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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이혼 사유

작가: 선희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3-12-06 13:25:53
신연지는 말투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어머님의 성의를 무시하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싸늘하게 대꾸했다.

“당연히 마셔야지.”

박태준은 말없이 그릇을 들고 욱여넣다시피 해서 한 그릇을 비우더니 탕 하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전등을 끄고 침대로 올라왔다.

신연지는 그를 등지고 누워 눈을 감았다.

가끔은 이렇게 둘이 같은 침대에 누워 잠든 적이 있었지만 항상 멀리 떨어져서 잠만 잤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달랐다.

잘 자고 있는데 갑자기 박태준이 다가오더니 그녀를 품에 껴안았다. 그의 딱딱한 근육이 등에서 느껴졌다.

남자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거친 숨결을 토해내고 있었다.

신연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허리 아래에서 딱딱한 느낌이 느껴졌다.

“박태준!”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신혼 때는 이런 상황을 기대했던 적도 있지만 3년 동안 그의 냉대와 침묵에 지쳐 언젠가부터 포기하고 있었다. 이제 곧 이혼할 사이인데 그와 이런 식으로 엮이는 건 달갑지 않았다.

실수는 한번이면 족했다.

“뭐가 잘못됐어?”

남자의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왔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당당했다.

박태준은 순식간에 그녀의 위로 올라타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신연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밀쳐냈다.

“싫어.”

“내가 남자 구실을 안 해서 질렸다며? 아까 그 약을 먹으라고 강요할 때 이런 거 바라고 한 거 아니었어? 이제 와서 싫다는 건 너무 속보이지 않아? 나랑 밀당이라도 하고 싶어?”

그의 말투에서 진한 비웃음이 느껴졌다.

신연지는 그제야 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몰랐어.”

“나한테 그걸 믿으라는 거야? 이런 적이 처음 있은 것도 아니고.”

“그건….”

매번 그 이야기만 나오면 신연지는 깊음 무력감을 느꼈다.

이제 그만 잊으려고 할 때마다 그는 그날 밤 실수를 상기시켜 주었다.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그때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태준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쳐왔다.

당황한 신연지는 남자의 가슴을 밀치며 몸부림쳤지만 남자는 그럴수록 더 집요하게 입술을 부딪혀왔다. 연인 사이에 있어야 할 다정함 같은 건 전혀 없었고 화풀이에 가까운 키스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는 집요하게 그녀의 입술을 깨물고 파고들었다. 입에서 피비린내가 느껴지고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남자의 뜨거운 손이 그녀의 가슴까지 올라올 때에야 그녀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언제 한 건지 이미 단추는 풀어져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비틀며 그의 입술을 피했다.

“박태준, 제발 이러지 마.”

신연지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박태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양 팔을 침대머리에 고정한 채,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혼 사유가 내가 남자 구실을 안 해서 건강 상태가 의심된다며? 이제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게 증명됐으니 이혼 사유는 성립되지 않아.”

그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턱을 고정하고 강제로 그녀와 시선을 맞추었다.

이 각도로 시선을 내리고 있으니 남자의 상징이 선명하게 보였다.

남자는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짓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이 정도면 만족할 수 있겠어?”

신연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가 뭐라고 하려는 순간, 박태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느긋하게 손을 뻗어 핸드폰을 가져오더니 발신자를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전예은의 매니저였다.

그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지?”

그런데 잠깐 방심하는 사이, 여태 피하기만 하던 여자가 갑자기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곳이 움찔하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잡아 먹을 듯한 표정을 하고 여자를 노려보았다.

수화기 너머로 전예은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사이 그녀는 그의 몸 이곳 저곳을 더듬었다. 안 들어도 전예은이 아파서 와달라는 소리일 것이다.

박태준이 경고 섞인 눈빛으로 노려보자 여자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일부러 언성을 높여 입을 열었다.

“아주 만족스럽지. 다른 건 몰라도 정력은 정말 남다르다니까! 조금만 부드럽게 해주면 더 좋겠어.”

수화기 너머로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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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의성이 다분한 발언에 박태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똥 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매니저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대표님, 우리 예은이 어쩌면 발레를 그만둬야 할지도 몰라요. 재활이 힘들다고 하네요. 애초에 무리해서 해외로 나간 것도 대표님의 옆자리에 어울리는 신분을 갖추기 위해서였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게 안타까울 정도였어요. 인척도 없는 해외에서 혼자 얼마나 고생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박태준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침대를 내려갔다.“지금 그쪽으로 갈게. 예은이 잘 지키고 있어.”신연지는 떠나는 그를 잡지 않았다. 어차피 잡아서 들을 사람도 아니었다.처음부터 소유권을 주장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소심한 복수라고 할까?박태준은 옷을 갈아입고 외출 준비를 하면서도 아내인 신연지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모두가 잠든 밤, 아래층으로 내려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거실 전등이 켜졌다.주방 입구에서 강혜정이 싸늘한 표정을 하고 아들에게 물었다.“이 시간에 어딜 가는 거야?”박태준은 인상을 쓰며 그녀에게 물었다.“이 시간에 안 주무시고 뭐 해요?”“이 밤중에 연지 혼자 버려두고 어딜 가냐고 물었다!”박태준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못 마땅한 말투로 대답했다.“힘 조절을 잘못해서 그 사람 좀 다쳤어요. 연고 사러 나가는 길이에요.”강혜정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20대 청소년도 아니고 좀 살살 하지 그랬어? 빨리 다녀와. 아니다, 연지랑 같이 가. 염증 나면 곤란하니까 이참에 병원에 한번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박태준은 황당한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결국 그는 강혜정의 고집을 못이기고 위층에 있는 신연지에게 전화를 걸어 옷 갈아입고 내려오라고 명령했다.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신연지는 다급히 옷을 입고 내려왔다.거실에서 박태준과 시어머니가 대치하고 있었다.남자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아까 긁혔잖아. 같이 약국에 좀 다녀오자.”신연지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쏘아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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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어차피 시내로 들어왔기에 택시를 잡기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어차피 신연지도 그를 따라 병원까지 가서 전예은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그녀는 한치 주저도 없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며 당당하게 차에서 내렸다.그녀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차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신연지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차를 향해 소리쳤다.“그렇게 보러 가고 싶었는데 어떻게 여태까지 참았대?”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신연지가 길에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검은색 벤틀리가 그녀의 앞에 멈추어 섰다.차에서 내린 강태산이 공손하게 말했다.“도련님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작은 사모님, 이만 집으로 가시죠.”신연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강태산을 노려보았다.‘그러니까 자긴 애인 만나러 가고 난 무조건 집에 돌아가라는 거잖아?’기분이 나쁘지만 걸어서 돌아갈 수는 없기에 그녀는 순순히 강태산을 따라 차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 그녀는 이혼 서류를 언론에 공개하면 박태준을 엿 먹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하지만 그렇게 되면 잃는 게 더 많았다.어차피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간, 더 참아보기로 했다.어차피 전예은 성격에 박태준을 내버려둘 것 같지도 않았다.다음 날, 신연지는 간만에 늦잠을 잤다.휴대폰을 보니 진유라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허 원장님이랑 내일 만나기로 했어. 난 고객 미팅이 있어서 같이 못 갈 것 같아.]진유라는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골동품 가게를 차렸다. 신연지도 종종 가서 도와주고는 했다.신연지는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 뒤, 아침을 먹고 외출했다.신당동에서 나가 살려면 출퇴근하기 편리한 거처를 알아보기로 했다.그녀는 곧장 부동산으로 가서 방 두 개짜리 집을 계약했다. 작업실과 거리도 가깝고 가구가 많지 않아 방 하나를 작업실로 쓰기에도 편리했다.아파트도 외부인 출입금지라 보안도 상당히 괜찮았다.게약을 마친 뒤, 신연지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곧 진유라의 생일이 돌아오는데 괜찮은 핸드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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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연지는 당연히 순순히 박태준이 올 때까지 기다려줄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문을 나서자마자 이쪽으로 다가오는 남자를 발견했다.박태준은 검은색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 입고 싸늘한 차도남 이미지를 풀풀 풍기며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잘생긴 외모에 엄청난 재력까지 겸비한 성공한 기업인.솔직히 저 재수 없는 성격만 제외하면 완벽한 남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그의 옆에는 진영웅이 뒤따르고 있었다.신연지가 멍 때리는 사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온 박태준이 불쾌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강 기사한테 들었는데 어제 집에 안 들어갔다면서?”고작 이것 때문에 기다리라고 한 건가?“기사 아저씨가 내 말은 안 전했나봐? 어제만 안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그 집에는 갈 일 없어.”신연지가 그를 지나쳐 밖으로 나가려는데 진영웅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신 비서, 대표님은 신 비서가 여기 있는 줄 알고 달려온 거예요.”그래서 어쩌라고?그 정성에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리라는 건가?진영웅은 박태준 주변 인물 중에 두 사람의 결혼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신연지를 사모님이 아닌 신 비서로 호칭했다.박태준 옆에서 3년 하녀 생활을 하는 동안 박태준은 물론이고 그의 주변 인물들마저 그녀를 재경의 안주인이 아닌 하녀 취급하고 있었다.신연지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진영웅을 바라보며 말했다.“진 비서, 당신 같은 사람을 고대에는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진 태감!“신연지, 적당히 해.”박태준이 경고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적당한 다툼은 부부 생활의 재미라고 넘어가줄 수 있지만 과하면 보기 안 좋아. 집에 옷이랑 신발 모두 그대로 있던데 나한테 삐져서 달래달라고 나간 거잖아? 진 비서, 괜찮은 레스토랑으로 예약해 줘.”그는 신연지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저녁에 같이 외식이나 하자. 며칠 뒤에 보석 전시회가 있는데 그때 가서 당신 갖고 싶은 거 마음대로 골라.”이게 박태준이 싸운 뒤에 그녀를 달래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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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연지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좋아하는 사람을 3년이나 방치해? 그런 사랑이면 난 사양이야!”진유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건 그러네. 하지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널 집에 가두려는 의도가 뭘까? 어차피 3개월 지나면 이혼하고 그 집에서 나오게 될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신연지도 그 점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깊게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그날 저녁 그들은 밖에서 샤부샤부를 먹었다.신연지는 가장 매운 소스를 주문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기를 섭취했다.그날 밤, 남자에게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그녀는 캐리어를 들고 어제 계약한 새 집으로 향했다.간단히 짐을 정리한 뒤, 그녀는 새로 취직한 곳으로 향했다.경원 작업실.허 원장은 이곳 담당자였다. 60세가 넘은 노인은 신연지를 보자마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진유라 씨가 얘기하던 복원사 실버가 자네였어?”신연지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최근 몇 년 사이, 신연지가 작업한 작업물은 그리 많지 않지만 매번 극악 난이도의 작업물만 작업했기에 업계에서 꽤 유명해져 있었다.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았기에 실버라는 가명을 썼다.허 원장은 직전에 그녀의 작품만 보고 대단한 실력자라고 평가했다. 몇몇 작품은 심지어 업계의 원로들마저 자신 없어 하던 작업이었는데 실버라는 신인 복원사가 해냈다는 소리를 듣고 높은 평가를 주었다.그래서 허 원장은 실버가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젊은 처자였을 줄이야!“자네가 복원한 작품을 봤어. 상당한 실력을 가졌더군!”신연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과찬이십니다. 아직 배울 것이 많아요.”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허 원장은 그녀를 이끌고 자리로 갔다.“이곳이 자네가 일할 곳이야!”그는 직원 한 명을 자리로 불렀다.“경수 씨! 가서 작업해야 할 골동품들 좀 가져와 봐.”골동품 복원사로서 그 골동품이 존재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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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이 꽉 들어찬 고깃집에는 진한 연기가 들어찼다.긴 웨이브 진 머리를 간단히 틀어올리고 하얀 목선을 드러낸 신연지의 모습은 청순하면서도 여성미가 넘쳤다. 그녀는 메뉴판을 보며 옆에 있는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직원을 호출했다.고연우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박태준에게 말했다.“네 마누라 너 없어도 잘 지내는 것 같은데?”박태준은 말없이 룸을 나섰다.맥주가 올라오자 이경수는 벌컥벌컥 한캔을 들이켜고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신연지에게 말했다.“연지 씨가 정말 실버에요? 거의 구데기가 된 고려 청자기를 복원해 낸 그 실버?”신연지는 어색한 웃음만 짓고 있었다.이 질문은 고깃집에 오기 전부터 열 번은 대답한 질문이었다.허 원장이 이경수의 옆구리를 치며 말했다.“내일도 출근해야 하는데 적당히 마셔. 연지 씨, 이 녀석은 신경 쓸 거 없어. 편하게 먹다 가면 돼.”신연지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기 나왔습니다!”직원이 큰 소리로 외치며 불판과 함께 메뉴를 테이블에 올렸다.그때, 신연지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녀는 수저를 놓고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냈다.발신자를 확인한 그녀는 움찔하며 잠시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두고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전화는 잠시 울리다가 끊었다.박태준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조금이라도 전화를 늦게 받으면 끊어버리고는 했다.휴대폰 화면에 문자 알림이 떴다.화면을 열어 확인해 보니 박태준에게서 온 문자였다.[나와.]신연지는 인상을 팍 쓰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맞은편 고급 레스토랑 앞에 세워진 검은색 벤틀리를 발견했다.한정판 차량이었기에 한눈에 박태준의 차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신연지는 무시하기로 하고 수저를 들었다.이경수는 그녀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있자 분위기가 어색해서 그러는 줄 알고 큰 고기를 한점 집어 그녀의 접시에 놓아주었다.“긴장할 거 없어요. 편하게 생각해요. 우리 직원들 다 성격이 좋은 사람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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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안에 삭막한 정적이 감돌았다.박태준이 말했다.“그건 당신이 멍청하고 현실 감각이 없어서 그딴 생각이나 하는 거야.”“정말이지….”신연지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인간도 아닌 거랑 무슨 대화를 한다고.”말을 마친 신연지는 문을 열려고 손을 뻗었다. 박태준이 음침한 표정을 하고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바깥에서 서성이던 이경수는 안에서 반응이 없자 다급한 목소리로 신연지를 불렀다.“연지 씨, 괜찮아요?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하, 눈물 나는 관심이군.”남자는 싸늘한 표정으로 신연지를 노려보며 말했다.“아직 이혼도 하기 전에 벌써 바람을 피우는 거야? 그런데 남자 보는 안목은 여전히 형편없군.”신연지는 더 이상 설명도 하기 귀찮아졌다.“그래. 남자 보는 안목이 형편없으니까 당신이랑 결혼했지. 그리고 이경수 씨랑은 그냥… 친구야. 당신이 떳떳하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도 다 그렇다고 생각하나 본데, 그런 거 아니거든?”그를 약 올리는 건 상관없지만 그렇다고 무고한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대체 뭐가 남자의 신경을 건드린 건지, 박태준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당신 애인은 당신이 유부녀라는 거 알아? 우리가 차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목격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이 인간은 대체 내 말을 어디로 들은 거야?’신연지는 짜증이 치밀었지만 누구 한 명 죽일 것 같은 남자의 눈빛을 보자 가슴이 철렁했다.박태준은 행동으로 자신이 한 말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그는 거칠게 그녀의 몸을 더듬으며 입술을 부딪혔다.신연지가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그는 버튼을 눌러 의자를 뒤로 젖힌 뒤, 그녀의 위로 올라탔다.박태준이 이렇듯 통제를 잃은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몸을 비틀며 소리쳤다.“이거 놔!”그 순간, 그녀의 움직임과 함께 차체가 흔들렸다.창문을 노크하던 소리가 사라졌다. 아마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치챈 것 같았다.신연지는 동작을 멈추고 분노한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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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연지는 그의 카톡까지 차단하려다가 연락처 하나는 남겨둬야 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그녀는 이혼이 통과되면 당장 이 인간의 모든 연락처를 차단해 버리고 평생 만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이때, 동료 직원들이 뒤에서 소근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아침에 찾아온 남자 정말 근사하지 않았어? 결혼은 했을까? 그런데 갑자기 영숙 누님 직업을 물어봐서 당황했어.”신연지는 아침에 진영웅이 다녀간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그때 마침 물컵이 바닥에 떨어져서 대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고 있었다.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때 조영숙도 그녀의 옆에서 주변을 청소하고 있었던 게 기억났다.직원들의 잡담은 계속되고 있었다.“그런데 영숙 누님 직업은 굳이 왜 물어봤을까? 딱 봐도 청소부 복장을 입고 바닥을 닦고 있었는걸?”신연지는 그제야 진영웅이 뭔가 크게 오해를 하고 잘못된 정보를 박태준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하지만 굳이 전화를 걸어 해명하고 싶지는 않았다.변호사에게서 서류를 받고 이혼에 동의할 줄 알았건만, 일주일이 지나가도록 박태준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신연지는 조바심이 났지만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이날은 진유라와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최근 유명한 맛집에 가보기로 했는데 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신연지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기로 했다.얼마 되지 않아 만석이 되었고 신연지는 밖에서 줄을 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진유라에게 문자를 보내려던 찰나, 거슬리는 목소리가 위쪽에서 들려왔다.“연지 씨, 혼자 왔음 혹시 합석하면 안 될까요? 조금 늦게 왔더니 다 만석이라네요. 기다리려면 두 시간 정도 더 걸린대요.”고개를 들자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전예은이 붙임성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모두의 눈길을 끄는 여자였다.신연지는 고민도 않고 바로 거절했다.“안 되는데요.”하지만 전예은은 이미 자리에 앉은 뒤였다.신연지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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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챕터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53화 미안하다

    정민아는 팔짱을 끼고는 고연우가 들고 있는 꽃을 무심하게 훑어보았다.“연우 도련님, 이건 또 무슨 의미야?”“공 비서가 오늘이 여성의 명절이라고 했어.”“그래서?”주위는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 소리가 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려왔다.고연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정민아, 우리 이혼하지 말자.”너무 진부한 이야기였다. 정민아는 더 이상 이 주제를 논의할 의욕조차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책상 위 담뱃갑을 더듬었다. 옆의 재떨이엔 얇은 층으로 쌓인 담배꽁초가 있었고 그 중 절반 이상이 정민아가 피운 것임을 립스틱 자국이 말해주고 있었다.고연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정민아가 담배를 피우는 걸 싫어하면서도 막지 않았다.얇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정민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담뱃불은 희미하게 밝아졌다가 사라지며 그녀의 눈을 비췄다. 그 순간, 눈 속의 차가운 무관심이 한층 누그러져 보였다. 은빛 실처럼 가늘게 펴지는 연기 너머로 정민아는 당당하고 제멋대로 미소 지었다. 그리고 정민아가 그렇게 웃을 때마다 고연우는 어김없이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다음 순간 정민아가 말했다.“고연우, 너 이상한 거 아니야?”“그렇지. 이상하지 않았다면 여기 서 있지도 않았을 거야.”고연우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손목시계를 가리켰다.“시간 됐어. 레스토랑으로 가자. 예약해 놨어.”정민아는 이미 샘플 수정으로 지쳐 있었는데 고연우의 집요함이 정민아를 더욱 짜증 나게 했다. 고연우의 고급스러운 코트가 눈에 들어오자 정민아의 머릿속에 문득 나쁜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그의 코트에 대고 눌렀다.‘치...’불꽃이 꺼지면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타는 냄새가 코트에서 퍼져 나왔다.정민아는 차가운 얼굴로 꺼진 담배꽁초를 옆의 쓰레기통에 던졌다.“꺼져.”고연우는 자신이 입고 있는 코트의 타는 자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민아의 손을 잡았다.“이 코트는 가격이 6자리 숫자야. 디자인에서 완성까지 3개월이 걸렸어. 나와 저녁 정도는 함께 먹어줘야 하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52화 살인자

    고연우는 벨트를 풀며 말했다. 남자는 원래 이런 상황에서 승부욕이 강해지기 마련인데 특히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그 감정이 더욱 크게 드러났다.“그런 암흑 같은 분위기는 우리 상황과 맞지 않아.”정민아는 원래 고연우에게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어둠 속에서 고연우는 마치 사나운 짐승처럼 보였을 것이니 고연우에게 흥미를 느끼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정민아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고연우는 옷을 반쯤 벗었고 단단한 근육이 팽팽히 긴장되었으며 술기운에 물든 피부는 은은한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공기 중에는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마치 곧 무언가가 터질 듯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가끔 고연우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정민아가 말했다.“요즘 운동 안 했어?”고연우는 어이없었다.“?”정민아는 손바닥을 고연우의 가슴 아래쪽에 대고 살짝 눌러보았다. 그러고는 평가하듯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육이 좀 줄었네.”“...”정민아는 마치 중대한 결정을 앞둔 사람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연우를 응시했다. 고연우는 모른 척하려 했지만, 결국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옷을 다시 입고 정민아의 손을 자기 몸에서 조심스레 떼어내더니 문을 향해 나가며 화가 난 듯 정민아를 한번 매섭게 쳐다보았다.“네가 이겼어.”완전히 흥미가 사라졌다....며칠 동안 고산그룹 대표실이 있는 층은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있었다.공민찬이 급한 서류 묶음을 들고 고연우에게 사인을 받으려 일어서던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소리가 났다. 그때 최민영이 가방을 들고나와 미소를 지으며 공민찬에게 인사를 건넸다.“공 비서님.”공민찬은 다가서며 말했다.“최민영 씨.”최민영은 사무실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연우 씨 사무실에 있나요?”“최민영 씨, 잠시만요”공민찬은 그녀를 막아섰다.“대표님께서 지금 바쁘십니다. 우선 접대 실에서 잠시 기다리시는 게 어떨까요?” “...”최민영은 눈썹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51화 전에 흥미가 없었던 건 불을 켜지 않아서야

    고연우는 짜증 내며 핸드폰을 테이블에 던지더니 미간을 꾹꾹 눌렀다. “나가세요. 나중에 송씨 아주머니한테 작업복 하나 달라고 하세요.”“도련님, 혹시 어디 불편하세요?”하린은 우유를 들고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 “저 예전에 마사지도 배운 적 있는데, 제가...”“그만 나가.” 고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손을 피하다가 우유를 엎지르고 말았다. 우유가 쏟아지며 더럽혀진 셔츠를 내려다보며 그는 얼굴은 굳어진 채 입술을 오므렸다. 한참 후에야 한 마디 내뱉었다. “사모님께서 보낸 겁니까?”그는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 뱉어냈다.하린은 고연우의 차가운 눈빛에 그 자리에 굳어진 채 말을 더듬었다. “도련님, 정말로 사모님께 저를 보내셨습니다.”“나가세요. 앞으로 제 허락 없이는 서재에 들어오지 마세요.” 하린은 금수저 남편을 찾기 위해 가사 도우미로 취직했다. 이를 위해 매니저에게 봉투까지 건넸지만 고연우의 사늘한 태도에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품지 못했다. 서재를 나오자마자 난간에 기댄 채 그녀를 쳐다보는 정민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모님...”하린은 갑자기 발걸음 멈추더니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불순한 의도를 품었던 그녀는 사모님을 보면 본능적으로 불안했다. “도련님께서 드시지 않았어요...”비록 정민아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하린은 괜히 자신을 평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마침 정민아가 입을 열었다. “그럼 몇 번 더 가져다주세요.”하린은 정민아의 말에 담긴 뜻을 단번에 눈치챘다.그녀는 자신이 잘못 이해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재벌 부인이 자신의 남편에게 여자를 찾아주는 걸까? 설사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돈이면 충분할 텐데, 그러다 사생아라도 생겨 상속 분배에서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면 어쩔 생각인지.’그녀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도련님께서 송씨 아주머니한테 익숙해졌는지 저를 좀 꺼리시는 것 같아요. 아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50화 우유를 가져다주다

    다음 날.정민아와 사연희는 쇼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아야...”주소월이었다. 사연희는 정민아의 과거에 대해 완전히 알지는 못했지만 주소월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세상에 자식을 챙기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설령 절친이라도 남의 가정사에 깊이 개입하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노트북을 들고 일어나 말했다. “초대장 몇 개 빼놓고 못 보낸 것 같은데, 금방 보내고 올게. 쇼에 관한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그녀는 주소월을 흘끗 쳐다보고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섰다. 정민아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소월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녀는 어젯밤에 충분히 더 이상 정씨 가문과 연관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생각했지만 주소월이 여전히 찾아올 줄은 몰랐다. “오늘 밤에 연회가 있는데, 같이 가겠니?” 정민아가 거절할까 봐 주소월은 서둘러 한 마디 덧붙였다. “너희가 쇼를 열잖아? 오늘 밤 연회에 너와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 많이 올 거야. 잠재 고객을 몇 명 발전시킬 기회가 될 수도 있어.”“지금 그 무리에서 잠재 고객을 발전시키라는 말씀이세요?”그녀와 최민영의 갈등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집안이 최씨 가문보다 못한 사람은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꺼렸고 반면 집안이 최씨 가문보다 좋은 사람은 고아 때문에 굳이 적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주소월은 정민아가 당했던 일을 떠올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민아야, 미안해. 엄마가 너를 데려오긴 했지만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너한테 이렇게 상처만 줬네...”“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저를 정씨 가문으로 데려와 줘서 고마워요. 그 마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줘서, 그리고 또... 그 미친놈으로부터 구해줘서 고마워요.”마치 세월의 흔적을 덮은 한 자루의 칼처럼 서서히 그녀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민아야...” 주소월은 울먹거리며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처음 그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49화 입원

    정민아는 문을 열고 지친 몸으로 가방을 내려놓았다. 신발을 갈아신던 중 슬쩍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았다.“아주머니, 제가 전화드렸잖아요. 저녁 먹고 온다고, 왜 이렇게 음식을 많이 차렸어요?”송씨 아주머니는 2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도련님께서 아직 저녁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고연우라는 말을 듣자 정민아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2층으로 올라갔다. “아, 그렇군요.”“아가씨...”송씨 아주머니가 망설이며 그녀를 불렀다. “도련님께서 아가씨가 돌아오시면 같이 식사하자고 불러달라고 하셨습니다.”“제가요?” 정민아는 걸음을 멈추고 의아해하며 돌아봤다. “왜요?”“도련님께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셨는데... 두 분 혹시 싸우신 거 아닌가요?”“그 사람이 기분이 안 좋다고 제가 달래줘야 하나요? 그럼 왕자님, 저녁 드세요라고 말이라도 해야겠네요?” 정민아는 피식 웃더니 입가에 맴돌던 웃음이 갑자기 사라졌다. “먹든 안 먹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세요. 먹기 싫으면 굶으면 되죠.”송씨 아주머니는 시선을 정민아 뒤쪽으로 옮기더니 표정이 조금 일그러진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 도련님...”정민아가 뒤돌아보자 고연우는 난간에 기댄 채 냉랭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방금 샤워를 끝냈는지 머리가 약간 젖어 있었고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몸에 딱 맞는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은 채 단추는 몇 개 풀려 있었고 옷자락은 허리선에 맞춰 깔끔하게 넣었다. 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를 뽐내며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배경처럼 흐릿해 보이게 만들었다.고연우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저녁 먹자.”사실 그는 조금 더 튕기고 싶었지만 계속 자존심을 부리다 이 무심한 여자는 그냥 가버릴 것 같았다.정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난 이미 먹었어.”“네가 장소 문제를 해결하라고 해서 해결해 줬더니, 겨우 도시락 하나 사주는 거냐? 정민아, 너 정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48화 다른 건 안 될까

    “난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한 적 없어.”정민아가 웃으며 고개를 옆으로 하자 덜 말려진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치우치며 하얗고 맑은 어깨가 그대로 드러났는데 그 위에는 물방울까지 맺혀있어 고연우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그 어떤 뜨거운 것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고 방안에 가득 찬 정민아의 향기가 그림자마냥 고연우의 주변을 맴도는 탓에 고연우는 흐릿해져 가는 정신을 부여잡으려 주먹을 말아쥐었다.술기운이 뒤늦게 밀려오는 것인지 아니면 저 고혹적인 자세 때문인지 고연우는 머리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그에 정민아는 문을 열고는 손님을 배웅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내가 불편해지면서까지 다른 사람한테 맞추긴 싫거든. 그러니까 일단 최민영부터 죽이고 와서 사랑 타령해.”“... 다른 건 안 될까?”“다른 거 뭐?”정민아의 산만한 시선이 고연우의 몸에 머물렀다. 사람이 아니라 상품을 보는 듯 곳곳을 훑어보고 있었다.“너한테 나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뭐 다른 게 있긴 해?”상처가 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모욕적인 말임은 틀림없었다.하지만 웃긴 건 정민아의 말에 고연우가 고개를 숙여 제 몸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아무리 봐도 돈과 권력 외에는 정민아가 관심을 가질만한 게 없어 보이는 듯한 몸에 고연우는 고개를 들더니 그래도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그 기생오라비보다는 내가 더 잘생겼어.”정민아가 혹여 듣지 못할까 봐 고연우는 기생오라비라는 단어에 더 힘을 주며 말했다.어려서부터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던 고연우는 저에게도 이렇게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필하는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었다.하지만 정민아는 관심 없다는 듯 입꼬리를 움직이며 말했다.“얼굴 자랑 말고 가서 약이나 좀 사지 그래? 내가 너에 대한 흥미는 약의 자극을 받아야만 생길 것 같거든.”머리에 누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이 아까의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도 입안에는 분노 가득한 험한 말들이 서러움과 함께 맴돌고 있었다.“넌 앞으로 그냥 말을 하지 마.”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47화 안 해봤잖아

    고연우의 질문에 정민아는 사실대로 대답했다.“대학 때 후배.”그 말에 고연우는 아까 정민아를 보던 임우빈의 이상한 눈빛을 떠올리며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물었다.“쟤가 너 좋아해?”“응.”“...”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인정을 해버리는 정민아에 말문이 막혀버린 고연우는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너 저렇게 기생오라비 같은 놈 좋아했었어?”정민아의 성격 때문에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임우빈한테 유난히 관대한 것만은 보아낼 수 있었다.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민아 앞에서 주책맞게 떠들어 댄 게 자신이었다면 정민아는 진작에 제 머리를 비틀어 화분으로 삼겠다고 협박했을 것이다.정민아는 언짢아 보이는 고연우를 보며 말했다.“기생오라비 같은 게 아니라 어린 거야. 턱선이 당신처럼 뚜렷하진 못해 그래서. 그리고 뒤에서 다른 사람 험담하는 건 격 떨어지는 일이야, 고연우 도련님.”고연우 도련님이라는 단어에 올라가는 억양을 붙인 게 아무리 봐도 조롱 같았던 고연우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턱선이 나보다 뚜렷하지 못하고 어려서 그렇다고? 그럼 뭐 나는 늙었다는 소리야? 그리고 내 앞에서 내 아내를 탐내는 데 내가 얼마나 격을 차려야 한다는 거지? 난...”고연우는 간신히 튀어나오려는 험한 말을 참아냈다.“곧 이혼할 건데 뭘.”“꿈 깨.”혈관 속에서 불꽃이 튀기는 것 같은 느낌에 원래도 나빴던 기분이 더 완벽히 잡쳐버린 고연우는 정민아를 노려보며 말했다.“난 이혼에 합의 안 할 거니까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 사이에 사별은 있어도 이혼은 없어.”고연우의 말에 정민아가 문고리를 잡아 내리며 대꾸했다.“그럼 아직 살아있으니까 납골함이라도 직접 골라. 귀신 돼서도 네가 직접 고른 집에 있으면 기분이라도 좋겠지.”“정민아, 너...”고연우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눈앞에서 문이 “펑” 소리를 내며 닫혀버린 탓에 하마터면 거기에 얼굴을 맞을 뻔한 고연우는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누가 이딴 식으로 짜증을 내고 들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46화 쟤는 누구야

    말을 안 하고 앉아있는 정민아에 기사는 정민아가 슬퍼하는 줄로 알았지만 그렇다고 한낱 외부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 답답한지 기사는 의자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진심으로 좋아하면 시험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솔직하게 알려줘야죠. 이런 식이면 남자는 점점 더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모든 남자들이 저런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저런 여자의 유혹을 당해낼 남자도 없어요.”“저도 남자예요, 믿어도 좋아요.”끊임없이 말하는 기사가 귀찮았는지 정민아는 고개를 돌리며 짧게 대꾸했다.“응, 믿으니까 출발해 빨리.”정민아가 고연우를 시험하는 건 그가 저를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주 씨 집안 간의 계약이 성사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지금 보니 이 길은 이미 글러 버린 것 같았다.임우빈은 한 손으로 좌석 등받이를 당기며 고개를 돌려 정민아를 바라보며 그 나이대 특유의 당찬 표정을 하고 말했다.“저렇게 양옆에 여자나 끼고 다니면서 여러 사람 홀려대는 남자는 믿음직스럽지 못하잖아요. 누나 관심을 받을 자격도 없죠. 저는 어때요?”임우빈은 제 이두근을 자랑하며 말했다.“젊고 잘생긴 데다가 체력도 좋고 무엇보다 일편단심이에요. 누나 말곤 아무도 안 봐요, 길가는 암컷 강아지한테 눈길 안 줄 자신 있는데.”“... 너희 엄마는 네가 자기보다 몇 살이나 많은 여자를 집안 며느리로 들이려 한다는 사실 아니?”정민아의 말에 임우빈은 툴툴대며 대답했다.“많이는 아니죠, 고작 세 살인데. 오버는 하지 말죠. 그리고 내가 정말 누나를 집에 데려가면 우리 엄마는 엄청 좋아할걸요. 적어도 앞으로 두 세대는 미모는 보장할 수 있으니까.”임우빈은 정민아의 대학교 후배였는데 1학년 때 운동장에서 정민아를 처음 본 순간 그녀에게 반해버려 결혼하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제대로 들이대 보지도 못하고 정민아가 퇴학을 해버리는 탓에 겨우겨우 수소문해서 정민아가 있다는 경인시까지 와서 대학원을 다니고 여기서 취직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45화 약점을 잡아서 하는 협박

    사연희는 잔뜩 감동한 얼굴로 정민아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우리 가게 때문에 민아 씨만 고생했네요.”안 그래도 하룻밤 사이에 노 대표님의 생각을 바꿀만한 둘레의 허벅지를 찾는 건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 시간이 촉박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그 시간은 그저 노 대표님이 술을 깨기 위한 시간이었다.사연희가 오해한 걸 알아차린 정민아는 해명하기도 귀찮아져 그냥 사연희를 데리고 나가려 했는데 그때 공민찬이 나오면서 말했다.“고 대표님, 방금 룸까지 다 확인했습니다. 사모님의 머리카락 한 올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그 말이 끝나자 주위의 공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고연우는 공민찬을 흘겨보며 언짢은 듯 말했다.“너만 입 달렸어?”“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소릴 했네요.”공민찬은 사과 하나는 빨리하며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그런데 사모님께 말씀은 하셨어요?”“...”“대표님, 계속 이런 식으로 하시면 사모님 마음 못 돌려요. 사모님이 최민영 씨한테 괴롭힘 당할까 봐 문 앞에 사람까지 세워서 지키시면 뭐해요, 이런 건 대표님이 말씀 안 하시면 사모님은 영영 모르실 텐데요. 그럼 감동도 못 받으실 테고 사모님이 감동하지 못하시면...”그런 공민찬을 보던 사연희는 주먹을 말아쥐며 입술을 깨물더니 정민아에게 귓속말을 했다.“안 되겠어, 나 여기 더는 못 있겠어.”밖으로 나가기 전 사연희는 한 번 더 공민찬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사연희가 만약 공민찬처럼 말 많고 사실만 얘기하며 아픈 데를 콕콕 찌르는 비서를 뒀다면 얼마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냈을 텐데 무표정으로 듣기만 하는 고연우를 보니 허벅지 대표님의 성격은 꽤 차분해 보였다.“입 다물어.”그 차분한 고연우도 더는 듣기 싫었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공민찬 손에 들려있던 차 키를 뺏어 들고는 정민아를 보며 말했다.“가자.”“응.”정민아의 대답을 들은 고연우의 발이 허공에 잠시 머물렀다가 한참 만에 땅에 닿았다.정민아의 조롱 섞인 거절이거나 분노는 너무나 익숙하고 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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