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와 이렇게 이념이 다르니 그가 여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이천수는 윤혜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녀가 겁을 먹었다고 생각하며 콧방귀를 뀌었다.“2년 동안 내 아들은 너무 본능에 충실해 살았어. 자네도 재벌 집 며느리 생활을 잘 누렸을 테니 이제 다시 준혁이 앞에 나타나지 말게.”비열하고도 역겨운 말이었다.윤혜인이 이천수에게 물었다.“아버님은 뭐가 두려우셔서 이러시는 건가요?”정곡을 찔린 이천수가 뜨끔했다.그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그들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어 자신의 계획을 망칠까 두려워서였다.“농담하는 거지? 내가 두려워한다고? 자네한테 내가 두려워할 게 뭐가 있다고 그러는 거지?”이천수는 득의양양해서 말했다.“사실 준혁이가 어젯밤에 이미 나더러 정씨 집안에 가서 혼사에 관한 얘기를 나누라고 했네. 곧 우리 두 집안은 가족이 될 거야.”‘혼사? 준혁 씨가 정씨 집안과 혼사를 논하라 했다고?’순간, 윤혜인은 벼락에 맞은 것처럼 어리둥절해졌다.‘정유미 씨랑 결혼하기로 결정했으면서 왜 죽음을 무릅쓰고 나를 구하려고 하고 또 그런 말을 한 거지?’모든 것이 이천수의 계획대로 흘러갔고 윤혜인의 얼굴은 어느새 창백해졌다.‘감히 나한테 대들다니! 제 주제가 어떤지도 모르고!’“내 미래 며느리 될 아이를 위해 장애물을 제거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아니면...”이천수는 마치 개미를 보듯 경멸에 찬 눈빛으로 윤혜인을 바라보았다.“자네, 준혁이의 불륜녀이라도 될 생각인가?”불륜녀라는 말에 윤혜인은 끓는 기름에 내던져져 피부가 전부 벗겨진 듯 했다. 그 정도로 부끄럽고 화가 났다.주체할 수 없이 손이 떨렸지만, 그녀는 애써 자신을 진정시켰다.곧이어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걱정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전 평생 그런 사람은 되지 않을 거거든요. 준혁 씨가 정유미 씨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저는 절대 준혁 씨와 얽매이지 않을 겁니다.”그 말을 들은 이천수가 매우 만족스
윤혜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조금 전에는 이천수의 말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하고 있었다면, 윤혜인은 이제 완전히 정신을 차렸다.장선자가 그와 같이 거짓말을 하려는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었는지라 윤혜인은 돌아서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장선자는 윤혜인을 보고 어리둥절해서 이천수에게 물었다. “이분은?”정유미도 윤혜인을 보고 그녀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이천수의 말에 입을 닫았다.“모르는 사람입니다.”이천수는 경멸에 찬 눈빛으로 윤혜인의 뒷모습을 보며 장선자에게 말했다.“병원 청소하는 사람일 거에요.”그 말을 들은 윤혜인이 발걸음을 멈칫했다.이천수는 정말이지 그녀를 비하할 기회를 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말은 더이상 그녀에게 어떠한 타격도 되지 않았다.이준혁이 누구와 함께 있든 그녀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임은 사실이다.윤혜인이 그를 용서하기로 약속한 이상, 이제 정말 그를 놔줘야 할 때인 것이다.마음속으로 이준혁의 행복을 바라며 말이다.게다가 상황을 보니 이준혁의 목숨엔 큰 우려가 없을 것 같았고 다행히 호전되고 있는 것 같았다.전처라는 신분은 매우 난감했다. 모두들 그들이 다시 만나기를 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것이 맞다.이런 생각이 드는 즉시 윤혜인은 등을 곧게 펴고 유유히 떠났다.정유미는 윤혜인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고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정유미는 이천수가 윤혜인을 이렇게 싫어할 줄 몰랐다. 심지어 그녀가 병원 청소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랐다.사실 현재 정유미의 마음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준혁이 생명의 위험까지 무릅쓰고 전처를 구하는 것을 보고 그에 대한 정유미의 집념이 많이 줄어들었다.얼마나 사랑해야 하면 이렇게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들 수 있는 것일까.정유미는 부러웠지만, 다른 사람의 사랑을 뺏는 악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어차피 이준혁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도 않고 말이다.그러나 오늘 아침 장선자는 갑자
장선자는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애를 너무 곱게 곱게 키웠어요. 앞으로 부디 아버님과 준혁이가 많이 돌봐줬으면 합니다.”이 말은 들은 이천수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물론입니다. 안심하세요, 사모님. 저희 집에서는 유미를 절대로 마음고생 시키지 않게 할 겁니다.”그들이 얘기를 나눌수록 이준혁은 점점 얼굴이 싸늘해지면서 예의를 차릴 수조차 없게 되었다.그는 장선자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피식 냉소하며 말했다.“사모님, 한동안 저는 결혼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 태도도 이전과 다르지 않아요. 사모님의 따님분을 저는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혼할 생각도 없습니다.”사모님, 따님...거리를 두는 듯한 생소한 단어 사용에 장선자는 얼굴이 화끈거렸다.곧이어 그녀도 표정이 굳어지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준혁아, 이게 무슨 뜻이니? 네 아버지가 어젯밤 직접 집에 와서 너랑 유미를 결혼시키겠다고 약속하셨어.”어제 이천수가 직접 와 약속을 했기에 장선자도 이러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말을 입 밖에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장선자는 이준혁이 정유미의 장점을 보고 태도가 바뀐 줄로 알았다.비록 정유미는 조금 고집스럽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니었으니 말이다.게다가 이준혁이 이렇게 우수하고 정유미도 마침 좋아하니 장선자는 이것이 두 집안에 있어 모두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녀가 오늘 정유미를 데리고 이준혁을 보러 온 것이었다.옆에 있던 이천수도 이준혁을 힐끗 째려보더니 곧 장선자를 위로했다.“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준혁이가 이상한 소리 한 거예요.”말을 마친 후 그는 다시 이준혁을 쳐다보며 꾸짖었다.“이놈아, 얼른 장모님한테 사과해! 자꾸 나 화나게 만들거야?!”이준혁은 분명히 이천수가 뒤에서 무언가를 했다는 것을 알아챘다.왜냐하면, 이미 며칠 전 그가 장선자에게 태도를 밝혔기 때문에 다른 이유가 아닌 이상 그녀가 이렇게 직접 찾아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천수가 이준혁 대신 결혼을 약속하리
“너, 너!” 이천수는 이준혁을 한참을 꾸짖었다. 화가 나다 못해 이가 간지러울 정도였다.그러나 아무리 화가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업적으로 후일을 도모할 사람이 현재는 이준혁밖에 없었기 때문이다.곧바로 그는 화를 애써 누른 후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정유미와 결혼하는 건 잠시일 뿐이야. 협력 건을 손에 넣고 이혼하면 되는 거 아니냐. 어차피 이혼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게다가...”이천수는 잠시 멈칫하더니 득의양양하게 말을 계속 이어 말했다.“우리 이씨 집안의 남자들이 열 번이나 이혼했더라도, 그 재벌가 여식들은 너도나도 빼앗으려 들 거야.”이천수의 눈에 여자는 항상 도구일 뿐이었다.이익만 있다면 결혼과 이혼은 모두 문제가 아니었다.문현미조차도 애초 그는 문씨 집안의 세력을 보고 그녀와 결혼했던 것이다.혐오스러운 발언에 이준혁은 더더욱 이천수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는 절대로 정유미와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이만 가세요. 쉬겠습니다.”친아들이 이렇게 자신을 대하자 이천수는 곧 화가 치밀어올랐다.그러나 이준혁의 핏기 하나 없는 입술을 보고 별수 없이 참았다.“그럼 쉬어라. 하지만 마지막 경고야. 지난번에도 나를 속이고 결혼하더니... 게다가 아버지도 네 편을 드셔서 그냥 참았던 거야. 그러나 이번은 절대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이씨 집안의 남자로서 너는 선택권이 없다. 정씨 집안이 아니더라도 안씨 집안이 있고, 주씨 집안도 있고, 임씨 집안도 있어. 앞으로 다시 한번 허튼소리로 하지 말거라. 안 그럼 좋은 결과가 없을 테니.”마지막 몇 글자는 위협의 뜻이 분명했다.친아들에게 이천수는 손을 댈 수 없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위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준혁이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순간 이준혁은 눈빛이 차갑게 변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혼인에 집착하시는데... 차라리 아버지가 직접 하시는 건 어때요? 어차피 아버지는 밖에 여자도 많으시니 아예 안씨, 주씨, 임씨 집안 사람과 함께 결혼하세요. 그래야
문현미의 공격이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이천수는 차마 방어하지 못했다. 머리에는 피가 났고 눈빛도 얼어붙었다.손을 들어 문현미의 뺨을 때리려고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아 빗나간 것은 물론 오히려 넘어지고 말았다.‘쿵!’이천수는 머리부터 땅에 떨어졌고 또 큰 멍이 생겼다.매우 낭패스러운 모습이었다!문현미는 옆에서 분노하며 말했다.“꼴 좋다!”이천수는 여태까지 여자들의 구애를 받기만 했고 모든 여자가 그한테 부드럽게만 대했었다.때문에 이런 모욕은 당한 적은 없었다.가장 중요한 사실은 여자한테 맞아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창피했다!그는 일어서서 문현미한테 달려가더니 이를 갈며 말했다.“미친년아, 내가 오늘 너를 죽이고 말 거야!”하지만 또 시야가 막혀 빗나가고 말았다.‘둥!’벽이 무너지는 듯한 큰소리가 났다.이천수는 다시 세게 넘어졌고, 머리에는 두 개의 혹이 대칭으로 생겨났다.문현미는 그의 이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화가 그나마 조금이나마 사그라들었다.예전에 그녀는 이준혁을 생각해 이천수의 앞에서 매번 참기만 했었다.그래서 오늘은 정말이지 속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했다!그러나 그녀는 이천수가 이런 것으로 손해를 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몇 장 찍었다.“찰칵, 찰칵.”소리를 들은 이천수가 경계하며 물었다.“뭐 하는 거야?!”문현미는 웃으며 대답했다.“당연히 밖에 있는 당신 여자들한테 보내주려는 거지. 온화하고 우아한 대표님이 지금 왜 이렇게 됐을까?”“네가 감히!”이천수는 자존심을 제일로 중요시하는 사람이며, 창피함을 가장 두려워했다!문현미는 이준혁이 걱정할까 봐 더 이상 그와 실랑이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말을 뱉었다.“무서워? 무서우면 얼른 꺼져!”이천수는 화가 나서 입술이 떨며 말했다.“여자니깐 봐주는 거야! 다음엔 내가 반드시 죽인다!”말을 끝내고 그는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볼까 봐 머리를 가리고 의사를 찾으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문현미는 서둘러 병실에 들
그는 윤혜인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문현미가 불러서 온 거라면 그건 윤혜인이 자발적으로 온 것이 된다.이준혁은 이미 자기 자신을 속일 정도로 처지가 비참해졌다.문현미는 처음 이준혁의 말을 듣고 약간 멍해 있더니 후에는 마음이 언짢아졌다.문현미가 아무리 윤혜인을 좋아한다 해도 결정적인 시점이 되어서는 제 아들보다는 못할 것이다.의사가 심장에 찔릴 뻔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손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은 그녀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비록 이제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의사가 그때 한 말을 생각할 때마다 그녀는 마음이 차가웠고 온몸이 떨렸다.‘준혁이가 덜 좋아하는 여자랑 결혼했다면 아마도 조금은 냉정하게 굴며 목숨을 내걸진 않았을 텐데...’여기까지 생각해본 후 문현미는 한숨을 길게 쉬더니 얘기를 꺼냈다.“준혁아, 혜인이는 아이를 잃었고, 너는 혜인이의 목숨을 구해줬기에 이미 빚은 다 갚았다고 볼 수 있어. 이미 이혼까지 한 마당에 그만 지나치면 안 될까?”‘혜인이가 어머니한테 이혼한 것까지 말했다고?’순간, 이준혁의 표정이 매우 심각해졌다.그는 문현미를 힐끔 보더니 말을 꺼냈다.“어머니, 이혼은 제가 원해서 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혜인이랑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면 저 평생 한이 될 것 같아요.”문현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당황해했다.“준혁아, 왜 자꾸 이렇게 멍청한 짓만 하는 거냐...”이준혁은 이불을 제치더니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다.“어머니께서 원하지 않으시면 제가 직접 혜인이 만나러 갈 겁니다!”하지만 움직이자마자 상처가 벌어져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놀란 문현미는 얼굴이 희끗희끗해지더니 이내 다시 이준혁을 눌러 앉히고 말했다.“움직이지 마, 엄마가 혜인이 불러올게.”...윤혜인은 문현미의 전화를 받고는 조금 의아해했다.왜냐면 문현미가 그날 윤혜인에게 혐오감을 느껴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전화기 너머 문현미의
순간 그녀는 코끝이 시큰거렸고 눈물이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그녀는 자신을 과대평가 했던 것이다.그가 이렇게 허약한 것을 보고 윤혜인은 습관적으로 마음이 아팠고 괴로워하며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그녀는 침대 옆으로 가서 가볍게 물었다.“괜찮아요?”약간 울먹이는 목소리가 그녀의 현재 마음을 드러냈다.그러나 이준혁은 무시했다. 은은하게 비웃으며 말이다.“지금 나 관심해주는 거야?”윤혜인은 말문이 막혀 멍해졌다.‘화났나? 왜 화를 내지?’윤혜인은 이해하지 못했으며 물어볼 생각도 없었다.그녀는 자신이 가져온 보온병을 열어 돼지간이 들어간 죽 한 그릇을 담아 내왔다.돼지 간은 피를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되며, 그녀는 바로 이 죽을 끓이기 때문에 시간을 지체했던 것이다.그녀는 이준혁 앞에 죽을 담은 그릇을 가져가며 말했다.“이것 좀 먹어봐요.”그러나 이준혁은 냉담한 표정으로 먹을 기미가 전혀 없이 손에 든 잡지만 주구장창 보고 있었다.한동안 들고 있은 탓에 윤혜인은 손이 시큰거렸지만, 그는 여전히 받을 의도가 없어 보였다.난처해진 그녀가 그릇을 침대 앞 간이책상에 놓았다.병실 안의 분위기는 매우 무거워졌다.윤혜인은 이준혁이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아예 말도 하지 않고 앉아있으니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소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이준혁은 그녀가 다른 이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보고 또 괜히 답답해졌다.‘이렇게 내키지 않으면 아예 오지를 말지.’그는 입술을 연신 물어뜯었다. 자신이 입을 열면 또 윤혜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까 봐 두려워서 애써 통제하며 말이다.잠시 후, 마침내 이준혁이 침대에서 내려오려는 모습을 보였다.움직이는 와중에 가슴에 있는 상처가 또 벌어져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그 모습을 본 윤혜인도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 그를 부축하려고 했다.“툭.”이준혁은 갑자기 그녀의 손을 때려 내팽개쳤다.그녀의 손길을 혐오한다는 듯이 아주 세게 말이다.그 바람에 윤혜인의 손등은 붉게 부어올랐고 눈시울도 빨갛게 변
이준혁은 매우 깊게 키스했다.틈새라곤 찾을 수 없는 입맞춤, 윤혜인은 온몸이 이준혁의 차가운 향기에 휩싸인 것 같았다.이준혁은 그녀의 손목을 세게 잡으며 힘을 조금이라도 풀지 않았다.윤혜인은 그가 상할까 봐 너무 힘껏 밀지도 못했다. 마음은 더욱더 초조하게 타들어 갔는데 말이다.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지면서 윤혜인은 별수 없이 이 상황을 버텨냈다.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밖에 없었다.‘미쳤어, 이준혁은 정말 미쳤어.’마침내 웬 냄새가 차가운 분위기를 뚫고 천천히 풍겨왔다.피 냄새였다.윤혜인은 정말 다급해 미칠 것만 같았다. 머릿속은 온통 백지장으로 변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하지만 이준혁은 아직도 그녀와 깊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영혼을 전부 흡입해갈 것 같이 말이다.그때, 윤혜인과 이준혁의 시선이 마주쳤다.한 사람은 탈출하고 싶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었다.찰나의 순간, 이준혁의 손에 잠시 힘이 풀렸다. 그러자 윤혜인은 망설이지 않고 이준혁의 아랫입술을 꽉 하고 물었다.밀려오는 고통에 이준혁은 하는 수 없이 그녀를 놓아주었다.눈빛은 여전히 사나운 늑대처럼 그녀를 박탈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윤혜인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제일 먼저 호출 벨을 눌렀다.의사를 기다리고 있으며 반쯤 쪼그려 앉아 이준혁의 상처를 살펴보던 윤혜인은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피가 이전보다 더 빨리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눈가마저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가 고함을 질렀다.“이준혁 씨! 당신 미친 거예요?”그는 자신의 목숨으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이준혁은 힘이 빠져 바닥에 누워 있었지만 얼굴은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상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조금도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마치 무슨 약을 먹은 것처럼 그의 얇은 입술조차 붉게 변했다.그는 허약한 목소리로 그녀한테 대답했다.“응, 미쳤어.”윤혜인은 조금 당황해했다. 진짜로 미쳤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가 자신의 몸을 갖고 너무 장난치는 것 같아서 화냈을
빨간 집은 밀림 깊숙한 곳에 지어져 있었는데 이 거대한 구덩이의 중심 같았다. 울창한 수풀 속에 우뚝 세워진 빨간 집은 유난히 섬뜩해 보였다.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간 소원은 안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에 소름이 쫙 돋았다. 울음소리는 짧고 급박했는데 끊이지 않고 계속 들려왔다.무슨 상황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소원은 눈을 질끈 감고 빨간 집에 난 유일한 창문으로 고개를 들어 안을 들여다보는데 정체를 확인한 순간 소원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긴 백발을 늘어트린 노파가 한 여자의 목을 물고 흡족한 표정으로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아까 들었던 흐느끼는 소리는 피를 빨아 먹힌 사람이 내는 신음이었다.소원의 착각인지는 모르지만 여자가 피를 빨아들일 때마다 얼굴에 졌던 주름이 펴지고 젊어지는 것 같았지만 단번에 젊은이가 되는 건 아니었다.아무튼 너무 이상했다.소원은 입을 감싸쥔 채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피를 빨아먹힌 여자가 숨이 끊어지는 걸 보며 소원도 마음을 졸였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백발의 여자 옆으로 수백 마리의 빨간 뱀이 에워싸고 있었는데 백발의 여자를 보호하려는 듯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마 소원이 백발의 여자를 덮치기도 전에 저 뱀들에 의해 잠식당하고 갉아먹히고 말 것이다.그때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족장님, 이제 더 마시면 안 됩니다.”백발의 여자를 잡은 건 아까 본 빨간 옷을 입은 무녀였다. 무녀가 입을 열자마자 족장이라고 불리는 백발의 여자가 무녀를 저만치 날려버렸다.“풉.”빨간 옷을 입은 무녀가 피를 왈칵 토해내자 족장 옆을 지키던 뱀들은 마치 고기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기어와 무녀가 토해낸 피를 핥아먹었다.촘촘하게 모인 뱀들이 ‘미식’을 즐기고 있는데 그 장면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너무 역겨웠다.빨간 옷을 입은 무녀가 가슴을 움켜쥐더니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족장님, 용서해 주세요. 요즘 공물을 찾기가 어려워 공급이 끊길 수도 있으니 아무래도
소원이 어젯밤 찾아낸 뾰족한 대나무로 손을 묶었던 케이블 타이를 끊어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타이가 천천히 느슨해지 시작했고 어젯밤 한참 만지작거린 덕분에 끝내 끊어내는 데 성공했다.자리에서 일어난 소원은 몸이 너무 거뿐했다. 분명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배고프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위에서 뿜어져 나온 열량이 여러 장기로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듯 온몸이 따듯해지며 편안해졌다.그 알약이 만병통치약이라 몸에 좋다던 무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설마 그 알약이 너덜너덜한 내 몸을 치유해 주고 있는 건가?’소원은 믿기지 않았다. 전에 의사가 수술 후 운 좋게 5년이라는 위험 기간을 넘기면 10년, 많게는 20년까지도 살 수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아무튼 오래 살지는 못한다는 말이었지만 10년, 20년이면 유진이 독립해서 장가를 들 나이가 될 테니 그때가 되면 아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소원도 몸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미련이 남으면 하루라도 더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 옆을 지키고 싶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일단 생각을 접어둔 소원은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문이 있는 방향을 찾아 살짝 열어봤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빨간 옷을 입은 여자는 소원을 감시할 사람은 남기지 않았지만 문도 잠그지 않을 만큼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문틈으로 내다보니 밖은 빗장만 걸려있을 뿐 자물쇠가 걸린 건 아니었기에 빗장만 들어 올리면 되지만 그 과정에 소리가 날 게 뻔했고 그러면 뱀이 잠에서 깰 수도 있다.비록 겉으로는 미동이 없어 공격성이 없어 보이지만 쉽게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여기에 있는 물건들은 하나같이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고 그 무녀도 너무 신비로웠다. 아까 소원의 할머니보다 나이가 많다고 말하는데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걸 봐서는 사실인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라면 이상한 요술이나 마법 같은 걸 부릴지도 모른다.상대의 실력을 알기 전에는 소원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안전하게 도망갈 수 있는
“나한테 먹인 거 뭐야?”소원이 세 번째 질문을 던지자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말했다.“그거 만병통치약이라 천금을 줘도 못 사.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는 약을 먹은 거라고. 당신이 쓸모가 없다면 꿈도 못 꿀 약이라는 거지.”그 알약은 무녀가 기르는 뱀이 조금씩 뱉어낸 단백을 10년간 천천히 우려내야 얻을 수 있었고 수만 마리의 뱀을 써도 고작 한 알이 나올까 말까 했다.그렇게 소중한 알약을 세 알 먹은 소원은 몸이 말끔하게 나아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무리 몸에 칼을 대고 수술해도 소원의 몸은 정상인보다 훨씬 건강했다.소원은 무녀가 하는 말을 듣고 좋아하기는커녕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내가 큰 쓸모가 있나 봐. 그렇게 소중한 알약을 다 먹이고.”소원이 말했다.“그렇지.”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아니면 당신이 뭐라고 그 약을 먹어?”이 말에 소원은 무녀가 그녀의 몸을 이용하려고 이렇게 공을 들인다는 걸 알게 되었다.‘근데 내 몸을 이용해서 뭘 하려는 거지...’소원은 처음에 나타났던 그 늙은 여자를 떠올렸다.‘설마 아까 그 늙은 여자와 관련된 건가?’소원이 빨간 옷을 입은 여자를 보며 말했다.“나이가 많지는 않은 것 같은데 왜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 하는 거야?”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웃음을 터트렸다.“틀렸어. 내 나이는 어쩌면 당신 할머니보다 더 많을걸?”소원은 흠칫 몰라며 이 말의 진위를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여자는 외모가 아름다울뿐더러 피부도 탱글탱글해 아무리 봐도 노인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빨간 옷을 입은 여자는 이 화제를 이어갈 생각이 없었는지 그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되물었다.“어떤 걸 말하는 거야?”“서현재.”소원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서현재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서현재.”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매혹적으로 웃었다.“그건 내가 그런 거 아니지. 서씨 가문 어르신이 시킨 거야. 서현재 목숨으로 외국에 있는 아들이 잘 먹고 잘살 수 있게 해주려나 보던데. 서
몸통이 빨갛고 긴 뱀이 소원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는데 총기를 가진 눈이 얼핏 보면 사람의 눈처럼 매서웠다. 뱀은 당장이라도 소원을 물어버릴 것처럼 표독한 눈빛으로 소원을 노려보고 있었다.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감지한 소원은 뱀이 덮치려 하자 얼른 원래 있던 자리로 기어갔다.아니나 다를까 소원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자 빨간 뱀도 빳빳이 들었던 머리를 살짝 내리며 공격성이 낮아졌다.총기가 있는 뱀이라 주인을 대신해 소원을 감시하는 것 같았다. 그제야 소원은 빨간 머리 여자가 여기에 아무도 남기지 않은 원인을 알 것 같았다. 이 뱀이 그 여자에겐 제일 좋은 조수였다.소원은 그 자리에 누운 채 최대한 몸을 풀면서 체력을 보존해 여기서 나갈 대책을 마련하려 했다.무슨 원인인지 모르지만 그 여자가 준 알약을 먹은 후로 몸이 더할 나위 없이 가뿐해졌고 특히 위가 너무 편안했다.수술하면서 위를 절반 넘게 잘라버렸기에 차갑거나 뜨거운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불편했는데 그 알약은 마치 위에 핫팩이라도 넣은 듯이 위가 너무 따듯했다. 그 알약이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나쁜 쪽은 아닌 것 같았다.아까 그 여자가 몸보신을 해준다고 했는데 몸조리하는 데 쓰이는 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몸보신이 끝나면 뭐 하려는 거지... 아까 한 사람 더 데려왔다고 했는데 혹시 현재인가?’고민에 잠겨 앉아 있다 보니 하루 종일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고프지 않았다.이튿날이 되자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다시 나타났다. 여자는 소원이 깬 걸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만병통치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약을 먹였으니 소원이 깨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지금은 얼굴이 발그스름한 게 윤기가 잘잘 흘렀고 정신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다.여자가 또 알약을 꺼내더니 아무 설명도 없이 소원의 입을 열어 알약을 넣고는 삼킨 게 맞는지 확인까지 했다. 할 일을 마친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소원이 불러세웠다.“당신 누구야? 나한테 뭘 먹인 거야?”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걸음을 멈추더니
육경한은 바닥에서 주어 귀걸이를 유심히 살폈다. 그 귀걸이는 육경한에게 소원이 남겨준 메시지나 다름없었다.귀걸이를 손에 꼭 움켜쥔 육경한은 차로 돌아와 소종에게 지시했다.“지금부터 긴장 늦추지 말고 소원의 행방을 찾아내.”소종이 멈칫하더니 물었다.“소원 씨 무슨 일 있어요?”“납치된 것 같아.”육경한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아마도 소원을 여기로 유인한 것 같은데 도대체 누구지?’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육경한은 차를 회사로 돌려 소종과 함께 단서를 찾으려 했다....오랫동안 잠에 취해 있던 소원이 눈을 떠보니 앞이 깜깜한 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을 묶은 끈을 어떻게든 풀어보려는데 케이블 타이라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풀리지 않았다.그때 들려오는 지저분한 걸음 소리에 소원이 바짝 긴장하며 눈을 감고 자는 척하는데 누군가 몸을 흔드는 게 느껴졌고 포댓자루가 벗겨지며 아까와는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저 여자야?”노인네의 창백한 목소리가 들렸다.“네. 족장님. 피가 달콤한 게 적합할 것 같습니다.”그 말에 대답하는 젊은 여자가 있었다.“그래. 언제 시작할 거야?”족장이 물었다.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대답했다.“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의식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요 며칠 독벌레를 넣어 다린 약으로 몸보신 좀 하게 놔뒀다가 따로 시간을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그래. 그렇게 하지.”족장이 말했다.그렇게 대화가 끝나는가 싶었는데 족장이 다시 물었다.“왜 외간 남자는 이리로 데려온 거야? 잊었어? 여기는 그 어떤 정보든 새 나가서는 안 되는 거?”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털썩’ 무릎을 꿇더니 이렇게 말했다.“족장님, 서씨 가문에서 이 사람 좀 데려가서 숨 좀 붙여놓으라고 해서요. 다음 달 말까지는 무사해야 한다고 했는데 독벌레의 잠식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렇게 오래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족장님께 보고도 드리지 않고 이곳으로 데려왔습니다. 어떤 벌이라도 달갑게 받겠습니다.”족장
빨간 옷을 입은 무녀는 한 폐공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더니 주변을 경계하며 안으로 들어갔다.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소원이 모자를 쓰고 잔뜩 긴장한 채로 조심스럽게 대문 쪽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공장은 텅 비어 있었고 방금 들어간 무녀도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수건으로 소원의 입과 코를 막았다.이상한 향기와 함께 소원은 발버둥 칠 겨를도 없이 정신을 잃었다.바닥에 쓰러진 소원을 보고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더니 그릇을 살피듯 소원의 얼굴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살폈다.그렇게 한참 살피던 무녀가 옆에 선 남자에게 말했다.“그래. 이 여자로 하지.”무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탈탈 털었다.“담아서 옮겨.”체격 좋은 남자가 소원을 포댓자루에 담더니 병아리 잡듯 잡아서 차에 던져넣고는 차 문을 닫고 출발했다.무녀는 밖에 세워진 차를 가리키며 다른 남자에게 지시했다.“조용한 곳 찾아서 태워버려.”남자가 즉각 움직이더니 차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무녀가 소원을 실은 차를 따라가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무녀는 상대와 대화를 나누더니 방향을 틀었다....저녁.별장으로 돌아온 육경한은 불이 환히 켜진 걸 보고 도우미에게 물었다.“사모님은 밥 먹었어요?”도우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대표님 모르세요? 사모님 어머니 보러 간다고 했는데.”“어머니요?”육경한이 미간을 찌푸렸다.“네. 사모님이 그러셨어요. 아직 돌아오시진 않았고요.”도우미가 대답했다.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미 저녁 8시 반이었다. 요양원은 이곳에서 멀지 않았기에 이 시간에는 돌아와야 맞았다. 소원이 걱정된 육경한은 올라가서 유진을 한번 보고는 차를 끌고 요양원으로 향했다.요양원에 도착해 전미영이 있는 병실로 가보니 전미영은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간병인이 육경한을 발견하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했다.“대표님.”육경한은 쓸데없는 말을 생략하고 바로 이렇게 물었다.“소원은 병원
소종이 뜸을 들이더니 병원 보고서를 꺼냈다.“이것도 한번 보세요. 병원 진단서인데 진아연의 상처가 일반적인 상처가 아니라 인위적인 상처일 수도 있다고 나와 있어요. 하지만 진아연이 자살이라고 잡아떼는 바람에 다른 사람도 달리 방법이 없었죠.”육경한이 진단서를 훑어보더니 말했다.“진아연이 쓸모가 없어지니까 버림을 받은 거야. 쓸모없는 사람을 왜 살려둬.”“지금으로써는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아요.”소종이 말했다.“계속 지켜봐. 배후가 누군지 반드시 알아내야 해.”육경한이 명령했다. 잠재적 위험 요소라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려는데 육경한이 소종을 불러세웠다.“서현재는 조사해 봤어?”“서씨 가문 도련님이요? 확실히 이상하긴 했어요. 조사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조사해 보니까 정말 놀랍더라고요.”소종이 말했다.“서씨 가문 어르신이 무녀를 하나 데려왔는데 독벌레 주술을 내리는 바람에 그렇게 됐대요. 사람도 못 알아보고 생각도, 행동도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하던데요.”육경한이 입술을 앙다문 채 잠깐 고민했다.“변호사한테 서현재랑 연주의 결혼을 해결할 방법이 있는지 알아봐. 더 이어갈 필요 없을 것 같아.”딱 봐도 서현재는 서씨 가문, 그리고 서진태에 의해 버려졌지만 사악한 서진태의 성격에 마지막까지 서현재를 이용해 먹으려 할 것이다. 육경한이 알아버린 이상 한시라도 빨리 육연주를 그 소용돌이에서 빼내야 했다.“지금 바로 지시하겠습니다.”소종이 고개를 끄덕였다.“아, 그리고.”소종이 잠깐 망설였다.“연주 아가씨 어머님이 회사로 찾아왔는데 제가 대표님 회사에 안 계신다고 해서 다시 돌아갔습니다.”“그래, 알았어.”육경한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래도 육연주를 단단히 혼내주려는 것 같았다.소종은 육연주가 혼나도 싸다고 생각했다. 요물 같은 소원이 밉긴 하지만 제멋대로 날뛰는 육연주도 나을 건 없다고 생각했다. 육경한이 육연주의 뒤처리를 해준 것만 해도 한두 번이 아니니 차라리 이번 기회에 육연주의 성질머리
소원이 육경한이 든 컵을 앗아가더니 이렇게 말했다.“두유도 너무 많이 마시면 안 좋아.”이에 육경한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소원은 영문이 뭔지 몰랐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찐빵을 가리켰다.“찐빵도 좀 먹어. 갓 찐 거라 따듯할 거야.”“그래.”육경한이 찐빵을 가져다 입에 넣더니 천천히 음미했다. 유진은 소원이 챙겨준 식단을 말끔히 먹어 치우고 나서야 자리를 비웠다.소원은 입맛이 없어 별로 먹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난 다 먹었어.”그렇게 식탁엔 육경한 한 사람만 남았다.도우미가 정리하려고 와보니 식탁에 놓인 음식은 이미 다 먹어 치운 뒤였다. 육경한은 평소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었기에 아침은 커피 한 잔에 빵 한 조각, 스테이크 반 덩이면 끝이었는데 오늘은 정말 놀랄 정도로 많이 먹었다.역시 소원이 한 아침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에 도우미들은 기분이 좋아져 얼른 식탁을 정리했다.육경한은 출근 전 먼저 위층으로 올라가 소원이 유진에게 책을 읽어주는 걸 한참 동안 지켜보다가 집을 나섰다.차에서 기다리던 소종은 육경한이 차에 오르자마자 얼른 가까이 다가갔다.“대표님, 그 여자가 준 음식 드신 거 아니죠?”소종은 육경한이 혹시나 소원에게 홀려 판단력이 흐려진 게 아닌지 걱정했다. 육경한이 말이 없자 소종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드셨어요?”육경한이 소종을 차갑게 쏘아봤다.“신경 꺼.”소종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대표님, 목숨이 아깝지 않으면 그냥 말씀하세요. 어차피 대표님도 오래 못 살 것 같은데 저도 빨리 나가서 죽게요.”육경한이 그런 소종을 힐끔 쏘아보더니 말했다.“무슨 헛소리야?”“제가 없는 말 했어요?”소종이 씩씩거리며 말했다.“그 여자가 독 탄 거 알면서도 드시는 걸 보면 목숨이 아깝지 않다는 말 아니에요?”“독을 탔다는 증거가 없잖아.”육경한이 차갑게 잘라버렸다.“증거가 없긴 왜 없어요. 제가 이 두 귀로 들었는데.”소종이 대뜸 화를 냈다.“그 요물 같은 여자가 대답했다니까요.”“말 가려서 해.”육경한이
그녀를 옆에 남기려면 그게 뭐든 마셔야만 했다.소종은 진아연이 준 약이 만성 독약이라고 했다. 만성 독약이라면 아직 그녀와 아이 곁을 지킬 시간이 많다는 건데 육경한은 그걸로 족했다....이튿날.날이 어슴푸레 밝자마자 잠에서 깬 육경한은 옆자리가 비어 있자 얼른 아래층으로 내려가 찾으며 도우미에게 물었다.“사모님 어디 갔어요?”도우미가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주방에서 아침 준비하고 있어요.”이를 들은 육경한이 살짝 넋을 잃었지만 도우미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대표님, 참 좋으시겠어요. 사모님 음식 솜씨가 좋던데요?”소원이 너무 차가워 집안 분위기가 늘 우중충한 데다 유진까지 몸이 좋지 않고 말수가 적어 별장은 화기애애한 날이 거의 없었다. 하여 집에서 일하는 도우미들도 큰소리로 대화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이제 소원이 직접 육경한에게 밥을 해주고 있으니 소원도 관계를 완화하려고 애쓴다는 의미 같았다. 도우미들은 대표님이 사모님을 사랑하니 이 장면을 보고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원래도 기분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였기에 도우미들도 별다른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고 그저 속으로 몰래 좋아한다고 생각했다.주방으로 들어간 육경한은 분주히 돌아치는 소원의 뒷모습을 보고 순간 꿈인 줄 알았다. 그 자리에 서서 소원이 준비하는 걸 보고 있는데 마침 뒤돌아선 소원이 그를 발견했다.소원은 얼굴이 발그스름하고 광이 도는 걸 봐서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육경한이 아직 잠옷을 입고 있자 부드럽게 말했다.“일단 씻어. 아침 먹자.”육경한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씻고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고 돌아왔을 때 소원과 유진은 이미 식탁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메뉴는 예전처럼 가짓수가 많지 않았지만 보기만 해도 구미가 당겼다.두유, 찐빵, 호박죽과 만두까지, 직접 만든 아침이라 몸에 좋았다.유진은 두유와 찐빵은 좋아했지만 호박죽과 만두는 별로 당기지 않는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엄마, 나 두유 마시고 싶어요.”이에 육경한이 두유를 한잔 따라주려 했지만 소원이 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