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최하준. 너 강여름 때문에 나한테 지적질하는 거 이걸로 벌써 두 번째야.”송영식이 짜증을 냈다.“다빈이는 지안이 동생이잖아. 이제 지안이도 없는데 이제는 내가 어떻게든 그 집 식구들 도와주고 싶다고.”“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래서 지다빈이 자꾸 선 넘는 것도 슬쩍슬쩍 봐주고 그랬던 거야. 그런데 요 몇 년 사이 백윤택 하는 짓 봐라.몇 년 전 백윤택은 사람을 해쳤어. 모든 증거가 백윤택을 가리키는 상황인데도 나는 국민적으로 욕 들어 먹을 각오를 하고 변호를 맡았어. 그 일을 겪고 나서 난 내 직업에 강한 회의감이 들어서 법조계에서 물러나려고 했지. 그동안 윤정후가 날 죽이려고 하는 것도 내버려 둔 거 너도 다 알잖아?”“……”송영식은 아무 말이 없었다.하준은 여름의 손을 꼭 쥐었다.“백윤택을 4년이나 돌봐주었어. 심지어 지다빈네 가족 기업인 이서가 영하에 압박받는 다는 사실을 알고 내가 직접 영하에 압박을 가하기도 했지. 그런데 이제 그것 때문에 내 결혼 생활이 엉망진창이 되었어. 사람은 앞을 보고 살아야지. 난 이제 더는 백지안에게 목매고 평생을 끌 다니고 싶지 않다. 그건 내 와이프에게 너무 불공평해.”송영식은 불만스러운 듯 이를 물었다.“지안이는 죽었어. 혹시… 나보다 네가 더 지안이를 좋아했던 거 아니냐?”송영식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이제 들켰군.’“네가 아직도 내 친구라면 앞으로는 내 아내를 좀 더 존중해 주기 바란다.”그러더니 하준은 전화를 끊었다. 여름은 너무나 똑바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하준의 시선에 조금 당황했다.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예전에 하준이 국내 최고의 변호사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법조계에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는 얘기는 들었었는데 그게 백윤택 때문인지는 몰랐다.‘게다가 송영식이 백지안을 좋아했다니?이게 무슨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내 친구도 믿었기에…’ 같은 상황이야?’“자기야, 나는 이제 당신을 위해서 과거는 잊고 우리의 미래를 바라보고 싶어.”하준이 진지하게 말했다.
최란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네 할아버지는 이미 현역에서 물러나셨잖니? 경고하는데 이렇게 일을 극단적으로 처리하지 마라. 그러다가 내가 너무 한다고 원망하지도 말고.”“저한테 뭘 어떻게 너무 하실지는 잘 압니다. 하지만….”하준이 갑자기 리모컨을 누르니 벽에 큰 스크린이 나타났다. 화면 속에는 FTT 이사들의 얼굴이 보였다.“죄송합니다. 방금 제가 화상 이사회의 중이었거든요. 방금 하신 말씀을 다른 이사들이 다 들어버렸네요.”그중 가장 나이가 지긋한 주 이사가 입을 열었다.“추신에서 그 프로젝트로 그렇게 많이 벌었으면 투자한 우리 몫도 적지 않은 것 아니오? 최란 부회장이야 뭐 돈이 많으니 그까짓 푼돈… 싶은지 몰라도 우리는 안 그렇습니다. 회수할 이윤은 회수해야지요.”권무영 이사가 묘한 말투로 끼어들었다.“추신이 시댁인 건 우리도 이해하니 그 동안 뭐 어느 정도 보고도 못 본 척 해왔는데 이윤이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났는데도 수익을 투자자에게 분배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죠.”모 이사도 콧방귀를 끼며 거들었다.“우리 아들 보니까 그렇게 죽도록 프로젝트팀에서 수십 년을 일해서 쥐어짜도 몇 푼 안 남던데 추신은 그 많은 FTT 자본을 가져다가 손도 안 대고 코를 풀어서 그 어마어마한 금액을 벌어들였으니, 이거 뭐 FTT에서 죽 쒀서 개 주자는 것도 아니고….”주 이사가 다시 말했다.“얼마 전에 최양하가 추신에다가 또 새로 프로젝트 만들어 주면서 거액의 이윤을 넘겨주려던 걸 최 회장이 중지시켰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FTT 손해가 아주 천문학적일 뻔했어.”모 이사가 불만스럽게 말했다.“우리는 그렇게 추신에게만 충성하는 부회장은 원치 않습니다.”최란은 점점 얼굴이 창백해졌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FTT를 경영한 지 수십 년인데 이사들이 최란에게 이렇게 따박따박 찔러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여러분, 제가 예전에 추신을 지원해 주었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최하준 회장이 추신에 청구한 금액은 말도 안 되는 거예요.”주
“어리석은 짓 말아요. 추신이 하준이와 소송을 한다면 절대 이길 수 없어요. 법률 방면에서 하준이는 전문가가 아닙니까? 하준이를 상대로 장난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최란이 카드를 추동현의 손에 쥐여 주었다.“나도 회사 경영하는 사람이에요. 상장 회사에 현금 흐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나도 알아요. 추신에 현금이 돌면 그때 돌려주세요.”“고마워요.”추동현이 최란을 꼭 안았다.최란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때 최대범에게서 전화가 왔다.“어디냐? 할 말이 있으니 당장 건너오거라.”“네….”“혼자서 와.”최란은 흠칫 놀랐다.1시간 뒤 최란이 거실로 들어섰다.“아버지,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지금 가진 현금이 얼마나 되니?”최대범이 예리한 눈으로 최란을 쳐다 봤다.최란은 아버지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어서 입술을 핥았다.“얼마 없어요. 다 투자해서요.”최대범이 천천히 일어섰다.“네 연봉이며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은 내가 제일 잘 안다. 현금을 최다 네 남편에게 줬다는 소리는 하지 말거라.”최란이 불만스럽게 답했다.“하준이가 지금 추신을 압박하는 거 알고 계시잖아요. 추신에 어디 그렇게 많은 현금이 있겠어요?”“그래서, 정말로 네 수중의 현금을 죄다 줬어?”최대범이 부들부들 떨며 물었다.“네.”최란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최대범이 소리를 질렀다.“이 어리석은 것!”“아버지…..”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추동현과 결혼한 일 말고는 아버지로부터 칭찬만 받고 자랐었던 최란은 크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똑똑한 녀석인 줄 알았더니 어째 이렇게 머리가 클수록 바보가 되는 게냐?”최대범이 파일 하나를 툭 던졌다.“네가 직접 보거라. 최근 추신에 대해 조사해 본 결과다. 추신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현금을 최근 죄다 외부에 투자해 버리고 지금 남은 건 1/10도 안 된다.”그 자료를 들여다 보던 최란은 깜짝 놀랐다.추신이 그렇게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는지 몰랐다.시부모들은 늘 최란에게 자금 유동
정신을 차렸을 때는 추동현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동현 씨, 아까 그 카드 잠깐 다시 돌려줄 수 있나요? 걱정하지 말아요. 추신 건은 내가 아버지랑 잘 얘기해서 하준이를 막아 주기로….”“미안해요, 여보. 내가 이미 성호에게 주었어요.”추동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성호가 방금 그걸 출금해서 FTT에 전달했다고 하더라고."“……”최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목구멍이 뭔가로 꽉 막힌 듯했다.“괜찮아요, 여보. 내가 하준이에게 그 돈을 당신에게 돌려달라고 할 게요”추동현이 웃었다.“우리 추신을 이렇게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사랑해요.”예전 같았으면 최란은 그 말을 듣고 감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등에서 식은 땀이 났다.“동현 씨, 그동안 추신의 비즈니스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던데 현금 줄이 그렇게나 말랐었나요?”“어쨌든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던데요. 아마도 날 속이진 않으셨겠죠.”최란은 이제 슬슬 이해가 됐다. 추신에서는 추동현까지도 속이는 것이었다.‘동현 씨가 날 속일 리는 없으니까.”******사무실.통화를 마치자마자 추동현의 우아한 얼굴에 싸늘한 비웃음이 번졌다.추동현은 휴대폰을 툭 던졌다.추성호가 비위를 맞추듯 웃었다.“작은 어머니가 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진 않네요. 최하준에게 그 돈 내주기가 딱 아쉬운 참에 그렇게 큰 돈을 우리에게 턱 내주시다니요, 하하하. 어머니 돈으로 아들에게 비린 돈을 갚다니 최하준이 알면 머리끝까지 화가 나겠어요.”“이 정도면 그 사람도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할 거다.”추동현이 담담하게 말했다.“상관 없어요. 어쨌든 우리 추신의 굴기는 이제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어요.”추성호가 웃었다.“삼촌은 정말 대단하세요. 혼자 힘으로 우리 추신을 여기까지 끌어올리시다니.”“그래, 이제 곧 유인이와 결혼이지? 혼인이 성사되어야 양가가 이제 제대로 한 배에 올라타게 되는 거다.”“그럼요. 앞으로 제가 벨레스를 차츰차츰 먹고 나면 우리 추신이 이제 우리 나라 최
백소영은 그 말을 듣더니 안색이 확 가라앉더니 벌떡 일어 서려고 했다. 여름이 소영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저 따위 소리를 듣고도 참는다고?”백소영이 여름을 돌아보았다.“급할 거 뭐 있어? 일단 다 씻고 얘기하자.”여름이 두 눈을 감으며 등을 기댔다.20분 뒤, 지다빈이 친구 셋을 데리고 목욕 가운을 입고 탕에서 나왔다. 이때 여름과 백소영이 앞을 막아섰다.“어머, 왜 이러세요? 사람 괴롭히시려는 건 아니죠?”지다빈은 당황한 듯했다.뒤에 있던 키 큰 친구가 앞으로 나섰다.“이거 보세요. 바람이 났으면 남편부터 간수하세요, 괜히 여기 와서 이러지 마시고요. 꼭 자기 남자 냅두고 여자한테 와서 이러는 사람들 있더라.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거라고요.”백소영이 싸늘하게 노려봤다.“유유상종이라더니, 똑같은 것들끼리 노는구먼.”여름은 헛웃음이 나왔다.“난 그냥 골드 카드 받으러 온 거예요. 나랑 최하준 씨는 부부니까 배우자의 재산은 우리 공동 소유물이거든. 그러니까 최하준 씨가 당신한테 준 우리 재산에 대해서 나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어요.”“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제 돈은 제가 번 거예요.”지다빈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지다빈, 너 어쩌다가 애가 이 모양이 됐냐? 전에는 애가 그렇게 성실하고 분수도 잘 알더니. 너 18살 생일에는 백지안이 준 다이아 목걸이도 안 받았잖아. 너무 과하다면서.”백소영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언니, 저는 내내 변한 거 하나도 없어요.”지다빈이 눈시울을 붉혔다.백지안 찌릿하고 지다빈을 노려보았다.“됐고, 그 골드 카드 안 내놓으면 경찰 부를 거야.”여름이 한숨을 쉬더니 휴대전화를 꺼냈다.“일단 경찰 와서 당신이 내 남편 카드 가지고 있는 거 확인하고 나면 난 절도라고 말할 수 있어요. 자신 있으면 최하준 씨 부르시던가.”막 신고 전화를 누르는 여름을 보더니 지다빈이 입술을 깨물더니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신고해 보세요. 이건 송 대표님이 저한테 주신 거거든요. 불러서 증
“마사지는 안 받을래. 급한 일이 생각났어. 먼저 가볼게.”여름은 후다닥 옷을 갈아입더니 집으로 차를 몰았다.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하준이 자기 집 소파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자기 마사지 받으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 일찍 왔네?”하준이 노트북을 내려 놓더니 일어났다.“밥 먹었…?”“동성에서 나중에 강여경 본 적 있어요?”여름이 하준의 말을 끊었다.“갑자기 그 사람은 왜?”하준의 조금 덤덤해져서 물었다.“강태환 부부가 수감되고 나서 강여경이 갑자기 실종됐거든요. 혹시 당신이 관련됐던 건 아니에요?”여름이 하준을 똑바로 쳐다봤다.하준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래. 내가 손을 좀 봐줬지, 강여경은….”하준은 갑자기 찌르는 듯 머리가 아팠다.“아아… 내가 어떻게 했지? 어떻게 했는지 생각이 안 나.”여름은 심장이 철렁했다. 그간 하준의 기억력은 내내 문제가 없었는데….“김 실장에게 전화해서 물어 보지. 그 친구는 다 알고 있을 거야.”하준이 상혁에게 전화 걸었다.“어, 혹시 전에 강여경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 나나?”“시골 어디 두메산골에 보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상혁이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여름이 전화를 빼앗았다.“그 동네가 어디에요?”“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집에 들여보내 놨습니다. 평생 눈에 띄지 않을 겁니다.”상혁이 확신에 차서 말했다.“아직 거기에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사모님….”“여러 소리 말고 한번 조사해 주세요.”여름이 꽤나 강경한 말투로 부탁했다.“알겠습니다.”상혁은 마지못해 대답했다.통화가 끝나자 하준이 불만스럽게 물었다.“집에 오자마자 강여경 일은 왜 물어?”“당신이 한 일인데 그럼 당신한테 물어야죠. 왜 기억을 못한담? 그리고, 갑자기 두통은 또 무슨 일이래?”“어? 나한테 관심 가져 주는 거야?하준의 눈이 반짝하더니 손을 뻗어 여름을 안았다.“이럴 줄 알았어. 당신은 날 마음에 두고 있는 거야.”“최하준, 이거 놔요. 마음에 두긴 누가….”여름이
“최하준 씨, 나가요.”괜히 사람 비위 맞추려고 아무 소리나 한다고 생각한 여름은 화가 나서 하준을 걷어 차고는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하준은 다리를 문지르며 따라 올라갔다.여름은 샤워를 하기 전에 옷을 준비하려고 옷장 문을 열었다. 그런데 옷장 안에 남자 옷이 가득했다. 심지어 속옷까지 구색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이제 완전히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누가 당신 물건 여기다 쑤셔 넣으라고 했어요?”“이사를 들어왔으니 옷도 빨고 갈아입을 옷도 있어야지.”하준이 뒤에 서서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여름이 하준의 옷을 마구 잡아 바닥에 집어 던졌다. 하준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마음에 안 들면 버려도 돼. 내일 김 실장 시켜서 새로 사오라고 할게.”“……”눈곱만큼도 흔들리지 않는 하준을 보고 여름도 두 손 두 발을 다 드는 수 밖에 없었다.“좋아요. 이 집이 마음에 드시나 본데. 그러면 이사를 하셔야지. 하지만 이건 내 집이니까 당신은 옆집을 하나 사서 이사를 가시라고, 아시겠어요?”“그건 안 되지.”하준이 눈을 깜빡였다.“당신하고 같이 자려고 이사 온 건데 옆집으로 이사 가는 바보가 어디 있어?”“……”‘와… 남의 집에 가택 침입해 놓고 아주 당연한 듯 저런 소리를 하네?’여름은 더는 말을 섞기가 싫어서 그대로 샤워하러 가버렸다.막 씻고 나와서 보니 하준이 걸레를 들고 부엌을 닦고 있었다. 딱 봐도 대걸레를 처음 잡아보는 사람의 몸짓이었다.여름은 복잡한 마음을 억누르며 벗어놓은 옷을 세탁기에 넣었다.나와 보니 이번에는 거실을 닦고 있었다.10분 뒤 냉장고에 요구르트를 꺼내러 가니 다시 부엌을 닦고 있었다.여름이 미간을 찌푸렸다.“됐어요. 아까 부엌 걸레질 하는 거 다 봤어요. 이제 부엌 그만 문질러요.”“내가 언제 부엌을 닦았다고 그래? 아직 안 닦았는데.”“최하준 씨, 내가 두 눈 뜨고 봤는데, 이제 거짓말을 막 하시네?”여름은 어이가 없었다.“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다고.”하준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그
하준은 전혀 아프지도 않은지 고개를 숙여 여름을 내려다 보았다.“물어. 전에 그런 말 한 적 있지? 꼬집어 주고 싶을 만큼 사랑한다고.”“……”여름은 혀를 깨물어 버리고 싶었다.‘대체 그게 언제 적에 했던 말인데 아직까지 기억을 하고 있어? 하마터면 기억력에 이상 생긴 줄 알 뻔했는데 아니네.’“왜 더 안 꼬집어? 나 아플까 봐?”하준이 아기 고양이를 쓰다듬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여름을 쓰다듬으며 귀에 착 감기는 저음으로 속삭였다.“괜찮아. 난 안 아파. 사랑하는 만큼 실컷 꼬집어.”여름은 마음이 답답했다.이제 꼬집으면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할 것이고 가만 두면 마음이 아파서 차마 꼬집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할 테니 아무리 해도 이 상황에서 말로는 하준을 이길 수가 없었다.“자자.”하준은 여름을 꼭 안은 채로 불을 끄더니 누웠다.여름의 몸에서 나는 채취를 맡으며 하준은 곧 잠에 빠졌다.그러나 여름은 잠이 오지 않았다.배가 고팠다.저녁에 백소영과 나가서 잔뜩 먹고 왔는데 11시도 안 된 시간인데 벌써 배가 다 꺼져서 참을 수가 없었다.다음날.여름이 일어나 보니 벌써 9시였다.처음으로 이렇게 늦잠을 잔 것이다. 여름은 급히 뛰어 내려갔다. 소파에서 신문을 보던 하준이 벌떡 일어났다.“오늘은 내가 된장 끓여놨는데 데워….”“최하준 씨, 내 알람 당신이 껐어요?”여름은 화가 나서 말을 끊었다.“아무리 울려도 안 일어 나길래 내가 껐지.”“거짓말! 난 알람 울리는 순간 바로 깬다고요.”여름은 있는 대로 화가 났다. 자신이 그렇게 알람도 못 듣고 자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막 깨서 부스스한 머리에 눈을 있는 대로 동그랗게 뜨고 화가 나서 발그레해진 여름의 뺨은 정말이지 너무 사랑스러웠다.하준은 웃음이 절로 났다.“어, 당신이 그럴 줄 알고 내가 아까 증거로 다 녹화해 두었지.”영상 속에서 여름은 하준의 팔을 베고 아주 달게 자고 있었다. 잠시 후 알림 소리가 울리자 여름의 눈썹이 꿈틀하더니 이불을 홱 감고는 하준의 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