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31화

작가: 이한나
이준혁이 그녀에게 사랑을 줄 수 없다면 그의 동정 따위는 필요 없다.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한 윤혜인은 숨을 고르다가 이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가 하신 말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어차피 저는 홀로서기를 해야 돼요. 당신이 계속 저를 케어 할 수는 없으니까요.”

“혜인아, 우리가 앞으로 부부가 아니어도 넌 내 가족이야, 난 계속 너를 돌볼 거야.”

이준혁이 그녀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차안에는 온통 이 남자의 향기로 가득했지만 윤혜인은 이제 이 향기를 끊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 자신을 속일 수가 없다.

이준혁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의 동정은 받고 싶지 않았다.

윤혜인이 살짝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저희는 이혼하고 나서 더 이상 서로를 안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준혁 아내가 아니라면 그 어떤 신분으로 그의 곁에 남아있든 그녀는 마음이 아플 것이다.

“혜인아…”

인상을 찌푸린 이준혁이 입을 열려고 하던 순간, 핸드폰이 급하게 울렸고 윤혜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가요, 준혁 씨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잖아요.”

가는 내내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청월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윤혜인은 차에서 내려 뒤도 안 돌아보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가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할 때까지도 밖에서는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윤혜인은 왜 이준혁이 바로 가지 않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임세희가 오매불망 그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하지만 이런 문제도 그녀가 신경 쓸 건 아니었다. 지금 그녀의 가장 큰 바램은 하루 빨리 이혼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녀도 마음이 흔들릴까 봐 매일 걱정하진 않을 테니.

다음날, 윤혜인은 종일 집에서 휴식을 취했고 일요일 오전 소원이 그녀를 데리고 쇼핑하러 나갔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쇼핑을 즐기다가 소원은 얼굴 마사지를 받으러 가자고 했지만 윤혜인은 마사지 제품들이 뱃속의 아이에게 안 좋을까 봐 자신은 받지 않고 소원을 기다리기로 했다.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32화

    윤혜인은 걸음이 멈칫했다. 그녀는 그제야 이준혁 곁에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준혁은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다정한 눈빛으로 그 여인을 쳐다보며 자상하게 물었다.“다 됐어?”“응, 됐어, 고마워, 준혁 오빠.”여인이 고개를 돌려 애교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고 여린 모습의 그 여인은 다름아닌 임세희였다.두 사람 곁에 서있던 매장 직원은 곱게 포장한 쇼핑백을 임세희에게 건네며 실눈을 뜬 채 말을 걸었다.“사모님, 너무 부러워요. 남편 외모가 이렇게 훌륭한 것도 모자라서 사모님한테 자상하기까지 하잖아요!”윤혜인 얼굴의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고 온몸이 딱딱하게 굳은 채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직원이 지금… 남편이라고 한 건가? 두 사람은 조금도 더 기다릴 수 없었던 걸까?갑자기 눈앞이 까매진 윤혜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급하게 돌아서서 떠나려고 했지만 바닥에 발이 붙은 것 마냥 꿈쩍도 할 수 없었고 그녀는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툭!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이 바닥에 떨어졌고 안에 들어있던 아이의 옷들이 흘러나왔다.“윤혜인 씨!”고개를 돌린 임세희가 윤혜인을 발견하자 그녀를 불렀다.“여기서 혜인 씨를 보게 되네요!”이준혁도 고개를 돌렸고 의아한 표정으로 윤혜인을 쳐다보았다. 윤혜인은 황급히 쪼그리고 앉아 쇼핑백에서 흘러나온 아이의 옷들을 정리해서 다시 쇼핑백에 넣었고 그 순간, 이준혁이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기다란 다리에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이준혁은 수려한 외모덕에 순식간에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가까이 다가오던 이준혁이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책을 주어 윤혜인에게 건네려고 했다. 그 책은 조금 전에 신생아 용품 가게의 직원이 그녀에게 선물한 태교에 관한 책이었다.마음이 철렁 내려앉은 윤혜인은 순간 불안해졌다.“이게 뭐야…?”책을 주운 이준혁이 알록달록한 표지를 확인하다가 책의 이름을 읽으려던 순간, 윤혜인이 다급하게 그의 손에서 책을 확 낚아챘다.“아무것도 아니에요.”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33화

    매장 입구에 서서 손님들을 반기고 있던 직원은 윤혜인의 말에 경악에 찬 눈빛으로 임세희를 아래위로 훑었다.‘요즘 내연녀들은 마음가짐부터 다르네, 남의 남편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정실 앞에서 감히 저렇게 건방을 떨다니.’직원의 시선을 느낀 임세희는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졌다.“당신!”“아닌가요?”윤혜인이 여유롭게 매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 소파에 털썩 앉더니 말을 이어갔다.“할 말 있으면 하세요.”눈치가 빠른 쥬얼리 매장 직원은 두 사람에게 커피를 한 잔씩 건넨 뒤, 조용하게 물러갔고 임세희가 차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으며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쇼핑백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준혁 오빠가 저에게 어떤 선물을 했는지 한번 맞춰볼래요?”“임세희 씨, 혹시 제 남편이 그쪽에게 어떤 선물을 했는지 자랑하고 싶은 거라면 죄송한데 전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남편이라는 말에 임세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이내 환하게 웃으며 쇼핑백 안에서 작은 액세서리 박스를 꺼냈다.“준혁 오빠가 저에게 선물한 반지를 정말 확인해보고 싶지 않아요?”흠칫하던 윤혜인은 그대로 자리에 굳어버렸다.이준혁이 임세희에게 선물한 물건이… 반지라고?임세희가 액세서리 박스에서 반지를 꺼내더니 손가락에 꼈고 일부러 손을 들어 윤혜인에게 보여주면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물었다.“어때요? 예뻐요?”반지는 쥬얼리 매장의 환한 불빛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으며 그 반지 위에는 흔히 볼 수 없는 파란색 다이아몬드까지 박혀 있었다. 저번에 쥬얼리 매장을 구경했을 때 직원이 윤혜인에게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 하늘색 다이아몬드 반지의 이름은 ‘푸른 눈물’로 가격이 어마어마했다.윤혜인은 자신도 모르게 아이의 옷이 들어있는 쇼핑백을 손에 꽉 쥐었고 너무 과하게 힘을 준 탓에 손바닥에는 손톱자국까지 선명하게 생겼지만 그녀는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윤혜인은 자신에게 어떻게든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속으로 계속 되뇌었고 이 모든 게 자신을 화나게 만들기 위해 임세희가 파 놓은 함정이라고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34화

    윤혜인은 눈앞에 놓인 은행 카드를 보며 뺨을 세게 맞은 듯 얼굴이 얼얼했다.그녀는 철저하게 졌다. 그녀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임세희에게 완벽하게 패배를 당했다.이내 윤혜인의 머릿속에 이런저런 기억들이 떠올랐고 점점 뚜렸해졌다.결혼 생활을 하면서 이준혁은 자주 L 국으로 출장을 떠났고 한 번 가면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윤혜인이 아무리 애교를 부리고 애원해도 그를 그녀를 데려가지 않았다.그리고 지금, 이준혁은 임세희를 쥬얼리 매장에 데리고 와서 직접 반지를 고르고 있다.윤혜인 손에 끼고 있는 이 반지는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이준혁의 비서 주훈이 그녀에게 전해준 것이다.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는 주훈에게 시켜 대충 반지 하나를 구매하여 그녀에게 선물한 것이 틀림없다.하지만 그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윤혜인은 너무 좋아서 샤워를 할 때마저 반지를 절대 빼지 않았는데, 지금… 그녀의 그 행동들은 커다란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윤혜인은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이 아팠고 숨이 막혔다.‘이준혁, 당신 진짜 너무 잔인하네.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나의 마음에 칼을 꽂을 수 있지?’윤혜인은 단 일초라도 이곳에 더 있고 싶지 않았기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떠나려고 했다.“준혁 오빠 올 때까지 안 기다릴 거예요?”임세희도 자리에서 일어나 여유로운 모습으로 물었고 윤혜인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으며 싸늘하게 웃었다.“임세희 씨, 당신은 이미 목적을 이뤘잖아요. 이 청취자의 협조가 계속 필요한 건가요?”“그게 지금 무슨 말이에요? 전 단지 그쪽이 불쌍해 보여서 이혼 전에 진실을 얘기해준 것뿐이에요.”표정이 살짝 굳은 임세희가 반박하자 윤혜인이 날카롭게 물었다.“대체 뭐가 두려운 거예요?”윤혜인은 조금 단순하긴 하지만 멍청이는 아니었다. 임세희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녀를 자극하여 철저히 포기하게 만들려는 것이다.하지만 굳이 그녀를 자극할 필요가 있긴 할까? 어차피 이준혁은 처음부터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는데 이 점 하나만으로도 윤혜인은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35화

    윤혜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임세희가 화상을 입어 빨갛게 달아오른 손을 뻗더니 이준혁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준혁 오빠, 혜인 씨를 원망하지 마. 혜인 씨는 내가 오빠를 빼앗아갔다고 생각해서 나에게 화가 난 거야…”임세희의 말에 이준혁이 고개를 돌려 윤혜인을 쳐다보았고 취조하듯 물었다.“그게 사실이야?”윤혜인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저렇게 허접한 연기는 매장 카메라만 돌려봐도 진실을 알 수 있을 텐데 이준혁은 그녀에게 따져 묻기 바빴다.이미 판단을 했으면서 왜 쓸데없이 저렇게 묻는 걸까? 그녀에게 변명할 기회를 줘서 그녀의 죄를 입증하려는 건가?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저 두 사람이 너무 역겹게만 느껴졌기에 피식 웃던 윤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떠났다.윤혜인이 떠나자 눈살을 확 찌푸린 이준혁이 몸을 움찔하며 그녀를 따라가려고 하던 순간, 임세희가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준혁 오빠, 나 몸이 많이 불편해, 혹시…”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준혁이 그녀의 손을 뿌리치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세희야, 내가 지금 볼일이 좀 생겼어. 주훈이 널 병원에 데려다 줄 거야.”말을 마친 이준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빠르게 떠났고 임세희는 충격에 넋이 나가버렸다.‘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이준혁이 지금 나를 버리고 떠난 거야?’이준혁은 예전부터 임세희의 건강 상태를 과하다 할 정도로 많이 걱정했다. 그녀가 몸이 불편하다고 얘기하기만 하면 이준혁은 어떤 중요한 일이든 전부 제치고 그녀를 보러 외국으로 달려왔었다.이 또한 임세희가 가장 믿고 있는 비장의 카드였는데 지금 이준혁이 그녀를 혼자 쇼핑몰에 버려 두고 윤혜인을 쫓아갔다.설마… 설마 이준혁이 윤혜인을 좋아하게 된 건가? 아니, 절대 그럴 리는 없다! 그건 말도 안 된다!그 보잘것없는 여자는 절대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없다!한편, 비틀거리며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린 윤혜인은 어느새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36화

    퉁퉁 부은 윤혜인의 두 눈을 보자마자 심장에 뭔가 꽂힌 듯 움찔하다가 눈빛이 착잡해졌다.“혜인아…”그가 입을 열려던 순간, 윤혜인이 그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그 여자가 날 모함했다고 하면 어떡할 거예요? 임세희를 찾아가서 따져 물을 수 있어요?”윤혜인의 돌발 질문에 흠칫하던 이준혁은 몇 초 뒤, 어두워진 안색으로 목소리를 낮췄다.“그럴 리가 없어. 세희는 절대 널 모함할 리가 없어.”예상된 대답이다. 그런데 왜 가슴 한쪽 구석이 마구 아파오는 걸까.사랑하는 사람이라 무조건 믿는다는 뜻인가? 이준혁에게 있어서 임세희는 영원히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고 윤혜인의 행동은 그저 중간에서 이간질하는 못난이에 불과하겠지.눈시울이 다시 붉어진 윤혜인이 자신을 비꼬며 말했다.“임세희 그 여자는 그럴 리가 없고 난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그 여자와 연관된 일이라면 잘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이 무조건 제가 잘못한 건가요? 이준혁 씨, 당신 눈에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윤혜인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눈빛마저 암담했다.순간, 말문이 막힌 이준혁은 한참 지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혜인아, 난 내가 본 것만 믿어. 넌 지금 세희가 널 모함했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증거 있어?”그의 질문에 윤혜인은 심장이 아프다 못해 마비가 오는 것 같았다. 그럼 저번에 이준혁이 그녀가 임세희를 밀었다고 확신할 땐 증거가 있었던 건가?그저 말 한마디에 그녀를 유죄로 만들어 버렸는데 지금 임세희에 관련된 일에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무조건 임세희의 편에 서는 이준혁을 보며 윤혜인은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고 혹시라도 그의 앞에서 눈물을 보일까 봐 입술을 꽉 깨문 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은 진주 마냥 귀한 것이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눈물은 그저 눈에서 흐르는 물이나 다름없다.윤혜인의 안색이 점점 굳어지자 이준혁이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이어갔다.“혜인아, 내가 지금 너를 탓하려는 게 아니야. 네 마음속에 화가 있다는 걸 나도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37화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진 임세희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준혁 오빠는 그녀의 건강 상태를 걱정해서 하는 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준혁 오빠, 나 걱정할 필요 없어. 난 진짜 버틸 만해.”임세희가 온화하게 웃었지만 이준혁은 쌀쌀한 표정으로 불쌍한 척 그를 쳐다보는 임세희를 힐끗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의 품에 갇혀 있던 윤혜인이 예의 바르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이준혁 대표님, 대표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 대표님을 기다리고 있네요.”윤혜인은 더 이상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기 싫었으며 얼른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그녀는 너무 피곤해서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쓰러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윤혜인의 초췌한 모습에 이준혁은 갑자기 마음이 움찔했고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난…”“괜찮아!”그 찰나, 임세희가 갑자기 끼어들었다.“준혁 오빠, 날 위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혜인 씨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돼. 난 괜찮으니까 혜인 씨 보내줘.”임세희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 윤혜인이 처음 보는 듯한 낯선 눈빛으로 이준혁을 빤히 쳐다보았다.그러니까 이준혁이 지금 이렇게 그녀를 잡고 있는 것도 그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과를 하라는 의도밖에 없는 건가?이런 생각에 윤혜인이 다시 씁쓸하게 웃었다.이준혁에게 사랑을 받는 여자는 진실을 왜곡해도 괜찮고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려도 다 괜찮다. 어차피 이준혁 마음속의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사과만 하면 되는 건가요?”윤혜인이 쌀쌀하게 웃으며 이준혁에게 물었고 임세희가 갑자기 끼어들어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이준혁은 창백한 윤혜인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다.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윤혜인이 그의 손을 홱 뿌리치더니 임세희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임세희 씨.”머리를 숙이는 순간, 공을 들여 겨우 쌓았던 그녀의 자존감은 또다시 산산조각이 났지만 어차피 마음도 완벽하게 죽어버렸기에 전혀 상관이 없었다.모든 걸 잃고 나서야 윤혜인은 다시 태어날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38화

    임세희는 오래전부터 그 반지를 가지고 싶었지만 이준혁은 끝까지 그녀에게 주지 않았다.그런데 그 반지를 윤혜인 그 나쁜 계집애에게 줬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임세희가 이준혁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꽉 주었고 왠지 모르게 이런 스킨십에 거부감이 든 이준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거두었다.그의 행동에 임세희가 흠칫 놀랐다.이준혁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차가운 눈빛으로 임세희를 빤히 쳐다보았고 그 눈빛에 겁을 먹은 임세희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혜인이한테 내가 너에게 반지를 사줬다고 얘기했어?”이준혁의 질문에 얼굴이 창백해진 임세희는 당황한 듯 입술을 살짝 깨물며 대답했다.“난 그냥 우리가 반지 샀다고만 했는데… 다음 달 우리 이모 생신에 선물로 드릴거라고 했잖아. 설마 혜인 씨가 뭘 오해한 거야?”“세희야, 난 누가 내 앞에서 잔머리 굴리는 걸 제일 싫어해. 내가 나중에 네가 원하는 쥬얼리는 뭐든 사준다고 했지만 지금은 아니야.”이준혁이 임세희를 빤히 쳐다보며 쌀쌀하게 말하자 임세희는 안절부절못했다.‘준혁 오빠가 뭘 눈치챈 건가? 내가 말 몇 마디로 윤혜인 그 여자를 자극한 게 뭐 어때서?’예전부터 임세희를 애지중지 여긴 이준혁은 단 한번도 그녀를 서운하게 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윤혜인 그 여자 때문에 계속 그녀에게 따져 묻고 있다니! 역시 윤혜인 그 여자를 철저하게 없애야 한다!임세희는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지만 임씨 아주머니의 말이 생각이 나서 가까스로 참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이준혁에게 카톡 대화 내용을 보여주며 말했다.“준혁 오빠,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못 믿겠으면 오빠가 직접 봐!”카톡 대화 내용으로 보면 임세희는 며칠 전부터 그녀의 이모에게 반지 사진을 보내주며 좋아하는 디자인을 물었었다.카톡 내용을 확인한 이준혁은 싸늘하게 굳었던 표정이 조금 풀렸다.“아니면 다행이고.”“준혁 오빠, 어떻게 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내일이면 오빠 이혼할 텐데 내가 굳이 그런 행동을 할 필요가 없잖아?”말을 하던 임세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39화

    다음날.아침 일찍 일어난 윤혜인은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법원으로 출발했다. 오전 9시 반으로 예약했기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그녀는 버스를 타고 천천히 이동하기로 했다.어제 쇼핑몰에서 나온 뒤, 속이 안 좋아진 윤혜인은 소원과 저녁식사를 하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고 물건을 정리하다가 그제야 쇼핑몰에서 샀던 아이의 옷이 없어졌다는 걸 발견했다.쇼핑몰 분실 센터에 전화를 해봤지만 직원은 그런 분실물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윤혜인은 누군가가 주워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버스가 법원에 도착하자 윤혜인이 핸드폰을 꺼내 이준혁에게 문자를 남겼다.[저 도착했어요.]이전의 문자는 임세희가 돌아오기 전에 윤혜인이 이준혁에게 보냈던 문자였다.[여보, 언제 돌아와요?]그날 자신이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된 윤혜인은 문자로 이준혁에게 얘기를 하려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이렇게 큰일은 얼굴을 보고 직접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더 이상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그 문자를 보낸 지 2주밖에 안 된 사이에 모든 게 달라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문자는 대부분 그녀가 보냈고 이준혁은 단답형의 답장만 보내왔었다. 예전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보니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게 확연히 보였다.윤혜인은 카톡 문자 기록을 지우며 다시는 멍청하게 그런 생활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그녀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법원으로 걸어가던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뒤에서 도둑을 잡아달라고 소리를 질렀고, 소리와 동시에 갑자기 튀어나온 한 남자가 그녀를 강하게 밀쳤다.그 남자는 빠르게 그녀 옆으로 지나갔고 손에는 빨간색 가방을 든 채 도망가고 있었다. 윤혜인이 반응이 빨랐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지금쯤 그 남자와 부딪쳐 바닥에 넘어졌을 것이다.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뒤에서 그 남자를 쫓았지만 신고 있던 높은 힐 때문에 발을 삐끗한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그 여인은 비통한 표정으로 지나가던 행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저 가방 안에 저희 집안 어르

최신 챕터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592화

    남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었고 표정조차 변화가 없었다.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소종이 입을 열었다.“소원 씨가 아이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제가 거절했습니다. 작은 도련님이 간신히 밝아졌는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육경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소종의 말을 묵인하는 듯 말이다.이제 됐다 싶어 소종은 긴 숨을 내쉬었다.그는 알고 있었다. 육경한이 이번에 얻은 상처는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육체뿐 아니라 마음까지 다친 그가 이제는 소원에 대해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지금과 같이 냉정한 사람은 마음이 다치면 자신을 철저히 닫아버린다.육경한의 모습은 그야말로 심장이 죽은듯한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남자는 가장 사랑했던 여자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된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소원은 이제 마음도 몸도 여기 있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를 붙잡는 건 양쪽 모두를 아프게 할 뿐이었다.소원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서현재 역시 제대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육경한이 많이 참은 셈이었다.육경한이 물어보지 않았기에 소종은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소종이 대신 육경한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여러 번 말을 해봤지만 소원은 전혀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그게 진정 사람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드는 일이었다.소종은 소원이 방민아가 유진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래서 유진의 상태를 더 꼼꼼히 살피고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방민아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는 없었다.다만 소종은 방민아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잠시 좋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 할 수는 없었다.오래도록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야 진정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방민아 씨가 과연 유진이를 자신의 자식처럼 대할 수 있을까? 자기 아이를 갖게 되면 유진이에 대한 태도가 변하진 않을까?’소종이 이런저런 생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591화

    소원은 방민아와 이런 복잡한 말싸움을 하는 걸 정말 싫어했다.연기를 하듯 감정을 숨기는 것조차 거부감이 들었다.“방민아 씨, 아주머니를 만나볼 수는 없나요?”“그건... 방금 경한 씨한테 전화했잖아요? 경한 씨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저도 어쩔 수 없어요. 정말 미안해요, 소원 씨.”방민아는 곤란하고 미안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여유롭고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사실 소원이 대문 앞에서 보인 모든 행동을 방민아는 창가에서 지켜보고 있었다.소원이 육경한에게 전화를 걸고 간절히 부탁했지만 끝내 허락받지 못한 모습을 보며 방민아는 확신했다.이제 자신이 육씨 가문의 안주인 자리를 완전히 굳혔다고.방민아는 속으로 생각했다.‘다행히 연주의 말을 믿고 소원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어. 그냥 현명한 아내이자 자상한 엄마처럼 행동했더니 효과가 좋네. 경한 씨도 이제 나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어. 소원? 이제 별로 두려워할 존재도 아니지.’소원은 한숨을 삼키며 자세를 낮추어 물었다.“그럼... 유진이랑 통화라도 할 수 있을까요?”그녀는 간절한 마음으로 최대한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부탁했다.방민아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소원 씨, 그건 저도 힘들 것 같네요. 경한 씨가 소원 씨가 유진이와 접촉하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요.”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거절당한 소원은 한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했다.방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소원 씨, 제가 기회를 드리지 않는 건 아니에요. 오늘 밤 일하러 가세요. 기분이 좋으면 유진이를 만나게 해줄 수도 있죠.”이 말에 놀란 소원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정말인가요?”“그럼요.”방민아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결국 경한 씨가 없을 땐 이 육씨 가문내 일이 다 제 손에 달려 있으니까요.”소원은 방민아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육경한은 집안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내부를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다.“좋아요. 하라는 대로 할게요. 하지만 유진이를 반드시 만나게 해줘야 해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590화

    소원은 필사적으로 몸을 버둥거렸지만 두 명의 건장한 보안요원을 이길 수는 없었다.보안요원은 그녀를 끌고 가면서 말했다.“저희도 이러고 싶진 않습니다. 저희는 월급 받는 대로 일하는 사람들이에요. 누구도 괜히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 제발 좀 협조해 주세요.”소원은 필사적으로 외쳤다.“제 아이가 위험해요! 경찰 부를 거예요, 경찰 부를 거라고요!”그러자 보안요원은 피식 비웃었다.“지금 농담하세요? 작은 도련님은 매일 베란다에서 뛰어놀 만큼 건강해 보이는데 뭐가 위험하다는 겁니까? 혹시 망상증 같은 거 있는 거 아니에요?”이 말을 듣고 소원은 잠시 안도했지만 마음속의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보안요원은 이어서 말했다.“솔직히 말씀드리면 경찰이 이런 걸 받아주지도 않을 겁니다. 신고해 보세요. 아마 처음에 잡혀갈 사람은 그쪽일 겁니다. 정신병원으로 끌려갈지도 모르겠네요. 작은 도련님은 방민아 씨가 아주 잘 돌보고 있어요. 방민아 씨는 정말 좋은 새엄마예요. 얼마나 세심한지 매일 작은 도련님을 돌보러 오신다니까요.”소원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방민아는 결혼 전까지는 유진에게 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 후라면 그건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소원은 방민아가 지금 아주머니를 건드린 것도 육경한의 반응을 떠보는 일환이라 확신했다.육경한이 아주머니의 병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유진이의 위험은 더 가까워질 것이다.아니, 육경한이 아주머니를 걱정하더라도 방민아의 속셈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물론 이 모든 것은 소원의 추측일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사란 늘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그녀는 속으로 다짐했다.만약의 가능성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갑자기 소원이 크게 외쳤다.“방민아 씨! 나와요! 방민아 씨, 당장 나와요!”보안요원이 그녀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소원은 두 보안요원의 손길을 뿌리치며 대문 앞으로 달려가 있는 힘껏 문을 두드리며 계속 외쳤다.“방민아 씨! 방민아 씨!”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이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589화

    소원은 일부러 유진이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혹여 유진이가 자극을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유진이는 보통 아이들과 달랐고 소원은 아이의 모든 것에 대해 항상 신중했다.소원은 입을 열어 크게 외쳤다.“백씨 아주머니! 백씨 아주머니, 계세요?”몇 번 부르지 않았는데 보안요원이 달려와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이렇게 소리치시면 안 됩니다. 여기는 주거 지역이에요. 계속 그러시면 강제로 내보낼 수밖에 없습니다.”보안요원의 말투는 점점 공손함을 잃어가고 있었다.상대가 까다로운 사람이든 아니든 겁낼 필요는 없었지만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하지만 소원의 행동을 보니 그녀가 육 대표님과 친분이 깊을 리는 없어 보였다.만약 친분이 있었다면 이렇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을 테고 육경한이 이미 문을 열어줬을 것이다.그러나 소원은 보안요원의 경고를 무시한 채 말했다.“오늘은 반드시 아주머니를 만나야 합니다. 아주머니 이름 부르는 게 싫다면 백해란 아주머니가 여기 계신지만 확인해 주시면 돼요. 확인만 해 주면 조용히 돌아가겠습니다.”보안요원은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런 건 저희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저희는 저택 안에 들어가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이렇게 계속 소리 지르시면 지금 당장 내보낼 겁니다.”보안요원의 태도는 한층 강경해졌고 소원은 이를 무시한 채 핸드폰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아주머니와 연락이 끊겼어요. 걱정돼서 왔습니다. 오늘 아주머니를 만나지 못하면 저는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어요. 그쪽들도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 이렇게 하죠. 아주머니가 계신지 확인하고 그분이 저에게 전화만 주시면 저는 바로 떠나겠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귀찮게 하지 않을게요. 어때요?”소원의 이 말은 어느 정도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타협을 제시하는 방식이었다.보안요원들은 상황을 재빨리 판단해야 했다.안으로 들어가 관리인에게 확인을 요청하는 건 큰일이 아니었지만 이 여자를 억지로 끌어내렸다가 경찰에 신고라도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588화

    소원이 침묵할수록 소종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그에게 소원은 냉혹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였다.입장이 다르니 소종은 당연히 소원의 관점에서 이 일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그는 답답함에 목소리를 높였다.“알겠습니까? 모든 더러운 일은 내가 했습니다. 대표님은 저에게 너무 폭력적이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그게 싫었습니다. 사업 세계는 깊은 수렁 같아서 독하지 않으면 발붙일 수 없어요! 그래서 전 자발적으로 대표님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누군가 칼로 저를 찔러도 대표님의 미래를 위해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갑자기 소종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제가 소원 씨가 대표님을 해치는 걸 가만히 두고만 보리라고 생각합니까?”소원은 그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소 비서님, 제가 육경한을 찾는 건 유진이 때문이에요.”지금 그녀는 육경한을 무너뜨릴 생각도 없었고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그녀의 마음에는 오직 유진이의 안전만이 자리하고 있었다.하지만 소종은 이 말을 듣고도 비웃으며 말했다.“소원 씨, 이제 와서 아들을 생각하십니까? 정말로 아들을 위한다면 아이의 친아버지를 그렇게 대했으면 안 됐죠.”“우리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다른 남자였으면 그쪽은 벌써 백번은 죽었을 겁니다.”소원은 다급히 물었다.“소 비서님, 요즘 유진이는 누가 돌보고 있습니까?”그녀는 소종이 자신을 얼마나 싫어하든 개의치 않았다.소종이 육경한에게 충성하는 만큼 유진이에게 해를 끼치도록 방치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소종은 잠시 찡그리며 대답했다.“방민아 씨가 돌보고 있습니다.”이 말에 소원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저는 유진이를 만나야 합니다. 지금 저 경원 저택 앞에 있습니다. 육경한에게 연락해서 제가 유진이를 만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주세요. 지금 당장이요. 유진이가 걱정돼요.”소종은 콧방귀를 뀌었다.“뭐가 걱정된다는 거죠? 방민아 씨가 아주 잘 돌보고 있어요. 어제는 유진이를 데리고 대표님을 보러 오기도 했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587화

    소원은 소종의 빈정거림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로 물었다.“육경한 있나요?”“없습니다. 대표님은 회의 중이에요.”이어 소원이 말을 꺼내려 하자 소종이 말을 끊었다.“대표님은 지금 소원 씨가 저지른 일 수습하느라 바쁘십니다. 소원 씨, 지난번 결혼식에 용감히 난입했던 장면은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대표님이 어떤 심정으로 소원 씨를 그곳에서 데려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로 서씨 가문과의 협력이 몇 건이나 엎어졌습니다. 물론 서씨 가문에서 먼저 끊은 건 아니에요. 대표님이 그 서씨를 못마땅해하셔서 직접 협상 테이블을 뒤엎었거든요. 뭐, 그때는 속 시원했지만 지금은 그 후폭풍을 감당하느라 밤낮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그것도 다친 몸으로 말이죠.”소원은 소종이 이렇게 말이 많았던 적이 있는지 의아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듣고 싶지 않은 얘기만 길게 늘어놓고 있었다.육경한이 무슨 일을 하든 소원은 관심 없었다.서씨 가문의 테이블을 뒤엎든 말든 그건 소원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서씨 가문의 재산은 서현재에게 돌아갈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오히려 육경한이 서씨 가문에 문제를 일으키는 건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적어도 서씨 가문이 서현재를 함부로 건드릴 일은 없을 테니.하지만 지금 소원의 머릿속은 오로지 유진이의 안위뿐이었다.유진이 안전한지가 그녀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소 비서님, 육경한한테 전화 좀 바꿔줄 수 없을까요? 정말 급한 일이 있습니다.”그러자 소종은 비웃듯 물었다.“대표님더러 일하다 말고 소원 씨 전화를 받으라는 말씀이세요?”소원은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말했다.“정말 급한 일이에요...”하지만 소종은 또다시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소원 씨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그는 이어서 말했다.“소원 씨가 대표님에게 연락해서 좋은 일로 이어진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아니, 연락하지 않아도 소원 씨와 관련된 일은 항상 문제투성이잖아요. 그런데도 우리 대표님은 매번 소원 씨의 뒷수습을 하느라 애쓰시네요.”“이번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586화

    차에 탄 뒤, 소원은 다급히 운전 기사에게 말했다.“경원 별장으로 가 주세요.”경원 별장은 육경한의 대저택으로,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택시로 두 시간이 넘게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택시는 산기슭까지만 갈 수 있었는지라 운전기사가 말했다.“아가씨, 그 대저택은 우리 같은 택시가 올라갈 수 없게 막혀 있습니다. 혹시 위에서 허가를 받은 게 있으신가요? 그래야 올라갈 수 있습니다.”소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 집 안에 있는 사람들 중 자신이 들어가길 원하는 이는 한 명도 없을 테니 말이다.그러자 운전기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그럼 어쩔 수 없네요. 여기서 내려서 걸어가셔야 할 것 같네요.”결국 소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요금을 지불한 후 차에서 내렸다.운전기사는 소원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또 어떤 남자한테 상처받고 찾아온 여자겠지.’이 산 중턱에는 몇몇 재벌 가문의 대저택들이 모여 있었기에 운전기사는 궁금했다.‘과연 어느 재벌 2세가 이 여자의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했을까? 게다가 저 산길을 걸어 올라가려면 적어도 40분은 걸릴 텐데.’소원은 첫 번째 보안 초소에 도착했다.이곳은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도록 철저히 관리되고 있었지만 소원은 육경한 집의 출입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이 비밀번호는 과거 집안일을 하던 아주머니가 몰래 알려준 것이었다.혹시나 유진이에게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소원이 들어가지 못해 문제라도 생길까 봐 미리 대비해둔 것이다.그렇게 소원은 비밀번호를 입력해 안으로 들어갔다.산기슭에서 산 중턱까지는 꽤 긴 거리였다.체력이 약한 데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걸어가야 했기에 소원은 정말 힘들고 지쳤다.이런 대저택에서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집안 관리인들조차도 전용 차량을 이용했기에 두 발로 이동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40분 넘게 걸어가서야 소원은 경원 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대저택의 정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고 소원은 문을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585화

    하지만 유진은 특별한 아이였고 아줌마는 몇 년 동안 유진을 극진히 보살폈다. 유진에게는 할머니가 없었지만 유진은 늘 아줌마를 할머니라고 생각할 정도였다.소원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지만 그래도 이렇게 답장했다.[아줌마, 유진이 목소리 너무 오래 못 들어서 그러는데 목소리 좀 들려줘요.]그쪽은 답장이 매우 빨랐다.[아가씨, 다음 기회에 몰래 녹음해 드릴게요. 다른 도우미들이 한눈을 팔아야지만 녹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유진이 잘 지내고 있고 아가씨 얘기도 거의 안 꺼내고 있어요.]소원은 경거망동하기 싫어 더는 답장하지 않았지만 표정이 점점 싸늘해지기 시작했다.아줌마의 마지막 한마디는 사실 매우 불필요한 말이었다. 아줌마는 소원이 자극을 받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유진이 이제 엄마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얘기는 소원에게 마지막 남은 가족도 너를 버렸는데 살아서 뭐 하냐는 말과 같았고 소원에겐 무조건 자극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아줌마가 소원을 따라다닌 지도 어언 7년이었고 거의 가족처럼 힘든 일 궂은일 다 같이 했다. 아줌마는 자식이 없었기에 그 어떤 약점도 없었고 누군가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고 해서 유진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소원은 이것만은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7년 만에 갑자기 변할 일은 없었고 굳이 가능성을 따지자면 지금 소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줌마는 예전의 아줌마가 아니라는 것이었다.소원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소름이 끼쳤다.‘만약 아줌마를 빼돌린 거라면 아줌마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소원은 전에 육경한에게 유진은 아줌마 없이 안 된다고 말했고 육경한도 아줌마를 잘 챙겨주겠다고, 다른 시터가 있어도 아줌마가 홀대로 떠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소원에게 약속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지금은...한참 지나 그쪽에서 영상을 하나 더 보내왔다. 유진이 또렷한 목소리로 시곡을 외우고 있는데 옆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와. 우리 유진이

  • 이혼하자더니 갑자기 연애   제1584화

    아줌마가 보낸 건 유진의 근황 사진이었다. 옷도 계절에 맞춰 입었고 얼굴도 발그스름한 게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소원은 약간 게걸스럽게 사진 속 유진을 바라봤다. 전에 마음의 병을 앓고 있을 때 유진을 보면 육경한이 떠올라 유진을 만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유진을 목숨보다 더 사랑했지만 육경한에 대한 원망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극과 극을 달리는 두 감정이 섞여 있으니 소원은 정서가 안정적인 엄마가 될 수 없었다.심리상담 주치의는 소원에게 유진과 한동안 떨어져 지내다가 소원이 테스트를 통과해 아이 앞에서 정서를 안정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을 때가 되면 같이 지내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고 소원은 그 말에 따랐다.떨어져 지낼 때면 소원은 사진으로 그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하여 매번 새로운 사진을 보내올 때마다 그 어떤 디테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보고 또 봤다.소원은 아줌마가 보내온 사진을 부드럽고 따듯한 표정으로 만지작거렸다.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육경한이 아이를 잘 돌볼 수만 있다면 양육권을 포기할 생각도 있었다. 그저 이렇게 뒤에서 유진의 성장을 지켜보며 유진이 보고 싶다고 하면 가끔 가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지금 이런 상태도 좋은 것 같았다. 게다가 요즘 유진은 환경에 잘 적응해서 그런지 소원을 찾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에 소원은 유진이 새로운 가정을 더 좋아해 정서가 불안정한 엄마를 싫어하게 된 게 아닌지 걱정하며 마음이 씁쓸해지기 시작했다.이제 멀리서 유진을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만약 유진이 그녀를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되면 더는 버티기 힘들 것 같았지만 정말 그날이 온다면 별수 없이 손을 놔야 할 것이다.소원은 유진을 아이로 보는 게 아니라 독립적인 한 개체로 보며 유진을 존중하고 유진의 모든 생각을 존중했다. 사진을 조금 더 보고싶어 유진의 귀여운 얼굴을 만지작거리다 의도치 않게 사진의 아랫부분이 확대되었다. 소원의 얼굴을 보고싶어 다시 위로 올리려던 소원이 눈을 무언가가 갑자기 끌어당겼다.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