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여름의 작은 몸을 비췄다.여름은 몸을 살짝 돌린 채 입꼬리에 온화한 미소를 띠었다. 말투가 사뭇 부드러웠다.“그럼. 데리러 갈게.”여름이 얼마나 환하게 웃는지 눈이 부셨다. 통화가 끝나자 엄 실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연애 하세요?”여름은 흠칫하더니 기분 좋게 눈썹을 치켜올렸다.“곧 하겠죠.”“……”‘대표님을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뜻인가?’------저녁 9시.손님이 탄 비행기가 착륙했다.10여 분을 기다리니 윤서가 귀염둥이 둘을 데리고 빠져 나왔다.쉬크한 펑크풍 의상을 입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어찌나 귀엽게 생겼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돌아볼 지경이었다.여울이는 트렁크 위에 앉아 있었다. 얼굴에는 마스크를 쓰고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달랑거리고 있어 너무나 귀여웠다.둥이가 여름을 발견하자 여울이는 트렁크에서 뛰어 내려 오도도도 달려갔다.“엄마, 엄마!”여울이는 여름의 품에 와락 안겼다. 고소한 젖냄새가 풍겼다.여름은 심장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눈물까지 흘러나올 뻔 했다. 둥이가 태어나고 나서 이렇게 오래 헤어져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엄마.”하늘은 비교적 절제된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눈가가 촉촉했다.“우리 아들, 이리 와!”여름이 양 팔을 벌려 좌우로 둥이를 안아 들였다.“역시나 엄마가 최고네. 이모는 아무래도 엄마를 대신할 수가 없구먼.”임윤서가 비죽거렸다.“내가 매일 얼마나 사탕을 사다 바쳤는데도 엄마를 보더니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네.”여울이가 몸을 배배 꼬았다.“이모도 겨론해서 동생 낳아줘요.”“난 싫네요.”임윤서가 답했다.여름이 일어나 웃었다.“고생 많았다. 오늘은 내가 거하게 쏠게.”“좋아. 가자!”임윤서가 막 걸음을 옮기려는데 뒤에서 놀라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윤서, 너니?”3년이 지났지만 그 목소리는 잊을 수가 없었다.돌아보니 강상원과 신아영이 출구에서 나오고 있었다. 3년 만에 강상원은 이전보다 훨씬 성숙한 모습이었다.
3년이 흘렀다.세월이 윤서의 얼굴에도 흔적을 남겼지만 훨씬 생기가 넘쳤다.강상원은 숨을 쉬는 법도 잊은 듯했다.옆에 있던 신아영이 놀라서 입을 열었다.“언니, 정말 윤서 언니네? 돌아왔구나? 우리가 얼마나 걱정을 했다고. 잘 지냈어?”강상원은 흠칫했다.강상원은 임윤서가 백윤택의 분노를 사는 바람에 백윤택이 임윤서의 집에 쳐들어가 폭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온통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다쳤던 임윤서의 사진이 온통 뉴스를 도배했던 3년 전을 떠올렸다.얼마 지나지 않아서 임윤서가 해외로 도피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순식간에 강상원의 눈에 혐오와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임윤서는 순식간에 변하는 강상원의 눈빛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귀국하자마자 아주 남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네? 아직도 지독하구나?”임윤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러나 상처받은 얼굴로 입을 가렸다.“미안해.”“사과할 필요 없어.”강상원이 싸늘하게 뱉었다.“자기가 그런 짓을 저질러 놓고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면 또 듣기는 싫은가 보지?”이윤서는 고개를 갸웃했다.‘저게 한때 내가 사랑했던 남자로구나. 백윤택의 거짓말로 도배된 뉴스만 믿고 날 믿어줄 생각은 전혀 없네.’여름이 결국 한 마디 했다.“윤서를 그렇게 오래 만났으면서도 윤서의 사람됨을 그렇게나 모르다니.”“너무 잘 아니까 하는 소리야. 예전에 네 회사에서 지나가던 아무 남자나 잡고 키스나 할 정도로 서울에 올라오더니 윤서가 방탕한 생활을 한다는 걸 내가 직접 봤거든.”강사원이 멸시하는 말투로 대답했다.“오빠, 이러지 마.”신아영이 끼어들었다.“윤서 언니가 오빠를 자극하려고 그랬던 거잖아. 백윤택은 영하 대표니까 언니는 대단한 사람을 하나 잡아서 오빠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겠지. 그런데 그 결과가…제 꾀에 제가 넘어간 것뿐… . 그렇지만 언니, 다음부터는 남자 고를 때 성격도 좀 보세요.”임윤서는 눈알을 굴렸다.“그렇네. 내가 첫사랑을 할 때 사람 성격을 안 봤지 뭐야. 그 남자 옆에 소꿉친구라는 여자애가
“아이고, 아주 뭘 그렇게 아는 게 많으셔? 내가 그렇게 문란하게 사는데 혼외자식 한 둘쯤 있는 건 아주 정상 아닌가?”임윤서가 조롱하듯 웃었다.강상원은 안색이 확 변했다.“정말 네 아이야?”“바보네.”하늘이 비웃었다.“여자 친구가 하는 말을 아무거나 다 믿고.”“이 자식, 한 마디만 더 해봐라!”꼬마에게 도발을 당하자 강상원이 바르르 떨었다.“애한테 손만 댔단 봐라.”임윤서가 강상원의 손목을 휘어잡았다.그 덩치에도 강상원은 임윤서에게 잡힌 팔이 너무나 아팠다.강상원이 임윤서를 노려보았다. 자신을 쳐다보는 임윤서의 눈에 멸시의 빛을 보고 강상원은 불현듯 이전에는 임윤서가 늘 사랑이 담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갑자기 심장이 찌르듯 아팠다.“다음에 만나면 인사도 하지 마. 남들은 첫사랑이 아름답다지만 난 구역지만 나니까.”임윤서가 강상원의 손을 놓더니 여름과 함께 자리를 떴다.뒤에 남겨진 강상원은 내내 임윤서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난 윤서가 미운데 왜 이렇게도 윤서를 마음 속에서 지울 수가 없는 걸까.’“오빠, 괜찮아?”신아영이 다급히 강상원의 손을 잡고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별 거 아냐.”강상원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뱉었다.신아영은 강상원의 그런 모습을 보니 화가 나서 몰래 입술을 깨물었다.------차 안.여름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방금 우리 떠나올 때 강상원이 내내 너만 쳐다보고 있더라.”“그래서 뭐 어쨌다고?”임윤서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그때 사고가 나고 다들 뉴스만 보고 날 비난할 때 내 남자 친구가 문자 보냈더라. ‘자중하지 그래?’”여름이 푸흡하고 웃었다.“그게 웃기냐?”임윤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아니. 너나 나나 어쩌다가 그렇게 둘 다 쓰레기 같은 놈만 만나고 다녔어, 그래. 동병상련이네.”여름이 한탄했다.“아니지. 넌 둘이나 만났지만 난 하나거든. 다음에는 절대 그런 나쁜 놈 안 만날 거야.”임윤서가 한사코 부인했다.“그래. 넌 나보다는 나았
“맞아.”임윤서도 거들었다.“엄마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아빠는 더 무서운 사람이라고.”둥이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다음 날.여름은 아침 일찍 일어나 둥이에게 진수성찬을 차려주었다.“얘들아, 오늘은 엄마가 휴가를 냈어. 너희들이랑 하루 놀려고.”여름이 다정하게 말했다.“좋아!”여울은 신이 났다.“난 솜사탕 먹고 싶어!”“너희 소원을 다 들어주마!”이때 손님방에서 임윤서가 베이지 색 체크무늬 정장을 입고 나왔다.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옅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둥이들아! 이모 예쁘냐?”임윤서가 한 바퀴 빙글 돌았다.여울이 박수를 쳤다.“예뻐, 너무 예뻐요!”“말을 예쁘게 하는 어린이에게는 초콜릿을 주겠습니다!”임윤서가 초콜릿을 던져주었다.여름이 정색했다.“아시아 SE에서 열리는 포럼에 참석한다며? 미인대회 나가는 거야?”“오늘 행사는 전세계 뷰티계의 명품 브랜드들이 주목하는 행사라고. 오슬란의 송영식도 올 거라고.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날 내쫓았겠다? 흥! 그 인간의 후회막심한 눈을 볼 날을 내가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 줄 아냐?”임윤서가 도도하게 말했다.“알았다. 얼른 먹어. 먹고 얼른 가.”여름이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한편, 송영식의 본가.일하는 사람들이 아침상을 차리자 비서가 스케쥴을 건넸다.“대표님, 오늘 오전 10시에는 아시아 SE 포럼에서 국제적인 조제사 유니 게런이 연설합니다. 가보시겠습니까? 그쪽에서 초청장을 보내왔습니다.”송영식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싸늘하게 뱉었다.“한 대표 자식이 나한테 자랑질을 하려는 건가?”“그런가 봅니다.”비서가 한탄했다.“하지만 게런 선생님은 참 희한하기도 하죠. 저희가 전에 그렇게 여러 번 초청을 했는데도 거절하시더니. 우리나라를 싫어하는 줄 알았더니 우리 라이벌인 아시아 SE의 초청은 받아들이다니. 브랜드 파워로 보나 규모로 보나 우리 오슬란이 아시아 SE보다는 훨씬 나은데 말입니다. 머리가 있는 사람
오전 10시.5성급 호텔.송영식이 초청장을 보여주고 들어간 뒤 아시아 SE의 한 대표가 득의양양하게 맞으러 나왔다.“송 대표, 어서 오십시오. 오실 줄 알았습니다. 오슬란에서 게런을 몇 번이나 초청했는데 번번이 거절했었다면서요? 나도 그렇게 기대하지 않고 두근거리면서 초대했는데 동의할 줄은 몰랐습니다.”“축하합니다, 한 대표. 좋아서 얼마나 웃었는지 주름 생기겠습니다.”송영식이 사악하게 웃었다.“하지만 게런도 그저 포럼에서 강의하러 온 거지 근로 계약을 맺으러 온 건 아니잖습니까?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니 마지막에 누가 웃을지는 모르는 일이지요.”“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게런이 저녁 약속에도 응했거든요. 나중에 화장품 제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한 대표가 껄껄 웃었다.“미안하지만 우리가 게런의 배방을 얻으면 다음 2분기 매출은 우리가 오슬란을 한참 압도하게 될 겁니다.”송영식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한 대표가 송영식의 어깨를 두드렸다.“하지만 송 대표는 별 신경 안 쓰시겠지요. 쿠베라 산하에 기업이 얼마나 많은데 뭐 오슬란의 매출 정도야 뭐…. 오슬란이 무너져도 송 대표가 키울 기업은 얼마든지 있으니 나중에는 우리가 좋은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송영식은 입꼬리를 올리긴 했지만 한껏 싸늘한 표정이었다.‘그래. 쿠베라 산하에 기업이 많기는 하지. 그렇지만 우리 집안에는 자식도 많다고. 오슬란은 내가 내 손으로 일군 회사야. 내 손으로 키운 브랜드가 망하면 식구들에게 망신당할 거라고.그러니 난 반드시 게런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해.오늘 포럼의 주요 강연자이니 게런이 오늘 반드시 나타나겠지.’11시 반, 사회자가 박수를 쳤다.“세계적인 천재 조재사 게런 선생님께 박수 부탁드립니다. 여러 말 할 필요 없이 게런 선생님은 고급 브랜드 화장품의 효시인 심슨 선생님의 수제자 입니다.이제 게런 선생님은 국제적 일류 브랜드와 협력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네이비 보틀 아이 크립으로 전세계 최고 판매량을 올린 바 있습니다.
“난 그저 당시의 진실에 대해서 말했을 뿐이에요. 내가 안하무인인 거랑 진실을 말하는 게 무슨 상관이죠?”임윤서가 웃으며 반박했다.“송 대표님은 지금 사람들 앞에서 백윤택이 성인군자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건가요? 아니지, 성인군자는 너무 고급스럽고, 품행단정? 백윤택 씨가 품행이라도 방정하던가요?”“……”송영식은 임윤서의 팩폭에 할말을 잃었다.‘젠장, 이 상황에서 백윤택 자식의 품행이 방정하다고 억지로라도 말해야 하나?’결국 송영식은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살면서 그런 쓰레기는 나도 본 적이 없지. 지안이 오빠만 아니었으면 아는 척도 안 했을 거야.’임윤서가 웃었다. 속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통쾌했다.3년, 당시의 모욕을 씻기 위해 3년 동안 죽도록 노력하며 달려왔다.‘한은 여름이에게만 있고 나는 없는 줄 알아?내가 피해자인데 더러운 누명을 쓰고 살아야 했다고. 어딜 가도 멸시하는 시선뿐이었어.내가 얼마나 처참한 심정으로 내 나라를 떠났는데? 이제 내가 하나하나 다 갚아줄 거야.’임윤서는 다시 기자에게 말했다.“마침 백윤택 씨의 문제를 먼저 꺼내셨으니 말인데, 백윤택 씨에게 전해 주세요. 임윤서가 돌아왔다고! 그때 당시에는 다들 날 위협하고 협박해서 억울하게 오명을 뒤집어 쓴 채로 참게 만들었지만 진실은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질 거라고요.”말을 마치더니 임윤서는 돌아서 떠났다.가슴과 어깨를 똑바로 펴고 걸어가는 윤서에게 멸시의 시선을 던지는 사람이 이제는 없었다. 송영식도 넋을 잃고 바라 보다가 막 따라가려는데 한 대표가 앞을 막았다.“에헤이, 송 대표. 임윤서 같은 인재를 내쫓아 놓고는 이제서 따라가다니, 그 쪽에서는 오슬란이란 손잡을 생각은 전혀 없을 것 같습니다.”“비키시지.”송영식이 싸늘하게 명령했다.“우리 SE에서는 반드시 임윤서 씨의 레시피를 받아내고 말 겁니다.”한 대표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송영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호텔 1층 주차장.스포츠카가 다가왔다.임윤서는 차문을 열더니 보조석에
오후가 되었다.임윤서가 포럼에서 했던 말은 숏클립으로 퍼졌다. 곧 3년 전 일에 관한 논의가 분분해졌다.- 이 언니 생각난다. 백윤택을 억지로 꼬셨다고 욕을 엄청나게 먹었었지. 길가다가 계란을 맞을 정도였잖아?-세계 최고의 조제사라니 지금은 굉장한 사람이 되었네. 그런데 난 왜 임윤서의 말이 믿어지지?-그때도 백윤택이 쓰레기라고 말했었는데 아무도 내 말은 안 믿더라고.-영하에서 일하는 친척이 있는데 백윤택 성희롱 너무 심해서 결국 참지 못하고 회사 그만 둠.-백윤택이야 워낙 유명한 쓰레기 아니냐? 내 대학 동기를 따라다녔는데 걔가 안 받아주니까 사람을 얼마나 압박했는지 애가 결국 투신자살했어. 그 친구네 집에서 고소를 했는데 백윤택 백이 얼마나 대단한지 고소도 안 먹히더라.-그 인간 여동생이 백지안이잖아? 매부가 최하준이고, 그러니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찧고 까불고도 여지껏 감옥에 안 갔지.----한창 온라인에서 난리가 났을 때 하준은 백지안과 드레스를 고르고 있었다.상혁은 적당한 시간을 보다가 들어가서 하준에게 이 일을 알렸다.“임윤서?”하준은 그 이름을 듣고는 자동적으로 여름을 떠올렸다. 며칠 동안 하준은 애써 여름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중이었다.그런데 임윤서라는 이름이 나오자 3년 전 사건이 다시 떠올랐다.“네. 아마도 3년 전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것 같습니다.”상혁이 망설이며 말을 이었다.“요즘 백윤택 씨의 평판이 좋지 않아서 여론이 한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회장님과 백지안 씨까지 거론하고 있습니다.”“나를 뭐라고 해?”하준이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그게… 재력을 바탕으로 백윤택 씨 뒤를 봐주며 사람 괴롭힌다고….”이때 마침 면사포를 쓰고 나오던 백지안은 그 말을 듣고는 안색이 확 변했다. 임윤서가 튀어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임윤서라니, 당시에는 그냥 영식이네 회사의 일개 직원이었잖아? 걔는 또 어쩌다가 강여름 급으로 변신을 해서 또 튀어나와?’백지안은 억지로 죄책감
백지안이 바로 혐오스럽다는 얼굴을 했다.“닥쳐. 지금은 나랑 준의 결혼식 직전이라고. 일 벌이지 말고 얌전히 있어.”백윤택은 흠칫했다.“임유서가 기자들에게 뭐라고 했는지는 아냐?”“일단 준이 사태 진압하라고 일은 시켜놨어. 내 결혼식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 짓도 하지 말고 제발 가만히 좀 있어.”백지안이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경고했다.“들었어? 한 번만 더 일 벌이면 그 때는 나도 더는 관여하지 않을 거야.”“…알겠어.”백윤택은 시무룩하게 전화를 끊었지만 속으로는 다른 마음을 품었다.곧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임윤서 년이 어디에 있는지 당장 알아 봐.”----우아한 고급 레스토랑.직원이 임윤서를 데리고 잠깐 걷더니 어느 룸 앞에서 멈추었다.“한 대표님께서 예약한 룸이 여깁니다.”“감사합니다.”임윤서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송영식이 고풍스러운 병풍 앞에 앉아있었다. 브라운 셔츠는 단추를 몇 개 풀렀고, 소매는 접어 올렸다. 눈웃음을 치는 얼굴에서는 사악한 기운이 흘러나왔다.“앉아.”송영식이 의자를 가리켰다.임윤서는 송영식을 상대하지 않고 그대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누군가 밖에서 문을 잠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앉아서 좀 먹지 그래? 식으면 맛이 없다고.”송영식이 직접 일어나 임윤서에게 의자를 빼주었다.“오늘 포럼에서 올킬을 했는데 통쾌하지 않아? 인정하지. 정말 깜짝 놀랐다고. 전에는 내가 당신을 너무 얕잡아 봤어. 이 술로 사과하지, 어때? 속이 시원한가?”송영식은 와인을 따르더니 원샷했다.임윤서의 시선이 잠시 와인에 머무르더니 다가가 한 잔 따랐다.자신에게 술을 한잔 주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임윤서가 술잔을 든 손을 번쩍 들더니 그대로 송영식의 머리에 술을 쏟았다.“임윤서!”송영식의 얼굴이 확 변했다. 송영식이 화를 내려는데 임윤서는 와인병을 집어 들더니 송영식의 옷깃을 잡아당겨 그대로 온 안에 술을 쏟아 부었다.송영식은 놀라서 와악 소리를 질렀다.후다닥 일어나 셔츠를 벗어보았지만 이미 바지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