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여기 있어.”하준이 여름의 등을 도닥도닥거렸다.정말 너무 오랜만에 여름이 ‘쭌’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이었다. 하준은 심장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내가 너무 오랫동안 여름이에게 제대로 마음을 써주지 못해서 우울증에 걸렸는지도 몰라.’“그런데 오늘 나 좀 화난 것도 있어. 어떻게 그렇게 차를 몰고 가버릴 수가 있어? 그렇게 빨리 차를 몰다가 당신이랑 우리 아기 어떻게 되면 난 어떡해?”“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여름이 고개를 젓더니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들었다.“실은 아까 괜히 그런 게 아니었어요. 백지안이 그 유골함에 든 것이 어머님 유골이 아니라 개의 뼛가루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어머님 유골은 변기에 버렸대. 그 말을 들으니까 울컥해서….”“……”하준은 완전히 경악했다.여름은 하준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당신이 안 믿을 줄 알았어요. 내가 못 돼서 백지안을 밀쳤다고 생각해도 상관 없어요.”“그거 정말 믿기는 힘든 말이네.”하준이 여름의 등을 쓰다듬으며 사실대로 자기 마음을 이야기했다.‘지안이가 정말 그런 짓을 했다면 좀 무서운 걸.연화정이 아버지의 내연녀였다고 하더라도 이미 돌아가신 분인데 어떻게 유골에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지?’“나도 믿고 싶지 않아요. 그냥 내게 거짓말한 거였으면 좋겠어.”여름이 힘없이 말했다.“아이, 괜히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이모님에게 케이크 가져다 달라고 했으니까 같이 달달한 거 먹자. 그러면 기분도 좀 나아질 거야.”하준은 여름을 안고 정원으로 나갔다.정원에는 아직 햇살이 남아 있었다. 여름은 하준의 가슴에 기대어 하준이 먹여주는 대로 케이트를 받아 먹었다. 그렇게 기분이 좋아진 여름은 잠시 후 어쩐 일인지 하준의 품에서 잠이 들어버렸다.여름을 안아서 방에 데려다 놓고 하준은 침실에서 나와 상혁을 불렀다.“가서 연화정의 유골이 사람 유골인지 확인 좀 해봐.”상혁은 깜짝 놀랐다.“사람 유골이 아니면 뭐, 귀신 유골이겠습니까?”‘요즘은 어째 점점 더 엽기적
“치료하러 가지.”하준은 그렇게 말하더니 2층으로 올라갔다.여름은 입술을 깨물고 두 사람의 뒷모습이 나선 계단을 따라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얼마나 교활해? 말을 저렇게 묘하게 해서 졸지에 나를 질투심에 눈 멀어서 하준 씨 병세는 나 몰라라 하는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잖아?’치료가 끝날 때까지 여름은 1층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40여 분이 지나자 위층에서 물건 깨지는 소리와 여자 비명소리가 들려왔다.여름은 급히 2층으로 뛰어 올라갔는데 방문이 안에서 잠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모님, 열쇠 가져다 주세요.”여름이 바로 결정을 내렸다.이진숙은 허둥지둥 내려가서 열쇠를 가지고 왔다. 막 문을 열려는데 문이 안에서 벌컥 열리더니 하준이 백지안을 안고 안에서 튀어나왔다. 백지안은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었고 목에는 상흔이 보였다.여름이 깜짝 놀랐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그러나 하준은 입술을 바들바들 떨 뿐이었다. 품에 있던 백지안이 갑자기 고통스러운 듯 신음했다.“괜찮아. 내가 당장 병원으로 데려다 줄게.”하준이 백지안을 위로하며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여름은 돌아보지도 않고 급히 백지안을 안고 자리를 떴다.휑뎅그런 집 안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여름은 온 몸에 오한이 들었다.치료실로 들어가 보니 난장판이었다. 테이블과 의자는 몽땅 다 뒤집어져 있었다. 여름은 하준이 발작하는 모습을 못 본 것이 아니었다. 백지안이 부상을 입었으니 하준은 정신이 들고 나면 분명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었다.“사모님….”이진숙이 걱정스럽게 여름을 쳐다봤다.“괜찮아요. 백지안을 어느 병원으로 데려갔는지나 좀 알아봐 주세요. 제가 가봐야겠어요.”여름이 부탁했다.20분 뒤 여름은 백지안을 이주혁의 병원으로 옮겼다는 말을 들었다.차윤이 운전해서 여름을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막 입구에 들어서는데 안에서 하준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움직이지 마.”“괜찮아. 그냥 작은 상처인데, 뭘.”“뭐가 작은 상처야? 내가 얼마나
여름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웃었다.“그러면 백지안은 죽지도 않았으면서 그동안 왜 돌아오지 않았을까요? 뒤늦게 돌아와 놓고 최하준이 나랑 결혼한 게 내 잘못이라는 말인가요?”“돌아오지 않으려던 게 아니야. 자기가 이제는 하준이에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송영식이 고통스러운 듯 눈시울을 붉혔다.“당신은 지안이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몰라.”“몰라요. 관심도 없고.”여름이 비웃듯 입을 비죽 내밀었다.송영식은 여름을 노려봤다.“강여름,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피도 눈물도 없을 수가 있지?”“……”여름은 어이가 없었다.“송영식 씨. 당신이 백지안을 사랑하거나 말거나 상관 없지만 남에게 상처주면서 그 사랑을 키우진 마시죠. 나에게 백지안을 동정하길 강요하는 건가요? 그러면 내 결혼생활은요? 우리 아이는 어쩌는데요? 나는 대체 누가 불쌍히 여겨주나요?”“하준이랑 지안이가 어떻게 만났는지 아나?”송영식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정신병원에 하준이가 강제 입원되었을 때 지안이를 알게 되었어. 그래. 지안이는 멀쩡한데 그 집안에서 애를 병원에 처넣었던 거야. 거기서 지안이는 특유의 발랄함과 선량함으로 하준이의 병세가 좋아지게 한 거야. 지안이는 하준이의 태양이었어. 나중에 나도 하준이 덕에 지안이를 알게 되었지. 지안이는 정말 착한 애였어. 같은 학교가 아닌데도 지안이는 매일 하준이에게 편지를 써 주었어.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어른이 되어서 사업을 하기까지 지안이는 20년 동안 하준이와 함께 했다고.”“그래, 당신이 하준이랑 결혼했지. 하지만 그건 하준이가 지안이가 죽은 줄 알았을 때였잖아. 이제는 당신이 애를 가졌으니 하준이가 책임을 지려고 그러나 본데, 하준이랑 지안이 사이에 껴서, 당신은 좋나?”송영식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여름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하준 씨와 백지안이 정신병원에서부터 알게 된 사이였구나.’“지안이는 하준이를 위해서 의대까지 진학했다고. 걔는 평생을 하준이를 위해서 바쳤어.”송영식이
윤서가 얼굴을 찌푸렸다.“윤상원하고 오래 사귀면서 내가 깨달은 게 있어. 진짜 괜찮은 남자는 다른 여자가 아무리 옆구리를 찔러도 넘어가지 않더라. 혼자서 결혼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면 일시적으로는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평생을 이러고 살 수는 없잖아.”핵심을 찔린 여름은 깜짝 놀랐다.임윤서가 여름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이 세상에 내연녀는 많고도 많아. 최하준은 금수저인데 덤벼드는 사람이 한 둘이겠냐? 그런 문제는 최하준이 스스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돼. 그냥 순리에 따르자. 어쨌든 빼앗아 갈 수 있는 남자라면 그렇게 아끼고 귀하게 생각할 가치도 없지.”“어, 그런 것 같네.”“원래 그런 거야. 저녁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그래.”저녁을 먹고 나서 여름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하준은 돌아오지 않았다.텅 빈 건물을 여름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밤에 혼자서 그 큰 침대에 누워 있으려니 머릿속에 오늘 하준이 백지안을 안고 나가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그리고 병실에서 둘이 나누던 대화도 기억났다.백지안이 하준과 여름의 삶 속에서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임신을 한 몸으로 24시간 어디서든 백지안과 결전을 벌일 생각을 하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준만 쳐다보고 있다니.정말 너무 지친다.윤서 말이 맞는지도 몰라. 남이 빼앗아 갈 수 있는 사람을 그렇게까지 죽자사자 아끼며 지킬 필요가 있을까?됐다. 이제 그만 하자. 이젠 나도 모르겠다.’여름은 배 속의 아가를 가만히 만져봤다.‘앞으로는 아기를 사랑하는데 시간을 보내서 아가들이 건강하게 태어나기만 바라자.’다음 날 깨어나서 보니 침대 한 쪽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세수를 하고 내려가 보니 이진숙이 아침을 차리고 있었다. 하준은 테이블 앞에 앉아서 여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이 가득했다.“정말 너무 미안해. 어제… 너무 늦게 돌아왔어.”“괜찮아요.”여름은 미역국을 받아 고개를 숙이고 맛을 보았다.하준은 여름의 담담한 모습을 보며 움찔
반면 여름에게서 전화도 톡도 받지 못하는 하준은 견디기 힘들었다.전에는 백지안 때문에 여름이 시시각각으로 하준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뭘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하준이 전화를 걸지 않으면 여름이 먼저 전화를 걸어오는 일은 없었다.하준이 톡을 보내면 여름은 간단하게 한두 자로 간결하게 답하곤 했다.심지어 백지안이 세션을 하러 와도 들여다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밤에 송영식, 이주혁과 놀아도 따라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물어보지도 않았다.이제 하준은 여름이 했던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말이 무슨 소린지 철저하게 이해됐다.지금 느끼는 기분은 너무 불편했다.일하다가도 종종 넋을 놓고 상혁을 쳐다보고는 했다.하준의 시선을 받은 상혁은 어리둥절해져서 물었다.“무슨 일 있으십니까?”하준은 커피를 마시며 툭 던지듯 물었다.“어제 내가 접대하느라고 늦게까지 집에 못 들어갔잖아? 사모님이 자네한테 전화 하던가?”전에는 조금만 늦으면 상혁의 전화에 불이 나고는 했다.어젯밤에는 일부러 여름에게 말을 안 했다. 지금쯤이면 혼자서 온갖 망상을 펼치고 있을 시간이었다.상혁이 움찔했다.“아니요.”“……”하준이 짜증스럽게 넥타이를 훅훅 당겨 풀었다.“할머니는? 차 실장은? 이모님은?”‘자기는 직접 전화를 안 했어도 주변 사람을 시켜서 탐문을 했을 수도 있지.’“받은 전화 없습니다만.”상혁이 눈을 꿈뻑거렸다.“혹시 사모님 전화를 기다리고 계십니까?”“그럴 리가 있나?”하준이 상혁을 확 노려봤다.“강여름이 혼자서 끙끙 앓느라고 아기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봐 그러지.”상혁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거 참, 그냥 솔직하게 말씀하실 것이지.’“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모님은 오늘 아침에 노마님을 모시고 노 회장 댁에 마실 가셨습니다.”“마실을 가?”하준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몸도 무거운데 뭘 노인네를 모시고 마실을 다녀?”“왜 안 됩니까?”상혁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노마님께서는 사모
“맞아. 걔 말이야.”조하정이 카드를 하나 내놓으며 말했다.“남편이라는 건 딱 잡아서 단속을 해야지, 안 그러면 다른 사람을 따라 가버린다니까.”“일리 있는 말씀이네요.”여름이 카드를 내려 놓으며 말했다.“풀 하우스.”“……”앞에 있는 칩 무더기를 싹 쓸어가는 여름을 보며 조하정 입가의 마리오네트 주름이 깊어졌다.“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 듣나 보네?”“알아 들었습니다.”여름은 태연자약하게 답했다.“하지만 제가 들으니 추대호 회장님도 전에 비서랑….”그말을 들은 조하정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그건 다 헛소문이야. 난 지금 자네 얘길 하고 있잖나?”“요즘 세상에 도덕군자가 어디 그렇게 많으려고요? 하준 씨가 우리나라 최고의 거부인데 최하준 침대에 뛰어들고 싶은 사람이야 많고도 많겠죠. 제가 그 많은 케이스를 어떻게 일일이 단속하겠어요? 그래서 전 자기관리나 잘 하기로 했습니다. 어쨌든 나중에 우리 쌍둥이들 태어나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안 할 거잖아요.”여름은 가볍게 말하면서 카드 패를 섞었다.다 섞고 나서 보니 테이블에 앉은 부인들이 얼굴이 굳은 채로 자신의 뒤쪽을 보고 있었다.돌아보니 새파랗게 질린 하준이 뒤에 서 있었다. 얼마나 들었는지 모를 일이었다.조하정이 ‘푸흣’하고 웃었다.“최 회장, 들었나? 자네 와이프는 자네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네?”“조 여사님은 본인 가정부터 챙기시는 게 어떻습니까? 추신이 잘 나가면서 여사님은 간통 현장 잡으러 꽤 다니셨죠?”하준의 냉랭한 시선이 조하정에게 꽂혔다. 빙긋 웃던 조하정의 얼굴이 굳어졌다. “카드 그만 놀고 나랑 집에 가지.”하준이 여름을 의자에서 잡아 일으켰다.“아니 준아, 무슨 짓이냐?”다른 테이블에 있던 장춘자가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일어섰다.“이제 겨우 1시간 놀았는데.”“할머니 1시간이면 실컷 놀았겠네요. 우리 아기한테 태교로 포커를 시킬 셈입니까?”하준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는 투로 말하더니 여름을 데리고 가 차에 태웠다.두 사람이 뒷좌
“어쩌라고?”여름이 빙긋 웃었다.“육체적인 탈선은 탈선도 아니라던데.”“……”‘무슨 뜻이야? 내가 백지안이랑 자도 신경 안 쓴다는 말이야?아니지. 그건 아닐 거야. 전에 내가 실수로 지안이를 안았을 때도 엄청나게 질투했는데.’“여보, 오늘 지훈이가 서울에 왔다고 해서 다들 환영식해 주러 가는 거야.”하준이 달래듯 말을 이었다.“자기도 같이 가자.”여름은 흠칫했다.이주혁이라면 나름 고향친구였다. 게다가 여름과 지훈은 내내 상당히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다.“좋아요. 지훈 씨 본 지도 오래됐네.”하준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어렵사리 밖으로 한번 불러내는데 성공했다 싶었더니 그 이유가 지훈이를 보고 싶어서라고?지훈이 자식, 나 몰래 여름이랑 연락하고 지냈던 거 아니야?’한편 바다 건너에 있던 지훈은 재채기를 했다.“에잇치! 아, 누가 내 생각을 이렇게 하나? 설마 서머는 아니겠지.”이지훈은 휴대 전화를 꺼내 여름에게 톡을 보냈다.-서머, 오랜만! 오늘 저녁에 얼굴이나 보죠.마침 여름의 휴대 전화를 가지고 있던 하준은 화면 알림에 뜨는 톡을 보고 울컥했다.‘역시나 이 자식이 나 몰래 내 와이프랑 연락을 하고 있었잖아!’----저녁 8시.어느 호숫가 프라이베이트 바.하준이 여름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들어왔다.이지훈과 송영식, 백지안은 가죽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두 사람이 들어오자 이지훈이 제일 먼저 일어나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와, 서머! 오랜만이네. 나 보고 싶었어요?”하준의 싸늘한 시선이 지훈을 한 번 쏘아보았다. 지훈은 갑자기 남극의 싸늘함이 온몸을 파고드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여름이 빙그레 웃었다.“어쩐 일로 서울을 다 왔어요?”“일이 좀 있어서요.”이지훈은 자기 옆자리를 톡톡 두드렸다.“우리 서머는 여기 앉아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준이 그 자리에 털썩 앉으면서 여름을 지훈 반대쪽에 앉혔다.졸지에 중간에 덩치 큰 남자가 끼어들자 이지훈은 입을 삐죽거렸다.“뭐? 내가 네 옆에
백지안은 은연 중에 컵을 든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기침을 쿨럭쿨럭했다.“괜찮아? 아직 목이 불편한 거 아니야?”손영식이 얼른 다정하게 물었다.여름도 얼름 물었다.“어머나, 아직 상처가 다 안 나은 거 아닌가요? 아직 불편하면 집에서 쉬시는 게 좋았을 걸.”“말 다 했습니까?”송영식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위협했다.“하준이 치료하다가 다친 건데 하준이 와이프로서 지안이에게 고맙지도 않습니까? 뭐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사람이 속이 꼬였어요?”여름은 억울하다는 듯 입을 비죽 내밀었다.“송 대표, 말을 왜 그렇게 하죠? 그날 저에게 하준 씨랑 백지안 씨는 아직 감정이 남아 있다면서 저더러 아내 자리 내놓으라느니 그랬잖아요? 그런데 내가 뭘 고마워 하죠? 다 자기가 스스로 너무 원해서 하는 일인데.”여름의 말이 떨어지자 송영식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여름을 잡아먹기라도 할 것처럼 노려보았다.이지훈과 최하준은 동시에 안색이 확 바뀌었다. 특히나 하준은 얼굴에 분노의 기색이 역력했다.“송영식, 언제 우리 여름이에게 그 따위 소릴 했어?”“영식아, 왜 그런 소릴 했어?”백지안은 바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진작에 얘기했잖아. 나랑 하준이는 이미 지나간 관계라고.”“됐다, 됐어. 다 내 잘못이다. 난 화장실 좀 다녀올게.”송영식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서서 나가버렸다.“내가 가서 얘기 좀 해볼게.”백지안이 급히 따라나갔다.하준은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굳이 여름에게 같이 가자고 끌고 나온 것이 후회스러웠다.“여보, 영식이가 그 따위 소릴 했다고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내가 알았으면 진작에 가만 안 뒀을 텐데.”“그러게. 서머, 영식이가 뭘 잘 몰라서 그러니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아요.”이지훈이 화제를 바꿔보려고 했다.“우리 당구나 한 판 할래요?”여름이 끄덕였다.“좋아요.”여름과 이지훈이 당구대로 걸어가자 하준이 걱정했다.“임신했는데 당구 같은 거 쳐도 될까? 그냥 내가 대신 칠 테니까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