습을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더욱더 짓밟아 놓기 위해 경호원들에게 무슨 소리가 들려도 들어오지 말라고 미리 지시했던 것이 떠오르자 진아연은 그제야 후회막심했다.일이 완전히 꼬여버렸다!진아연은 두 손을 필사적으로 흔들어 보지만 소원은 마치 사신의 영혼이 깃든 것처럼, 엄청난 힘으로 진아연의 목을 꽉 조르고 있었다.“진아연! 이 악마! 넌 죽어 마땅해! 그리고 안심해! 육경한도 너와 함께 보내줄 테니까, 두 사람 지옥에서 함께 벌 받아!”새빨개진 소원의 눈은 마치 악마로 변한 듯했다.‘세상은 정말 불공평해! 착한 사람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왜 나쁜 사람은 제멋대로 날뛰는 거야?
육경한이 방금 문을 열었을 때 소원이 진아연의 목을 조르고 있었던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다. 그리고 소원도 직접 인정했다!이건 고의적인 상해이다.만약 진아연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면 소원은 분명히 감옥에 수감될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육경한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다.그는 진아연이 소원에게 화풀이를 하고 그냥 넘어갔으면 했다.현재 육경한은 마음이 한없이 혼란스러웠다. 소원을 감옥에 가는 게 자신이 직접 그녀를 괴롭히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소씨 집안의 나락은 육경한의 첫번째 목표이긴 했으나 아직 만족할 수는 없었다. 소원의 부모님은 여전히 잘 살아 있으니 말이다!육씨 집안에 일이 생겼을 때 그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었다. 지금 그에게는 돈과 권력이 있지만 그들을 다시 되살아오게 할 수는 없었다.육경한은 소원의 창백한 얼굴을 무시하고, 그녀가 위선적이고 거짓말쟁이이며 사기꾼이라고 자신을 세뇌시켰다.게다가 육경한은 자신이 받은 고통에 비해 소원이 겪는 고통은 너무 작다고 생각했다.그때, 소원이 고개를 들더니 웃으며 말했다.“나더러 진아연한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지금 말이 되는 소리를 하는거야?”지난번 그녀가 크루즈선에서 무릎을 꿇은 것은 단지한이그룹을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이제 한이그룹도 망한 마당에 그녀가 두려워할 게 뭐가 있겠는가?!갑자기 진아연이 육경한의 팔을 꽉 잡더니 분노하며 말했다.“경한 씨, 소원 씨도 스스로 인정했잖아요. 그런데 왜 아직도 그냥 가만히 두는 거예요! 전 그냥 소원 씨가 걱정돼서 보러 온 건데... 소원 씨는 저를 죽이고 경한 씨도 죽일 것이라고 말했어요! 빨리 이 미친 사람을 경찰에 신고하란 말이에요!”진아연의 위선적인 말이 소원은 역겨웠다.“하하하! 걱정돼서 왔다고? 걱정했다는 사람들이 서로 손 잡고 날 조롱하고 내 손으로 직접 한이 그룹을 파산시키게 하고 또 우리 부모님이 곧 돌아가실 것 같으니 수의를 준비하라는 저주를 퍼부어? 마음씨가 아주 좋구먼 그래!”진아연은 안색이 변하
소종은 용머리 장식의 검은색 지팡이를 들고 들어왔다.이 지팡이는 특별히 맞춤 제작된 것으로 한눈에 봐도 귀해 보였다.육경한이 용머리 장식의 검은색 지팡이를 받자마자 휠체어를 버리고 벌떡 일어났다.그 지팡이를 든 육경한의 모습은 우아함이 돋보였다.진아연은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역시 내 남자야. 지팡이마저 스타일리쉬하게 소화하다니!’이때 육경한이 소종에게 말했다.“아연이를 병원에 데려가서 철저히 검사해봐. 어디 한 곳도 놓치지 말고.”그러자 진아연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경한 씨, 나랑 같이 안 가줄 거예요?”하지만 육경한은 그저 진아연의 머리를 어루만질 뿐이었다.“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넌 먼저 검사 잘 받고 가서 쉬고 있어.”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지팡이를 짚고 빠르게 나갔다.안색이 굳어지더니 진아연은 입술을 깨물며 분노했다.‘하하, 일이 있다고? 아까 그 말 듣고 그 여자가 위험하게 될까 봐 겁이 난 거겠지! 빌어먹을 년, 죽어 마땅할 년이야!’진아연은 악의에 찬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다짐했다.‘반드시 널 빈털터리로 만든 후 제일 처량한 모습으로 죽게 만들거야!’...소원은 아버지의 병실 문 앞으로 돌진했다.작은 병실은 이미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한때 그들 가족에게 아첨하며 지분을 요구하고, 울며 배당금을 구걸했던 친척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그들의 얼굴은 예전 아첨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소원은 아버지 소진용이 침대에 누워 입을 크게 벌리고, 말을 할 수 없어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녀의 어머니 전미영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친척들에게 빌고 있었다.“제발, 그만해요. 남편 지금 건강이 안 좋아요. 여기서 떠들지 말고 나가서 얘기하면 안 되겠어요?”그 순간 주변은 더욱 떠들썩해졌다.“집이 이 모양 이 꼴이 됐는데 병원에 누워서 뭐 하는 거예요? 여기서 치료받을 자격도 없습니다!”“맞아요, 더 이상 돈 안 갚으면 우리가 쫓아내 버릴 거예요!”그리고 한 여성은 흥분해서 전미영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사람들은 다가오는 사람이 지팡이를 짚은 다리 저는 남자라는 것을 보고 전혀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그때, 한 중년 남자가 옷이 흐트러졌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소원을 보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세차게 잡아당기며 말했다.“빚을 갚지 못하겠으면 몸이라도 팔아야지, 안 그래? 아가씨 같은 미모라면 하루에 몇 명만 받아도 빚을 갚을 수 있을 거야...” 추잡한 남자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검은 은빛이 그의 얼굴로 날아왔다!쾅!무거운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지팡이의 끝부분이 강한 바람 소리와 함께 남자의 얼굴에 내리꽂힌 것이다.그 은빛은 지팡이 끝에 박혀 있는 은으로 만든 장식이었다.“풉!”남자는 입에서 피를 쏟아내며 네 개의 피 묻은 이를 뱉어냈다. 그러고는 고통에 바닥을 뒹굴며 비명을 질렀다.얼굴은 잔뜩 일그러진 것이 참혹한 모습이었다.‘다리를 절고 있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더니... 이렇게 힘이 셌어?!’다들 육경한의 포스에 놀라 소원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다.그러나 이는 끝이 아니었다.또각, 또각, 또각...육경한은 용머리 장식의 검은색 지팡이를 짚고 남자의 옆으로 다가가 한 마디 뱉었다.“내가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말을 끝낸 뒤, 그는 살짝 입술을 씰룩이더니 큰 손으로 지팡이의 용머리 장식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다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남자를 향해 내리쳤다.순은으로 된 지팡이의 끝이 남자의 손바닥에 정확히 꽂혔다.“아아아아!!!”남자는 손이 부서질 것 같은 극심한 고통에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이때 갑자기 누군가가 코를 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알고 보니 남자가 겁에 질려 그만 바지에 실수를 하고 만 것이었다!순간 주위 사람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뭐야? 당신 지금 우리 협박하는 거야? 빚 안 갚으려고?!”하지만 이내 육경한이 자신을 바라보자 그 사람은 겁에 질려 몸을 벌벌 떨며 뒤로 물러났다.육경한은 자신의 재킷으로 소원의 어깨에 덮어 몸을
말을 마친 주석훈은 손에 감았던 삼각 머플러를 풀어 칼을 깨끗이 닦은 뒤 다시 넣고는 진아연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참혹하게 죽은 채 혼자 남겨진 진아연은 숨이 멎는 순간에도 눈을 크게 뜬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지 못한 채로 죽어버렸다....집에서 하룻밤을 쉰 소원은 다음 날 오후가 되자 서둘러 병원으로 유진을 보러 갔다. 다행히 점점 좋아지는 유진의 상태에 소원은 안도했다.육경한은 그녀를 만나 최근에 확인한 소식을 알려주었다.“진아연이 죽었어.”청천벽력 같은 한 마디에 소원은 자리에 얼어붙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어떻게...”소원은 단서가 이렇게 쉽게 끊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진아연은 아버지를 죽인 진범을 알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었는데 이제 그녀가 죽었으니 그동안 애써 찾아낸 다른 단서들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었다.순간 무력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범인은 안상철과 같은 방식으로 진아연을 죽였어. 똑같이 67번을 찔렀어. 범인은 인체 해부에 아주 숙련된 사람이야.”소원은 경계심을 품으며 물었다.“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상철 삼촌을 죽인 사람과 동일인물이라는 말이야...?”만약 정말 같은 사람이라면 이 범인이 아마도 아버지를 죽인 진범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구도 이 두 사람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응, 내 추측도 그래. 너도 조심하고 경계심을 잃지 마.”육경한은 반지를 꺼내 소원에게 건넸다.“이거 받아.”반지를 본 소원은 순간 멍해졌다.“이게 뭐야?”소원이 손을 내밀지 않자 그녀가 오해한 것임을 눈치챈 육경한은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이건 호신용 반지야. 끼고 있어. 안에 바늘이 있는데 그 바늘에는 독이 있어서 이 바늘로 찌르면 상대방은 온몸의 힘이 빠지게 돼.”반지의 기능을 들은 소원은 그제야 이 작은 물건이 유용한 곳에 쓰인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받아서 손에 꼈다. 하지만 결혼반지를 끼는 곳에 아니라 독신임을 상징하는 손가락에 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지만 주석훈은 여전히 온화하고 젠틀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는 이런 장면에 익숙해진 듯 별 반응이 없었다.마지막 몇 번의 칼질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진아연의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칼날이 그녀의 살을 천천히 파고들며, 생명은 마치 촛불이 꺼지듯 서서히 소멸해 갔다.죽을 수 있을 만큼의 고통, 그러나 죽지 못하게 만드는 고통. 그야말로 가장 잔혹한 죽음이었다.기운이 다 빠진 진아연은 주석훈의 차분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알겠어... TV 뉴스에 나왔던 안상철의 죽음도 당신...”진아연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진작 알아차려야 했다.“당신... 맞지...”이제야 모든 진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늦어도 너무 늦었다...그날 현장에 있었던 그녀는 안상철이 도망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상철이 돈을 숨겨둔 곳까지 몰래 따라갔다. 그녀는 그 돈이 신비로운 인물이 준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신비로운 인물이 주석훈인지 몰랐다.안상철을 따라간 진아연은 그 돈을 손에 넣어 자신의 도피 자금으로 쓰려고 했다.그래서 안상철이 돈을 파내는 것을 보고 망치를 들어 안상철의 머리를 내리친 뒤 돈을 챙겨 차를 타고 도망쳤다.그 후 며칠 동안 숨어 지내며 안상철에 대한 소문을 기다렸고 그러다가 안상철이 칼에 여러 번 찔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칼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강하게 내리쳤을 뿐이었고 힘도 많이 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안상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얻는 것이었다.살인이 두려워서 안상철을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살인죄까지 뒤집어쓰면 도주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 시점에서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것은 스스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하지만 안상철을 죽인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 이렇게 점잖은 주석훈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진아연이 물었다.“왜... 왜 그 사람을 죽이고... 나까지... 죽이는 거야...”주석훈이
심지어 진아연은 얼마 전까지도 주석훈을 젠틀한 문화인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보니 큰 착각을 한 것 같았다.진아연은 주석훈을 향해 아첨하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변호사님, 어떤 일이든 할게요. 제발...”“쉿!”주석훈은 두 번째 손가락을 입가에 올리며 ‘쉿’하는 소리를 냈다.‘쉿’하는 그 소리에 온몸에 식은땀이 난 진아연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번뜩이는 칼날을 휘두르던 남자는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를 찔렀다.“안녕, 나는 주석훈이야.”“으악!”진아연은 하늘을 향해 비명을 내질렀다.칼은 급소를 찌르지 않았지만 충분히 고통스러웠다.이어서 또 한 번 칼을 휘두른 주석훈은 이번에도 급소가 아닌 뼈 사이를 정확히 찔렀다. 날카로운 칼날이 조금씩 몸을 파고들자 진아연은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주석훈이 친절하게 말했다.“여긴 무릎뼈가 있는 곳이야. 다음은 발목뼈, 아마 통증이 다를 거야.”“왜... 왜, 왜 이러는 거예요?”진아연은 쉰 목소리로 힘겹게 물었다.“세상 일에 꼭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네가 저지른 일에는 인과응보가 따르는 법이지. 지금 겪는 건 그저 그 대가일 뿐이야.”말을 하면서 그녀의 뼈 사이를 정확히 찌른 주석훈은 날카로운 칼날로 진아연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또다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주석훈은 들리지 않는 듯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하나만 말해줄게. 나는 사실 법의학자가 될 뻔했어. 예전에 인체 해부하는 것을 좋아했거든. 변호사가 될 생각은 없었어. 변호사가 된 이유는 돈을 빨리 벌기 위해서야.”주석훈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진아연에게 이야기했다.고통에 죽을 지경인 진아연은 울며 말했다.“나를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육경한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렇게 말했지. 하지만...”주석훈은 뼈관절을 해부하며 말을 이었다.“너를 믿을 수 없어. 쓰레기 주제에 두 번째 기회를 바라다니, 꿈 좀 그만 꿔!”무자비하게 조롱하는 주석훈의 말에
진아연의 이름을 들은 육경한은 매우 침착하게 천천히 말을 뱉었다.”괜찮아, 아마 걔는 살 수 없을 거니까.”“...”황수진은 육경한이 진아연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고 매우 놀랐다. 그가 보기엔 이 신비한 사람이 진아연을 구출한 것을 보면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한 패거리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하였지만 뜻밖에도 육경한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육경한은 동네 정문 쪽 동영상을 보면서 이리저리 보다 지프차량이 진아연을 돌격하는 곳에서 멈추었다.차량은 아무런 인정사정이 없이 그 자리에서 사고를 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마도 진아연 단지 입구에서 죽는다는 것이 정말 번거롭고 또 잠재된 위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 방안을 바꾼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이 방안은 집행될 것이고 이 신비한 사람은 절대 진아연의 목숨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황수진이 지프차를 보았는데, 분명히 가짜 번호판이었지만 조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그가 한국 본토에서 활동하는 한 날 중에는 언제든지 증거가 남게 될 것이다.반대편 차 안에서 진아연은 그곳을 본 후 안색이 어두워졌다."제트 씨, 왜 저를 이렇게 황량한 교외에 두셨어요? 택시를 타고도 돌아가기도 곤란해요."“여기 안 오고 들키고 싶어요?"제트의 기분은 나빠지자 진아연은 감히 말하기 무서웠다."그럼 제가 내려가도 되나요?"진아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담배 한 대를 다 피운 후에야 천천히 진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내려요.“진아연은 기쁜 마음으로 차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아주 쉽게 차 문이 열렸다. 그녀는 일종의 재난을 모면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매우 기뻤다는데 한 발이 발밑의 땅을 금방 밟았을 때, 뒤에서 누가 등이 세게 걷어찼다.진아연은 멀리 차여 입에서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왔고 마치 자신의 몸이 해체되는 것처럼 느껴졌다.차근차근 차에서 내려 진아연의 앞에 다가와 걸음을 멈춘 남자를 보고 진아연은 어리둥절해졌다.“왜... 왜 저를 발로 차요?"제트는
남자는 재밌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만약 제가 당신에게 기회를 준다면요?”“무슨 기회요?”진아연은 자신이 누구와 거래하는지 잊지 않고 전전긍긍하며 물었다.남자의 두 눈은 마치 별을 숨긴듯 하였다. 그는 반혹적인 어조로 말했다.“육경한을 죽일 기회를 줄게요. 만약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저는 당신의 잘못을 추궁하지 않고 평안히 출국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요. 진아연 씨, 어떻게 생각해요?”“정말이에요?”진아연은 그의 말을 정말 믿기 어려웠다.제트를 마주할 떄 진아련은 항상 착각에 빠졌다. 사실은 육경한을 죽이는 것보다 제트를 마주하는게 더 어려웠다. 이 두 문제를 함께 놓으면 비교가 될 것이다.왜냐하면 그는 아주 신비하기에 누구도 그의 배경과 내력을 알 수 없어 그와 상대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경한의 약점은 아주 많다. 소원이와 그녀 뱃속에 있는 아이, 그리고 망할 놈 유진이... 심지어 하나하나의 나쁜 계획은 이미 진아연의 마음속에서 형태를 갖추게 되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제트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물론 정말이에요, 당신이 성공하면 저는 말한 대로 다시는 따지지 않을 것이에요. ”말하는 사이에 남자는 뒤에 쫓아오는 세 대의 차를 가볍게 따돌렸다.이 제트는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마냥 무섭기 그지없었다.하지만 진아연의 마음속에 있는 제트는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그녀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어 놀라지 않았다.진아연은 눈앞의 남자를 보면서 자신의 충성심을 알려 주었다.“제트 씨, 안심해요, 저는 반드시 임무를 완수할 거니까. 당신은 저를 죽이지만 않으면 됩니다.”“음, 기대가 되네요.”“...”뒤따라오던 세 대의 차가 앞차를 잃어버린 후, 경비원들은 실시간 정보를 병실의 VIP 라운지에 전달했다.유진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남자는 황수진보고 유진이의 휴식에 방해 안 되는 대기실에 오라고 했다.지금 육경한의 안색은 매우 안 좋았다.경호원들이 전송해 오는 화면
남자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잡히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또 오다니 정말 바보 중의 바보예요!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이곳 경비원은 다른 동네 분들과 다를 줄은, 이곳 경비원은 정말 최고급 경호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여자가 원망하자 옆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진아연, 당신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멍청한 사람인 것 같아요. ”진아연은 순간 자신의 이름을 듣고도 반응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가 라는 생각에 그녀는 그를 경계하면서 물어봤다.“누구세요? “남자는 침묵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 가리려고 마스크를 썼지만, 눈빛에 드러나는 냉랭함은 숨길 수 없었다. 진아연은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나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당신이 바로 제트 씨이세요? ”남자는 그녀를 상대하지도 않고 부인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다 설명했다. 진아연은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바지에 실수까지 할 뻔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늑대 무리에서 도망쳐 나와 호랑이 굴에 들어갈 줄을... "제트 씨... 아주 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여기에 나타난 건 아니예요. 지금 당장 꺼질게요. ”놀라움은 하여금 진아연의 이성을 잃게 만들어 고속도로에서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릴 생각까지 하였다.제트와 비교했을 때, 지금 뒤에서 자신을 쫓아오는 경비원들이 구세주라고 생각되었다. 진아연은 제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고 느꼈다. 필경 지난번에 그의 손에서 죽을 뻔했으니까... 진아연의 손이 차 문손잡이에 닿았을 때, 차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진아연은 절망 속에서 두 손을 비비며 용서를 비는 자세를 취했다. “죄송해요... 제트 씨... 저 진짜 멀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 저를 놓아주세요. ”안장이 좁아서 진아연은 무릎을 꿇을 수 없어 두 손을 끊임없이 비비며 아주 작은 희망을 찾고 있었다.남자는 역시 수단과 방법을 숨기고 있었다. 뒤차의 추격을 피하는 동시에
여자가 작은 골목에 들어섰을 때, 경비원이 말했다. “아가씨, 길을 잘못 들었어요. 13동은 저쪽에 있어요.”여자는 할 수 없이 돌아섰는데 경비원이 다시 말했다. “아가씨, 친구 보러 처음 오셨어요?”여자는 이곳의 경비원이 왜 범인을 검문하는 것처럼 자신을 물어보는지 이해 안 가 속으로 욕했다.여자는 대충 대답했다.“네네, 처음 왔어요.”13동 문 앞에 오자 경비원이 직접 603의 초인종을 눌렀고 방울 소리가 울리자, 안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경비원은 여자보고 말하라고 고개를 돌렸다.“...”정말 어쩔 수 없어 여자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아이고, 배가 너무 아파요.”여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경비원은 즉시 구급차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경비원이 구급차를 부르는 사이에 여자는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도망쳤다.“거기서요!”경비원은 일반인보다 더 빠르게 반응해 무전기에 대고 빨리 저 검은 옷 입은 여자를 잡으라는 말을 했다.여자는 자신의 눈앞에서 점점 닫혀 가는 문을 보며 당황해 어리둥절했다.“닫지 말아요.”안에서 경비원이 소리를 듣고 여자 쪽으로 돌진해 왔다. 그들은 마치 여기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듯 일반 경비원보다 속도가 더욱 빨랐다.바로 얼마 전 육씨 그룹이 이곳의 부동산을 사서 전문적인 경호원으로 바꾸어 수상한 인물을 주시하여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모두 붙잡아 파출소로 보냈다. 여자는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어디로 도망갈지 몰랐다. “저 여자 잡아요.”전에 여자와 얘기하던 경비원이 소리쳤다. 여자가 잡힐 것만 같았는데 갑자기...펑!큰 소리가 나 그곳을 보자 검은색의 지프차 한 대가 돌진해 들어와 난간에 부딪혀 부서지는 것이 보였다.대중들은 모두 이 갑작스러운 변고에 어리둥절하여 반응하지 못했지만, 지프차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자, 경비원들은 모두 재빨리 몸을 피했다.유독 여자만 제자리에서 자신한테 향해 오는 것을 멍하니 보며 어찌할 바
소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유진이를 보러 갈래”“필요 없어”육경한은 단호히 거절하다 멈칫했다. 그러다 소원이 자신이 아이를 못 본다고 오해 할가봐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보고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일도 다 병원에 가지고 갈 거니까. 넌 휴식이 필요해. 알았어? “유진이 병으로 쓰러진 후 소원은 며칠 동안 거의 밤새 자지 못해 눈 밑에는 이미 짙은 다크써클이 생겼지만 그녀는 억지로 버티는 중이었다.소원은 유진이 자신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육경한은 무슨 일이든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직접 휴대폰 음성 메시지를 소원이에게 들려주었다.“아빠, 엄마 보고 잠자고 있으래요. 만약 성공하지 못하면 저는 삼촌이라고 부를 거예요. ”“엄마보고 많이 휴식하고 있으래요. 그렇지 않으면 뱃속의 아기가 천천히 자랄 거예요. 저는 아기를 빨리 만나고 싶어요. 아기한테 오빠가 지금 힘이 세니까 아기를 업을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요. ”캐톡에서 유진이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협박한 것을 보니 두 사람의 사이가 아주 좋은 것 같았다. 유진이의 소리는 듣기에도 정신이 맑고 괜찮아 보였다.소원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생각해 보니 자기가 쉬지 않은 것을 아이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책임은 즉 유진에게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기에 소원이는 말 듣고 차에서 내려서 휴식을 취하러 갔다.네 명의 경호원은 육경한의 분부에 따라 두 명은 아파트 입구에 두 명은 계단 입구를 엄중히 지켜 사수의 파리 한 마리조차 날아 들어갈 수 없었다.육경한의 차가 떠나자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여인이 사방을 둘러보며 나타났다.그녀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린 채 마스크를 쓰고 수상한 모습으로 나타나 동네 경비원의 주의를 불러일으켰다.“저기요, 당신은 어느 건물로 가나요? 여기에서 뭘 하고 있습니까? “여인은 경비원한테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요... 사람을 찾고
주석훈이 웃으며 말했다.“허허. 몰랐죠? 저 평소엔 되게 허당이에요.”“변호사님 은근히 유머가 넘친다니까요.”주석훈은 언변에 능했기에 단 몇 마디에 간호사가 함박꽃 같은 웃음을 지었다.“저기는 왜 저런 거래요? 아까 길을 잘못 들었는데 막더라고요.”주석훈이 물었다.“아, 저기요.”간호사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어떤 여자애 한 명 들어왔는데 가족이 살해당했다나 뭐라나. 실어증에 걸려서 한마디도 못 했는데 평소 믿고 따르던 언니가 와서 입을 열었다고 들었어요.”주석훈이 물었다.“여자애요? 많이 놀랐나 보네요.”“그러게요.”간호사가 대답했다.“가족이 칼 맞고 죽었는데 누가 견딜 수 있겠어요.”“억울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 범인만 잡아도 다행 아니겠어요?”주석훈이 말했다.“어려울 것 같던데요?”간호사가 말했다.“뭐 유용한 단서가 안 나왔나 보더라고요. 아빠가 여자애를 지키겠다고 같이 들어가지 않아서 아무것도 못 봤대요. 진술한 상황이 경찰이 알고 있는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경찰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만 내쉬더라고요.”간호사가 이렇게 많은 내용을 알 수 있었던 건 안지영의 간호를 책임진 간호사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주석훈이 더 물으려는데 다른 간호사가 들어왔다.“어? 이 간호사 있었네? 저쪽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까 빨리 가봐.”이 간호사가 말했다.“알겠어요. 이것만 마무리하고 갈게요.”치료를 받은 주석훈이 이 간호사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이 간호사가 얼굴을 붉히며 괜찮다고 말했다.주석훈이 멀리 가고 나서야 다른 간호사가 이렇게 말했다.“이 간호사, 아까 저 사람이랑 무슨 얘기 했어? 저 병실에서 나온 얘기는 함부로 하면 안 돼.”“저 별말 안 했어요. 다들 아는 내용 얘기해준 거예요.”이 상황에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인정하면 바보나 다름없었다.“그래. 앞으로 조심해. 자칫하다간 징계 먹을 수도 있어.”나이 많은 간호사가 귀띔했다.“알아요.”이 간호사가 얼른 대답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