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님, 혹시 일정 되시면 저희 극장 인테리어 좀 해주시면 안될까요?”“……”불과 며칠만에 온라인 상에 각종 공간 디자인 문의가 빗발쳤지만 여름은 그저 회사 주소만 공개했다.순식간에 도하건축디자인은 온라인에서 아주 핫한 회사가 되었다. 도하에 인테리어를 맡기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도재하는 쏟아지는 일거리에 입이 귀에 걸렸다. 여름을 불러 보너스를 듬뿍 쥐어주었다.“네 덕분에 회사가 무지 큰 프로젝트를 벌써 몇 개나 땄는지 몰라. 복덩이였어 넌! 궁지에 몰렸다가 완벽한 반격이라… 진짜 대단해! 순식간에 인플루언서 디자이너가 되었어. 지금 전국적으로 강여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다! 핫핫하!”“선배가 절 믿어주신 덕분이죠.”여름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강여경의 집.강여경은 분해서 피를 토할 지경이다.오늘 하루만 해도 자신을 욕하는 댓글이 수천 개나 달렸다. TH디자인그룹의 홈페이지까지 폭탄 맞은 듯이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았다. 전에 강여경과 친하게 지냈던 재벌가 지인들도 모두 몸을 사리고 강여경과 거리를 두었다.일이 이렇게 전개되는데 어떤 명문가 자제가 말이라도 섞겠는가.이정희는 애가 닳았다. 그렇다고 딸을 뭐라 할 순 없고 애꿎은 남편만 잡았다. “당신이 내놓은 그 엉터리 아이디어 때문에 우리 딸만 죽게 생겼다고요!”“공사 중인 별장 정원에 CCTV가 설치되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강태환이 분에 못 이겨 노발대발 했다. 강여름! 호락호락한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었다. 이제는 제대로 쓴 맛을 보여 줄 참이다.이 때, 이민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큰 일 났어요! 루브린그랜드호텔에서 불이 났어요!”강태환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루브린그랜드호텔이면 TH디자인그룹이 인테리어를 맡고 있는 5성급 호텔이다. “어떻게 된 거냐? 현재 상황은 어떤데? 화재 진압은?”“화재는 다행히 진압되었지만 세 개 층이 전소되었습니다. 주화그룹 측에서 알고 난리가 난 듯합니다.”이민수가 이리저리 횡설수설했다. 그러더니
여름이 동료들과 함께 퇴근준비를 마치고 회식 장소로 옮기려고 할 때 경찰관 몇 명이 갑자기 들이닥쳤다.“어느 분이 강여름 씨입니까?”직원들이 서로 쳐다보자, 여름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전데요…”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찰관 두 명이 양쪽에서 팔을 휘감았다.경찰 한 명이 사무적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오늘 새벽 루브린그랜드호텔 화재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강여름 씨를 체포합니다. 강여름 씨는 저희와 경찰서로 가주셔야겠습니다. 신고에 의하면 얼마 전까지 TH디자인그룹 공사 책임자였던 분이 강여름씨라고 하는데 맞습니까? 조사에 순순히 응해주시길 바랍니다.”여름의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것 같았다.“그건 제 책임이 아니에요. 제가 책임자에서 물러난 것이 벌써 두 달이 넘었어요! 회사에서 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거라고요!”“여기서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리베이트를 받고 무허가 전기설비 업체를 선정했다는 증거를 TH그룹 측에서 이미 제출했습니다. 여기에서 변명하지 마시고 경찰서로 갑시다.”경찰관들이 강제로 여름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어떻게 알았는지 1층 로비에는 벌써 기자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뭐가 스타 디자이너야? 리베이트 준 업체에서 전기설비를 불량으로 했다가 화재가 발생했다더군.”“오 마이 갓! 도하건축디자인에 인테리어 의뢰하고 선금까지 지급했는데 얼른 환불 받아야겠군.”“나도 그래야겠어. 우리 건물에도 불나면 어떡해!”“……”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도하에 지불했던 금액을 환불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심지어 공사중인 고객들도 불안에 떨며 찾아와서는 이것저것 따져 물었다.도하건축디자인의 기업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경찰서 조사실.좁고 캄캄한 공간에 전등 하나만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여름은 눈이 부셔 현기증이 났지만 이를 악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전 이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니까요. 당시 저는 디자이너였고 이민수 씨가 프로젝트 매니저였어요. 모든 자료는 그 사람이 관리했
수사관의 지시로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여름은 유치장에 갇혔다.좁은 유치장 안에는 이미 7-8명 정도가 앉아 있었다. 하나 같이 굳은 얼굴로 여름을 노려보았다.여름이 자리에 앉자 건장한 체구의 여자가 물통을 들고 다가와 침대에 물을 끼얹었다. “뭐 하는 거예욧?”여름이 쉰소리를 내자 몰골이 흉악한 여자들이 주변을 둘러쌌다.“왜, 뭐! 해보자고?”몸집이 큰 여자가 소매를 걷어 올리며 음흉하게 웃었다.“내가 친절하게 미리 알려주는데 말이야… 저번에 소리 질렀던 것은 이미 내 손에 작살이 났어. 알아?”“죄, 죄송합니다. 실컷 뿌리세요…”‘여기에서 분란을 일으켜선 안 돼. 이 사람들이 여기에 있을만 하니 여기 있는 걸 거야. 참아야 해.”수감자들은 여름을 가만히 두지 않을 작정인지 계속 시비를 걸었다.“어떡하지? 미안해도 소용없어. 나는 너 같이 예쁘장하게 생긴 것들이 제일 구역질 나!”난데없이 달려들어 여름에게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해댔다.여름이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입이 틀어막혔다.하도 두들겨 맞아서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희미해졌다.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어떤 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더 세게 때려! 죽을만큼 패도 아무도 우리한테 뭐라 하지 못 해.”“그러게… 진작에 아무나 건드리지 말고 두루두루 잘 보였으면 좀 좋아?”“……”‘이번에는 또 누구야?강여경? 강태환?하… 또야?’전에는 마음이라도 아팠지만 지금은 이미 무감각해졌다.‘이제 누가 날 살려줄 수 있을까? 최하준? 그 남자와는 이미 끝났는 걸. 그럼, 윤서? 윤서는 주화 그룹의 상대가 안 돼…’******윤서는 여름이 경찰에게 잡혀가 수감 중이라는 뉴스를 들었다. 헐레벌떡 경찰서로 달려갔다.입구에서 변호사와 함께 나오는 한선우와 마주쳤다.“어떻게 여기에 있어요?”찌질한 놈을 다시 보고 있으려니 열이 머리 끝까지 뻗쳤다.“마침 잘 왔네. 경찰한테 가서 설명 좀 해봐. 여름이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요즘 돈이 없어서 쩔쩔매는데 돈을
윤서는 허탈했다. 주화 그룹은 서열 1, 2위를 다투는 대기업이 아닌가. 하필 그런 주화 그룹을 건드리다니...“그, 그럼 어떡해 해?”“내가 아까… 외삼촌한테 연락했어.”한선우의 얼굴에 괴로움과 무기력함이 묻어났다. 아무리 연적이라 상대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강여름을 구하려면 외삼촌이 아니면 안 된다.“인맥이 넓으니까 무슨 방법이 생길 거야.”“그래.”윤서는 여름이 전에 한 말을 기억했다.양유진이 여름에게 관심이 있다고… ‘이렇게 다급한 사안이니 선우 오빠네 외삼촌이 의지가 될 거야.’한선우를 보고 있자니 윤서의 가슴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이참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냈다.“약혼녀한테 차이니까 우리 여름이가 생각나나 봐? 여름이가 그렇게 망신을 줬는데도 이렇게 오는 걸 보면.”“내가 잘못했지. 정신이 나갔었어.”윤서가 코웃음을 쳤다. “우리 여름이… 유치장 안에서 얼마나 힘들까… 걔가 저번에 폐가에 감금된 이후로 트라우마가 생겼단 말이야. 오늘 밤 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빼내야 해.”한선우가 어리둥절했다.“폐가에 감금이라니 무슨 말이야? 강 회장 집에는 먹을 거 입을 거 좋은 건 다 있잖아.”“왜 인제 와서 뒷북인데? 인터넷에 여름이 병원 진단서 게시된 거 못 봤어? 거기 감금돼서 학대 받아 죽을 뻔했잖아!”윤서는 벌레 보듯이 한선우를 노려보았다."폐가에 감금돼서 사흘 밤낮을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갇혀있었어. 창문도 모두 못질되어 있고 빛도 한 줄기 들지 않는 곳에서... 상한 음식에 이불도 없고 옷도 없고 전기도 없고 물도 없고 심지어 핸드폰도 없어서 연락도 안되고 죽을 뻔 했어. 다행히… 다행히도 우리가 구해서 병원에 데려갔는데 숨만 간신히 붙어 있더라고!”한선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강태환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강태환과 이정희, 그리고 강여경 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간담이 서늘했다.‘이 사람들이…친 딸인데, 친 동생인데 사지에 몰다니 사람도 아니다. 무섭다.어쩐지 여름이가 나를 그
양유진이 말을 이었다.“몇 년 잠잠하더니 얼마전에 동성에 입성했어. 최하준 변호사에게 일을 의뢰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란 소문이 있어. 나도 얼마 전에 비즈니스 관련해서 사건을 의뢰하려고 수백억을 제시했는데도 거절당했어.최 변한테 거절당한 사람들 아주 많아. 잘 나가는 기업 총수, 정계 재계 인사들… 수임료 액수는 안중에도 없어.”“……”윤서는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양유진 대표가 말하는 최하준이 그 최하준 맞지?우리 여름이의 남편 이름이 최하준이었던 거 같은데… 그 사람도 변호사였지 아마?여름이 말로는 남편 직업 수준이 여름이와 비슷하다고 했는데… 이상하다?남편이 그렇게 거들먹거리는 건 이지훈이라는 잘난 친구를 두어서 그런 거라던데…오 마이 갓! 여름아!!! 우리는 도대체 어떤 인간을 건드린 거냐!어떻게 두 달이 넘게 같이 살면서 전혀 몰랐냔 말이다!’“내가 최 변호사한테 가서 부탁을 해 볼게요.”양유진이 말했다.“아…”윤서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양 대표님이 말씀하신 최하준 변호사 말이죠… 저랑 친분이 좀 있거든요. 제가 직접 부탁을 드려볼게요. 만약 제가 부탁해도 안되면… 양 대표님이 가셔도 소용없을 거예요.”‘양유진이 간다고 쳐.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와이프의 남자친구가 정식 남편인 자신한테 와서 자기랑 이혼소송 중인 와이프를 구해달라고 한다면…?그 사람이 이혼하려는 와이프를 구해주려고 할까?구해주기는커녕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하진 않을까?’그러니 양유진이 가면 안된다. 절대로!“최 변을 아세요?”윤서를 바라보는 양유진의 눈빛이 달라졌다.한선우도 깜짝 놀랐다.“최하준 변호사는 나도 들어는 봤는데… 윤서, 너, 어떻게 아는 사이야?”윤서가 무안해 하며 말했다.“잘 알지는 못해요. 제 친구가 그 분하고 많이 친해요...”“윤서 씨 친구 분 대단한 분이신가 봐요.”양유진이 탄성을 질렀다.“그럼 우리는 좋은 소식만 기다리면 되겠네요.”“……”‘그래, 내 친구는 경찰서에서 너희들이 구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윤서는 그 가슴팍을 보고 움찔했다. 남자가 턱을 매만졌다. 섹시한 눈에서 매혹적인 웃음이 흘러나왔다.“흥, 여자를 불렀나? 이 정도면 반반한데?” 윤서는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아무래도 잘못 찾아왔나 싶었다.그러나 안에서 흘러나오는 카드 치는 소리를 듣고 떠보듯 물었다.“최하준 씨 찾아왔는데, 안에 있어요?”남자는 흠칫 놀라더니 안을 향해 외쳤다.“별일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풍류남이 되셨어?”“최하준 씨 와이프 친구예요.”윤서는 기분 나쁘다는 듯 문을 가로막은 사람을 밀치고 들어갔다.안에는 남자 셋이 앉아 있었는데 다들 아우라가 보통이 아니었다. 담배를 문 남자가 말했다.“영식아, 잘 지키랬더니 사람을 막 들여보내면 어떡해?”“내 잘못이 아니지.”송영식이 빈자리에 앉았다. 커피를 마시며 흥미롭다는 듯 윤서를 위아래로 훑었다. 주빈석에 앉은 최하준은 손에 카드를 들고 아무렇지 않게 윤서를 한 번 보더니, 테이블에 카드를 한 장 던졌다.“저 사람 치워.”“잠깐만요.”이거저거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윤서가 바로 앞으로 나섰다.“여름이가 부모님에게 모함을 당해서 지금 경찰서에 잡혀 있어요. 하준 씨가 아니면 아무도 못 꺼내요. 경찰한테 들었는데 3일이면 사건 처리해서 형을 받을 거래요”“나랑 무슨 상관입니까?”최하준이 싸늘한 표정으로 뱉었다.”“당신 와이프잖아요.”최하준이 갑자기 입 한 쪽 끝을 올리고 웃었다.“뭘 잘못 아셨나 본데, 그 사람은 양유진 씨 여자친구입니다. 죽든 살든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어서 나가주시죠.”그런 양심도 없는 쓰레기 같은 여자를 떠올리니 최하준은 미칠 듯이 화가 났다.“뭐, 나가라네. 그만 나가시죠.”영식이 다시 윤서를 끌고 나갔다.윤서는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을 두 손으로 꽉 붙들었다.“아니에요. 우리 여름이는 양 대표랑 사귄 적이 없어요. 그날 양 대표가 상황 빠져나가느라고 그냥 기자 앞에서 그렇게 말한 것 뿐이라고요. 여름이가 사랑하는 건 당신이에요. 걔 마음속
‘크흡, 미안하다, 여름. 널 구하려니 어쩔 수가 없구나. 이 모든 헛소리를 용서해 주렴.일단 풀려나고 보자. 그다음에 네 살길은 네가 찾아가려무나.’왁자지껄하던 룸에 정적이 흘렀다. 툭 하고 담배 떨어지는 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릴 지경이었다.하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테이블에 놓인 카드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누구도 하준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파도가 일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여름이 날 포기한 적이 없다? 하긴 날 사랑한다면서 자존심마저도 버렸던 사람이지. 그렇게 쉽게 날 포기했을 리가 없어.’마음이란 이렇게나 무너지기 쉬운 것이었다.더 사랑할수록 아프다고 하지 않던가.그러나 여름은 사람을 홀리는 매력을 자유자재로 흘릴 수 있다는 점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일단 가보십시오.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100년은 족히 지난 듯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뒤에야 최하준의 무거운 입이 천천히 열렸다.“무슨 생각을 더 해요? 여름이가 벌써 8시간을 갇혀있었어요.”“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8시간이 그렇게 긴 시간입니까?” 최하준이 다시 카드를 손에 쥐었다.“안 나가겠다면 강여름 씨는 80년을 갇혀 있게 될지도 모르지.”윤서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최하준의 말 속에 일말의 희망이 비치는 것 같았다.윤서는 깨끗하게 그 자리에서 물러나 나왔다.문이 닫히자 이주혁이 화려한 손기술로 카드를 섞었다. 흥미진진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정말로 구하러 가게?”하준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아무 말이 없었다.송영식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아까 그 사람 영악해 보이던데 거짓말일지도 몰라.”“그럼 그 사람이 했던 말 중 어떤 부분이 거짓인 것 같아?”최하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은근히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송영식은 알 수 없는 싸늘함을 느꼈다. 말문이 막혔다. 그 사람은 애초에 널 사랑한 적이 없다든지, 네 와이프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든지 하는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죄다 매를 벌 소리
조심스럽게 여름을 뒷좌석에 태우고 최하준은 얼른 젖은 옷을 벗겨냈다.여름은 무의식적으로 막으려고 했다. 눈에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했다.“가만있어요. 조용! 좀 봅시다.”최하준은 한 손으로 여름의 어깨를 누르고 다른 손으로 옷을 젖혔다. 뽀얗게 빛나던 우윳빛 피부가 온통 울긋불긋 피멍투성이였다. 보기에도 참혹했다.최하준의 얼굴이 극도로 험악해졌다.여름은 그저 부끄러워서 이거저거 생각할 처지가 아닌 데다 보여줄 만한 몸 상태도 아니었다.“아직 다 못 봤어요?”여름이 부끄러워서 몸을 틀었다. 그러나 상처 부위에 자극이 가면서 통증에 얼굴이 일그러졌다.“가만히 좀 있어요.”최하준은 그대로 여름의 젖은 옷을 다 벗겨내더니 자신의 스웨터를 입히고 코트로 여름을 감쌌다.최하준이 움직이면서 상처가 건드려질 때마다 여름은 ‘스읍’하면서 급히 숨을 들이켰다.“많이 아픕니까?”최하준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그 아픔 하나하나가 깊이 새겨져서 교훈을 좀 얻었길 바랍니다.”다음부터는 함부로 곁을 떠나지 않도록, 자신의 곁이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뇌리에 각인시켜주고 싶었다.여름은 남한테 당하고 다니는 수치를 기억하라는 줄 알고 이를 악물면서 속으로 분을 삭였다.최하준은 여름이 말귀를 알아들은 것 같아서 적잖이 안심되었다.뒷문을 열고 나가면서 윤서에게 말했다.“친구가 잘 살펴줘요. 난 이제부터 운전해야 하니까.”******차는 번화한 도시의 새벽길을 달렸다.여름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윤서에게 조그만 소리로 물었다.“왜 하필 저 인간을 끌고 왔어?”윤서가 여름을 흘겨봤다.“야, 너 이번에 주화그룹 건드린 거 알아, 몰라? 온 동성에 양 대표고 선우 오빠고 널 보석 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 없더라. 그러니 어떡해? 최하준 씨 찾아갈 수밖에.”“그러니까 하준 씨가 지훈 씨를 찾아가서 도와달라 그랬어?”그제야 무슨 일인지 파악이 됐다.“지훈 씨도 널 위해서 주화그룹이랑 맞설 정도는 아니야, 알겠냐? 네가 지훈 씨 마누라도 아닌데.”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