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몇 명을 부른 건 사실이지만 그녀는 당시 어떤 선을 넘는 일도 하지 않았고 손도 대지 않은 채 내내 단정하게 앉아서 노래만 불렀었다.그러나 박태준이 계속 쳐다보니 신은지는 약간 찔렸는지 자기도 모르게 건조해진 입술을 핥았다."응."박태준은 그녀를 자기 옆으로 끌어당기더니 말했다."내가 지금 머리가 좀 어지러워서 방으로 돌아가서 이 문제에 대해 잘 얘기하도록 하자."옆에 있던 진유라는 곽동건의 팔을 비틀고 있었다. 그의 근육이 너무 단단해서 꼬인 손이 시큰거렸지만 상대방은 눈살도 찌푸리지 않았다."왜 은지까지 말해서 이 난리를 피워요? 지금 이간질하는 거 알아요?""미안해요, 직업병이 도져서 습관적으로 진실대로 말했어요.""..."차라리 설명하지 않는 게 더 나았다. 설명하면 할수록 더 복잡해졌다.박태준이 신은지를 끌고 가려 하자 진유라가 급히 해명했다."그 사람들은 모두 제가 불렀어요. 스물몇 명 모두 제 옆에 앉았고요."이 일은 그녀가 저지른 것이니 박태준과 신은지가 이 일로 싸우게 해서는 안 된다.박태준은 그녀를 한 번 쳐다보고는 어두웠던 안색이 좀 풀렸다.진유라가 짜증 났지만 그래도 신은지에게 잘해줬기에 그는 그녀를 계속 참아줬다."은지야."나유성은 한 발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그는 가운을 걸쳤지만 끈을 매지 않았기에 앞가슴과 복부, 섹시한 라인이 다 드러났고 늘씬하고 힘센 다리까지 숨김없이 드러났다.박태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자 큰 체구의 두 사람이 사이에 있는 신은지를 가려 신은지의 시선을 꽁꽁 막아버렸다.나유성은 말랐지만 에잇 팩을 가지고 있다.그는 웃으며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신은지는 박태준의 손에 이끌려 호텔 쪽으로 향하던 중 진유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방금 온천 옆에 있는 장식이나 디저트들, 다 태준 씨가 특별히 사람을 시켜서 한 거야. 정말 멍청하기도 하지. 널 위해서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말도 안 하고..."진유라도 전에 온천 펜션에 와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것
신은지는 눈을 내리깔고 그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보더니, 고개를 들면서 퉁명스럽게 박태준을 노려보았다."내가 너를 믿지 않았다면, 너는 지금 이미 이불을 끌어안고 복도에서 자고 있었을 거야."박태준이 찾은 포토그래퍼와 메이크업 담당 선생님이 이미 문 앞에 있었고 그는 문을 열고 사람들을 들어오게 했다.신은지는 피부 베이스가 좋은 데다 박태준은 사진과 실제 사람의 차이가 크지 않아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에 화장, 스타일링, 옷 고르기에 이르기까지 전체 과정이 30분을 넘지 않았다.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두 사람은 전문 모델은 아니지만 비주얼은 물론 몸매까지 좋아 이상한 각도만 아니면 어떻게 찍어도 예뻤다."아주 좋아요. 침대에서 장난치는 사진 몇 장만 더 찍으면 촬영 끝이에요."신은지가 침대에 앉자마자 사람이 굳어졌다.이 침대...흔들린다.이 침대는 커플을 위한 움직이는 침대였고 그녀는 마침내 왜 스위트룸으로 불리는지 알게 되었다.사진작가는 고개를 숙인 채 찍었던 사진을 뒤적이다가 침대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신은지를 보고 말했다."신부분, 긴장하지 마세요."신은지는 고개를 돌려 박태준을 보았지만 남자는 옷을 정리하고 있어서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그녀는 헛기침을 두 번 하면서 그에게 암시했다.박태준이 눈을 들어 보니 신은지는 몸을 굳힌 채 움직이지 않았고 눈빛은 끊임없이 아래 침대를 가리켰다.그녀의 뜻을 알아챈 박태준은 빙그레 웃으면서 그녀를 놀리려고 했지만 그녀를 화나게 할까 봐 화를 내며 웃음을 참았다."오늘 촬영은 여기까지 하죠. 지금 저희가 입고 있는 옷은 내일 스튜디오에 보내드리도록 할게요.""알겠습니다, 박 대표님."곧 방 안에는 신은지와 박태준 두 사람만 남았고 그가 다가가 그녀의 옆자리에 앉자 그의 움직임에 따라 침대가 오르락내리락했다. 신은지의 몸도 통제되지 않고 몇 번이고 움직였다."마음에 들어?"남자의 숨결이 감돌았고 외부인은 없어졌기 때문에 신은지의 몸은 이미 완전히 풀린 상태였다. 그녀는 두
신은지의 동작이 멈추자 지수호는 궁금증을 풀지 못해서 물었다."왜요?"그녀는 대답 대신 조금 가까이 다가가 내색하지 않고 숨을 들이마셨지만, 어떤 고전적인 오드콜로뉴 냄새만 맡았다.신은지는 코를 비볐는데 자신이 잘못 맡았는지, 어디서 그 향을 맡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잔을 받아든 그녀는 아무 핑계를 대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아침에 아침을 거른 탓인지 저혈당이 와서 방금 잠깐 어지러웠어."그녀는 서랍에서 사탕을 꺼내 입에 물었다. 그때 그녀는 지수호가 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의 손에 있는 사탕을 응시했다."..."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 군침이 돌아 하는 그의 모습에 신은지가 물었다."사탕이 먹고 싶어요?"그녀는 자기가 잘못 이해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보통 남자들은 단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좋아한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어린애처럼 남을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응."지수호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이 사탕은 이전 동료가 준 것이기에 오직 한 알뿐이었다. 신은지는 지수호를 보고는 다시 그녀의 입술에 거의 닿을 것 같은 사탕을 보았고 남자의 간절한 눈빛에도 망설임 없이 자신의 입에 넣었다."휴가를 30분 줄 테니 사 오세요."그의 신분으로 보아, 박물관을 찾은 건 이력서를 쓰기 위해서였을 것이었다.신은지 역시 그에게 무엇을 시킬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시원스럽게 허락했고 심지어 그가 줄곧 자기 앞에 얼씬거리지 않기를 바랄 정도로 그녀는 일하는 데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지수호는 신은지의 불룩한 한쪽 뺨을 보더니 재미있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사탕을 사러 돌아섰다.20분 후, 남자는 돌아와서 신은지에게 아침 식사를 가져다주었다."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그냥 좀 샀습니다.""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전 보통 아침밥을 안 먹는 편이어서요."그녀는 단지 낯선 사람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아서 아무렇게나 말한 것이었다. 박
몽둥이를 언급하자 여자애의 몸이 눈에 띄게 움츠러들었고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박태준이 얼굴을 찡그렸다.‘이렇게 어린아이에게 손을 쓸 수 있다니, 그 남자는 짐승만도 못한 놈이.'공예지가 급하게 달려왔다.그녀의 목소리에 여자애가 급하게 걸상에서 내려갔다. 박태준은 혹시라도 여자애가 넘어질까 봐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뒤를 감쌌다.여자애는 그녀의 품에 안겼다."언니, 예함이가 길을 못 찾아서, 무서워서 여기 오빠 핸드폰을 빌려서 언니에게 전화했어."공예지는 여자애를 몇 마디 달래고 나서야 박태준에게 다가왔다."박 대표님, 감사합니다. 또 한 번 저를 도와주셨어요."박태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저랑 상관없어요. 여자애가 똑똑한 거죠.""어쨌든 감사합니다."그는 그녀가 고집불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처럼, 그가 여러 번 설명했지만 그녀는 그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마워하지 않아도 돼요. 전화 요금 100원만 주시면 다 갚은 게 되죠.""..."그녀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어서 사람 전체가 멍해졌다. 원래는 이 일을 빌려서 박태준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녀에게 이런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 한참 멍하니 있다가 그녀는 비로소 가방에서 돈을 꺼낼 생각을 했다.하지만 요즘 현금을 들고 다니는 젊은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가져간다고 해도 잔돈이 없었다.공예지는 1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을 건네주다가 렉이 걸려서 박태준에게 잔돈을 거슬러달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거스름돈을 주지 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생각해도 둘 다 적합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가 코드를 스캔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박 대표님, 저... 잔돈이 없어서 그러는데 카톡을 추가하실래요? 제가 카카오페이로 드릴게요.""아닙니다. 프런트 데스크에 잔돈이 있을 테니 가서 교환해 주세요."공예지의 얼굴에 있
"공예지 씨."박태준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별일 없으면, 저와 제 아내는 밥을 먹을 생각입니다."이렇게 분명한 암시를 그녀가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고 목소리를 떨었다."죄송합니다. 제가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더는 한 글자도 말할 수 없다.너무 급하게 가다가 옆자리에 있는 공예함도 잊은 채 예함이의 작은 몸에 무릎을 부딪혔다."언니..."예함이는 케이크를 먹지 않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들고 그녀를 쭈뼛쭈뼛 바라보며 부딪혀 아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공예지는 어린 소녀의 손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떠났다.예함이는 테이블 위에 놓인 딸기 케이크를 한 세 번 바라보았고 아쉬워하며 입술을 핥았지만 순순히 공예지를 따라갔다.박태준과 신은지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가서야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서 그 방향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그들의 정이 얼마나 깊은지 실험해 보려고 했다."언니, 예함이 잘못했어?"어린 소녀가 눈치를 잘 살폈다."언니가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오빠는 의심하지 않았어."공예지는 그녀의 입을 꽉 막았다."예함이 착하지? 방금 일은 우리 둘 사이 작은 비밀이야. 다른 사람이 들으면 안 돼."식당에서 신은지는 천천히 메뉴를 뒤적거렸고 테이블 위의 물건은 이미 치워져 있었다. 박태준은 처음에 그녀가 공예지가 반만 말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걱정했지만 그녀는 물어보지 않았다.그녀가 묻지 않자 박태준은 오히려 기분이 언짢아졌다."나한테 물어볼 것 없어?""있지, 뭐가 맛있어?""..."30초나 기다렸지만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박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이 식당은 당신이 추천하지 않았어? 뭐가 맛있는지 몰라?""다 맛없어."박태준은 가뜩이나 머리가 아팠는데 이번에는 더 아팠다. 관자놀이를 누르니 손가락 아래서 힘줄이 뛰는 것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머리가 아파서 말을 하기
진유라는 역시 손쉬운 달인답게 신은지가 메세지를 보는 틈에 또 십여 개의 메시지를 보내왔다.[은지야, 슬퍼하지 마. 내가 가서 그 망할 놈의 남자, 내가 죽도록 욕해버릴게.][감히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다니.]이어서 폭행하는 이모티콘을 보내서 화면이 피범벅으로 됐다.[미친.][잘못됐네.][내가 마음에 든 게 아니라 너에게서 멀리하라고 그러네.][그 개자식이 내가 너한테 음탕한 사진을 보냈다고 모함했어.]신은지는 고개를 돌려 박태준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약간 숙인 그는 이마에서 턱까지의 선이 도톰하고 매끄러웠다. 진유라에게 보내는 것인지 눈썹을 찡그리며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평소에 엄숙하고 담백한 남자가 아무렇게나 검색해도 나오는 사진 때문에 진유라에게 돈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그녀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입꼬리가 통제 불능으로 씰룩거리자 신은지가 이렇게 답장하려고 했다.[태준이 헛소리 듣지 마. 네가 나를 망치지 않았으니까.]한 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진유라에게서 또 메시지가 왔다."박태준 씨 타자 속도가 너무 느리네. 내가 십여 개를 보내서야 그가 하나 답장할 수 있어. 이런 사람인데 네가 즐거움을 얻을 수 있어?"신은지는 휴대전화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아까 타자했던 ‘네가 나를 망치지 않았으니까'라는 말을 지우고는 대답했다."왜 이렇게 메시지를 빨리 보내?"그녀의 휴대전화가 진동하고 있었고 박태준의 휴대전화도 진동하고 있었다.윙윙 진동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진유리의 말을 들어보면 대화 상대는 모두 그녀였다.그녀 혼자서 그들 두 명과 문자를 하면서도 속도가 아주 빨랐다.두 사람의 개인 카톡을 바꾸는 것만으로 손가락이 바쁠 것 같았다.[휴대전화로 하나 답장하고 컴퓨터로 하나 하지.][무슨 사진이길래? 나한테도 보내줘야지. 꼭 사진으로 박태준의 그 고리타분한 얼굴을 박살 낼 거야. 그게 무슨 음란한 사진이라고. 분명 생물학적인 그림 설명일 거야.][자기가 음탕하니까 모든 사람을 음탕하게 보는 늙고 음탕한 사람이야.
"할부요? 하루에 한 번 해도 3개월인데요? 속도가 빠르면 아이까지 생겼겠어요."진유라는 짜증을 내며 머리를 쓸어올리며 눈을 부릅뜨고 마치 시험 감독 선생님 같이옆에 서 있는 곽동건을 노려보았다."지금 베낄 테니까 나가세요."진유라는 맥이 빠져서 컴퓨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펜을 들고 쓸 준비를 했다. 내용이 많지는 않지만 백 번 베끼면 손이 망가질 것 같았다.하지만 그녀가 베끼지 않으면 곽동건은 어머니 앞에서 헛소리할 것이었다. 바로 그의 집으로 보내지는 것보다 참는 것이 나았다.복수는 언제 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빚은 언젠가 곽동건에게서 돌려받을 것이었다. 그때는 백 번 베끼게 할 뿐만 아니라 두리안 껍질 위에 무릎을 꿇고 베끼게 할 것이었다.옆에 있는 남자가 걸음을 옮기지 않은 것을 본 진유라는 씩씩거리며 고개를 들었다."설마 여기 서서 계속 내가 베끼는 걸 지키고 있을 건 아니죠?"곽동건은 입술을 오므린 채 그녀를 응시했고 안색이 안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결코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진유라는 그의 눈빛에 깜짝 놀라 심장이 엇박자로 뛰기 시작했다.‘이 사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 아닌가?'그녀가 가슴을 두드리며 시선을 거두려 하자 곽동건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에게 뽀뽀했다. 부드러운 입술이 서로 달라붙었다. 그의 혀끝이 그녀의 입술에 닿아 뽀뽀는 점점 진득한 입맞춤으로 변했다."..."그의 손이 진유라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그녀의 뒤통수를 감쌌다. 그녀를 속박하는 자세로 그들은 키스를 이어 나갔다.곽동건의 손바닥의 온도를 느끼며 진유라의 머릿속에는 갑자기 자신이 이틀 동안 머리를 감지 않았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유라야, 전화해서 동건 씨한테 어디까지 왔는지 물어봐."진유라 어머니의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리더니 이내 멈췄다.진유라는 곽동건을 밀어내고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고 놀란 어머니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마주쳤다.진유라 어머니는 침착하게 그들에게서 눈을 떼고 사방을 쓸어보더니 혼잣말했다."왜
박태준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눌렀다. 이제는 공예지만 보면 조건반사처럼 두통이 발작한다. 몇 번이나 두통이 가장 심할 때 그녀와 마주쳐서 그런가?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거절하려는데 공예지가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비행기’라고 말했다.그는 즉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채고 고개를 돌려 진영웅에게 말했다.“이사님들이랑 먼저 가 있어.”진영웅은 공예지를 힐끗 보더니 한마디 귀띔했다.“대표님, 시간이 없어요.”박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공예지를 데리고 그녀가 머물렀던 라운지로 갔다. 프런트 직원이 과일과 디저트를 내왔고 그녀의 취향을 물은 후 새콤달콤한 과일주스도 올렸다. 조금 전까지는 이런 대우가 없었다.그녀는 약속을 잡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 앉아서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프런트 직원은 몇 번 우렸는지 모르는 국화차 한 잔을 내왔을 뿐이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신은지였다면 프런트 직원이 이렇게 홀대했을까 생각했다.“공예지 씨.”박태준은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여인을 보고 목소리를 높였다.제 정신으로 돌아온 공예지는 홀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프런트 직원을 보며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여기서 얘기해요? 누가 듣지 않을까요? 조용한 곳으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 프런트 직원이 계속 이쪽을 봐요.”“그럴 필요 없어요.”박태준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가 웃었다.공예지는 내심 기뻐하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지만 박태준이 이내 그런 그녀에게 찬물을 끼얹었다.“은지 팬이에요.”박태준은 그 직원이 몰래 비상 통로에 숨어 은지의 대회 동영상을 보고, 친구에게 빨리 보라고 미친 듯이 추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공예지는 얼굴이 굳어지더니 웃음이 사라졌다.박태준은 이 화제를 건너뛰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몇 시 비행기예요?”“3시 10분이요.”그가 손목시계를 보니 지금 12시 반이다.“항공편은요?”“...”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