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백지안을 감싸고 도는 하준을 보니 여름은 당장 하준의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었는지 열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어떻게 저렇게 교활한 인간인데도 본질을 파악하지 못 할 수가 있을까?’“됐어, 준. 친구네 집안일에 저렇게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다니 네 와이프 마음씨가 얼마나 고와. 난 가볼게. 내일은 장례식장에 가봐야 해서.”백지안이 씁쓸히 웃었다.여름은 어이가 없었다. 백지안이 어머님의 장례를 치르다니 어머님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 할 일이었다.“됐어요. 어머님 장례식은 우리가 치러드릴 거예요.”“당신은 배 속에 애도 있는데 무슨 그런 일까지 나서?”하준이 언짢은 듯 말했다.“당신은 자식도 아니라서 시신도 인도 못 받을 텐데.”“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어머님 유골은 잘 수습할 게요.”백지안이 웃었다.여름은 이를 갈았다.‘말은 잘하네.어머님을 살해했을지도 모르는 저런 악독한 인간이 절대로 어머님을 편안히 보내드릴 리가 없지.’백지안이 떠나고 나서 여름은 화가 나서 하준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자기야, 아직도 오전 일 때문에 화나서 그래? 대체 우리가 왜 영하 일로 싸워야 해? 치료만 끝나면 내가 백지안이랑 완전히 떨어질게, 그렇게 약속해도 안 되겠어?”하준이 졸졸 따라왔다.여름이 갑자기 홱 돌아서더니 분노에 차서 하준을 노려봤다.“최하준 씨, 백지안만 나타나면 마치 나는 무식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한다는 듯이 취급하면서 당신 무작정 백지안 편만 드는 거 알아요?”하준은 억울했다.“지안이 볼 때마다 나한테 화 좀 내지 마. 아까 그 일은 원래 걔네 집안일인데 당신이 나서는 게 더 이상하잖아.”“그러는 당신은 왜 나서는데요?”여름은 한숨을 쉬었다. 정말 하준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싸울 때마다 하준은 한 발짝씩 멀어지고, 하준의 입에서는 사람 환장할만한 말만 튀어나왔다.여름은 문을 쾅 닫아버렸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피곤이 몰려왔다.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면 소영이 얼마나 슬퍼할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다음
하준의 얼굴이 굳어졌다.“이제 기분 좋겠네. 소영이는 평생 감옥에 갇히고, 소영이 친모랑 아버님은 두 분 다 돌아가시고, 이제 그 집안에 마침내 당신이 좋아 죽는 백지안하고 백윤택 둘만 남았잖아.”여름은 원망스럽게 하준을 노려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다.----여름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임윤서가 병실 입구에서 백지안 남매와 다투고 있었다.“임윤서, 비켜. 우리 아버지 시신이니까 우리가 수습해야지. 정 그렇게 장례식에 끼어들고 싶으면…”백윤택이 능글맞은 웃음을 흘렸다.“내 와이프가 되면 되지. 그러면 우리 아버지 장례식에 참석하게 해주겠어.”“너도 인간이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웃음이 나와?”임윤서는 복장이 터졌다.“당신만 아니었으면 아버님 돌아가시지도 않았어!”“그게 왜 말이 그렇게 되나? 어쨌든 아시게 될 테니 조만간 돌아가셨겠지.”백윤택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정말이지 내연녀 하나 갖고 그렇게까지 미치고 팔짝 뛸 일이냐고, 젠장.”백윤택, 인간도 아니구먼. 최소한 아버님은 당신을 낳아주고 길러주셨잖아?”“내내 연화정하고 그 딸에게만 관심있었다고. 내가 아버님 시신 수습하겠다고 하는 것만 해도 인간으로서 도리는 다하고 있는 거야.”“이 벼락 맞아 죽을 인간아.”임윤서는 화가 나서 백윤택에게 발길질을 날리려고 했다.“이게 어디서 발길질이야? 어디 내 손에 죽어볼 테냐?”백윤택이 손을 들어 임윤서에게 손찌검을 하려고 했다.여름이 급히 다가가 윤서를 뒤로 잡아당기고, 싸늘한 눈으로 백윤택을 노려보았다.“할 수 있으면 어디 손대 보시지. 내 배 속에는 최하준의 아기가 자라고 있어. 감히 손 하나라도 까딱했다가는 이제 막 올라앉은 영하 회장 자리고 뭐고 순식간에 다 날아갈 테니.”“오빠.”백지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백윤택에게 고개를 저어였다.“솔직히 하준이 와이프 자리는 네 거 아니냐? 그런데 어디서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고 들어앉아서는 큰 소리야? 이제 지안이가 돌아왔으니 괜히 하준이랑 지안이 사이
“머리가 나쁘면 집에 가서 호도나 까먹으셔. 그런데 당신은 머리가 너~무 나빠서 호도를 아무리 까먹어도 안 될 것 같기는 하네요. 어쨌든 난 이제 회사에서도 잘리고, 업계에서는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고, 이제 잃을 것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다, 이거야!”임윤서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마구 휘두르는 팔에 송영식은 옷이며 머리가 다 엉망진창이 되었다.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입이 쩍 벌어졌다.한 번도 누구에게 맞아본 적이 없던 송영식은 젖 먹던 힘을 다 쓰고서야 겨우 임윤서를 떼어낼 수 있었다.“아니, 진짜 죽고 싶나?”송영식이 씩씩거리며 그야말로 사람 잡을 기세로 임윤서를 노려봤다.여름은 급히 임윤서를 감쌌다.“영식아!”차가운 하준의 경고소리가 들렸다. 하준이 성큼성큼 걸어와 여름의 앞에 섰다.송영식이 가보겠다고 했는데도 직접 와보기로 하길 잘했다 싶었다. 어쨌든 여름과 송영식은 사이가 좋지 않으니 다툼이 벌어질까 걱정됐던 것이다.“넌 내가 지금 임윤서한테 맞아서 지금 이 지경인데도 쟤들 편을 들고 싶냐?”송영식이 소리질렀다.“당신이 먼저 윤서를 쳤잖아요?”여름이 혐오스럽다는 듯 송영식을 노려봤다.“누가 우리 지안이를 모욕하랬나? 그리고 당신 둘이 계속 지안이 남매 괴롭혔잖아? 어쨌거나 오늘은 내가 진짜 가만 안 둘 거야.”송영식은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임윤서도 지지 않았다.“백윤택이 먼저 우리 여름이 얼굴 가지고 뭐라고 하니까 그랬죠.”“내 와이프 얼굴을 뭐라고 했다고?”하준의 싸늘한 시선이 백윤택을 향했다.백윤택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떨었다.“아, 아니거든.”임윤서가 콧방귀를 뀌었다.“못생겼다고 뭐라 뭐라 하더니만 자기 동생이 돌아왔으니까 여름이에게 최하준 와이프 자리 내놓으라고, 최하준의 아이는 자기 동생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고까지 했지?”“아무 말이나 막 하지 말라고!”백윤택이 고함쳤다.“지안아, 네가 말해봐. 난 그런 말 한 적 없지? 오히려 저것들이 내 동생을 못된 년이라
‘아무리 아버지가 미워도 그렇지. 어른이 돌아가셨는데 저게 다 무슨 소리야?’하준의 얼굴이 점점 더 싸늘하게 굳어지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백지안을 쳐다봤다.‘백윤택이야 워낙 인간 쓰레기니까 그렇다고 치고, 지안이가 자기 오빠 편에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다니…. 하마터면 오해할 뻔 했잖아.’“준, 내가 오빠 대신 강여름 씨에게 사과할게, 응?”백지안은 당황했지만 곧 냉정을 되찾고 쓴웃음을 지었다.“우리 오빠야 워낙 성질이 저렇다고 그냥 넘어가 줘. 벌써 오빠한테 여러 번 난 하준이랑 안 되는 사이라고 얘기를 했는데도 영 말을 안 들으니 나도 어쩔 수가 없네. 게다가 잘 들어보면 난 처음부터 끝까지 말싸움에 끼어들지 않았어. 날 너무 몰아세우니까 나도 기분이 좋지 않더라고.”“네가 왜 사과를 해? 넌 나쁜 말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이게 다 형님이 잘못해서 그런 거잖아.”송영식이 얼른 나서서 위로했다.“게다가 임윤서도 지안이한테 말 그렇게 하는 거 아니지.”임윤서가 깔깔 웃었다.“마치 우리 여름이가 트러블메이커인 것처럼 들리도록 아주 애매하게 말하더니, 백지안 씨 사과 잘하네? 여름이 녹음 파일 아니었으면 백윤택은 깔끔하게 빠져나가고 여름이랑 최하준은 또 오해해서 싸웠겠지.”하준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백지안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들었다. 아주 억울하다는 얼굴이었다.“미안해 아까는 내가 깊이 생각을 못했어. 다음부터는 조심할게.”“네가 뭘 주의해? 임윤서, 적당히 안 해?”송영식은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됐어.”하준이 경고하듯 내뱉더니 백윤택을 쳐다봤다.“내가 몇 번 도와줬더니 여러 가지로 오해한 것 같군요. 어제 우리 쪽에서 누가 영하랑 협업도 제안했나 보군요. 아마도 당신과 내가 사이가 좋은 줄 알고 내게 잘 보이려는 생각이었나 본데, 그 프로젝트는 진행될 일 없을 겁니다.”백윤택이 완전히 깜짝 놀라서 허둥거렸다.“최 회장, 미안해. 내 이 주둥이가 문제야. 내가 잘못했어. 제발 그 프로젝트는 취
뒤에서 백지안이 눈을 내리깔았다. 두 눈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지나갔다.백지안은 사실 연화정을 편안히 보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하준이다 영식이에게 특별히 부탁까지 하다니 내가 못 미더운 건가?’백지안은 강여름이 녹은을 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오늘 자신의 행실이 제 발등을 찍은 격이었다.‘망할 강여름, 백소영만큼이나 짜증나.’----주차장.임윤서가 소곤소곤 여름에게 불만을 토로했다.“지금 보니까 송영식이 백지안을 좋아하나 봐. 저런 남자랑 연애하는 사람은 무슨 죄냐. 머리는 나빠가지고 청순 가련한 척하는 백여시한테 넘어가서 정신도 못 차리고… 와씨! 설마 백지안이랑 키스하고 막 그런 사이는 아니겠지? 갑자기 토하고 싶네? 아오, 내가 전에 송영식이랑 강제로 키스한 적이 있거든. 그러면 나 백지안이랑 간접 키스한 거 아니냐?”“……”여름은 놀란 얼굴을 했다.“언제 송영식한테 강제로 키스를 했대? 아무리 남자가 없어도 그런 인간한테…. 길가다 아무나 잡고 해도 그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왜…?”“아오, 그게 다 윤상원이 찾아왔을 때 하필 송영식이 옆에서 지나가고 있었거든. 그래서 내가 윤상원한테 보여주려고 송영식한테 키스를 해버렸지. 나도 아주 후회막심이다. 우웩~”여름이 확 인상을 썼다.“아, 토하는 시늉도 하지 마. 나도 토하고 싶잖아. 백지안 전남친이 내 남편인데 키스를 얼마나 했는 줄 아냐?”“어머, 그럼 너랑 백지안은 간접키스를 얼마나 한 거야? 야, 집에 가서 입 씻어!”내내 앞에서 걷던 하준은 어이가 없었다.‘저 둘은 여기 주차장이 얼마나 소리가 울리는 지 모르나? 당신들 하는 얘기 나한테도 다 들린다고.당신들 눈에 나랑 영식이가 아주 쓰레기로 보이나? 설마 그 정도는 아니겠지?’하준이 걸음을 멈췄다.임윤서는 알겠다는 듯 하준의 눈치를 한번 살피더니 바로 말했다. “내 차는 저쪽에 세워놨거든. 간다. 나중에 봐.”“나도 차 가져왔어.”여름이 차가 있는 방향으로 가려고 했다.이때 하준이 여름을
“미안하지만 난 쇼핑할 생각 없어요. 그냥 백지안은 그만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 이전에 당신의 기억 속에 백지안이 얼마나 순수한 여자애였는지는 몰라도, 실종되었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아요? 아직도 예전의 그 순수한 백지안일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여름은 하준의 손을 뿌리치며 돌아서서 가버렸다.하준이 어두운 얼굴로 마른 세수를 했다.솔직히 오늘의 백지안은 하준에게도 너무나 실망스럽고 낯선 모습이었다.여름의 녹음 파일이 아니었다면 하준은 영원히 오해 속에 살았을 것이다.지금 냉정하게 생각을 가다듬어 보니 백지안과 여름이 부딪혔을 때 자신은 무의식적으로 백지안에게로 마음이 기울었던 것 같았다.‘왜 그런 거지?내 아내는 여름이잖아?아내를 믿어주는 게 맞는 거지.앞으로는 정말 지안이를 멀리 쳐내는 게 맞겠다.’----다음날 새벽.아침을 먹고 나서 여름은 옷방에서 검은 원피스를 꺼내 입고 나왔다.검은 양복을 차려 입고 문 앞에 서 있는 하준을 보니 한참을 서 있었던 모양이다.“백현수 어르신 장례식 갈 거지? 내가 데려다 줄게.”여름이 싸늘하게 째려봤다. 하준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미소를 쥐어짰다.“백지안 보러 가는 거 아니야. 누가 우리 와이프 괴롭힐까 봐 그래.”“… 오랜만에 듣기 좋은 소리를 다하네요.”여름이 묘하게 비꼬듯 말했다.“……”‘언제는 내가 안 그랬나?뭐, 아무렴 어때? 여름이 기분만 좋아진다면 한소리 들어도 내가 좀 참으면 되지.’“가요. 어쨌든 당신도 아버님 영정 앞에서 사과는 드려야 할 거 같으니까.”여름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하준과 말다툼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하준의 어리석음을 탓할 생각도 없었다. 어쨌든 하준과 백지안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첫사랑이었다. 하준과 함께 한 지 1년도 안된 자신이 백지안의 교활한 진면목을 까발리려면 천천히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내가? 사과를?”하준이 흠칫했다.“안 해요, 그럼? 당신만 아니었으면 백윤택은 애진작에 감옥에 들어갔을
여름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뭐, 그래도 어머님이랑 아버님을 합장한다니 최소한 두 분이 함께 계실 수 있잖아.’여름이 가서 절을 하자 백지안이 바로 맞절을 했다.두 사람이 함께 고개를 숙여 가까워졌을 때 백지안이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저 안에 든 게 진짜 연화정일 것 같니? 훗, 연화정의 뼛가루는 내가 애진작에 변기에 쏟아버렸어. 저기든 건 웬 개 뼛가루야.”여름은 충격에 휩싸였다.번쩍 고개를 들었다. 백지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비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가증스럽고 악독할 수가 있지?무슨 일인가는 당할 줄 알았지만…’여름은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백지안을 두 손으로 있는 힘껏 밀어버렸다.백지안은 비틀거리다가 쓰러지면서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아픈지 눈물이 핑 돌았다.“사모님, 제가 뭘 또 잘못했다고 이러세요?”“이제 지금 뭐 하는 짓이야?”송영식이 후다닥 달려와서 백지안을 부축했다.“진짜 너무 하시는구먼.”이주혁도 다가와 백지안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하준은 완전히 머리가 아팠지만 여름이 분명 뭔가 이유가 있어 그런 짓을 했으리라고 믿었다.“자기 왜 그래?”“뭐가 왜 그래? 정신 나갔나 보지. 하준아, 당장 데리고 나가라. 나 진짜 뭔 일 내고 싶은 거 간신히 참고 있으니까.”송영식이 씩씩거리며 버럭버럭 소리질렀다.“백지안, 난 살면서 너처럼 악독한 인간은 본 적이 없다. 언젠가는 반드시 그 죗값 다 치르게 될 거다.”여름이 주먹을 부르르 떨더니 돌아서서 나갔다.백지안을 편드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여름도 당장 어쩔 수는 없다는 판단이 섰다.‘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저 악랄한 짓거리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저게 진짜 제 정신이냐고? 최하준, 앞으로 저 인간 내 눈앞에 안 보이게 해라. 다시는 꼴도 보기 싫으니까.”송영식이 여름에 대해 엄청난 혐오를 드러내며 내뱉었다.“영식아 이러지 마. 저 분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야.”
“나도 백지안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지난 번에 왔을 때 그 일은 크게 떠벌리지 않더라고. 백지안은 아닌 것 같아.”백소영이 고개를 저었다. 사뭇 복잡한 얼굴이었다.“하지만 최하준을 뺏어가겠다는 말은 하더라. 최하준의 아내 자리를 차지하겠다면서, 너 조심해라.”여름은 자신의 직감이 들어맞았다는 사실에 놀라서 움찔했다.“그렇구나. 그런데 최하준이나 송영식 앞에서는 전혀 그런 티를 안 내더라고.”“그 인간 원래부터 가식적이었어.”백소영이 입을 비죽 내밀었다.“최하준이랑 친구들은 늘 그 인간을 공주님처럼 떠받들었지.”여름이 비참한 듯 피식 웃었다.“그건 나도 알아. 아 참, 백지안이 안 죽었다는 사실을 그 사람들이 전에도 알았을까? 지금은 유명한 정신과 의사 나드쟈로 알려져 있더라고. 지금 최하준의 병을 치료하고 있어.”백소영이 깜짝 놀랐다.“난 정말 죽은 줄 알았어. 몇 년 전에 외국에서 유학할 때 친구랑 공원에 가서 놀다가 납치되어서 친구는 죽었는데 그 놈이 여자는 데려다가 다 강… 뭐 그건 다 지나간 일이고. 어쨌든 살아남았는데도 왜 식구나 최하준에게 연락을 안 했는지 모르겠네. 어쨌든 그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공부를 해서 유명한 정신과 의사가 됐다니 대단하네.”여름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백지안이 그렇게 실종된 거였구나.’백소영이 갑자기 말했다.“여름아, 영 지치면 그냥 포기하자. 넌 지금 고립무원인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백소영하고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여름은 좀 망연자실한 기분이 들었다.포기라니, 생각해 보지 못했다.하준을 남의 손에 넘긴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아니 하준과 백지안이 친밀하게 지냈을 장면을 생각할 때마다 여름은 심장을 칼로 도려낸 것처럼 아팠다.‘왜냐고? 최하준은 내 남편이니까!내 아이의 아빠니까!’백소영은 여름의 표정을 보고 한숨을 지었다.“아무래도 백지안에게 최하준 씨 치료를 맡기는 건 그만 두는 게 좋겠어. 심리 치료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최하준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