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정은 가슴을 부여잡고 일어섰다. 오늘 밤에 받은 자극은 몇 년 전에 받은 것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것 같았다. 더 이상 밥이 넘어가지 않았고, 신은지는 이를 보자 그녀를 부축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난 혼자 있고 싶어. 너희들도 식사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난 이런 일을 감당하기 너무 힘들구나.”그녀는 아줌마에게 손을 흔들면서 얘기했다. “청첩장 쟤들에게 줘요.”아줌마는 거실에서 약혼식 청첩장을 신은지에게 주고 주방으로 갔다. 사실은 박태준이 그녀의 진짜 고용주이지만, 두 사람이 현재 이혼 얘기까지 오갔기에, 아줌마는 청첩장을 박태준에게 줘야 했다. 하지만 소리 없이 쓴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소름 끼쳤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신은지가 청첩장에서 신부 이름을 보니, 눈살을 찌푸렸다.그녀와 대학 동기였고, 그것도 같은 과였다.박태준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에 있었고, 그 모습을 보자 물었다. “원수 있어?”“그건 아니지만, 사이 좋은 건 아니야.”1등과 2등, 라이벌, 천적.“사모님 원수는 정말 많네. 청첩장도 원수 결혼 초대장이니.” 박태준의 말속에는 비아냥이 가득했다. “하지만 네 그 성격에, 덜렁대고 모자라고 푼수인 진유라 외에 누가 또 당신과 친구가 되겠어?”신은지는 박태준이 전예은을 목욕한 것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인신공격하는 것이라고. 윗사람에게 그렇게 못하니, 그 모든 분노를 그녀에게 퍼붓는 것으로 생각했다.그녀는 내키지 않은 듯 입을 삐죽거렸다. 이 인간쓰레기, 좀생이.어차피 그녀는 전예은과 박태준 사이를 갈라놓을 생각이 없었기에, 이 일에 시간을 허비하기 싫었다. “어머님 앞에서 이젠 연기하지 않아도 돼. 당신 시간 내, 가서 이혼 서류 접수하게.”박태준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느긋하게 얘기했다. “차에서 오면서 내가 하는 얘기를 이해하지 못했어? 내가 당신을 데려온 것은 어머니께 설명해 드리라고 데려온 것이지, 어머니를 자극하라고 데려온 것은 아니야. 당신 내 요구대로 하지 못했는데,
양설아의 남편은 경씨 가문의 차남이다. 경씨 가문은 재벌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돈 있는 집안이고, 다른 사람에게 수모를 당한 적은 없었다. 하물며 바람피우는 것과 같이 민감하고 수치스러운 일은 더더욱 당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그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당신은 설아의 대학 동기로 아는데, 진심으로 축하해주러 오셨으면, 저희는 환영이지만, 만약 소란 피울 생각이라면……”말하면서 곁눈질로 화원 입구를 한번 보았다. 그리고 잠시 멈췄다.그는 바로 표정을 바꾸고, 신은지와 더 이상 시간 낭비 하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입구에 주차한 차를 향해 걸어갔다. “박 대표님.”그의 약혼식이 곧 시작할 시간인데 지금까지 입구에서 기다린 것을 보니, 박태준을 기다린 모양이다.박태준이 차에서 내리자, 차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신랑을 보았고, 옷을 정리하면서 얘기했다. “이렇게 격식을 차리지 않으셔도 됩니다.”그는 박태준의 말 때문에 태도를 바꾸지 않았고, 약혼식장으로 바로 안내했다.“안으로 들어가시지요.”오늘 같은 날에는 정장 차림을 한 신랑이 주인공이지만, 박태준이 오니, 그저 옆에 있는 들러리 같았다.양설아는 신은지가 그쪽을 보는 것을 보고, 째려보면서 웃었다. “네가 무슨 신분인데, 감히 허튼 생각을 해. 네가 보는 사람은 박씨 가문의 유일한 승계자야. 재경그룹 현재의 총수. 대학 동기라서 충고하는데, 허튼 꿈은 꾸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아……”그녀는 갑자기 입을 막으면서 경악했다. “잊을 뻔했네. 너 대표님 침대에 스스로 올라갔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박씨 가문 사모님 자리는 넘보지 않는 것이 좋아.”신은지와 박태준의 결혼은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고, 얼마 전 강혜정의 생일 파티에서 공개했으나, 아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양설아.” 신은지는 가까이 가면서 입꼬리를 쳐들고 얘기했다. “경씨 가문 둘째 도련님도 네가 겨우 잡은 남자라며?”양설아는 그녀가 손을 든 것을 보고, 두려워서 뒤로 물러섰다. “너 뭐 하는 짓이야? 여긴 경씨 가문이야. 네가 감
신은지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박태준을 자극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처럼 크게 화내지 않았고 그저 그녀를 바라보면서 태연하게 얘기했다. “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당신을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해?”“??”이 남자 또 발병했어?그녀는 입을 삐죽 걸리고 경계하듯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누가 저 좀 살려주세요, 여기 변태 있어요.그녀의 이런 모습을 본 박태준의 안색은 금세 어두워졌다. “당신 무슨 뜻이야?”신은지는 손에 들고 있던 접시를 상위에 놓으면서 얘기했다. “당신과 최대한 멀리 있으려고 그래. 괜히 당신의 그 정신병에 전염되어서 나도 당신처럼 정신 나간 소리를 할까 봐 걱정돼.”그녀는 돌아서서 화장실로 향해갔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몇몇 사람이 그녀의 앞을 막아 나섰다.“신은지, 대학 동기인데 우리도 옛날 추억 얘기해야 하지 않겠어?” 앞장서서 그녀의 앞을 막아선 사람과 그 뒤에 있는 몇몇은 양설아의 절친이고 그녀와는 대학 동기이였다. 하지만 같은 과는 아니었기에 서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신은지는 눈썹을 치켜들고 냉랭하게 웃으면서 얘기했다. “너희들은 양설아를 도와 동영상을 가지러 온 거야?”동아연은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그녀를 보면서 얘기했다. “설아는 좋은 뜻으로 약혼식에 너를 초대했는데, 넌 고마운 줄도 모르고 헛소문을 퍼트려 설아를 모함하면 되겠어? 어서 그 동영상 내놔.”“내가 헛소문을 퍼트린다고 하면서 동영상을 내놓으라 하고, 귀 막은 방울 도둑도 너희들처럼 안 해. 양설아에게 가서 전해. 만약 10분 뒤에도 대중 앞에서 나한테 사과하지 않으면, 설아 신랑을 찾아갈 예정이라고”그녀는 하품했다. 만약 강혜정의 부탁이 아니었으면 그녀는 여기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문 것은 그나마 그녀와 대학 동기였기에 체면을 봐서 자리를 지켜준 것이다.신은지는 화장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동아연을 스쳐 지날 때 갑자기 상대방이 그녀를 잡았다.“좋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
박태준은 흥미롭게 신은지를 보았다. “그럼 어디 한번 말해봐.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그녀는 눈을 흘겼다. 당신이 뭐 하려는지 귀신이 알겠지.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신은지는 걸어 나갔고 박태준을 지날 때, 남자의 담담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저 여자에게 사과받고 싶은 것이면 이렇게 일을 복잡하게 할 필요 없어.”신은지는 머리 돌려 남자를 보았고, 남자는 ‘어서 부탁해’라고 얘기하라는 거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그녀는 턱을 치켜들고 도발했다. “당신 허튼 꿈 깨.”“신은지.” 박태준이 그녀를 보는 눈빛은 당장에라도 그를 찢을 듯한 눈빛이었고, 이마의 핏줄은 통제가 안 되고 있었다. “당신 교양은 개에게 줘버렸어?”신은지는 오늘 짙은 색의 옷을 입고 있어 오관과 윤곽이 더욱 뚜렷해 보였다. 전예은 일행들은 모두 쫄아 벽 구석진 곳에 쭈그려있었다. 오직 신은지만이 박태준 앞에 나설 수 있었다. "너란 개한테 먹혔잖아."말을 마치고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고 바로 로비 방향으로 걸어갔다.동아연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는 박태준을 보면서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혹시 신은지 대신 화풀이라도 하려는 것인가?분명 맞은 사람은 난데!그녀는 신은지 저년을 무릎 꿇리고 사과받겠다고 얘기했었는데, 미처 시행하기 전에 박태준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녀는 조심스레 다가와서 그의 비위를 맞추며 물었다. “박 대표님 혹시 신은지 아십니까?”조금 전 상황은 누가 봐도 두 사람 사이가 보통 사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박태준이 그녀를 상대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지만 남자는 담담하게 그녀를 한번 보고 존귀한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은 내 아내이야.”동아연은 순간 놀랐다. 아내?신은지가 박태준의 아내?! 이럴 수가!그녀가 진짜 박 대표 사모님이면 스스로 아미 신분을 자폭하지 않았을까?그렇게 되면 설아에게 대중 앞에서 사과하라고 하는 건 물론 경씨 가문에서 이 약혼식을 취소하라고 해도 그건 그저 말 한마디면 충분할 일
양설아는 사회자 손에서 마이크를 건네 받았다. 치욕과 수치심으로 그녀의 얼굴은 붉어졌고 온몸의 신경마저 화끈거리는 듯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손으로 힘껏 마이크 손잡이의 튀어나온 부분을 위로 밀었다.이런 장소에서 공개적인 사과를 한다니, 경씨 가문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행동과 다름없었다. 그녀는 무표정인 경씨 가문 둘째 도련님의 얼굴을 보았고 하객이 간 후 어떤 결과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사과하지 않으면……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결과는 더욱 비참할 것이다!“저는 양설아입니다. 오늘 저는 이 자리를 빌어 신은지에게 사과하려고 합니다……”신은지는 무표정으로 이 장면을 다 지켜보았고, 박태준이 신경을 안 쓰는 틈을 타 손을 빼고 아무 말도 없이 돌아서서 주차장으로 향해 걸어갔다.오늘 밤 그녀는 혼자 운전하고 왔다.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박태준임을 알고 신경 쓰지 않았다.조금 전 장면을 목격하고, 조금이라도 눈치 있는 사람은 모두 떠나가기 시작했다.경씨 가문에는 주차장이 하나뿐이기에 같은 길이라고 해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차가 주차된 곳까지 따라왔다.신은지는 비아냥거리며 눈썹을 치켜들었다. “박 대표님 차도 여기에 주차했나 보네?”“난 술 마셨어, 운전하지 못해.”박태준은 앞에 있는 겨우 2,000만 원 조금 넘는 차를 보며 말은 안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경멸하는 눈빛은 보이고 말았다.얼굴에는 ‘봐, 나를 떠나더니 꼬락서니 한번 좋다!’라는 식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신은지는 어깨를 으쓱하고 손을 폈다. “참 유감이네. 어차피 여기서 신당동까지 멀지 않으니, 당신은 걸어서 가면 되겠네.”말을 마치고 그녀는 더 이상 그와 얘기하지 않고 차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앉았다.차에 시동을 걸자 박태준은 바로 조수석의 문을 열고 앉아서 눈을 슬쩍 감으면서 얘기했다. “신당동으로 가.”당연하다는 태도로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신은지는 눈을 동그
박태준은 무표정으로 신은지를 보았다. “그럼 지금 내가 예은에게 전화할 필요가 없는 건가? 유성을 위해서 당신 참 어떤 억울함도 감수하는군.”그는 그녀에게 손을 뻗었고, 그의 차가운 눈을 보는 순간 신은지는 그가 자신을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그녀는 뒤로 살짝 누워서 박태준의 손을 피했고, 그의 손은 허공에서 멈칫했다가 손가락을 굽혔다. “이혼은……”사람의 속을 긁는 듯 그는 말하다가 멈췄고, 신은지는 그를 보면서 천천히 입술을 오므렸다.남자는 담담하게 그녀를 보면서 점잖게 악랄한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얘기했다. “불가능해.”신은지는 이를 갈았다, “……”이 죽일 놈의 자식!그녀는 원래 쌓인 것이 많았던 터에 그에게 이렇게 농락당하자 그 분노는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을 정도에 도달하여 바로 폭발했다!“내려.”박태준은 느긋하게 눈을 감았다. “운전해. 나한테 빚진 돈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 부부로서 의무가 없더라도 대가로 운전 좀 해주는 거는 당연하다고 생각해. 채무자가 채권자보다 더 흉악하면 앞으로 무서워서 누가 감히 돈을 빌려주겠어.”신은지는 턱을 들고 차갑게 웃으면서 차에서 내려서 조수석의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박태준을 차에서 끌어 내렸다.남자는 힘도 세고 체중도 더 나가기에 쉽게 끌려내릴 수가 없을 텐데, 하필 박태준은 쉽게 신은지에 의해 차에서 끌려 내렸다.그녀는 힘껏 차 문을 닫고 다시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대문 방향으로 운전해서 갔다.오늘에는 약혼식에 참석하러 왔기에 옷을 얇게 입었다. 밤바람은 칼날처럼 매서웠고 피부에 닿으면 따끔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그저 단순히 차에서 내려 사람을 끌어 내리고 다시 차에 오른 몇분만에 그녀의 손가락은 얼었고, 에어컨 바람을 한참 쐬고 나서야 손이 따뜻해졌다.그녀는 백미러를 보았고, 박태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그윽한 눈으로 그녀가 있는 방향을 보고 있었다.설마 얼어 죽지는 않겠지?이 생각이 신은지의 뇌리를 스친 후 다시 금방 사라졌다. 경씨
병실에서 박태준은 침대에 기대어 전화하고 있었다. 소리를 듣자 시선은 신은지에게서 스쳐 지나갔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연우가 당신에게 전화했어?”신은지는 화가 나서 눈을 흘겼다. “당신이 곧 죽는다고 전화했어. 당신 치료 포기 동의서에 서명하고 바로 화장한다고 했어.”그녀는 들어가서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그녀는 의사 사무실을 지나오면서 들어가서 물었었다. 공복에 술을 마셔서 유발된 위경련이었고 완화되면 바로 퇴원할 수 있었다.박태준은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침대에 놓았다. “나 배고파.”신은지는 그를 몇 초 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을 꺼내어 배달 음식을 시키려 했다. 그저 어르신에게 어서 식사 대접을 한 후 통증이 완화되면 각자 집에 돌아가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녀는 집에 돌아간 후 또다시 고연우에 의해 병원에 불려 오기 싫었다.그녀는 염치없는 사람은 아니다.박태준은 그녀를 조용히 보았다. “배달 음식을 먹으면 난 아마 또 다시 응급실에 들어가서 치료받게 되겠지. 당신은 환자를 이런 식으로 보살피는 거야?”약을 먹었기에 위를 잡아당기는 듯한 격렬한 통증은 조금 나아지는 듯했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가끔 통증이 느껴졌다.신은지는 매섭게 그를 흘겨보고 갑자기 일어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박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거기 서. 당신 어디 가?”“개밥 사러.” 그녀는 이를 악물고 원망 가득한 말투로 얘기했다. “개 먹이려고.”뒤에 있는 남자는 웃는 듯했고, 신은지는 이미 문을 열고 가버린 후였기에 이를 듣지 못했다.고연우 말대로 그녀는 밑에 층에 내려가서 전복죽을 사서 올라왔다. “어서 먹어. 먹고 집에 가.”침대에 있는 박태준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마치 자는 듯했다. 등을 돌리고 누웠기에 신은지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녀는 가까이 가서 허리를 굽혀 보았다.남자는 미간을 찌푸렸고 이마에는 식은땀을 흘렀고, 입술과 얼굴은 창백한 나머지 푸르스름했다.잠든 것이
신은지는 치약 거품을 입에 가득 문 채 진유라를 보았다. 그녀 역시 뜸을 들이지 않고 바로 얘기했다. “박태준이 줬어.”하지만 박태준은 이를 숨길 생각이 없었기에 그녀 역시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이놈은 사람이기를 포기한 것인가? 다른 부부는 한마음 한뜻으로 그 총이 외부를 향하지만 이들은 반대였다. 자기 아내와 등진 사람을 쏙쏙 집어서 도와주고 있었다. 이 일에 대해 신은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얼마 줬대?”진유라는 손을 흔들며 그녀를 향해 천문학적인 숫자를 보여줬다. “이 돈이 없었으면, 지분을 사는 것은 물론 밥 먹을 때조차 지갑 사정을 봐 가면서 먹어야 했을 거야.”신은지는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아봐 줘서 고마워.”그녀는 신지연을 그룹에서 사퇴하게 하는 거로 예전에 그녀가 신은지의 음성파일을 매체에 넘긴 일과 퉁 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하연그룹 주주이니 이젠 방법을 바꿔야 한다.그들 세 식구가 자기 어머니의 유품을 팔아 얻은 돈을, 그녀는 그들에게 한 푼도 빠짐없이 다 받아 낼 것이다.진유라는 개의치 않고 손을 흔들었다. “이런 일로 무슨 고맙다는 인사까지 해. 더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그녀가 다 씻은 것을 보자 진유라는 손을 빼고 허리를 피면서 얘기했다. “밥 먹으러 가자. 저녁에 난 할 일이 있어서 늦으면 안 돼.”두 사람은 멀리 가기 싫었고 근처 뒤 골목에서 아무 식당이나 찾아서 들어갔다. 신은지가 실 시간검색을 켜고 보니, 전예은이 신당동에 박태준을 찾으러 간 뉴스는 이미 삭제되어 검색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에 의해 강제적으로 없어진듯했다.이 정도 속도면 굳이 누군지 얘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리고 이어서 연속 3일 동안 신은지는 방콕 했다. 진유라는 그녀가 한가하게 집에만 있으면 탈이 날까 봐 그녀 앞으로 일을 많이 소개해 줬고, 허 원장은 그녀에게 전화해서 다시 출근하라고 했지만 그녀는 모두 거절했다.이날 그녀가 한 폭의 서화에 대해 탄식하고 있을 때 도우미 아줌마의 전
정민아는 팔짱을 끼고는 고연우가 들고 있는 꽃을 무심하게 훑어보았다.“연우 도련님, 이건 또 무슨 의미야?”“공 비서가 오늘이 여성의 명절이라고 했어.”“그래서?”주위는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 소리가 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려왔다.고연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정민아, 우리 이혼하지 말자.”너무 진부한 이야기였다. 정민아는 더 이상 이 주제를 논의할 의욕조차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책상 위 담뱃갑을 더듬었다. 옆의 재떨이엔 얇은 층으로 쌓인 담배꽁초가 있었고 그 중 절반 이상이 정민아가 피운 것임을 립스틱 자국이 말해주고 있었다.고연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정민아가 담배를 피우는 걸 싫어하면서도 막지 않았다.얇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정민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담뱃불은 희미하게 밝아졌다가 사라지며 그녀의 눈을 비췄다. 그 순간, 눈 속의 차가운 무관심이 한층 누그러져 보였다. 은빛 실처럼 가늘게 펴지는 연기 너머로 정민아는 당당하고 제멋대로 미소 지었다. 그리고 정민아가 그렇게 웃을 때마다 고연우는 어김없이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다음 순간 정민아가 말했다.“고연우, 너 이상한 거 아니야?”“그렇지. 이상하지 않았다면 여기 서 있지도 않았을 거야.”고연우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손목시계를 가리켰다.“시간 됐어. 레스토랑으로 가자. 예약해 놨어.”정민아는 이미 샘플 수정으로 지쳐 있었는데 고연우의 집요함이 정민아를 더욱 짜증 나게 했다. 고연우의 고급스러운 코트가 눈에 들어오자 정민아의 머릿속에 문득 나쁜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그의 코트에 대고 눌렀다.‘치...’불꽃이 꺼지면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타는 냄새가 코트에서 퍼져 나왔다.정민아는 차가운 얼굴로 꺼진 담배꽁초를 옆의 쓰레기통에 던졌다.“꺼져.”고연우는 자신이 입고 있는 코트의 타는 자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민아의 손을 잡았다.“이 코트는 가격이 6자리 숫자야. 디자인에서 완성까지 3개월이 걸렸어. 나와 저녁 정도는 함께 먹어줘야 하
고연우는 벨트를 풀며 말했다. 남자는 원래 이런 상황에서 승부욕이 강해지기 마련인데 특히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그 감정이 더욱 크게 드러났다.“그런 암흑 같은 분위기는 우리 상황과 맞지 않아.”정민아는 원래 고연우에게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어둠 속에서 고연우는 마치 사나운 짐승처럼 보였을 것이니 고연우에게 흥미를 느끼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정민아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고연우는 옷을 반쯤 벗었고 단단한 근육이 팽팽히 긴장되었으며 술기운에 물든 피부는 은은한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공기 중에는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마치 곧 무언가가 터질 듯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가끔 고연우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정민아가 말했다.“요즘 운동 안 했어?”고연우는 어이없었다.“?”정민아는 손바닥을 고연우의 가슴 아래쪽에 대고 살짝 눌러보았다. 그러고는 평가하듯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육이 좀 줄었네.”“...”정민아는 마치 중대한 결정을 앞둔 사람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연우를 응시했다. 고연우는 모른 척하려 했지만, 결국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옷을 다시 입고 정민아의 손을 자기 몸에서 조심스레 떼어내더니 문을 향해 나가며 화가 난 듯 정민아를 한번 매섭게 쳐다보았다.“네가 이겼어.”완전히 흥미가 사라졌다....며칠 동안 고산그룹 대표실이 있는 층은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있었다.공민찬이 급한 서류 묶음을 들고 고연우에게 사인을 받으려 일어서던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소리가 났다. 그때 최민영이 가방을 들고나와 미소를 지으며 공민찬에게 인사를 건넸다.“공 비서님.”공민찬은 다가서며 말했다.“최민영 씨.”최민영은 사무실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연우 씨 사무실에 있나요?”“최민영 씨, 잠시만요”공민찬은 그녀를 막아섰다.“대표님께서 지금 바쁘십니다. 우선 접대 실에서 잠시 기다리시는 게 어떨까요?” “...”최민영은 눈썹
고연우는 짜증 내며 핸드폰을 테이블에 던지더니 미간을 꾹꾹 눌렀다. “나가세요. 나중에 송씨 아주머니한테 작업복 하나 달라고 하세요.”“도련님, 혹시 어디 불편하세요?”하린은 우유를 들고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 “저 예전에 마사지도 배운 적 있는데, 제가...”“그만 나가.” 고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손을 피하다가 우유를 엎지르고 말았다. 우유가 쏟아지며 더럽혀진 셔츠를 내려다보며 그는 얼굴은 굳어진 채 입술을 오므렸다. 한참 후에야 한 마디 내뱉었다. “사모님께서 보낸 겁니까?”그는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 뱉어냈다.하린은 고연우의 차가운 눈빛에 그 자리에 굳어진 채 말을 더듬었다. “도련님, 정말로 사모님께 저를 보내셨습니다.”“나가세요. 앞으로 제 허락 없이는 서재에 들어오지 마세요.” 하린은 금수저 남편을 찾기 위해 가사 도우미로 취직했다. 이를 위해 매니저에게 봉투까지 건넸지만 고연우의 사늘한 태도에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품지 못했다. 서재를 나오자마자 난간에 기댄 채 그녀를 쳐다보는 정민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모님...”하린은 갑자기 발걸음 멈추더니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불순한 의도를 품었던 그녀는 사모님을 보면 본능적으로 불안했다. “도련님께서 드시지 않았어요...”비록 정민아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하린은 괜히 자신을 평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마침 정민아가 입을 열었다. “그럼 몇 번 더 가져다주세요.”하린은 정민아의 말에 담긴 뜻을 단번에 눈치챘다.그녀는 자신이 잘못 이해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재벌 부인이 자신의 남편에게 여자를 찾아주는 걸까? 설사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돈이면 충분할 텐데, 그러다 사생아라도 생겨 상속 분배에서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면 어쩔 생각인지.’그녀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도련님께서 송씨 아주머니한테 익숙해졌는지 저를 좀 꺼리시는 것 같아요. 아
다음 날.정민아와 사연희는 쇼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아야...”주소월이었다. 사연희는 정민아의 과거에 대해 완전히 알지는 못했지만 주소월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세상에 자식을 챙기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설령 절친이라도 남의 가정사에 깊이 개입하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노트북을 들고 일어나 말했다. “초대장 몇 개 빼놓고 못 보낸 것 같은데, 금방 보내고 올게. 쇼에 관한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그녀는 주소월을 흘끗 쳐다보고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섰다. 정민아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소월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녀는 어젯밤에 충분히 더 이상 정씨 가문과 연관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생각했지만 주소월이 여전히 찾아올 줄은 몰랐다. “오늘 밤에 연회가 있는데, 같이 가겠니?” 정민아가 거절할까 봐 주소월은 서둘러 한 마디 덧붙였다. “너희가 쇼를 열잖아? 오늘 밤 연회에 너와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 많이 올 거야. 잠재 고객을 몇 명 발전시킬 기회가 될 수도 있어.”“지금 그 무리에서 잠재 고객을 발전시키라는 말씀이세요?”그녀와 최민영의 갈등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집안이 최씨 가문보다 못한 사람은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꺼렸고 반면 집안이 최씨 가문보다 좋은 사람은 고아 때문에 굳이 적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주소월은 정민아가 당했던 일을 떠올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민아야, 미안해. 엄마가 너를 데려오긴 했지만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너한테 이렇게 상처만 줬네...”“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저를 정씨 가문으로 데려와 줘서 고마워요. 그 마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줘서, 그리고 또... 그 미친놈으로부터 구해줘서 고마워요.”마치 세월의 흔적을 덮은 한 자루의 칼처럼 서서히 그녀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민아야...” 주소월은 울먹거리며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처음 그
정민아는 문을 열고 지친 몸으로 가방을 내려놓았다. 신발을 갈아신던 중 슬쩍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았다.“아주머니, 제가 전화드렸잖아요. 저녁 먹고 온다고, 왜 이렇게 음식을 많이 차렸어요?”송씨 아주머니는 2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도련님께서 아직 저녁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고연우라는 말을 듣자 정민아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2층으로 올라갔다. “아, 그렇군요.”“아가씨...”송씨 아주머니가 망설이며 그녀를 불렀다. “도련님께서 아가씨가 돌아오시면 같이 식사하자고 불러달라고 하셨습니다.”“제가요?” 정민아는 걸음을 멈추고 의아해하며 돌아봤다. “왜요?”“도련님께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셨는데... 두 분 혹시 싸우신 거 아닌가요?”“그 사람이 기분이 안 좋다고 제가 달래줘야 하나요? 그럼 왕자님, 저녁 드세요라고 말이라도 해야겠네요?” 정민아는 피식 웃더니 입가에 맴돌던 웃음이 갑자기 사라졌다. “먹든 안 먹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세요. 먹기 싫으면 굶으면 되죠.”송씨 아주머니는 시선을 정민아 뒤쪽으로 옮기더니 표정이 조금 일그러진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 도련님...”정민아가 뒤돌아보자 고연우는 난간에 기댄 채 냉랭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방금 샤워를 끝냈는지 머리가 약간 젖어 있었고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몸에 딱 맞는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은 채 단추는 몇 개 풀려 있었고 옷자락은 허리선에 맞춰 깔끔하게 넣었다. 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를 뽐내며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배경처럼 흐릿해 보이게 만들었다.고연우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저녁 먹자.”사실 그는 조금 더 튕기고 싶었지만 계속 자존심을 부리다 이 무심한 여자는 그냥 가버릴 것 같았다.정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난 이미 먹었어.”“네가 장소 문제를 해결하라고 해서 해결해 줬더니, 겨우 도시락 하나 사주는 거냐? 정민아, 너 정
“난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한 적 없어.”정민아가 웃으며 고개를 옆으로 하자 덜 말려진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치우치며 하얗고 맑은 어깨가 그대로 드러났는데 그 위에는 물방울까지 맺혀있어 고연우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그 어떤 뜨거운 것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고 방안에 가득 찬 정민아의 향기가 그림자마냥 고연우의 주변을 맴도는 탓에 고연우는 흐릿해져 가는 정신을 부여잡으려 주먹을 말아쥐었다.술기운이 뒤늦게 밀려오는 것인지 아니면 저 고혹적인 자세 때문인지 고연우는 머리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그에 정민아는 문을 열고는 손님을 배웅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내가 불편해지면서까지 다른 사람한테 맞추긴 싫거든. 그러니까 일단 최민영부터 죽이고 와서 사랑 타령해.”“... 다른 건 안 될까?”“다른 거 뭐?”정민아의 산만한 시선이 고연우의 몸에 머물렀다. 사람이 아니라 상품을 보는 듯 곳곳을 훑어보고 있었다.“너한테 나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뭐 다른 게 있긴 해?”상처가 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모욕적인 말임은 틀림없었다.하지만 웃긴 건 정민아의 말에 고연우가 고개를 숙여 제 몸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아무리 봐도 돈과 권력 외에는 정민아가 관심을 가질만한 게 없어 보이는 듯한 몸에 고연우는 고개를 들더니 그래도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그 기생오라비보다는 내가 더 잘생겼어.”정민아가 혹여 듣지 못할까 봐 고연우는 기생오라비라는 단어에 더 힘을 주며 말했다.어려서부터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던 고연우는 저에게도 이렇게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필하는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었다.하지만 정민아는 관심 없다는 듯 입꼬리를 움직이며 말했다.“얼굴 자랑 말고 가서 약이나 좀 사지 그래? 내가 너에 대한 흥미는 약의 자극을 받아야만 생길 것 같거든.”머리에 누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이 아까의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도 입안에는 분노 가득한 험한 말들이 서러움과 함께 맴돌고 있었다.“넌 앞으로 그냥 말을 하지 마.”
고연우의 질문에 정민아는 사실대로 대답했다.“대학 때 후배.”그 말에 고연우는 아까 정민아를 보던 임우빈의 이상한 눈빛을 떠올리며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물었다.“쟤가 너 좋아해?”“응.”“...”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인정을 해버리는 정민아에 말문이 막혀버린 고연우는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너 저렇게 기생오라비 같은 놈 좋아했었어?”정민아의 성격 때문에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임우빈한테 유난히 관대한 것만은 보아낼 수 있었다.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민아 앞에서 주책맞게 떠들어 댄 게 자신이었다면 정민아는 진작에 제 머리를 비틀어 화분으로 삼겠다고 협박했을 것이다.정민아는 언짢아 보이는 고연우를 보며 말했다.“기생오라비 같은 게 아니라 어린 거야. 턱선이 당신처럼 뚜렷하진 못해 그래서. 그리고 뒤에서 다른 사람 험담하는 건 격 떨어지는 일이야, 고연우 도련님.”고연우 도련님이라는 단어에 올라가는 억양을 붙인 게 아무리 봐도 조롱 같았던 고연우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턱선이 나보다 뚜렷하지 못하고 어려서 그렇다고? 그럼 뭐 나는 늙었다는 소리야? 그리고 내 앞에서 내 아내를 탐내는 데 내가 얼마나 격을 차려야 한다는 거지? 난...”고연우는 간신히 튀어나오려는 험한 말을 참아냈다.“곧 이혼할 건데 뭘.”“꿈 깨.”혈관 속에서 불꽃이 튀기는 것 같은 느낌에 원래도 나빴던 기분이 더 완벽히 잡쳐버린 고연우는 정민아를 노려보며 말했다.“난 이혼에 합의 안 할 거니까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 사이에 사별은 있어도 이혼은 없어.”고연우의 말에 정민아가 문고리를 잡아 내리며 대꾸했다.“그럼 아직 살아있으니까 납골함이라도 직접 골라. 귀신 돼서도 네가 직접 고른 집에 있으면 기분이라도 좋겠지.”“정민아, 너...”고연우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눈앞에서 문이 “펑” 소리를 내며 닫혀버린 탓에 하마터면 거기에 얼굴을 맞을 뻔한 고연우는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누가 이딴 식으로 짜증을 내고 들
말을 안 하고 앉아있는 정민아에 기사는 정민아가 슬퍼하는 줄로 알았지만 그렇다고 한낱 외부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 답답한지 기사는 의자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진심으로 좋아하면 시험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솔직하게 알려줘야죠. 이런 식이면 남자는 점점 더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모든 남자들이 저런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저런 여자의 유혹을 당해낼 남자도 없어요.”“저도 남자예요, 믿어도 좋아요.”끊임없이 말하는 기사가 귀찮았는지 정민아는 고개를 돌리며 짧게 대꾸했다.“응, 믿으니까 출발해 빨리.”정민아가 고연우를 시험하는 건 그가 저를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주 씨 집안 간의 계약이 성사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지금 보니 이 길은 이미 글러 버린 것 같았다.임우빈은 한 손으로 좌석 등받이를 당기며 고개를 돌려 정민아를 바라보며 그 나이대 특유의 당찬 표정을 하고 말했다.“저렇게 양옆에 여자나 끼고 다니면서 여러 사람 홀려대는 남자는 믿음직스럽지 못하잖아요. 누나 관심을 받을 자격도 없죠. 저는 어때요?”임우빈은 제 이두근을 자랑하며 말했다.“젊고 잘생긴 데다가 체력도 좋고 무엇보다 일편단심이에요. 누나 말곤 아무도 안 봐요, 길가는 암컷 강아지한테 눈길 안 줄 자신 있는데.”“... 너희 엄마는 네가 자기보다 몇 살이나 많은 여자를 집안 며느리로 들이려 한다는 사실 아니?”정민아의 말에 임우빈은 툴툴대며 대답했다.“많이는 아니죠, 고작 세 살인데. 오버는 하지 말죠. 그리고 내가 정말 누나를 집에 데려가면 우리 엄마는 엄청 좋아할걸요. 적어도 앞으로 두 세대는 미모는 보장할 수 있으니까.”임우빈은 정민아의 대학교 후배였는데 1학년 때 운동장에서 정민아를 처음 본 순간 그녀에게 반해버려 결혼하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제대로 들이대 보지도 못하고 정민아가 퇴학을 해버리는 탓에 겨우겨우 수소문해서 정민아가 있다는 경인시까지 와서 대학원을 다니고 여기서 취직
사연희는 잔뜩 감동한 얼굴로 정민아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우리 가게 때문에 민아 씨만 고생했네요.”안 그래도 하룻밤 사이에 노 대표님의 생각을 바꿀만한 둘레의 허벅지를 찾는 건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 시간이 촉박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그 시간은 그저 노 대표님이 술을 깨기 위한 시간이었다.사연희가 오해한 걸 알아차린 정민아는 해명하기도 귀찮아져 그냥 사연희를 데리고 나가려 했는데 그때 공민찬이 나오면서 말했다.“고 대표님, 방금 룸까지 다 확인했습니다. 사모님의 머리카락 한 올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그 말이 끝나자 주위의 공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고연우는 공민찬을 흘겨보며 언짢은 듯 말했다.“너만 입 달렸어?”“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소릴 했네요.”공민찬은 사과 하나는 빨리하며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그런데 사모님께 말씀은 하셨어요?”“...”“대표님, 계속 이런 식으로 하시면 사모님 마음 못 돌려요. 사모님이 최민영 씨한테 괴롭힘 당할까 봐 문 앞에 사람까지 세워서 지키시면 뭐해요, 이런 건 대표님이 말씀 안 하시면 사모님은 영영 모르실 텐데요. 그럼 감동도 못 받으실 테고 사모님이 감동하지 못하시면...”그런 공민찬을 보던 사연희는 주먹을 말아쥐며 입술을 깨물더니 정민아에게 귓속말을 했다.“안 되겠어, 나 여기 더는 못 있겠어.”밖으로 나가기 전 사연희는 한 번 더 공민찬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사연희가 만약 공민찬처럼 말 많고 사실만 얘기하며 아픈 데를 콕콕 찌르는 비서를 뒀다면 얼마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냈을 텐데 무표정으로 듣기만 하는 고연우를 보니 허벅지 대표님의 성격은 꽤 차분해 보였다.“입 다물어.”그 차분한 고연우도 더는 듣기 싫었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공민찬 손에 들려있던 차 키를 뺏어 들고는 정민아를 보며 말했다.“가자.”“응.”정민아의 대답을 들은 고연우의 발이 허공에 잠시 머물렀다가 한참 만에 땅에 닿았다.정민아의 조롱 섞인 거절이거나 분노는 너무나 익숙하고 오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