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헛소리야!”강태환이 노발대발하며 벌떡 일어났다.“네 할머니는 병환으로 돌아가셨다.”“그런가요? 부검했으면 사인을 알았을 텐데 화장을 해버려서 증거가 다 사라져 버렸죠.”여름이 비아냥거렸다.“이건 알아두세요. 이대로 그냥 못 넘어갑니다. 할머니의 한, 지금까지 나한테 했던 모든 악행들, 하나씩 다 갚아줄 거예요.”여름은 휙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의장을 나갔다.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이를 꽉 물었다.지금까지 강태환 집안 사람들에게 갖은 모욕과 천대를 받았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의 목숨까지 노렸다. ‘오늘부터 강여름은 강해 질 거야. 이제 나 자신도 지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거야.”******대표실에 도착했다.여름은 노선경에게 회사 중역 자료를 모조리 가져오게 했다.“숨 좀 돌리고 시작하시지요. 먼저 식사부터 하시고요. 식당에 식사 준비를 시켰는데요.”“여기로 가지고 오라고 해줘요.”노선경이 나가자 여름이 차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고마워요. 오늘 차윤 씨가 아니었으면 무사하지 못했을 거예요.”“별말씀을요.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대표님을 경호하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차윤이 침착하게 대답했다.“인사를 하시려거든 최하준 변호사님께 하십시오.”안 그래도 오늘의 굉장한 소식을 최하준에게 한시라도 빨리 알리고 싶었다. 핸드폰을 들어 하준에게 전화를 했다.“쭌, 뭐해요?”“밥 먹습니다.”대답은 아주 간결했다.여름은 기분이 상했다. ‘뭐야….’“오늘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지도 않아요? 나한테 관심도 없나봐. 흥!”“1시간 전 문자로 이미 보고받았습니다.이제 강여름 대표가 화신그룹 이사회에서 활개를 치고 다닐테니, 나는 잘나가는 총수 와이프를 둔 남편으로 편하게 지낼 수 있겠군요.”최하준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이제는 제 지위가 많이 높아져서요, 남자들이 아마 줄을 설 거에요. 내 말 안 듣고 철없이 굴면 확 남편을 바꿔버릴 지 몰라요~.”여름
“조 이사가 어떤 사람인지 나한테 귀띔 좀 해주겠어요?”노선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시작했다.“조 이사는 우리 회사 요직에 앉은지 10년 가까이 된 인물입니다. 재임 기간 중 매출을 10%나 올리는데 기여해서 주주들이 무척 만족스러워 합니다. 해임시키려면 주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거라 예상됩니다.”“알겠어요. 그만 나가보세요.”여름은 말없이 서류를 계속 들여다 보았다.그리고 오후에는 각 부서를 일일이 방문하며 시찰을 돌았다.해 질 무렵이 되어도 중역은 한 명도 코빼기를 보이지 않았다.날이 완전히 저물자 여름이 차윤에게 말했다.“나 좀 도와줘요. 스파이를 색출해내야겠어.”******저녁 7시.여름은 서류를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최하준은 편안한 실내복을 입고 팔짱을 끼고 거실에 앉아 있었다. 실내복인데도 위엄이 넘쳤다. 김상혁이 옆에 서서 정중하게 무언가를 보고하고 있었다.여름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최하준의 입에는 웃음기가 없었다.“아, 강 대표님, 오셨습니까?”“지금까지 회사에서 야근하다 오느라고요. 밥 먹었어요?”최하준의 불편한 심기를 간파한 여름이 선수를 쳤다. 아무 말 않는 주인을 대신해 이모님이 얼른 변명했다.“제가 한 요리는 안 드시잖아요. 꼭 사모님이 한 것만 드시려고 해요.”여름은 말없이 한숨을 쉬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최하준의 어깨에 기대어 앉았다.“쭌~, 나 온종일 얼마나 힘들었다고요. 기운이 쪽 빠져서 움직일 힘도 없어요. 이모님 음식도 맛있으니까 오늘은 그냥 먹으면 안돼요?”“왜, 일이 잘 안 풀렸습니까?”최하준이 고개를 돌려 여름을 바라보았다. 여름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그윽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네, 회사 간부들이 모두 날 무시해요. 아무래도 한 판 거하게 붙어야 할 것 같아요.”든든한 어깨에 기대어 있으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마음이 편안해졌다.최하준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즉시 김상혁에게 지시했다. “내일 화신에 가서 정리 좀 하지. 내일 하루 안에 좀 고
최하준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슬렁거리며 주방으로 들어갔다.여름이 오늘 입은 세련된 오피스룩은 상당히 도도한 느낌을 물씬 풍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간, 그 차림에 앞치마를 두른 채 떡만두국을 끓이고 있는 모습이란… 주방의 은은한 조명이 여름의 머리 위로 비추니 더욱 아름답고, 남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최하준은 뒤에서 여름을 부드럽게 껴안았다. 자신의 얼굴을 여름의 머리에 묻었다. “많이 끓이세요. 이 정도 양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이미 다 끓였거든요.”여름이 심드렁하게 팔꿈치로 최하준의 가슴을 쿡 찔렀다.“빨리 먹고 싶으면 파 좀 쫑쫑 썰어봐요.”최하준은 어이없어하며 대꾸했다.“나한테 주방보조를 하라는 겁니까?여름이 눈을 지긋이 내리깔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어 건네주었다.“뭡니까?”“안에 500억 들었어요. 전에 지불하지 못했던 선임료예요.”여름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따뜻했던 주방의 공기가 일순간에 냉기로 가득차는 것 같았다. 최하준의 눈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닿으면 얼어버릴 듯이.“무슨 뜻입니까?”최하준이 두 손가락으로 카드를 잡고 비아냥거리는 눈초리로 말했다.“대표 자리에 올라 돈이 생겼으니 나와의 관계도 깨끗이 청산하시겠다?”최하준이 화를 내며 힘주어 카드를 뚝 잘라버렸다.“꿈 깨요. 똑똑히 기억하십시오. 이미 계약서에 사인도 했으니 강여름 씨는 뭐가 되든 평생 내 옆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내 말 아직 안 끝났어요.”여름이 부러진 카드를 보더니 발을 탕 굴렀다.“난 빚을 갚고 평등한 관계로 쭌과 사귀고 싶어요. ‘최하준의 여자’가 아니라 파트너가 되고 싶다고요.”“무슨 뜻입니까?”최하준이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여름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소송 의뢰하면서 한 사인 때문에, 쭌 앞에서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느껴져요. 난 내가 당신 정부이고 하인이 된 것 같아요 . 눈치 보고 살살 기어야 하는.이런 관계는 정말 싫
“어물쩍 넘어가지 말고 대답하세요.”최하준의 모습을 보고 대답을 재촉했다. 당황하는 표정을 보니 속이 쓰리고 시큰거린다. 왠지 모를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일단 참고 입만 삐죽 내밀었다.“대답 안 하면 떡만두국 안 줄 거예요.”“한 번 해봤습니다.”여름이 이렇게 질투심이 많은지 몰랐다. 당황스럽다.“전 여친에게 미련이 아직 남아 있나 보네. 얘길 꺼내기 무섭게 얼굴빛이 달라지고.”여름이 쉬지 않고 쏘아댔다. 좋았던 분위기에 얼음물을 확 끼얹은 느낌이랄까.최하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너무 놀라 여름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아, 미안해요.”“과거사는 서로 들추지 맙시다. 강여름 씨도 한선우와 사귀었잖습니까?”최하준이 침울하게 주의를 주었다.일순간 서로 말이 없어지고 침묵이 공간을 지배했다. 여름은 그저 얌전히 불 세기를 높여 떡만두국을 끓였다.최하준은 말없이 카드를 다시 여름의 주머니에 넣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파 좀 썰어달라니까 그냥 갔네? 이 바보!’저녁 식사 후, 여름은 계약서를 내놓으라고 계속 칭얼거렸고 최하준은 하는 수 없이 계약서를 꺼내왔다.“계약서는 찢어도 좋습니다. 하지만 사적으로 양유진과 한선우 같은 이성과 접촉하지 말아요. 밤에는 반드시 정해진 시간 내에 돌아와야 합니다. 너무 늦게 귀가하지 마십시오.”최하준이 침착하게 설명을 이어갔다.“그리고 날 떠나는 것도 불허합니다.”“네, 네, 알겠다고요. 이렇게 매력이 철철 넘치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 어떻게 떠날 수 있겠어요. 드디어 우리 사이에는 남녀간에 신뢰가 생긴 거랍니다.”여름이 최하준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그에게 키스를 퍼부었다.대담한 키스에 기분이 좋아진 최하준이 계약서를 건네주었다.여름은 계약서 조항을 불에 천천히 태워버렸다. 그동안 가슴을 짓눌렀던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마침내 사라진 기분이랄까.저녁 내내 여름은 최하준 앞에서 재잘재잘 활기에 넘쳤다.여름이 전보다 훨씬 더 생기가 넘치는 것을 본 최하준은 계약서
“야! 미쳤어?”강여경이 팔짝 뛰면서 소리를 빽 질렀다. 다시 여름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차윤이 순식간에 오른손으로 강여경의 손목을 꺾었다. 그 상태로 꺾은 손목을 잡고 강여경의 뒤로 가면서 왼손으로 뒤에서 목을 뒤로 당겼다. 강여경은 그대로 뒤로 나동그라졌다. 차윤은 순식간에 바로 뒤로 물러나 얌전히 자세를 취했다.강여경은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더는 어떤 행동도 하지 못 했다. 여름이 가늘게 눈을 뜨고 미소를 지었다.“한 번만 더 내 앞에서 그 예쁜 입 놀렸다가는, 아예 말을 못 하게 될 줄 알아.”차가운 경고를 하고 난 후 입꼬리를 올리며 도도하게 떠났다.강여경은 얼얼한 팔을 매만지며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여름의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강여름, 조금만 기다려. 내가 널 반드시 죽여버릴 테니.******오후 3시.17층.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조 이사가 맨 앞자리에 앉았고 그 뒤로 화신의 중역이 주르르 앉아 있었다.오 부사장이 말했다.“강여름 대표이사가 새로 부임했는데, 첫 주간 미팅에 모시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그까짓 게 뭐라고.”조 이사가 경멸하는 투로 말했다.“애송이가 뭘 알아? 됐어. 회의 진행해. 강 상무, 신규 분양 인테리어를 맡아줄 업체는 정했나?”강여경은 어깨의 통증을 참으며 말했다.“아직 미결정 상태입니다. 인테리어 회사들이 제출한 견적이 너무 높게 책정되어 있어서, 자체 시공팀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디자인 기획안을 가져왔으니 다들 한 번 보시지요.”두툼한 설계도면과 기획안을 보란 듯이 펼쳤다.회의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 눈이 휘둥그래졌다.“이번 기획안은 굉장히 창의적이구먼. 고급스러우면서도 품격이 넘치는데.”“이게 모두 강 상무가 직접 설계한 기획안인가? 정말 대단하군!”“지난번에 분양한 인테리어보다 훨씬 낫군요.”“……”강여경은 겸손한 척하며 말을 아꼈다.“견적서도 안에 들어 있습니다. 제 계산으로는 외부 인테리어 업체에 하청을 주는 것보다 30% 이상 비용을 절감할
“계속합시다. 조금 전까지 논의했던 안건은 뭐죠?”여름이 조 이사의 반응을 무시하며 담담한 얼굴로 회의장 안을 둘러보았다.“방금 인테리어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강여경 상무가 디자인 기획안을 제출했는데 저희 모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오 부사장이 머뭇거리며 디자인 도안을 펼쳤다.강여경은 심장이 툭 떨어졌다. 강여름이 회의에 참석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여름은 분명 그 기획안을 알아볼 것이다.호텔에서의 그날, 여름이 가져왔던 그 기획안 그대로였다. 하지만 강여경이 훔쳤다고 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면 중역의 비웃음을 살 것인데...여름은 디자인 도면들을 뚫어지게 들어다보더니 차윤에게 귓속말로 몇 마디 지시했다.차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밖으로 나갔고 여름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흠… 기획안 정말 훌륭하군요. 출력 시간이 오늘 새벽 1시인데, 강 상무는 낮에 출근한 걸 보니 철야 했나 보군요.”“그렇습니다. 강 상무가 며칠 밤을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일했다고 합니다.”“노고가 많았습니다.”회의실이 강여경을 칭찬하는 목소리로 가득 찼다. 강여경은 어깨가 으쓱해졌다. ‘일부러 늦은 시간에 출력했는데 먹혔군.’“제가 작업한 디자인 기획안 어떠신가요?”“디자인이 훌륭합니다. 그런데 아주 공교롭군요. 내가 보름 전에 이것과 똑같은 기획안을 잃어버렸거든요.”여름의 발언에 갑자기 장내 분위기가 싸하게 변해버렸다.회의 참석자들은 조용해졌다. 강여경은 질새라 억울한 척 연기를 했다.“내가 디자인을 베꼈단 말씀이신가요?”“강 상무 재능을 질투하는 건 아니겠죠?”조영호 이사가 비꼬듯이 말했다.“다들 아시겠지만 여기 두 자매분 사이가 안 좋으십니다. 두 분 사적인 관계를 회사로 끌고 들어와 괜한 힘겨루기를 하시면 곤란합니다.”잠시 모두 숨을 죽이고 여름의 표정을 살피며 눈치를 보았다. 명색이 대표이사인데 그릇이 너무 작은 거 아닌가. 회의장이 점점 술렁거렸다.“여러분들이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여름이 짧게 한숨을 지었다.
조영호의 얼굴빛이 일순간 흐려졌다.“내 능력이 의심되면 어디 재주껏 나를 쳐내보시던가.”조영호가 여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럴만한 깜냥이 안 될걸? 대표이사 자리는 너한테 어울리지 않아.’“그렇게는 못하지요. 조 이사는 회사 이윤 창출에 지대한 공헌을 했는데 당연히 믿죠.”여름이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그런 의미로, 오늘 회의는 조 이사에게 맡기겠습니다.”여름은 수행원들을 데리고 회의장을 나갔다.조영호는 멀어져가는 여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 자신에게는 피해가 오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여름이 나가자마자 조영호의 아내가 갑자기 회의장으로 들이닥쳤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며 남편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갈겼다.“조영호! 이 자식! 나 몰래 밖에서 바람을 피워?!!네가 나랑 결혼하지 않았으면 화신그룹에 들어올 수나 있었을 것 같아?!이날 이때껏 뒷바라지 다 했더니 이제 마누라가 늙었다고 이렇게 배신을 때려? 네가 사람이냐? 너 나랑 오늘 죽자!”“…….”******회의실에서의 파문은 삽시간에 회사 안팎으로 퍼졌다.여름에게 보고를 하던 노선경이 박장대소했다.“대표님께서 조 이사 얼굴을 봤어야 하는데요... 완전히 똥 됐습니다. 화가 나서 와이프를 한 대 쳤는데, 그걸 보고 류 이사가 학을 뗐습니다.”“이제 이건 시작일 뿐이야.”여름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이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지훈 씨, 회사 계열사 중에 언론사가 있죠? 번거롭겠지만 화신그룹 조영호 이사가 바람 피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해 주실 수 있을까요?“하하, 문제없어요. 제수씨가 나서기 어렵다면…”이지훈이 통화를 하는데 갑자기 싸한 느낌을 받았다. 최하준이 떨떠름한 얼굴로 다가와 있는 걸 보고는 난감해졌다.“제수씨, 왜 하준이에게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요?”“쭌이요? 그 사람은 이런 일 이해 못해요. 게다가 조영호는 아주 교활해서 우리 쭌을 귀찮게 할까 봐 걱정이 돼요.”“…….”이해 못한다고? 이런 일을?
“강여름이 좋다면 다 좋은거지. 아참, 강여경은 수감 중이겠군. 잘 대접해 줘라. 수감생활이 불편하지 않게. 하하.”냉랭했던 최하준이 순식간에 여유가 생겼다. 한때 강여름이 감옥에서 똑같은 고통을 겪었었지. 이제는 되돌려줄 차례다.******다음날, 화신의 조영호가 바람을 피워 회사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조영호는 화가 났지만 자신의 명성이 땅에 떨어진 걸 어쩌겠는가.내연녀와 공적인 장소에서 다정한 포즈로 찍힌 사진이 온라인에 가득 돌았고, 와이프 폭행영상까지 모두 유포되었다.온라인에는 매일 수만 건의 댓글이 올라와 조영호에게 욕을 퍼부었다.대표이사의 집무실. 조영호는 분기탱천하여 쳐들어왔다. 그리고는 여름에게 손가락질하며 욕을 퍼부었다.“너 뭐 하자는 짓이야! 회의장 동영상 네가 다 뿌렸지?!”“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여름이 의자에 기대어 앉아 짐짓 애석한 얼굴로 말했다.“이런 분이신 줄 정말 몰랐네요. 크게 실망했습니다. 회사 이미지에 먹칠 해도 유분수지.”“네가 뭔데 뻔뻔하게 입을 놀려! 이게 진짜! 내가 모를 줄 알아? 다 네가 꾸민 짓이잖아. 감히 날 건드렸겠다!”조영호가 성큼성큼 다가가 여름을 발로 차려고 했다. 이때 차윤이 번개처럼 나서 그의 팔을 꺾더니 책상 위에 눌러버렸다. “이게, 이거 못 놔?”조영호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고함을 질렀다.여름이 내선번호를 눌러 경비원들을 불렀다.“이분 밖으로 모셔요. 조 이사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것 같으니 업무는 우선 오 부사장이 맡죠.”“강여름. 두고 보자! 네가 감히 날 어떻게 해보시겠다? 꿈도 꾸지 마!”조영호가 끌려나간 후 오봉규 부사장이 황급히 대표실로 올라왔다.젊고 능력있는 상사를 보니 문득 경외감마저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사 중역은 강여름을 무시했다. 그러나 불과 하루만에 반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조영호의 평판은 시궁창에 떨어졌다.증거는 없지만 강여름이 손을 썼다는 것은 다들 알았다.“오 부사장은 능력도 있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