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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실버

Author: 선희
last update Last Updated: 2023-12-06 13:25:53
신연지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좋아하는 사람을 3년이나 방치해? 그런 사랑이면 난 사양이야!”

진유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그러네. 하지만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널 집에 가두려는 의도가 뭘까? 어차피 3개월 지나면 이혼하고 그 집에서 나오게 될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신연지도 그 점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깊게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그날 저녁 그들은 밖에서 샤부샤부를 먹었다.

신연지는 가장 매운 소스를 주문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고기를 섭취했다.

그날 밤, 남자에게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그녀는 캐리어를 들고 어제 계약한 새 집으로 향했다.

간단히 짐을 정리한 뒤, 그녀는 새로 취직한 곳으로 향했다.

경원 작업실.

허 원장은 이곳 담당자였다. 60세가 넘은 노인은 신연지를 보자마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진유라 씨가 얘기하던 복원사 실버가 자네였어?”

신연지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최근 몇 년 사이, 신연지가 작업한 작업물은 그리 많지 않지만 매번 극악 난이도의 작업물만 작업했기에 업계에서 꽤 유명해져 있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았기에 실버라는 가명을 썼다.

허 원장은 직전에 그녀의 작품만 보고 대단한 실력자라고 평가했다. 몇몇 작품은 심지어 업계의 원로들마저 자신 없어 하던 작업이었는데 실버라는 신인 복원사가 해냈다는 소리를 듣고 높은 평가를 주었다.

그래서 허 원장은 실버가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젊은 처자였을 줄이야!

“자네가 복원한 작품을 봤어. 상당한 실력을 가졌더군!”

신연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과찬이십니다. 아직 배울 것이 많아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허 원장은 그녀를 이끌고 자리로 갔다.

“이곳이 자네가 일할 곳이야!”

그는 직원 한 명을 자리로 불렀다.

“경수 씨! 가서 작업해야 할 골동품들 좀 가져와 봐.”

골동품 복원사로서 그 골동품이 존재했던 시대와 특징, 그리고 진위를 가려내는 건 복원사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었다. 자신이 직접 스카우트한 사람이라 이런 번거로운 과정은 생략할 수 있었지만 신연지의 나이가 너무 어렸기에 한번 지켜보기로 했다.

이경수라는 직원이 각기 다른 시대에 존재했던 골동품 몇 가지를 들고 오더니 조심스럽게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직원들도 구경하러 몰려왔다.

“대단한 실력자 한 명 온다고 하지 않았어? 나이가 너무 어려 보이는데?”

“대충 시간만 때우려고 지원했다가 허 원장님한테 잘못 걸린 거 아니야?”

“허 원장님이 저 사람 데려온다고 사방을 쑤시고 다녔다던데 실망하시게 되었네.”

그들이 수군거리는 사이 신연지는 작업대에 놓인 골동품들을 시대와 출토지에 맞게 분류하고 각각의 특징까지 세분화해서 설명했다.

이경수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빠른 시간에 이걸 해낸다고?”

그는 허 원장의 수석 제자였다. 대학교 때부터 고고학에 입문하여 허 원장 밑에서 일을 배운지 어언 10년이나 흘렀지만 그런 그조차도 이렇게 빠른 시간에 이 많은 골동품들을 정리해 낸다는 건 쉽지 않았다.

허 원장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론은 합격이었지만 아직 실전이 남았다.

신연지가 직접 작업하는 걸 보지 못했기에 진품을 바로 맡길 수는 없었다. 그는 이경수를 시켜 테스트용 모조품을 가져와서 복구작업을 진행하게 했다.

“너무 서운해 하지 마. 이건 우리 작업실 들어오기 전에 다들 겪는 과정이야. 고대의 골동품들은 망가지면 다시 재생이 불가능하지. 그래서 더 직원 심사에 엄격할 수밖에 없어.”

신연지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골동품 복원 작업은 단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다. 사람들은 신연지에게 큰 기대를 품지 않았기에 곧바로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퇴근하기 직전에 신연지는 작업한 작품을 허 원장에게 제출했다. 작업물을 확인한 사람들은 또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 금방 입사할 때 조각 하나 복원하는데 3일이 걸렸는데….”

사람들은 신연지의 빠르면서도 완벽한 작업 결과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허 원장은 돋보기를 끼고 부서진 석판 조각을 들고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자세히 보면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고개를 든 허 원장은 착잡한 눈빛으로 신연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 혹시 최여진 씨를 아나?”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신연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감정을 수습하고 대범하게 대답했다.

“들어본 적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건 아닙니다.”

최여진.

그녀는 골동품 복원 업계에서 가장 주목 받았던 신인이었다. 신들린 기법으로 최단 시간 안에 파손된 골동품을 복원해 내는 것으로 유명해졌지만 얼마 못 가 종적을 감췄다.

허 원장이 물었다.

“하지만 아까 복구 작업을 하는 것을 지켜봤을 때 최여진 씨가 쓰는 기법이랑 많이 닮았어.”

“외할아버지가 이 업계에 오래 종사하셨습니다. 기술은 외할아버지께 배웠어요.”

허 원장은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신연지의 실력은 이미 증명되었기에 허 원장은 근엄한 표정으로 직원들에게 선포했다.

“이쪽은 실버,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동료이니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이들 챙겨주게.”

이경수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실버? 제가 아는 그 실버 맞아요? 엄청 선배로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실버의 본모습이 이렇게 예쁘장한 어린 여자일 줄이야!

허 원장은 이경수에게 닥치라는 눈빛을 보냈다.

“연지 씨, 저 녀석 말은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

신연지는 담담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 뒤로 허 원장은 작업실 동료들을 한명 한명 소개해 주었다. 작업실에는 그녀를 포함해서 여덟 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었는데 다들 성격 좋고 신연지를 진심으로 환영해 주는 분위기였다. 예전에 재경에서 일할 때와 비교하면 천지 차이였다.

신연지는 새로 찾은 이 직장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퇴근 시간이 되자 작업실 직원들은 경원의 전통이라면서 신입이 오면 꼭 회식을 해야 한다고 부추겼다.

회식 장소는 번화가의 한 삼겹살집으로 정했는데 그 맞은편에는 고급 레스토랑이 있었다.

레스토랑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고연우가 삼겹살집으로 들어가는 신연지 일행을 발견하고 박태준의 옆구리를 툭 쳤다.

“저기 봐. 저 사람이 신연지 씨 아니야?”

박태준은 친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신연지가 몇몇 남자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고기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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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 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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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을 들은 지배인은 고개를 돌려 신연지를 바라보며 물었다.“마태훈 씨 말이 정말 사실인가요?”지배인은 CCTV를 돌려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곳에 방문하는 고객들은 프라이버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기에 CCTV를 돌려본다면 다른 고객들이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 인간이 내 손목을 잡고 방으로 가자고 끌었어요. 그리고 내 친구에게 폭력을 휘둘렀고요. 저기 직원들한테 물어보면 되겠네요.”지배인이 두 직원에게 시선을 돌리자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사건의 자초지종은 대략 짐작한 대로였지만 지배인은 신분을 봐가며 일을 해결하는 부류였다. 예전에 신연지가 이곳에 출입하는 걸 본 적도 없고 옷차림을 봐도 그냥 평범해 보였다. 반면 마태훈은 이곳 단골손님이였다. 비록 최근 회사가 점차 내리막길을 걷고 있기는 하지만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그는 대충 마무리하고 넘어가기로 결론을 내렸다.“신연지 씨, 친구분께서 많이 다치신 건 같지 않은데 그냥 이대로 마무리할까요? 물론 의료비는 마 대표가 지불할 겁니다.”신분을 봐가면서 일을 처리하는 이런 상황을 신연지는 수도 없이 많이 바왔다.“내가 그렇게 못하겠다면요? 지금 엔조이 측에서는 추행범을 감싸고 도는 겁니까?”“물론 그건 아니죠. 손님들 사이의 분쟁은 손님들이 알아서 처리하게 하는 게 우리 원칙입니다. 단지 싸우려면 내부에서 싸우지 마시고 밖에 나가서 해결하시죠.”여긴 동사무소도 아니고 유흥업소였다. 클럽 내부에서 발생한 분쟁이 아니면 나가서 어떻게 해결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그럼 복도 CCTV를 좀 확인하고 싶습니다.”지배인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죄송하지만 우리가 접대하는 VIP 손님들은 프라이버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카운터와 엘리베이터를 제외한 다른 구역에는 CCTV가 존재하지 않습니다.”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술판이 벌어지는 곳에 CCTV가 없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멀지 않은 곳에서 강 건너

    Last Updated : 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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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53화 미안하다

    정민아는 팔짱을 끼고는 고연우가 들고 있는 꽃을 무심하게 훑어보았다.“연우 도련님, 이건 또 무슨 의미야?”“공 비서가 오늘이 여성의 명절이라고 했어.”“그래서?”주위는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 소리가 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려왔다.고연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정민아, 우리 이혼하지 말자.”너무 진부한 이야기였다. 정민아는 더 이상 이 주제를 논의할 의욕조차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책상 위 담뱃갑을 더듬었다. 옆의 재떨이엔 얇은 층으로 쌓인 담배꽁초가 있었고 그 중 절반 이상이 정민아가 피운 것임을 립스틱 자국이 말해주고 있었다.고연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정민아가 담배를 피우는 걸 싫어하면서도 막지 않았다.얇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정민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담뱃불은 희미하게 밝아졌다가 사라지며 그녀의 눈을 비췄다. 그 순간, 눈 속의 차가운 무관심이 한층 누그러져 보였다. 은빛 실처럼 가늘게 펴지는 연기 너머로 정민아는 당당하고 제멋대로 미소 지었다. 그리고 정민아가 그렇게 웃을 때마다 고연우는 어김없이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다음 순간 정민아가 말했다.“고연우, 너 이상한 거 아니야?”“그렇지. 이상하지 않았다면 여기 서 있지도 않았을 거야.”고연우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손목시계를 가리켰다.“시간 됐어. 레스토랑으로 가자. 예약해 놨어.”정민아는 이미 샘플 수정으로 지쳐 있었는데 고연우의 집요함이 정민아를 더욱 짜증 나게 했다. 고연우의 고급스러운 코트가 눈에 들어오자 정민아의 머릿속에 문득 나쁜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를 그의 코트에 대고 눌렀다.‘치...’불꽃이 꺼지면서 연기가 피어오르자 타는 냄새가 코트에서 퍼져 나왔다.정민아는 차가운 얼굴로 꺼진 담배꽁초를 옆의 쓰레기통에 던졌다.“꺼져.”고연우는 자신이 입고 있는 코트의 타는 자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민아의 손을 잡았다.“이 코트는 가격이 6자리 숫자야. 디자인에서 완성까지 3개월이 걸렸어. 나와 저녁 정도는 함께 먹어줘야 하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52화 살인자

    고연우는 벨트를 풀며 말했다. 남자는 원래 이런 상황에서 승부욕이 강해지기 마련인데 특히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그 감정이 더욱 크게 드러났다.“그런 암흑 같은 분위기는 우리 상황과 맞지 않아.”정민아는 원래 고연우에게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어둠 속에서 고연우는 마치 사나운 짐승처럼 보였을 것이니 고연우에게 흥미를 느끼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정민아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고연우는 옷을 반쯤 벗었고 단단한 근육이 팽팽히 긴장되었으며 술기운에 물든 피부는 은은한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공기 중에는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마치 곧 무언가가 터질 듯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가끔 고연우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정민아가 말했다.“요즘 운동 안 했어?”고연우는 어이없었다.“?”정민아는 손바닥을 고연우의 가슴 아래쪽에 대고 살짝 눌러보았다. 그러고는 평가하듯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육이 좀 줄었네.”“...”정민아는 마치 중대한 결정을 앞둔 사람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연우를 응시했다. 고연우는 모른 척하려 했지만, 결국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옷을 다시 입고 정민아의 손을 자기 몸에서 조심스레 떼어내더니 문을 향해 나가며 화가 난 듯 정민아를 한번 매섭게 쳐다보았다.“네가 이겼어.”완전히 흥미가 사라졌다....며칠 동안 고산그룹 대표실이 있는 층은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려 있었다.공민찬이 급한 서류 묶음을 들고 고연우에게 사인을 받으려 일어서던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소리가 났다. 그때 최민영이 가방을 들고나와 미소를 지으며 공민찬에게 인사를 건넸다.“공 비서님.”공민찬은 다가서며 말했다.“최민영 씨.”최민영은 사무실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연우 씨 사무실에 있나요?”“최민영 씨, 잠시만요”공민찬은 그녀를 막아섰다.“대표님께서 지금 바쁘십니다. 우선 접대 실에서 잠시 기다리시는 게 어떨까요?” “...”최민영은 눈썹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51화 전에 흥미가 없었던 건 불을 켜지 않아서야

    고연우는 짜증 내며 핸드폰을 테이블에 던지더니 미간을 꾹꾹 눌렀다. “나가세요. 나중에 송씨 아주머니한테 작업복 하나 달라고 하세요.”“도련님, 혹시 어디 불편하세요?”하린은 우유를 들고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 “저 예전에 마사지도 배운 적 있는데, 제가...”“그만 나가.” 고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녀의 손을 피하다가 우유를 엎지르고 말았다. 우유가 쏟아지며 더럽혀진 셔츠를 내려다보며 그는 얼굴은 굳어진 채 입술을 오므렸다. 한참 후에야 한 마디 내뱉었다. “사모님께서 보낸 겁니까?”그는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 뱉어냈다.하린은 고연우의 차가운 눈빛에 그 자리에 굳어진 채 말을 더듬었다. “도련님, 정말로 사모님께 저를 보내셨습니다.”“나가세요. 앞으로 제 허락 없이는 서재에 들어오지 마세요.” 하린은 금수저 남편을 찾기 위해 가사 도우미로 취직했다. 이를 위해 매니저에게 봉투까지 건넸지만 고연우의 사늘한 태도에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품지 못했다. 서재를 나오자마자 난간에 기댄 채 그녀를 쳐다보는 정민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모님...”하린은 갑자기 발걸음 멈추더니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불순한 의도를 품었던 그녀는 사모님을 보면 본능적으로 불안했다. “도련님께서 드시지 않았어요...”비록 정민아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하린은 괜히 자신을 평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마침 정민아가 입을 열었다. “그럼 몇 번 더 가져다주세요.”하린은 정민아의 말에 담긴 뜻을 단번에 눈치챘다.그녀는 자신이 잘못 이해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재벌 부인이 자신의 남편에게 여자를 찾아주는 걸까? 설사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돈이면 충분할 텐데, 그러다 사생아라도 생겨 상속 분배에서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면 어쩔 생각인지.’그녀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도련님께서 송씨 아주머니한테 익숙해졌는지 저를 좀 꺼리시는 것 같아요. 아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50화 우유를 가져다주다

    다음 날.정민아와 사연희는 쇼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아야...”주소월이었다. 사연희는 정민아의 과거에 대해 완전히 알지는 못했지만 주소월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세상에 자식을 챙기지 않는 엄마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설령 절친이라도 남의 가정사에 깊이 개입하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노트북을 들고 일어나 말했다. “초대장 몇 개 빼놓고 못 보낸 것 같은데, 금방 보내고 올게. 쇼에 관한 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그녀는 주소월을 흘끗 쳐다보고는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돌아섰다. 정민아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소월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녀는 어젯밤에 충분히 더 이상 정씨 가문과 연관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생각했지만 주소월이 여전히 찾아올 줄은 몰랐다. “오늘 밤에 연회가 있는데, 같이 가겠니?” 정민아가 거절할까 봐 주소월은 서둘러 한 마디 덧붙였다. “너희가 쇼를 열잖아? 오늘 밤 연회에 너와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 많이 올 거야. 잠재 고객을 몇 명 발전시킬 기회가 될 수도 있어.”“지금 그 무리에서 잠재 고객을 발전시키라는 말씀이세요?”그녀와 최민영의 갈등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집안이 최씨 가문보다 못한 사람은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꺼렸고 반면 집안이 최씨 가문보다 좋은 사람은 고아 때문에 굳이 적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주소월은 정민아가 당했던 일을 떠올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민아야, 미안해. 엄마가 너를 데려오긴 했지만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너한테 이렇게 상처만 줬네...”“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저를 정씨 가문으로 데려와 줘서 고마워요. 그 마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줘서, 그리고 또... 그 미친놈으로부터 구해줘서 고마워요.”마치 세월의 흔적을 덮은 한 자루의 칼처럼 서서히 그녀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민아야...” 주소월은 울먹거리며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처음 그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49화 입원

    정민아는 문을 열고 지친 몸으로 가방을 내려놓았다. 신발을 갈아신던 중 슬쩍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았다.“아주머니, 제가 전화드렸잖아요. 저녁 먹고 온다고, 왜 이렇게 음식을 많이 차렸어요?”송씨 아주머니는 2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도련님께서 아직 저녁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고연우라는 말을 듣자 정민아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2층으로 올라갔다. “아, 그렇군요.”“아가씨...”송씨 아주머니가 망설이며 그녀를 불렀다. “도련님께서 아가씨가 돌아오시면 같이 식사하자고 불러달라고 하셨습니다.”“제가요?” 정민아는 걸음을 멈추고 의아해하며 돌아봤다. “왜요?”“도련님께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셨는데... 두 분 혹시 싸우신 거 아닌가요?”“그 사람이 기분이 안 좋다고 제가 달래줘야 하나요? 그럼 왕자님, 저녁 드세요라고 말이라도 해야겠네요?” 정민아는 피식 웃더니 입가에 맴돌던 웃음이 갑자기 사라졌다. “먹든 안 먹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세요. 먹기 싫으면 굶으면 되죠.”송씨 아주머니는 시선을 정민아 뒤쪽으로 옮기더니 표정이 조금 일그러진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 도련님...”정민아가 뒤돌아보자 고연우는 난간에 기댄 채 냉랭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방금 샤워를 끝냈는지 머리가 약간 젖어 있었고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몸에 딱 맞는 셔츠에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은 채 단추는 몇 개 풀려 있었고 옷자락은 허리선에 맞춰 깔끔하게 넣었다. 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에 긴 다리를 뽐내며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배경처럼 흐릿해 보이게 만들었다.고연우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저녁 먹자.”사실 그는 조금 더 튕기고 싶었지만 계속 자존심을 부리다 이 무심한 여자는 그냥 가버릴 것 같았다.정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난 이미 먹었어.”“네가 장소 문제를 해결하라고 해서 해결해 줬더니, 겨우 도시락 하나 사주는 거냐? 정민아, 너 정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48화 다른 건 안 될까

    “난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한 적 없어.”정민아가 웃으며 고개를 옆으로 하자 덜 말려진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치우치며 하얗고 맑은 어깨가 그대로 드러났는데 그 위에는 물방울까지 맺혀있어 고연우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그 어떤 뜨거운 것이 가슴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고 방안에 가득 찬 정민아의 향기가 그림자마냥 고연우의 주변을 맴도는 탓에 고연우는 흐릿해져 가는 정신을 부여잡으려 주먹을 말아쥐었다.술기운이 뒤늦게 밀려오는 것인지 아니면 저 고혹적인 자세 때문인지 고연우는 머리가 점점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그에 정민아는 문을 열고는 손님을 배웅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내가 불편해지면서까지 다른 사람한테 맞추긴 싫거든. 그러니까 일단 최민영부터 죽이고 와서 사랑 타령해.”“... 다른 건 안 될까?”“다른 거 뭐?”정민아의 산만한 시선이 고연우의 몸에 머물렀다. 사람이 아니라 상품을 보는 듯 곳곳을 훑어보고 있었다.“너한테 나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한 뭐 다른 게 있긴 해?”상처가 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모욕적인 말임은 틀림없었다.하지만 웃긴 건 정민아의 말에 고연우가 고개를 숙여 제 몸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아무리 봐도 돈과 권력 외에는 정민아가 관심을 가질만한 게 없어 보이는 듯한 몸에 고연우는 고개를 들더니 그래도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그 기생오라비보다는 내가 더 잘생겼어.”정민아가 혹여 듣지 못할까 봐 고연우는 기생오라비라는 단어에 더 힘을 주며 말했다.어려서부터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던 고연우는 저에게도 이렇게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필하는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었다.하지만 정민아는 관심 없다는 듯 입꼬리를 움직이며 말했다.“얼굴 자랑 말고 가서 약이나 좀 사지 그래? 내가 너에 대한 흥미는 약의 자극을 받아야만 생길 것 같거든.”머리에 누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이 아까의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도 입안에는 분노 가득한 험한 말들이 서러움과 함께 맴돌고 있었다.“넌 앞으로 그냥 말을 하지 마.”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47화 안 해봤잖아

    고연우의 질문에 정민아는 사실대로 대답했다.“대학 때 후배.”그 말에 고연우는 아까 정민아를 보던 임우빈의 이상한 눈빛을 떠올리며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물었다.“쟤가 너 좋아해?”“응.”“...”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인정을 해버리는 정민아에 말문이 막혀버린 고연우는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너 저렇게 기생오라비 같은 놈 좋아했었어?”정민아의 성격 때문에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임우빈한테 유난히 관대한 것만은 보아낼 수 있었다.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민아 앞에서 주책맞게 떠들어 댄 게 자신이었다면 정민아는 진작에 제 머리를 비틀어 화분으로 삼겠다고 협박했을 것이다.정민아는 언짢아 보이는 고연우를 보며 말했다.“기생오라비 같은 게 아니라 어린 거야. 턱선이 당신처럼 뚜렷하진 못해 그래서. 그리고 뒤에서 다른 사람 험담하는 건 격 떨어지는 일이야, 고연우 도련님.”고연우 도련님이라는 단어에 올라가는 억양을 붙인 게 아무리 봐도 조롱 같았던 고연우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턱선이 나보다 뚜렷하지 못하고 어려서 그렇다고? 그럼 뭐 나는 늙었다는 소리야? 그리고 내 앞에서 내 아내를 탐내는 데 내가 얼마나 격을 차려야 한다는 거지? 난...”고연우는 간신히 튀어나오려는 험한 말을 참아냈다.“곧 이혼할 건데 뭘.”“꿈 깨.”혈관 속에서 불꽃이 튀기는 것 같은 느낌에 원래도 나빴던 기분이 더 완벽히 잡쳐버린 고연우는 정민아를 노려보며 말했다.“난 이혼에 합의 안 할 거니까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 사이에 사별은 있어도 이혼은 없어.”고연우의 말에 정민아가 문고리를 잡아 내리며 대꾸했다.“그럼 아직 살아있으니까 납골함이라도 직접 골라. 귀신 돼서도 네가 직접 고른 집에 있으면 기분이라도 좋겠지.”“정민아, 너...”고연우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눈앞에서 문이 “펑” 소리를 내며 닫혀버린 탓에 하마터면 거기에 얼굴을 맞을 뻔한 고연우는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누가 이딴 식으로 짜증을 내고 들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46화 쟤는 누구야

    말을 안 하고 앉아있는 정민아에 기사는 정민아가 슬퍼하는 줄로 알았지만 그렇다고 한낱 외부인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 답답한지 기사는 의자에서 앞뒤로 움직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진심으로 좋아하면 시험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솔직하게 알려줘야죠. 이런 식이면 남자는 점점 더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모든 남자들이 저런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저런 여자의 유혹을 당해낼 남자도 없어요.”“저도 남자예요, 믿어도 좋아요.”끊임없이 말하는 기사가 귀찮았는지 정민아는 고개를 돌리며 짧게 대꾸했다.“응, 믿으니까 출발해 빨리.”정민아가 고연우를 시험하는 건 그가 저를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주 씨 집안 간의 계약이 성사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지금 보니 이 길은 이미 글러 버린 것 같았다.임우빈은 한 손으로 좌석 등받이를 당기며 고개를 돌려 정민아를 바라보며 그 나이대 특유의 당찬 표정을 하고 말했다.“저렇게 양옆에 여자나 끼고 다니면서 여러 사람 홀려대는 남자는 믿음직스럽지 못하잖아요. 누나 관심을 받을 자격도 없죠. 저는 어때요?”임우빈은 제 이두근을 자랑하며 말했다.“젊고 잘생긴 데다가 체력도 좋고 무엇보다 일편단심이에요. 누나 말곤 아무도 안 봐요, 길가는 암컷 강아지한테 눈길 안 줄 자신 있는데.”“... 너희 엄마는 네가 자기보다 몇 살이나 많은 여자를 집안 며느리로 들이려 한다는 사실 아니?”정민아의 말에 임우빈은 툴툴대며 대답했다.“많이는 아니죠, 고작 세 살인데. 오버는 하지 말죠. 그리고 내가 정말 누나를 집에 데려가면 우리 엄마는 엄청 좋아할걸요. 적어도 앞으로 두 세대는 미모는 보장할 수 있으니까.”임우빈은 정민아의 대학교 후배였는데 1학년 때 운동장에서 정민아를 처음 본 순간 그녀에게 반해버려 결혼하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제대로 들이대 보지도 못하고 정민아가 퇴학을 해버리는 탓에 겨우겨우 수소문해서 정민아가 있다는 경인시까지 와서 대학원을 다니고 여기서 취직

  • 이혼하고 전남편이 변했다   제845화 약점을 잡아서 하는 협박

    사연희는 잔뜩 감동한 얼굴로 정민아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우리 가게 때문에 민아 씨만 고생했네요.”안 그래도 하룻밤 사이에 노 대표님의 생각을 바꿀만한 둘레의 허벅지를 찾는 건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아 시간이 촉박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그 시간은 그저 노 대표님이 술을 깨기 위한 시간이었다.사연희가 오해한 걸 알아차린 정민아는 해명하기도 귀찮아져 그냥 사연희를 데리고 나가려 했는데 그때 공민찬이 나오면서 말했다.“고 대표님, 방금 룸까지 다 확인했습니다. 사모님의 머리카락 한 올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그 말이 끝나자 주위의 공기는 순식간에 어색해졌다.고연우는 공민찬을 흘겨보며 언짢은 듯 말했다.“너만 입 달렸어?”“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소릴 했네요.”공민찬은 사과 하나는 빨리하며 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그런데 사모님께 말씀은 하셨어요?”“...”“대표님, 계속 이런 식으로 하시면 사모님 마음 못 돌려요. 사모님이 최민영 씨한테 괴롭힘 당할까 봐 문 앞에 사람까지 세워서 지키시면 뭐해요, 이런 건 대표님이 말씀 안 하시면 사모님은 영영 모르실 텐데요. 그럼 감동도 못 받으실 테고 사모님이 감동하지 못하시면...”그런 공민찬을 보던 사연희는 주먹을 말아쥐며 입술을 깨물더니 정민아에게 귓속말을 했다.“안 되겠어, 나 여기 더는 못 있겠어.”밖으로 나가기 전 사연희는 한 번 더 공민찬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사연희가 만약 공민찬처럼 말 많고 사실만 얘기하며 아픈 데를 콕콕 찌르는 비서를 뒀다면 얼마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냈을 텐데 무표정으로 듣기만 하는 고연우를 보니 허벅지 대표님의 성격은 꽤 차분해 보였다.“입 다물어.”그 차분한 고연우도 더는 듣기 싫었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공민찬 손에 들려있던 차 키를 뺏어 들고는 정민아를 보며 말했다.“가자.”“응.”정민아의 대답을 들은 고연우의 발이 허공에 잠시 머물렀다가 한참 만에 땅에 닿았다.정민아의 조롱 섞인 거절이거나 분노는 너무나 익숙하고 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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