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원이 반짝이는 윤서의 모습을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무래도 윤서를 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뭐, 보아하니 만난 것 같네.”휴대폰 저쪽에서 여름의 한숨이 들려왔다.“어제 너 찾는다고 왔었거든. 얘기 잘해 봐.”“그, 그래.”윤서도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오랜만이야’하는 눈빛으로 전 남친을 올려다봤다.“왜 서울로 이직했다고 나한테 말 한마디 안 해줬어?”윤상원이 쓴웃음을 지었다.“전화도 톡도 다 차단했더라. 그렇게까지 난리를 치고 아직도 화가 다 안 풀렸어?”“난리를 쳐?”윤서의 마음이 차게 식었다.‘몇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내가 짜증 난 줄 알고 말 몇 마디면 달래질 줄 알았나 보네?’“그래, 그때는 내가 잘못했어. 반성했다니까. 몇 달이 흘렀는데 아직까지 이렇게 화를 내면 어떡해? 돌아가자. 내가 네 부모님 찾아뵙고 사과 드리고 나서 바로 결혼하자.”윤상원이 윤서의 손을 잡았다.윤상원에게는 윤서가 없는 삶이 너무 낯설었다.예전에는 연애가 소중해서 일이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서 윤서를 만나곤 해다.그러나 윤서가 떠나고 나서 가끔 시간이 남으면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공허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허무함이 느껴졌다.그러나 전에는 윤서를 제대로 아껴주지는 못했다. 언제나 곁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았다.‘이제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난 돌아가지 않아.”윤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지금 오슬란에서 일하는데 전망도 좋고.”윤상원은 깜짝 놀랐다.“동성에서도 잘살고 있었잖아?”“……”윤서는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대체 얼마나 나한테 관심이 없었던 거야?’“전에는 내가 오빠 때문에 동성에 있었던 거지.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어. 아직 젊은데 넓은 세상을 더 봐야지. 결혼도 하기 싫어. 내가 왜 이렇게 어린 나이에 결혼이라는 무덤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이제 그만 해라. 그렇게 나하고 결혼하고 싶다더니….”“이제는 결혼 같은 거 하기 싫다니까.”윤서가 말
윤서는 화가 나서 팔짝 뛸 지경인데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돌아보니 그 잘난 송영식이 건방진 미소를 장착하고 다가왔다.“어젯밤까지만 해도 나만 사랑한다더니 오늘은 다른 사람이랑 밀당입니까? 난 가지고 논 거예요, 자기?”송영식이 야릇한 소리에 윤서는 소름이 돋았다.“누구야? 무슨 사이야?”윤상원이 갑자기 튀어나온 남자를 보더니 안색이 확 바뀌었다.경계심에 확 불이 들어왔다. 상대가 자기보다 못하다면 관심을 껐겠지만, 송영식은 키도 크고 기품 있고 카리스마까지 풍기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한눈에도 보였다.윤서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굴리더니 갑자기 송영식에게 팔짱을 꼈다.“내가 깜빡하고 말을 못 했네. 여기 내 새 남친이야. 인사해.”송영식은 갑자기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어? 이게 아닌데? 남친이 아니었나? 더 싸우다 헤어지라고 끼어들었더니 이거 도와준 꼴인가?’“말도 안 돼.도저히 참을 수 없어진 윤상원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이런 식으로 날 자극하려는 거지? 그래, 충분히 마음 아팠다. 우리 이제 그만 하고 집으로 가자.”“우린 이미 헤어졌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윤서는 송영식의 얼굴을 잡아 돌렸다.“봐봐, 얼마나 사람이 우아한가? 품위 있지, 매력 있지 누구나가 꿈꾸는 애인이라고. 예전에는 이 세상에 오로지 윤상원밖에 없는 줄 알고 다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여기 와서 보니까 근사한 남자들이 너무 많은 거야. 이제 더는 윤상원에게 낭비할 시간이 없어.”송영식은 멍한 기분이 되었다.‘아니, 얼마 전에는 나한테 그렇게 욕을 욕을 해대더니?거지 같다며?구리다며?말이 머리를 안 거치고 막 나오는 거야?’“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윤상원이 아무리 해도 못 믿겠다는 듯 서글프게 고개를 저었다.“아직도 나랑 아영이 때문에 화가 나서 질투심을 유발하려는 거라면….”“거짓말 아니야. 난 진짜 이 사람 사랑해. 못 믿겠다면 보여주지.”윤서는 그대로 넥타이를 홱 잡아채더니 발끝을 바짝
방금 전까지 키스하던 여자가 뭔가 더러운 것이라도 묻었다는 듯 입술과 얼굴을 문질러 닦는 게 아닌가.“임윤서 씨….”송영식은 격렬한 분노를 느꼈다.“티슈라도 드릴까요?”윤서가 휴지를 한 장 건넸다. 상처 입은 고양이처럼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송영식이 홱하고 휴지를 채가서 입술을 박박 문질렀다.“더럽게!”“이하동문이네요.”윤서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키스라니 정말 참을 수 없군요.”“……”‘난 지금 네 얘기 하는 거야. 알아듣고 그런 소릴 하는 거냐?’송영식은 화가 나서 애꿎은 휴지에 화풀이를 했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아플 지경이었다.“울긴 뭘 웁니까? 그렇게 아쉬우면 뭐 한다고 그러고 못된 소리를 해요? 너무 작위적인 거 아니냐고?”“여자친구 없죠?”임윤서가 갑자기 물었다.“키스 되게 못 하시던데, 설마 첫 키스였어요?”“아니, 이 사람이 진짜….”팩트를 저격당한 송영식은 임윤서가 자기를 모욕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자 울컥해서 말투가 사뭇 곱지 못했다.“맞나 보네.”폭주하는 송영식을 보니 갑자기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가식 좀 떠는 것도 못 받아 주면 여자친구 못 만든다고요. 알아두세요.”송영식은 이를 꽉 물었다.“이봐요, 방금 내가 좋은 마음으로 도움까지 줬는데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습니까?”“내가 와 달라 그랬나요? 자기가 먼저 와서 남 오해하기 좋게 나더러 ‘자기야~’ 했으면서. 무슨 생각하고 그랬는지 내가 그 시커먼 속을 모를 줄 알아요? 도와주기는 개뿔….”윤서가 콧방귀를 끼고 돌아서는데 막 마중 나온 여름을 만났다.여름은 뒤에 서 있는 송영식을 보더니 흠칫했다.“둘이….”송영식이 ‘허!’하더니 뭔가 잘못한 게 있는 사람처럼 돌아서서 가버렸다.“……”좀 묘한 기분이 들었다.‘내가 잘못 봤나? 어째 송영식에게서 츤데레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저 사람이 왜 여기 있어? 둘이 또 싸웠어? 윤상원은?”“갔어. 이번에는 진~짜로 해어졌어. 이제 다시는 찾아
“항상 4인분을 하는데도 하준 씨가 다 먹어버리던데요.”여름이 냉장고에서 채소를 꺼냈다.이진숙은 희한하다는 표정이었다.“그게 사랑의 힘인가 봐요. 내가 어려서부터 회장님을 모셨는데 진짜 식욕이 없거든요. 좋아하는 게 없는지 하루에 한 그릇도 제대로 안 드시곤 했어요.”“……”사실 서울로 오지 않았다면 여름은 이진숙의 말씀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지금 되돌아 보니 하준은 동성에 있을 때 여름이 해준 음식을 그렇게 좋아했으면서도 말로는 그냥 그렇다고 말했었다.‘어휴, 츤데레.’어쨌거나 여름도 자기가 한 음식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어주어서 좋았다.“이따가 원래 얼마나 잘 먹는 사람인지 보여드릴게요.”여름은 삼겹살을 실로 묶기 시작했다.삼겹살을 삶는 것은 시간이 걸렸다.기다리면서 핸드폰으로 뉴스를 봤다.그러다가 오늘 저녁 검색 수 상위권에 있는 는 헤드라인을 보고 여름은 깜짝 놀랐다.좋지 않은 예감이 불쑥 올라왔다.여름의 심장이 심하게 떨렸다. 기사를 내려 사진을 보았다.어린 남자아이의 사진이 몇 장 있었는데 얼굴 생김새가 완전히 하준의 어린 시절이었다. 그 중 한 장은 하준이 손에 칼을 들고 얼굴과 손이 온통 피에 물든 모습이었다. 어린아이인데도 눈을 미친 듯이 부릅뜬 모습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경찰에게 체포된 사진과 하얀 옷을 입고 정신병원에 수감된 사진도 있었다.-그런 병이 있대. 우리 동네에도 저 병 때문에 살인한 사람 있었어. 완전 무서워-개무섭. 자기 유모를 죽인 거임? 완전 도랏!-아니 왜 안 가둬 두고 정신병원에서 내보낸 거임? 또 사람 해치면 어떡해? 저런 병은 계속 약 먹어야 재발 안 한다던데…-지금 여하그룹 만들었다며? 저런 정신병자가 회사 경영해도 되는 거야?-와이프는 쟤 환자인 거 아나
여름은 후다닥 2층으로 올라가 서재 책상 서랍을 열어 약병을 꺼내 보았다.얼른 검색해보니 그중 2병은 신경안정제와 향정신성 약물이었다.‘그 뉴스가… 진짜야?자기를 돌봐주던 유모를 죽이고 날 그렇게 해쳤으니 앞으로도….’온몸이 떨렸다. 생각도 하기 싫었다.“사모님, 회장님이 안 오시는데 전화해 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이진숙이 올라왔다가 여름의 손에 들린 약병을 보더니 표정이 바뀌었다.“그 약은….”“하준 씨 어려서부터 자라는 거 다 봤다고 하셨죠? 그러면… 정신질환 있는 것도 다 아셨어요?”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이진숙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그런 소리는 어디서 들으셨어요? 그게….”“지금 인터넷에 다 떠돌아요.”여름이 휴대폰을 열어 보여주었다.“이게 다 사실이에요?”이진숙은 사진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누가 이런 걸… 너무 하네. 사모님, 회장님을 믿으셔야 해요. 회장님은 좋은 분이세요.”“하지만 평소에도 성격이 폭력적이고 화도 잘 내고 극단적이잖아요. 그리고 이 약이 그 증거 아닌가요?"여름은 약병을 꼭 쥐고 중얼거렸다.“사실 나는 평소에도 너무 무서워요. 그때 하준 씨에게 다치고 나서는 너무 두렵다고요. 그냥 사실을 알고 싶을 뿐이에요.”“그래요. 말씀드릴게요. 다른 사람들처럼 회장님을 오해하지는 말아주세요.”이진숙이 한숨을 쉬었다.“그게 회장님이 8살 때 발병했어요. 그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을 때예요. 어머님은 도련님(우리 회장님 말이에요.)을 본체만체했고 할아버지는 사업에만 몰두하는 차가운 분이셨죠. 할머니는 도련님을 아껴주셨지만 돌봐야 할 자식도 많고 손자도 많았죠. 게다가 접대에 교제에 바쁘셨으니 도련님 신경 쓸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니 유모가 도련님을 학대하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거예요.”“학대요?”여름은 깜짝 놀랐다.그래요. 도련님은 어렸을 때 불안이 좀 높아서 툭하면 울고불고했거든요. 사실 그냥 어린애잖아요. 그런데 유모는 그게 짜증 났던 거예
“회장님은 지금….”상혁은 초조한 듯했지만 차마 입을 못 열었다.“이모님 말씀 들었어요. 하준 씨 병은 상관없어요.”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여름이 말했다.“회장님이 뉴스를 보셨는데 혼자서 어디로 가셨는지 모르겠네요. 지금 여기저기 찾아보고는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정서가 불안해서 병이 재발했을 것 같아요. 어머니께 가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어머님께요?”“네. 아까 사무실에서 뉴스를 보시고 ‘이건 어머니가 벌인 짓이야’뭐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어머님과 부딪힐 때마다 회장님이 제어를 잘 못 하시는데…”상혁이 초조한 듯 말을 이었다.“지금 회장님 어머니께 가는 길입니다”“주소 보내주세요. 저도 바로 갈게요.”여름은 차 열쇠를 가지고 차에 뛰어올랐다.******개인 별장.최하준의 정신병력 관련 기사를 보자마자 최란은 최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사진 네가 유출한 거 아니니?”“언니,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그 사진은 우리 집에만 있는 거야. 너 말고 또 우리 집에서 누가…?”최란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벌컥 열렸다. 밖에는 보디가드가 쓰러져 있고 최하준이 싸늘한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얘….”“따라오세요.”하준은 거칠게 최란을 끌고 옥상으로 갔다.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에서 최민의 다급한 비명소리가 들려왔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옥상, 산발이 된 최란이 물었다.“얘, 대체 뭘 어쩌려고… 앗!”하준이 갑자기 최란을 옥상 가장자리로 떠밀었다.“내 이전 병력으로 몰아붙이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요.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어쩌다가 이런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을까?”하준이 최란을 꽉 움켜쥐고 소리쳤다.최란은 놀라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동공이 확장됐다.“내가 그런 게 아니야….”“지난번에도 이걸로 날 협박했잖아요? 어머니가 아니면 누가 이런 짓을 합니까?”하준의 두 눈에 검붉은 빛이 돌았다.“그저 눈에 양하밖에 없죠. 최양하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시잖
”하준아, 진정해라. 난 네 에미야.”최란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지금 넌 천륜을 어기는 짓을 하고 있어.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할 거다.”“흥, 손가락질은 이미 받고 실컷 받고 있습니다. 대체 날 왜 낳았나요? 당신은 정말이지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에요.”최하준은 미친 듯 소리쳤다. 최란은 상반신이 뒤로 한참 밀린 채 허우적거렸다.“정말 날 죽일 셈이니? 미쳤구나.”“네, 미쳤어요. 어머니가 날 이렇게 만들었잖습니까?”하준은 다시 흥분했는지 자신을 컨트롤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내닫던 중에 갑자기 강여름이 비명이 들려왔다.“그만 해요!”하준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얼굴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렸다.고개조차 돌릴 수 없었다.자신을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여름을 차마 마주할 수 없었다.‘지쳤어. 이젠 너무 지쳤다고.’하준은 병이 재발하고 상태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이젠 가슴속에 악만 남았다.전에는 그래도 최란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통제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정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이제 다시는 그 하얀 정신병원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그곳은 영원히 하얀 벽만 있는 곳이었다.아무도 하준에게 관심도 애정도 주지 않았다.“이리 와요.”여름이 한 걸음 한 걸음 숨도 못 쉬고 하준에게로 다가갔다.“그만, 더 다가오지 말아요.”하준이 여름에게 고함쳤다.얼굴은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있었다.“난 병이 있어. 당신을 다치게 할 거야. 이제 다 알잖아?”여름은 하준의 그런 낯선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났다.“난 무섭지 않아요.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사람은 없어요. 당신 잘못도 아니에요. 당신에게 상처 준 사람이 잘못한 거지.”“안 믿어. 그만 둬.”하준이 고개를 저었다.“예전에 어머니도 그런 소리로 날 속였었어. 그러더니 날 정신병원에 입원시켜 버렸다고.”최란은 완전히 굳어져 버렸다.“그때 네 상태는 병원에 보내서 치료하지 않으면…”“시끄러!”하준은 갑자기 더 울컥한 듯했다.“당신이 날
최란을 잡고 있던 하준이 손에 힘이 풀렸다. 바닥으로 스르륵 쓰러졌다.여름이 바로 하준을 안았다. 귓가에 가만히 속삭였다.“약속할게. 절대 떠나지 않겠다고. 깨어나면 당신이 좋아하는 거 만들어 줄게요.”잔뜩 찌푸리고 있던 미간이 펴지더니 기절했다. 가만히 잠든 아이처럼. 그 난리를 치던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평화로운 얼굴이었다.최란은 마침내 구조된 사람처럼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한참 동안 혈색이 돌아오지 않았다.최양하가 달려와 최란을 붙잡았다.“제가 이미 정신병원에 연락해 놨어요. 바로 와서 데려갈 거예요.”최란은 깜짝 놀랐다.여름이 화난 눈으로 최양하를 노려봤다.“누가 전화하래요?”불쾌하다는 듯 최양하가 답했다.“그 난리를 치는데 치료 받으러 보내야죠. 그러다 또 사람 죽으면 어떡합니까?”“그래. 정말 너무 무섭더구나.”추동현이 최란의 손을 잡고 덜덜 떨었다.“정말 너무 놀랐다니까요.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어요. 이번엔 당신이었지만, 다음에 발병하면 또 누가 될지도 모르….”추동현은 말끝을 흐렸다. 듣다 보니 최란은 마음이 흔들렸다.“역시 병원에 보내서 치료하는 게 좋겠어. 안 해봤던 것도 아니고….”여름은 이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하준 씨 말 못 들으셨나요? 전에 하준 씨를 속이고 입원시킨 바람에 상처받았잖아요. 어머니로서 아픈 사람을 그 싸늘한 병원에 보내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으세요?”최란의 얼굴에 부끄러움과 분노가 떠올랐다.최양하가 미간을 찌푸렸다.“당신이 뭘 압니까? 형을 가둬두지 않으면 또 사람을 해칠 거라고요. 당신을 해칠지도 몰라요.”“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건 내 문제예요.”여름은 울컥했다.“말을 참 쉽게 하시는군요. 본인이 갇혀보지 않았으니 모르는 거겠지. 어려서부터 부모님 사랑만 받으며 자랐겠죠. 어머님은 좋다는 건 뭐든 다 해줬을 테니까요. 하지만 하준 씨는 어땠을까요? 정신병은 왜 걸렸겠어요? 당신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하준 씨는 혼자서 옷장에 갇혀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