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안은 그 말을 들으니 분노가 치밀었다.하준의 마음은 강여름이 훔쳐 가고 예비로 끼고 있으려고 했던 송영식은 임윤서에 메여있었다.‘그 인간은 강여름의 절친이잖아? 둘 다 똑같이 못된 것들이지.’“영식아, 나 너무 짜증 난다.”백지안이 우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늘 내 곁에 붙여두던 민 실장도 이제 데려가 버렸어.”“민 실장은 네 보디가드였잖아?”송영식의 목소리가 높아졌다.“민 실장도 지룡에서 데려가 버리고….”백지안이 씁쓸하게 한숨을 쉬었다.“간병인도 가버렸어. 내가 성질이 더럽다나 어쨌다나? 내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어 버렸을까?”“이런, 하준이 자식은 정말 인간도 아니구먼.”송영식은 하준이 이렇게까지 백지안에게 매정하게 굴 줄은 몰랐다.‘헤어진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아파서 입원했는데 옆에 붙여놨던 사람까지 거둬갈 일이냐?’“쓸데없는 생각 마. 내가 곧 갈게.”송영식이 전화를 끊고 막 가려고 돌아서는데 언제부터인지 임윤서가 거기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하얀 니트 원피스에 야구캡을 쓴 임윤서의 입가에는 희미하게 미소가 어려있었다. 아무리 봐도 웬 유명 배우가 소박하게 차려입고 나선 듯한 모양새였다.“안녕하세요? 아니, 내가 리버사이드파크로 이사한 건 대체 어떻게 아셨을까?”임윤서가 빙그레 웃으며 눈썹을 치켜올렸다.“최하준 회장이 말한 건 아니겠지?”그 일을 생각하니 송영식은 열불이 뻗쳤다.실은 하준이 리버사이드파크의 아파트를 임윤서에 주었다는 이야기를 이주혁에게 들었던 것이다.임윤서는 느른하게 한숨을 쉬었다.“최하준 회장은 참 손이 크지 뭐예요. 난 원래 여름이랑 살려고 그랬는데 여름이를 만나는데 내가 거치적거렸던지 최하준 회장이 그냥 여기 집을 덜렁 주지 뭐야? 이 큰 집에 혼자 있으니까 어찌나 좋은지!”“말 다했나?”송영식은 이곳에 오는 길에 내내 스스로 성질을 잘 눌러야 한다고 되뇌며 왔는데 아무래도 임윤서와 대화만 시작했다 하면 혈압이 올라서 가만있기가 힘들었다.“뭐, 난 내 할말 다했어요. 그쪽은 지
임윤서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별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요. 요즘 매일 바깥 음식을 먹었더니 속이 별로예요. 오늘은 집에서 먹고 싶은데 정 같이 밥을 먹고 싶다면 그쪽에서 저에게 밥을 한 번 해주시던가?”“뭐?”송영식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싫으면 마시고. 만난 김에 같이 밥이나 먹으면서 얘기 좀 했으면 좋았을 텐데….”“그, 그럼 해주지.”송영식은 할 수 없이 임윤서를 따라 들어갔다.오만한 송영식이 임윤서의 눈치를 살피는 날이 오다니 정말 별일이었다.집에 들어가자 임윤서는 바로 소파에 털썩 앉더니 테이블에 펼쳐진 주전부리를 먹기 시작했다.“빨리해주세요. 맛없으면 얘기 안 하고 싶을지도 몰라요. 누구 불러서 도움받을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전 진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서요.”송영식은 침울한 얼굴로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뭔가가 많긴 했는데 죄다 요거트, 우유, 과일, 치즈 같은 것뿐 식재료는 거의 없었다. 결국 한참을 뒤지다가 냉동실을 열어보니 소갈비와 생선, 냉동 새우가 나왔다.날짜를 확인해 보니 유통기한이 지나기 직전이었다.송영식은 한심한 눈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임윤서를 쳐다보았다.‘대충 어떤 인간인지 알겠구먼. 아주 요리하고는 담을 쌓았네. 저런 인간을 누가 데려가서 살지 정말 걱정이다.’임윤서는 칩스를 다 먹고 주방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더니 송영식이 갈비를 해동하고 있었다.전에 갈비를 사 올 때는 제대로 한번 해먹어 보겠다고 의욕적이었지만 밑간이 없이 구웠더니 너무 맛이 없는 데다 속은 익히기도 힘들었다.“어라, 갈비 하시게요? 그거 하기 되게 힘들던데.”임윤서가 알려주었다.“안 되겠으면 내려가서 뭐 먹을 거 대충 사가지고 오세요.”“됐어요.”송영식은 무표정하게 임윤서를 쓱 쳐다보더니 다시 음식을 하는데 집중했다.그 모습을 보니 임윤서는 동성에 있는 자기네 집 강아지가 생각났다.임윤서는 바로 엄마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엄마 포롱이는요? 조금 아까 어떤 남자를 봤는데 포롱이를 닮은 거 있죠
송영식이 침착하게 말을 받았다.“그렇게 놀랄 일입니까? 내가 요리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그럼요. 난 그쪽 같은 도련님은 허구한 날 백지안 뒤꼭지나 따라다니면서 부르면 부르는 대로 따라다니고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줄 모르는 줄 알았죠.”임윤서가 서슴없이 말을 뱉었다.“……”‘내가 갈비찜에 독을 탔어야 해. 그러면 아주 깨끗하게 모두 다 끝났을 텐데.’임윤서는 갈비찜을 집어 맛을 보았다.‘어머 어머, 이게 뭐야? 너무 맛있잖아? 이거 뭐 완전 궁중 요리 수준인데?튀김은 어지간한 유명 일식집 튀김 못지않아. 생선구이도 완전 겉바속촉!흠흠, 뭐 워낙 재료가 좋아서 그런지도 몰라.’“이게 다 직접 한 거예요?”임윤서는 신기해 죽을 지경이었다.“뭐 집에 있는 쉐프가 만들어서 드론으로 날렸다던지 그런 거 아니고?”“무슨 소립니까? 다 내가 직접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요리하는 거 좋아해서 꽤나 솜씨가 좋다고요.”송영식은 슬슬 참을 수가 없었다.“최하준 회장은 그렇게 요리에는 곰손인데 친구는 이렇게 요리 천재라니 정말 뜻밖이네요.”임윤서는 다시 감탄해 마지않았다. 처음으로 송영식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흠, 뭐 이목구비가 꽤 시원스럽단 말이야. 웃으면 초승달이 되는 저 눈이 평소에 나만 보면 불을 뿜어서 그렇지. 키도 크고 늘씬하니 아주 타고난 모델이란 말이야.이대로 데뷔했으면 아마 팬덤도 어마어마하게 형성됐을 그런 타입이거든.’“왜 사람을 그렇게 쳐다봅니까? 아무리 그렇게 쳐다봐도 내가 그쪽을 좋아할 일 없습니다.”송영식은 임윤서의 시선에 은근히 불편해서 덧붙였다.“흠흠, 그러면 이제 정식 주제로 들어가 볼까요?”“그래요. 말해 보세요.”임윤서가 끄덕였다.송영식이 말했다.“그쪽에서 SE와 협력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SE는 어쨌거나 국내에서 늘 2선 브랜드요. 보통은 10대, 20대 학생을 타깃으로 하는 피부 보호 라인 위주의 브랜드죠. 그러니 브랜드 자체가 고급스러운 느낌이 아니라서 그쪽이 SE와 협력해 봤자 당신의 레벨을
“당신에게 나는 그저 일개 조제사일 뿐이었는지 몰라도 우리 같은 조제사들이 얼마나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조제사가 되는지는 생각해 봤어요?그때 당신들 같은 재벌 2세가 클럽에서 먹고 마시고 노는 동안 우리는 실험실에 갇혀서 연구를 거듭하고, 당신들이 골프하고 요트에서 낚시할 때, 우리는 죽어라고 책을 씹어 먹을 듯 공부했다고.”그러면서 임윤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때 당신이 날 블랙리스트에 넣는 바람에 내가 얼마나 막다른 곳까지 몰렸었는지 알기나 해요? 게다가 그때 백윤택 사건까지 겹치면서 난 마트에서 사람들에게 계란을 맞기도 했다고. 그래서 결국 국내에서는 버틸 수가 없어서 해외로 나간 거예요.해외에서는 또 완전 이름도 모르는 새내기로 시작하다 보니 또 무시를 당했지. 매일 퇴근도 못 하고 1년 365일에 360일을 실험실에서 보내다가 몇 번을 기절했는지 몰라.2번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서 밤을 넘기다가 깨어나 보면 병원이고 그랬어요.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것도 아니지만 난 내 존엄을 되찾기 위해서 그때마다 더 스스로를 채찍질하곤 했어요.”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속이 쓰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저기, 울지 말라고.”송영식은 속이 따끔따끔 찔리던 참에 임윤서가 울어버리니 어쩔 줄을 몰랐다.자신이 아주 세상 나쁜 놈이 된 기분이었다.“난 슬프고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울지도 말라고?”임윤서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그런데 사람이 워낙 예쁘다 보니 우는 모습도 어찌나 아름다운지 빗속에 꽃이 피는 듯한 느낌이었다.“그, 그럼 울어요.”송영식은 움찔하더니 입을 다물었다.“송영식! 당신은 사람도 아니야! 내가 이렇게 우는데 달래줄 생각은 안 하잖아. 이러니까 여자 친구가 없지.”임윤서가 눈물을 닦던 휴지를 송영식에게 집어던졌다.“…임윤서 씨, 이거 진짜 어이없네.”송영식은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그래, 나 원래 이렇게 어이없는 인간이다!”임윤서는 코를 팽 풀었다. 예쁘장한 작은 얼굴이 우는 바람에 발
백지안은 보통 화가 난 게 아니었다.어장 관리 대상인 송영식이 회의 따위 때문에 자신을 잊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전에는 완전히 자기 손바닥 위에서 놀던 송영식이었다. 백지안이 말 한마디면 얼마나 멀리 있든 무슨 일을 하던 중이건 무조건 달려오곤 했었다.그런데 임윤서 때문에 자신을 바람 맞출 줄이야….그러나 그런 말을 대놓고 할 수는 없어서 괜찮은 척하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괜찮아. 그래서 임윤서랑은 얘기가 잘 됐어?”“얘기를 하기는 했는데 그쪽에서 오슬란 지분의 10%를 요구하고 있어.”송영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방금 임원진 미팅을 했는데 다들 그 정도는 내 줄 수 있다고 하더라고. 임윤서를 오슬란에 묶어둘 수만 있다면 그 정도는 해볼 만하다고.”“10%라고?”백지안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너무한 거 아니야? 그래서? 다들 동의했어?”“어쩔 수가 없어. 그렇게 해서라도 신제품 라인을 출시하고 나면 오슬란의 시장 점유율은 높아질 거야.”백지안은 송영식에게 멍청이라고 욕을 한바탕 퍼붓고 싶었다.그러고 싶은 걸 꾹 참느라고 속이 다 터져나갈 지경이었다.전화를 끊고 나서 여름은 바로 백윤택에게 전화를 걸었다.백윤택은 그 말을 듣더니 엉덩이가 들썩거렸다.“송 대표가 완전히 임윤서에게 넘어갔구먼. 임윤서에게 10%를 주느니 그냥 너에게 주는 게 훨씬 나을 텐데 말이야.”영하의 상장가를 생각해 보니 임윤서의 몸값이 자기와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백윤택 눈에 임윤서는 그저 동성에서 온 촌뜨기에 지나지 않는 데 생각할수록 분했다.“도저히 못 참겠어. 기회를 봐서 임윤서를 어떻게 좀 해봐.”백지안이 이를 갈았다.“그리고 나서는 강여름을 손봐주자고.”“나도 임윤서를 이대로 표기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3년 전 못다 한 일을 마무리 지어야겠어.”백윤택이 갑자기 음험하게 웃었다.“고것이 오슬란의 주주가 된 뒤에 내가 고것을 내 아내로 만들어 버리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지.”“설마….”백지안의 눈
“뭐래? 그냥 좀 아까워서 그러지. 가만 생각해 보면 백지안 참 팔자 좋지 않냐? 그저 그 인간이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을 할 줄 몰라서 그렇지. 아니, 말이야 바른말이지, 송영식이 요리를 아주 잘하더라. 갈비찜이며 튀김이 진짜 얼마나 맛있었는지 몰라.”임윤서는 지금도 생각하니 입에 침이 고일 지경이었다.“그러고 보니까 송영식이 아주 쓸모없는 인간은 아니네. 요즘 그렇게 음식 솜씨 좋은 사람이 흔한가 어디? 최하준을 봐도 그렇고….”여름은 한숨이 나왔다.“그 인간은 그저 내가 차려준 밥을 먹을 줄밖에 모른다니까. 나도 누가 나한테 밥 좀 해줬으면 좋겠다.”“양유진 대표 있잖아?”임윤서가 눈을 찡긋거렸다.여름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요즘 양유진은 여름의 계획에 방해가 될까 봐 일체 연락까지 끊고 있었다. 여름은 그야말로 양유진에게 마음의 빚이 컸다.한창 식사 중인데 하준에게서 전화가 왔다.“난 이제 접대 끝났는데 자기는 어디야?”여름이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7시였다.“뭐 이렇게 빨리 끝났대?”“응, 난 그쪽 대표들하고는 대충 저녁 먹고 나왔어. 김 실장이 2차 데리고 나갔지.”“난 윤서랑 밖에서 밥 먹는데. 먼저 들어가요.”여름이 느른하게 대답했다.하준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난 자기랑 같이 있고 싶은데, 당신은 왜 허구한 날 친구랑만 놀려고 그래?”“아니, 내 삶이 일 아니면 당신 밖에 없어야 돼? 나도 맛있는 것도 좀 먹고 놀고 싶다고.”여름은 전화를 끊었다.‘최하준이 이렇게 질척거리는 인간인지 왜 전에는 몰랐을까?’밥을 다 먹고 나서 여름은 윤서와 마사지 샵으로 갔다.가는 길에 계속 하준에게서 톡이 날라왔다.-마사지 샵은 뭐 하러 가? 집에서 팩하면 되잖아?여름은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집에서 하는 팩이랑 전문 샵에서 남한테 마사지 받는 거랑은 천지차이라고.-난 그런 거 몰라. 주소 불러 봐. 내가 가서 결제나 해줄게.여름은 ‘결제’라는 말에 넘어가서 주소를 불러주고 말았다.두 사람이
곧 남자 넷이 침대로 달려들었다. “형님, 얘기 임윤서네요..”그 중 하나가 사진을 꺼내 임윤서의 얼굴을 대조해 보며 말했다.“그렇군. 끌고 가.”두목인 듯한 남자가 손을 휘저으며 명령하더니 여름을 노려보았다.“너희는 먼저 가. 난 여기서 재미 좀 볼라니까.”“형님, 저도 좀….”옆에 있던 녀석이 임윤서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어쨌든 그쪽에서도 건드리면 안 된다고 그러진 않았잖아요?”“그래.”“이거 놔!”달려드는 남자들을 보며 여름과 임윤서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이때 누군가가 문을 차고 들어왔다. 뛰어 들어온 최하준은 여름의 옷이 찢긴 것을 보더니 눈에서 불이 나오는 것 같았다.“감히 내 사람을 건드려!“누…누구야?”넷은 들어온 사람의 기세에 눌렸다.“네놈들을 끝장내 주러 온 사람이다.”하준은 그대로 한 놈씩 처리하기 시작했다.넷을 모두 쓰러트리고 하준은 바로 옷을 벗어 여름을 감쌌다. 하얗게 드러난 여름의 피부에 난 상처를 보니 새삼 울화가 치밀어 쓰러져 있는 놈들을 한 번씩 더 걷어찼다.“살려 주십시오. 저희도 그냥 돈 받고 하는 일입니다.”두목으로 보이는 녀석이 애걸했다.“그쪽은 나름 거물이니 함부로 건드리진 마시고요.”하준이 싸늘하게 물었다.“누구냐?”“SE그룹의 한지용 대표입니다.”“한 대표가 보냈다고! 이 자식이!”임윤서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네. 당신이 오슬란으로 간다는 걸 알고 한 대표가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저희에게 데려오라고 했습니다.”두목으로 보이는 녀석이 하준을 바라보았다.“형씨, 한 대표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요. 오늘 일은 이 정도로 하고 넘어가시죠. 보아하니 형씨도 한 가닥하시는 것 같은데 앞으로 우리 같이 잘 지내봅시다.”“잘 지내?”하준이 나지막이 웃었다. 웃음소리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싸늘함이 섞여 있었다. “내가 누군 줄 알고?”“누, 누군데요?”“나 최하준이야.”하준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다시 놈의 손가락을 밟았다.좁은 실내에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놈
여름인 뜬금없이 하준을 보더니 웃었다.“그렇게까지 오버 안 해도 나 질투 안 해.”하준은 짐짓 눈을 크게 뜨고 여름을 쳐다봤다.“난 당신 말고 다른 여자한테는 손 대기도 싫단 말이야.”여름은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심장이 눈치도 없이 마구 두근거렸다.가련하게 집어 들려 있는 임윤서는 두 사람의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대충 어떤 표정일지가 상상되었다.여름이 복수극의 대본대로 하준을 유혹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아무래도 둘이 무슨 로맨스물이라도 찍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하준은 차 문을 열더니 무표정하게 임윤서를 뒷자석에 던져 넣고 여름은 조심스럽게 보조석에 앉혀 안전벨트를 해주었다.가는 길에 하준은 상혁에게 전화를 걸었다.“애들 좀 데리고 이쪽으로 와. 마사지 샵 봉쇄하고 경찰 신고하고 기자 불러. 오늘 내로 SE그룹 한지용을 무너뜨려야겠어. 오늘 마사지샵 사건 관련자는 하나도 빼지 말고 다 잡아들이도록 해.”“알겠습니다.”접대를 하던 상혁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하준은 내내 냉혹한 얼굴로 운전에 집중했다.임윤서와 여름은 떠들 기력도 없어서 아무 말 없이 기대어 있었다.병원에 도착하자 하준은 윤서를 바로 매정하게 의사에게 넘겨버리고 여름은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의사에게 채혈을 부탁했다.해결 결과를 기다리면서 마침내 하준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앞으로는 윤서랑 놀지 마. 밥만 먹으면 그냥 집에 들어오라고.”“오늘 일은 사고잖아….”“사고는 사고지. 하지만 이게 다 임윤서 때문이잖아.”하준이 차갑게 내뱉었다.“임윤서 때문에 당신까지 끌려들어 간 거잖아.”“최하준, 그만 해요. 나랑 윤서는 친구야. 끌려 들어가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내가 언제 당신 친구들 원망했어?”여름이 무거운 얼굴을 하고 불만 섞인 말투로 하준의 말을 끊었다.“더구나 요 몇 년 해외에 있는 동안 나랑 윤서는 우리 둘밖에 기댈 사람이 없었다고. 윤서는 나에게 가족이나 다름없어.그리고 잊어버리셨나 본데 3년 전 백윤택 일로 당신이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