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그렇네. 민 실장이 뭐 별거라고.”“……”방 안.전 당주가 앞서서 들어섰다.뒤이어 민정화가 들어가 문을 닫더니 외투를 바닥에 떨어트리며 전 당주를 뒤에서 끌어안았다.“차라리 죽고 싶어! 부끄러워서 이젠 못 살아.”전 당주가 돌아섰다. 가리지 않은 민정화의 몸을 보더니 담담하던 검은 눈에 음험함이 스쳤다.“쓸데없는 소리.”당주 전성이 가라앉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내가 진작에 경고했었지? 백지안은 그저 네 경호 대상일 뿐이라고. 백지안과 강여름 사이의 개인감정 싸움에 끼어들지 말라고 했잖아? 넌 회장님께서 지시하신 일만 해내면 되는 거였어.”“하지만 지안 님은 정말 너무 억울했다고요.”민정화가 훌쩍거렸다.“난 그냥 회장님의 분부대로 몸뒤짐을 한 것뿐인데. 강여름은 나한테 원한을 품고 복수한 거라고요. 왜 지안 님에 대한 분노를 나한테 쏟는 거야? 회장님도 그래. 지안 님하고 사이가 좋을 때는 하늘의 달도 다 따줄 것 같더니만 강여름하고 사이가 좋아지니 계속 우리한테만 죄를 뒤집어씌우고. 남의 아랫사람이 된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 피곤한 일이야.”“입 다물어!”전 당주가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나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래, 그 수많은 남자 앞에서 옷이 벗겨지는데 얼마나 모욕적인지 알아?”민정화는 엉엉 울었다.“그 놈들 눈빛은 죽어도 못 잊어. 그… 그 더러운 눈 빛…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어.”그러더니 민정화는 문으로 돌진했다.“이상한 소리 하지 마.”전 당주가 즉시 민정화를 잡더니 힘껏 품으로 당겨 안았다.“난 이제 어떡하지? 이제 앞으로는 날 안지 마.”민정화가 전성의 가슴에서 무너지듯 울었다.“쉿, 네가 어떻게 자라왔는지는 어릴 때부터 내가 다 봐왔어.”전성이 가볍게 민정화의 머리를 쓸었다.“안아 줘. 나 너무 견디기 힘들어.”민정화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전성의 가슴팍을 잡아당겼다.옷깃을 꼭 잡은 채 입을 맞추었다.민정화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덤벼들자 전성도 견딜 수가 없었다.긴 입맞춤이
하준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내가 전 당주와 민 실장 사이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전성은 깜짝 놀랐다. 내내 하준의 눈을 잘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저, 저는….”“뭐, 민 실장? 매력적이지. 하지만 전 당주도 그냥 나이만 먹은 건 아니잖나? 별별 사람 다 봐 왔잖아?”하준이 낮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민 실장은 더 이상 내게 충성하지 않아. 지룡에 남겨 두기에는 영 안심을 할 수 없어.”전성은 씁쓸하게 웃었다.‘정화는 다릅니다. 그 녀석이 어릴 때부터 봐왔어요. 꼬맹이인 줄 알았던 녀석이 성숙한 여인이 되어 내게 애정을 보였을 때는 오래도록 억눌러왔던 피가 순간적으로 들끓었단 말입니다.’“마음 아픈가?”하준이 갑자기 물었다.“아닙니다. 민 실장은 그냥 일개 지룡 멤버일 뿐인걸요. 하지만 민 실장을 이렇게 지룡에서 내보내면 내부에서 말이 많을 겁니다. 그냥 조용히 외국으로 내보내시죠.”전성이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지룡의 당주로서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울 수는 없었다.“그래. 자네 체면도 살려줘야 하니 그 의견에 따르겠네.”하준은 말을 마치더니 전화를 끊었다.휴대 전화를 쥔 전성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잠시 후 민정화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바로 출국 준비해. X국으로 임무를 수행하러 간다. 나중에 시간 나면 내가 보러 갈게.”민정화는 경악했다.“무슨 말이에요? 내가 왜 갑자기 외국으로 나가? 시간이 나면 보러 오다니? 이번에 나가면 나 못 돌아와요?”“회장님 뜻이야. 네가 회장임의 역린을 건드렸어. 네 충성심을 의심하신다.”전성이 쓴웃음을 지었다.“회장님께서 널 지룡에서 내보내든지 해외로 내보내든지 선택하라고 하시더라. 내 말 들어. X국은 나름 괜찮은 나라야. 가서 임무를 수행하며 사는 데 어려움은 없을 거야.”“그런 곳은 가고 싶지 않아!”민정화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회장님은 이미 내게 충분히 과한 벌을 주셨다고!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우리 민씨 집안이 대대손손 최가를 모셨다고 앞
“회장님은 지금 회의 중이십니다.”상혁이 말을 끊었다.“김 실장….”백지안은 깜짝 놀랐다.“그러면 회의 끝나고….”“간병인이 갔다면 다른 분을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물론 앞으로는 간병인에게 함부로 성질부리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간병인 분들도 사람입니다. 다들 자기 분수껏 열심히 돈을 버시는 분들이에요. 사람이 하는 일로 사람의 고하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상혁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백지안을 찌르는 것 같았다.“무슨 말이에요? 지금 김 실장도 날 무시하는 거예요? 잘 들어요. 난 하준이 마음속에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고!”“백지안 님, 제가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상혁은 거기까지 말하더니 전화를 끊었다.백지안은 화가 나서 휴대 전화를 던져버리고 싶었다.그러나 곧 민정화가 나타났다. 그런데 민정아가 백지안의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그 강여름이란 인간 정말 너무 악독하더라고요….”민정화는 오후에 있었던 일을 백지안에게 풀어놓았다.백지안은 몸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민정화가 안쓰러워서 그런 게 아니라 단 며칠 만에 최하준이 강여름에게 홀딱 빠져버린 데다 여름에게 지룡 본부까지 공개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정화 씨, 미안해. 이게 다 나 때문에….”백지안은 죄책감에 괴로운 척하며 눈물을 떨궜다.“내가 너무 무능해서 자기도 지켜주지 못하고 그런 모욕을 당하게 만들었네.”“그런 말씀 마세요. 저는 지안 님을 탓하지 않아요.”민정화가 얼른 말을 받았다.“그저 제가 앞으로는 지안 님을 보호해드리지 못할 것 같아요. 지룡에서 새로운 사람을 보낼 거예요. 지안님 퇴원하실 때쯤에는 저는 함께하지 못할 거예요. 회장님이 이번에는 강여름에게 너무 푹 빠졌어요. 정말 너무 나빠요.”“그런 소리 마.”백지안이 중얼거렸다.“강여름이 자기를 첫 스텝으로 삼은 걸 거야. 앞으로는 이제 날 상대하려고 들겠지. 애초에 내가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한 것에 원망을 품고 있으니까 강여름의 복수 명단에 분명 내가 들어 있을 거야.
백지안은 그 말을 들으니 분노가 치밀었다.하준의 마음은 강여름이 훔쳐 가고 예비로 끼고 있으려고 했던 송영식은 임윤서에 메여있었다.‘그 인간은 강여름의 절친이잖아? 둘 다 똑같이 못된 것들이지.’“영식아, 나 너무 짜증 난다.”백지안이 우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늘 내 곁에 붙여두던 민 실장도 이제 데려가 버렸어.”“민 실장은 네 보디가드였잖아?”송영식의 목소리가 높아졌다.“민 실장도 지룡에서 데려가 버리고….”백지안이 씁쓸하게 한숨을 쉬었다.“간병인도 가버렸어. 내가 성질이 더럽다나 어쨌다나? 내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어 버렸을까?”“이런, 하준이 자식은 정말 인간도 아니구먼.”송영식은 하준이 이렇게까지 백지안에게 매정하게 굴 줄은 몰랐다.‘헤어진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아파서 입원했는데 옆에 붙여놨던 사람까지 거둬갈 일이냐?’“쓸데없는 생각 마. 내가 곧 갈게.”송영식이 전화를 끊고 막 가려고 돌아서는데 언제부터인지 임윤서가 거기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하얀 니트 원피스에 야구캡을 쓴 임윤서의 입가에는 희미하게 미소가 어려있었다. 아무리 봐도 웬 유명 배우가 소박하게 차려입고 나선 듯한 모양새였다.“안녕하세요? 아니, 내가 리버사이드파크로 이사한 건 대체 어떻게 아셨을까?”임윤서가 빙그레 웃으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최하준 회장이 말한 건 아니겠지?”그 일을 생각하니 송영식은 열불이 뻗쳤다.실은 하준이 리버사이드파크의 아파트를 임윤서에 주었다는 이야기를 이주혁에게 들었던 것이다.임윤서는 느른하게 한숨을 쉬었다.“최하준 회장은 참 손이 크지 뭐예요. 난 원래 여름이랑 살려고 그랬는데 여름이를 만나는데 내가 거치적거렸던지 최하준 회장이 그냥 여기 집을 덜렁 주지 뭐야? 이 큰 집에 혼자 있으니까 어찌나 좋은지!”“말 다했나?”송영식은 이곳에 오는 길에 내내 스스로 성질을 잘 눌러야 한다고 되뇌며 왔는데 아무래도 임윤서와 대화만 시작했다 하면 혈압이 올라서 가만있기가 힘들었다.“뭐, 난 내 할말 다했어요. 그쪽은 지
임윤서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별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요. 요즘 매일 바깥 음식을 먹었더니 속이 별로예요. 오늘은 집에서 먹고 싶은데 정 같이 밥을 먹고 싶다면 그쪽에서 저에게 밥을 한 번 해주시던가?”“뭐?”송영식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싫으면 마시고. 만난 김에 같이 밥이나 먹으면서 얘기 좀 했으면 좋았을 텐데….”“그, 그럼 해주지.”송영식은 할 수 없이 임윤서를 따라 들어갔다.오만한 송영식이 임윤서의 눈치를 살피는 날이 오다니 정말 별일이었다.집에 들어가자 임윤서는 바로 소파에 털썩 앉더니 테이블에 펼쳐진 주전부리를 먹기 시작했다.“빨리해주세요. 맛없으면 얘기 안 하고 싶을지도 몰라요. 누구 불러서 도움받을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전 진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서요.”송영식은 침울한 얼굴로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뭔가가 많긴 했는데 죄다 요거트, 우유, 과일, 치즈 같은 것뿐 식재료는 거의 없었다. 결국 한참을 뒤지다가 냉동실을 열어보니 소갈비와 생선, 냉동 새우가 나왔다.날짜를 확인해 보니 유통기한이 지나기 직전이었다.송영식은 한심한 눈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임윤서를 쳐다보았다.‘대충 어떤 인간인지 알겠구먼. 아주 요리하고는 담을 쌓았네. 저런 인간을 누가 데려가서 살지 정말 걱정이다.’임윤서는 칩스를 다 먹고 주방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더니 송영식이 갈비를 해동하고 있었다.전에 갈비를 사 올 때는 제대로 한번 해먹어 보겠다고 의욕적이었지만 밑간이 없이 구웠더니 너무 맛이 없는 데다 속은 익히기도 힘들었다.“어라, 갈비 하시게요? 그거 하기 되게 힘들던데.”임윤서가 알려주었다.“안 되겠으면 내려가서 뭐 먹을 거 대충 사가지고 오세요.”“됐어요.”송영식은 무표정하게 임윤서를 쓱 쳐다보더니 다시 음식을 하는데 집중했다.그 모습을 보니 임윤서는 동성에 있는 자기네 집 강아지가 생각났다.임윤서는 바로 엄마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엄마 포롱이는요? 조금 아까 어떤 남자를 봤는데 포롱이를 닮은 거 있죠
송영식이 침착하게 말을 받았다.“그렇게 놀랄 일입니까? 내가 요리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그럼요. 난 그쪽 같은 도련님은 허구한 날 백지안 뒤꼭지나 따라다니면서 부르면 부르는 대로 따라다니고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줄 알았죠.”임윤서가 서슴없이 말을 뱉었다.“……”‘내가 갈비찜에 독을 탔어야 해. 그러면 아주 깨끗하게 모두 다 끝났을 텐데.’임윤서는 갈비찜을 집어 맛을 보았다.‘어머 어머, 이게 뭐야? 너무 맛있잖아? 이거 뭐 완전 궁중 요리 수준인데?튀김은 어지간한 유명 일식집 튀김 못지않아. 생선구이도 완전 겉바속촉!흠흠, 뭐 워낙 재료가 좋아서 그런지도 몰라.’“이게 다 직접 한 거예요?”임윤서는 신기해 죽을 지경이었다.“뭐 집에 있는 쉐프가 만들어서 드론으로 날렸다던지 그런 거 아니고?”“무슨 소립니까? 다 내가 직접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요리하는 거 좋아해서 꽤나 솜씨가 좋다고요.”송영식은 슬슬 참을 수가 없었다.“최하준 회장은 그렇게 요리에는 곰손인데 친구는 이렇게 요리 천재라니 정말 뜻밖이네요.”임윤서는 다시 감탄해 마지않았다. 처음으로 송영식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흠, 뭐 이목구비가 꽤 시원스럽단 말이야. 웃으면 초승달이 되는 저 눈이 평소에 나만 보면 불을 뿜어서 그렇지. 키도 크고 늘씬하니 아주 타고난 모델이란 말이야.이대로 데뷔했으면 아마 팬덤도 어마어마하게 형성됐을 그런 타입이거든.’“왜 사람을 그렇게 쳐다봅니까? 아무리 그렇게 쳐다봐도 내가 그쪽을 좋아할 일 없습니다.”송영식은 임윤서의 시선에 은근히 불편해서 덧붙였다.“흠흠, 그러면 이제 정식 주제로 들어가 볼까요?”“그래요. 말해 보세요.”임윤서가 끄덕였다.송영식이 말했다.“그쪽에서 SE와 협력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SE는 어쨌거나 국내에서 늘 2선 브랜드요. 보통은 10대, 20대 학생을 타깃으로 하는 피부 보호 라인 위주의 브랜드죠. 그러니 브랜드 자체가 고급스러운 느낌이 아니라서 그쪽이 SE와 협력해 봤자 당신의 레벨을
“당신에게 나는 그저 일개 조제사일 뿐이었는지 몰라도 우리 같은 조제사들이 얼마나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조제사가 되는지는 생각해 봤어요?그때 당신들 같은 재벌 2세가 클럽에서 먹고 마시고 노는 동안 우리는 실험실에 갇혀서 연구를 거듭하고, 당신들이 골프하고 요트에서 낚시할 때, 우리는 죽어라고 책을 씹어 먹을 듯 공부했다고.”그러면서 임윤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때 당신이 날 블랙리스트에 넣는 바람에 내가 얼마나 막다른 곳까지 몰렸었는지 알기나 해요? 게다가 그때 백윤택 사건까지 겹치면서 난 마트에서 사람들에게 계란을 맞기도 했다고. 그래서 결국 국내에서는 버틸 수가 없어서 해외로 나간 거예요.해외에서는 또 완전 이름도 모르는 새내기로 시작하다 보니 또 무시를 당했지. 매일 퇴근도 못 하고 1년 365일에 360일을 실험실에서 보내다가 몇 번을 기절했는지 몰라.2번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서 밤을 넘기다가 깨어나 보면 병원이고 그랬어요.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지만 난 내 존엄을 되찾기 위해서 그때마다 더 스스로를 채찍질하곤 했어요.”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속이 쓰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저기, 울지 말라고.”송영식은 속이 따끔따끔 찔리던 참에 임윤서가 울어버리니 어쩔 줄을 몰랐다.자신이 아주 세상 나쁜 놈이 된 기분이었다.“난 슬프고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울지도 말라고?”임윤서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그런데 사람이 워낙 예쁘다 보니 우는 모습도 어찌나 아름다운지 빗속에 꽃이 피는 듯한 느낌이었다.“그, 그럼 울어요.”송영식은 움찔하더니 입을 다물었다.“송영식! 당신은 사람도 아니야! 내가 이렇게 우는데 달래줄 생각은 안 하잖아. 이러니까 여자 친구가 없지.”임윤서가 눈물을 닦던 휴지를 송영식에게 집어던졌다.“…임윤서 씨, 이거 진짜 어이없네.”송영식은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그래, 나 원래 이렇게 어이없는 인간이다!”임윤서는 코를 팽 풀었다. 예쁘장한 작은 얼굴이 우는 바람에 발
백지안은 보통 화가 난 게 아니었다.어장 관리 대상인 송영식이 회의 따위 때문에 자신을 잊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전에는 완전히 자기 손바닥 위에서 놀던 송영식이었다. 백지안이 말 한마디면 얼마나 멀리 있든 무슨 일을 하던 중이건 무조건 달려오곤 했었다.그런데 임윤서 때문에 자신을 바람 맞출 줄이야….그러나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는 없어서 괜찮은 척하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괜찮아. 그래서 임윤서랑은 얘기가 잘 됐어?”“얘기를 하기는 했는데 그쪽에서 오슬란 지분의 10%를 요구하고 있어.”송영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방금 임원진 미팅을 했는데 다들 그 정도는 내 줄 수 있다고 하더라고. 임윤서를 오슬란에 묶어둘 수만 있다면 그 정도는 해볼 만하다고.”“10%라고?”백지안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너무한 거 아니야? 그래서? 다들 동의했어?”“어쩔 수가 없어. 그렇게 해서라도 신제품 라인을 출시하고 나면 오슬란의 시장 점유율은 높아질 거야.”백지안은 송영식에게 멍청이라고 욕을 한바탕 퍼붓고 싶었다.그러고 싶은 걸 꾹 참느라고 속이 다 터져나갈 지경이었다.전화를 끊고 나서 여름은 바로 백윤택에게 전화를 걸었다.백윤택은 그 말을 듣더니 엉덩이가 들썩거렸다.“송 대표가 완전히 임윤서에게 넘어갔구먼. 임윤서에게 10%를 주느니 그냥 너에게 주는 게 훨씬 나을 텐데 말이야.”영하의 상장가를 생각해 보니 임윤서의 몸값이 자기와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백윤택 눈에 임윤서는 그저 동성에서 온 촌뜨기에 지나지 않는 데 생각할수록 분했다.“도저히 못 참겠어. 기회를 봐서 임윤서를 어떻게 좀 해봐.”백지안이 이를 갈았다.“그리고 나서는 강여름을 손봐주자고.”“나도 임윤서를 이대로 표기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3년 전 못다 한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어.”백윤택이 갑자기 음험하게 웃었다.“고것이 오슬란의 주주가 된 뒤에 내가 고것을 내 아내로 만들어 버리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지.”“설마….”백지안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